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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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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1996년)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탈레반이 수립한 이슬람주의 정권으로, 1996년 카불을 점령하며 성립되었다. 파슈툰족을 중심으로 파키스탄, 사우디 아라비아, 아랍 에미리트의 지원을 받아 권력을 확장했으며, 샤리아를 엄격하게 적용하여 음악, 영화, 여성의 교육과 직업 활동 등을 금지했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멸망했지만, 2021년 재집권하여 현재까지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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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1996년) - [옛 나라]에 관한 문서
개요
2001년 초 이슬람 에미리트 통제 지역 (녹색)
2001년 이슬람 에미리트의 통제 지역 (녹색)
위치2001년
수도카불
가장 큰 도시카불
공용어파슈토어 (공식)
다리어 및 기타 아프가니스탄 언어
종교수니 이슬람 (공식)
통치 형태단일 전체주의 신정 이슬람 에미리트
국가 표어lā ʾilāha ʾillà l-Lāh, Muḥammadun rasūlu l-Lāh (알라 외에는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이다)
국가(Dā Də Bātorāno Kor, 이것은 용감한 자들의 고향이다)
정부
최고 지도자물라 오마르
총리무함마드 랍바니 (1996–2001)
총리 대행압둘 카비르 (2001)
입법부최고 협의회 (자문 기구)
역사
주요 사건물라 오마르, 신도의 사령관으로 선포 (1996년 4월 4일)
시작카불 점령 (1996년 9월 27일)
국호 변경"에미리트"로 국호 변경 (1997년 10월 29일)
미국의 침공 시작2001년 10월 7일
카불 함락2001년 11월 13일
종말칸다하르 함락 (2001년 12월 7일)
면적
면적587,580 km2
통화
통화아프가니
기타 정보
국가 코드+93

2. 역사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혼란 속에서 등장한 탈레반은 이슬람교와 파슈툰족의 정치 종교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부족 관습 (파슈툰왈리)과 살라피즘 요소를 융합하여 서방과 현대 이슬람에 반대하는 이념을 형성했으며,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탈레반은 칸다하르에서 세력을 확장하여 1996년 카불을 점령했고, 2000년 말에는 북부 동맹 거점을 제외한 국토의 90%를 지배했다. 이들은 물라 무함마드 오마르의 종교적 칙령과 함께 이슬람 샤리아법을 엄격하게 해석하여 시행했다.[108]

탈레반 정권은 5년 동안 할랄에 맞지 않는 돼지고기, 알코올, 음악, 텔레비전, 영화, 대부분의 예술 형태를 금지했다.[108] 축구, 체스, 날리기, 비둘기 사육 등도 금지되었으며,[108] 우상 숭배로 간주된 사진 촬영 및 전시 역시 금지되었다. 여성의 취업과 교육이 금지되었고,[108] 남성은 수염을 길러야 했다.[108][109] 공산주의자는 처형되었고, 예배는 강제되었다.[108] 2000년, 오마르는 아편 재배와 마약 밀매를 금지하여 2001년까지 아편 생산을 거의 근절했다.[108][110][111]

탈레반 정부는 "칸다하르인에 의해 운영되는 비밀 결사"로 묘사되었다.[107]

9.11 테러 이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선언과 함께 국제적 비난이 높아져 외교적 승인이 취소되었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탈레반 정권은 전복되었고, 이후 반군 활동을 계속했다.[113]

2019년 8월,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탈레반과 평화 협상을 통해 미군 철수에 합의했다. 2021년 5월부터 공세를 시작한 탈레반은 2021년 8월 15일 카불을 함락시키며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다시 지배하게 되었다.[124]

2. 1. 초기 역사 (1994-1996)

탈레반의 역사도 참고

탈레반과 그들의 통치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의 혼란 속에서 등장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남부의 마드라사 학생들로 구성된 이슬람 및 파슈툰족의 정치-종교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압도적으로 민족 파슈툰족인 탈레반은 파슈툰왈리 부족 규범과 살라프 운동의 요소를 결합하여 반서방 정서와 반현대적인 이슬람주의 이데올로기를 형성하여 통치했다.[7] 탈레반은 인접국인 파키스탄, 그리고 사우디 아라비아와 아랍 에미리트로부터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탈레반의 첫 번째 주요 군사 활동은 1994년 10월에서 11월에 걸쳐 아프가니스탄 남부의 마이완드에서 출발하여 칸다하르 시와 주변 지역을 점령했을 때였으며, 수십 명의 사상자만 발생했다.[8] 그 다음 3개월 동안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세력"은 아프가니스탄 34개 중 12개를 장악했으며, 무자헤딘 군벌들은 종종 싸움 없이 항복했고, "무장한 인구"는 무기를 포기했다.[10] 탈레반은 처음에는 무자헤딘 군벌들의 부패, 잔혹함, 끊임없는 싸움에 지친 아프가니스탄인들로부터 엄청난 호의를 받았다. 그러나, 비파슈툰족 사람들 사이에서는 반응과 저항이 다양해지고 증가할 것이다.[11]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다른 많은 민족 집단을 이질적인 존재로 여겼다. 파슈툰족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민족 집단이며, 탈레반 운동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탈레반이 남부 및 남동부의 거점에서 확장되면서 더 많은 저항에 직면했으며, 파슈툰왈리 부족 규범과 통합된 데오반디즘은 아프가니스탄의 다른 민족 집단에게 이질적인 것으로 여겨졌다.[12]

2. 2. 1차 집권기 (1996-2001)

1996년 가을,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직후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적 상황


탈레반은 칸다하르에서 세력을 확장하여 1996년 카불을 점령했다. 2000년 말까지 탈레반은 바다흐샨 주 북동쪽 구석에 있는 북부 동맹의 거점을 제외하고 국토의 90%를 장악했다.[14] 탈레반의 직접 통제 하에 있는 지역은 주로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도시와 고속도로였으며, 부족 칸과 군벌들은 다양한 소도시, 마을 및 농촌 지역을 ''사실상'' 통제했다.[14] 탈레반은 모하메드 오마르의 종교적 칙령과 함께 이슬람 ''샤리아''를 엄격하게 해석하여 법과 질서를 확립하고 아프가니스탄 전체에 강요하려 했다.[15]

