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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다이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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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케다 다이사쿠(1928–2023)는 일본의 종교가, 교육자, 작가이자 평화 운동가이다. 그는 1947년 니치렌 불교의 창가학회에 입회하여 도다 조세이를 정신적 스승으로 모셨으며, 1960년 창가학회 제3대 회장에 취임했다. 이케다는 국제창가학회(SGI)를 창립하고, 소카 학원, 소카 대학교 등 교육 기관을 설립하여 교육 및 문화 교류에 기여했다. 그는 또한 여러 저명인사들과의 대담을 통해 평화를 옹호하고,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이케다는 공명당 창립에 관여하며 정교분리 원칙 위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으며, 개인 숭배와 관련된 비판도 받았다. 그는 한국과의 관계에서도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으며, 한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고 여러 도시에서 명예 시민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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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다이사쿠
기본 정보
2010년 촬영
이름이케다 다이사쿠
한자 표기池田 大作
출생일1928년 1월 2일
출생지도쿄부 에바라군 이리아라이정 (현재의 도쿄도 오타구 오모리 부근)
사망일2023년 11월 15일
사망지도쿄도 신주쿠구
배우자이케다 가네코 (池田香峯子)
부모이케다 이치 (어머니)
이케다 네노키치 (아버지)
자녀3명 (1명 사망)
거주지일본, 도쿄, 신주쿠구, 시나노마치 (신농정)
종교창가학회
웹사이트daisakuikeda.org
필명야마모토 신이치, 호오고쿠
서명
학력
출신 학교후지 단기대학 졸업
직책
소속 단체창가학회
창가학회 국제 회장1975년 1월 26일 ~ 2023년 11월 15일
창가학회 명예회장1979년 4월 24일 ~ 2023년 11월 15일
창가학회 제3대 회장1960년 5월 3일 ~ 1979년 4월 24일
이전 회장조세이 토다
쓰네사부로 마키구치
이후 회장호조 히로시(北条浩)
아키야 에이노스케 (Einosuke Akiya)
하라다 미노루 (Minoru Harada)
수상 및 훈장
명예 박사 학위모스크바 대학 명예박사
소피아 대학 명예박사
베이징 대학 명예박사
필리핀 대학 명예 법학 박사
앙카라 대학 명예 사회과학 박사
나이로비 대학 명예 문학 박사
국립 로마스 데 사모라 대학 명예 박사, 법학부 명예 교수
글래스고 대학 명예 박사
트리부반 대학 명예 문학 박사
덴버 대학 명예 교육학 박사
하바나 대학 명예 인문학 박사
경희대학교 명예 철학 박사
기타 수상 및 훈장UN 평화상
제1회 타고르 평화상
프랑스 예술 문학훈장
오스트리아 학술 예술 최고훈위 영예장
브라질 남십자국가훈장
러시아 우호훈장 등 세계 27개 나라로부터 훈장 수여
계관시인(1982년)
세계계관시인(1996년)
세계민중시인(2007년)
기타 정보
주요 활동시인, 작가, 평화운동가
창가학회 국제 회원수192개국 150만 명 이상
창가학회 일본 회원수827만 가구 (자칭)

2. 생애

이케다 다이사쿠(いけだ だいさく/池田 大作일본어)는 1928년 1월 2일 일본 도쿄 오타구에서 태어났다. 이케다에게는 형이 넷, 남동생이 둘, 여동생이 하나 있었으며, 부모는 나중에 두 명의 아이를 더 입양하여 총 10명의 자녀를 두었다. 19세기 중반부터 이케다 가족은 도쿄만에서 김(*nori*)을 재배하여 성공을 거두었으나, 1923년 관동 대지진의 피해로 가족 사업은 폐허가 되었다. 이케다의 큰형인 기이치(Kiichi)는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 1월 버마 임팔 작전에서 사망했다.[10]

1947년 8월, 19세의 이케다는 오랜 친구의 초대로 불교 토론 모임에 참석하여 도다 조세이를 만났다. 이케다는 니치렌 불교를 수행하기 시작하여 창가학회에 가입했다. 그는 도다를 자신의 정신적 스승으로 여겼고, 그룹의 청년부 창립 멤버가 되었다.

이케다 다이사쿠는 1952년 5월 3일 결혼한 아내 이케다 가네코(舊 성 시라키 가네코)와 함께 도쿄에서 살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히로마사, 시로히사(1984년 사망), 타카히로 세 아들이 있었다.

히로마사 이케다는 국제창가학회(SGI)의 부회장이자 일본 소카 대학 이사이다.[69]

타카히로 이케다는 소카 학교 시스템의 이사이다.

이케다 다이사쿠는 2023년 11월 15일 9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사망은 11월 18일에 공식 발표되었다.[70]

2. 1. 유년 시절 및 교육

1928년 1월 2일 이케다 다이사쿠는 도쿄 부 에바라 군 이리아라이 정(현 도쿄 도 오타 구 오모리키타)에서 아버지 네노키치(子之吉)와 어머니 이치(一)의 사이에서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83][84][85] 19세기 중반부터 이케다 가족은 도쿄만에서 김(*nori*)을 재배하여 성공을 거두었으나, 1923년 관동 대지진의 피해로 가족 사업은 폐허가 되었다. 이케다의 큰형인 기이치(Kiichi)는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 1월 버마 임팔 작전에서 사망했다.[10]

