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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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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아시아 경제는 고대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발전해왔으며, 중국은 역사적으로 세계 주요 경제 강국 중 하나였다. 일본은 19세기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 산업 국가로 성장했고, 한국은 한국 전쟁 이후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대만, 홍콩, 마카오 역시 20세기 후반에 경제 발전을 이루었으며, 동아시아는 현재 세계 경제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외 무역 개방, 높은 정부 저축, 교육 강조 등 독특한 정책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었으며, 현재 중국의 경제 성장이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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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경제
동아시아 경제
동아시아
인구16억 명 ref
GDP (명목)29조 달러 (2023년 추정치) ref
GDP (PPP)44조 달러 (2023년 추정치) ref
1인당 GDP (명목)18,125 달러 (2023년 추정치) ref
1인당 GDP (PPP)27,500 달러 (2023년 추정치) ref
성장률3.8% (2023년 추정치)
인플레이션2.2% (2023년 추정치)
실업률4.2% (2021년)
부채GDP의 105.9% (2023년 추정치)
비고대부분의 수치는 국제 통화 기금에서 가져옴 https://www.imf.org/external/datamapper/profile/EAQ IMF East Asia Datasets
추가 정보
참고 자료https://www.kcl.ac.uk/study/courses-data/modules/7/The-Political-Economy-Of-China-And-East-Asia-7aaom015.aspx
https://courses.lumenlearning.com/boundless-worldhistory/chapter/east-asia-in-the-21st-century/
https://www.bluebackglobal.com/east-asia-market-overview/
관련 서적
참고 서적https://archive.org/details/asiasrisestcentu00macd
http://siteresources.worldbank.org/INTEASTASIAPACIFIC/Resources/226262-1158536715202/EA_Renaissance_full.pdf
https://archive.org/details/tigereconomiesun00yusu
추가 정보
참고 자료http://www.indiana.edu/~easc/outreach/educators/teams/documents/teamsvol2/how_east_asia_became_an_economic_power.pdf
https://treasury.gov.au/publication/economic-roundup-summer-2004-05/the-changing-pattern-of-east-asias-growth/

2. 역사적 배경

동아시아의 경제는 역사적으로 복잡한 관계 속에서 발전해왔다. 고대에는 주로 중국일본이 경제를 주도하며 풍부한 자원과 상품을 교역하고 문화를 교류했지만, 때로는 군사적 충돌을 겪기도 했다.[22] 이 과정에서 한국은 두 강대국 사이에서 문화적, 경제적 가교 역할을 수행하며 동아시아 교류 네트워크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다.[22][62][63]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중국은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가장 크고 발전된 경제 규모를 자랑하며 지역 경제의 중심 역할을 했다.[23][24][25]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주변국과의 무역 및 문화 교류를 통해 동아시아 전체의 경제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 역시 고대부터 독자적인 경제 시스템을 발전시켜왔으며, 특히 중세 이후 상업과 수공업이 발달하며 경제적으로 성장했다.[51][59] 한국은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중국 및 일본과의 교역을 활발히 전개했으며, 독자적인 경제 기반을 구축해 나갔다.[63][64] 이후 대항해 시대를 거치며 타이완 또한 동아시아 무역의 중요한 거점으로 부상하게 된다.[81]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각 국가는 고유한 경제 발전 경로를 걸어왔다.

2. 1. 고대

고대 동아시아의 경제는 오늘날의 중국일본으로 알려진 두 국가가 경제적으로 지배했다. 이 두 고대 국가들은 풍부한 원자재와 고품질의 제조 상품을 교역하고, 문화적 아이디어와 관행을 교환했으며, 수 세기에 걸쳐 서로 군사적 충돌을 겪었다.[22] 한편, 고대 한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문화적, 경제적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22] 각 국가의 구체적인 고대 경제 발전 과정은 하위 섹션에서 자세히 다룬다.

2. 1. 1. 중국

동아시아 역사 대부분에서 중국은 이 지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크고 발전된 경제였다.[23][24][25][26][27][28][29] 역사적으로 중국은 1세기부터 19세기까지 거의 2천 년 동안 세계의 주요 경제 강국 중 하나였다.[30][31][32]

동아시아 무역의 역사는 고대 중국의 무역 활동에 의해 크게 형성되었다. 한나라 시대에 중국은 점차 고대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33] 한나라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통일 인구, 높은 문자 해독률과 도시화 수준, 발전된 경제, 그리고 당시 최고 수준의 기술과 문명을 보유했다.[34][35] 한나라는 페르시아 및 로마 제국과 경제적으로 교류했으며, 유명한 실크로드를 통해 비단, 광물, 향신료 등을 거래했다.[36]

당나라 시대에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며 문화와 지성 발달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생산적인 경제는 막대한 세수를 창출하여 광대한 제국을 관리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 기술을 보유한 유능하고 효율적인 관료제를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다.[37] 1100년경 송나라는 인구가 거의 1억 명에 달했으며, 일부 대도시는 100만 명이 넘는 주민이 거주했다. 송나라는 지폐(상업 계약, 신용, 수표, 약속 어음, 환어음 포함)를 활용하는 정교한 중세 경제 시스템과 동남아시아와 활발한 해상 무역을 펼치는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했다.[38][39][40]

동아시아 경제사 대부분 동안 중국은 가장 발전된 경제 중 하나였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인 500년부터 1500년까지 약 1천 년 동안 중국은 총 GDP뿐만 아니라 1인당 소득 면에서도 동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였다.[19]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중국은 기록된 역사 대부분, 지난 2천 년 중 1800년 동안 가장 큰 경제 규모를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15세기 말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1인당 소득과 가장 발전된 기술을 자랑했다.[23][41][25][42] 이 기간 동안 중국은 기술 개발과 경제 성장 면에서 동아시아 및 유럽의 경쟁국들을 앞섰으며, 이를 바탕으로 중세 왕조들은 광대한 영토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다.[42]