이슬람 에미레이트 5년 동안, 탈레반 정권은 ''샤리아''를 하나피 이슬람 법학 학파와 뮬라 오마르의 종교적 칙령에 따라 해석했다.[15] 탈레반은 돼지고기와 술, 대부분의 음악,[15] 텔레비전,[15] 영화,[15] 그림이나 사진과 같은 대부분의 예술 형태,[15] 축구체스를 포함한 스포츠에서의 남녀 참여를 금지했다.[15] 연날리기비둘기 또는 기타 애완동물을 키우는 오락 활동도 금지되었으며, 탈레반의 통치에 따라 새들은 죽임을 당했다.[15] 영화관은 폐쇄되어 모스크로 용도가 변경되었다.[15] 서양과 이란 신년 축하를 금지했다.[15] 사진을 찍고 사진이나 초상화를 전시하는 것은 탈레반이 우상 숭배의 한 형태로 간주하여 금지했다.[15] 여성은 직업을 가질 수 없었고,[15] 소녀는 학교나 대학교에 다닐 수 없었고,[15] ''푸르다''(성별 분리)와 ''아우라''(옷으로 몸을 가리는 것)를 준수하고 남성 친척의 동반을 받아 집 밖으로 나갈 것을 요청받았으며, 이러한 제한을 위반한 사람은 처벌을 받았다.[15] 남자는 수염을 깎는 것이 금지되었고, 탈레반의 취향에 따라 수염을 길게 기르고, 집 밖에서 터번을 착용해야 했다.[15][16] 공산주의자는 체계적으로 처형되었다. 기도는 의무화되었고, ''아잔'' 이후 종교적 의무를 존중하지 않은 사람은 체포되었다.[15] 도박은 금지되었고,[15] 도둑은 손이나 발을 절단하는 처벌을 받았다.[15] 2000년, 탈레반 지도자 뮬라 오마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아편 재배와 마약 거래를 공식적으로 금지했고,[15][17][18] 2001년까지 아편 생산의 대부분(99%)을 거의 근절하는 데 성공했다.[17][18][19] 마약 사용자 및 거래자는 모두 엄중하게 기소되었다.[15] ''바차 바지''(아프가니스탄의 다양한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지는 소아성애) 또한 금지되었다.[20]

내각 각료와 부장관은 "마드라사 교육"을 받은 물라였다. 보건부 장관과 국립은행 총재와 같은 몇몇은 주로 필요할 때 행정직을 떠나 싸울 준비가 된 군 지휘관이었다. 군사적 패배는 국가 행정의 혼란을 증가시켰다.[21] 국가 차원에서 "모든 고위 타지크, 우즈벡 및 하자라 관료"는 "자격 여부에 관계없이 파슈툰족으로" 교체되었다. 결과적으로 부처는 "대체로 기능을 중단했다".[22]

라시드는 탈레반 정부를 "칸다하르인이 운영하는 비밀 단체... 신비롭고, 은밀하며, 독재적"이라고 묘사했다.[26] 그들은 대변인이 설명했듯이 선거를 치르지 않았다.

그들은 파슈툰족 부족 회의(''지르가'')를 초기 이슬람 모델이라고 믿는 것과 함께 의사 결정 과정을 모델로 삼았다. 토론 후 "신자"들의 합의가 이루어졌다.[24]

탈레반의 권력이 커지면서 결정은 ''지르가''와 국가의 다른 부분과 상의하지 않고 뮬라 오마르에 의해 내려졌다. 뮬라 오마르는 권력을 잡고 있는 동안 수도 카불을 두 번만 방문했다. 선거 대신, 그들의 지도자의 정당성은 무함마드와 초기 4명의 칼리프를 모방한 충성 서약("바이야")에서 비롯되었다. 1996년 4월 4일, 뮬라 오마르는 60년 만에 처음으로 키르카 샤리프에 있는 "무함마드의 망토"를 가져왔다. 그는 유물을 몸에 감고 칸다하르 중심부의 건물 옥상에 나타났고 수백 명의 파슈툰 뮬라가 아래에서 "아미르 알무미닌!"(신자들의 사령관)을 외치며 지지를 약속했다. 탈레반 대변인 뮬라 와킬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탈레반은 권력을 분담하는 것을 매우 꺼렸고, 그들의 대열은 압도적으로 파슈툰족이었기 때문에 다른 민족 집단 출신 아프가니스탄인의 60%에 대해 지배자로서 통치했다. 카불시 의회 또는 헤라트와 같은 지방 정부에서 파슈토어를 사용하는 탈레반이 다리어 또는 다른 비파슈툰어를 사용하는 인구의 약 절반과 의사 소통을 할 수 없을 때조차도 현지인이 아닌 탈레반 충성자들이 지배했다.[27] 비평가들은 이러한 "도시 행정에서 지역 대표성의 부족은 탈레반을 점령군으로 보이게 만들었다"고 불평했다.[22]

바미안 석불 파괴, 2001년 3월 21일


''바미안 석불''은 아프가니스탄 중부 바미안 계곡의 절벽 측면에 조각된 6세기[55] 기념 조각상 두 점으로, 2001년 3월에 ''탈레반 정부''가 그것들을 우상이라고 선언한 후 파괴되었다.[56] 국제 및 지역 여론은 석불의 파괴를 강력히 비난했다.[55]

마자르-이-샤리프 전투 (1997-98) 이후, 바미안 계곡은 탈레반의 통제 하에 들어갔고,[58] 현지 탈레반 사령관 압둘 와헤드는 석불을 파괴하겠다는 의사를 발표했다.[59] 1999년 7월, 모하메드 오마르는 관광 코스를 설립할 계획으로 조각상을 보존하라고 명령했다.[60]

그러나 2001년 3월, 석불은 물라 오마르가 발표한 포고령에 따라 탈레반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후 인터뷰에서 물라 오마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바미안 석불을 파괴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일부 외국인들이 와서 비 때문에 약간 손상된 바미안 석불의 복원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이런 무정한 사람들이 수천 명의 살아있는 인간, 즉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부처와 같은 무생물에 대해서만 걱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매우 통탄할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파괴하라고 명령했다. 만약 그들이 인도적 지원을 위해 왔다면, 나는 결코 부처의 파괴를 명령하지 않았을 것이다."[61]

하지만 2001년 3월 13일 다른 인터뷰에서 당시 탈레반 외무부 장관 와킬 아흐마드 무타와킬은 파괴가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조각상을 파괴하고 있으며, 그것은 순전히 종교적인 문제이다." 탈레반 정권의 종교부 성명은 파괴가 이슬람 율법에 따른 것이라고 정당화했다.[62]

