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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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생의 철학은 삶을 중심에 두고 세상을 설명하려는 철학 사조로, 딜타이, 짐멜, 베르그송 등을 중심으로 19세기 말 독일과 프랑스에서 발전했다. 이들은 물질 중심의 경험론, 지성 중심의 관념론에 반대하며, 생물학과 역사주의를 중시하고, 삶과 현실을 기계적인 과정이 아닌 진화하고 창조적인 과정으로 이해했다. 현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이며, 과학적 이성으로는 완전히 파악할 수 없기에 직관이나 실천적 경험을 통해 삶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합리주의, 상대주의, 나치즘과의 연관성 등의 비판을 받으며 쇠퇴했고, 실존주의 등에 밀려났지만, 현대 철학, 특히 현상학, 실존주의, 프래그머티즘 등에 영향을 미쳤다.
생의 철학(Lebensphilosophiede)은 이성이나 물질과 같은 추상적 원리가 아닌,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경험으로서의 '삶' 자체를 철학적 탐구의 중심에 둔다.[12][13] 이는 삶을 외부에서 분석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내면으로부터 그 자체의 고유한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접근은 19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계몽주의의 합리주의, 칸트 철학의 추상성, 실증주의의 과학적 환원주의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으며,[1][5][6] 때로는 비합리주의나 반계몽주의의 한 형태로 간주되기도 한다.[58][6]
2. 역사
생의 철학은 전체로서의 '삶'에 주목하며, 삶은 이성이나 과학적 분석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고 내면의 경험을 통해 이해해야 한다는 관점을 가진다. 이는 칸트 철학의 추상성이나 실증주의의 과학적 환원주의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다.
그 철학적 뿌리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와 "성찰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강조한 것은 생의 철학의 중요한 정신적 토대가 되었다.[16] 근대에 들어서는 이마누엘 칸트가 이론 중심의 학문 철학과 실제 삶에 기반한 철학을 구분한 것이 생의 철학 논의의 배경이 되었고,[17] 초기 독일 낭만주의 역시 존재를 유한과 무한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으로 파악하며 생의 철학적 사유의 씨앗을 뿌렸다.[6]
18세기 후반에는 '삶과 세계의 지혜'가 교양 있는 사회에서 유행처럼 번졌으며, 생의 철학은 특정 학파라기보다는 계몽주의 사상을 실천적으로 보급하려는 대중 철학의 성격을 띠었다.[19][20] 요한 아우구스트 에르네스티, 요한 게오르크 하인리히 페더,[18] 고틀롭 베네딕트 폰 시라흐, 카를 필립 모리츠 등이 이 시기 관련 인물이며,[23]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야코비는 철학을 "내면의 삶"으로,[22]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이성뿐 아니라 상상력을 포함한 "해석하는 영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27]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모든 이론은 회색이요, 생명의 나무는 푸르다"는 구절은 이러한 경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24] 폭풍과 열정 운동과 낭만주의는 이러한 흐름에 큰 영향을 주었다.[25] 반면 이마누엘 칸트는 이러한 실천 지향적 "살롱 철학"을 비판하기도 했다.
19세기 후반,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쇠렌 키르케고르, 프리드리히 니체 등의 사상을 자양분 삼아, 생철학(Lebensphilosophiede)은 계몽주의와 실증주의의 지적 풍토 및 칸트 이후 철학의 이론 편중에 대한 본격적인 반발로서 독일을 중심으로 하나의 철학 운동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1][5][6] 이러한 흐름에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가져온 생물학적 관점의 확산,[28][29][30] 당시 독일 대학의 경직된 학문 분위기에 대한 반감,[31] 그리고 1848-1849년 독일 혁명 실패나 제1차 세계 대전 패배와 같은 역사적 사건들이 야기한 사회적 분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32][8]
이후 생철학은 다양한 갈래로 전개되었다. 빌헬름 딜타이는 생의 역사성과 경험을 중시하며 자연과학과 구별되는 인문과학의 방법론으로 '이해'와 해석학을 발전시켰고,[7] 게오르크 지멜은 생의 자기 초월 개념을 제시했다. 프랑스에서는 앙리 베르그송이 생기론과 '지속(durée)', '직관' 개념을 통해 독자적인 생철학을 구축하며 큰 영향을 미쳤다.[8]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에서는 한스 드리슈, 루트비히 클라게스, 오스발트 슈펭글러 등을 중심으로 이성과 문명에 대한 비판과 함께 비합리주의적, 생물학주의적 경향이 강화되기도 했는데, 이는 나치즘과 연관되면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8][58][60]
생철학은 현상학, 실존주의 등 후대 철학 사조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딜타이의 사상은 마르틴 하이데거[7]와 게오르크 미슈[11] 등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프리츠 하이네만은 이를 정신 철학에서 존재 철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단계로 평가하기도 했다.[10]
2. 1. 독일의 생철학
독일에서 생철학(Lebensphilosophiede)은 19세기 후반 계몽주의와 실증주의의 부상, 그리고 칸트 이후 철학의 이론 중심적 경향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다.[1][5][6] 이는 비합리주의 및 반계몽주의의 한 형태로 간주되기도 한다.[58][6] 생철학은 전체로서의 '삶'에 주목하며, 삶은 내면으로부터만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사상의 초기 요소는 초기 독일 낭만주의에서도 발견되는데, 존재를 유한한 것에서 무한한 것으로 나아가려는 끊임없는 긴장으로 이해했다.[6] 20세기에는 규범과 관습에 대한 비판적 강조와 연결되기도 했다.[60]
생철학의 등장은 여러 요인에 의해 촉진되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그 사회적 영향은 인간과 사회를 생물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경향을 낳았고(사회다윈주의), 이는 생철학이 모든 현실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28][29][30] 또한, 19세기 후반 독일 대학의 엄격한 검열과 인식론, 논리학 중심의 학문적 분위기는 대중이 원했던 삶의 지침을 제공하는 철학의 공백을 만들었다. 이 공백을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나 프리드리히 니체와 같이 학문적 틀 밖에서 활동한 철학자들이 메웠다.[31] 정치적 요인, 특히 1848-1849년 독일 혁명의 실패나 제1차 세계 대전에서의 패배 같은 사건들은 염세주의적 분위기를 조성하며 쇼펜하우어와 같은 생철학 선구자들의 사상이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다.[32][8]
=== 선구자 ===
====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
독일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생철학의 주요 선구자이자 영감의 원천으로 꼽힌다. 그는 이성이 아닌 '의지(Will)', 즉 맹목적이고 멈출 수 없는 충동을 사유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생철학의 기초를 마련했다. 쇼펜하우어에게 의지는 모든 자연 현상의 근원이자 세계의 본질이며, 이성과 지식은 단지 의지의 표현일 뿐이다.[35] 그는 "의지가 있다면 삶, 세계도 존재할 것"이라며 생존 의지가 삶 자체를 보증한다고 보았다.[36]
> 의지, 즉 사물 자체, 내적 내용이 세계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삶, 즉 눈에 보이는 세계, 현상은 단지 의지의 거울일 뿐입니다. 이 의지는 마치 그림자가 몸을 따라다니는 것처럼 의지와 불가분하게 함께합니다. 그리고 의지가 있다면 삶, 세계도 존재할 것입니다. 따라서 생존의 의지는 삶을 확신합니다.
