조카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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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카마치는 일본의 봉건 영주인 다이묘가 통치하던 성 아래 마을을 의미한다. 가마쿠라 시대에 기원하여 센고쿠 시대에 발전하였으며, 군사, 행정,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책으로 조카마치는 더욱 번성했으며, 에도 시대에는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수행했다. 조카마치는 방어 시설과 독특한 도시 구조를 갖추었으며, 현재는 많은 도시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일본의 많은 도시가 조카마치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일부는 '작은 교토' 또는 '작은 에도'로 불리며 그 특징을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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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조카마치'''(城下町)는 '''성하'''(城下)라고도 불리며, 전국 시대에 성의 방어, 행정, 상업 기능을 갖춘 도시로 시작되었다. 에도 시대 이후에는 반드시 성이 중심일 필요는 없었으며, 전투를 상정하지 않는 행정 시설인 진야를 중심으로 한 '''진야마치'''도 넓은 의미에서 조카마치에 포함된다.
2. 1. 초기 발전
조카마치(城下町)의 기원은 가마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조카마치가 다른 유형의 마을보다 우세해진 것은 센고쿠 시대인 1570년대 이후였다.[2][3]조카마치는 영주인 다이묘가 통치하는 성곽 도시인 슈고 조카마치(守護城下町)로 구분될 수 있었다. 슈고 조카마치는 영지의 정치 중심지였지만, 경제 활동은 신사와 사찰 주변에 발달한 마을(몬젠마치(門前町))과 항구 도시(미나토마치(港町))에서 더 활발했다. 16세기 중반, 성곽 도시가 증가하면서 다이묘의 거주지이자 영지의 정치 중심지(센고쿠 조카마치(戦国城下町))가 되었다.[4]
조카마치는 성이 상징하는 군사 기지이자 행정 및 상업 도시의 기능을 모두 수행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근세 조카마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사무라이 계급에게 특권을 부여하고 농민 등을 무장 해제함으로써 사무라이 계급과 나머지를 구분하는 헤이노분리(兵農分離)를 추진하면서, 사무라이 계급이 조카마치에 거주하도록 강제하는 동시에 라쿠이치라쿠자(楽市楽座)(자유 시장과 개방된 길드)를 설립하여 상업과 무역을 활성화시켰다.[5] 한편, 노부나가의 병농 분리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지적도 있다.[6]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 하에서 조카마치는 더욱 번영했는데, 그의 정치 및 상업 중심지인 오사카-조카는 상품 유통의 중심지로 매우 번창했다. 오사카는 에도 시대에도 상업 중심지로 남아 "천하의 부엌"이라고 불렸다.
세계의 대부분의 성벽 도시는 성과 성벽 안의 도시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에도 해자와 토루로 둘러싸인 사카이와 같은 마을과 마을이 있었지만, 조카마치는 초기에는 봉건 영주의 성 주위에만 해자와 성벽이 있었고 도시 전체를 둘러싼 성벽은 건설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카마치가 발전하고 경제적·정치적 가치가 증가함에 따라 전쟁과 혼란으로부터 보호받을 필요성이 생겼다. 점점 더 많은 도시가 해자와 방어벽을 갖추고 건설되었는데, 이는 소가마에(総構え)(완전 방어 주변)로 알려진 스타일이며 점차 성벽 도시와 유사해졌다.
2. 2.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역할
오다 노부나가는 근세 조카마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사무라이 계급에게 특권을 부여하고 농민 등을 무장 해제함으로써 사무라이 계급과 나머지를 구분하는 헤이노분리(兵農分離)를 추진하면서, 사무라이 계급이 조카마치에 거주하도록 강제하는 동시에 라쿠이치·라쿠자(자유 시장과 개방된 길드)를 설립하여 상업과 무역을 활성화시켰다.[5] 한편, 노부나가의 병농 분리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지적도 있다.[6]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 하에서 조카마치는 더욱 번영했는데, 그의 정치 및 상업 중심지인 오사카 조카마치는 상품 유통의 중심지로 매우 번창했다. 오사카는 에도 시대에도 상업 중심지로 남아 "천하의 부엌"이라고 불렸다.