이로 인해 일본, 인도, 스리랑카, 대한민국, 네팔, 이란, 카타르, 러시아 등 여러 국가에서 국제적인 항의가 쏟아졌다. 심지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승인한 세 국가 중 하나였던 사우디 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도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유네스코의 아랍 지부인 국제 연합의 문화 및 교육 기구는 파괴를 "야만적인 행위"라고 칭했다.[63]

2. 3. 저항 운동기 (2001-2021)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의 통치는 종말을 맞이했다. 2003년 5월과 6월, 탈레반 고위 관계자들은 탈레반이 재집결하여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몰아내기 위한 게릴라전을 벌일 준비가 되었다고 선언했다.[28][29] 2004년 말, 은둔해 있던 탈레반 지도자 모하메드 오마르는 "우리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미국과 그들의 꼭두각시"(즉, 과도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에 대한 반란을 선포했다.[30]

9.11 테러 이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선언에 따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2001년 12월 17일 토라 보라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대부분의 지역에서 축출되었다. 이후 탈레반은 지방에 잠복하거나 국외로 탈출하여 저항 운동을 계속했다.[113]

2019년 8월,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탈레반과의 평화 협상을 진행하여, 2020년 8월에 2021년 5월을 기점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전면 철수하는 데 합의했다. 2021년 1월에 출범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미군의 완전 철수 기한을 같은 해 8월 말로 발표했다. 탈레반은 2021년 5월부터 공세를 시작하여, 같은 해 8월 15일 카불을 함락시키고 판지시르주를 제외한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지배하에 두었다고 선언했다.[124] 이로써 탈레반은 오랜 반군 활동 끝에 2021년에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했다.[31]

2. 4. 2차 집권기 (2021-)

2019년 8월,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탈레반과의 평화 협상을 진행하여, 2020년 8월과 2021년 5월을 기점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전면 철수하는 데 합의했다. 2021년 1월에 출범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미군의 완전 철수 기한을 같은 해 8월 말로 발표했다. 탈레반은 2021년 5월부터 공세를 시작하여, 같은 해 8월 15일 카불을 함락시키고 판지시르주를 제외한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지배하에 두었다고 선언했다.[124]

2021년 8월 17일, 카불 점령 다음 날, 탈레반의 무자히딘 대변인은 기자 회견을 열고 "이슬람 가르침의 범위 내"에서 여성의 취업, 교육, 그리고 미디어 활동 등을 보장하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또한 "우리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며, 정부군이나 외국 세력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에게도 보복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어떤 국가의 위협도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지만,[125] 여러 전 정부군 관계자에 대한 테러 행위가 보고되고 있다.

8월 18일, 민간 텔레비전 방송 "톨로 뉴스"에 탈레반의 홍보 담당자가 출연하여 여성 앵커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탈레반은 이슬람교에 근거하여 여성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데 힘쓰고 있다. 여성은 필요한 보건 부문이나 기타 부문에서 일할 수 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지만,[126] 여성들의 권리는 극히 일부만 인정되었으며, 많은 여성들이 직장을 잃고 카불을 중심으로 여성 활동가들의 항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문화 정책에 있어서는, 제1차 정권기에 금지했던 부즈카시를 이번에는 인정하고 있으며, 탈레반 멤버가 이에 참가하는 등의 변화도 보인다.[127]

의료 면에서는, 제1차 정권기에는 소아마비 백신 접종에 반대 입장을 취했으나, WHO와 유니세프에 의한 백신 접종 활동을 지원하는 자세로 전환했다.[128]

제1차 정권기에 금지하여 비판을 받았던 여자 교육은, 고등 교육에 대해서도 남녀 분반 등의 조건부이기는 하지만 용인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129]

3. 정치

탈레반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혼란 속에서 등장한 이슬람 및 파슈툰족 중심의 정치-종교 운동이었다. 이들은 파슈툰왈리 부족 규범과 살라프 운동 요소를 결합한 반서방 정서와 반현대적인 이슬람주의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통치했다.[7] 파키스탄, 사우디 아라비아, 아랍 에미리트의 지원을 받았다.

1994년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1996년 카불을 점령했다. 2000년 말에는 북부 동맹의 거점인 바다흐샨 주 북동쪽 일부를 제외한 국토의 90%를 장악했다. 이들은 법과 질서 확립을 명분으로 물라 오마르의 종교적 칙령과 함께 샤리아를 엄격하게 해석하여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강요하려 했다.[15]

탈레반은 다른 민족 집단을 이질적인 존재로 여겼다.[12] 파슈툰족이 탈레반 운동의 대다수를 차지했으며, 탈레반의 확장과 함께 파슈툰왈리와 데오반디즘은 다른 민족 집단에게 이질적인 것으로 여겨져 저항에 직면했다.[12]

탈레반 정부는 "칸다하르인이 운영하는 비밀 단체... 신비롭고, 은밀하며, 독재적"이라고 묘사되었다.[26] 이들은 대변인이 설명했듯이 선거를 치르지 않았다. 탈레반 대변인 뮬라 와킬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탈레반은 파슈툰족 부족 회의(''지르가'')와 초기 이슬람 모델을 결합한 의사 결정 과정을 따랐다.[24] 물라 오마르는 수도 카불을 두 번만 방문했고, 그의 정당성은 무함마드와 초기 4명의 칼리프를 모방한 충성 서약("바이야")에서 비롯되었다.[24] 1996년 4월 4일, 물라 오마르는 키르카 샤리프에 있는 "무함마드의 망토"를 꺼내 칸다하르에서 "아미르 알무미닌"(신자들의 사령관)으로 추대되었다.

