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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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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일랜드섬은 북서유럽에 위치한 섬으로,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로 나뉜다. 켈트족의 문화적 영향을 받아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으며, 17세기 이후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으며 복잡한 역사를 겪었다.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이 독립하고, 1949년 아일랜드 공화국이 선포되었으며, 북아일랜드는 영국에 남았다. 현재 아일랜드 공화국은 의원내각제, 북아일랜드는 자치 정부를 갖춘 영국의 일부이며, 두 지역 모두 유럽 연합 및 공동 여행 지역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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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섬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기본 정보
아일랜드 위성 이미지
2010년 10월 위성 이미지
지역 이름아일랜드
에린 (en:Erin)
아일랜드어 이름에일
스코트어 이름에어란
위치북서유럽
좌표북위 53° 서경 8°
군도브리튼 제도
해역대서양
면적84,421 km²
해안선 길이7,527 km
최고봉카란투힐 산
최고 고도1,041 m
인구7,185,600명 (2023년 추정)
인구 순위19위
인구 밀도82.2명/km²
민족 구성백인 90.0%
아시아인 2.8%
흑인 1.2%
아랍인 0.3%
기타(혼혈 포함) 1.2%
미상 4.5%
언어영어
아일랜드어
아일랜드 수화
얼스터 스코트어
북아일랜드 수화
셸타어
시간대그리니치 평균시 (GMT)
UTC 오프셋+0
일광 절약 시간아일랜드 표준시
영국 서머 타임
일광 절약 시간 UTC 오프셋+1
ISO 3166-1IE
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ie
국가
국가아일랜드
최대 도시더블린, 인구 1,458,154명 (2022년 광역권)
국가 1영국
국가 1 행정 구역북아일랜드
국가 1 최대 도시벨파스트, 인구 671,559명 (2011년 광역권)
지리
기후온화한 해양성 기후
식생원래 낙엽수림이었으나, 현재는 숲 면적이 매우 적음
침엽수림과 관목 지대가 증가 추세
추가 정보
통화유로 (아일랜드), 파운드 스털링 (북아일랜드)

2. 명칭

아일랜드(Ireland)와 Éire|에이레ga라는 이름은 9세기에 처음 기록된 아일랜드 신화 속 여신 에리우(Ériu)에서 유래되었다. 에리우(Ériu)의 어원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흐르는 물을 의미하는 인도유럽조어에서 유래되었을 수 있다.[17]

3. 역사

아일랜드섬의 역사는 최후 빙하기 이후 기원전 16,000년경부터 시작된다. 당시 아일랜드섬은 얼음으로 덮여 있었고, 상대 해수면이 낮아 그레이트브리튼 섬과 빙교로 연결되어 있었다.[18] 기원전 14,000년경에는 이 빙교가 북아일랜드스코틀랜드 사이에만 존재했으며,[19] 기원전 12,000년경에는 아일랜드가 그레이트브리튼 섬과 완전히 분리되었다.[19] 2021년 이전까지 아일랜드에서 인간 활동의 가장 초기의 증거는 기원전 12,5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갔지만,[21] 2021년 이후 발견으로 기원전 3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22]

기원전 8,000년경 중석기 시대 공동체의 흔적이 발견되었고,[23] 기원전 4,000년 이전 신석기 시대에는 초기 유럽 농부들이 곡물, 가축, 건축물, 석조 기념물 등을 도입했다.[24][27] 케이데 필드를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 밭 시스템이 개발되었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밭 시스템 중 하나이다.[26]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2,500년경에 시작되었으며, 금속 가공 기술이 발달하여 정교한 금 장식과 보석류가 제작되었다.[27]

켈트족의 도래 시기와 방식은 논쟁의 대상이지만, 최근 유전 연구에 따르면 기원전 3천 년 중반 경 비커 문화와 함께 인도유럽어족이 확산되었다.[28] 존 T. 코흐 등은 대서양 청동기 시대 해상 무역 네트워크에서 켈트어가 발달했다고 주장한다.[29][30][31][32] 켈트족의 침략과 이주에 관한 전통적인 견해는 고고학적 증거가 부족하다.[37][38] 유전 연구는 아일랜드인이 대서양 지역에서 공유된 조상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39]

로마인은 아일랜드를 ''히베르니아'' 또는 스코티아라고 불렀으며,[43][44] 프톨레마이오스는 서기 100년에 16개의 민족이 거주했다고 기록했다.[45] 7세기부터 아일랜드 최고 왕 개념이 점차 명확해졌고, 브레혼 법이라는 초기 서면 사법 제도가 있었다.[49] ''아일랜드 연대기''는 431년에 교황 첼레스티노 1세가 주교 팔라디우스를 파견했고,[50] 이듬해 성 파트리치오가 도착했다고 기록한다.[50] 드루이드 전통은 붕괴되었고, 수도원 문화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 학습이 보존되었다.[52][53] 필사본 채색 예술, 금속 세공, 조각이 번성하여 ''켈스 서''와 같은 보물을 남겼다.[54] 9세기부터 바이킹의 약탈이 시작되었고, 이들은 더블린, 림릭, 코크, 웨스퍼드, 워터포드 등 주요 해안 정착지를 건설했다.[56][57]

1169년 캄브로-노르만 기사단이 레인스터 왕국의 디어머트 맥머로 왕의 초청으로 상륙했다.[58][59] 1171년 영국 왕 헨리 2세는 왕실 권위를 확립했고, 많은 아일랜드 왕들이 그를 종주로 받아들였다.[60] 교황 알렉산데르 3세는 헨리 2세에게 아일랜드 교회의 로마 통합을 장려했다. 1185년 헨리 2세는 아들 존 랭던에게 아일랜드 영주 칭호를 부여했고, 노르만 봉건법이 점차 게일 브레혼 법을 대체했다.

아일랜드 국왕 칭호는 1542년 헨리 8세에 의해 다시 만들어졌다. 16세기 후반 잉글랜드의 지배가 강화되어 튜더 아일랜드 정복으로 이어졌다.[67] 17세기 아일랜드 플랜테이션, 세 왕국 전쟁, 윌리엄 전쟁 동안 통제가 강화되었다. 1672년 심사법 통과 후, 형벌법에 따라 로마 가톨릭교도와 개신교 분파는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1798년 연합 아일랜드인 협회가 주도한 공화주의 반란은[75]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1800년 연합법으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이 성립되었고,[75] 아일랜드 의회는 폐지되었다. 1803년 아일랜드 반란에서 볼 수 있듯이 저항은 계속되었다.

대기근(1845-1851)으로 아일랜드 인구는 3분의 1로 감소했고, 대량 이민이 발생했다.[81] 19세기와 20세기 초 아일랜드 민족주의가 부상했고, 찰스 스튜어트 파넬 등은 자치를 위해 캠페인을 벌였다. 1914년 자치 법안이 통과되었지만,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시행이 중단되었다. 1916년 부활절 봉기 이후 아일랜드 공화주의 지지가 증가했다.[87] 신 페인1918년 총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1919년 아일랜드 공화국을 선포하고 아일랜드 독립 전쟁을 시작했다.[87]

1921년 영국-아일랜드 조약으로 아일랜드는 내정에 대한 완전한 독립을 얻었지만, 북아일랜드영국에 남았다.[88] 조약에 대한 이견으로 아일랜드 내전이 발발했다.[89] 1937년 새로운 헌법이 채택되었고,[87] 1949년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선포되었다.

북아일랜드는 1920년 아일랜드 정부법에 의해 영국의 자치 관할 구역이 되었고, 1972년까지 자체 의회를 가졌다. 민족주의자와 연합주의자 간의 폭력 사태가 발생했고,[100][101][102] 1960년대 후반 시민권 시위가 일어났다.[103] 1969년 임시 IRA가 등장하여 무장 투쟁을 시작했다. "문제" 기간 동안 3,600명 이상이 사망했다.[105] 1998년 성 금요일 협정으로 북아일랜드에 자치 정부가 복원되었고, 권력 공유 행정부가 구성되었다. 2005년 임시 IRA는 무장 캠페인 종료를 발표했다.[106]

3. 1. 선사 시대

최후 빙하기 동안, 그리고 기원전 16,000년까지 아일랜드섬의 상당 부분이 주기적으로 얼음으로 덮였다.[27] 상대 해수면은 50m 미만으로 낮아져 아일랜드와 그레이트브리튼 섬 사이에 빙교가 형성되었다(하지만 육교는 아니었다).[18] 기원전 14,000년경에는 이 빙교는 북아일랜드스코틀랜드 사이에만 존재했으며, 기원전 12,000년경에는 아일랜드가 그레이트브리튼 섬과 완전히 분리되었다.[19] 그 후, 기원전 6,100년경에 그레이트브리튼 섬은 유럽 대륙과 분리되었다.[20] 2021년 이전까지 아일랜드에서 인간 활동의 가장 초기의 증거는 기원전 12,5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는 클레어 주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도살된 곰 뼈로 입증되었다.[21] 그러나 2021년 이후, 아일랜드에서 인간 활동의 가장 초기의 증거는 기원전 33,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22]

기원전 8,000년경에는 섬 주변에서 중석기 시대 공동체의 증거가 발견되면서 더 지속적인 섬의 점유가 나타났다.[23]

기원전 4,000년 이전, 신석기 시대의 초기 유럽 농부들은 곡물 품종, 소와 양과 같은 가축, 대형 목재 건물, 석조 기념물을 도입했다.[24][27] 아일랜드 또는 그레이트브리튼 섬에서의 농업에 대한 가장 초기의 증거는 케리 주의 페리터스 만에서 발견되었으며, 그곳에서 부싯돌 칼, 소뼈, 양의 이빨이 기원전 4,350년경으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되었다.[25] 케이데 필드|Céide Fieldsga를 포함한 아일랜드의 여러 지역에서 밭 시스템이 개발되었으며, 이는 오늘날의 타이럴리의 이탄층 아래에 보존되어 있다. 광범위한 밭 시스템은, 논쟁의 여지없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이며,[26] 건식 석조 벽으로 구분된 작은 구획으로 구성되었다. 밭은 기원전 3,500년에서 기원전 3,000년 사이에 여러 세기 동안 경작되었다. 보리가 주요 작물이었다.[27]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2,500년경에 시작되었으며, 이 시기에는 바퀴, 황소의 활용, 직조 직물, 알코올 양조, 금속 가공과 같은 혁신을 통해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변화했으며,[27] 이는 브로치토크와 같은 정교한 금 장식과 보석류와 함께 새로운 무기와 도구를 생산했다.