> — 아르투르 쇼펜하우어[36]
그의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8)에서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영향을 받아 현상 세계(표상)와 알 수 없는 사물 자체를 구분하면서도, 자기 내면 성찰을 통해 보편적 의지를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현실은 세계 의지가 끊임없이 자신을 표현하는 과정이며, 이 과정은 합리적이지도 인간에게 호의적이지도 않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망하는 '의지하는 존재'이며, 이로 인해 고통받는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삶의 무(無)와 고통에 관하여" 장에서 그는 인간의 삶을 끝없는 욕망과 고통으로 점철된 허무한 것으로 묘사하며, 금욕주의와 예술을 통한 명상에서 구원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 프리드리히 니체 ====
프리드리히 니체 역시 생철학의 중요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은 니체는 이성, 과학, 문화, 진리 탐구 등 근대적 이상에 대해 깊은 회의를 표했다. 그는 쇼펜하우어의 '삶에의 의지'를 모든 생명을 지배하는 '권력 의지'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초기 저작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인간 조건을 이성적이고 질서 잡힌 아폴론적 힘과 풍요롭고 창조적이지만 파괴적이기도 한 디오니소스적 힘 사이의 투쟁으로 파악했다.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는 이 두 힘이 균형을 이루었으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이후 서양 철학은 아폴론적 측면만을 강조하며 삶의 디오니소스적 측면을 억압해왔다고 비판했다.[37] 니체는 이러한 이성 중심주의가 삶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보았으며, 전통 철학이 찬양하는 금욕적 삶 역시 삶의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힘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상의 황혼』에서 그는 "가장 이상하고 어려운 문제 속에서도 삶에 대해 예스라고 말하는 것"을 '디오니소스적' 태도라고 칭하며 삶의 긍정을 강조했다.[38]
> 가장 이상하고 어려운 문제 속에서도 삶에 대해 예스라고 말하는 것; 삶에 대한 의지, 그 자체의 고갈되지 않는 힘의 최고 유형을 희생하는 데서 기쁨을 발견하는 것 - 나는 그것을 디오니소스적이라고 불렀고, 그것은 비극 시인의 심리학으로 가는 다리라고 추측했다.
> — 프리드리히 니체[38]
또한 "신은 죽었다"는 선언을 통해 초월적 세계나 가치의 부재를 주장하며 오직 이 세계와 이 삶만이 존재함을 역설했다. 그는 『즐거운 과학』에서 제시된 '영원 회귀' 사상을 통해, 삶이 영원히 반복되기를 바랄 수 있도록 순간순간을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는 새로운 삶의 지침을 제시하고자 했다. 인간과 모든 현실은 궁극적으로 선이나 진리가 아닌 더 많은 힘(권력 의지)을 추구한다고 보았다.
=== 초기 생철학 운동 (역사주의) ===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영향을 받아 19세기 말 독일에서는 빌헬름 딜타이, 루돌프 오이켄, 게오르크 지멜 등을 중심으로 초기 생철학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들은 특히 삶의 역사성과 경험을 강조하며 '역사주의' 경향을 보였다.
==== 빌헬름 딜타이 ====
빌헬름 딜타이는 "생을 생 그 자체로부터 이해한다(Das Leben aus ihm selber verstehende)"는 명제를 내세우며 생철학의 중요한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인간 존재를 단순히 인식하는 주체(표상)뿐 아니라 의지를 가지고 감정을 느끼는(의욕, 정감) 총체적인 존재로 파악하고자 했다. 딜타이는 인간 정신 구조가 표상을 기초로 그 위에 의욕이 있고, 가장 높은 차원에 가치 평가를 하는 감정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생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체험(Erlebnisde)', '표현(Ausdruckde)', '이해(Verstehende)' 세 가지를 제시했다. 근원적인 생을 직접 파악하는 '체험'은 '생의 내화(內化)'이며, 체험을 외부로 드러내는 '표현'은 '생의 외화(外化)'이다. 그리고 표현된 것을 파악하는 '이해'는 생의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통일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딜타이는 생이 본질적으로 역사적이며 사회적 연관 속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관점에서 자연과학의 설명(erklärende)과 구별되는 인문과학(Geisteswissenschaftende)의 '이해(Verstehende)' 방법론으로서 해석학을 발전시켰다. 이는 개별적인 역사적 사실을 전체 맥락 속에서 파악하고, 동시에 부분을 통해 전체를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그의 사상은 한스 프라이어, 게오르크 미슈, 오스발트 슈펭글러 등 후대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39]
==== 게오르크 지멜 ====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게오르크 지멜은 생철학 사상에 니체와 괴테의 자기 초극 개념을 접목했다. 그의 철학은 '생의 자기 초월(Transzendenz des Lebens über sich selbstde)'이라는 개념으로 요약될 수 있다. 지멜은 생의 본질적 특징으로 시간성을 강조하며, 시간이 생의 구체적인 존재 형식이라고 보았다.
그는 생이 단순히 끊임없이 생성하는 흐름일 뿐 아니라, 스스로에게 한계를 부여하고 개성적인 형식을 만들면서도 동시에 그 형식을 끊임없이 파괴하고 넘어서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즉, 생은 한정된 형식을 넘어서려는 '보다 많은 생(mehr Lebende)'인 동시에, 창조적으로 자신에게 형식을 부여하는 '생 이상의 것(mehr als Lebende)'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보다 많은 생'은 쇼펜하우어의 '생의 의지'를, '생 이상의 것'은 니체의 '권력 의지'를 연상시킨다.
