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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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동북공정)은 중국이 자국의 동북 지역 역사와 현황을 연구한다는 명분으로 추진한 일련의 프로젝트이다. 주요 내용은 고구려, 발해 등을 중국 지방 정권으로 편입시키고, 한국 문화의 기원을 중국에서 찾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대한민국 학계와 국민들 사이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 확장 의도로 해석되며, 고구려와 한국의 연관성을 부정하려는 시도로 비판받고 있다.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의 반발과 국제적인 비판이 제기되었으며, 최근에는 한복, 김치 등 한국 문화를 중국 문화로 편입하려는 '문화 동북공정'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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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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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명칭 | 동북공정 (東北工程) |
원어 명칭 | 중국어 간체: 东北工程 중국어 정체: 東北工程 |
전체 명칭 |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 (东北边疆历史与现状系列研究工程) |
로마자 표기 | Dōngběi Gōngchéng |
영어 명칭 | Northeast Project |
주관 기관 | 중국사회과학원 변경연구중심 |
연구 기간 | 2002년 ~ 2007년 |
목표 | 중국의 동북 변경 지역의 역사와 현황을 연구하여 중국의 국가적 통합을 강화하고 변경 지역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 |
내용 | |
핵심 주장 | 고구려, 발해는 중국의 지방 정권이었다. 한반도 북부는 역사적으로 중국의 영토였다. 현재의 조선민족은 중화민족의 일부이다. |
세부 연구 과제 | 요하 문명과 중화문명의 기원 연구 고조선사 연구 고구려사 연구 발해사 연구 흑수말갈사 연구 요금사 연구 청대 동북 변경 지역사 연구 중·한 관계사 연구 조선족사 연구 동북 변경 지역의 역사와 현황 연구 |
논란 및 비판 | |
주요 쟁점 | 역사 왜곡 논란: 고구려와 발해사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시도에 대한 비판 민족주의적 관점: 중국 중심의 역사 해석에 대한 비판 학문적 객관성 결여: 정치적 목적에 따른 연구라는 비판 |
한국의 반발 | 정부 차원의 항의 및 중단 요구 학계 및 시민 단체의 비판 성명 발표 역사 왜곡 시정 요구 |
영향 | 한중 관계 악화 역사 교육 및 연구에 대한 관심 증대 동북아 역사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 환기 |
관련 프로젝트 | |
서남공정 | 중국이 티베트를 포함한 서남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하려는 프로젝트 |
북방공정 | 중국이 내몽골 자치구를 포함한 북방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하려는 프로젝트 |
2. 동북공정의 배경 및 목적
동북공정은 2002년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 주도로 시작된 역사 프로젝트이다. 공식 명칭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이다.[11]
1935년 하마다 고사쿠(濱田耕作) 등에 의해 내몽골 자치구 츠펑시 훙산허우(紅山後)에서 조사가 이루어졌고, 1954년 이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을 바탕으로 훙산 문화라고 명명되었다. 훙산문화는 기원전 30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반면, 양쯔강에서 발원한 한족(漢族) 문화는 기원전 2200년경까지만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은 기원전 2200년~3000년 사이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단군조선(기원전 2333년) 이전의 환웅 시대, 즉 배달제국(기원전 3898년~기원전 2333년)을 자국 역사에 포함시키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단군과 환웅(치우천황)을 중국 시조로 편입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며, 이전에는 황제헌원만을 중국 시조로 삼았다.
1984년 랴오닝성 차오양 시 뉴허량(牛河梁)의 여신묘(女神庙)에서 흙으로 빚은 여신상이 출토되었다. 이 유물은 국가 1급 문물로 지정되어 랴오닝성 고고학 연구소에 소장되어 있으며, 2002년에는 64건의 금지출국전람문물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이와 함께 랴오허 유역의 역사와 현황을 연구하는 랴오허 공정(遼河工程)도 진행되었다. 랴오허 공정은 2003년 6월부터 '중화문명탐원공정'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일명 뿌리찾기 운동이라고도 불린다.