3. 2. 켈트족의 등장

켈트족이 어떻게, 그리고 언제 아일랜드 섬에 정착했는지는 거의 한 세기 동안 논쟁의 대상이었으며, 켈트족의 이주는 고고학 및 언어학 연구의 가장 지속적인 주제 중 하나였다. 가장 최근의 유전 연구에 따르면 서유럽 전역으로의 인도유럽어족(켈트어를 포함) 확산은 기원전 3천 년 중반 경 영국과 아일랜드에 도래한 복합적인 비커 문화를 가져온 사람들과 강하게 관련되어 있다.[28] 존 T. 코흐 등은 후기 청동기 시대의 아일랜드가 영국, 서부 프랑스, 이베리아를 포함하는 대서양 청동기 시대로 불리는 해상 무역 네트워크 문화의 일부였으며, 이곳에서 켈트어가 발달했다고 주장한다.[29][30][31][32] 이는 켈트어의 기원이 할슈타트 문화가 있는 유럽 본토에 있다는 전통적인 견해와는 대조적이다.[33]

우라흐 석조 원은 케리 주 글레닌차퀸 공원 근처에 위치한 네오리스 시대의 석조 원이다.


오랫동안 지속된 전통적인 견해는 켈트어, 오검 문자, 문화가 유럽 본토에서 침략하거나 이주한 켈트족의 물결에 의해 아일랜드에 전해졌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중세 시대 아일랜드에 대한 기독교적 가짜 역사인 ''레보르 가발라 에렌'', 켈트족의 청동 창, 방패, 토크, 기타 정교하게 제작된 켈트 관련 소지품과 같이 아일랜드에서 발견되는 켈트 문화, 언어, 유물에 근거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아일랜드에는 네 번의 켈트족 침략이 있었다. 프리티니가 처음이었고, 그 다음으로 북부 갈리아와 브리튼에서 온 벨가이가 뒤따랐다. 나중에 아모리카(현재 브르타뉴)에서 온 라긴 부족이 거의 동시에 아일랜드와 브리튼을 침략했다고 하며, 마지막으로 밀레시안(게일족)은 북부 이베리아 또는 남부 갈리아에서 아일랜드에 도달했다고 한다.[34] 기원전 6세기 경부터 북부 갈리아의 벨가이 부족에 속하는 유에르니라고 불리는 두 번째 물결이 도착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섬에 자신들의 이름을 부여했다고 한다.[35][36]

이 이론은 켈트족의 대규모 이주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에 부분적으로 근거했지만, 그러한 이동을 식별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은 인정된다. 역사 언어학자들은 이러한 방법만으로는 켈트어의 흡수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 회의적이며, 일부는 켈트어 형성의 추정된 과정적 관점이 '특히 위험한 연습'이라고 말한다.[37][38] 아일랜드로의 켈트족 이주 지역에 대한 유전적 계통 조사 결과, 미토콘드리아 DNA에서는 아일랜드와 유럽 대륙의 광범위한 지역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지만, Y 염색체 패턴의 일부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두 가지를 모두 고려했을 때, 한 연구는 아일랜드의 현대 켈트어 사용자는 북부 이베리아에서 서부 스칸디나비아에 이르는 대서양 지역 전체에서 공유된 조상을 보여주는 유럽의 "대서양 켈트족"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중앙 유럽과는 실질적으로 다르다고 결론지었다.[39]

2012년, 초기 농부들의 유전자 지표가 비커 문화 이민자들에 의해 거의 제거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들은 기원전 2,500년경 이베리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지는 새로운 Y 염색체 R1b 표지를 가지고 있었다. 현대 아일랜드 남성에서 이 돌연변이의 유병률은 84%로 세계에서 가장 높으며, 스페인까지 대서양 변두리의 다른 집단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미토콘드리아 DNA의 계통에서도 유사한 유전적 대체가 일어났다.[25][40] 이러한 결론은 유전학자 데이비드 라이히가 수행한 최근 연구에서도 뒷받침된다. 그는 "비커 시대 이후의 청동기 시대 영국과 아일랜드의 유골은 이 섬의 최초 농부의 조상이 최대 10%였으며, 나머지 90%는 네덜란드에서 벨 비커 문화와 관련된 사람들과 유사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하며, 켈트어로 대표되는 인도유럽어를 도입한 것은 비커 사용자였다고 제안한다(즉, 이주와 유전적 대체에 의해 직접 도입된 새로운 언어와 문화).[28]

3. 3. 고대 및 중세 초기

게일어(Gaelic)를 사용하는 스코틀랜드인(Scoti)은 6세기 또는 그 이전에 아일랜드에서 서부 스코틀랜드로 이주했다.



아일랜드에 대한 가장 초기의 기록은 고대 그리스-로마 지리학자들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마게스트''에서 아일랜드를 ''미크라 브레타니아''(작은 브리튼)라고 불렀는데, 이는 ''메갈레 브레타니아''(대 브리튼)와 대조된다.[41] 그의 후기 작품인 ''지도''에서 프톨레마이오스는 아일랜드를 ''이우에르니아'', 브리튼을 ''알비온''으로 부른다. 이 '새로운' 이름들은 당시 섬들의 현지 이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이전 이름들은 현지인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이루어지기 전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42]

로마인 역시 아일랜드를 ''히베르니아'' 또는 스코티아로 불렀다.[43][44] 프톨레마이오스는 서기 100년에 아일랜드 전역에 16개의 민족이 거주했다고 기록했다.[45] 로마 제국과 고대 아일랜드 왕국 간의 관계는 불분명하지만, 고우란 근처 프리스톤힐의 철기 시대 정착지와 뉴그레인지 등에서 로마 동전이 다수 발견되었다.[46]

아일랜드는 경쟁 왕국들의 혼합체로 남아 있었지만, 7세기부터 국가적 왕권에 대한 개념이 아일랜드 최고 왕이라는 개념을 통해 점차 명확해졌다. 중세 아일랜드 문학은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거의 끊임없는 최고 왕들의 계보를 묘사하지만, 일부 현대 역사가들은 이 계획이 8세기에 강력한 정치 집단의 지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구성되었다고 믿는다.[47]

모든 아일랜드 왕국은 자체 왕을 가지고 있었지만 명목상 최고 왕에게 복종했다. 최고 왕은 지방 왕들 중에서 선출되었으며, 미스 왕국과 타라 언덕에 있는 의례적인 수도를 다스렸다. 이 개념은 바이킹 시대까지 정치적 현실이 되지 못했고, 그조차도 일관성이 없었다.[48] 아일랜드에는 '브레혼'으로 알려진 전문적인 법학자 계급이 시행한 초기 서면 사법 제도인 브레혼 법이 있었다. 이는 문화적으로 통합된 법치주의였다.[49]

''아일랜드 연대기''는 431년에 교황 첼레스티노 1세의 임무를 받아 주교 팔라디우스가 "이미 그리스도를 믿는" 아일랜드인들을 섬기기 위해 아일랜드에 도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50] 같은 연대기는 아일랜드의 수호성인(Patron saints of places) 중 가장 잘 알려진 성 파트리치오가 그 이듬해에 도착했다고 기록한다. 팔라디우스와 파트리치오의 임무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둘 다 일어났고[51] 이전의 드루이드 전통이 새로운 종교에 직면하여 붕괴되었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52] 아일랜드 기독교 학자들은 라틴어와 그리스어 학습, 기독교 신학 연구에 뛰어났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암흑 시대가 이어진 서유럽과는 대조적으로, 아일랜드의 기독교화 이후 등장한 수도원 문화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 학습은 초기 중세 시대에 아일랜드에서 보존되었다.[52][53]

그리스도가 옥좌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켈스 서의 한 면


필사본 채색 예술, 금속 세공 및 조각이 번성하여 ''켈스 서'', 화려한 보석류, 그리고 오늘날까지 섬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많은 조각된 석조 십자가와 같은 보물을 만들어냈다.[54] 아일랜드 수도사 성 콜룸바가 563년에 이오나에 설립한 선교는 스코틀랜드와 앵글로-색슨 잉글랜드, 그리고 로마 멸망 이후 유럽 대륙의 프랑크 왕국으로 켈트 기독교와 학습을 전파하는 히베르노-스코틀랜드 선교 사업의 시작을 알렸다.[55]

9세기부터 바이킹 약탈자들의 물결이 아일랜드 수도원과 마을을 약탈했다.[56] 이러한 약탈은 이미 아일랜드에 깊이 뿌리내린 약탈과 만성적인 전쟁의 양상에 더해졌다. 바이킹은 더블린, 림릭, 코크, 웨스퍼드, 워터포드를 비롯한 아일랜드의 주요 해안 정착지를 대부분 건설하는 데 관여했다.[57]

3. 4. 노르만족과 잉글랜드의 침략

아일랜드에서 가장 큰 노르만 건축 트림 성의 12세기 유적지, 미스 주


1169년 5월 1일, 약 6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캄브로-노르만 기사단의 원정대가 현재의 웨스포드 주 배노 스트랜드에 상륙했다. 이 원정대는 궁술가로서의 기량으로 '스트롱보우'로 알려진 제2대 펨브로크 백작 리처드 드 클레어가 이끌었다.[58] 노르만족의 팽창이 재개되는 시기에 맞춰 시작된 이 침공은 레인스터 왕국의 디어머트 맥머로 왕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59]

1166년, 맥머로는 브레이프니의 티어르난 우어 루아르크와의 전쟁 이후 프랑스 앙주로 도망쳤고, 자신의 왕국을 되찾기 위해 앙주 제국의 영국 왕 헨리 2세의 도움을 요청했다. 1171년, 헨리 2세는 원정의 전반적인 진행 상황을 검토하기 위해 아일랜드에 도착했다. 그는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확장되고 있던 침공에 대한 왕실의 권위를 다시 확립하고 싶어했다. 헨리 2세는 스트롱보우와 캄브로-노르만 군벌에 대한 권위를 성공적으로 재확립했고, 많은 아일랜드 왕들이 그를 자신들의 종주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했으며, 이는 1175년 윈저 조약에서 확인되었다.