내각 각료와 부장관은 마드라사 교육을 받은 물라였다.[21] 국가 차원에서 고위 타지크, 우즈벡, 하자라 관료는 파슈툰족으로 교체되었다.[22]

3. 1. 이념과 통치 방식

탈레반은 데오반드 학파의 이슬람 근본주의와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엄격하게 해석하여 통치했다. 이들은 파슈툰왈리(파슈툰족 관습법)의 규범과 살라프 운동의 요소를 결합하여 반서방 정서와 반현대적인 이슬람주의 이데올로기를 형성했다.[7]

탈레반 정권은 ''샤리아''를 하나피 이슬람 법학 학파와 물라 오마르의 종교적 칙령에 따라 해석했다.[15] 이들은 돼지고기, 대부분의 음악,[15] 텔레비전,[15] 영화,[15] 그림이나 사진과 같은 대부분의 예술 형태,[15] 스포츠에서의 남녀 참여, 축구체스를 포함하여 금지했다.[15] 연날리기비둘기 또는 기타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도 금지되었으며, 탈레반의 통치에 따라 새들은 죽임을 당했다.[15] 영화관은 폐쇄되어 모스크로 용도가 변경되었다.[15] 서양과 이란 신년의 축하를 금지했다.[15] 사진을 찍고 사진이나 초상화를 전시하는 것은 탈레반이 우상 숭배의 한 형태로 간주하여 금지했다.[15]

여성은 직업을 가질 수 없었고,[15] 소녀는 학교나 대학교에 다닐 수 없었고,[15] ''푸르다''(성별 분리)와 ''아우라''(옷으로 몸을 가리는 것)를 준수하고 남성 친척의 동반을 받아 집 밖으로 나갈 것을 요청받았으며, 이러한 제한을 위반한 사람은 처벌을 받았다.[15] 남자는 수염을 깎는 것이 금지되었고, 탈레반의 취향에 따라 수염을 길게 기르고, 집 밖에서 터번을 착용해야 했다.[15][16] 공산주의자는 체계적으로 처형되었다. 기도는 의무화되었고, ''아잔'' 이후 종교적 의무를 존중하지 않은 사람은 체포되었다.[15] 도박은 금지되었고,[15] 도둑은 손이나 발을 절단하는 처벌을 받았다.[15] 2000년, 물라 오마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아편 재배와 마약 거래를 공식적으로 금지했다.[15][17][18] 탈레반은 2001년까지 아편 생산의 대부분(99%)을 거의 근절하는 데 성공했다.[17][18][19]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통치 하에서 마약 사용자 및 거래자는 모두 엄중하게 기소되었다.[15] 아프가니스탄의 관습인 ''바차 바지''(아프가니스탄의 다양한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지는 소아성애) 또한 탈레반 정권의 6년간의 통치 하에서 금지되었다.[20]

탈레반은 파슈툰족이 아닌 다른 민족 집단을 이질적인 존재로 여겼다.[12] 파슈툰족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민족 집단이며, 탈레반 운동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탈레반이 남부 및 남동부의 거점에서 확장되면서 더 많은 저항에 직면했으며, 파슈툰왈리 부족 규범과 통합된 데오반디즘은 아프가니스탄의 다른 민족 집단에게 이질적인 것으로 여겨졌다.[12]

탈레반 정부는 "칸다하르인이 운영하는 비밀 단체... 신비롭고, 은밀하며, 독재적"이라고 묘사되었다.[26] 이들은 선거를 치르지 않았다. 탈레반 대변인 뮬라 와킬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탈레반은 파슈툰족 부족 회의(''지르가'')를 초기 이슬람 모델이라고 믿는 것과 함께 의사 결정 과정을 모델로 삼았다.[24] 물라 오마르는 권력을 잡고 있는 동안 수도 카불을 두 번만 방문했다. 선거 대신, 그들의 지도자의 정당성은 무함마드와 초기 4명의 칼리프를 모방한 충성 서약("바이야")에서 비롯되었다. 1996년 4월 4일, 물라 오마르는 60년 만에 처음으로 키르카 샤리프에 있는 "무함마드의 망토"를 가져왔다. 그는 유물을 몸에 감고 칸다하르 중심부의 건물 옥상에 나타났고 수백 명의 파슈툰 뮬라가 아래에서 "아미르 알무미닌!"(신자들의 사령관)을 외치며 지지를 약속했다.

내각 각료와 부장관은 "마드라사 교육"을 받은 물라였다. 보건부 장관과 국립은행 총재와 같은 몇몇은 주로 필요할 때 행정직을 떠나 싸울 준비가 된 군 지휘관이었다.[21] 국가 차원에서 "모든 고위 타지크, 우즈벡 및 하자라 관료"는 "자격 여부에 관계없이 파슈툰족으로" 교체되었다.[22]

3. 2. 권력 구조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은 최고 지도자를 중심으로 권력이 집중된 구조였다.[32] 최고 지도자의 권위는 무함마드와 초기 칼리프를 모방한 충성 맹세("바야")를 통해 부여받았다.[32] 1996년 4월 4일, 물라 오마르는 60년 만에 처음으로 "예언자 무함마드의 외투"를 꺼내 칸다하르 중심부 건물 옥상에서 이 유물을 두르고 수백 명의 파슈툰족 물라들에게 "아미르 알 무미닌(신실한 자들의 사령관)"이라는 칭호와 함께 지지를 받았다.[32]

의사 결정은 파슈툰족의 전통적인 부족 회의인 지르가와 초기 이슬람 모델을 혼합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32] 토론 후 "신자들"의 합의를 통해 결정이 이루어졌지만, 물라 오마르는 지르가나 다른 지역과의 협의 없이 단독으로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32] 그는 권력을 잡고 있는 동안 수도 카불을 단 두 번만 방문했다.[32]

최고 의사 결정 기구는 슈라였다.

3. 3. 행정 조직

1996년 9월 수도 카불을 장악한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국(북부 동맹)을 대신하는 임시 정권을 발족시켰다. 초기에는 구 정권과의 통일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임시 조치로, 새로 임명된 각 부처 장관들도 '대신 대행'을 칭했다. 그러나 북부 진격 과정에서 '대신'으로 개칭되었고, 1997년 10월에는 최고 지도자 무함마드 오마르의 수장 즉위와 함께 국호를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으로 변경했다.

최고 지도자 오마르는 칸다하르에 머물며 '칸다하르 슈라(지도자 회의)'를 주도하고, 수도 카불의 '카불 슈라(통치 평의회)'에 지령을 내리는 통치 형태를 취했다. 통치 평의회는 내각에 해당하며, 의장(수상), 2명의 부의장(부수상), 각 부처 대신들로 구성되었다. 무함마드 라바니를 의장으로 하는 정부가 조직되었다.

정부 각료, 차관, 중앙은행 총재 등 고위직은 학력이나 전문 지식보다는 오마르에 대한 충성심과 내전 공적에 따라 선발되었다. 또한, 파슈툰족 출신 관료들을 우대하고 구 정권 관리를 해고하는 등 행정 기구는 공동화되었다.