동북공정은 2001년에 승인되었고,[10] 2001년 6월 지린성 창춘에서 첫 조직 회의가 열렸지만, 5년 기한의 프로젝트는 2002년 2월에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11] 2002년 7월 창춘에서 "동북 변강 역사와 현황 및 고구려에 관한 제2차 학술 회의"가 개최되었다.[12]
동북공정의 예산은 "200억 위안(32.1억달러)" 또는 약 "3조 원"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13]
2. 1. 목적
표면적으로는 중국 동북 지역의 역사와 현황을 연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11][12][19] 그러나 대한민국 학계에서는 동북공정이 중국의 역사적 영토를 확장하고, 고구려와 한국의 역사적 연결고리를 끊으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평가한다.[10]1982년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개정을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을 "전국 각 민족 인민이 공동으로 건립한 통일된 다민족 국가"로 재정의했다.[14] 이러한 개념에 기반하여 1990년대부터 일부 중국 역사가들은 고구려사, 특히 고구려가 수도를 한반도로 옮기기 이전의 초기 역사를 한국사가 아닌 중국의 역사로 재규정하기 시작했다.[15] 1993년 중국에서 열린 고구려 관련 역사 학술회의에서 북한 대표단은 중국 역사가들이 고대 중국을 중화인민공화국과 동일시하는 견해를 비판하며, 이러한 견해가 역사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16]
2002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북한 대표단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동북공정을 시작했다. 동북공정은 중국 사회과학원이 수행한 일련의 역사 연구 프로젝트의 일부로, 중화 문명 탐원 공정 및 하상주 단대 공정에 앞서 진행되었다.[17] 이러한 프로젝트는 현대적인 중화민족 또는 "통일된 다민족 국가"의 개념을 기반으로 하며, 이는 고대 중국을 현대 중국의 영토 경계 내에서 파악한다.[18]
동북공정은 이 지역의 역사적 왕국, 정치체 및 민족에 대한 연구, 그리고 영토 분쟁 및 이민과 같은 현대적 문제에 대한 연구로 구성된다.[19] 동북공정에서 다루는 전근대 역사 왕국 및 정치체는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발해, 원나라, 명나라, 조선, 청나라이다. 동북공정에서 다루는 현대 역사 및 현대 국가는 일본 제국, 소련, 대한민국(남한)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이다. 동북공정의 연구는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를 고대 중국 제국의 지방 정부로 주장해왔다. 이는 이러한 왕국들을 한국 역사에서 주권 독립 국가로 간주하는 다른 역사 서술과 대조된다.
중국 측은 언어학적 관점에서 볼 때, 현대의 대한민국(남한)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신라와 고구려는 민족적, 언어적으로 거리가 있으며[32], 고구려 및 고구려 왕족이 건국한 백제를 현재의 대한민국(남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으로 이어지는 국가로 보는 충분한 근거가 없으며, 만주족의 기원인 여진족과 고구려의 기원은 같은 퉁구스계 민족으로 여겨져[33], 고구려의 옛 영토를 영토로 포함하고, 고구려와 민족적으로 동계인 만주족을 국민으로 다수 거느리고 있는 중국과 대한민국(남한)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생모는 중국의 영웅인 하백의 딸인 유화부인이며, 주몽이 중국인의 혈통을 이었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고[34][35][36],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는 탁리국 사람이며, 내등호남은 탁리국이 송화강 지류에 거주하던 다우르족이라고 지적했다[37]고 주장한다.
『삼국사기』의 고구려 본기, 광개토왕기, 백제 본기, 의자왕기에 따르면, 고구려 왕들은 중국황제의 손자인 고양씨, 중국 황제의 증손자인 고신씨의 후손이라고 칭했다.[38][39][40][41][42]
『일주서』「왕회해」는 고대 중국의 소수 민족과 그 분포에 대해 기술하고 있으며, 진의 공조에 의한 주석이 달려 있는데, 「고이」에 대해 「고이 동북 이 고구려」라고 주석하여 고구려를 고이족의 자손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 학계는 고구려의 선조인 고이족과 고양씨를 연결하여 고이족의 기원을 고양씨로 확정하고, 「난생 신화, 조우관(새의 깃털로 장식된 모자)의 풍습, 귀신 사상이 공통적이다」고 하여 고구려를 고양씨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69] 중국 학계는 또 다른 증거로 『진서』「모용운재기」를 들고 있는데, 모용운의 조부인 고화는 고구려족이지만, 고양씨의 후예이므로 고성을 사용하고, 모용운의 원래 이름은 "고운"이라는 기사이다. 중국 학계는 「고양씨→고이족→고구려족」으로 연결하여 고구려의 조상은 고이족이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양씨라고 보고 있다.[69]
『삼국사기』에서는 고구려 왕 계통에 대해 본기의 시조왕의 기재 처음에 고구려에서는 「시조 동명성왕 성은 고씨. 휘는 주몽」이라고 써서 왕계의 성을 명기하고 있지만, 고구려 왕에 대해서는 시조왕에만 성 「고」가 쓰여 있다. 고구려 왕의 성 「고」는 『삼국사기』의 시조조와 『삼국유사』의 왕력과 『삼국유사』 기이 제1「고구려」조에 쓰여 있지만, 『삼국유사』「고구려」조가 가장 자세하며, 「국호는 고구려. 이로 인해 고를 씨로 삼았다. 본래 성은 해씨였다. 오늘날 말하기를 이는 천제의 아들이며, 햇빛을 받아 태어났다. 지금 스스로 낳았다. 그러므로 스스로 고를 대신했다」라고 적고 있다. 삼품창영은 「고구려의 고를 따서 씨로 삼았다고 하지만, 구려 왕이 고씨를 칭한 첫 등장은 『송서』 고구려전에 『고구려왕 고련. 진 안제 의희 9년』이라고 되어 있는 고련(장수왕)이다. 광개토왕(장수왕의 아버지) 17년 조에 『춘 3월. 사신을 북연에 파견하였다. 또한 종족을 서술하였다. 북연왕 운이 시어사 이발을 파견하여 이에 답하였다. 운의 조부 고화는 구려의 지파였다. 스스로 고양씨의 후예라고 하여 고를 씨로 삼았다』라고 되어 있으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의 이 기사는 『자치통감』에서 인용하고 있다. 즉, 고구려 왕이 고씨를 칭한 것은 북연왕의 고씨에서 유래한 것이며, 고구려의 고를 따온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43]