1450년 이후 경제가 다소 침체하고 근대 초기 유럽이 부상했음에도, 중국 경제는 방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1500년대부터 1820년까지 세계 최대 규모를 유지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경제적 지배력이 절정에 달했을 때의 미국 경제보다도 높은 수치였으며, 1885년까지 세계 최대 경제국의 지위를 지켰다.[43] 중국은 1200년부터 1300년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으며, 중세 후기 유럽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와 19세기 중후반 서구 세계 및 일본이 부상하기 전까지 그 지위를 유지했다.[44][24][45][46] 1700년대 말까지 중국은 전 세계 GDP의 약 4분의 1을 차지했으며, 산업 혁명이 영국에서 시작될 무렵인 1820년에는 전 세계 GDP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다.[47][19][48][49] 1820년 중국의 GDP는 당시 유럽 최대 경제국이었던 영국의 6배, 신생 국가였던 미국의 GDP의 거의 20배에 달했다.[50]

2. 1. 2. 일본

고대 중국의 주화와 화폐는 약 1500년 전 한나라 초기에 일본에 도입되었다. 일본은 서기 708년이 되어서야 구리와 은으로 동전을 주조하기 시작했고, 지폐는 1661년에 도입되었다. 야요이 시대의 일본은 류큐 제도를 통해 중국 남부에서 도입된 논에서 벼농사를 집중적으로 시작했으며, 이는 중세 유럽과 유사한 장원적 봉건 경제를 발전시키는 기반이 되었다.[51]

야요이 시대 경제는 화폐를 사용하지 않아 주로 농기구와 같은 재화와 서비스를 물물교환 방식으로 거래했다. 당시 사람들은 어업, 사냥, 채집, 농사를 통해 생활했으며, 특히 관개 시설을 이용한 발전된 벼농사 기술의 도입은 경제를 크게 촉진했다.[52] 계단식 논의 활용으로 벼 재배 성공률이 높아지면서 농업 생산량이 늘어났고, 이는 일본 초기 수공업 발달의 밑거름이 되었다. 아직 도시가 형성되지 않았지만, 농업 공동체를 중심으로 마을과 영구 정착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53]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일본 장인들은 야금술을 익혀 칼, 화살촉, 도끼, 끌, 낫, 낚시 바늘 등 자체적인 도구를 제작했다. 의식용 종이나 거울과 같은 장식품은 종교 의식이나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사용되었다.[54] 인구 증가는 사회의 계층화와 복잡화를 가져왔다. 사람들은 직물을 짜고, 영구적인 농촌 마을에 거주하며 나무와 돌로 건물을 지었다. 상인과 농부들은 토지 소유와 곡물 저장을 통해 부를 축적했고, 이는 뚜렷한 사회 계급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당시 중국 기록에는 사람들이 문신이나 다른 신체 표시를 통해 사회경제적 지위의 차이를 나타냈다고 묘사되어 있다.[55]

고대 일본에서는 개인의 재산을 '(石)'이라는 단위로 표현했으며, 이는 쌀의 양으로 측정되었다.[56] 1곡은 약 180L의 쌀에 해당했다. 쌀은 화폐처럼 사용되었기에 대량으로 저장되고 전국적으로 유통되어야 했다. 일본 제국의 조세 제도 역시 쌀을 기반으로 하여, 농민에게 쌀로 세금을 걷고 고위 관료에게 쌀로 봉급을 지급했다.[56] 쌀로 만든 사케(일본식 청주), 식초 등도 상품 화폐로 활용되었다. 이처럼 쌀은 일본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천 년 이상 화폐의 기능을 수행했다.[56] 기원전 2000년경부터 중국 상인들이 나무 카누를 타고 동중국해를 건너오면서 일본과 중국 간의 소규모 무역이 시작되었다. 서기 1세기에는 일본이 한반도와 중국에 사신을 파견하면서 양 지역과의 경제 관계가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일본산 비단은 고대 한국과 중국에서 옷감으로 수요가 높았다.[56] 한국과는 청동 도구와 금을, 중국과는 청동 거울, 종, 칼, 창, 쌀, 그리고 일본 산에서 채굴한 금 광석 등을 거래했다.[56]

7세기 말에서 8세기에 걸쳐 일본은 당나라의 사회 정치 시스템을 받아들여 율령 체제를 기반으로 한 중앙 집권 정부를 수립하고자 했다. 야마토 정권은 서기 708년에 동전을 주조하기 시작했다.[57] 이 구리 동전은 중국 동전을 본떠 만들어졌다.[56] 그러나 정부가 외진 마을까지 동전을 유통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널리 사용되지 못했고, 곧 국가 통화는 다시 쌀과 같은 상품 화폐 중심으로 돌아갔다.[57] 10세기에 이르러 동전 사용은 더욱 감소했는데, 이는 구리 부족으로 동전의 크기가 작아지고 납 함량이 높아져 품질이 저하되면서 사람들이 동전의 가치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58] 결국 10세기 중반에는 구리 동전 주조가 중단되었고, 가치가 안정적인 쌀, 비단, 옷 등이 화폐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품 화폐는 경제적 가치와 지위를 확보하며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58] 하지만 쌀, 비단, 옷 등은 운반이 불편했기 때문에, 운송 및 취급 비용을 줄이기 위한 신용 경제가 등장했다. 수도의 정부 기관에서는 각 지역의 쌀 창고에 현대의 수표와 유사한 지급 명령서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거래를 처리했다.[58]

일본 경제는 중세 시대에 성장과 번영을 경험했다.[59] 사회가 발전하면서 동아시아 최초의 시장들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기업가적 상인과 장인들이 전국 각지에서 시장을 열어 상품을 공급했다. 자영업 장인들은 마을과 도시에 정착하여 수공예 전통을 만들어나갔다. 시장이 발달하면서 중요한 식량 및 가축 시장이 생겨났고, 봉건 영주들이 농민이 경작한 작물을 판매하여 현금을 얻는 시장 도시도 발전했다. 주요 도시들은 비단, 도자기, 면화 등을 중심으로 성장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 간 무역을 활성화했다.[59] 농업 기술의 발전 역시 경제 성장에 기여했다. 가뭄과 질병에 강한 새로운 벼 품종이 도입되고, 비료 사용과 개선된 관개 기술 덕분에 이모작이 가능해져 농민들은 더 많은 잉여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었다.[59] 구리 합금 동전의 사용은 영지 내 시장에서 농산물 판매를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상인들은 자체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고 경제적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비록 당시 일본 사회가 사무라이다이묘가 이끄는 봉건-군사 체제 하에 있었고, 이들이 각 지역을 반독립적으로 통치했지만, 상인 계급은 상당한 경제적 힘과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59]