침공은 1155년 잉글랜드인 교황 아드리아노 4세가 발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교황 칙서 ''라우다빌리터''의 조항에 의해 정당화되었다. 이 문서는 헨리 2세가 켈트 교회의 재정적, 행정적 개편과 로마 교회 체계로의 통합을 감독하기 위해 아일랜드를 통제하도록 장려한 것으로 보인다.[60] 이러한 구조 개편은 이미 1152년 켈스 종교 회의 이후 교회 차원에서 시작되었다.[61] ''라우다빌리터''의 진위 여부에 대해 상당한 논란이 있으며,[62] 그 칙서가 진본인지 위조인지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63][64] 또한 아일랜드 법률 시스템에서 효력이 없었다.

아일랜드 식민지화 이전인 1450년의 아일랜드 정치적 경계


1172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는 헨리 2세가 아일랜드 교회의 로마 통합을 더욱 진전시키도록 장려했다. 헨리 2세는 연간 기여금으로 가구당 1페니의 십일조를 부과할 권한을 받았다. 이 교회 부과금은 베드로의 십일조라고 불리며, 아일랜드에서는 자발적 기부의 형태로 남아있다. 헨리 2세는 1185년 자신의 막내 아들인 존 랭던에게 아일랜드 영주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이것은 아일랜드의 앵글로-노르만 행정을 아일랜드 영지로 정의했다. 헨리 2세의 후계자가 1199년에 예상치 못하게 사망했을 때, 잉글랜드의 존은 잉글랜드 왕위를 물려받았고 아일랜드 영지를 유지했다. 그 후 한 세기 동안, 노르만 봉건법은 게일 브레혼 법을 점차 대체하여 13세기 말까지 히베르노-노르만이 아일랜드의 광범위한 지역에 봉건 제도를 확립했다. 노르만 정착지는 남작령, 장원, 마을의 설립과 현대적 카운티 시스템의 씨앗을 뿌린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마그나 카르타의 한 버전 (아일랜드 대헌장)이 1216년에 발행되었고, 아일랜드 의회는 1297년에 설립되었다.

3. 5. 아일랜드 왕국

아일랜드 국왕 칭호는 1542년 튜더 왕조의 잉글랜드 국왕헨리 8세에 의해 다시 만들어졌다. 16세기 후반 잉글랜드의 지배가 아일랜드에서 강화되고 확장되어 튜더 아일랜드 정복으로 이어졌다. 9년 전쟁과 얼스의 도주 이후 17세기 초에는 거의 완전한 정복이 이루어졌다.[67]

이러한 통제는 아일랜드 플랜테이션, 세 왕국 전쟁, 윌리엄 전쟁을 포함한 17세기의 전쟁과 갈등 기간 동안 통합되었다. 아일랜드 연맹과 크롬웰 아일랜드 정복을 포함한 세 왕국 전쟁 중 아일랜드의 손실은 전장에서의 사상자 20,000명으로 추산된다. 전쟁과 관련된 기근, 이주, 게릴라 활동, 역병으로 인해 200,000명의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50,000명이 서인도 제도에서 노동 계약 노예로 보내졌다. 의사 총감 윌리엄 페티는 전쟁으로 인해 504,000명의 가톨릭 아일랜드인과 112,000명의 프로테스탄트 정착민이 사망하고 100,000명이 이주했다고 추정했다.[70] 전쟁 전 인구가 150만 명이었다고 가정하면, 이는 인구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17세기의 종교적 갈등은 아일랜드에 깊은 종파적 분열을 남겼다. 종교적 충성은 이제 아일랜드 국왕과 의회에 대한 충성의 법적 인식에 영향을 미쳤다. 1672년 심사법이 통과된 후, 윌리엄과 메리의 이중 군주제의 군대가 자코바이트를 상대로 승리하면서, 로마 가톨릭교도와 비국교도 개신교 분파는 아일랜드 의회 의원직에서 배제되었다. 새롭게 등장한 형벌법에 따라 아일랜드 로마 가톨릭교도와 분파는 다양한 시민권, 심지어 세습 재산 소유권까지 점점 더 박탈당했다. 1703년, 1709년, 1728년에도 추가적인 퇴행적 처벌 법안이 이어졌다. 이는 성공회 개종자들로 구성된 새로운 통치 계급을 부유하게 하는 동시에 로마 가톨릭교도와 개신교 분파를 물질적으로 불리하게 만드는 포괄적인 체계적 노력의 완성이었다.[71] 새로운 앵글로-아일랜드 통치 계급은 프로테스탄트 우위 세력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3. 6. 1798년 반란

"비니거 언덕의 캠프" - 조지 크루크생크가 윌리엄 해밀턴 맥스웰의 1845년 저서 ''1798년 아일랜드 반란의 역사''를 위해 그린 삽화


1798년, 장로교를 주축으로 한 개신교 분리주의자들은 연합 아일랜드인 협회가 주도하고 영감을 준 공화주의 반란에 로마 가톨릭교도들과 공동으로 참여하여 독립 아일랜드를 건국하려 하였다. 프랑스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반란은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군 및 민병대에 의해 진압되었다. 반란은 그해 5월 24일부터 10월 12일까지 지속되었으며, 코노트 지방에 단명했던 아일랜드 공화국 (1798년)이 수립되었다. 아일랜드 섬 전역에서 수많은 전투가 벌어졌으며 약 30,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3. 7. 그레이트브리튼과의 연합

1800년 반란의 결과로, 영국과 아일랜드 의회는 1801년 1월 1일부터 연합법을 통과시켜 아일랜드 왕국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을 합쳐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을 만들었다.[75]

아일랜드 의회에서 이 법안은 1799년 첫 시도가 실패한 후, 상당한 다수로 통과되었다. 당시 문서와 역사적 분석에 따르면, 이는 영국 비밀 정보국에서 제공한 자금과 투표를 확보하기 위한 귀족 작위, 지위 및 훈장 수여를 통해 상당한 수준의 뇌물을 통해 이루어졌다.[75] 이로써 아일랜드 의회는 폐지되고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의 연합 의회로 대체되었지만, 로버트 에멧의 실패한 1803년 아일랜드 반란에서 볼 수 있듯이 저항은 계속되었다.

린넨 산업 발전 외에도, 아일랜드는 산업 혁명에서 거의 소외되었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석탄과 철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76][77]이고, 부분적으로는 구조적으로 우월한 잉글랜드 경제와의 갑작스러운 연합의 영향 때문이었다.[78] 잉글랜드는 아일랜드를 농산물과 자본의 원천으로 여겼다.[79][80]

헨리 윌라드 프렌치의 ''아일랜드의 우리 소년들''에 나오는 대기근의 묘사


1845년에서 1851년까지의 대기근은 아일랜드를 황폐화시켰고, 이 기간 동안 아일랜드 인구는 3분의 1로 감소했다. 100만 명 이상이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했고, 기근 동안 추가로 100만 명이 이민을 갔는데, 대부분 미국과 캐나다로 갔다.[81] 그 후 1세기 동안, 기근으로 인한 경제 불황으로 인해 추가로 100만 명이 이민을 갔다.[82] 19세기 말까지 이어진 시민 불안 기간은 토지 전쟁으로 불린다. 대량 이민은 깊이 뿌리내렸고 인구는 20세기 중반까지 계속 감소했다. 기근 직전 인구는 1841년 인구 조사에서 820만 명으로 기록되었다.[83] 인구는 그 이후로 이 수준으로 돌아간 적이 없다.[84] 1961년까지 인구는 계속 감소했고, 레이트림 주는 2006년에 기근 이후 인구 증가를 기록한 마지막 아일랜드 주였다.

19세기와 20세기 초는 주로 로마 가톨릭 인구 사이에서 현대 아일랜드 민족주의의 부상을 보였다. 연합 이후 가장 뛰어난 아일랜드 정치인은 다니엘 오코넬이었다. 그는 에니스의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으나 가톨릭 신자로서 의석을 차지할 수 없었다. 오코넬은 총리이자 아일랜드 출신 군인이자 정치가인 웰링턴 공작이 주도한 강력한 캠페인을 이끌었다. 웰링턴은 가톨릭 구제법을 의회를 통과시키고, 미래의 총리 로버트 필의 도움을 받아, 조지 4세에게 법안에 서명하고 법으로 선포하도록 설득했다. 조지 3세는 1801년 연합 이후 피트 더 영거 총리가 가톨릭 해방이 1701년 왕위 계승법과 충돌한다고 우려하여 이러한 법안 도입에 반대했었다.