『삼국사기』 권32에 따르면「고구려에는 음사가 많아 영성, 일신, 기자신을 섬겼다.[44]」,『구당서』고려전에는「그 풍속에는 음사가 많고, 영성신, 일신, 가한신, 기자신을 섬겼다.[45]」,『구당서』고려전에는「식용은 변두, 보궤, 존조, 뢰세, 꽤나 기자의 유풍이 있었다.[46]」,『신당서』고려전에는「속에 음사가 많아, 영성 및 일, 기자를 신으로 숭배했다.[47]」라고 하며, 고구려 왕은 조선을 정복하고 기자조선을 건국한 중국은나라의 정치가인 중국인 기자의 후손이라고 칭하며, 기자를 조상으로 숭배하고, 기자의 계승자라고 주장했다. 그 때문에, 고구려 왕은 기자의 사당을 세워 숭배했으며, 사계절 내내 제사를 지냈다. 박대종(대종언어연구소 소장)은 고구려는 기자를 고구려의 시조, 조선의 조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48]
백제의 시조인 온조의 생모는 중국인이다.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시조인 온조의 아버지는 고구려의 시조인 추모 또는 주몽이라고 적혀 있다.[49] 『삼국사기』에 주몽이 졸본부여에 이르렀을 때 월군의 딸을 얻어 두 아들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50] "두 아들"은 백제의 시조가 되는 온조와 비류이며, 이노우에 히데오는 "월군"을 "중국저장성소흥 지방인가"라고 주석하고 있다.[50] 즉, 저장성 소흥의 딸이 요녕성단동시환인현에 와서 주몽과의 사이에 백제의 시조가 되는 온조와 비류를 낳는다. 배근흥(산시사범대학) 및 갈계용은 서안에서 출토된 재당 백제인 묘지의 석문에서, 망명 백제 귀족에게 "초국 낭야"를 본관으로 하는 인물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50] 산둥반도에서 강남에 이르는 중국 연안부와 백제의 관계에서, 중국 연안에서 동쪽으로 건너간 집단, 산둥에서 요동을 거쳐 한반도에 도달한 것으로 생각되는 집단과 같은 행적을 따라간 집단과의 관련성이 지적되고 있다.[50]
『광운』에는 백제왕의 부여씨는 "중국오의 부개에서 나온 부여씨"라고 기록되어 있다.
3. 동북공정의 주요 주장
동북공정은 고구려를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 정권으로 규정하고, 고구려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주장을 펼친다.[105] 이외에도 발해와 고조선 등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1982년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이 개정되어 중화인민공화국을 "전국 각 민족 인민이 공동으로 건립한 통일된 다민족 국가"로 재정의했다.[14] 이러한 개념에 기반하여, 1990년대 일부 중국 역사가들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사로 재규정하기 시작했다.[15]
중국은 고구려가 퉁구스족 국가이며, 현대 중국에서 만주족과 같은 퉁구스 민족은 중국 국민이므로 중국의 다민족 역사 문명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동북공정은 중국 사회과학원이 수행한 역사 연구 프로젝트의 일부이며, 중화 문명 탐원 공정 및 하상주 단대 공정에 앞서 진행되었다.[17] 이러한 프로젝트는 현대적인 중화민족 또는 "통일된 다민족 국가"의 개념을 기반으로 하며, 고대 중국을 현대 중국의 영토 경계 내에서 파악한다.[18]
동북공정은 만주와 한반도를 포함하여 주변 국가와 역사적 영토가 중첩되는 지역에 대한 연구를 포함한다.[19] 동북공정에서 다루는 전근대 역사 왕국 및 정치체는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발해, 원나라, 명나라, 조선, 청나라 등이다. 동북공정의 연구는 이들 국가를 고대 중국 제국의 지방 정부로 주장해왔다.
2001년에 동북 공정이 승인되었다.[10] 첫 번째 조직 회의는 2001년 6월 지린성 창춘에서 열렸지만, 5년 프로젝트는 2002년 2월에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11]
3. 1. 고구려 관련 주장
중화인민공화국의 동북공정에서는 고구려가 중국 소수민족의 지방 정권이라고 주장한다.[105]고구려는 중국 영토 내에서 건국되었으며, 그 범위가 한사군(중국이 설치한 4개의 행정 구역)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105] 또한,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 주민들이 한족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 정권이었다고 주장한다.[105]
동북공정에서는 고구려의 종족이 중국 소수민족이었다고 주장한다.[106]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반론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국가 | 국호 | 민족 | 중심지 | 역사서 | 유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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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리아(Korea) | 한민족 | 평양 |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제왕운기, 동명왕편 | 고구려 고분군 |
-- | 환런(졸본), 지안(국내성) | 고대 고구려 왕국 수도와 묘지 |
- 역사 속인주의 관점: 현대 한국의 영문 국호는 코리아(Korea)로 고구려의 5세기 국호 고려에서 기원하였다. 또한 한국은 역사적으로 고려 왕조의 삼국사기, 조선 왕조의 삼국사절요 등 고구려를 꾸준히 자국사로 인식하였으며 고구려의 지배층인 예맥족은 진한족과 함께 한민족의 조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반면 중국이 고구려를 자국사로 인식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며 과연 중국의 말처럼 현대의 동북3성 주민이 고구려의 문화와 정체성을 이었는지에 대해선 검증된 게 없는 상태이다. 애초에 동북3성 주민의 대부분은 산둥 반도에서 이주한 한족들의 후손이다.