1940년 3월 심상소학교를 졸업한 후, 형이 근무하는 '니가타 철공소'(新潟鐵工所)에 취직했다.[85] 같은 해 8월 늑막염을 앓아 이바라키 현의 결핵 요양소에 입원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중에 제2차 세계 대전 종전을 맞이하였다.[86] 1945년 9월 신바시(新橋)에 있는 '쇼분도 인쇄'(昭文堂印刷)에서 문선공으로 일하면서 사립 '도요 상업고등학교'(東洋商業高等學校)에 편입했다.[83]

19세의 이케다 다이사쿠


1946년 도쿄 도 오타 구 모리가자키에 있는 '협우회'(協友會)에 가입했다.[89][90] 고교 졸업과 동시에 쇼분도 인쇄를 퇴사하고, 반년 후 게이큐 가마타 역 안에 있는 중소기업 조합 '가마타 공업회'(蒲田工業會)(현 가마타 공업 협동 조합)에 근무했다.[91] 1947년 3월, 도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8월 14일 창가학회 좌담회에 참석하여 도다 조세이를 만나고 입신을 결심, 같은 해 8월 24일 창가학회에 입회했다.[90][92] 1948년 다이세이 학원(현 도쿄후지대학) 야간부 정경과에 입학하여 정치학을 전공했다. 1949년 1월 3일, 일본정학관에 입사하여 소년 잡지 『모험소년』(같은 해 8월에 『소년일본』으로 개제)의 편집에 참여하고, 같은 해 5월 일본정학관 편집장에 취임했다.[83][86] 같은 해 10월, 도쿄건설신용조합에 입사했다.

2. 2. 창가학회 입회 및 활동

1947년 8월 14일, 이케다 다이사쿠는 친구와 함께 창가학회 좌담회에 참석하여 도다 조세이를 만났고, 10일 후인 8월 24일에 창가학회에 입회하였다. 1948년 3월에는 도요무역학교를 졸업하고 다음 달 도쿄 후지 대학 야간부에 입학하여 정치학을 전공했다.[11] 1949년에는 도다 조세이가 운영하는 회사로 이직하여 출판 업무를 맡았으며, 이케다는 도다의 회사에서 발행하는 어린이 잡지 ''소년 일본(Shonen Nihon)''(소년 일본)의 편집자로 일했다.[12][11] 1950년 10월, 대장상사(현: 일장(日章))로 이동했다.[93]

1951년, 이케다 다이사쿠의 노력으로 도다 조세이는 창가학회 제2대 회장에 취임하였다. 같은 해 5월, 蒲田支部大森地区 지역 위원에 임명되고 7월에는 청년부(남자부) 제1부대장에 취임했다.[93] 1952년 3월, 참모실장에 취임했고, 5월 3일에는 시라키 가후코(白木香峯子)와 결혼했다.[83] 1953년 11월 25일, 장남 이케다 히로마사(池田博正)가 태어나면서 “다이사쿠(太作)”에서 “다이사쿠(大作)”로 개명했다.[83] 1953년, 25세의 나이에 이케다는 사카가이케의 청년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임명되었고, 이듬해인 1954년에는 사카가이케 홍보국 국장, 나중에는 참모총장이 되었다.[13][12] 1954년 3월 30일, 청년부 참모실장에 임명되었고,[83] 같은 날 설치된 “정보부” 최고 고문에 취임했다.[83] 같은 해 12월 3일, 신설된 섭외부장을 겸임했다.[83]

도다 조세이는 75만 세대 포교를 공약했고, 이케다 다이사쿠는 이를 달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1956년 참의원 선거에서 오사카에서 11,111세대 포교를 달성하였고, 1957년 12월, 창가학회는 75만 세대 포교를 달성하였다. 1957년 7월 4일, 참의원 오사카부 선거구의 보궐선거에서 일부 창가학회 회원이 후보 이름이 적힌 담배를 배포한 혐의로[94] 공직선거법 위반(매수) 혐의로 체포되어 오사카 동경찰서와 오사카 구치소(大阪拘置所)에 구류되었다.[95] 같은 해 7월 29일, 창가학회 간부 45명과 함께 기소되어 금고 10개월을 구형받았으나,[96] 이후 무죄가 확정되었다.[97]

1958년 3월, 도다 조세이는 다이세키사 총등산회를 개최하였고, 이케다 다이사쿠는 이 행사의 운영 및 총괄을 담당했다. 1958년 4월 2일, 도다 조세이가 사망했다(). 같은 해 6월, 신설된 총무를 청년부 참모실장과 겸임했고,[98] 1959년 6월 30일, 청년부 참모실장을 사임하고 창가학회 이사에 취임했다.[98]

2. 3. 창가학회 회장 취임 및 국제 활동

1960년 5월 3일, 이케다 다이사쿠는 도다 조세이의 뒤를 이어 창가학회 제3대 회장에 취임했다.[99] 그는 도다의 7회기까지 300만 세대의 포교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100] 같은 해 10월, 이케다는 하와이를 시작으로 북미와 남미를 방문하며 국제적인 활동을 시작했다.[101] 이후 40년 동안 54개 국가 및 지역을 방문하여 현지 회원들을 격려하고 각국 지도자 및 지식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101]

1961년 1월 28일, 아시아 6개국 및 지역을 방문했고,[101] 3월 27일에는 회원 세대 수 185만 세대를 달성했다.[101] 같은 해 10월 4일에는 유럽 9개국을 방문했다.[101] 1962년 1월 25일, 오사카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63년 7월 27일, 회원 세대 수 360만 세대를 달성했다.[101] 1964년에는 공명당을 결성했다.[103] 1965년 1월 1일부터 성교신문에 소설 인간혁명 연재를 시작했다. 1968년 9월 8일,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식 승인과 일중 국교 정상화, 중국의 UN 가입 등을 제안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 이케다는 아널드 J. 토인비를 비롯한 여러 저명인사들과 대담을 가졌다.[104] 1974년 9월에는 소련을 방문하여 알렉세이 코시긴 수상과 회담했다.