12세기 중반부터 중국 동전이 일본으로 유입되어 화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59] 13세기에는 가마쿠라 막부 정부와 황실을 포함한 일반 민중에게까지 동전 사용이 확산되었다. 처음에는 동전 사용에 반대했던 지배층도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동전은 점차 물물교환이나 쌀, 비단, 삼베와 같은 상품 화폐를 대체하며 주요 경제 교환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60] 중국 동전은 중세 일본 경제 전반에 널리 유통되며 상품 경제 발전을 촉진했다. 일본 정부는 16세기까지 자체적인 동전 발행을 중단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주로 중국 동전(도래전, 渡來錢|도라이센일본어)을 사용해야 했다. 동전 수요가 증가하자 사적으로 주조된 일본 동전(시주센, 私鑄錢|시추센일본어)도 유통되었으나, 그 품질은 종류에 따라 매우 다양했다.[60] 사람들은 동전의 종류나 품질에 따라 가치를 다르게 매겨 사용하는 관행(에리제니, 選り銭|에리제니일본어)을 시작했는데, 이는 화폐 유통에 혼란을 야기했다. 16세기 후반, 명나라로부터의 동전 유입이 중단되자 쌀, 금, 은 등이 다시 교환 매개체 및 가치 평가 수단으로 사용되었다.[60]

에도 시대(도쿠가와 시대)에 일본의 쌀 기반 봉건 경제는 농업 생산 증대에 힘입어 크게 성장했다.[61] 상업과 제조업 역시 확장되면서 영향력 있는 상인 계층이 성장했다. 이들은 상품과 서비스의 유통을 담당하며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했다. 상인 계급의 성장은 근대 초기 일본 도시의 발전을 촉진했다. 각 지역의 마을들도 자급자족적 농업에서 벗어나 점차 상업적 농업으로 전환하고, 비교적 발전된 기술을 바탕으로 비단 생산, 직물 제직, 사케 양조 등 국내 수공예품의 품질을 향상시키며 경제적으로 성장했다.

2. 1. 3. 한국

고대 동아시아에서 한국은 중국일본 사이의 문화적, 경제적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22] 고대 한국은 다양한 중국 왕조들과 밀접한 문화, 경제, 정치 관계를 유지했으며, 때로는 상당한 갈등을 겪기도 했다. 중국은 한국의 주요 해상 교역 파트너였으며, 수천 년 전 고대 한국이 황해를 통해 산둥성과 무역을 시작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62] 이웃 섬나라인 일본 역시 한국의 경제 및 문화 교류에 참여한 고대 동아시아의 중요한 무역 파트너였다.[63]

고려 시대(918-1392)에 이르러 한국은 화폐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중국 송나라(960–1279) 시대에 동전이 유입되어 유통되면서부터였다.[64] 고려는 송나라에 조공을 바쳤으며, 교역을 통해 다양한 물품을 주고받았다.

고려와 송나라의 주요 교역품[22]
구분주요 품목
송나라 → 고려비단, 책, 향신료, 유리, 향, 보석, 직물, 차, 약, 도자기
고려 → 송나라, , 구리, 인삼, 도자기, , 한지



고조선의 경제는 기원후 1000년 후반기에 농업 기술 발달(중국에서 제 도구 도입)과 풍부한 천연자원(, , 구리, 주석, 아연 등) 덕분에 번영했다.[63] 이전 한국의 화폐는 물물교환을 기반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교환하는 방식이었다. 곡물, 쌀, 천과 같은 기본적인 상품이 교환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이후 전국 시대(기원전 475년 – 기원전 221년) 중국에서 이주해 온 정착민들을 통해 명도전이 도입되었다. 이는 평안도전라도 지역 유적에서 발굴된 고고학적 증거로 뒷받침된다. 중국은 기원전 2세기 말 한나라가 한반도 북부를 침략했을 때 오수전(五銖錢)이라는 동전을 도입했는데, 이는 공식 화폐가 되었다. 오수전은 기원후 10세기까지 고구려신라에서 계속 사용되었으며, 현대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낙랑군 지역의 무덤에서 흔히 발견된다.[65] 삼국 시대에는 경제가 더욱 발전하고 대외 무역이 확장됨에 따라 화폐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66] 특히 백제는 강력한 해상 세력이었으며,[67] 그들의 항해 기술은 동아시아 전역에 불교를 전파하고 일본에 대륙 문화를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68][67]

한국은 조선 시대 세종 재위기에 황금기를 맞이했다.[69] 1400년대 한국은 농업 생산성 향상 덕분에 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생활 수준을 누렸다.[70] 그러나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농민이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하고 정부의 과도한 행정적 간섭이 존재하는 등 중세 일본이나 유럽과 유사한 봉건적 요소들이 사회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했다.[70][71] 높은 교육을 받은 양반들은 조선 시대에 영향력 있는 학자로서 정부에 진출했으며,[72] 부유한 지주 계층과 사대부가 등장하여 중국과 유사한 사회 구조 속에서 지배 계층을 형성했다. 유교는 조선 사회를 조직하는 기본 원리였으며, 사적인 경제 활동은 정부의 영향력 아래 놓여 경제 성장을 제약하는 측면이 있었다. 사농공상이라는 유교적 사회 계층 구조는 상인을 학자, 농부, 장인/기술자보다 낮은 위치에 두었지만, 성공한 상인은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장인과 기술자는 중산층 수준의 생활을 영위하기도 했다.[70][71][73]