지멜은 칸트처럼 인간 인식이 선험적 범주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았지만, 이 범주들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진화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진리'나 '도덕적 당위' 역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진화 과정과 역사 속에서 그 유용성에 따라 변화하는 상대적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 루돌프 오이켄 ====
루돌프 오이켄은 생철학의 흐름 속에서 주로 인생론적인 측면을 다룬 철학자로 분류된다. 그는 생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명성이 높았으나, 그의 철학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 전간기 생철학 ===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의 패배와 사회적 혼란 속에서 새로운 경향의 생철학이 등장했다. 이 시기의 생철학은 생물학과 정치 영역에 영향을 미쳤으며, 한스 드리슈, 카를 요엘, 헤르만 그라프 카이저링, 루트비히 클라게스, 오스발트 슈펭글러 등이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이들은 깊은 염세주의와 문명 비판에 기초하여 이성과 지성에 대해 강한 불신을 드러내는 반지성주의적 경향을 보였고, 대신 삶의 비합리적인 힘, 본능, 자연 등을 강조했다. 이러한 사상은 사회를 생물학적으로 해석하고 자연과 문화를 동일시하는 경향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나치의 인종주의 이데올로기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을 받는다.[8][58][60]
==== 한스 드리슈 ====
생물학자이기도 했던 한스 드리슈는 생명 현상이 단순한 물리화학적 인과관계로 설명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생기론을 펼쳤다. 그는 실험을 통해 생명체가 목적론적 원리, 즉 '엔텔레키'에 의해 스스로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비물질적인 힘에 의해 작동한다고 결론지었다.
==== 루트비히 클라게스 ====
루트비히 클라게스는 몸과 영혼의 원초적 통일성과 인간의 정신(이성) 사이의 적대적 관계를 강조했다. 그의 주저 『정신, 영혼의 적』(Der Geist als Widersacher der Seelede)의 제목처럼, 그는 정신과 이성이 본래 하나인 몸과 영혼을 분리시키고 생명력을 파괴한다고 보았다. 클라게스는 이성 중심의 자연과학이 삶 자체에 대한 위협이라고 주장하며 강력한 비합리주의적 입장을 취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나치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58]
==== 오스발트 슈펭글러 ====
오스발트 슈펭글러는 그의 저서 『서구의 몰락』을 통해 생철학 사상을 대중적으로 확산시켰다. 그는 문명을 유기체처럼 탄생, 성장, 쇠퇴, 죽음의 과정을 겪는 것으로 파악했으며, 서구 문명이 몰락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의 역사관과 문명 비관론은 특히 전후 독일 사회의 우익 세력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나치즘의 부상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44][58]
=== 영향과 평가 ===
독일의 생철학은 현상학, 실존주의 등 후대 철학 사조에 영향을 미쳤다. 빌헬름 딜타이의 해석학은 인문학 방법론에 큰 기여를 했으며, 마르틴 하이데거는 딜타이의 작업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더 근본적인 존재론적 탐구가 필요하다고 보았다.[7] 게오르크 미슈는 딜타이의 사상을 하이데거 및 후설의 현상학과 연결하려 시도했다.[11] 프리츠 하이네만은 생철학을 정신 철학에서 존재 철학(실존주의)으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로 평가했다.[10] 막스 셸러는 니체, 딜타이, 앙리 베르그송 사이의 유사성을 지적하며 생철학에 대한 초기 개요를 제시하기도 했다.[34] 필립 레르슈는 베르그송, 딜타이, 슈펭글러를 연구하며 게오르크 지멜과 루트비히 클라게스를 생철학의 중요한 대표자로 보았다.[9]
그러나 특히 전간기의 생철학은 비합리주의, 반지성주의적 경향과 나치즘과의 연관성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생명, 본능, 의지 등을 강조하는 생철학의 일부 측면이 파시즘 이데올로기에 의해 왜곡되고 악용될 소지를 제공했다는 지적이 있다.[8][58][60]
2. 2. 프랑스의 생철학
베르그송은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살아 있는 것을 죽은 것으로 설명하는 유물론이 아니라, 죽은 것을 살아 있는 것으로 설명하는 입장이라고 정의하며, 자신의 '생의 철학'의 핵심을 시간성에 두었다. 그에게 생은 끊임없이 생성하고 발전하는 것이며, 그 자체로 지속적이고 시간적인 것이다. 이러한 생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그는 지성(知性) 대신 '직관(intuition)'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때의 직관은 신비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생의 약동(élan vital|엘랑 비탈프랑스어)'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의미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프랑스에서는 생철학과 유사한 사상을 가진 철학자들이 등장했다. 19세기의 기계론과 관념론에 맞서 모리스 블롱델(Maurice Blondel)과 에두아르 르 루아(Édouard Le Roy) 등이 새로운 철학적 논의를 시작했다. 블롱델은 1893년 저서 L'Action프랑스어에서 "행위철학"을 통해 자신만의 생철학을 제시했다. 에밀 부트루(Émile Boutroux), Jules Lachelier|쥘 라슐리에프랑스어, 펠릭스 라비송 몰리앵(Félix Ravaisson-Mollien) 등도 초기 프랑스 생철학과 관련된 인물들이다.
그러나 프랑스 생철학이 명확한 형태를 갖추고 이후 프랑스 철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철학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그는 강력한 생기론과 반(反)기계론을 주장했다. 베르그송은 초기에는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의 영향을 받았으나, 스펜서 철학의 기계론적 한계를 비판하며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베르그송은 주로 네 권의 저서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펼쳤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세계를 인식하는 두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이는 인간 내면의 근본적인 이중성에서 비롯된다. 시간을 수학적인 점들의 연속으로 보거나, 경험하는 연속적인 흐름('지속', durée|뒤레프랑스어)으로 파악할 수 있듯이, 세계 인식에도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분석이고 다른 하나는 직관이다. 분석은 대상을 이미 알려진 기본적인 요소로 분해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베르그송은 분석이 현실 그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반복 가능한 측면만을 포착한다고 비판했다. 관념론이나 합리론과 같은 전통 철학은 분석적 지식을 중시했지만, 베르그송은 분석만으로는 현실 자체에 도달할 수 없으며, 기껏해야 세계와의 실용적인 관계에서만 유용하다고 보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직관은 대상을 다른 것으로 환원하지 않고 그 자체로 파악하는 방식이다. 베르그송은 이 두 방법의 차이를 자신의 행동을 내면에서 전체적으로 인지하는 것과 외부에서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의 차이에 비유했다. 그는 과학 역시 분석적 방법에 의존한다고 보아, 과학적 인식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40]
1907년 저서 ''창조적 진화''에서 베르그송은 생명을 설명하는 기존의 기계론적 모델과 목적론적 모델 모두 '지속'(durée|뒤레프랑스어)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두 관점 모두 직관 대신 이성(분석)에 의존하는 오류를 범한다고 주장했다.