- 역사 속지주의 관점: 그 나라의 인구 대부분과 종묘사직은 보통 중심지에 위치하므로 그 역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려면 중심지의 유무가 가장 중요하다. 중국은 고구려 초중기 중심지인 환런(졸본), 지안(국내성)와 그 유적인 고대 고구려 왕국 수도와 묘지를 보유하고 있으나 한국도 고구려 중후기의 중심지인 평양과 그 유적인 고구려 고분군을 보유하고 있어 기존의 인식과 달리 속지주의 관점에서도 중국이 딱히 한국보다 정통성있다 보기 힘들다. 또한 그 비등하다는 속지주의마저도 디테일하게 따지면 평양쪽이 비교적 최근의 수도였기 때문에 현대인과 더 밀접하고, 중국의 지방 관리를 상대하는 수준이었던 졸본·국내성 시대와 달리 고수전쟁·고당전쟁 같은 대규모 국지전을 치른 평양 시대에 상징성이 좀 더 있는 게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속지주의 관점만 보면 고구려에 대한 정통성은 두 지역이 같거나 혹은 상징성에서 한국이 앞선다. 여기에 속인주의 관점을 더하면 고구려사가 한국사임은 분명해진다.
1993년, 중국에서 열린 고구려 관련 역사 학술회의에 참석한 북한 대표단은 중국 역사가들이 고대 중국을 중화인민공화국과 동일시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그는 이러한 견해가 역사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16]
언어학적 관점에서 볼 때, 현대의 한국과 북한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신라와 고구려는 민족적, 언어적으로 거리가 있으며[32], 고구려 및 고구려 왕족이 건국한 백제를 현재의 한국, 북한으로 이어지는 국가로 보는 충분한 근거가 없으며, 만주족의 기원인 여진족과 고구려의 기원은 같은 퉁구스계 민족으로 여겨져[33], 고구려의 옛 영토를 영토로 포함하고, 고구려와 민족적으로 동계인 만주족을 국민으로 다수 거느리고 있는 중국과 한국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생모는 중국의 영웅인 하백의 딸인 유화부인이며, 주몽이 중국인의 혈통을 이었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34][35][36]。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는 탁리국 사람이며, 내등호남은 탁리국이 송화강 지류에 거주하던 다우르족이라고 지적했다[37]。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광개토왕기, 백제 본기, 의자왕기에 따르면, 고구려 왕들은 중국황제의 손자인 고양씨, 중국 황제의 증손자인 고신씨의 후손이라고 칭했다[38][39][40][41][42]。
『일주서』「왕회해」는 고대 중국의 소수 민족과 그 분포에 대해 기술하고 있으며, 진의 공조에 의한 주석이 달려 있는데, 「고이」에 대해 「고이 동북 이 고구려」라고 주석하여 고구려를 고이족의 자손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 학계는 고구려의 선조인 고이족과 고양씨를 연결하여 고이족의 기원을 고양씨로 확정하고, 「난생 신화, 조우관(새의 깃털로 장식된 모자)의 풍습, 귀신사상이 공통적이다」고 하여 고구려를 고양씨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69]。 중국 학계는 또 다른 증거로 『진서』「모용운재기」를 들고 있는데, 모용운의 조부인 고화는 고구려족이지만, 고양씨의 후예이므로 고성을 사용하고, 모용운의 원래 이름은 "고운"이라는 기사이다. 중국 학계는 「고양씨→고이족→고구려족」으로 연결하여 고구려의 조상은 고이족이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양씨라고 보고 있다[69]。