'''원수'''

  • 최고 지도자 - 물라 무함마드 오마르(2013년 4월 사망)


'''내각'''

1996년 9월 27일 발족. 2000년 3월, 8월 내각 개편

직책이름
통치 평의회 의장 (총리)무함마드 라바니(2001년 4월 사망)
통치 평의회 제1 부의장 (제1 부총리)무함마드 하산 아훈드
통치 평의회 제2 부의장 (제2 부총리)압둘 카비르(2001년 11월 의장직 대행)
외무 장관압둘 와킬 아흐마드 무타와킬
내무 장관압둘 라잔 아훈드
재무 장관압둘 와사이 아가잔 모타셈
교육 장관아미르 칸 무타키
국방 장관우바이드 알라 아훈드
선행 장려 및 악행 금지부 장관무함마드 왈리
항공·관광 장관아크타르 무함마드 만수르(2016년 5월 사망)
통신·노동 장관아흐마둘라 모티
정보·문화 장관쿠트라둘라 자말
보건 장관물라 무함마드 아바스 아훈드
사법 장관누루딘 투라비
경공업·식량 장관함드라 자히드
광공업 장관무함마드 이사 아훈드
농업·동물 관리 장관압둘 라티프 만수르
순례 기증 장관사이드 기야스딘 아가
계획 장관사두르딘 사이드
무역 장관압둘 라자크
난민 장관압둘 라키브
국경·부족 문제 장관
병참 장관야르 무함마드
보안 장관무함마드 파질
고등 교육 장관카리딘 무함마드



2021년 9월 7일, 탈레반은 "과도 정부" 각료 31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과도"라고 한 이유는 권력 공백을 막고 국민에게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긴급하게 각료를 발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탈레반은 각료 명단 발표와 함께 최고 지도자 아쿤자다 명의의 성명을 발표하여, 각료들이 이슬람 규범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소수파와 어려운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직책이름
임시 총리무함마드 하산 아쿤드(창립 멤버)
제1 부총리 대행압둘 가니 바라다르(부지도자, 창립 멤버)
제2 부총리 대행압둘 살람 하나피(우즈베크인 성직자)
제3 부총리 대행압둘 카비르
국방부 장관 대행무함마드 야쿠브(부지도자, 무함마드 오마르의 아들)
내무부 장관 대행시라주딘 하카니(부지도자)
외무부 장관 대행아미르 칸 무타키
재무부 장관 대행헤다야툴라 바드리
교육부 장관 대행누르라 무니르
정보·문화부 장관 대행하이룰라 하이르화
경제부 장관 대행카리 딘 하니프(타지크인)
순례 기증부 장관 대행무함마드 사키브
법무부 장관 대행압둘 하킴 샤리
국경·부족 문제 담당 장관 대행누르라 누리
지방 재활·개발부 장관 대행무함마드 유누스 아쿤자다
공공 사업부 장관 대행압둘 마난 오마리
광물 석유부 장관 대행무함마드 에사 아혼드(~2021년 11월 22일)
광물 석유부 장관샤하부딘 데라왈(2021년 11월 22일~)
수력 에너지부 장관 대행압둘 라티프 만수르
민간 항공·운송부 장관 대행하미둘라 아쿤자다
고등 교육부 장관 대행압둘 바키 하카니(~2022년 10월)
고등 교육부 장관니다 모하마드 나디(2022년 10월~)
전기·통신부 장관 대행나지불라 하카니
난민부 장관 대행칼릴 유아 라흐만 하카니
선행 권장 및 악행 금지부 장관 대행무함마드 할리드 하나피
공공 보건부 장관 대행칼란다르 이바드
상업·산업부 장관 대행누르딘 아지지(타지크인, 비탈레반)
농업·축산부 장관 대행압둘 라흐만 라시드
순교자·장애자 문제 담당 장관 대행압둘 마지드 아훈드
방재부 장관 대행무함마드 압바스 아훈드(2021년 11월~)
관방 장관 대행아흐마드 얀 아흐마디
정보국 국장 대행압둘 하크 와시크
중앙 은행 총재 대행하지 무함마드 이드리스(~2021년 10월)
중앙 은행 총재샤키르 잘랄리(2021년 10월~)
국방 차관 대행무함마드 파질
내무 차관 대행누르 잘랄
외무 차관 대행모하마드 압바스 스타네크자이
정보·문화 차관 대행자비훌라 무자히드(탈레반 대변인)
공공 보건 차관 대행모하마드 하산 기야시(하자라인, 비탈레반)
육군 참모총장카리 파시후딘(타지크인)
유엔 대사수하일 샤힌(탈레반 대변인)


4. 사회와 문화

탈레반 정권은 하나피 학파의 이슬람 법학과 물라 무함마드 오마르의 종교적 칙령에 따라 샤리아를 엄격하게 해석하여 시행했다.[108] 이들은 할랄에 맞지 않는 돼지고기알코올은 물론, 음악, 텔레비전, 영화 등 많은 종류의 소비재와 기술,[108] 그림이나 사진과 같은 대부분의 예술 형태를 금지했다.[108] 남녀 모두 스포츠에서 축구체스를 포함하여 금지되었다.[108] 날리기, 비둘기나 다른 애완동물 사육과 같은 오락 활동도 금지되었으며, 탈레반의 판결에 따라 새는 죽임을 당했다.[108] 영화관은 폐쇄되어 모스크로 재사용되었다.[108] 서양과 이란의 신년 축제는 금지되었다. 탈레반이 우상 숭배의 한 형태로 간주한 사진을 찍거나 사진, 초상화를 전시하는 것은 금지되었다.[108]

여성은 일과 교육이 금지되었고,[108] 파르다를 준수하고 남성 친척이 집 밖으로 동행하도록 요청받았다. 이를 위반하면 처벌받았다.[108] 남성은 수염을 깎는 것이 금지되었고, 탈레반의 취향에 따라 수염을 기르고 길게 유지하며 집 밖에서 터번을 착용해야 했다.[108][109] 공산주의자들은 체계적으로 처형되었다. 예배는 강제되었고, 아잔 후에 종교적 의무를 존중하지 않으면 체포되었다.[108] 도박은 금지되었고,[108] 도둑은 손과 발을 절단하는 것으로 처벌받았다.[108]

2000년, 탈레반 지도자 오마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아편 재배와 마약 밀매를 공식적으로 금지했다.[108][110][111] 탈레반은 2001년까지 아편 생산의 대부분(99%)을 거의 근절하는 데 성공했다.[110][111][112] 마약 사용자와 밀매자 모두 엄격하게 기소되었다. 바차 바지 관습도 금지되었다.