조선 정부는 식량 생산 증대를 위해 농업과 토지 개간 사업을 지원했으며, 주요 작물로는 , 보리, 메밀, 콩, 인삼, 면화, 감자 등이 있었다. 농업 기반의 번영과 함께 관개 시설 사용이 증가했고, 점차 현대적인 화폐 경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74][75] 그러나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반까지 이어진 일본(임진왜란)과 중국(병자호란)의 침략은 기존의 명령 체제를 무너뜨렸고, 조선은 시장 경제로의 전환을 모색하게 되었다.[75] 시장 형성은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으며, 조선 농촌 지역의 곡물 시장은 동시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통합 수준이 낮았다.[75] 조선의 관료 체제는 약화되었고, 세금은 현물(, 면직물)로 징수되다가 점차 구리 동전 주조와 함께 화폐로 대체되었으며, 무역 제한도 완화되었다. 조선 시대의 유명한 국제 무역항 중 하나는 평안남도였는데, 이곳에서 중세 한국 상인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브로케이드, 보석, 인삼, 비단, 도자기 등을 거래했다. 17세기에는 기술 발달로 국내 수공업이 개선되었고, 민간 운영 공장이 정부 운영 공장을 대체하면서 더 높은 품질의 상품 생산을 이끌었다. 상업 활동 증가는 상업적 농업의 부상에 기여하여 농촌 생활을 변화시켰고, 동전 유통은 농촌과 도시 경제 간의 격차를 좁히는 데 영향을 미쳤다.[76]

18세기와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쌀 생산성이 감소하고 산림 벌채와 자연재해가 겹치면서 조선 경제는 둔화되기 시작했다. 곡물 저장고는 부패한 관리들의 착복 대상이 되었고, 1860년 이후에는 농업 생산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도 사라졌다.[77][78] 조선 말기 경제는 약탈적이고 지대 추구적인 성격을 띠었으며, 만연한 정치 부패는 조선 왕조의 쇠퇴를 가속화했다. 이는 청나라와 일본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놓고 경쟁하는 권력 공백을 만들었다.[79] 과도한 부역 의무, 높은 세금, 지주들의 착취, 농민 억압 등은 조선의 점진적인 경제 쇠퇴에 기여했다.[80] 상대적으로 쇠퇴한 청나라와 달리, 근대화와 산업화에 성공한 일본은 새롭게 갖춘 정치 및 군사력을 이용하여 수세기 동안 시도해왔던 한반도 점령과 식민지화를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79] 19세기 말, 조선 왕조는 서구 세계와 일본의 급속한 산업화를 따라가지 못했고, 결국 청나라의 조공 시스템에 편입되었다. 1910년, 청나라의 쇠퇴를 틈타 일본은 한국을 강제 병합했으며, 한국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군에 의해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일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69]

2. 2. 중세

(내용 없음)

2. 3. 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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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1. 타이완

타이완 경제의 역사적 기록과 발전은 대항해 시대에 시작되었다. 17세기에 유럽 식민 세력들은 타이완 섬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사이의 전략적 요충지임을 인식했다. 타이완 섬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경쟁한 주요 유럽 세력은 네덜란드와 스페인이었다. 또한 타이완은 중국의 명나라청나라 왕조, 도쿠가와 일본, 그리고 토착 타이완 원주민들 사이의 무역 거점 역할을 했다. 마노, 사탕수수, 생 향신료, 유황, 건어물, 도자기, 약초, 새틴, 논, 천, 소금, 구리, 사슴고기, 사슴 가죽 등이 타이완 원주민, 유럽 식민 세력,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거래되었다. 네덜란드는 1624년 남부 타이완을 식민지로 삼았고, 이후 명나라와의 무역을 위해 북부 지룽과 단수이로 영향력을 확대하며 상품 수집과 수출 무역을 독점했다. 1658년까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페르시아, 일본, 자카르타에 설탕을 수출했으며 아시아에 약 35개의 무역 기지를 보유했다. 타이완(타이오안)은 25.6%의 이익률로 일본 나가사키에 이어 네덜란드 무역 기지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익을 기록했지만, 이익은 현지 타이완인에게 분배되지 않고 회사 주주들에게 돌아갔다.[81]

1662년, 명나라 장수 정성공은 청나라에 패배한 후 타이완으로 이동하여 네덜란드 세력을 몰아냈다. 그는 제란디아 요새를 성공적으로 점령했지만, 그의 통치는 청나라가 해금 정책을 부활시켜 해상 무역을 차단하게 만들었다. 그의 후계자들은 독립적인 동녕 왕국으로 타이완을 통치하며 군량 확보를 위해 토지 분배 시스템을 구축했다.[82] 대영 제국과 도쿠가와 일본은 타이완을 독립 국가로 인정하고 계속 무역했다. 영국 동인도 회사는 동녕 왕국과 상업 조약을 맺기도 했다. 정씨 왕조 시대에도 타이완은 다양한 외국과 교역하며 주요 국제 무역 기지로 기능했다. 그러나 정씨 왕국은 중국 연안 도시로부터의 한족 이민을 엄격히 금지했고, 이로 인해 타이완은 자치 체제로 변모하면서 세계 무역 기지로서의 명성이 약화되어 오랫동안 경제적 침체를 겪었다. 정성공 세력을 격파한 후, 청나라 정부는 타이완의 경제 발전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이곳을 미개한 땅(''huawai zhi di|화와이 즈 디중국어'')으로 여겼다. 따라서 경제 활동은 주로 한족 이민자들의 정착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시기 주요 경제 발전은 타이완과 중국 본토(주로 푸젠성 상인) 간의 독점 무역, 그리고 관개 시스템과 수력 공학 프로젝트 건설이었다. 주요 수출품과 수입품은 다음과 같다.[83]

구분품목
수출품쌀, 설탕, 황마, 등나무, 장뇌 목재
수입품면직물, 천, 실크, 종이, 농업 장비, 와인, 도자기



상업 활동은 주요 무역 항구를 중심으로 지속되었으며, 타이난, 루강, 반차오는 타이완의 3대 도시로 성장했다. 1860년 이후, 단수이안핑이 청나라와 대영 제국 간의 베이징 조약에 따라 유럽에 개방되었다. 유럽인들이 타이완과 무역하기 시작하면서 타이완은 다시 세계 경제에 편입되었다.[83] 그러나 무역 개방은 중국의 무역 파트너로서의 중요성을 감소시켰고, 타이완의 쌀 수출은 동남아시아 쌀과의 경쟁에서 밀리게 되었다. 높은 이익에도 불구하고 투기적이고 위험성이 높아 많은 사업이 파산했다. 구식 중국식 경영 방식은 현대 서구식 경영 방식과 경쟁하기 어려웠다. 타이완 상인들은 곧 유럽식 경영 방식을 습득하여 자신들의 사업을 시작했고, 매우 능숙하게 이를 활용하여 유럽 무역 회사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19세기 말, 타이완 상인들은 타이완의 수출입 무역을 주도하며 중국, 영국, 네덜란드와의 상업 관계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축적했다. 린번위안 가문과 같은 일부 상인 가문은 국내외적으로 거래하며, 현지 생산자에게 자금을 대출하기 위해 자체적인 지역 은행과 환전소를 설립하기도 했다.[84] 1881년에는 타이완 차 수출의 90%가 타이완 상인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들은 장뇌, 설탕, 아편, 섬유 무역도 장악했다. 결과적으로 타이완은 1895년 일본 점령 이전에 이미 상업 혁명을 경험하기 시작했다.[84]