2. 3. 에도 시대의 변화
에도 시대에는 조카마치가 군사 기지로서의 역할보다는 쇼군 정부와 봉건 영주 영지의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에도 시대에 전쟁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다이묘들이 한 영지에서 다른 영지로 자주 이동하면서 도시 자체에 대한 애착이 덜했기 때문이다. 물론 농작물 수확량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였다.[7]성의 방어력을 중시하여 지리적 위치를 선정했기 때문에 교통이 불편한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많은 경우 도시가 상업 중심지가 되면서 성을 버리고 진야로 정부 기지를 이전하기도 했다.[7]
조카마치의 인구는 다양했다. 가나자와와 센다이와 같이 사무라이와 상인을 합쳐 약 12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조카마치도 있었지만, 도호쿠 지방의 카메다와 같이 약 4,000명 정도의 소규모 조카마치도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인구는 약 1만 명 정도였다.[7]
3. 도시 구조
조카마치는 가장 가까운 주요 도로가 도시를 통과하도록 재설계하여 상업을 활성화하고자 했다. 지리적 문제와 관계없이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주요 도로는 성의 뒤쪽이 아닌 정면을 지나도록 설계되었다.
조카마치는 동일본에서는 강변 테라스 주변, 서일본에서는 바다를 향한 삼각주에 위치하는 경향이 있었다. 히코네, 제제, 스와와 같은 도시들은 "호수형" 조카마치로 호수에 인접해 있다.[7]
조카마치 내에는 사무라이야시키를 위한 사무라이마치, 아시가루들이 거주하던 아시가루마치, 상인과 장인을 위한 초닌마치, 사찰들이 모여있던 테라마치와 같은 작은 지역들이 성을 둘러싸고 있었다.
3. 1. 방어 시설
조카마치는 도시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침입을 막기 위해 강과 같은 지형을 이용하고, 해자를 파거나, 흙으로 쌓은 토루와 돌로 쌓은 성벽을 쌓았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도시에는 마스가타 문과 같은 튼튼한 성문을 설치하기도 했다.[7] 조카 내부에서는 주요 거리 양쪽에 집들을 밀집하여 배치해 성을 직접 볼 수 없도록 했고, 성으로 가는 길을 길게 만들기 위해 도로는 구불구불하거나 막다른 길이었다. 도시의 작은 구역들은 울타리와 나무 문을 설치하고 밤에는 경비병을 배치하여 침입자를 막았다. 해자는 운하로도 사용되어 상품 유통에 큰 역할을 했다.[7]
3. 2. 도시 구획
조카마치는 도시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강과 같은 지형을 이용하고, 해자를 파거나 토루와 돌담을 쌓았다. 또한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는 마스가타 문과 같은 튼튼한 성문을 설치했다. 조카 내부에서는 성이 보이지 않도록 주요 거리 양쪽에 집들을 밀집시켰고, 성으로 가는 길을 만들기 위해 도로는 구불구불하거나 막다른 길로 만들었다. 도시의 작은 구역들은 울타리와 나무 문을 설치하고 밤에는 경비병을 배치하여 침입자를 막았다. 해자는 운하로도 사용하여 상품 유통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7]이러한 도시들은 동일본에서는 강변 테라스 주변에, 서일본에서는 바다를 향한 삼각주에 주로 위치했으며, 히코네, 제제, 스와와 같이 호수에 인접한 "호수형" 조카마치도 있었다.[7]
조카마치 안에는 사무라이마치, 아시가루마치, 초닌마치, 테라마치와 같은 작은 구역들이 성을 둘러싸고 있었다. 사무라이마치는 사무라이야시키라고 불리는 사무라이 저택을 위한 지역이었다. 신분이 높을수록 성에서 가까운 곳에 저택을 소유했다.[7] 산게, 카미야시키마치, 시타야시키마치와 같은 이름은 사무라이마치의 흔적이다. 아시가루와 같은 하층민들은 주로 초닌마치 외곽에 거주했다. 반초, 유미노초, 철포초와 같은 이름의 마을들은 원래 아시가루마치였다.