『삼국사기』에서는 고구려 왕 계통에 대해 본기의 시조왕의 기재 처음에 고구려에서는 「시조 동명성왕 성은 고씨. 휘는 주몽」이라고 써서 왕계의 성을 명기하고 있지만, 고구려 왕에 대해서는 시조왕에만 성 「고」가 쓰여 있다. 고구려 왕의 성 「고」는 『삼국사기』의 시조조와 『삼국유사』의 왕력과 『삼국유사』 기이 제1「고구려」조에 쓰여 있지만, 『삼국유사』「고구려」조가 가장 자세하며, 「국호는 고구려. 이로 인해 고를 씨로 삼았다. 본래 성은 해씨였다. 오늘날 말하기를 이는 천제의 아들이며, 햇빛을 받아 태어났다. 지금 스스로 낳았다. 그러므로 스스로 고를 대신했다」라고 적고 있으며, 삼품창영은 「고구려의 고를 따서 씨로 삼았다고 하지만, 구려 왕이 고씨를 칭한 첫 등장은 『송서』고구려전에 『고구려왕 고련. 진 안제 의희 9년』이라고 되어 있는 고련(장수왕)이다. 광개토왕 (장수왕의 아버지) 17년 조에 『춘 3월. 사신을 북연에 파견하였다. 또한 종족을 서술하였다. 북연왕 운이 시어사 이발을 파견하여 이에 답하였다. 운의 조부 고화는 구려의 지파였다. 스스로 고양씨의 후예라고 하여 고를 씨로 삼았다』라고 되어 있으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의 이 기사는 『자치통감』에서 인용하고 있다. 즉, 고구려 왕이 고씨를 칭한 것은 북연왕의 고씨에서 유래한 것이며, 고구려의 고를 따온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43]。
『삼국사기』 권32에 따르면, "고구려에는 음사(淫祀)가 많아 영성(靈星) 및 일(日), 기자(箕子)를 신으로 모셨다."라고 하였다.[44] 『구당서』고려전에는 "그 풍속에는 음사(淫祀)가 많고, 영성신(靈星神), 일신(日神), 가한신(可汗神), 기자신(箕子神)을 섬겼다."라고 하였다.[45] 『구당서』고려전에는 "식용은 변두, 보궤, 존조, 뢰세, 꽤나 기자의 유풍이 있었다."라고 하였다.[46] 『신당서』고려전에는 "음사(淫祀)가 많아 영성(靈星) 및 일(日), 기자(箕子)를 신으로 숭배했다."라고 하였다.[47] 고구려 왕은 조선을 정복하고 기자조선을 건국한 중국은나라의 정치가인 중국인 기자의 후손이라고 칭하며, 기자를 조상으로 숭배하고, 기자의 계승자라고 주장했다. 그 때문에, 고구려 왕은 기자의 사당을 세워 숭배했으며, 사계를 통해 제사를 지냈다. 박대종(대종언어연구소 소장)은 고구려는 기자를 고구려의 시조, 조선의 조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48]。
3. 2. 발해 관련 주장
중국은 발해 건국의 주도 세력이 고구려인이 아니라 말갈족이며, 발해는 당나라의 지방 정권이었다고 주장한다.[19] 또한, 발해 멸망 후 발해인은 요나라와 금나라로 이주하여 중화 민족으로 통합되었다고 주장한다.[19]3. 3. 기타 주장
중국은 기자조선이 중국인이 한반도에 세운 첫 번째 국가이며, 주나라와 진나라에 복속되었다고 주장한다.[19] 이는 고조선을 한국 역사에서 주권 독립 국가로 간주하는 일반적인 역사 서술과 대조된다.[19]4. 동북공정에 대한 반박
동북공정은 대부분의 한국인이 자신들의 역사로 간주하는 고구려를 중국 역사에 편입하려는 시도로, 2004년 한국에서 광범위한 언론 보도와 함께 대중의 분노를 일으켰다.[20][21] 이는 한국 및 여러 국가의 학계 전문가들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았으며, 심지어 중국 내에서도 비판이 제기되었다.[22]
동북공정의 고구려사 왜곡은 한국에서 중국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으며, 양국 간의 전략적, 외교적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24] 한국에서 동북공정은 중국의 역사 수정주의와 팽창주의를 상징하게 되었고, 2007년 공식적으로 종료된 후에도 계속 언급되고 있다.[25]
그러나 동북공정의 종료 여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일부 한국 학자들은 동북공정의 종료가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 둥베이 지역 지방 정부들은 중앙 정부의 승인하에 프로젝트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으며, 많은 관광지에서 고구려를 중국 소수 민족의 지방 정부로 소개하는 표지판과 팜플렛을 볼 수 있다.[26]
- 2001-2008년 중화문명탐원공정은 동북공정의 연장선으로, 황하 문명 대신 요하 문명을 고대 중국 문명의 기원으로 정의하려는 시도로 여겨진다. 요하 문명의 대표적인 훙산 문화를 중국 고대 역사의 기원으로 포함하려는 시도는 고조선을 근거로 한 한국 측 주장과 논쟁을 일으켰다.
- 2001년 이후 변경된 중국 역사 교육 과정은 한반도 역사에 대한 논의를 대폭 축소했다. 수나라의 고구려 침략 실패와 발해를 당나라의 지방 정부로 기록하는 등 역사 왜곡이 이루어지고 있다.