베르그송에게 생명은 현실을 관통하며 창조적이고 비합리적인 길을 가는 흐름과 같다. 생명은 기계론이나 최종 원인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스스로를 생성하고 나아가게 하는 고유한 '생명력'(élan vital|엘랑 비탈프랑스어)을 지닌다. 이 생명력은 역사를 통해 식물과 동물을 거쳐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이르렀다. 인간에게는 이성 외에도 직관이 발현되어 현실을 진정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열렸다. 이러한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해석은 생명뿐 아니라 현실 전체에 적용된다. 현실 자체가 진화이며, '사물'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행위와 생성만이 있을 뿐이다.
베르그송 말년에는 그의 철학을 지지하고 발전시킨 철학자들이 등장하며 "베르그송주의"라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레옹 올레 라프룬(Léon Ollé-Laprune), 뤼시앵 라베르토니에르(Lucien Laberthonnière), 알프레드 루아지(Alfred Loisy)와 같은 가톨릭 사상가들이 그 예이다.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우(Otto Friedrich Bollnow)에 따르면, "생의 철학"이라는 용어는 야코비(Jacobi)에게서 찾을 수 있으며, 그 정신적 기원은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친 니체(Nietzsche)와 베르그송의 경우, 다윈의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생물학의 새로운 지식과의 관련성이 크다. 독일어권에서도 지멜(Simmel)이나 셰러(Scheler) 등은 니체를 베르그송으로 보완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베르그송과 동시대 인물인 지멜은 제자에게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 독일어 번역을 맡겼으며, 볼노우에 따르면 그의 저술 곳곳에 베르그송의 영향이 나타난다.
'생(生)'이라는 단어는 서양 언어에서 '인생'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따라서 생철학으로 분류되는 사상 중에는 인생론에 더 가까운 것도 있다. 셰러의 스승이었던 오이켄(Eucken)이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오이켄은 생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명성이 높았으나, 현재 그의 저작은 거의 읽히지 않는다.
니체와 베르그송의 영향은 특히 들뢰즈(Deleuze)를 비롯한 프랑스 철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데리다(Derrida)에게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베르그송은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와 교류하며 프래그머티즘에도 영향을 미쳤다.
3. 주요 특징
빌헬름 딜타이는 "생을 생 그 자체로부터 이해한다"는 명제를 통해 생철학의 핵심을 제시했다. 그는 인간을 단순히 표상하는 존재가 아니라 의욕하고 느끼는 '전체적 인간'으로 파악했으며, 생의 본질을 '역사적'인 것으로 규정했다. 그는 생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체험', '표현', '이해'의 순환 과정을 제시하며, 이것이 바로 해석학적 방법의 기초가 된다고 보았다. 딜타이에게 생은 개인적인 것을 넘어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실재였다.
생의 철학은 다양한 사상가들을 아우르지만,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사상가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님):[12][13]
이러한 특징들은 생의 철학을 독일 낭만주의에서 시작하여[6] 쇼펜하우어, 세렌 키르케고르, 니체 등의 선구자를 거쳐 딜타이, 짐멜, 베르그송 등으로 이어지는, 삶의 역동성, 구체성, 비합리적 측면을 강조하는 중요한 철학적 흐름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생의 철학은 이후 현상학이나 실존주의 등 20세기 철학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10][11]
4. 비판
제2차 세계 대전 이전부터 생의 철학(Lebensphilosophiede)은 하인리히 리케르트[51]와 에른스트 카시러[52]와 같은 신칸트주의자 및 합리주의 사상가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58][60][59]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생의 철학과 나치즘 사이의 연관성을 지적하는 연구들이 등장하면서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주요 비판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비합리주의 ===
생의 철학에 대한 핵심적인 비판 중 하나는 비합리주의이다. 일부 생의 철학자들이 비합리주의적 요소를 옹호했지만, 비판가들은 이를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진리에 도달하는 수단으로서 이성을 포기하는 것은 철학 전체, 나아가 사고(思考) 자체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비판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1946년 저서 『서양 철학사』에서 생의 철학에 따르면 "지성은 인간 불행의 근원이며, 본능은 개미, 벌, 그리고 앙리 베르그송에게서 가장 잘 나타난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한 "행동이 어떤 비전, 즉 우리의 일상생활보다 고통이 적고, 불공정이 적고, 분쟁이 적은 세상을 상상력 있게 내다보는 것에서 영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 행동이 사색에 기반을 둔 사람들에게는 이 철학에서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 것이며, 그것이 옳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53]
조지 산타야나 역시 이러한 비판에 동의한다.[54] 그는 생의 철학이 정신적으로 빈곤한 상상력의 증상이며, "마음이 그것의 적절한 기능, 즉 지성으로 삶을 고양시켜 정점에 이르게 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만약 그것이 삶을 가속화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 존재를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55]
1953년 저서 『이성의 파괴』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게오르크 루카치는 생의 철학을 극단적인 비합리주의 형태로 규정하고, 이것이 "제국주의적 부르주아지"(즉,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주장했다.[58]
=== 생기론 ===
생의 철학이 옹호하는 생기론 원리, 즉 생명 현상 뒤에는 어떤 종류의 생명력이 있다는 주장은 순환 논증에 빠진다는 비판을 받는다. 생명력을 가정해야만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을 근거로 다시 생명력의 존재를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 상대주의 ===
다른 비판가들은 생의 철학(Lebensphilosophiede)이 상대주의의 한 형태에 빠진다고 비난한다.[56] 생의 철학의 비합리적인 성격 때문에 확실한 지식은 불가능해지며, 어떤 형태의 사상 비판도 불가능해진다. 비판을 하려면 필연적으로 이성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사상과 관점은 동등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생의 철학의 토대를 마련한 빌헬름 딜타이의 해석학과 역사주의가 이미 상대주의적 사고로 비판받았던 것과 연결된다.[57] 사상이나 제도를 그것이 등장한 특정 역사적 맥락 속에서만 평가해야 한다면, 언제든지 특정 사상을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사상에 대한 비판은 단지 그 특정 맥락에서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실패로 치부될 수 있으며, 문제의 역사적 맥락 안에서 이해되기만 하면 모든 사상은 타당한 것이 되어버린다.