1975년 1월 26일, 세계 51개국 지역의 멤버들이 에 모여 국제창가학회(SGI)를 창립했고, 이케다는 SGI 회장에 취임했다.

1979년 창가학회 명예회장에 취임한 이후, 이케다는 해외 방문에 주력했다.[119] 1983년에는 UN 평화상을 수상했다.[123]

이케다는 중국일본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1968년 일중 국교 정상화 제언을 발표한 이래, 1974년에는 중국을 방문하여 저우언라이 총리와 회담했다.[61] 2007년에는 원자바오 총리,[158] 2008년에는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회담을 가졌다.[129]

1962년경


1962년 5월 27일 촬영


기후현 기후시에서 (1960년대)

2. 4. 창가학회 회장 사임 이후

1979년 4월 24일, 닛치렌쇼슈와의 문제로 창가학회 회장직에서 책임을 지고 사임했으며, 명예회장으로 취임했다.[117][83][118] 같은 해 4월 26일, 호케쿄 총강두(総講頭)직에서도 사임했다. 1990년 12월 27일, 닛치렌쇼슈는 호케쿄 소쿄토(法華講総講頭)에 임기제를 도입했고, 이에 따라 이케다는 임기 종료와 함께 호케쿄 소쿄토 자격을 자동 상실했다. 1991년 11월 28일, 닛치렌쇼슈는 창가학회를 파문했다.[124] 1992년 8월 11일에는 닛치렌쇼슈로부터 신도 제명 처분을 받았다.

1993년 10월, 소카가쿠카이가 닛칸(日寛)의 본존을 인쇄하여 회원들에게 배포했다.

1998년 11월 27일, 게이빈칸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장쩌민(江沢民)과 회담했다. 1999년 6월 4일에는 필리핀의 조세프 에스트라다 대통령과 회담했다.

2010년 5월 13일 본부 간부회 이후, 창가학회 내 공식 행사에 모두 불참했다.[130] 2023년 11월 15일, 도쿄도 신주쿠구 자택에서 노쇠로 사망했다.[136][78][137]

3. 철학 및 신념

이케다 다이사쿠는 스승 도다 조세이마키구치 쓰네사부로의 교육철학의 영향을 받아, 사람들 간의 신뢰 구축과 사회 평화의 기본으로서 대화와 교육을 강조했다.[42] 그는 중도를 이상주의와 물질주의 사이의 길로 해석한다.

이케다가 1964년 저서 『정치종교』(Seiji shūkyō)에서 사용한 용어 "오붓슈묘고(ōbutsu myōgō)"는 "자비와 이타심을 불교 철학으로 하는 백성에 의한 정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으며, 이는 정치와 종교의 결합(''세쿄 일치''(seikyo icchi))과는 다르다.[43] 이 용어는 이케다가 공명당 창당 선언에서도 사용했다.[44] 1969년판 『정치종교』에서 그는 "오붓슈묘고는 창가학회가 니치렌슈슈 불교를 국교로 삼기 위해 일본 국가에 의지를 강요하는 행위가 아니다"라고 선언하고, "창가학회는 공명당을 통해 일본을 새로운 민주적 세계 질서, 즉 불교 민주주의(''붓포 민슈 슈기''(buppo minshu shugi))로 이끌 것이다. 이는 법화경과 유럽-미국 철학 전통의 장점을 결합하여 사회복지와 인본주의적 사회주의에 중점을 둘 것이다"라고 주장했다.[45] 당시 그의 견해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전체 사회의 개인적 행복에 따른 사회적 번영" 달성을 전제로 한 고센루푸를 통한 "종교 혁명"을 통해 "불교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46] 1970년 이케다가 창가학회와 공명당의 공식적인 유대 관계 단절을 발표한 후 "오붓슈묘고"와 같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용어"의 사용은 중단되었다.[47]

이케다는 여러 저술에서 자기 변혁을 위한 중요한 개념으로 9 의식을 언급하며, 아홉 번째 의식인 "아말라-비냐나(Amalavijñāna)"를 불성과 동일시한다. 그에 따르면 한 개인의 의 변화는 전체 사회와 인류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48]

안보에 관해서, 「헌법 개정 논의는 좋지만, 헌법 제9조만큼은 절대 바꿔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159] 일본은 UN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희망하지만, 안전보장이사회의 중추인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개념과 그것을 금지하는 일본 헌법 사이에는 모순이 있으므로, 「국제연합 평화유지활동」(PKO)에 참가하기 위해 자위대와는 별도의 조직을 만드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1991년 제16회 「SGI의 날」 기념 제언). 1991년 걸프 전쟁 직전에는 5명의 지식인과 함께 「전쟁 회피를 위한 ‘긴급 호소’」를 이라크후세인 대통령에게 보냈다. 그러나 2003년 「이라크 전쟁」 개전이 임박했던 1월 26일 『세이쿄 신문』지상에서 「군사력을 전면 부정한다는 것은 (중략) 정치의 장에서의 옵션으로서는 반드시 현실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무력을 수반한 긴급 대응도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한 당당한 자세가 테러에 대한 억제 효과를 가져온다는 측면을 전혀 부정할 의도는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선거에 관련해서는, 1999년 SGI(창가학회 인터내셔널)의 날(1월 25일)자 『세이쿄 신문』에서 내각총리대신 공천제를 제안했다.