초닌지(초닌 지역)는 상인과 장인을 위한 곳으로 사무라이마치 바깥에 있었다. 조카마치 근처에 살던 마을 사람들은 이주하면서 초닌지에 거주하게 되었다. 상인과 장인들은 직업에 따라 배치되었다. 고후쿠마치(옷 가게), 아부라야쵸(기름 가게), 다이쿠마치(목수 마을), 카지마치(대장장이 마을), 코야쵸(염색 가게 마을)와 같은 이름은 초닌지의 잔재이다. 초닌지는 사무라이마치보다 가구당 면적이 작았고, 거리에 밀집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초닌 가옥은 입구가 좁고 깊이가 깊어 "장어집"이라고 불렸다. 2층이 있었지만, 2층은 영주를 내려다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창고로 사용했다.
테라마치는 조카마치 외곽에 위치하여 사찰들이 모여 있었다. 이는 도시 방어에도 도움이 되었다.
3. 3. 지리적 특징
조카마치는 도시 방어를 위해 다양한 지리적 특징을 활용했다. 강과 같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적의 침입을 막고, 해자를 파거나 토루와 돌담을 쌓아 방어 시설을 강화했다. 특히 중요한 도시에는 마스가타 문과 같은 견고한 성문을 설치하여 방어력을 높였다.도시 내부에서는 성이 직접 보이지 않도록 주요 도로 양쪽에 집들을 밀집 배치하고, 성으로 가는 길을 구불구불하게 만들거나 막다른 길을 설치하여 적의 접근을 어렵게 했다. 또한, 도시의 작은 구역들은 울타리와 나무 문으로 구분하고 밤에는 경비병을 배치하여 침입을 막았다. 해자는 방어 시설 역할뿐만 아니라 운하로도 활용되어 상품 유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조카마치는 동일본에서는 강변 테라스 주변에, 서일본에서는 바다를 향한 삼각주에 주로 위치했다. 히코네, 제제, 스와와 같은 도시들은 호수에 인접한 "호수형" 조카마치로 분류된다.[7]
조카마치 내부는 성을 중심으로 사무라이마치, 아시가루마치, 초닌마치, 테라마치와 같은 작은 지역들로 구성되었다. 사무라이마치는 사무라이야시키가 있는 지역으로, 고위 봉신일수록 성에 더 가까운 저택을 소유했다.[7] 산게, 카미야시키마치, 시타야시키마치와 같은 현대 도시 이름은 사무라이마치의 흔적이다. 아시가루와 같은 하층민들은 주로 초닌마치 외곽에 거주했으며, 반초, 유미노초, 철포초(鉄砲町)와 같은 이름의 마을들은 원래 아시가루마치였다.
초닌지(초닌 지역)는 상인과 장인을 위한 사무라이마치 외부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조카마치 근처에 살던 마을 사람들은 이주할 때 초닌지에 거주했으며, 상인과 장인들은 직업에 따라 배치되었다. 오늘날 고후쿠마치("의류 마을"), 아부라야쵸("기름 마을"), 다이쿠마치("목수 마을"), 카지마치("대장장이 마을"), 코야쵸("염색 가게 마을")와 같은 이름의 마을들은 초닌지의 잔재이다. 초닌지는 사무라이마치에 비해 가구당 토지 면적이 작았고, 거리에 따라 밀집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초닌 가옥은 좁은 입구와 깊이가 깊어 "장어집"이라고 불렸으며, 2층은 봉건 영주를 내려다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창고로 사용되었다.