다니엘 오코넬은 연합법 폐지를 위한 후속 캠페인을 이끌었지만 실패했다. 19세기 후반, 찰스 스튜어트 파넬과 다른 사람들은 연합 내 자치 또는 "자치"를 위해 캠페인을 벌였다. 얼스터에 위치한 유니오니스트들은 가톨릭의 이익에 지배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치에 강력히 반대했다.[85] 의회를 통해 자치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여러 시도 끝에, 1914년에 마침내 통과될 것으로 보였다. 이를 막기 위해 에드워드 카슨의 지도 아래 얼스터 의용군이 1913년에 결성되었다.[86]

이에 따라 1914년에는 아일랜드 의용군이 설립되었으며, 이들은 자치 법안이 통과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법은 통과되었지만, 나중에 북아일랜드가 된 얼스터의 6개 카운티는 "임시적으로" 제외되었다. 그러나 이 법은 시행되기 전에 제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중단되었다. 아일랜드 의용군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약 175,000명으로 구성된 대다수는 존 레드먼드의 지휘하에 국가 의용군이라는 이름을 채택하고 아일랜드의 전쟁 참여를 지지했다. 약 13,000명의 소수는 아일랜드 의용군의 이름을 유지하고 아일랜드의 전쟁 참여에 반대했다.[86]

1916년 부활절 봉기 이후 더블린의 Sackville Street (현재 오코넬 거리)


1916년의 부활절 봉기는 후자 그룹과 더 작은 사회주의 민병대인 아일랜드 시민군에 의해 수행되었다. 영국은 봉기의 지도자 15명을 처형하고 1,000명 이상을 투옥 또는 구금함으로써 국가의 분위기를 반란군에게 유리하게 만들었다. 아일랜드 공화주의에 대한 지지는 유럽에서 진행 중인 전쟁뿐만 아니라 1918년 징병 위기로 인해 더욱 증가했다.[87]

친독립 공화당 신 페인1918년 총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1919년에는 아일랜드 공화국을 선포하고 자체 의회(다일 에이렌|Dáil Éireannga)와 정부를 세웠다. 동시에,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으로 알려진 의용군은 아일랜드 독립 전쟁을 시작했고, 1921년 7월 휴전으로 끝났다(비록 폭력은 1922년 6월까지 북아일랜드에서 대부분 계속되었지만).[87]

3. 8. 분할

1921년 12월, 영국 정부와 제2대일 대표단은 영국-아일랜드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으로 아일랜드는 내정에 대한 완전한 독립과 외교 정책에 대한 실질적인 독립을 얻었지만, 북아일랜드영국에 남을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졌고, 이를 즉시 행사했다. 또한 자유국 의회 의원들은 아일랜드 자유국 헌법에 대한 충성 서약을 하고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했다.[88] 이 조항에 대한 이견으로 민족주의 운동은 분열되었고, 아일랜드 자유국 신정부와 조약을 반대하는 이몬 데 발레라가 이끄는 세력 간에 아일랜드 내전이 발발했다. 내전은 1923년 5월 데 발레라가 휴전 명령을 내리면서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89]

3. 8. 1. 독립

앵글로-아일랜드 조약 주석이 달린 페이지. 이 조약으로 아일랜드 주 32개 중 26개 주가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독립했다.


새롭게 형성된 아일랜드 자유국은 처음 10년 동안 내전 승자들에 의해 통치되었다. 드 발레라가 권력을 잡았을 때, 그는 웨스트민스터 헌장과 정치적 상황을 이용하여 이전 정부가 이룬 더 큰 주권으로의 진전을 활용했다. 선서는 폐지되었고 1937년 새로운 헌법이 채택되었다.[87] 이는 독립 이후 정부가 추구해온 영국 제국으로부터의 점진적인 분리 과정을 완료했다. 그러나 1949년에야 공식적으로 이 나라가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선포되었다.

3. 8. 2. 북아일랜드

북아일랜드는 1920년 아일랜드 정부법에 의해 영국이 분할되면서 생겨났으며, 1972년까지 자체 의회와 총리를 가진 영국의 자치 관할 구역이었다. 북아일랜드는 영국의 일부였기 때문에 제2차 세계 대전 중 중립적이지 않았으며, 1941년에 벨파스트는 4차례의 폭격을 겪었다.[107] 징병제는 북아일랜드까지 확대되지 않았고, 북아일랜드에서 자원한 사람의 수는 아일랜드 공화국에서 자원한 사람의 수와 거의 같았다.

에드워드 카슨이 1912년 엄숙한 리그 및 언약에 서명하여 "필요한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자치법에 반대함을 선언하다.


북아일랜드는 내전의 고통을 대부분 피했지만, 분할 이후 수십 년 동안 지역 사회 간의 폭력 사태가 산발적으로 발생했다. 주로 로마 가톨릭 신자인 민족주의자들은 아일랜드를 독립 공화국으로 통일되기를 원했고, 주로 개신교 신자인 연합주의자들은 북아일랜드가 영국에 남기를 원했다. 북아일랜드의 개신교와 가톨릭 공동체는 주로 종파에 따라 투표했으며, 이는 북아일랜드 정부(1929년부터 "단순 다수제"에 의해 선출됨)가 얼스터 연합당에 의해 통제되었음을 의미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수 가톨릭 공동체는 게리맨더링과 주택 및 고용 차별과 같은 관행으로 인해 더욱 소외감을 느꼈다.[100][101][102]

1960년대 후반, 민족주의자들의 불만은 대규모 시민권 시위에서 공개적으로 제기되었으며, 이는 종종 로열리스트 반대 시위와 대립했다.[103] 정부는 대립에 대한 반응이 일방적이었고 연합주의자들에게 유리하게 가혹했다. 불안과 지역 사회 간의 폭력이 증가하면서 법과 질서가 무너졌다.[104] 북아일랜드 정부는 경찰을 지원하고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를 보호하기 위해 영국 육군에 도움을 요청했다. 1969년, 아일랜드 통일을 선호하는 준군사 조직인 임시 IRA는 아일랜드 공화국군의 분열에서 등장하여 "6개 카운티에 대한 영국의 점령"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연합주의자와 민족주의자 등 여러 그룹들이 폭력에 참여했고, "문제"로 알려진 기간이 시작되었다. 그 후 30년 동안의 분쟁으로 인해 3,600명 이상이 사망했다.[105] 문제 기간 동안의 시민 불안으로 인해 영국 정부는 1972년에 자치 통치를 중단하고 직접 통치를 시행했다. 1973년의 선닝데일 협정과 같은 문제를 정치적으로 종식시키려는 여러 차례의 시도가 실패했다. 1998년, 임시 IRA의 휴전과 다자간 회담 이후, 성 금요일 협정은 영국 및 아일랜드 정부 간의 조약으로 체결되었으며, 다자간 회담에서 합의된 텍스트를 부속했다.

협정의 내용(공식적으로 벨파스트 협정이라고 함)은 나중에 아일랜드 양쪽의 국민 투표에서 승인되었다. 이 협정은 지역 행정부에서 권력 공유를 기반으로 북아일랜드에 자치 정부를 복원했으며, 이는 새로운 북아일랜드 의회의 주요 정당에서 선출되었고, 두 주요 공동체를 위한 확고한 보호 장치가 마련되었다. 행정부는 연합주의자 및 민족주의자 정당에서 선출된 제1 장관 및 부 제1 장관이 공동으로 이끌고 있다. 1994년 임시 IRA와 로열리스트의 휴전 이후 폭력은 크게 감소했으며, 2005년 임시 IRA는 무장 캠페인의 종료를 발표했으며 독립 위원회가 다른 민족주의자 및 연합주의자 준군사 조직의 무장 해제를 감독했다.[106]

의회와 권력 분담 행정부는 여러 차례 중단되었지만 2007년에 다시 복원되었다. 그 해에 영국 정부는 북아일랜드 경찰에 대한 군사 지원을 공식적으로 종료하고 (오퍼레이션 배너) 병력 철수를 시작했다. 2012년 6월 27일, 북아일랜드의 부 제1 장관이자 전 IRA 사령관인 마틴 맥기네스는 벨파스트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악수를 하여 양측 간의 화해를 상징했다.[107]

4. 정치

아일랜드 섬의 정치 실체


아일랜드 섬은 독립 주권 국가인 아일랜드 공화국과 영국의 구성 국가인 북아일랜드로 나뉜다. 이들은 개방된 국경을 공유하며, 둘 다 공동 여행 지역의 일부로, 국경을 넘어 단일 시장에서 사람, 상품, 서비스 및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이루어진다.

아일랜드 공화국은 유럽 연합 회원국이지만, 영국은 1973년 유럽 경제 공동체(EEC)에 가입했다가 2016년 영국 유럽 연합 회원 국민 투표에서 영국 유권자의 51.9%가 탈퇴에 찬성하여 2020년 유럽 연합에서 탈퇴했다.

4. 1. 아일랜드 공화국

, 아일랜드 대통령의 공식 관저


아일랜드 공화국은 웨스트민스터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의원 내각제 국가로, 문서화된 헌법과 국민이 선출하는 대통령을 두고 있으며, 대통령의 역할은 주로 상징적이다. 오이어흐타스는 양원제 의회로, 하원에 해당하는 Dáil Éireann|달ga과 상원에 해당하는 Seanad Éireann|셔너드ga로 구성된다. 정부는 총리인 Taoiseach|티셔흐ga가 이끌며, 대통령은 Dáil|달ga의 지명을 받아 총리를 임명한다. 수도는 더블린이다.