교육과 관련해서는, 『아사히 신문』(2001년 5월 23일자)의 「나의 시각」이라는 칼럼에서 「교육기본법」의 재검토에 대해 「성급함은 삼가야 한다」, 「『교육칙어』에 담겨 있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덕목은 기본법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법으로 제정되면 필연적으로 권위주의적인 색채를 띠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4. 주요 활동 및 업적

창가교육의 학사(學舍)인 소카가쿠인(중ㆍ고등학교)을 도쿄와 간사이에 설립하였다.

명예시민증 339개, 각종감사패 1500여개를 받기도 했다.

하버드 대학교, 모스크바 대학교 등에서 강연을 하였으며, 1983년 이후 매년 '국제창가학회의 날'인 1월 26일에 기념제언을 발표해 UN에 제출하고 있다.

2010년 6월에는 자연과의 대화 사진전을 개최하기도 했다.[215]

이케다 다이사쿠는 교육 및 문화 교류, 대화를 통한 평화 구축을 위해 여러 기관을 설립했다.[215] 소카가쿠인(중·고등학교)을 도쿄와 간사이에 설립하였고, 소카대학교와 소카대학교(Soka University of America)를 설립했다. 그 외에도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 문학관, 미국의 국제 평화 예술가 위원회, 일본의 민온 콘서트 협회 등을 설립했다.

이케다 다이사쿠는 교육, 문화 교류 및 대화를 통한 평화 구축을 위해 여러 기관을 설립했다.[49] 1963년에는 민주음악협회(민음)를 설립하여 오페라, 아르헨티나 탱고, 중국 경극 등 다양한 공연을 통해 112개 국가 및 지역과 문화 교류를 진행했으며, 누계 1억 2천만 명이 관람했다.[153] 음악 박물관과 민음 연구소 운영, 콩쿠르 사업, 청소년 음악 문화 진흥 사업도 전개하고 있다.[154] 1983년에는 도쿄 후지 미술관을 설립하여 세계 각국, 각 시대의 회화, 판화, 도자기, 무기, 도검, 메달, 사진 등 약 3만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155]

1983년부터 매년 '국제창가학회의 날'인 1월 26일에 기념 제언을 발표해 UN에 제출하고 있으며, 평화 문화 구축, 교육에서의 성평등, 여성의 권한 부여, 평화를 위한 청년의 권한 부여와 활동, 유엔 개혁, 세계 시민주의를 향한 보편적 인권 등의 분야를 다룬다.[49] 이케다의 핵무기 폐기 제안은 1978년, 1982년, 1988년 유엔총회 특별회의에 제출되었다.

하버드 대학교, 모스크바 대학교 등 세계 유수 대학에서 강연을 진행했다.[49] 강연은 다음과 같다:

연도대학교/기관국가
1974년 4월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미국
1975년 5월모스크바 대학교러시아
1980년 4월베이징 대학교중국
1981년 5월소피아 대학교불가리아
1983년 6월부쿠레슈티 대학교루마니아
1984년 6월베이징 대학교중국
1984년 6월푸단 대학교중국
1989년 6월프랑스 학사원프랑스
1990년 3월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아르헨티나
1990년 5월베이징 대학교중국
1991년 1월마카오 대학교마카오
1991년 4월필리핀 대학교필리핀
1991년 9월하버드 대학교미국
1992년 1월홍콩 중문대학교홍콩
1992년 2월간디 기념관인도
1992년 6월앙카라 대학교터키
1992년 10월중국사회과학원중국
1993년 1월클레어몬트 맥케나 대학교미국
1993년 2월브라질 문학 아카데미브라질
1993년 9월하버드 대학교미국
1994년 1월선전 대학교중국
1994년 5월모스크바 대학교러시아
1994년 6월볼로냐 대학교이탈리아
1995년 1월하와이 동서 센터미국
1995년 6월아테네오 문화·학술 협회스페인
1995년 11월트리부반 대학교네팔
1996년 6월사이먼 위젠탈 센터미국
1996년 6월컬럼비아 대학교미국
1996년 6월하바나 대학교쿠바
1996년 10월라지브 간디 현대 문제 연구소인도
2007년 3월팔레르모 대학교이탈리아[143]



1990년부터는 아브라함 쿠퍼 랍비, 사이먼 위젠탈 센터와 협력하여 일본의 반유대주의적 고정관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2010년 6월에는 자연과의 대화 사진전을 개최하기도 했다.[215] 지금까지 세계 각국의 정부, 문화기관 등의 요청을 받아 19개국 1지역, 31개 도시에서 44회에 이르는 전람회를 개최했다.[156]

이케다 다이사쿠는 자신의 여정, 만남, 대화를 "시민 외교"라고 묘사했다.[50][51] 세계 각국의 지도자 및 지식인들과 대담을 진행하고, 중일 관계 개선과 냉전 종식을 위해 노력했다.

1967년과 1970년 여러 차례에 걸쳐 판유럽 운동(Paneuropean Movement)의 창설자인 리하르트 폰 쿠덴호베-칼레르기를 만났고, 1974년에는 프랑스 소설가이자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와 대화를 나누었다.[55] 1975년 1월에는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 미소 간 핵 긴장 완화를 촉구했으며,[56] 같은 달 쿠르트 발트하임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핵무기 폐지 청원서를 제출했다.[57][58] 1990년대에는 넬슨 만델라와 만나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을 지원했다.[59]

중일전쟁으로 긴장 상태에 있던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1974년부터 여러 차례 중국을 방문하여 저우언라이 총리를 비롯한 중국 지도자들과 회담을 가졌다.[61] 1968년 9월 8일에는 "일중 국교 정상화 제언"을 발표했다. 1974년 5월 30일 중국의 초청으로 첫 방중하여 리셴녠 부총리와 회견했고,[157] 같은 해 12월 5일에는 덩샤오핑 부총리와 회견을 가졌으며, 저우언라이 총리와도 회견했다. 2007년 4월 12일 원자바오 총리와 회담했고,[158] 2008년 5월 8일에는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회담했다.[129] 중국 언론은 이케다를 1970년대 중일 외교 관계 정상화의 초기 지지자로 묘사한다.[62][63]

국가 지도자를 비롯하여 교육자, 문학가, 과학자, 예술가, 사회운동가 등과 수많은 면담을 진행했으며, 출판한 대담집은 50권에 달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인물로 저우언라이를 꼽으며, "명우(名優)처럼, 말이 알기 쉽고 깊이가 있다. 예리함과 따뜻함이 공존한다."라고 평가했다.