테라마치는 조카마치 외곽에 위치하여 대규모 사찰들을 형성했으며, 도시 방어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4. 한국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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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현대적 의의
오늘날 일본에서는 인구 10만 명이 넘는 도시 중 절반 이상이 옛 조카마치(성하마치)이다. 큰 화재, 전쟁 피해, 도시 개발을 통해 그 모습은 변해왔다. 원래 조카마치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는 줄어들고 있으며, 전체 지역을 보존한 도시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많은 옛 조카마치는 부분적이긴 하지만 옛 도시 설계의 잔재를 보존하고 있으며, 외침을 저지하기 위해 설계된 원래의 거리가 오늘날 교통 체증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현대 도시에는 종종 옛 조카마치의 다른 흔적들, 예를 들어 여전히 시 중심지로 기능하는 옛 초닌지(町人地) 지역이나 조카마치 시대부터 계속된 축제와 전통 등이 남아 있다. 에도 시대 이전의 설계를 유지한 도시는 종종 소쿄토(小京都, 작은 교토)라고 불린다. 에도 시대의 잔재가 남아 있는 도시는 때때로 코에도(小江戸, 작은 에도)라고 불리기도 한다.[1]
5. 1. 보존 노력
오늘날 일본에서는 인구 10만 명이 넘는 도시 중 절반 이상이 옛 조카마치(성하마치)이다. 큰 화재, 전쟁 피해, 도시 개발을 통해 그 모습은 변해왔다. 원래 조카마치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는 줄어들고 있으며, 전체 지역을 보존한 도시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많은 옛 조카마치는 부분적이긴 하지만 옛 도시 설계의 잔재를 보존하고 있으며, 외침을 저지하기 위해 설계된 원래의 거리가 오늘날 교통 체증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현대 도시에는 종종 옛 조카마치의 다른 흔적들, 예를 들어 여전히 시 중심지로 기능하는 옛 초닌지(町人地) 지역이나 조카마치 시대부터 계속된 축제와 전통 등이 남아 있다. 에도 시대 이전의 설계를 유지한 도시는 종종 소쿄토(小京都, 작은 교토)라고 불린다. 에도 시대의 잔재가 남아 있는 도시는 때때로 코에도(小江戸, 작은 에도)라고 불리기도 한다.[1]
다음은 모습을 남기는 성하마치의 예이다.[1]
'''동북 지방'''
- 나카마치(히로사키시, 히로사키번 히로사키성 아래, 쓰가루의 작은 교토)
- 각관(센보쿠시, 쿠보타번 각관성 아래, 우슈의 작은 교토)
- 가스미조마치(야마가타시, 야마가타번 야마가타성 아래, 데와의 작은 교토)
- 가네가사키(가네가사키정, 센다이번 가네가사키 요새 아래)
- 시로이시(시로이시시, 시로이시번 시로이시성 아래)
'''중부 지방'''
- 나와테도리(마쓰모토시, 마쓰모토번 마쓰모토성 아래, 신슈의 작은 교토)
- 구조하치만(구조시, 구조번 구조하치만성 아래, 미노의 작은 교토)
- 히다타카야마(다카야마시, 다카야마번 히다타카야마성 아래, 히다의 작은 교토)
- 이누야마(이누야마시, 이누야마번 이누야마성 아래, 오와리의 작은 교토)
- 가나자와(가나자와시, 가가번 가나자와성 아래, 가가의 작은 교토)
- 무라카미(무라카미시, 무라카미번 무라카미성 아래)
- 이치조다니(후쿠이시, 전국 시대 성하 이치조다니성)
- 이와무라(에나시, 이와무라번 이와무라성 아래)
- 시라카베(나고야시 히가시구, 오와리번 나고야성 아래)
- 시켄미치(나고야시 니시구, 오와리번 나고야성 아래)
'''관동 지방'''
'''킨키 지방'''
- 이가우에노(이가시, 쓰번 이가우에노성 아래, 이가의 작은 교토)
- 단바사사야마(단바사사야마시, 사사야마번 사사야마성 아래, 단바의 작은 교토)
- 이즈시(도요오카시, 이즈시번 이즈시성 아래, 다지마의 작은 교토)
- 다쓰노(다쓰노시, 다쓰노번 다쓰노성 아래, 하리마의 작은 교토)
- 구와나(구와나시, 구와나번 구와나성 아래)
- 아노쓰(쓰시, 쓰번 쓰성 아래)
- 나가하마(나가하마시, 나가하마성 아래)
- 히코네(히코네시, 히코네번 히코네성 아래)
- 오미하치만(오미하치만시, 하치만 성하)
- 야마토코리야마(야마토코리야마시, 고리야마번 고리야마성 아래)
- 우다마쓰야마(우다시, 우다마쓰야마번 우다마쓰야마성 아래)
- 다카토리(다카이치군 다카토리정, 다카토리번 다카토리성 아래)
'''츄고쿠 지방'''
- 이시비야초(다카하시시, 비추마쓰야마번 마쓰야마성 아래, 비추의 작은 교토)