오늘날 아일랜드 공화국은 1인당 GDP 측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이며, 2015년에는 인간 개발 지수에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발전된 국가로 평가받았다. 1995년부터 시작된 급속한 경제 성장은 켈트 호랑이 시기로 알려졌으며, 2008년 전례 없는 금융 위기와 2009년 경제 불황으로 종식되었다. 2024년 세계 평화 지수에 따르면, 아일랜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평화로운 국가이다.

4. 2. 북아일랜드

의사당. 스토몬트 영지에 위치하며, 북아일랜드 의회의 소재지이다.


북아일랜드는 자치 권한을 행사하는 행정부와 의회를 갖춘 영국의 일부이다. 행정부는 제1장관과 부제1장관이 공동으로 이끌며, 각 부처는 의회 내 각 정당의 대표성에 비례하여 할당된다. 수도는 벨파스트이다.

궁극적으로 정치 권력은 영국 정부가 보유하며, 북아일랜드는 자치 권한이 중단되는 직접 통치 기간을 간헐적으로 거쳐 왔다. 북아일랜드는 영국 하원의 650명의 국회의원 중 18명을 선출한다. 북아일랜드 장관은 영국 정부의 내각 수준 직책이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및 스코틀랜드와 함께 북아일랜드는 영국을 구성하는 세 개의 별도 법적 관할 구역 중 하나이며, 이들 모두는 최종 상소 법원으로서 영국 대법원을 공유한다.

4. 3. 범아일랜드 기구

굿 프라이데이 협정의 일환으로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는 범아일랜드 기구 및 협력 구역의 창설에 합의했다. 북아일랜드/아일랜드 각료 이사회는 아일랜드 정부와 북아일랜드 행정부의 장관들이 범아일랜드 정책에 합의하는 기구이다. 이러한 정책 분야 중 최소 6개는 관련 범아일랜드 "실행 기구"를 가져야 하며, 최소 6개는 각 관할 구역에서 별도로 시행되어야 한다. 실행 기구는 아일랜드 수로청, 식품 안전 증진 위원회, InterTradeIreland, 특별 유럽 연합 프로그램 기구, 북아일랜드/아일랜드 언어 기구, 포일, 칼링포드 및 아일랜드 등대 위원회이다.

영국-아일랜드 정부 간 회의는 아일랜드 정부와 영국 정부 간에 상호 관심사에 대한 협력을 제공하며, 특히 북아일랜드가 해당된다. 아일랜드 공화국이 북아일랜드의 통치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아일랜드 외무부 장관과 영국 북아일랜드 담당 국무장관이 공동 의장을 맡아 북아일랜드와 관련한 이양되지 않은 사항 및 이양되지 않은 범아일랜드 문제를 처리하는 "정기적이고 빈번한" 회의가 설립 조약에 따라 개최되어야 한다.

북아일랜드/아일랜드 의회 간 연합은 아일랜드 섬을 위한 공동 의회 포럼이다. 공식적인 권한은 없지만, 각 입법부 간의 공통 관심사를 논의하는 포럼으로 운영된다.

5. 지리



아일랜드는 북서유럽에 위치하며, 아일랜드해와 북해협을 통해 그레이트브리튼섬과 분리되어 있다. 가장 좁은 곳의 너비는 23km이다.[111] 서쪽에는 북대서양, 남쪽에는 켈트해가 있다. 아일랜드의 총 면적은 84421km2이며,[1][2][112] 이 중 아일랜드 공화국이 83%를 차지한다.[113] 아일랜드와 그레이트브리튼섬은 주변의 작은 섬들과 함께 영국 제도로 알려져 있지만,[114] ''영국 제도''라는 용어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 ''브리튼 제도''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한다.[115]

섬 중앙의 낮은 평원을 해안 산맥이 둘러싸고 있으며, 가장 높은 산은 케리주의 카란투어힐(Corrán Tuathail|카란투얼ga)로 해발 1039m이다.[117] 레인스터에 가장 경작 가능한 토지가 있다.[116] 서부 지역은 산악 지형과 암석 지형으로, 녹색 풍경을 자랑한다. 섀넌강은 아일랜드에서 가장 긴 강으로, 카반주에서 발원하여 리머릭을 통과한다.[117][118]

아일랜드 섬은 얼스터, 레인스터, 먼스터, 코노트의 4개 지방으로 크게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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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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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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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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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노트
아일랜드의 주 지도에서 북쪽에 위치아일랜드의 주 지도에서 동쪽에 위치아일랜드의 주 지도에서 남쪽에 위치아일랜드의 주 지도에서 서쪽에 위치


5. 1. 지질

아일랜드섬은 다양한 지질 지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쪽의 골웨이주와 도니골주 주변에는 스코틀랜드 고지대와 유사한 칼레도니아와 비슷한 중고도 변성 및 화성암 복합체가 있다. 얼스터 남동부와 롱퍼드까지 남서쪽으로, 네번까지 남쪽으로 뻗어 있는 지역은 스코틀랜드의 서던 업랜드 지역과 유사한 오르도비스기실루리아기 암석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더 남쪽으로, 웨스퍼드주 해안선을 따라, 웨일스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이 오르도비스기와 실루리아기 암석에 화강암이 관입된 지역이 있다.[119][120]

남서부, 반트리 만과 맥길리커디 릭스 산 주변에는 상당히 변형되고 가볍게 변성암데본기 암석 지역이 있다.[121] 이 "경암" 지질의 부분적인 고리는 국가 중앙부에 석탄기 석회암 층으로 덮여 있어 비교적 비옥하고 울창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리스두언바나 주변의 버렌 서해안 지역에는 잘 발달된 카르스트 지형이 있다.[122] 상당한 층상 연아연 광화 작용이 실버마인스와 타이나 주변의 석회암에서 발견된다.

탄화수소 탐사는 1970년대 중반 코크 해안의 킨세일 헤드 가스전에서 최초의 대규모 발견 이후 진행 중이다.[123][124] 1999년에는 메이요주 해안의 코리브 가스전에서 경제적으로 중요한 천연 가스 발견이 이루어졌다. 이는 북해 유전 탄화수소 지방에서 벗어난 "셰틀랜드 서쪽" 개발과 함께 서해안의 활동을 증가시켰다. 2000년에는 헬빅 유전이 발견되었으며, 28Moilbbl 이상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125]

5. 2. 기후

아일랜드섬은 온화하지만 변덕스러운 해양성 기후를 보이며, 극단적인 기온 변화는 드물다.[126] 이는 대개 남서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의 영향 때문이다.

강수량은 연중 발생하지만 전체적으로 적으며, 특히 동부 지역이 그렇다. 서부 지역은 평균적으로 더 습하고, 늦가을과 겨울철에 대서양 폭풍의 영향을 받기 쉽다. 이러한 폭풍은 때때로 이 지역에 파괴적인 바람과 많은 비를 가져오며, 눈과 우박을 동반하기도 한다. 북 골웨이 주와 동 메이요 주 지역은 연간 섬에서 가장 많은 번개 발생 횟수를 기록하는 곳으로, 연간 약 5~10일 정도 번개가 발생한다.[127] 남부의 먼스터 주는 눈이 가장 적게 오고, 북부의 얼스터 주는 가장 많이 온다.

내륙 지역은 여름에는 더 따뜻하고 겨울에는 더 춥다. 일반적으로 내륙 기상 관측소에서는 연중 약 40일 동안 0°C 이하로 기온이 내려가는 반면, 해안 관측소에서는 10일 정도이다. 아일랜드는 때때로 폭염의 영향을 받으며, 가장 최근에는 1995년, 2003년, 2006년, 2013년, 그리고 2018년에 발생했다. 2010-11년 겨울에는 이례적으로 추운 날씨를 겪었다. 2010년 12월 20일 메이요 주에서는 기온이 -17.2°C까지 떨어졌고,[128] 산악 지역에는 최대 1m의 눈이 내렸다.

6. 동식물

유럽 본토와 육교로 연결되었던 그레이트브리튼 섬과는 달리, 아일랜드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는 시점인 약 14,000년 전까지만 빙하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레이트브리튼 섬이나 유럽 본토보다 육상 동물과 식물 종이 적다.[18][19] 아일랜드에는 55종의 포유류가 있으며, 이 중 육상 포유류는 26종만이 아일랜드 고유종으로 여겨진다.[131] 붉은 여우, 고슴도치오소리와 같은 일부 종은 매우 흔하지만, 산토끼, 붉은사슴 및 소나무 족제비와 같은 다른 종은 덜 흔하다. 바다거북, 상어, 물개, 고래, 돌고래 등 수생 야생 동물은 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약 400종의 새가 아일랜드에서 기록되었으며, 이 중 많은 종이 귀제비를 포함하여 철새이다.

아일랜드에서 흔한 붉은 여우.
두 마리의 붉은여우(''Vulpes vulpes'') in 거번, 코크 주


붉은사슴 (''Cervus elaphus'') in 킬라니 국립공원


농지, 개방된 숲, 온대 활엽수 및 혼합림, 침엽수 조림지, 이탄 늪지 및 다양한 해안 서식지를 포함하여 아일랜드에는 여러 유형의 서식지가 있다. 그러나 농업은 특히 더 넓은 영역이 필요한 더 큰 야생 포유류의 경우 자연 서식지 보존을 제한하고 있다.[132] 인간과 개를 제외하고 아일랜드에는 큰 최상위 포식자가 없으므로, 여우와 같은 작은 포식자가 통제할 수 없는 반야생 사슴과 같은 동물 개체수는 연례적인 개체 수 조절을 통해 통제된다.