4. 1. 여성 정책

2001년 8월 26일, RAWA가 촬영한 카불에서 여성을 구타하는 탈레반 종교 경찰의 모습.


탈레반 통치 기간 동안, 여성에 대한 잔혹한 탄압이 토후국 전역에 만연했다.[34][35] 이러한 학대는 종교 경찰에 의해 빈번하고 폭력적으로 시행되었다.[36] 예를 들어, 탈레반은 여성 교육 금지 칙령을 발표하여 소녀들이 학교와 대학교를 떠나도록 강요했다.[37][38] 여성은 집을 나설 때 남성 친족을 동반해야 했으며, 작은 틈새를 제외하고는 온몸을 가리는 전통 의상인 부르카를 착용해야 했다.[37][38] 이를 어기는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구타당했다. 한 예로, 소힐라라는 젊은 여성은 친족이 아닌 남성과 함께 걸었다는 이유로 간통 혐의를 받아 가지 스타디움에서 공개적으로 100대의 채찍질을 받았다.[39] 여성의 고용은 의료 분야로 제한되었으며, 남성 의료진은 여성과 소녀를 진료하는 것이 금지되었다.[37] 여성 고용에 대한 광범위한 금지는 초등학교의 광범위한 폐쇄로 이어졌는데, 탈레반 집권 전 거의 모든 교사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소녀뿐만 아니라 소년의 교육 접근성도 더욱 제한되었다. 이러한 제한은 탈레반이 수도를 장악한 후 특히 심해졌다. 1998년 2월, 종교 경찰은 모든 여성을 카불 거리에서 쫓아내고 여성의 모습이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창문을 검게 칠하도록 명령하는 새로운 규정을 발표했다.[40]

2021년 8월 카불 점령 다음 날, 탈레반 대변인은 기자 회견을 통해 "이슬람 가르침의 범위 내"에서 여성의 취업, 교육, 미디어 활동 등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125] 그러나 여성의 권리는 극히 일부만 인정되었고, 많은 여성이 직장을 잃었으며, 카불을 중심으로 여성 활동가들의 항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4. 2. 소수민족 정책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여러 민족 집단을 이질적인 존재로 여겼다. 파슈툰족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민족 집단이며, 탈레반 운동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탈레반이 남부 및 남동부 거점에서 확장되면서 더 많은 저항에 직면했으며, 파슈툰왈리 부족 규범과 통합된 데오반디즘은 아프가니스탄의 다른 민족 집단에게 이질적인 것으로 여겨졌다.[12] 마자르-이-샤리프 전투는 이러한 민족적 갈등을 잘 보여준다.[13]

탈레반 집권 기간 동안, 시아파 등 비수니파 이슬람교도기독교, 힌두교, 불교, 시크교이교도들은 종교적 차별과 박해를 받았다.[101]

4. 3. 문화 정책

탈레반 정권은 하나피 이슬람 법학 학파와 모하메드 오마르의 종교적 칙령에 따라 이슬람 율법을 엄격하게 해석하여 시행했다.[15] 돼지고기와 술, 대부분의 음악, 텔레비전, 영화, 그림이나 사진과 같은 대부분의 예술 형태,[15] 스포츠에서의 남녀 참여, 축구체스를 포함하여 금지했다.[15] 연날리기비둘기 또는 기타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도 금지되었으며, 탈레반의 통치에 따라 새들은 죽임을 당했다.[15] 영화관은 폐쇄되어 모스크로 용도가 변경되었다.[15] 서양과 이란 신년의 축하를 금지했다.[15] 사진을 찍고 사진이나 초상화를 전시하는 것은 탈레반이 우상 숭배의 한 형태로 간주하여 금지했다.[15]

1996년부터 2001년까지 탈레반 통치 기간 동안, 그들은 축구, 연 날리기, 체스와 같은 많은 오락 활동과 게임을 금지했다. 텔레비전, 영화관, 기악 반주가 있는 음악, VCR과 위성 안테나와 같은 일반적인 오락물도 금지되었다.[41] 금지 품목 목록에는 "악기 및 부속품"과 살아있는 생물의 모든 시각적 표현도 포함되었다.[42]

아프간 아이들이 매우 인기 있는 활동인 연 날리기를 하다 잡히면 구타를 당했다는 보도가 있었다.[43] 할레드 호세이니는 1999년 뉴스 보도를 통해 탈레반이 연 날리기를 금지했다는 소식을 접하고[44] 특히 잔혹하다고 생각했다. 이 제한은 그가 아프가니스탄에 살면서 이 스포츠를 즐기며 자랐기에 그에게 "개인적인 울림"을 주었다. 호세이니는 나중에 그의 첫 소설 연을 쫓는 아이로 발전시킨, 카불에서 연을 날리는 두 소년에 대한 25쪽짜리 단편 소설을 쓰도록 영감을 받았다.[44]

바미안 석불은 아프가니스탄 중부 바미안 계곡의 절벽 측면에 조각된 6세기[55] 기념 조각상 두 점으로, 2001년 3월에 ''탈레반 정부''가 그것들을 우상이라고 선언한 후 파괴되었다.[56] 국제 및 지역 여론은 석불의 파괴를 강력히 비난했다.[55]

2001년 3월, 석불은 모하메드 오마르가 발표한 포고령에 따라 탈레반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후 인터뷰에서 물라 오마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바미안 석불을 파괴하고 싶지 않았다. ... 나는 이런 무정한 사람들이 수천 명의 살아있는 인간, 즉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부처와 같은 무생물에 대해서만 걱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매우 통탄할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파괴하라고 명령했다. 만약 그들이 인도적 지원을 위해 왔다면, 나는 결코 부처의 파괴를 명령하지 않았을 것이다."[61]

하지만 2001년 3월 13일 다른 인터뷰에서 당시 탈레반 외무부 장관 와킬 아흐마드 무타와킬은 파괴가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조각상을 파괴하고 있으며, 그것은 순전히 종교적인 문제이다." 탈레반 정권의 종교부 성명은 파괴가 이슬람 율법에 따른 것이라고 정당화했다.[62]

이로 인해 일본, 인도, 스리랑카, 대한민국, 네팔, 이란, 카타르, 러시아 등 여러 국가에서 국제적인 항의가 쏟아졌다. 심지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승인한 세 국가 중 하나였던 사우디 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도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유네스코의 아랍 지부인 국제 연합의 문화 및 교육 기구는 파괴를 "야만적인 행위"라고 칭했다.[63]