4. 1. 교육 기관 설립

이케다 다이사쿠는 교육 및 문화 교류, 대화를 통한 평화 구축을 위해 여러 기관을 설립했다.[215] 소카가쿠인(중·고등학교)을 도쿄와 간사이에 설립하였고, 소카대학교와 소카대학교(Soka University of America)를 설립했다. 그 외에도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 문학관, 미국의 국제 평화 예술가 위원회, 일본의 민온 콘서트 협회 등을 설립했다.

4. 2. 문화 및 평화 활동

이케다 다이사쿠는 교육, 문화 교류 및 대화를 통한 평화 구축을 위해 여러 기관을 설립했다.[49] 1963년에는 민주음악협회(민음)를 설립하여 오페라, 아르헨티나 탱고, 중국 경극 등 다양한 공연을 통해 112개 국가 및 지역과 문화 교류를 진행했으며, 누계 1억 2천만 명이 관람했다.[153] 음악 박물관과 민음 연구소 운영, 콩쿠르 사업, 청소년 음악 문화 진흥 사업도 전개하고 있다.[154] 1983년에는 도쿄 후지 미술관을 설립하여 세계 각국, 각 시대의 회화, 판화, 도자기, 무기, 도검, 메달, 사진 등 약 3만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155]

1983년부터 매년 '국제창가학회의 날'인 1월 26일에 기념 제언을 발표해 UN에 제출하고 있으며, 평화 문화 구축, 교육에서의 성평등, 여성의 권한 부여, 평화를 위한 청년의 권한 부여와 활동, 유엔 개혁, 세계 시민주의를 향한 보편적 인권 등의 분야를 다룬다.[49] 이케다의 핵무기 폐기 제안은 1978년, 1982년, 1988년 유엔총회 특별회의에 제출되었다.

하버드 대학교, 모스크바 대학교 등 세계 유수 대학에서 강연을 진행했다.[49] 강연은 다음과 같다:

연도대학교/기관국가
1974년 4월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미국
1975년 5월모스크바 대학교러시아
1980년 4월베이징 대학교중국
1981년 5월소피아 대학교불가리아
1983년 6월부쿠레슈티 대학교루마니아
1984년 6월베이징 대학교중국
1984년 6월푸단 대학교중국
1989년 6월프랑스 학사원프랑스
1990년 3월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아르헨티나
1990년 5월베이징 대학교중국
1991년 1월마카오 대학교마카오
1991년 4월필리핀 대학교필리핀
1991년 9월하버드 대학교미국
1992년 1월홍콩 중문대학교홍콩
1992년 2월간디 기념관인도
1992년 6월앙카라 대학교터키
1992년 10월중국사회과학원중국
1993년 1월클레어몬트 맥케나 대학교미국
1993년 2월브라질 문학 아카데미브라질
1993년 9월하버드 대학교미국
1994년 1월선전 대학교중국
1994년 5월모스크바 대학교러시아
1994년 6월볼로냐 대학교이탈리아
1995년 1월하와이 동서 센터미국
1995년 6월아테네오 문화·학술 협회스페인
1995년 11월트리부반 대학교네팔
1996년 6월사이먼 위젠탈 센터미국
1996년 6월컬럼비아 대학교미국
1996년 6월하바나 대학교쿠바
1996년 10월라지브 간디 현대 문제 연구소인도
2007년 3월팔레르모 대학교이탈리아[143]



1990년부터는 아브라함 쿠퍼 랍비, 사이먼 위젠탈 센터와 협력하여 일본의 반유대주의적 고정관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2010년 6월에는 자연과의 대화 사진전을 개최하기도 했다.[215] 지금까지 세계 각국의 정부, 문화기관 등의 요청을 받아 19개국 1지역, 31개 도시에서 44회에 이르는 전람회를 개최했다.[156]

4. 3. 시민 외교

이케다 다이사쿠는 자신의 여정, 만남, 대화를 "시민 외교"라고 묘사했다.[50][51] 세계 각국의 지도자 및 지식인들과 대담을 진행하고, 중일 관계 개선과 냉전 종식을 위해 노력했다.

