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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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제사상사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제 사상의 발전과정을 다루는 학문 분야이다. 초기 경제 사상은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중국의 범려, 고대 인도 차나키아의 저술에서 나타났으며, 중세 시대에는 토마스 아퀴나스, 둔스 스코투스, 이븐 할둔 등의 사상가들이 경제 문제를 다루었다. 중상주의는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을 지배한 경제 이론으로, 국가의 부를 금과 은의 축적으로 보았다. 18세기 영국의 계몽주의 시대에는 존 로크, 데이비드 흄 등이 중상주의를 비판하고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옹호했으며, 중농주의는 농업을 부의 원천으로 보았다. 고전 경제학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시작으로 맬서스, 리카도, 밀 등을 거치며 분업, 자유 무역, 노동 가치설 등을 강조했다. 19세기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통해 자본주의의 모순을 비판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했다. 신고전파 경제학은 한계 효용, 일반 균형, 시장 균형 등을 분석하며 미시 경제학을 발전시켰고, 제도주의는 경제 현상을 사회 제도와 연결하여 분석했다. 케인스주의는 유효 수요를 강조하며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장했고, 게임 이론은 경제 주체 간의 상호 작용을 분석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시카고 학파는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며 시장의 자유를 강조했고, 현대 경제학은 정보 경제학, 행동 경제학, 실험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로 분화되었다. 한국 경제 사상은 실학, 개화기 경제 사상 수용, 개발 독재, 민주화 이후 신자유주의, IMF 외환 위기, 케인스주의적 정책,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왔으며, 비유럽권에서는 농가, 실학, 경세론, 농본주의 등 다양한 경제 사상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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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상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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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사상사 | |
설명 | 경제 사상의 발전 연구 |
관련 분야 | |
분야 | 경제학 |
세부 분야 |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계량경제학, 실험경제학, 경제사, 공공경제학, 의료경제학, 환경경제학, 천연자원경제학, 농업경제학, 개발경제학, 국제경제학, 도시경제학, 공간경제학, 지역경제학, 경제지리학, 노동경제학, 교육경제학, 인구경제학, 인사경제학, 산업조직론, 법경제학, 문화경제학, 금융경제학, 행동경제학 |
경제학의 역사 | |
관련 학문 | 과학사 |
시대 | 초기 문명 고전 시대 중세 르네상스 과학 혁명 낭만주의 |
문명 지역 | 아프리카 비잔틴 중국 인도 이슬람 |
세부 분야 | |
자연과학 | 천문학사 생물학사 식물학사 화학사 생화학사 생태학사 지질학사 고생물학사 물리학사 |
수학 | 대수학사 미적분학사 조합론사 기하학사 논리학사 확률사 통계학사 삼각법사 |
사회과학 | 인류학사 경제사상사 지리학사 언어학사 정치학사 심리학사 사회학사 지속가능성사 |
기술 | 농학사 컴퓨터과학사 재료과학사 |
의학 | 의학사 |
2. 초기 경제 사상
차나키아가 저술한 아르타샤스트라는 현재 알려진 가장 오래된 경제 관련 문서 중 하나이다.[6] 아르타샤스트라는 베다, 안빅시키(상키아, 요가 및 로카야타 철학), 정부 과학, 경제 과학 (농업, 가축 및 무역의 바르타)의 네 가지 필수 지식 분야를 제시하며, 다른 모든 지식, 부, 인간 번영은 이 네 가지에서 파생된다고 주장한다.[7]
힌두교 텍스트인 베다 (기원전 1700–1100년)에는 경제 사상이 담겨 있으며, 특히 아타르바 베다 (기원전 1200년)가 이러한 사상을 가장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5]
헤시오도스는 호메로스와 동시대 인물로, 그의 시 일과 날에서 희소 자원 문제를 다루며 경제 사상의 기원에 관한 초기 저작을 남겼다.[3] 고대 도시 국가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초기 모델을 발전시켰다.[8]
플라톤은 《국가》에서 철학자-왕이 다스리는 이상적인 도시 국가를 설명하며 분업과 생산을 언급했다. 요제프 슘페터에 따르면, 플라톤은 부채에 대한 회계 단위로서의 돈, 즉 신용 화폐 이론을 최초로 옹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9] 플라톤은 또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사회 분열을 피하기 위해 집단 소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10]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플라톤의 철학자-왕의 통치 모델에 대한 비판으로 다양한 형태의 국가 (군주제, 귀족제, 입헌 정부, 참주제, 과두제, 민주주의)를 분석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원 공동 소유 모델을 과두적인 저주로 보았다. 그는 "인간 본성의 악함" 때문에 모든 것을 공유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11] 아리스토텔레스는 "재산은 사유 재산으로 하는 것이 분명히 더 낫지만, 그 사용은 공동으로 해야 한다. 입법자의 특별한 임무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자비로운 기질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계와 시장 교환의 일반적인 본질에 대해 논의하며, 단순히 축적을 위한 소매 거래에서의 교환은 "부당하게 비난받는다. 그것은 불명예스럽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12]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리대금을 매우 싫어했고, 독점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을 비웃었다.[16] 그는 플라톤의 신용 화폐 이론을 버리고, 돈이 그 기초가 되는 상품의 구매력에서 가치를 얻는 이론인 금속 화폐론을 옹호했다.
크세노폰의 ''오이코노미쿠스''(기원전 360년경)는 가계 관리와 농업에 관한 대화이다.