아일랜드에는 뱀이 없으며, 유일하게 한 종의 파충류(도마뱀)가 이 섬의 고유종이다. 멸종된 종으로는 아일랜드엘크, 큰바다쇠오리, 불곰 및 아일랜드 늑대가 있다. 황금독수리와 같이 이전에 멸종되었던 일부 새는 수십 년 동안의 지역 멸종 이후에 재도입되었다.[133]

아일랜드는 현재 유럽에서 숲이 가장 적은 국가 중 하나이다.[134][135] 중세 시대 말까지 아일랜드는 울창한 숲이었다. 고유종으로는 참나무, 물푸레나무, 개암나무, 자작나무, 사시나무, 버드나무, 마가목산사나무와 같은 낙엽수와 소나무, 주목, 호랑가시나무 및 애벌배와 같은 상록수가 있다.[136] 오늘날 아일랜드의 약 10%만이 산림이며,[12] 이 중 대부분은 외래종 조림지이고, 단 2%만이 고유 산림이다.[13][14] 유럽 국가의 평균 산림 면적은 33%가 넘는다.[12] 아일랜드 공화국에서는 약 389,356 헥타르(389356ha)가 산림청인 코일테가 소유하고 있다.[12] 고유 산림의 잔재는 섬 주변에 흩어져 있으며, 특히 킬라니 국립공원에서 찾을 수 있다.

금작화 (''Ulex europaeus'')


현재 토지의 대부분은 목초지로 덮여 있으며 다양한 야생화 종이 있다. 금작화(`Ulex europaeus`)는 야생 금작화이며 고지대에서 흔히 발견되며, 특히 서부 지역의 습한 지역에서 고사리가 풍부하다. 이 섬은 수백 종의 식물 종의 서식지이며, 그 중 일부는 섬 고유종이며, ''Spartina anglica''와 같은 일부 풀에 의해 "침입"되었다.[137]

조류 및 해초 식물상은 한랭 온대 품종이다. 총 종 수는 574종이다.[138] 이 섬은 일부 조류에 의해 침입되었으며, 그 중 일부는 현재 잘 정착되었다.[139]

온화한 기후로 인해 야자나무를 포함한 많은 아열대 종이 아일랜드에서 재배된다. 식물지리학적으로 아일랜드는 환북극 지역 내의 북방 왕국의 대서양 유럽 지역에 속한다. 이 섬은 켈트 활엽수림과 북대서양 습윤 혼합림의 두 생태 지역으로 세분될 수 있다.

6. 1. 농업의 영향

사일리지 수확, 미스 주 클로나드


오랜 역사의 농업 생산과 살충제 및 비료 사용, 오염 물질의 하천, 강, 호수 유출과 같은 현대적인 집약적 농업 방식은 아일랜드의 생물 다양성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140][141] 작물 재배와 소 사육을 위한 녹지 공간은 토착 야생종이 정착할 수 있는 공간을 제한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토지 경계를 유지하고 구획하는 데 사용되는 산울타리는 토착 야생 식물의 피난처 역할을 한다. 이 생태계는 시골 전체에 걸쳐 뻗어 있으며 한때 섬을 덮었던 생태계의 잔재를 보존하는 연결망 역할을 한다. 산울타리 환경을 보존하는 농업 방식을 지원하는 공동 농업 정책에 따른 보조금은 개혁을 겪고 있다. 공동 농업 정책은 과거에 무차별적인 비료 및 살충제 사용에 제한을 두지 않고 생산을 강조하는 등 잠재적으로 파괴적인 농업 방식을 보조했지만, 개혁을 통해 점차 생산 수준에서 보조금을 분리하고 환경 및 기타 요건을 도입했다.[142] 아일랜드 온실 가스 배출량의 32%는 농업과 관련이 있다.[143] 삼림 지역은 일반적으로 비토착종의 단일 재배 식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토착 무척추 동물을 지원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서식지를 만들 수 있다. 자연 지역은 사슴과 경작되지 않은 지역을 돌아다니는 양의 과도한 방목을 방지하기 위해 울타리가 필요하다. 이러한 방식으로의 방목은 전국 여러 지역에서 숲의 자연적인 재생을 방해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이다.[144]

7. 인구

아일랜드의 인구는 700만 명이 조금 넘으며, 아일랜드 공화국에 약 510만 명, 북아일랜드에 약 19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11] 아일랜드에는 9,000년 이상 사람들이 거주해 왔으며, 초기 역사 기록에는 크루틴ga, 코르쿠 로이그데ga, 달 리아타ga 등 다양한 집단이 기록되어 있다.

2011년 아일랜드 인구 조사 또는 2011년 북아일랜드 인구 조사에서 자신이 가톨릭 신자라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 가톨릭 신자가 다수인 지역은 파란색, 소수인 지역은 빨간색이다.


지난 1,200년 동안 바이킹, 노르만인, 웨일스인 등 다양한 민족들이 아일랜드 인구에 기여하여 아일랜드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16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인구가 급증했지만, 1740-41년 기근으로 인해 잠시 중단되었다. 1840년대의 아일랜드 대기근은 100만 명의 사망자를 냈고, 그 직후 100만 명 이상이 이민을 가도록 했다. 그 다음 세기에 걸쳐 인구는 절반 이상으로 감소했다.

아일랜드의 가장 큰 종교는 기독교이며, 로마 가톨릭교가 섬 전체 인구의 73% 이상을 차지한다. 나머지 인구 대부분은 개신교를 따르며, 가장 큰 교파는 성공회 아일랜드 교회이다.[145] 아이리쉬 타임스의 2010년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2%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종교 예배에 참석한다고 답했다.

7. 1. 행정 구역 및 정착지

전통적으로 아일랜드는 코노트(서부), 레인스터(동부), 먼스터(남부), 얼스터(북부)의 4개 로 세분된다.[147] 13세기에서 17세기 사이에 발전한 시스템에서 아일랜드는 32개의 전통적인 군으로 나뉘며, 이 중 26개 군은 아일랜드 공화국에, 6개 군은 북아일랜드에 속해 있다. 북아일랜드를 구성하는 6개 군은 모두 얼스터 주에 속한다(총 9개 군). '얼스터'는 종종 북아일랜드의 동의어로 사용되지만, 둘은 동일하지 않다.

아일랜드 공화국에서 군은 지방 정부 시스템의 기반이다. 더블린, 코크, 리머릭, 골웨이, 워터퍼드, 티퍼레리는 더 작은 행정 구역으로 나뉘었으나, 여전히 문화적 및 일부 공식적인 목적(예: 우편 주소, 아일랜드 측량청)에서는 군으로 취급된다. 북아일랜드의 군은 지방 정부 목적에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지만,[148] 공화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스포츠 리그 및 문화적, 관광적 맥락에서 비공식적인 목적으로 여전히 전통적인 경계가 사용된다.[149]

아일랜드의 도시 지위는 입법 또는 왕실 칙허로 결정된다. 그레이터 더블린 지역에 100만 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하는 더블린은 섬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579,726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벨파스트는 북아일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도시 지위는 인구 규모와 직접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14,590명의 주민이 있는 아마아일랜드 교회와 로마 가톨릭 전 아일랜드 수석 대주교의 소재지이며, 1994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의해 도시 지위가 재수여되었다(1840년 1840년 지방 정부 개혁에서 지위 상실). 아일랜드 공화국에서 킬케니는 버틀러 왕조의 소재지이며, 행정 목적상 더 이상 도시가 아니지만(2001년 지방 정부법 이후), 법적으로 그 명칭을 계속 사용할 자격이 있다.

인구별 도시 및 마을[15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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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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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파스트
#정착지도시
인구
수도권
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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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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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머릭
1더블린592,7131,458,154
2벨파스트293,298639,000
3코크222,333305,222
4리머릭102,287
5골웨이85,910
6데리85,279
7크레이가번72,301
8뉴타운애비67,599
9방고어64,596
10워터퍼드60,079


7. 2. 이민

아일랜드의 인구는 19세기 후반에 급격하게 감소했다. 1841년 800만 명이 넘었던 인구는 1921년에 400만 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인구 감소는 1845년부터 1852년까지의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인한 사망(약 100만 명)과, 20세기 후반까지 지속된 국가의 극심한 경제 상황으로 인한 이민 문화의 심화(약 300만 명) 때문이었다.

19세기 아일랜드로부터의 이민은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의 인구 증가에 기여했으며, 이들 국가에는 대규모의 아일랜드계 디아스포라가 거주하고 있다. 2006년 기준으로, 캐나다 인구의 14%인 430만 명이 아일랜드계 후손이었으며,[152] 호주 인구의 약 3분의 1이 아일랜드계 혈통을 가지고 있었다.[153] 2013년 기준으로, 4천만 명의 아일랜드계 미국인[154]과 아일랜드 조상을 자처하는 3,300만 명의 미국인이 있었다.[155]

20세기 마지막 10년 이후 경제가 성장하면서 아일랜드는 이민의 목적지가 되었다. 2004년 유럽 연합폴란드를 포함하면서 폴란드인은 중앙 유럽에서 가장 많은 이민자(15만 명 이상)[156]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리투아니아, 체코, 라트비아로부터의 상당한 이민도 있었다.[157]

특히 아일랜드 공화국은 대규모 이민을 경험했으며, 2006년 기준으로 42만 명의 외국인이 거주하여 인구의 약 10%를 차지했다.[158] 2009년 출생아의 거의 4분의 1(24%)은 아일랜드 밖에서 태어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159] 아일랜드 금융 위기에 대응하여 최대 5만 명의 동유럽 및 중부 유럽 이주 노동자들이 아일랜드를 떠났다.[160]

7. 3. 언어

2011년 아일랜드 인구 조사 또는 2011년 북아일랜드 인구 조사에서 아일랜드어를 할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


아일랜드 공화국의 두 가지 공식 언어는 아일랜드어영어이다. 각 언어는 주목할 만한 문학 작품을 만들어 냈다. 아일랜드어는 현재 소수 언어이지만, 수천 년 동안 아일랜드인의 토착 언어였으며, 철기 시대에 도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5세기에 기독교화 이후 기록되기 시작하여 스코틀랜드와 맨 섬으로 퍼져 각각 스코틀랜드 게일어맨어로 발전했다.