=== 나치즘 및 파시즘과의 연관성 ===
생의 철학에 대한 가장 심각한 비판 중 하나는 나치즘 및 파시즘과의 사상적 연관성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생의 철학이 급격히 쇠퇴한 주요 원인으로 이러한 연관성이 지목된다.
리처드 울린에 따르면, 독일의 생의 철학(Lebensphilosophiede)은 제1차 세계 대전 직전에 정치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그는 한스 드리슈나 루트비히 클라게스 같은 인물들이 서구 문명의 피상적인 지성주의를 비판하면서 '이성'을 '문명' 및 '서구'의 결점과 연관시켰고, 이는 많은 독일 사상가들이 이성을 거부하고 혈통과 생명의 비이성적인 힘을 옹호하도록 부추겼다고 본다. 울린은 허베르트 슈네델바흐를 인용하여, 이 시점에서 생의 철학이 본질과 문화의 전통적인 차이를 의도적으로 없애고, 문화 이론에서 나치즘의 인종주의로 절정에 달하는 일반적인 생물학주의의 성공을 용이하게 했다고 주장했다.[8]
게오르크 루카치는 『이성의 파괴』에서 생의 철학이 단순히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의 관점에서 비합리주의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나치즘으로 향하는 이데올로기적 발전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특히 루트비히 클라게스를 파시즘의 선구자로 보았으며, 클라게스가 "독일 생기론을 이성과 문화에 대한 공개적인 공격으로 변형시켰다"고 평가했다. 또한 오스발트 슈펭글러와 그의 저서(특히 『서구의 몰락』)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 생기론을 호전적인 반동주의 철학으로 재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결과적으로 "파시즘 철학에 대한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서곡"이 되었다고 지적했다.[58]
지식사학자 칼 뮬러 프뢰란드는 생의 철학 운동이 나치즘의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형성한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적 전환"을 경험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생의 철학의 생물정치적 생기론이 사회 다윈주의 사상과 쉽게 연결되었고, 제국 독일 내에서 니체식 생기론과 민족주의가 혼합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보았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 이러한 사상들은 나치즘의 기원이 된 "전쟁 숭배 생기론"으로 융합되었다고 주장했다.[59]
이스라엘계 미국 역사가 니찬 레보빅은 Lebensphilosophiede를 "생명 개념의 집합"과 1920년대 독일 교육 시스템이 적절한 Lebenskundede, 즉 '삶의 교육' 또는 '삶의 과학'으로 여기게 된 것 사이의 밀접한 관계와 연관지었다. 이 명칭은 당시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이 오랫동안 옹호해 온 광범위한 철학적 관점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였다. 레보빅은 자신의 저서에서 후기 니체주의적 Lebensphilosophiede가 슈테판 게오르크 서클의 급진적인 미학에서 나치 또는 "생물정치적" 수사학과 정치로 변모하는 과정을 추적했다.[60]
반면, 프레드릭 C. 바이저는 그의 저서 『생명철학: 1870-1920년 독일 생명철학』에서 나치가 생의 철학의 일부 주제를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이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사회주의(나치즘)와 생의 철학 사상 사이에는 "실제로 공통점이 거의 없다"고 지적하며 직접적인 연관성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61]
5. 관련 인물
생의 철학 형성에 영향을 미치거나 직접적으로 관련된 주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선구자 및 초기 사상가 ===
- '''소크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과 "성찰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그의 주장은 생의 철학 사상의 초석 중 하나로 여겨진다.[16] 고대 철학자 대부분이 윤리학과 행복에 초점을 맞추며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 했다.
- '''크리스티안 볼프''': 이마누엘 칸트가 볼프의 이론 중심 철학과 대비하여, 실제 삶에서 비롯되고 삶을 목표로 하는 철학(세계 개념에 기반한 철학)을 구분한 것이 생의 철학의 뿌리로 거슬러 올라간다.[17]
- '''이마누엘 칸트''': 그의 철학은 생의 철학이 비판적으로 계승하거나 반발하는 주요 대상이 되었다. 칸트는 이론 철학과 삶의 철학을 구분했으며,[17] 생의 철학은 칸트 철학의 추상성이나 실증주의의 과학적 환원주의에 대한 거부로 간주될 수 있다.[1][5][6] 그는 1794년 에세이 Über den Gemeinspruch: Das mag in der Theorie richtig sein, taugt aber nicht für die Praxisde에서 실용적이지 못한 당시의 "살롱 철학"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 '''요한 아우구스트 에르네스티'''와 '''요한 게오르크 하인리히 페더''': 생의 철학의 초기 형태와 관련된 인물들로 언급된다.[18] 18세기 후반, 삶과 세계의 지혜는 상류 사회에서 유행하는 용어였으며, 생의 철학은 특정 교리라기보다는 지식인 사회에 영향을 미친 문화적 분위기에 가까웠다.[19] 당시 생의 철학은 학문 철학과 거리를 두고 실천적 행동 철학으로서 계몽주의 사상 보급에 힘쓴 대중 철학과 동일시되기도 했다.[20]
- '''고틀롭 베네딕트 폰 시라흐'''와 '''칼 필립 모리츠''': 각각 1772년 "인간의 아름다움과 생의 철학", 1780년 "생의 철학에 대한 기고"를 저술하여 '생의 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23]
- '''괴테''': 파우스트에 나오는 구절 "친구여, 모든 이론은 회색이지만, 황금빛 생명의 나무는 늘 푸르게 솟아납니다."[24]는 생의 철학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것으로 인용된다.[23] 또한 그의 "자기를 초극하는 인간만이 자유롭다"는 말은 게오르크 지멜에게 영향을 주었다.
-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야코비''': "철학은 내면의 삶이다. 철학적 삶은 집중된 삶이다. 참된 철학을 통해 영혼은 고요해지고 궁극적으로는 경건해진다."[22]라고 말하며 '생의 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초기 인물 중 하나이다.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우는 '생의 철학'이라는 용어가 야코비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 '''장자크 루소''':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우는 생의 철학의 정신적 기원을 루소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았다.