- 만리장성의 길이를 발해와 고구려 성벽까지 확장하려는 중국 정부의 시도 역시 동북공정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한국 학자들은 중국 정부의 역사적 세부 사항 변경과 고구려 및 발해 영토의 역사적 유물 파괴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27]
중국은 1996년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동북부 역사 연구를 중점 연구 과제로 결정하고, 2002년부터 동북공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03년경 고구려와 발해를 "고대 중국에 있던 소수 민족인 부여인의 일부가 세운 정권"이며 "중국의 지방 정권"이라는 주장이 중국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52] 2007년에는 백제와 신라도 "중국사의 일부"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53]
중국은 광개토대왕릉비와 집안의 장군총을 포함한 고구려 유적의 세계 유산 등재를 추진하여 2004년 세계 유산 위원회에서 고구려 초기 도읍과 고분을 세계 유산으로 등록했다. 다음 날 신화사는 "고구려는 역대 중국 왕조와 예속 관계에 있었고, 중원 왕조의 관할 하에 있던 지방 정권"이라고 보도했다.[54]
동북공정 주창자들은 "고구려는 중국 역사", "신라의 삼국 통일은 백제 통합에 불과"하며 "고구려 영토와 주민의 대부분이 중국에 귀속되었다"고 주장한다.[55][56]
중국 내 고구려 산성, 박물관, 유적지 등에서는 고구려를 "중화 민족이 세운 나라", "중국 동북 지방의 소수 민족 정권" 등으로 왜곡하여 소개하고 있다.[57][62][63][64]
중국 언론은 명·청 시대에 한국이 중국의 종속국이었다고 주장하며, 한국의 역사 주장을 터무니없는 억지라고 비판했다.[58] 중화인민공화국 문화부와 중화인민공화국 교육부는 고구려를 "중국 동북 지방의 소수 민족 정권"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59][60]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는 한국 고대사에서 고구려를 삭제하고, 임나일본부를 언급하며 일본의 한반도 남부 지배를 주장했다.[61]
중국 교과서는 고조선, 고구려, 부여를 한국사가 아니라고 기술하며, 한국사의 시작을 통일 신라부터로 규정하고 있다.[65] 중국사회과학원은 발해 건국의 주도 세력이 고구려인이 아니라 말갈족이며, 발해는 당나라의 종속국이었다고 주장한다.[66] 기자조선의 실존을 주장하며, 중국인이 한반도의 첫 번째 국가를 건국했다고 주장한다.[66]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우크라이나 주재 중국 대사관과 중국 관영 매체들은 고구려를 "중국 고대 변경 소수 민족 정권"이라고 기술하고 있다.[67][68] 중국은 고구려·발해뿐만 아니라 고조선까지 자국 역사로 기술한 교과서를 출판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67][68]
중국 내 고구려 유적지에서는 고구려가 당나라와의 내전에서 멸망한 중국 소수 민족 정권이라고 왜곡하고 있다.[69] 중국 대학 역사 교재는 삼국 시대에서 고구려를 제외하고, 나당 전쟁을 당나라의 고구려 징벌로 기술하고 있다.[70]
2017년 미중 정상 회담에서 시진핑은 도널드 트럼프에게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71][72] 이는 동북공정의 영향을 받은 발언으로 해석된다.[71]
유튜브에서는 한국인이 만주족의 고구려 역사를 도용하고 있다는 영상이 퍼지면서 한국 언론의 반발을 사고 있다.[73][74]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복을 입은 여성이 중국 소수 민족 대표로 출연한 것에 대해, 한국에서는 "중국이 한국을 소수 민족 취급했다"고 비판하며, '문화 동북 공정'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104][100]
4. 1. 고구려사 정통성
현대 한국의 국호 '코리아(Korea)'는 고구려의 국호 '고려'에서 기원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고려 왕조의 삼국사기, 조선 왕조의 삼국사절요 등 고구려를 꾸준히 자국사로 인식해왔으며, 고구려의 지배층인 예맥족은 한민족의 조상으로 여겨진다. 고구려의 중심지는 평양이었으며, 이는 속지주의 관점에서도 한국이 고구려사에 대한 정통성을 갖는 근거가 된다.국가 | 국호 | 민족 | 중심지 | 역사서 | 유산 |
---|---|---|---|---|---|
한국 | 코리아(Korea) | 한민족 | 평양 |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제왕운기, 동명왕편 | 고구려 고분군 |
중국 | 환런(졸본), 지안(국내성) | 고대 고구려 왕국 수도와 묘지 |
속지주의 관점에서만 보면 고구려에 대한 정통성은 한국과 중국 두 지역이 같거나 혹은 상징성에서 한국이 앞선다. 여기에 속인주의 관점을 더하면 고구려사가 한국사임은 분명해진다.
5.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과 국제사회의 반응
동북공정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역사로 간주하는 고구려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시도로 인해 2004년 한국에서 광범위한 언론 보도와 함께 대중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23] 동북공정은 한국 및 여러 국가의 학계 전문가들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았으며, 심지어 중국 내에서도 비판을 받았다.[20][21][22]
동북공정 논란은 한국에서 중국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전환점을 가져왔으며, 양국 간의 전략적, 외교적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24] 한국에서 동북공정은 중국의 역사 수정주의와 급진적인 정치적 팽창주의를 상징하게 되었고, 2007년 공식적으로 종료된 후에도 계속 언급되고 있다.[25] 그러나 동북공정이 실제로 종료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아있다.