아일랜드어는 수많은 세기에 걸쳐 방대한 양의 기록된 텍스트를 보유하고 있으며, 언어학자들은 이를 6세기부터 10세기까지의 고대 아일랜드어, 10세기부터 13세기까지의 중세 아일랜드어, 17세기까지의 초기 근대 아일랜드어, 그리고 오늘날 사용되는 현대 아일랜드어로 구분한다. 이 언어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아일랜드의 지배적인 언어로 남아 있었으며, 라틴어, 고대 노르드어, 앵글로-노르만어 및 영어의 영향을 받았다. 영국 통치 하에 쇠퇴했지만 19세기 초까지 다수의 언어로 남아 있었으며, 그 이후 소수 언어가 되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게일 부흥은 장기적인 영향을 미쳤다. 아일랜드어는 아일랜드 학교에서 필수 과목으로 가르치지만, 가르치는 방식의 비효율성에 대한 비판이 있었으며, 대부분의 학생들은 14년의 교육을 받은 후에도 유창함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161]

현재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 모두에서 도시 아일랜드어 사용 인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더블린[162][163]벨파스트[164]에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아일랜드어 사용자의 자녀는 때때로 아일랜드어 학교(Gaelscoil|게일스코일ga)에 다닌다. 그들은 단일 언어 영어 사용자보다 교육 수준이 더 높은 경향이 있다고 주장되어 왔다.[165] 최근 연구에 따르면 도시 아일랜드어는 발음과 문법 모두 자체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166]

전통적인 시골 아일랜드어 사용 지역은 통칭하여 Gaeltacht|겔타흐트ga라고 하며, 언어적으로 쇠퇴하고 있다. 주요 Gaeltacht|겔타흐트ga 지역은 서부, 남서부 및 북서부에 위치하며 골웨이, 메이요, 도네갈, 서부 코크케리에 있으며, 덩거번 근처 워터포드미스에 더 작은 Gaeltacht|겔타흐트ga 지역이 있다.[167]

아일랜드의 영어는 노르만 침략 동안 처음 도입되었다. 영국에서 데려온 소수의 농민과 상인들이 사용했으며, 튜더 왕조가 아일랜드를 정복하기 전에 아일랜드어로 대체되었다. 튜더 왕조와 크롬웰 시대의 정복 동안 공식 언어로 도입되었다. 얼스터 플랜테이션은 얼스터에 영구적인 발판을 마련했으며, 아일랜드어 사용 추장과 귀족이 폐위된 후 다른 지역에서는 공식 언어와 상류층 언어로 남아 있었다. 19세기 동안 언어 전환이 일어나 아일랜드어를 영어로 대체하여 대다수 인구의 모국어가 되었다.[168]

오늘날 아일랜드 공화국 인구의 2% 미만이 매일 아일랜드어를 사용하며, 교육 시스템 외부에서는 10% 미만이 정기적으로 사용한다.[169] 그리고 15세 이상 인구의 38%가 "아일랜드어 사용"으로 분류된다. 북아일랜드에서 영어는 사실상 공식 언어이지만, 유럽 지역 또는 소수 언어 헌장의 제3부에 따라 특정 보호 조치를 포함하여 아일랜드어에 공식적인 인정을 부여한다. 북아일랜드 주민의 약 2%가 사용하고 아일랜드 공화국에서도 사용되는 얼스터 스코트 방언에는 더 낮은 지위 (헌장의 제2부의 인정 포함)가 부여된다.[170] 1960년대 이후 이민이 증가하면서 아시아와 동유럽에서 많은 언어가 도입되었다.

아일랜드 고유 언어로는 유목민 아일랜드 여행자의 언어인 쉘타어,[171] 아일랜드 수화 및 북아일랜드 수화가 있다.

8. 문화

아일랜드의 문화는 고대 민족의 문화 요소와 이후 이민 및 방송 문화적 영향(주로 게일 문화, 영국화, 미국화, 유럽 문화)으로 구성된다. 아일랜드는 스코틀랜드, 웨일스, 콘월, 맨 섬, 브리타니와 함께 유럽의 켈트족 국가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러한 문화적 영향의 조합은 켈트 매듭이라 불리는 복잡한 디자인에서 볼 수 있으며, 이는 중세 종교 및 세속 작품의 장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스타일은 오늘날에도 보석 및 그래픽 아트에서 인기가 있으며,[172] 독특한 스타일의 전통 아일랜드 음악과 춤은 현대 "켈트" 문화를 일반적으로 나타내는 지표가 되었다.

종교는 고대부터 섬의 문화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으며, 17세기 식민지 개척 이후 섬의 정치적 정체성과 분열의 초점이 되었다. 아일랜드의 기독교 이전 유산은 5세기에 성 패트릭의 선교 이후 켈트 교회와 융합되었다. 성 콜룸바가 시작한 히베르노-스코틀랜드 선교는 이교도 잉글랜드와 프랑크 제국에 기독교에 대한 아일랜드의 비전을 전파했다. 이러한 선교는 로마 제국 멸망 이후 유럽의 문맹 인구에게 문자를 가져왔고, 아일랜드는 "성자와 학자의 섬"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세기 이후 전 세계의 아일랜드 펍은 특히 문화 및 미식 제공을 완비한 곳에서 아일랜드 문화의 전초 기지가 되었다.

아르보 고대 십자가, 타론 주

8. 1. 예술



아일랜드의 초기 그래픽 미술과 조각은 뉴그레인지[179]와 같은 유적지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 조각이며, 청동기 시대 유물과 중세 시대의 종교 조각 및 채색 필사본을 거쳐 나타난다.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존 버틀러 예이츠, 윌리엄 오르펜, 잭 예이츠, 루이 르 브로키를 포함하여 강력한 회화 전통이 나타났다. 션 스컬리, 케빈 아보쉬, 앨리스 마허 등은 주목할 만한 현대 아일랜드 시각 예술가들이다.

8. 1. 1. 문학

아일랜드는 아일랜드어영어 모두에서 모든 분야의 세계 문학에 상당한 기여를 해왔다. 아일랜드어로 된 시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방언 시 중 하나로, 가장 초기의 예는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일랜드어는 17세기부터 영어가 널리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까지 지배적인 문학 언어로 남아 있었다. 중세 시대와 그 이후의 저명한 인물로는 고프라이드 핀 오 달라|Gofraidh Fionn Ó Dálaigh|고프라이드 핀 오 달라ga(14세기), 다비 오 브루아다르|Dáibhí Ó Bruadair|다비 오 브루아다르ga(17세기), 오간 오 라탈 (18세기) 등이 있다. 에이빌린 두 니 코닐|Eibhlín Dubh Ní Chonaill|에이빌린 두 니 코닐ga ()은 구전 전통에서 뛰어난 시인이었다. 19세기 후반에는 아일랜드어가 영어로 빠르게 대체되었다. 그러나 1900년까지 문화 민족주의자들은 게일 부흥을 시작했고, 이는 아일랜드어로 된 현대 문학의 시작을 알렸다. 이로 인해 마르틴 오 카딘|Máirtín Ó Cadhain|마르틴 오 카딘ga, 마이레 맥 안 사오이|Máire Mhac an tSaoi|마이레 맥 안 사오이ga 등을 포함한 여러 저명한 작가들이 배출되었다. 코이스켐|Coiscéim|코이스켐ga 및 클로 이아르 코나크트|Cló Iar-Chonnacht|클로 이아르 코나크트ga와 같은 아일랜드어 출판사들은 매년 수십 권의 책을 계속 출판하고 있다.

영어로는 종종 영어에서 가장 뛰어난 풍자 작가로 불리는 조나단 스위프트가 ''걸리버 여행기''와 ''소박한 제안''과 같은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아일랜드 출신의 18세기 주목할 만한 다른 작가로는 올리버 골드스미스와 리처드 브린슬리 셰리던이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의 생애를 잉글랜드에서 보냈다. 앵글로-아일랜드 소설은 19세기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찰스 키컴, 윌리엄 칼턴, (공동으로) 에디스 서머빌과 바이올렛 플로렌스 마틴과 같은 작가들이 등장했다. 격언으로 유명한 극작가이자 시인인 오스카 와일드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20세기에는 아일랜드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 4명이 배출되었다. 조지 버나드 쇼,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새뮤얼 베케트 및 셰이머스 히니가 그들이다. 노벨상 수상자는 아니지만, 제임스 조이스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조이스의 1922년 소설 ''율리시스''는 모더니즘 문학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여겨지며, 그의 삶은 매년 6월 16일 더블린에서 "블룸스데이"로 기념된다.[173] 아일랜드어의 비슷한 작가로는 마르틴 오 카딘이 있는데, 그의 1949년 소설 크레 나 킬레|Cré na Cille|크레 나 킬레ga는 모더니즘의 걸작으로 여겨지며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현대 아일랜드 문학은 종종 존 맥거헌과 셰이머스 히니와 같은 영어 작가와 마르틴 오 디레인|Máirtín Ó Direáin|마르틴 오 디레인ga 및 게일타흐트|Gaeltacht|게알타흐트ga 출신의 다른 아일랜드어 작가들을 통해 그들의 시골 유산[174]과 연결된다.