5. 경제

탈레반 집권 초기 카불의 금융 시장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곧 아프가니의 가치가 급락했다.[74] 탈레반은 기업에 50%의 세금을 부과하고, 이를 지불하지 않으면 공격했으며,[75] 수입품에는 6%의 수입세를 부과했다.[76] 1998년까지 주요 공항과 국경 통제소를 장악하여 무역 독점권을 확립했다.[77] 2001년, 1인당 소득은 200달러 미만이었고,[78] 국가는 경제 붕괴 직전에 놓였다.[35] 2007년, 경제는 회복되기 시작하여 30억 달러의 외환 보유고와 13%의 경제 성장을 기록했다.[79]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간의 환승 조약으로 대규모 밀수 네트워크가 발달했다. 아흐메드 라시드는 파키스탄이 합의한 아프간 환승 무역이 "탈레반의 가장 큰 공식 수입원"이라고 설명했다.[82]

1996년에서 1999년 사이에 물라 오마르는 마약 거래에 대한 견해를 바꾸었는데, 이는 오직 카피르들에게만 해를 끼치기 때문이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양귀비 밭의 96%를 통제했고, 아편을 주요 세입원으로 삼았다.[82] 아편 수출에 대한 세금은 탈레반 수입과 전쟁 자금의 주요 기반이었다.[82] 라시드에 따르면, "마약 자금은 전쟁을 위한 무기, 탄약 및 연료를 조달했다."[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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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아편 공급량의 약 75%를 차지했다.[84] 오마르는 아편 재배를 금지하는 법령을 통과시켰고, 생산량은 크게 감소했다.[85] 많은 관찰자들은 이 금지가 아편 가격을 올리고 기존 재고 판매로 이익을 늘리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한다.[82] 2001년 9월, 탈레반은 아프간 농민들이 다시 아편을 파종하도록 허가했다.[82]

이 나라는 심각한 삼림 벌채를 겪었다.[86][87] 전국적으로 수백만 에이커가 파키스탄 시장에 목재를 공급하기 위해 황폐화되었으며, 재조림 시도는 없었다.[88][89] 아프간 과도 행정부 집권 당시인 2001년까지 기반 시설은 붕괴되었고, 통신은 실패했으며, 도로망은 파괴되었다.[90]

1999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과 탈레반 정권 간의 모든 무역을 금지하는 행정 명령을 발효시켰다.[91] 2000년, 유엔은 자산 동결과 탈레반 사무실 폐쇄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92] 1999년 유엔은 아리아나 아프간 항공의 국제선 운항을 금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93]

6. 군사

1996년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하면서 아프가니스탄군은 해산되고 탈레반 자체 군대가 창설되었다. 탈레반군은 소련제 T-54, T-55, T-62 등 주력 전차 400여 대와 장갑 수송차 200여 대를 보유했다.[118] [119] 탈레반은 자체적으로 군대와 지휘관을 훈련시켰고, 일부는 파키스탄 군 통합 정보국(ISI)의 훈련을 받았다.[120] 1990년대 ISI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탈레반을 지원했다. 탈레반 군대는 14세 미만의 소년병을 포함하여 현역 40만 명, 예비군 5만 명 규모였다.[121]

탈레반 정권의 아프가니스탄군 병력은 약 3만 명으로 추정되며, 육군 4개 사단과 수도 카불 방어를 위한 1개 장갑 사단으로 구성되었다. 다른 추정으로는 5만~6만 명 규모이며, 이 중 40%는 파키스탄과 아랍 국가 등에서 온 외국 부대였다. 최고 지도자 무함마드 오마르가 군 최고 사령관을 겸임했지만, 실제로는 정규군이라기보다는 부족 단위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탈레반 공군은 MiG-21MF 5대, Su-22 전투 폭격기 10대, Mi-8 수송 헬리콥터 6대, Mi-35공격 헬리콥터 5대, L-39C 공격기 5대, An-12 수송기 6대를 보유했다.[122] 민간 항공 서비스에서는 보잉 727, Tu-154, An-24 5대, DHC-6를 운용했다.[122] 이 항공기들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중 미군에 의해 대부분 파괴되었고, MiG-21은 아프가니스탄 고철 처리장에서 최후를 맞았다.[123]

6. 1. 군사 조직

1996년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한 후, 아프가니스탄군은 해산되었고, 탈레반은 자체 군대를 창설했다. 탈레반 군대는 400대의 소련제 주력 전차 (T-54, T-55, T-62)와 200대 이상의 장갑 수송차를 보유했다.[118] [119] 탈레반은 자체 군대와 지휘관을 훈련시켰으며, 이들 중 일부는 파키스탄 군 통합 정보국(ISI)의 훈련을 받았다.[120] 1990년대 ISI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탈레반을 계속 지원했다. 탈레반 군은 소년병을 사용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14세 미만이었다.[121]

탈레반 정권 하의 아프가니스탄군 병력은 약 3만 명으로 추정되며, 4개 육군 사단과 수도 카불 방어를 위한 1개 장갑 사단으로 구성되었다. 일설에는 5만~6만 명으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이 중 40%는 파키스탄과 아랍 국가 등에서 온 외국 부대였다. 최고 지도자 오마르가 군 최고 사령관을 겸임했지만, 실제로는 정규군이라 부를 만한 통일성이 없었고, 부족 단위로 행동하는 것이 실태였다.

탈레반 공군은 5대의 MiG-21MF와 10대의 Su-22 전투 폭격기, 6대의 Mi-8 수송 헬리콥터, 5대의 Mi-35공격 헬리콥터, 5대의 L-39C 공격기, 6대의 An-12 수송기를 보유했다.[122] 민간 항공 서비스에서는 보잉 727, Tu-154, 5대의 An-24, DHC-6를 보유했다.[122]

이 항공기들은 모두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중 미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MiG-21 대부분은 아프가니스탄 고철 처리장에서 최후를 맞았다.[123]

6. 2. 군사 전략

탈레반은 1996년 카불 점령 후 아프가니스탄군을 해산하고 자체 군대를 창설했다. 이 군대는 소련제 T-54, T-55, T-62 등 주력 전차 400대와 장갑 수송차 200대 이상을 보유했다.[118][119] 탈레반은 자체적으로 군대와 지휘관을 훈련시켰으며, 일부는 파키스탄 군 통합 정보국(ISI)의 훈련을 받았다.[120] ISI는 1990년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탈레반을 지원했다. 탈레반 군대는 소년병을 사용했으며, 상당수는 14세 미만이었다.[121]