- 쓰야마(쓰야마시, 쓰야마번 쓰야마성 아래, 미마사카의 작은 교토)
- 쓰와노(쓰와노정, 쓰와노번 쓰와노성 아래, 이와미의 작은 교토)
- 하기(하기시, 조슈번 하기성 아래, 나가토의 작은 교토)
- 가노(돗토리시, 가노번 가노성 아래)
- 가쓰야마(마니와시, 가쓰야마번 가쓰야마 성하)
'''큐슈 지방'''
- 아키즈키(아사쿠라시, 아키즈키번 아키즈키성 아래, 지쿠젠의 작은 교토)
- 오비(니치난시, 오비번 오비성 아래, 휴가의 작은 교토)
- 가라쓰(가라쓰시, 가라쓰번 가라쓰성 아래)
- 히라도(히라도시, 히라도번 히라도성 아래)
- 시마바라(시마바라시, 시마바라번 시마바라성 아래)
- 히지(히지정, 히지번 히지성 아래)
- 구마모토(구마모토시, 구마모토번 구마모토성 아래)
- 우토(아미다 등, 우토지번 우토성 아래)
- 도미오카(레이호쿠정, 도미오카성 아래)
- 야쓰시로(야쓰시로시, 야쓰시로성 아래)
- 사쓰키(아시키타정, 사쓰키성 아래)
- 히토요시(히토요시시, 히토요시번 히토요시성 아래)
5. 2. 과제
오늘날 일본에서는 인구 10만 명이 넘는 도시 중 절반 이상이 옛 조카마치이다. 큰 화재, 전쟁 피해, 도시 개발을 통해 그 모습은 변해왔다. 원래 조카마치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는 줄어들고 있으며, 전체 지역을 보존한 도시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많은 옛 조카마치는 부분적이긴 하지만 옛 도시 설계의 잔재를 보존하고 있으며, 외침을 저지하기 위해 설계된 원래의 거리가 오늘날 교통 체증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1] 현대 도시에는 종종 옛 조카마치의 다른 흔적들, 예를 들어 여전히 시 중심지로 기능하는 옛 초닌지(町人地) 지역이나 조카마치 시대부터 계속된 축제와 전통 등이 남아 있다.[1] 에도 시대 이전의 설계를 유지한 도시는 종종 소쿄토(小京都, 작은 교토)라고 불린다. 에도 시대의 잔재가 남아 있는 도시는 때때로 코에도(小江戸, 작은 에도)라고 불리기도 한다.[1]다음은 인구 10만명 이상 및 미만의 조카마치(城下町) 목록이다.
5. 3. 한국에의 시사점
오늘날 일본에서는 인구 10만 명이 넘는 도시 중 절반 이상이 옛 조카마치(성하마치)이다. 큰 화재, 전쟁 피해, 도시 개발을 통해 그 모습은 변해왔다. 원래 조카마치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는 줄어들고 있으며, 전체 지역을 보존한 도시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많은 옛 조카마치는 부분적이긴 하지만 옛 도시 설계의 잔재를 보존하고 있으며, 외침을 저지하기 위해 설계된 원래의 거리가 오늘날 교통 체증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현대 도시에는 종종 옛 조카마치의 다른 흔적들, 예를 들어 여전히 시 중심지로 기능하는 옛 초닌지(町人地) 지역이나 조카마치 시대부터 계속된 축제와 전통 등이 남아 있다. 에도 시대 이전의 설계를 유지한 도시는 종종 소쿄토(작은 교토)라고 불린다. 에도 시대의 잔재가 남아 있는 도시는 때때로 코에도(작은 에도)라고 불리기도 한다.[1]참조
[1]
서적
The Cambridge History of Japan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9-07-28
[2]
서적
Studies in the Institutional History of Early Modern Japan
https://books.googl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5-03-08
[3]
서적
Urban Networks in Ch'ing China and Tokugawa Japan
https://books.googl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5-03-08
[4]
서적
The Archaeology of Medieval Towns: Case Studies from Japan and Europe
https://books.google[...]
Archaeopress Publishing Ltd
2020-08-27
[5]
서적
織田信長―中世最後の覇者
中央公論社
1987-06
[6]
서적
日本の時代史 (13) 天下統一と朝鮮侵略
吉川弘文館
2003-06
[7]
서적
武士の絵日記 幕末の暮らしと住まいの風景
角川ソフィア文庫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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