1967년과 1970년 여러 차례에 걸쳐 판유럽 운동(Paneuropean Movement)의 창설자인 리하르트 폰 쿠덴호베-칼레르기를 만났고, 1974년에는 프랑스 소설가이자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와 대화를 나누었다.[55] 1975년 1월에는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 미소 간 핵 긴장 완화를 촉구했으며,[56] 같은 달 쿠르트 발트하임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핵무기 폐지 청원서를 제출했다.[57][58] 1990년대에는 넬슨 만델라와 만나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을 지원했다.[59]

중일전쟁으로 긴장 상태에 있던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1974년부터 여러 차례 중국을 방문하여 저우언라이 총리를 비롯한 중국 지도자들과 회담을 가졌다.[61] 1968년 9월 8일에는 "일중 국교 정상화 제언"을 발표했다. 1974년 5월 30일 중국의 초청으로 첫 방중하여 리셴녠 부총리와 회견했고,[157] 같은 해 12월 5일에는 덩샤오핑 부총리와 회견을 가졌으며, 저우언라이 총리와도 회견했다. 2007년 4월 12일 원자바오 총리와 회담했고,[158] 2008년 5월 8일에는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회담했다.[129] 중국 언론은 이케다를 1970년대 중일 외교 관계 정상화의 초기 지지자로 묘사한다.[62][63]

국가 지도자를 비롯하여 교육자, 문학가, 과학자, 예술가, 사회운동가 등과 수많은 면담을 진행했으며, 출판한 대담집은 50권에 달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인물로 저우언라이를 꼽으며, "명우(名優)처럼, 말이 알기 쉽고 깊이가 있다. 예리함과 따뜻함이 공존한다."라고 평가했다.

5. 논란 및 비판

이케다에 대한 학자들과 언론인들의 평가는 다양하다. 1994년 아시아 연구 교수 다니엘 메트로(Daniel Métraux)는 이케다를 "아마도 일본 근대사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8]

1996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이케다를 "일본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이자, 확실히 가장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라고 묘사하며, "악마이자 천사로, 독재자이자 민주주의자로 칭송받고 비난받았다"고 썼다.[24]

1984년, 이케다와의 대화 내용이 출판된 영국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의 손녀 폴리 토인비(Polly Toynbee)는 이케다의 초청으로 일본에서 그를 만났다. 방문 후 그녀는 이케다를 만난 소회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가디언''에 기고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일본으로 가는 긴 비행 중에 나는 처음으로 할아버지의 유작인 "삶을 선택하라 – 대화"를 읽었다. … 할아버지는 … 대화가 녹음될 당시 85세였고, 마지막으로 몸이 불편해지기 직전이었다. (…) 할아버지는 일본 방문 중 이케다를 만난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의 오랜 일본 친구들은 이케다가 할아버지의 기억을 과장되게 이용한 것에 분명히 기뻐하지 않았다. 수수께끼 같은 우리의 주최자를 만나기까지 며칠이 지났고,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이케다 씨와 그의 Soka Gakkai 운동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분명해진 것은 이것이 엄청난 부와 권력, 그리고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조직이라는 것이었다. (…) 그의 직업을 추측해보라고 한다면, 그를 종교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많은 권력자들 – 총리, 온갖 종류의 지도자들 –을 만났지만, 이케다 씨처럼 절대적인 권력의 아우라를 풍기는 사람은 평생 만나본 적이 없다."


  • 다나카 가쿠에이(전 총리, 자민당 간사장 경험자): 비서 하야사카 시게조에 따르면 "이케다 다이사쿠는 유연한 강철이다. 아무리 해도 넘어뜨릴 수 없다. 공명당은 법화의 북을 치는 히틀러 유겐트다."[84][176]
  • 이시하라 신타로: 1999년 도쿄도지사 선거를 앞둔 시기에, 이케다 다이사쿠에 대한 인물 평가를 물은 설문조사에 "한마디로 표현하면, '악한 천재, 거대한 속물'." 『주간 분슌』 헤이세이 11년(1999년) 3월 25일호.
  •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Jurnalul National(루마니아 국영 신문)에서 이케다를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 강한 자에게는 아첨하고, 약한 자에게는 오만한 태도로 임하는 소악당이라고 비판[177]

5. 1. 종교와 정치

이케다 다이사쿠는 1964년 공명당(1962-1998)을 창립[25][26][27]하면서 "정교분리(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28] 원칙 위반 혐의와 "광범위한 정치적 야망"[29]에 대한 비판에 직면했다.[28] 조지 어하르트(George Ehrhardt) 등은 "소카가쿠카이(創価学会)의 정치 무대 진출은 [...] 일본의 종교와 정치 관계를 영구적으로 변화시켰다"고 기술한다.[30]

많은 언론과 학자들은 소카가쿠카이와 공명당 사이에 여전히 "강력한 유대"[31][32]가 존재하며, 공명당이 소카가쿠카이의 "정치적 수단"[33][34][35]으로 남아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정치학자 스티븐 리드(Steven Reed) 등은 1970년 이케다 다이사쿠가 발표한 당과 종교 단체의 분리가 실질적인 차이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공명당을 소카가쿠카이의 단순한 정치 지부로 보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36] 다만, "소카가쿠카이 회의는 특히 선거를 앞두고 공명당 후보를 소개하고 당을 홍보하는 데 사용된다"고 덧붙였다.[36] 다니엘 메트로(Daniel Métraux)는 이케다가 정치적 경영에 개인적으로 시간을 거의 할애하지 않았다고 설명하며, 공명당이 이케다나 소카가쿠카이의 변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37]

1970년에는 후지와라 히로타츠(Hirotatsu Fujiwara)의 저서 『소카가이카이를 규탄한다(I denounce Soka Gakkai)』 출판 방해 의혹으로 언론의 자유 논란이 일었다.[38][39][12] 이케다는 이 논란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소카가쿠카이의 언론 자유와 종교의 자유에 대한 헌신을 재확인하며, 소카가쿠카이와 공명당 사이의 공식적인 분리를 선언했다.[12][40]

1982년 10월, 이케다는 세 건의 사건과 관련하여 법정에 출두해야 했다.[41] 1996년 자민당은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이케다의 증인 심문을 요구하기도 했다.[165]

5. 2. 개인 숭배

학자들과 언론인들은 이케다를 다양하게 평가한다. 1994년 다니엘 메트로(Daniel Métraux)는 이케다를 "아마도 일본 근대사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8] 1996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이케다를 "일본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이자, 확실히 가장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라고 묘사하며, "악마이자 천사로, 독재자이자 민주주의자로 칭송받고 비난받았다"고 썼다.[24]

1984년, 이케다와 대화를 나눈 아놀드 토인비의 손녀 폴리 토인비(Polly Toynbee)는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이케다를 만난 소회를 밝혔다. 그녀는 "나는 많은 권력자들 – 총리, 온갖 종류의 지도자들 –을 만났지만, 이케다 씨처럼 절대적인 권력의 아우라를 풍기는 사람은 평생 만나본 적이 없다."라고 썼다.