일본 자본이 타이완으로 유입되면서 대규모 일본 소유 기업들이 타이완 기업을 압도했고, 이는 타이완이 완전한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다. 원본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식민 통치는 착취, 예속, 억압보다는 타이완의 경제, 산업, 공공 사업을 현대화하는 데 더 중점을 두었다고 평가된다.[85] 일본은 자체적인 현대 산업화 경험을 바탕으로 타이완에 새로운 아이디어, 개념, 기술, 가치를 도입했다.[85] 타이완은 철도 및 해운 노선, 전신 및 전화 시스템, 조선소 건설, 공교육 실시 등 여러 공공 사업 프로젝트를 통해 인프라를 현대화하며 추가적인 발전을 준비했다.[85] 약 31만에서 41만 개의 타이완 농장과 지주들이 벼를 재배 및 판매했고, 약 3,300개의 타이완 현지 기업이 정미소 역할을 하는 등 중소 규모의 타이완 제조업체들이 번성했다.[85] 이전에는 타이완 토착 상인들이 수출입 무역을 주도했지만, 현대 자본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생산, 유통, 수출입 무역은 거의 전적으로 일본의 통제하에 놓였다.[86] 20세기 초중반 타이완은 주로 농업 경제였으나, 아열대 기후, 가용 토지 부족, 작물 질병 및 해충 문제로 농업에 불리한 조건이었다.[87]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은 집중적인 연구 개발에 투자하고 농촌 기관을 설립하여 현대적인 관개 시스템과 기후 변화, 질병, 해충에 강한 개량 품종 등 새로운 농업 기술을 개발했다.[88] 현대적인 관개 및 농업 기술 덕분에 타이완은 193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에 동아시아에서 선진적인 쌀 생산 국가가 되었다.[89] 1940년 타이완의 쌀 생산량은 당시 세계 인구의 3.3배에 달하는 양이었으며, 다양한 작물을 대량으로 수출하는 강력한 농업 수출 경제를 구축했다.[90]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타이완 농업은 경작 가능한 토지가 한계에 도달하면서 생산성 증가가 둔화되고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자원 부족과 일본의 급속한 군사화 및 산업화는 타이완 경제 구조의 재편을 요구했다.[91] 1937년부터 타이완은 산업 제조, 특히 군수품 및 장비(금속 가공 및 정련, 기계, 무기, 비행기, 자동차 등), 석유, 화학, 제약 분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전구, 유리, 잉크, 연필, 도자기, 라디오, 가죽, 못, 농업 기계와 같은 경공업도 전시 자급자족을 위해 개발되었다. 1939년, 타이완의 산업 제조 생산량은 역사상 처음으로 농업 생산량을 넘어섰으며, 이러한 경향은 전쟁 이후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92] 일본 식민 통치 시기에 구축된 다양한 농산물 생산 능력과 전쟁 이전의 운송, 통신, 교육 인프라는 타이완의 산업 발전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93]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당시 타이완이 입은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고, 농업 부문은 상당히 발전된 상태였다. 그러나 국공 내전의 결과로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가 마오쩌둥의 공산당을 피해 중국 본토에서 타이완으로 이전하면서 약 200만 명의 중국인 난민과 군인들이 유입되어 광범위한 빈곤과 혼란이 발생했다.[93] 다행히 전쟁 이전부터 발전해 온 농업 부문 덕분에 타이완 경제는 급증한 인구를 부양할 수 있었다. 타이완의 전후 산업화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자원이 부족한 섬의 현대화를 위해 다양한 경공업 및 중공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94]

3. 현대

19세기 초까지 동아시아 경제는 구매력 평가(PPP) 기준으로 측정했을 때 오늘날의 고소득 경제국 전체를 합친 것보다 더 큰 규모였다. 그러나 1950년대에 이르러 중국과 동아시아 전체의 세계 경제 점유율은 크게 감소했다. 1960년대부터 동아시아는 서구의 고소득 경제국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며 세계 경제에서 다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는 세계 생산량의 3분의 1, PPP 기준으로는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95] 이 지역은 현재 세계 경제 생산량의 약 3분의 1과 최근 세계 경제 성장의 거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다.[16] 이러한 경제적 성장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은 현대 과학 기술을 경제 발전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고 있으며, 인문학이나 사회 과학 분야보다 과학 기술 분야의 교육을 더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96] 특히 중국과 일본은 첨단 상품과 서비스 개발을 위해 대학 및 연구 기관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97]

현대 동아시아 경제 성장의 중심은 중국 본토로 이동했다. 2019년 기준으로 일본, 대한민국, 타이완, 홍콩은 대부분의 경제 지표에서 선진 시장으로 분류되며, 동남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유일한 선진 시장으로 간주된다. 20세기 말부터 동아시아의 주요 경제 강국으로서 일본의 역할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대한민국,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2010년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으로 옮겨갔다.[98] 2012년 ''이코노미스트''는 대한민국이 2017년까지 구매력 평가 기준 1인당 GDP에서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는 마카오(2010년), 타이완(2010년), 홍콩(1997년), 싱가포르(1993년)가 이미 달성한 바 있다.[99]

세계은행의 2024년 4월 보고서에 따르면, 동아시아 전체의 경제 성장률은 2023년 5.1%에서 2024년 4.5%로 둔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성장률 역시 같은 기간 5.2%에서 4.5%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태평양 섬나라들의 성장률도 5.6%에서 3.6%로 하락하는 등, 역내 전반적인 경제 성장 모멘텀 약화는 과거의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2010년 이후 중국과 베트남에서 GDP 대비 40% 이상 급증한 기업 부채와 중국, 말레이시아, 태국의 높은 가계 부채 수준은 소비와 투자 성장을 제약할 수 있는 재정적 위험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러한 경제 상황 속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비교적 낮은 인플레이션율을 관리하면서도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재정 정책을 조정하고 정책 금리를 인상하는 등 경제 안정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100][101]