- '''노발리스''': 낭만주의자로서 폭풍과 열정 운동과 함께 생의 철학에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25] 그는 이성뿐 아니라 삶과 밀접한 감정과 의지도 철학에서 고려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생의 철학은 내 힘 안에 있는 독립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삶의 과학을 포함하며, 삶의 기술에 대한 교리 또는 그러한 삶을 스스로 준비하기 위한 규칙의 체계에 속한다."[26]고 말했다. 초기 독일 낭만주의는 존재를 "유한한 것에서 무한한 것으로의" 끊임없는 긴장으로 이해했으며, 이는 종종 실망, 비관적 포기, 또는 반대로 본능적 생명력의 고양이나 종교적 수용으로 이어졌다.[6]
- '''프리드리히 슐레겔''': 1827년 칸트와 헤겔에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생의 철학' 강의를 통해 이 개념의 대중적 관심을 높였다. 그는 논리학과 같은 학문 철학의 형식적 개념을 단순한 준비 단계로 보았고, 철학 자체는 이성 철학과 자연 과학 사이를 중재하며 "내면의 영적 삶, 그리고 실제로 그 모든 충만함 속에서"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성뿐 아니라 상상력, 이해, 의지를 모두 포괄하는 "해석하는 영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27]
> 그러나 해석하는 영혼은 구별하고, 연결하고, 연역하는 이성뿐만 아니라 숙고하고, 발명하고, 예감하는 상상력을 포함합니다. 그것은 두 힘 모두를 포괄하며, 그들 사이의 중간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해와 의지 사이의 전환의 전환점을 형성하며, 연결하는 중간 고리로서 두 가지 사이에 놓여 있고 그것들을 분리하는 간격을 채웁니다.[27] -- 프리드리히 슐레겔
-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생의 철학(Lebensphilosophie)의 주요 선구자이자 영감의 원천으로 꼽힌다.[1][5][6] 그는 이성(reason)이 아닌 의지(Will) 즉, 실제 삶을 사고의 중심에 둠으로써 생명철학을 공식화하는 최초의 시도를 했다. 의지는 모든 자연을 포괄하는 맹목적이고 멈출 수 없는 충동이며, 사상의 근본 토대라는 것이다. 이성과 지식은 의지에 의존하며 의지의 표현이며, 세계의 모든 생명력은 의지에 반영되어 있다.[35]
> 의지, 즉 사물 자체, 내적 내용이 세계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삶, 즉 눈에 보이는 세계, 현상은 단지 의지의 거울일 뿐입니다. 이 의지는 마치 그림자가 몸을 따라다니는 것처럼 의지와 불가분하게 함께합니다. 그리고 의지가 있다면 삶, 세계도 존재할 것입니다. 따라서 생존의 의지는 삶을 확신합니다.[36] --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그의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8)는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와 게오르크 빌헬름 프레드리히 헤겔과 같은 관념론 철학자들을 비판하며 이성과 지성의 과도한 강조를 비난했다. 칸트의 영향을 받아 "우리가 보는 사물"과 알 수 없는 "사물 자체"를 구분했지만, 쇼펜하우어는 자기 성찰을 통해 인간이 보편적 의지의 표현임을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세계는 합리적 원리 없이 의지를 표현하는 세계 의지일 뿐이며, 인간은 끊임없는 욕망 속에서 고통받는 존재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46장 "삶의 무(無)와 고통에 관하여"에서 그는 인간 삶의 공허함을 지적하며, 금욕주의와 예술을 통한 해탈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의 철학은 1848-1849년 독일 혁명 실패 후 비관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주목받았고, 프리드리히 니체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32] 그는 학문적 틀에서 벗어나 활동한 철학자의 예시이기도 하다.[31]
- '''세렌 키르케고르''': 쇼펜하우어, 니체와 함께 그의 저술은 19세기 계몽주의와 실증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생의 철학(Lebensphilosophie)이 등장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1][5][6]
- '''프리드리히 니체''': 쇼펜하우어와 함께 생의 철학(Lebensphilosophie)의 가장 중요한 선구자이자 창시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33][46] 그는 쇼펜하우어 철학의 추종자였으며, 이성, 과학, 문화, 진리 탐구라는 근대적 이상에 회의를 표했다. 그는 쇼펜하우어의 '삶에 대한 의지'를 '권력 의지' 개념으로 발전시켰고, 영원회귀 사상을 제시했다. 초기 저서 『비극의 탄생』에서는 이성적이고 고요한 아폴론적 힘과 풍부하고 역동적인 디오니소스적 힘 사이의 모순을 인간 조건의 핵심으로 보았다. 그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이후 서양 철학이 디오니소스적 측면을 억압하고 아폴론적 측면에 치중했다고 비판하며, 삶 자체를 긍정하는 디오니소스적 태도를 강조했다.[37]
> 가장 이상하고 어려운 문제 속에서도 삶에 대해 예스라고 말하는 것; 삶에 대한 의지, 그 자체의 고갈되지 않는 힘의 최고 유형을 희생하는 데서 기쁨을 발견하는 것 - 나는 그것을 디오니소스적이라고 불렀고, 그것은 비극 시인의 심리학으로 가는 다리라고 추측했다.[38] --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하나님은 죽었다"는 그의 선언은 초월적 가치의 상실을 의미하며, 영원회귀 사상은 삶의 내재적 지침을 제시한다. 니체는 고전학자 출신으로, 쇼펜하우어처럼 학문적 틀 밖에서 활동하며 대중에게 영향을 미쳤다.[31] 그의 사상은 막스 셸러에 의해 딜타이, 베르그송과 함께 생의 철학의 주요 흐름으로 묶였다.[34]
- '''찰스 다윈''': 그의 진화론과 진화론의 사회적 영향은 생의 철학 등장에 기여했다. 인간과 사회를 생물학적 관점에서 해석하고(사회다윈주의), 적자생존과 자연선택 개념이 확산되면서 인간을 진화의 과정에 있는 동물 중 하나로 보는 시각이 생겨났고, 이는 생의 철학이 현실 전반으로 확장되는 배경이 되었다.[28][29][30]
=== 주요 생의 철학자 ===