2017년 4월 7일, 마라라고에서 열린 미·중 정상 회담에서 시진핑 총서기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라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북공정에 대한 논란은 더욱 증폭되었다.[71][72]
유튜브에서는 한국인이 만주족의 고구려 역사를 도용하고 있다는 영상이 퍼지면서 한국 언론이 반발하기도 했다.[73] "Korean are stealing Manchu's Koguri history(한국인이 만주족의 고구려 역사를 훔치고 있다)"라는 영상은 "현대 한국인은 고구려와 혈연적 관련성이 약하고, 고구려의 혈통을 계승한 것은 만주족"이라며 "역사 도둑질 그만하라"고 주장했다.[74]
북한은 동북공정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에서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사에 편입하려는 것은 노골적인 역사 왜곡"이라고 언급한 것이 유일한 대응이었다.[90]
5. 1. 한국의 대응
2000년대 들어 한국 언론에서 동북공정의 존재와 그 연구 내용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역사 연구자들과 정치인들은 강력히 항의했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동북공정에 대한 격렬한 항의 활동이 벌어졌다. 학계에서는 "중국 고구려사 왜곡 대책 위원회"가 조직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고구려 연구 재단이 설립되었다.[81]2006년에는 새롭게 발해 및 백두산의 "역사적 귀속" 문제까지 확대되었다. 2004년 8월 양국 정부 간에 "역사 해석의 문제가 정치 쟁점화되는 것을 막는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대중 외교를 중시하는 노무현 대통령은 동북공정이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인식이 아니라고 보고 오랫동안 공식적인 항의를 하지 않았지만,[82] 언론에서 정부 비판이 거세지자, 2006년 9월 헬싱키에서 개최된 ASEM 정상 회의에서,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에게 "학술 연구 기관 차원이라고 하더라도 양국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항의를 했다.[83]
2004년, 스페인 언론의 『엘 문도』는 "한국은 4228년 동안 중국의 식민지였다", "한반도는 오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침략을 받아왔다. 중국에 1895년까지 속해 있었지만, 1910년의 한일 합병까지 15년 동안 독립을 맛보기도 했다", "건국 시점인 기원전 2333년부터 청일 전쟁의 1895년까지 4228년 동안 중국의 종속국이었다"고 보도하며, 일본이 중국의 식민지였던 한국을 구원한 것처럼 보도했다.[84][85] 이 보도에 대해 VANK의 박기태 단장은 "한국이 원래 중국 식민지였다고 전한 CNN 텔레비전, 평양을 중국 식민지라고 소개한 히스토리 채널 등의 사례와 같은 맥락의 것", "중국이 동북공정의 글로벌 전략의 일환으로, 전 세계의 언론을 통해 한국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증거"라고 비판했다.[84]
한국의 방송사들은 『주몽』 (2006년 MBC), 『태왕사신기』 (2007년 MBC), 『바람의 나라』 (2008년 KBS2), 『연개소문』 (2006년 SBS), 『대조영』 (2006년 KBS) 등 고구려와 발해를 소재로 한 역사 드라마를 연이어 제작했다. 한때 한국의 역사 드라마는 고대사를 소재로 한 작품이 휩쓸었다. 이는 내외에 "고구려와 발해는 한국의 역사"임을 알리려는 의도가 있었으나,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방송 금지된 작품도 있었다.
2014년, 한국 배우인 김수현과 전지현이 출연한 중국 상품(생수)의 원산지 표기가 (백두산이 아닌) 장백산으로 되어 "백두산을 중국 영토로 하려는 중국의 역사 왜곡 움직임 '동북공정'에 돈벌이로 이용당했다"는 비판을 받아, CF 계약을 해소하고 사과했고, 중국에서는 공산당 계열 언론이 맹반발하는 사건도 일어났다.[88]
종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의 역사 문제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한국 언론도,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더 심각한 역사 왜곡"으로 간주하는 등, 엄격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89]
5. 2. 국제사회의 반응
국제 학계에서도 동북공정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제기되었다. 동북공정은 대한민국 및 여러 다른 국가의 학계 전문가들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았으며, 심지어 중화인민공화국 자체에서도 비판을 받았다.[20][21][22] 특히 고구려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시도는 한국 민족주의에서 고구려가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 때문에 더욱 큰 논란을 야기했다.[23]일부 학자들은 동북공정이 중국의 역사 수정주의와 급진적인 정치적 팽창주의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한다.[25] 2007년 동북공정이 공식적으로 종료된 후에도 그 영향은 계속되고 있으며, 동북공정의 종료 여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 둥베이 지역 지방 정부들은 중앙 정부의 승인 하에 여전히 프로젝트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으며, 많은 관광지에서 고구려를 중국 소수 민족의 지방 정부로 소개하는 표지판과 팜플렛을 찾아볼 수 있다.[26]
- 2001~2008년 중화문명탐원공정 또한 동북공정의 연장선으로, 널리 알려진 황하 문명 대신 요하 문명을 고대 중국 문명의 기원으로 정의하려는 시도로 주장된다.
- 2001년 역사 교육 과정 표준 이후 변경된 중국 역사 교육은 중국 역사 교육을 감독하는 정부 정책으로, 한반도 역사에 대한 논의를 대폭 축소했다.
- 만리장성의 총 길이를 발해와 고구려 성벽까지 확장하려는 중국 정부의 시도 역시 동북공정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27]
6. 동북공정 이후의 상황과 문화 동북공정
동북공정은 2007년에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지만, 그 영향은 여전히 남아있다.[25] 중국 내에서는 여전히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사로 간주하는 인식이 존재하며, 역사 왜곡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중국 둥베이 지역 지방 정부들은 중앙 정부의 승인 아래 동북공정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으며, 많은 관광지에서 고구려를 중국 소수 민족의 지방 정부로 소개하는 표지판과 팜플렛을 찾아볼 수 있다.[26]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진행된 중화문명탐원공정은 동북공정의 연장선으로, 황하 문명 대신 요하 문명을 고대 중국 문명의 기원으로 정의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요하 문명에는 대표적인 훙산 문화가 포함되어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중국 역사학자들은 홍산 문화를 발해 및 기타 한국 문화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왔지만, 중화문명탐원공정이 홍산 문화를 중국 고대 역사의 기원으로 포함하려는 시도는 고조선을 근거로 한 한국 측 주장과 논쟁을 촉발시켰다.