이케다는 『성교신문』에서 “역대 회장을 신격화해서는 안 된다”, “나를 절대시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며, 창가학회 회장은 신앙상의 지도자일 뿐, 자신을 포함한 역대 회장들은 신격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166] 한편, 창가학회와 대립하는 단체나 비판자들은 창가학회 회원들이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마키구치 츠네사부로(牧口常三郎), 토다 조세이(戸田城聖) 등 회장 3명을 개인숭배하며, 창가학회가 일련불교를 신봉하는 불교 단체 이상으로 실질적으로는 “이케다 교”가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한다. 1983년 10월 31일, 전 창가학회 간부인 야마자키 마사토모(山崎正友)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 이케다는 “일부 동지들이 기세를 부려 자신을 미화한 것이 아닌가”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불교학자인 마츠노 준코(松野純孝)는 이케다 다이사쿠 본불론은 “일련 본불론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하고 있다.

6. 대한민국과의 관계

부산광역시 기장군은 2002년 8월 6일 'SGI 이케다 거리'를 지정했다.[337] 한국SGI의 기관지 화광신문은 이케다의 일본과 한국·조선에 대한 견해를 여러 차례에 걸쳐 게재하고 있다.

6. 1. 방한 및 교류

6. 2. 수상 내역

이케다 다이사쿠는 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을 비롯하여 여러 상과 명예 학위를 받았다.[216]

  • 충청북도 진천군 'SGI 거리공원' 개원(2004년)[272], 부산광역시 기장군 'SGI 이케다 거리' 지정(2002년)[337]
  • 1988년 “국제이해를 위한 G. 라마찬드란상”을 수상했다.[151]
  • 1983년 유엔 평화상,[152] 1988년 유엔 명예표창, 1989년 라우레아나 로사레스 교육·인도상, 같은 해 평화 공헌·유엔 사무총장 표창 등을 받았다.
  • 모스크바대학교, 글래스고대학교, 볼로냐대학교, 프랑스 학사원, 나이로비대학교 등 해외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 및 명예교수 칭호를 받았다.[146]
  • 자신이 설립한 창가대학으로부터 명예교수(1974년), 명예박사 학위(1983년)를 받았다.[147]
  • 시즈오카현 후지노미야시 명예시민, 홋카이도 아쓰타무라(현 이시카리시) “명예주민”(1977년)으로 선정되었다.[148]
  • 2009년 오사카부 다카쓰키시로부터 “국제문화교류 공헌상”을 받았다.[149]
  • 로마클럽 명예 회원으로 임명되었다.
  • 2020년 현재 전 세계 도시와 지방 자치 단체로부터 760개 이상의 명예 시민권을 받았다.
  • 2016년 2월, 평화 시인의 국제의 날에 국제 평화 시인으로 선정되었다.


6. 3. 한국에 대한 인식

한국SGI의 기관지 화광신문은 이케다 다이사쿠의 일본과 한국·조선에 대한 견해를 여러 차례에 걸쳐 게재하고 있다.[160] 이케다는 한국을 '문화의 스승'이자 교육의 형님 나라로 존경한다고 하였다.[160]

도요토미 히데요시조선출병을 두고 조선으로부터 불교를 비롯한 여러 문화적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짓밟는 침략으로 강하게 비난했다.[161] 일본은 한국과의 우정을 통해 한국을 존중하고, 한국의 마음을 배워야만 평화와 번영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한국에 대해 오만해진다면 일본은 반드시 쇠퇴하여 멸망할 것이며, 이것이 만대(萬代)에 걸쳐 생명에 새겨야 할 역사관이자 인간의 도리라고 하였다.[162] 또한, 한국이 일본 문화의 ‘큰 은혜’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 불교를 포함하여 모든 것에 은혜를 입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하였다.[163]

7. 저서

이케다 다이사쿠는 『인간혁명』, 『신·인간혁명』, 『법화경의 지혜』 등 다수의 저서 및 대담집을 출판했다. 1976년에 출판된 『삶을 선택하라: 대화』(일본어: 二十世紀への胎動)는 1971년 이케다 다이사쿠와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 사이에 시작된 대화와 서신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71] 이 책은 인간의 조건에서부터 종교의 역할, 인류 문명의 미래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융합[71]을 비롯한 당대와 불변의 주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2012년 기준으로 26개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72] 그러나 토인비가 이케다와의 인터뷰로 "상당한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 비판을 불러일으켰다.[73]

1984년 출판된 저서 ''늦기 전에(Before It Is Too Late)''에서 이케다와 아우렐리오 페체이는 산업화의 생태적 결과에 있어 인간의 연관성을 논하며,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가져오기 위한 인간 행위에 대한 이해의 개혁을 촉구한다.[75]

''삶—수수께끼, 귀중한 보석(Life—An Enigma, a Precious Jewel)''(1982), ''생사의 신비를 풀다(Unlocking the Mysteries of Birth and Death)''(1984)에서는 불교적 존재론에 대한 논의를 통해 인간중심주의와 생명중심주의적 접근 방식에 대한 대안을 야생 동물 보호에 제시한다.[76]

루 마리노프와 이케다의 대담집 ''내면의 철학자(The Inner Philosopher)''(2012)는 동서양 고전 철학자들을 소개한다.