3. 1. 일본

동아시아는 19세기 후반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근대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는 일본이 동아시아 최초이자 유일한 산업화된 근대 경제 강국으로 급격히 변화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부터 1980년대 말까지 일본은 동아시아의 지배적인 경제 대국이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아시아 전체를 합친 것과 맞먹는 수준이었다.[44]

1853년, 미국 해군 제독 매튜 C. 페리가 이끄는 함대가 일본 해안에 나타나면서, 일본은 고립을 버리고 서구와의 무역을 개방하게 되었다. 메이지 천황은 1860년대 후반 봉건제를 폐지하고 산업 및 현대 기술 개발을 통해 근대화를 추진했다. 서구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국가적 목표 아래 일본은 빠르게 산업화와 근대화를 이루어 동아시아 최초의 근대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메이지 정부는 서구의 사상, 철학, 과학 기술, 군사 방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일본 전통 철학과 융합시키려 노력했다.[108][109] 메이지 시대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지도부는 체계적으로 봉건제를 종식시키고, 미개발 봉건 사무라이 국가였던 일본을 19세기 후반 서구 열강에 필적하는 동아시아 최초의 산업 국가로 탈바꿈시켰다.[108][109] 경제 개혁에는 엔화를 기반으로 한 통일된 현대 통화 도입, 은행, 상업 및 세법 정비, 증권 거래소 설립, 통신망 구축 등이 포함되었다.[110] 이러한 현대적 제도적 틀은 1890년대까지 완성되었다.

정부는 민간 기업이 경제 성장을 주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기업 활동에 유리한 경제적 조건을 제공하는 데 주력했다. 정부는 산업과 현대 기술에 경제 자원을 집중 투자했으며, 민간 기업을 지원하고 벤처 자본을 투입했다. 초기에는 실패한 사업도 많았으나, 미쓰이, 미쓰비시와 같은 재벌 기업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장하여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108] 메이지 지도자들은 자유 시장 경제 개념을 받아들여 영국과 북미식 자본주의를 도입했다.[108][110]

정치적 신중함과 군사력 강화는 일본의 입지를 다졌다. 청일 전쟁에서 청나라를, 러일 전쟁에서는 러시아를 격파하며 유럽 세력을 상대로 한 동아시아 국가 최초의 주요 군사적 승리를 거두었다.[108][109][111] 1910년에는 한국만주 일부를 병합하여 식민 제국으로 영토를 확장했다.[111]

서구의 선진 기술 도입은 일본의 농업과 수공업 발전을 이끌었다. 산업 혁명은 면직물과 비단 등 섬유 산업에서 시작되었으며, 1890년대에는 일본 섬유 제품이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중국, 인도 시장에서도 영국 제품과 경쟁했다. 1909년에는 세계 최대의 비단 수출국이 되었다.[112] 이후 중공업 분야에서도 서구 기술 도입과 대규모 민간 투자를 통해 1920년경까지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다. 정부는 철도, 해운 노선, 전신전화 시스템, 조선소, 광산 건설 등 인프라를 현대화하고 토지 개혁을 실시하여 국가 발전을 뒷받침했다.[113] 높은 교육 수준을 갖춘 인구 역시 산업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서구 자본주의와 과학 기술의 결합은 20세기 초 일본을 군사 및 경제 강국으로 부상시켰다.[113][51]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 일본은 경제적으로 쇠퇴했다. 미국의 점령 하에 일본은 다시 문호를 개방하고 서구화를 받아들이며, 미국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수출하며 새로운 경제 성장을 시작했다.[114] 점령군은 천황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헌법 제정과 정치 시스템 구축을 통해 경제 성장에 유리한 틀을 마련했다.[115]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재벌 기업을 개혁하여 일본 경제 구조의 자립을 유도했다. 또한 미국은 5년간 20억달러 규모의 직접적인 경제 원조를 제공했다.[116][117]

일본 정치인들은 기업가 및 경영진과 협력하여 경제를 관리하고 발전시키는 데 힘썼다. 에드워즈 데밍과 같은 외국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초기 산업 제품의 품질 관리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전후 경제 기적 초기에는 종신고용과 연공서열 임금 체계를 특징으로 하는 기업 구조가 나타났다. 1950년대에는 노동조합 활동이 활발했으며, 유교적 가치에 기반한 신뢰와 상호주의를 바탕으로 단체 교섭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점차 일본 제품의 품질이 향상되면서 국제적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다.[115]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 제품은 과거의 저품질 이미지를 벗고 품질과 가격 면에서 미국 및 유럽 제품과 성공적으로 경쟁하게 되었다.[115] 일본 정부는 수출 증대를 위해 인위적으로 낮은 환율을 유지하며 무역 흑자를 늘려나갔다. 1980년대에는 일본 제품의 이미지가 극적으로 개선되었고, 자동차 산업 등이 크게 성장했다. 1인당 GDP가 미국 수준에 근접하거나 일부 지표에서 넘어서면서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다. 미국 정부는 일본의 낮은 환율 정책에 대한 압력을 가했고, 이에 일본은 플라자 합의 이후 급격한 금리 인하로 대응했다. 이는 주식 및 부동산 시장의 거품으로 이어졌고, 결국 거품이 붕괴하면서 장기 경제 침체를 겪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일본은 오늘날과 같이 번영하는 중산층을 가진 산업 국가로 변모했으며, 여전히 세계적인 경제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115]

3. 2. 대한민국

한국 전쟁 이후, 대한민국은 10년 이상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였다. 당시 가난, 영양실조, 문맹, 정치적 혼란 등이 심각했으며, 1960년 대한민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79USD에 불과했다.[118] 이는 일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보다도 낮은 수준이었다.[119][120]

그러나 한 세대 만에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G20 경제 강국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121]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 국가 중 하나가 되었으며, 1인당 GDP 증가율은 주변 국가들을 앞질렀다.[122][123] 이러한 성장의 배경에는 혁신의 중요성 강조, 우수한 인적 자원 활용, 선진 사례 벤치마킹, 경제적 경쟁력 강화, 그리고 국민들의 근면성이 있었다. 이를 통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가치 창출을 극대화하는 국가 시스템을 구축했다.