제임스 조이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

8. 1. 2. 음악과 춤

음악은 선사 시대부터 아일랜드에 존재해 왔다.[175] 초기 중세 시대에 교회가 "유럽 대륙의 교회와는 매우 달랐지만",[176] 아일랜드의 수도원과 유럽의 다른 지역 사이에는 그레고리오 성가로 알려진 것에 기여한 상당한 교류가 있었다. 종교 시설 외에, 초기 게일 아일랜드의 음악 장르는 슬픔의 음악(''goltraige''), 웃음의 음악(''geantraige'') 및 잠자는 음악(''suantraige'')의 삼위일체로 불린다.[177] 보컬 및 기악 음악(예: 하프, 파이프, 다양한 현악기)은 구두로 전달되었지만, 특히 아일랜드 하프는 아일랜드의 국가적 상징이 될 정도로 중요했다. 유럽 모델을 따른 클래식 음악은 처음에는 더블린 성,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 크라이스트 처치 대성당과 같은 앵글로-아일랜드 통치 기관과 앵글로-아일랜드 지배층의 시골 저택에서 도시 지역에서 발전했으며, 헨델의 ''메시아(1742)''의 첫 공연은 바로크 시대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19세기에 공공 콘서트는 모든 계층의 사회에 클래식 음악을 접할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정치적, 재정적 이유로 아일랜드는 너무 작아서 많은 음악가에게 생계를 제공할 수 없었으므로, 이 시대의 더 잘 알려진 아일랜드 작곡가의 이름은 이민자들에게 속한다.

아일랜드 전통 음악과 춤은 1960년대 이후 인기가 급증하고 전 세계적으로 보도되었다. 20세기 중반, 아일랜드 사회가 현대화되면서 전통 음악은 특히 도시 지역에서 인기를 잃었다.[178] 그러나 1960년대에는 더블린즈, 치프턴즈, 울프톤스, 클랜시 형제, 스위니의 사람들과 같은 그룹과 숀 오 리아다 및 크리스티 무어와 같은 개인을 중심으로 아일랜드 전통 음악에 대한 관심이 부활했다. 호슬립스, 반 모리슨, 씬 리지를 포함한 그룹과 음악가들은 아일랜드 전통 음악의 요소를 현대 록 음악에 통합했고,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전통 음악가와 록 음악가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스타일을 정기적으로 넘나들었다. 이러한 추세는 에냐, 소 닥터스, 코어스, 시네이드 오코너, 클라나드, 크랜베리스, 포그스와 같은 아티스트들의 작품에서 최근에 더 많이 볼 수 있다.

8. 2. 과학

아일랜드 공화국의 국립 극장은 1904년에 설립된 애비 극장이며, 아일랜드어 국립 극장은 골웨이에 1928년에 설립된 안 타이브데아르크|ga이다.[180][181] 숀 오케이시, 브라이언 프리엘, 세바스찬 배리, 코너 맥퍼슨, 빌리 로치와 같은 극작가들은 국제적으로 유명하다.[182]

8. 3. 스포츠

아일랜드 육상 복싱 협회는 아일랜드 섬의 아마추어 복싱을 관할한다. 아일랜드는 올림픽에서 다른 어떤 종목보다 복싱에서 더 많은 메달을 획득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마이클 카루스는 금메달, 웨인 맥컬로프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케네스 이간은 은메달[200], 패디 반스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반스는 2010년 유럽 아마추어 복싱 선수권 대회와 2010년 코먼웰스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케이티 테일러는 2005년부터 모든 유럽 및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2012년 런던 올림픽 60kg 라이트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최초의 아일랜드 여성이 되었다.[201] 켈리 해링턴은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202]

슬라이고에서의 경마


경마와 그레이하운드 경주는 아일랜드에서 모두 인기가 높다. 경마 경기가 자주 열리고, 그레이하운드 경기장에는 많은 관람객이 모인다. 아일랜드 섬은 경주마 사육과 훈련으로 유명하며, 경주견의 대규모 수출국이기도 하다.[203] 경마 부문은 주로 킬데어주에 집중되어 있다.[204]

아일랜드 육상 연맹(Athletics Ireland)은 아일랜드 육상을 관할한다. 소니아 오설리번은 트랙 5,000m에서 1995년 IAAF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금메달, 2000년 하계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했다. 길리안 오설리번은 2003년 세계 선수권 대회 20km 경보에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스프린트 허들 선수 데르발 오루크는 2006년 모스크바 세계 실내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올리브 로프네는 2009년 베를린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20km 경보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205]

골프는 매우 인기가 높으며, 골프 관광은 연간 24만 명 이상의 골프 관광객을 유치하는 주요 산업이다.[206] 2006년 라이더 컵은 킬데어 호텔 앤 골프 클럽(The K Club)에서 열렸다.[207] 패드리그 해링턴은 1947년 프레드 데일리 (골퍼)(Fred Daly) 이후 처음으로 2007년 7월 카누스티에서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아일랜드인이 되었다.[208] 2008년 7월에는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고[209], 8월에는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210] 해링턴은 78년 만에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최초의 유럽인이자 아일랜드 출신 최초의 우승자가 되었다. 북아일랜드 출신 골퍼 그라임 맥도웰은 2010년 US 오픈 (골프)에서 우승한 최초의 아일랜드 골퍼이자 1970년 이후 이 대회에서 우승한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 로리 매킬로이는 22세의 나이로 2011년 US 오픈에서 우승했고, 다렌 클라크는 2011년 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2012년 8월, 매킬로이는 8타 차이로 US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두 번째 메이저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8. 3. 1. 필드 스포츠

게일 축구는 아일랜드에서 경기 관람객 수와 지역 사회 참여 측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며, 섬에는 약 2,600개의 클럽이 있다. 2003년에는 아일랜드와 해외에서 열린 스포츠 행사 전체 관람객 수의 34%를 차지했으며, 그 뒤를 이어 헐링이 23%, 축구가 16%, 럭비가 8%를 차지했다.[189] 올-아일랜드 축구 결승전은 스포츠 일정에서 가장 많이 시청되는 행사이다.[190] 축구는 섬에서 가장 널리 행해지는 팀 스포츠이며, 북아일랜드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189][191]

타이론 vs 케리 2005년 올 아일랜드 시니어 풋볼 챔피언십 결승전


게일식 풋볼, 허링, 게일식 핸드볼은 가장 잘 알려진 아일랜드 전통 스포츠이며, 통칭 게일식 게임으로 불린다. 게일식 게임은 게일 운동 협회(GAA)의 관리하에 있으며, 여성 게일식 풋볼과 카모기(여성용 허링 변형)는 별도의 조직에서 관리한다. GAA의 본부(및 주 경기장)는 크로크 파크에 위치해 있으며 82,500명의 수용 인원을 가지고 있다.[193] 올 아일랜드 시니어 풋볼 챔피언십과 올 아일랜드 시니어 허링 챔피언십의 준결승전과 결승전을 포함한 많은 주요 GAA 경기가 그곳에서 열린다. 랜스다운 로드 경기장의 2007–2010년 재개발 기간 동안 국제 럭비와 축구가 그곳에서 열렸다.[194] 모든 GAA 선수들은 최고 수준에서도 아마추어이며, 임금을 받지 않지만 상업적 스폰서십을 통해 제한된 양의 스포츠 관련 수입을 받을 수 있다.

아일랜드 축구 협회(IFA)는 원래 아일랜드 섬 전체의 축구를 관할하는 기구였다. 이 경기는 1870년대부터 아일랜드에서 조직적으로 치러졌으며, 벨파스트의 클리프턴빌 FC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클럽이다. 특히 초기 수십 년 동안 벨파스트와 얼스터 주변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벨파스트 외곽에 위치한 일부 클럽들은 IFA가 국가 대표팀 선발과 같은 문제에서 주로 얼스터 기반 클럽을 선호한다고 생각했다. 1921년, 아일랜드 컵 준결승 재경기를 더블린에서 벨파스트로 옮긴 사건[195] 이후, 더블린 기반 클럽들은 분리하여 아일랜드 자유국의 축구 협회를 결성했다. 오늘날 남부 협회는 아일랜드 축구 협회(FAI)로 알려져 있다.

폴 오코넬이 2007년 아르헨티나와의 라인 아웃에서 공을 잡으려 하고 있다


1950년, FIFA는 협회들에게 각자 관할 구역 내의 선수들만 선발하도록 지시했으며, 1953년에는 FAI 팀을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IFA 팀을 "북아일랜드"로 부르도록 지시했다(특정 예외 사항 포함). 아일랜드 전역에서 잉글랜드 축구 리그와 스코틀랜드 축구 리그에 상당한 관심이 있다.

아일랜드는 단일 럭비 국가대표팀을 출전시키고 있으며, 단일 협회인 아일랜드 럭비 풋볼 유니온이 섬 전체의 스포츠를 관할한다. 아일랜드 럭비 팀은 모든 럭비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그 중 8번의 8강에 진출했다.[196] 아일랜드는 또한 1991년 럭비 월드컵과 1999년 럭비 월드컵 (8강전 포함) 기간 동안 경기를 개최했다. 4개의 프로 아일랜드 팀이 있으며, 4개 모두 Pro14에서 뛰고 있으며 최소 3개 팀이 하이네켄 컵을 놓고 경쟁한다. 아일랜드 럭비는 1994년 스포츠가 프로화된 이후 국제 및 지방 수준 모두에서 점점 더 경쟁력이 높아졌다. 그 기간 동안 얼스터 럭비(1999)[197], 먼스터 럭비(2006[198] 및 2008)[197], 렌스터 럭비(2009, 2011 및 2012)[197]가 하이네켄 컵에서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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