이케다의 가장 잘 알려진 출판물은 30권으로 된 자서전 소설인 인간혁명이다.

그의 저서로는 『인간혁명』, 『신・인간혁명』, 『나의 이력서』, 『젊은 시절의 일기』, 『잊을 수 없는 동지』, 『마음에 남는 사람들』, 『법화경의 지혜』, 『알렉산드로스의 결단』, 『청춘 대화』, 『어머니의 시』, 『미래를 향하여』, 『고맙습니다 한국』 등이 있다.

공동 저서로는 『문명: 서와 동』[194], 『혁명과 삶과 죽음』[195], 『고전을 말하다』[196], 『21세기를 여는 대화』[197], 『인생 질문답』[198], 『인간혁명과 인간의 조건』[199], 『사계의 기러기 편지: 왕복 서간』[200], 『어둠은 새벽을 구하며』[201], 『21세기로의 경종』[202], 『사회와 종교』[203], 『세 번째 무지개 다리: 인간과 평화의 탐구』[204], 『"평화"와 "인생"과 "철학"을 말하다』[205], 『내면의 세계: 인도와 일본』[206], 『21세기로의 인간과 철학: 새로운 인간상을 찾아서』[207], 『"생명의 세기"로의 탐구』[208], 『돈황의 광채: 아름다움과 인생을 말하다』[209], 『세계 시민의 대화: 평화와 인간과 UN을 중심으로』[210], 『위대한 영혼의 시』[211], 『대담・태양과 대지 개척의 노래: 브라질 이주 80년의 서민사』[212], 『"우주"와 "인간"의 로망을 말하다: 천문학과 불교의 대화』[213], 『덴버대학교 명예교육학 박사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의 발자취』[214] 등이 있다.

수필, 소설, 대담집 외에도 불교 철학 해설서, 어린이를 위한 동화 등을 집필했으며, 사진가이자 시인으로도 활동했다. 국가 지도자를 비롯하여 교육자, 문학가, 과학자, 예술가, 사회운동가 등과 수많은 면담을 진행했으며, 출판한 대담집은 50권에 달한다.

8. 가족

이케다 다이사쿠는 1952년 5월 3일 가네코(구 성 시라키 가네코)와 결혼했다.[189] 슬하에 이케다 히로마사, 이케다 시로히사(1984년 사망), 이케다 다카히로 세 아들을 두었다.[69] 이케다 히로마사는 SGI(Soka Gakkai International)의 부회장이자 일본 소카대학 이사이다.[69] 이케다 시로히사는 세이케이 중학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 10월 3일 29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사인은 위 천공이다. 이케다 다카히로는 소카학교 시스템의 이사이다.

이케다 다이사쿠의 아버지는 네노키치(ねのきち)[188][189], 어머니는 이치(いち)이다.[189] 이케다 다이사쿠는 5남으로, 형 4명이 있었고[190][191][192][193], 장남은 버마에서 전사했다.[190]

왼쪽부터 차남 이케다 시로히사, 장남 이케다 히로마사, 이케다 다이사쿠, 이케다 가네코, 이케다 타카히로 (1967년 1월)

참조

[1] 웹사이트 Daisaku Ikeda Profile http://www.soka.ac.j[...] Soka University 2013-02-22
[2] 서적 Soka Gakkai International: Japanese Buddhism on a Global Scale http://virginiarevie[...] Virginia Consortium of Asian Studies and the Virginia Review of Asian Studies
[3] 뉴스 Faith in Revolution https://tricycle.org[...] 2020-03-05
[4] 서적 Handbook of Contemporary Japanese Religions Brill 2012
[5] 서적 Soka Gakkai's Human Revolution: The Rise of a Mimetic Nation in Modern Japan University of Hawaii Press
[6] 웹사이트 University Founder https://www.soka.ac.[...] Soka University 2024-05-14
[7] 뉴스 Daisaku Ikeda, Who Led Influential Japanese Buddhist Group, Dies at 95 https://www.nytimes.[...] 2023-11-29
[8] 서적 The Soka Gakkai Revolution https://books.google[...] University Press of America 1994
[9] 웹사이트 The Death of Ikeda Daisaku https://observingjap[...] Substack 2024-05-14
[10] 웹사이트 Memories of My Eldest Brother https://www.daisakui[...] daisakuikeda.org 2024-12-17
[11] 웹사이트 Timeline http://www.daisakuik[...] daisakuikeda.org 2013-11-06
[12] 서적 Encountering the Dharma: Daisaku Ikeda, Soka Gakkai, and the Globalization of Buddhist Humanism https://openlibrar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6
[13] 서적 Prophets of peace: Pacifism and cultural identity in Japan's new religions. University of Hawai'i Press
[14] 논문 The transplantation of Soka Gakkai to Brazil: building "the closest organization to the heart of Ikeda-Sensei"
[15] 논문 The Political Ideology of Ikeda Daisaku, President of Soka Gakkai
[16] 서적 Global Religious Movements Across Borders: Sacred Service Routledge 2016-04-22
[17] 서적 New Religious Movements in the 21st Century: Legal, Political, and Social Challenges in Global Perspective Routledge 2004
[18] 논문 Why Did Ikeda Quit? https://nirc.nanzan-[...] 198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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