- '''빌헬름 딜타이''': 생의 철학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33][46], "생을 생 그 자체로부터 이해한다(Das Leben aus ihm selber verstehen)"는 명제를 내세웠다. 그는 생이 본질적으로 역사적 생이며, 인간을 표상, 의욕, 정감을 지닌 전체적 존재로 파악하고자 했다. 생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체험(Erlebnis, 생의 내화), 표현(Ausdruck, 생의 외화), 이해(Verstehen)를 제시했다. 그는 '생의 철학'을 '역사적 이성의 비판'이라 칭하며 역사적 방법을 중시했는데, 이것이 그의 '해석학적 방법'이다. 인간의 생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적 연관 속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역사적·사회적 실재로서의 생을 철학 대상으로 삼은 점이 그의 생의 철학의 특징이다. 그는 존 스튜어트 밀과 허버트 스펜서의 결정론적 자연철학에 반대하며, 자연과학(설명, erklären)과 인문과학(이해, Verstehen)을 구분하고, 인문과학의 방법으로 해석학을 제시했다. 그의 사상은 한스 프라이어, 테오도르 리트, 게오르크 미슈, 에리히 로타커, 오스왈트 슈펭글러, 에두아르트 슈프랑거, 에른스트 트뢸치, R.G. 콜링우드 등에게 영향을 미쳤다.[39] 마르틴 하이데거는 딜타이의 작업을 기본적인 단계로 보았으나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다고 평가했다.[7]
- '''게오르크 지멜''': 그의 생의 철학은 니체의 "인간이란 초극되어야 할 어떤 것이다"와 괴테의 "자기를 초극하는 인간만이 자유롭다"는 말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의 철학의 핵심은 '생의 자기초월(Transzendenz des Lebens über sich selbst)'이며, 시간성을 생 자체의 구체적인 존재 형식으로 중시했다. 생은 끊임없이 생성하면서도 스스로에게 형식을 부여하고, 다시 그 형식을 타파하여 생의 흐름 속으로 해소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즉, 생은 한정된 형식을 초월하는 '보다 많은 생(mehr Leben)'이면서 동시에 창조적으로 형식을 부여하는 '생 이상의 것(mehr als Leben)'이다. '보다 많은 생'은 쇼펜하우어의 '생의 의지'를, '생 이상의 것'은 니체의 '힘에의 의지'를 연상시킨다. 그는 칸트의 선험적 범주 개념을 받아들이면서도 이 범주들이 역사적으로 진화한다고 보았다. 진리나 도덕적 당위 역시 역사 속에서 유용성에 따라 변화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는 필립 레르슈에 의해 루트비히 클라게스와 함께 생의 철학의 가장 중요한 대표자로 간주되었다.[9] 볼노우에 따르면 지멜은 앙리 베르그송의 영향을 깊이 받았으며, 제자에게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 번역을 맡기기도 했다. 생의 한가운데서 죽음의 문제를 제기한 점은 하이데거 등 후대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 '''앙리 베르그송''': 생의 철학의 주요 창시자 중 한 명으로[33][46], 자신의 철학을 유물론과 반대로 죽은 것을 살아 있는 것으로 설명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생의 특질을 시간성, 즉 끊임없이 생성 발전하는 '지속(durée)'으로 보았다. 이러한 생을 파악하는 기능으로 지성 대신 '직관(intuition)'을 중시했으며, 이는 신비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 속 '생의 약동(엘랑 비탈, élan vital)'을 직접 파악하는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철학은 생기론과 강한 반기계론적 성격을 띤다. 주요 저서로는 『시간과 자유의지』(인식론), 『물질과 기억』(심리학), 『창조적 진화』(형이상학),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윤리학, 종교철학) 등이 있다. 『창조적 진화』에서는 기계론과 목적론을 비판하며, 생명을 창조적이고 비합리적인 '엘랑 비탈'에 의해 추동되는 과정으로 설명했다. 그는 분석적 지식(지성)과 직관적 지식을 구분하며, 분석은 현실의 일부만 파악할 뿐 직관만이 세계 자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40] 그의 사상은 윌리엄 제임스와 프래그머티즘,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등 후대 프랑스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레옹 올레 라프룬, 뤼시앵 라베르토니에르, 알프레드 루아지 등 가톨릭 사상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 후기 및 기타 관련 인물 ===
- '''루돌프 오이켄''': 막스 셸러의 스승으로, 그의 철학은 인생론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생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높은 인지도를 가졌으나 현대에는 영향력이 줄었다.
- '''막스 셸러''': 1913년 니체, 딜타이, 베르그송 사이의 유사성을 지적하며 생의 철학에 대한 최초의 개요를 작성했다.[34]
- '''필립 레르슈''': 독일 심리학자로, 베르그송, 딜타이, 슈펭글러를 연구하며 지멜과 클라게스를 생의 철학의 가장 중요한 대표자로 보았다.[9]
- '''프리츠 하이네만''': 생의 철학을 정신 철학에서 존재 철학으로 이행하는 중간 단계로 간주했다.[10]
- '''게오르크 미슈''': 딜타이의 제자이자 사위로, 1930년에 하이데거와 후설 철학과 생의 철학의 관계를 설명했다.[11]
- '''프랑스 초기 생의 철학 관련 인물''': 19세기 말~20세기 초 프랑스에서는 모리스 블롱델(행위 철학), 에두아르 르 루아, 에밀 부트루, 쥘 라슐리에(Jules Lachelier), 펠릭스 라비송 몰리앵 등이 기계론과 관념론에 맞서 생의 철학적 사유를 전개했다.
- '''전간기(戰間期) 생의 철학자''': 제1차 세계 대전 패배 후 독일에서는 한스 드리슈, 카를 요엘, 헤르만 그라프 카이저링, 루트비히 클라게스 등이 새로운 생의 철학 사상을 제시했다. 이들은 깊은 염세주의 속에서 이성과 지성을 문명의 결함으로 보고 반지성주의를 주장하며 삶과 욕망의 비합리적 힘을 강조했다. 이는 자연과 문화의 동일시, 사회의 생물학적 해석으로 이어져 나치 인종주의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8][58][60]
- '''한스 드리슈''': 생물학자로서 실험을 통해 생명 현상이 인과적 힘이 아닌 목적론적 힘(엔텔레키)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며 생기론을 대표했다.