자원이 부족한 한반도라는 지리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첨단 전자,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산업을 육성하여 첨단 기술 강국으로 변모했으며, 이는 50년 이상 지속적인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연구 개발(R&D)에 대한 투자는 국민 소득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이며, 대체 에너지, 친환경 기술, 생명 공학 등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는 국가 경제의 지속적인 번영을 위한 핵심 요소로 여겨진다.[123]

또한, 대한민국의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과 이를 통해 길러진 의욕적이고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인적 자원은 첨단 기술 발전과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124] 산업 제조 능력은 크게 향상되었고, 수출 부문 역시 빠르게 성장했다. 대한민국의 산업 경쟁력은 세계적인 자동차, 전자 제품, LCD 기술, 반도체, 조선 기업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125]

대한민국은 부족한 천연자원과 좁은 국토, 높은 인구 밀도라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수출 지향적인 경제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2014년에는 세계 7위의 수출국이자 7위의 수입국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은행한국개발연구원은 정기적으로 대한민국의 주요 경제 지표와 경제 동향에 대한 정보를 발표하며 경제 정책 수립에 기여하고 있다.[126][127]

3. 3. 중국

19세기 중후반, 유럽 열강과 일본의 급속한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중국은 점차 세계 경제에서의 우위를 상실했다.[50]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저해하는 경직된 관료 체제, 문화적 우월감에 기반한 근대 기술 및 변화에 대한 저항 등은 중국이 뒤처지는 주요 원인이었다.[43] 서유럽에서 시작된 제1차 산업 혁명과 과학 기술의 발전은 유럽과 북아메리카를 현대 산업 사회로 이끌었으나, 중국은 봉건적 농업 사회에 머물렀다.[42] 이러한 근대화 실패와 더불어 내분, 정치적 혼란, 외세의 침략과 착취가 겹치면서 중국 경제는 장기적인 정체와 쇠퇴를 겪었고, 생산 능력 감소와 함께 1950년대에는 세계 GDP 점유율이 5% 수준까지 떨어졌다.[49][42] 그러나 위안화는 이후 현대 중국 경제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26][45]

1820년부터 1950년까지 급격한 경제적 쇠퇴를 겪었던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 주도의 개혁개방 정책을 기점으로 극적인 반전을 맞이했다. 1978년 154USD에 불과했던 1인당 GDP는 2012년 6060USD까지 급증했으며, 이 기간 연평균 9.3%라는 높은 GDP 성장률을 기록했다.[128] 계획 경제에서 시장 경제로의 전환은 기술 개발을 촉진하고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 공급을 가능하게 했다.[129] (1950년 당시 중국의 1인당 GDP는 세계 평균의 5분의 1, 서유럽 국가들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42])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는 1978년부터 2000년까지 연평균 10% 성장했으며, 2000년부터 2010년 사이에는 세 배로 커졌다. 이러한 고도 성장을 바탕으로 중국은 2010년 8월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으며, 동아시아 전체 GDP의 71.36%를 차지하는 최대 경제국이 되었다.[11][130] 2015년까지 30년 이상 연평균 10%대의 성장률을 유지하며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주요 경제 대국으로 자리매김했다.[131][132] 이 과정에서 수억 명의 인구가 빈곤에서 벗어났고, 중국은 세계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부상했다.[16][133] 2015년 말 기준, 중국 경제는 동아시아 전체 경제의 51%, 역내 무역의 59%를 점유하며 지역 내 거의 모든 국가의 최대 무역 파트너가 되었다.[134] 2020년대에는 미국을 넘어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135][136]

그러나 최근 중국 경제는 성장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세계은행은 2024년 4월 보고서에서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2023년 5.2%에서 2024년 4.5%로 낮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동아시아 전체의 성장률 둔화 추세(5.1% → 4.5%)와 맥을 같이 한다.[100][101] 또한, 2010년 이후 GDP 대비 40% 이상 급증한 기업 부채와 높은 가계 부채 수준은 소비 및 투자 위축을 야기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지적된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여 재정 정책 조정 및 정책 금리 인상 등을 통해 경제 안정을 도모하고 있다.[100][101]

3. 4. 타이완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의 스카이라인


1960년대 타이완은 외국 원조를 받는 국가였으며,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인간 개발 지수(HDI)가 당시 자이르콩고 민주 공화국과 같은 최빈국 수준이었다. 그러나 전후 급속한 농업 및 산업 발전은 경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중화민국(국민당) 정부의 경제 정책에는 미국 대외 원조 프로그램의 영향이 컸는데, 이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와 자유 무역을 강조하며 타이완의 중소기업 육성에 기여했다. 또한, 일본의 전후 경제 기적은 타이완 경제를 간접적으로 자극하여 타이완 기업의 기술 혁신을 이끌었다.[102]

20세기 후반의 급속한 산업화와 성장은 "대만 경제 기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로 인해 타이완은 저개발 섬에서 동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하나로 탈바꿈했다. 타이완은 일본과 홍콩의 임금 상승, 미국과 유럽의 섬유 수출 쿼터 제한 등의 요인으로 홍콩보다는 먼저, 대한민국보다는 늦게 산업화를 시작했다.[103] 이러한 경제 발전과 더불어 타이완은 30년 이상에 걸쳐 민주주의를 향한 정치적 변화도 이루어냈다.[104][105]

타이완의 경제적 성공은 고도로 교육받은 노동력, 과학 및 기술 발전에 대한 강한 강조, 민간 기업 장려, 사적 가족 기업을 통한 기업가 정신의 유연성 등에 힘입은 바 크다. 이를 통해 자원이 부족했던 타이완은 1980년대까지 많은 세계 노트북 및 일상 소비재 전자 제품을 생산하는 역동적이고 현대적인 첨단 기술 강국으로 성장했다.[106] 2015년 기준으로 타이완의 인간 개발 지수프랑스와 비슷하고, 1인당 국내총생산 수준은 독일과 유사하며, 연평균 GDP 성장률은 4.5%를 기록했다.[107][105]

3. 5. 홍콩과 마카오

1960년대 초, 영국령 홍콩은 강력한 섬유 및 제조업을 발전시키며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경제 중 첫 번째 주자가 되었다. 1970년대에는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로 자리 잡으며 빠르게 선진 경제로 발전했다.[137] 홍콩에 이어 대한민국, 타이완, 그리고 도시 국가인 싱가포르 역시 효율적인 정부 주도의 자본주의적이고 개방적인 정책에 힘입어 빠르게 산업화를 이루었다. 1997년까지 홍콩, 타이완, 대한민국은 일본과 함께 동아시아의 선진 경제 대열에 합류했으며,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한 선진 경제 국가가 되었다.