만리장성의 길이를 발해와 고구려 성벽까지 확장하려는 중국 정부의 시도 역시 동북공정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산해관은 이전부터 만리장성의 동쪽 끝으로 확인되었지만, 헤이룽장 성까지 확장은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를 포함하여 또 다른 논란의 원인이 되었다. 한국 학자들은 중국 정부가 발표한 역사적 세부 사항의 반복적인 변경에 강력히 항의하며, 고구려와 발해 영토에 있는 역사적 유물이 파괴되고 있다고 주장한다.[27]
2004년 동북공정이 강력한 비판을 받자, 핵심 연구자들은 동북 지역의 다른 학자들과 함께 지린 사회 과학원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동북 사지(東北史地)》를 창간했다.[19] 이 학술지는 동북공정의 연구를 이어갔으며, 연구 범위를 낙랑군과 신라 등 한반도에 위치한 역사적 왕국 및 정치 세력까지 확대했다.
2017년 4월 7일, 마라라고에서 시진핑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중화인민공화국 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중 정상 회담을 가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월스트리트 저널』 인터뷰에서 시진핑 주석이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라고 발언했음을 밝혔다.[71][72]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이 중국과 한반도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수천 년의 역사와 수많은 전쟁에 대해.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 "한국은 실제로 중국의 일부였다(Korea actually used to be a part of China영어)", "시 주석으로부터 중국과 한국의 역사에 대해 들었다. 북한이 아닌 한반도 전체에 대한 이야기였다. (중국과 한국에는) 수천 년 동안 많은 전쟁이 있었다", "(시 주석의 역사 강의를) 10분간 듣고 (북한 문제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6. 1. 문화 동북공정
최근 '문화 동북공정'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중국이 한복, 김치 등 한국 문화를 자국의 문화로 주장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복을 입은 여성이 중국 소수민족 대표로 등장한 사건은 이러한 논란을 더욱 증폭시켰다.[2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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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교과서 ‘고조선=야만, 삼국=신라·백제·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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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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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韓国は事実上中国の一部だった」…習主席がトランプ大統領に衝撃の発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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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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トランプ氏の「韓国は中国の一部」発言に反発=韓国政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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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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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는 온통 표절한 것" 왜곡 동영상 인터넷 떠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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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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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 한국인”한국비하 동영상 나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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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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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の領土: 分析・資料・文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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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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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アジアにおける仏教の伝来と受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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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アジアにおける仏教の伝来と受容
関西大学東西学術研究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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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が中国に突きつける「歴史論争」 高句麗の遺跡を「中国が歪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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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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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国、古朝鮮・高句麗の遺跡を「満州族の文化」と歪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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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国博物館 「高句麗・渤海」削除の韓国史年表撤去を表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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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年になって、[[竹島 (島根県)|竹島]]領有の正当性を補強するために設立された[[東北アジア歴史財団]]と統合され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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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北工程】中国には何も言えない盧大統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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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句麗帰属問題”で韓国・北朝鮮と軋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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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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スペイン紙「韓国4228年間、中国の属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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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A El muro de Berlín asiát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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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半島をめぐる歴史歪曲の舞台裏 韓流時代劇と朝鮮史の真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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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流時代劇と朝鮮史の真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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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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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産地表記めぐり韓流スターが中国CF出演契約を解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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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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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유명환 워싱턴에서 읽은 ‘한일관계를 보는 미국의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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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者手帳】「東北工程」に沈黙する北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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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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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3 同じ「高句麗」で別々に登録。中国、北朝鮮が綱引き。平山郁夫は、なだめ、とりも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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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句麗史는 고구려 사람의 눈으로 다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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渤海史をめぐる朝鮮史学界の動向--共和国と韓国の「南北国時代」論について
朝鮮学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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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과서, 고려때 ‘23만 귀화’ 언급도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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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4~6학년 교과서, 단일민족·혈통 지나치게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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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규교수 출간예정 '요동사' “고구려는 요동國” 파문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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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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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정통성은 신라에… 고구려 중심사관 폐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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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인가, 국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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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은 중국 전통 모자” 황당 주장…中 대체 왜 이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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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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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京五輪で「中国の属国扱いされる韓国」が、東京五輪から反省すべきこととは
https://diamond.jp/a[...]
202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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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朝鮮駆魔師』打ち切りに残された問い―歴史歪曲と人種主義的論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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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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歴史歪曲議論の『朝鮮駆魔師』、放送史上初の電撃打ち切り=韓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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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北京五輪で「中国の属国扱いされる韓国」が、東京五輪から反省すべきこととは
https://diamond.jp/a[...]
202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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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北京五輪で「中国の属国扱いされる韓国」が、東京五輪から反省すべきことと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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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0
[105]
서적
특목고 면접 한 권으로 끝내기
도서출판SMG
[106]
서적
특목고 면접 한 권으로 끝내기
도서출판S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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