탈레반 정권 하의 아프가니스탄군 병력은 3만 명으로 추정되며, 육군 4개 사단과 수도 카불 방어 1개 장갑 사단으로 구성되었다. 다른 설에 따르면 병력은 5만에서 6만 명 사이였으며, 그중 40%는 파키스탄과 아랍 국가 등에서 온 외국 부대였다. 최고 지도자 무함마드 오마르가 군 최고 사령관을 겸임했지만, 실제로는 정규군이라기보다는 부족 단위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탈레반 치하의 공군은 MiG-21MF 5대와 Su-22 전투 폭격기 10대를 중심으로, Mi-8 수송 헬리콥터 6대, Mi-35공격 헬리콥터 5대, L-39C 공격기 5대, An-12 수송기 6대를 보유했다.[122] 민간 항공 서비스에서는 보잉 727, Tu-154, An-24 5대, DHC-6를 보유했다.[122]

이 항공기들은 모두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중 미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MiG-21의 대부분은 아프가니스탄의 고철 처리장에서 최후를 맞았다.[123]

7. 국제 관계

1996년 칸다하르에서 세력을 확장한 탈레반카불을 점령하고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수립했다. 이들은 국제 연합의 അംഗീകാരം을 받지 못했으며,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3개국과 체첸 공화국 이치케리아에게만 정식으로 승인받았다. 투르크메니스탄은 탈레반 정부를 공식적으로 승인하지는 않았지만, 이들로부터 지원을 받았다.[52][45]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1999년 알 카에다와 탈레반 관련 제재를 결의했으며,[53]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제재 대상을 확대했다. 2010년에는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요청으로 탈레반 고위 관료 5명에 대한 제재가 해제되었다.[54]

이름직책
와킬 아흐마드 무타와킬전 외무부 장관
파잘 모하마드전 상무부 차관
샴스-우스-사파 아민자이전 탈레반 외무부 공보관
모하마드 무사 호타크전 기획부 차관
압둘 하킴 무니브전 변경부 차관



탈레반 정권은 주변국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었다. 파키스탄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나, 이란과는 1998년 마자리샤리프 이란 영사관 점령 및 이란 외교관 처형으로 관계가 악화되었다.[15] 투르크메니스탄은 "적극적 중립" 입장을 취하며 제한적으로 협력했다.[52][46] 중국은 1998년 처음 접촉한 후[47] 2000년 물라 오마르와 회담을 가졌으며,[48] 2023년에는 탈레반 복권 후 처음으로 새 주 아프가니스탄 대사를 임명하고 신임장을 봉정했다.[132]



대한민국은 د افغانستان اسلامي امارات|다 아프가니스탄 이슬라미 이마라트ar 성립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관계를 맺지 않았으며,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지 않았다.[117]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 사건은 양국 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더불어민주당은 탈레반의 인권 침해와 테러 연계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며 비판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7. 1. 국제적 승인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존속했던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은 파키스탄,[95][96]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97][98] 단 세 국가에게만 정식으로 승인받았다.[49] 이 외에 부분적으로 인정받는 체첸 공화국 이치케리아에게도 승인을 받았으나,[50] 체첸 대통령 아슬란 마스하도프는 후에 이슬람 토후국을 "불법적인" 정부로 묘사했다.[51] 투르크메니스탄은 탈레반 정부를 공식적으로 승인하지는 않았지만, 이들로부터 지원을 받았다.[52][45]

국제 연합은 탈레반 정부를 승인하지 않고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국을 아프가니스탄의 합법적인 정부로 계속 인정했다.

2001년 알카에다의 9.11 테러 이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탈레반 정권에 대한 국제적 반대가 거세졌다. 결국 파키스탄과 아랍에미리트마저 압력에 굴복하여 외교적 승인을 철회했다.

7. 2. 유엔 및 국제기구와의 관계

1999년 10월 15일,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알 카에다, 오사마 빈 라덴 및 탈레반과 관련된 개인 및 단체에 대한 제재 체제를 수립했다.[53] 이 제재는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전 세계의 개인 및 조직으로 확대되었으며, 탈레반 정부의 전직 구성원들도 포함되었다.

2010년 1월 27일, 유엔 제재 위원회는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의 지지를 받아 5명의 전직 탈레반 고위 관리를 제재 목록에서 삭제했다. 이로써 이들은 국제 여행 금지, 자산 동결, 무기 금수 조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삭제된 5명은 모두 탈레반 정부의 고위급 인사였다.[54]

이름직책
와킬 아흐마드 무타와킬전 외무부 장관
파잘 모하마드전 상무부 차관
샴스-우스-사파 아민자이전 탈레반 외무부 공보관
모하마드 무사 호타크전 기획부 차관
압둘 하킴 무니브전 변경부 차관



이들은 모두 2001년 1월 또는 2월에 제재 목록에 추가되었다.[54]

7. 3. 주변국과의 관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은 주변국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었다.

국가관계
파키스탄우호적 관계
중국1998년 첫 접촉.[47] 2000년 11월, 당시 파키스탄 주재 중국 대사 루수린, 비무슬림 국가 고위 대표 중 최초로 물라 오마르와 만남.[48] 2023년 9월, 탈레반 복권 후 세계 최초로 새 주 아프가니스탄 대사 임명, 신임장 봉정.[132] (사실상 승인으로 해석)
이란초기 우호적 관계. 1998년 마자리샤리프 이란 영사관 점령 및 이란 외교관 처형으로 관계 악화.[15] 이란, 국경 군대 집결, 침공 위협. 국제 연합 안전 보장 이사회와 미국의 개입으로 전쟁 방지.
투르크메니스탄"적극적 중립" 입장, 제한적 협력.[52][46]
러시아우호적 관계
튀르키예, 카타르,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우호적 관계
타지키스탄적대적 관계[136]
하마스우호적 관계[138]


7. 4. 한국과의 관계

د افغانستان اسلامي امارات|다 아프가니스탄 이슬라미 이마라트ar 성립 이후, 대한민국은 아프가니스탄과 관계를 맺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지 않았다.[117]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 사건이 발생하여 양국 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사건으로 한국인 선교사 2명이 희생되었고,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지속해왔다. KOICA를 통해 식량 지원, 보건 의료 지원, 교육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개발 협력 사업을 추진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탈레반의 인권 침해와 테러 연계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탈레반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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