- '''루트비히 클라게스''': 몸과 영혼의 통일성과 정신(이성)을 대립시켰다. 주저 『정신, 영혼의 적(Der Geist als Widersacher der Seele)』(1929-1932)에서 정신이 몸과 영혼을 분리시키는 환상을 만들며 삶 자체를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강한 비합리주의는 나치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주었다.[58]
- '''오스발트 슈펭글러''': 그의 저서는 생의 철학을 대중적인 형태로 제시하여 전후 독일(바이마르 공화국)의 우익 집단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44][58] 딜타이의 영향을 받았다.[39]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 '''에두아르트 폰 하르트만'''
- '''마르틴 하이데거''': 딜타이의 작업을 평가했으며[7], 지멜의 죽음 문제 제기에 영향을 받았다. 미슈는 그의 철학과 생의 철학의 관계를 설명했다.[11]
- '''에드문트 후설''': 미슈는 그의 철학과 생의 철학의 관계를 설명했다.[11]
- '''윌리엄 제임스''': 베르그송과 친분이 있었으며, 프래그머티즘에 영향을 주고받았다.
- '''질 들뢰즈''': 니체와 베르그송의 영향을 받았다.
- '''자크 데리다''': 들뢰즈와 대립적 위치에 있었으나 니체와 베르그송의 영향을 받았다.
6. 현대적 의의
20세기 전반기에 큰 인기를 누렸던 생의 철학(Lebensphilosophiede)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빠르게 쇠퇴했다. 초기 인기는 당시 지배적이던 과학적이고 실증주의적인 철학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실증주의가 윤리학이나 삶의 철학의 중요성을 낮추고 인식론과 과학을 강조한 반면, 생의 철학은 이러한 경향에 반대하며 "일반 대중의 삶"에 다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급격히 쇠퇴했는데, 이는 생의 철학이 나치즘이나 파시즘과 연관되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나치즘과 파시즘 역시 생의 철학처럼 생물학적, 생기론적, 비합리적 요소에 호소하는 경향이 있었다.[45] 또한, 실존주의와 같은 다른 철학 사조들이 부상하며 생의 철학의 영향력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의 철학의 사상은 여러 현대 사상에 흡수되었다. 이러한 흐름들은 종종 생의 철학의 "비합리적" 성격을 비판적으로 수용했다. 예를 들어, 철학자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Otto Friedrich Bollnow)는 딜타이가 발전시킨 생의 철학을 따르면서도 이를 실존주의 및 현상학의 통찰과 연결하려 시도했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셋(José Ortega y Gasset)의 저술, 특히 1930년 작품인 대중의 반항(The Revolt of the Masses)에는 생의 철학적 요소가 많이 담겨 있으며,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관점주의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45]
생의 철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활동적 삶'''(vita activa)과 '''관조적 삶'''(vita contemplativa)을 구분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나, 고대 그리스 철학을 삶의 방식인 '''비오스'''(bios)로 개념화한 피에르 아도(Pierre Hadot)와 같은 사상가들도 이 운동과 관련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생의 철학은 독일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46] 그 외에도 야코프 폰 우크슐(Jakob von Uexküll), 한스 요나스(Hans Jonas), 플로리안 자니에츠키(Florian Znaniecki), 빅토르 프랭클(Viktor Frankl) 등이 생의 철학에 영향을 받았거나 관련된 철학자로 언급된다.
생의 철학 사상가들이 학문적 철학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은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제한적이었다. 이는 생의 철학이 가진 이성과 과학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대신 베르그송과 같은 인물들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와 같은 작가나 샤를 페기(Charles Péguy), 조르주 소렐(Georges Sorel)과 같은 정치학자 등 다른 분야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37]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생의 철학의 중요성이 줄어들었음에도,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영향은 학문적 철학 내에서 점차 명확해졌다.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나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같은 후대의 사상가들은 종종 자신들의 견해를 베르그송과 대조하며 차이점을 부각했지만, 이러한 과정 자체가 베르그송의 영향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생의 철학의 흔적은 막스 셸러(Max Scheler)와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저술에서도 발견된다.
이러한 영향은 프랑스 포스트구조주의자인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저술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들뢰즈는 스스로를 "생기론자"라고 칭했으며, 1966년에는 베르그송 연구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은 저서 "Le Bergsonisme"를 출간했다. 또한 생의 철학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나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의 저술에서 생정치나 생권력과 같은 개념 형태로 이어지기도 했다.[18]
1993년 페르디난트 펠만(Ferdinand Fellmann)은 나치즘의 이데올로기적 악용으로 인해 오랫동안 비판받아 온 생의 철학을 재평가하려는 시도를 했다. 펠만은 인간의 자기 이해가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의 코기토("나는 생각한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비합리적인 육체적, 정서적 측면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현대 분석 철학과 마음의 철학 역시 생의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한다.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Otto Friedrich Bollnow)의 저서에 따르면, "생의 철학"이라는 용어 자체는 야코비(Jacobi)에게서 찾을 수 있지만, 그 정신적 뿌리는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후대에 미친 영향력 면에서는 니체(Nietzsche)와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이 특히 중요하다. 이들의 사상은 다윈의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생물학의 새로운 지식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철학적으로 더 유익하다는 평가가 있다. 실제로 게오르크 지멜(Simmel)이나 셰러(Scheler) 등 독일어권 사상가들은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니체를 베르그송을 통해 보완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베르그송과 동시대 인물인 지멜은 제자에게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 독일어 번역을 맡겼으며, 볼노우에 따르면 베르그송의 영향은 지멜의 표현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다만 지멜은 삶의 한가운데서 죽음의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하이데거(Heidegger), 장켈레비치(Jankélévitch) 등 생의 철학의 범주를 넘어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한, "생(生)"이라는 단어는 서양 언어에서 "인생(人生)"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어, 생의 철학으로 분류되는 사상 중에는 단순히 인생론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한 경우도 있다. 셰러의 스승이었던 오이켄(Eucken)이 대표적인 예이다. 오이켄은 생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가졌으나, 오늘날 그의 저작은 거의 읽히지 않는다.
니체와 베르그송의 영향은 주로 프랑스 철학, 특히 들뢰즈(Deleuze)에게서 명확하게 나타나지만, 들뢰즈와 대립적인 위치에 있는 데리다(Derrida)에게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20세기 이후 생물학 혁명과의 관계에서도 니체와 베르그송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더불어, 베르그송은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프래그머티즘에 미친 영향 또한 간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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