한편, 당시 포르투갈령 마카오였던 마카오의 경제 역시 이 시기에 섬유 제조업과 환대 및 관광 산업의 발전을 통해 급속한 성장을 경험했다. 이는 역내에 높은 수준의 외국인 직접 투자를 유치하는 결과를 낳았다.[138] 마카오는 2007년에 라스베이거스 밸리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도박 중심지가 되었다.[139]

4. 정책

동아시아 국가들이 경제 발전을 위해 공통적으로 채택한 주요 정책 기조는 다른 개발도상국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특징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대외 무역에 대한 적극적인 개방, 정부 주도의 높은 저축률 유지, 그리고 성별 구분 없는 교육 기회 확대 및 강조를 들 수 있다. 모든 국가에 동일하게 적용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정책적 특징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동아시아에서 훨씬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4. 1. 대한민국

한국 전쟁 이후, 대한민국은 10년 이상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였다. 가난, 영양실조, 문맹, 정치적 혼란 등이 심각했으며, 1960년 대한민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79USD로,[118] 일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보다 낮은 수준이었다.[119][120]

그러나 한 세대 만에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G20 경제 강국으로 빠르게 성장했다.[121]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 국가 중 하나가 되었으며, 이웃 국가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1인당 GDP가 증가했다.[122][123] 이러한 성장은 혁신의 중요성 강조, 우수한 인적 자원 활용, 선진 사례 벤치마킹, 경제적 경쟁력 강화, 국민들의 근면성 덕분이었다. 이를 통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가치 창출을 증대시키는 국가 시스템을 구축했다.

자원이 부족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첨단 전자,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산업 등을 육성하여 첨단 기술 강국으로 변모했으며, 이는 50년 이상 지속적인 경제 성장의 바탕이 되었다. 특히 연구 개발(R&D)에 대한 투자는 국민 소득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한 대체 에너지, 친환경 기술, 생명 공학 등에 대한 투자는 미래 경제 번영을 위한 핵심 요소로 여겨진다.[123] 대한민국의 엄격한 교육 시스템과 이를 통해 형성된 의욕적이고 교육 수준 높은 인적 자원은 첨단 기술 발전과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끄는 데 크게 기여했다.[124]

대한민국의 산업 제조 능력은 크게 향상되었고, 수출 부문 역시 빠르게 성장했다. 세계적인 자동차, 전자 제품, LCD 기술, 반도체, 조선 기업들이 대한민국의 산업 경쟁력을 보여준다.[125] 천연 자원이 부족하고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가 밀집한 조건은 내수 시장 확대에 제약이 되었기에, 대한민국은 경제 발전을 위해 수출 지향적인 경제 전략을 채택했다. 그 결과 2014년에는 세계 7위의 수출국이자 7위의 수입국이 되었다. 한국은행한국개발연구원은 정기적으로 대한민국의 주요 경제 지표와 경제 동향에 대한 정보를 발표하고 있다.[126][127]

4. 2. 기타 국가

19세기 초까지 동아시아 경제는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측정했을 때 오늘날의 고소득 경제국 전체를 합친 것보다 더 큰 규모였다. 그러나 1950년대까지 중국과 동아시아의 경제적 비중은 상당히 감소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동아시아는 서구 세계의 고소득 경제국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하며 세계 경제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는 세계 생산량의 3분의 1, PPP 기준으로는 절반을 차지하는 수준에 이르렀다.[95] 이 지역은 현재 세계 경제 생산량의 3분의 1을 담당하며, 최근 세계 경제 성장의 거의 절반을 기여하고 있다.[16] 동아시아의 경제적 풍요를 바탕으로, 이 지역 국가들은 현대 과학 기술을 경제 발전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동아시아에서는 인문학이나 사회 과학보다 과학 기술 분야 교육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나타난다.[96] 특히 중국과 일본은 더 많은 최첨단 상품과 서비스를 창출하기 위해 자국의 대학과 연구 기관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97]

현재 동아시아의 경제 성장은 중국 본토가 주도하는 양상이다. 2019년 기준으로 일본, 대한민국, 대만, 홍콩은 대부분의 경제 지표에서 선진 시장으로 간주되는 4개의 동아시아 국가 및 지역이며, 동남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유일하게 모든 경제 지표에서 선진 시장으로 분류된다. 20세기 말부터 이 지역의 주요 경제 강국으로서 일본이 가졌던 역할은 4개의 아시아 호랑이 경제로, 그리고 최근에는 2010년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으로 이동했다.[98] 또한, 2012년 ''이코노미스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2017년까지 구매력 평가 기준 1인당 GDP에서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이는 마카오(2010년), 대만(2010년), 홍콩(1997년), 싱가포르(1993년)가 이미 달성한 성과이다.[99]

세계은행의 2024년 4월 업데이트에 따르면, 동아시아의 전체 성장률은 2023년 5.1%에서 2024년 4.5%로 둔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성장률 역시 5.2%에서 4.5%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태평양 섬나라들의 성장률도 5.6%에서 3.6%로 크게 하락하는 등, 지역 전반적으로 경제 성장 모멘텀이 약화되는 추세이다. 이는 과거 동아시아 지역이 보여주었던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2010년 이후 중국과 베트남에서 GDP 대비 40% 이상 증가한 기업 부채와 중국, 말레이시아, 태국의 높은 가계 부채 수준은 소비 지출 및 투자 성장을 제약할 수 있는 재정적 위험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러한 경제 상황에 대응하고 비교적 낮은 인플레이션율을 관리하기 위해, 동아시아 국가들은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인 구조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재정 정책을 조정하고 정책 금리를 인상하는 등 경제 안정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1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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