범려(도주공)(기원전 517년 출생)는 월왕 구천의 책사로, 경제 문제에 관해 저술하고 "황금" 사업 규칙을 개발했다. 기원전 81년의 염철론은 국가 개입과 자유 방임에 대한 최초의 기록된 논쟁 중 하나였다.[4]
2. 1. 고대 인도
차나키아가 저술한 아르타샤스트라는 현재 알려진 가장 오래된 경제 관련 문서 중 하나이다.[6] 아르타샤스트라는 베다, 안빅시키(상키아, 요가 및 로카야타 철학), 정부 과학, 경제 과학 (농업, 가축 및 무역의 바르타)의 네 가지 필수 지식 분야를 제시하며, 다른 모든 지식, 부, 인간 번영은 이 네 가지에서 파생된다고 주장한다.[7]힌두교 텍스트인 베다 (기원전 1700–1100년)에는 경제 사상이 담겨 있으며, 특히 아타르바 베다 (기원전 1200년)가 이러한 사상을 가장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5]
2. 2. 고대 그리스
헤시오도스는 호메로스와 동시대 인물로, 그의 시 일과 날에서 희소 자원 문제를 다루며 경제 사상의 기원에 관한 초기 저작을 남겼다.[3] 고대 도시 국가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초기 모델을 발전시켰다.[8]플라톤은 《국가》에서 철학자-왕이 다스리는 이상적인 도시 국가를 설명하며 분업과 생산을 언급했다. 요제프 슘페터에 따르면, 플라톤은 부채에 대한 회계 단위로서의 돈, 즉 신용 화폐 이론을 최초로 옹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9] 플라톤은 또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사회 분열을 피하기 위해 집단 소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10]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플라톤의 철학자-왕의 통치 모델에 대한 비판으로 다양한 형태의 국가 (군주제, 귀족제, 입헌 정부, 참주제, 과두제, 민주주의)를 분석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원 공동 소유 모델을 과두적인 저주로 보았다. 그는 "인간 본성의 악함" 때문에 모든 것을 공유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11] 아리스토텔레스는 "재산은 사유 재산으로 하는 것이 분명히 더 낫지만, 그 사용은 공동으로 해야 한다. 입법자의 특별한 임무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자비로운 기질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계와 시장 교환의 일반적인 본질에 대해 논의하며, 단순히 축적을 위한 소매 거래에서의 교환은 "부당하게 비난받는다. 그것은 불명예스럽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12]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리대금을 매우 싫어했고, 독점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을 비웃었다.[16] 그는 플라톤의 신용 화폐 이론을 버리고, 돈이 그 기초가 되는 상품의 구매력에서 가치를 얻는 이론인 금속 화폐론을 옹호했다.
크세노폰의 ''오이코노미쿠스''(기원전 360년경)는 가계 관리와 농업에 관한 대화이다.
2. 3. 고대 중국
범려(도주공)(기원전 517년 출생)는 월왕 구천의 책사로, 경제 문제에 관해 저술하고 "황금" 사업 규칙을 개발했다. 기원전 81년의 염철론은 국가 개입과 자유 방임에 대한 최초의 기록된 논쟁 중 하나였다.[4]3. 중세 시대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이탈리아의 신학자이자 경제 저술가로, 쾰른과 파리에서 가르쳤으며, 스콜라 학파의 일원이었다. 그는 ''신학대전''에서 정당 가격의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는 사회 질서 유지에 필요하며 생산 비용을 충당하기에 충분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구매자가 제품에 대한 절실한 필요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판매자가 가격을 올리는 것은 부도덕하다고 주장했다. 아퀴나스는 어떤 형태의 사기도 반대했으며, 자원을 활용하여 얻은 서비스 대신 항상 보상금을 지불할 것을 권고했다.
둔스 스코투스(1265–1308)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정당 가격개념을 비판하고, 노동 비용과 경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거래의 상호 이익을 옹호했다. 그는 상인들이 상품을 운송하고 대중에게 제공함으로써 필요하고 유용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했다.[18]
장 뷔리당(1300년경 ~ 1358년 이후)은 프랑스인 사제로, 돈의 가치를 금속 가치와 구매력으로 구분하고, 총체적인 수요와 공급이 시장 가격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이븐 할둔(1332–1406)은 문명의 생명 주기, 노동의 분업, 화폐의 가치에 대한 이론을 제시했으며, 세금과 정부의 역할에 대한 그의 생각은 공급 측면 경제학의 래퍼 곡선과 유사하다.[22]
니콜 오렘(1320–1382)은 화폐의 기원, 본질, 법, 그리고 변동에 관한 책을 저술하여, 화폐가 공공의 소유이며 정부가 통화 가치를 통제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피렌체의 성 안토니누스(1389–1459)는 도미니코회 수도사로, 피렌체 대교구의 대주교였다. 그는 국가가 상업 문제에 개입할 의무가 있으며,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요 저서인 "신학대전(summa theologica)"에서 그는 주로 가격, 정의 및 자본 이론에 대해 다루었다. 던스 스코투스처럼 그는 재화의 자연적 가치와 실용적 가치를 구분했다.
4. 중상주의
중상주의는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을 지배했던 경제 이론이자 정책이다.[23]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등 탐험가들의 항해 이후, 신세계 및 아시아와의 새로운 무역 기회가 열리면서, 각국의 군주들은 군사력 강화를 위해 중상주의 정책을 채택했다. 이는 국가의 군사력을 사용하여 지역 시장과 공급원을 보호하는 보호무역주의를 야기했다.
중상주의 이론가들은 국제 무역이 모든 국가에 동시에 이익을 줄 수 없다고 보았다. 이들은 돈과 귀금속만이 부의 유일한 원천이며, 제한된 자원은 국가 간에 배분되어야 하므로, 관세를 통해 수출을 장려하고 수입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군사력을 통해 뒷받침되는 흑자를 통해 긍정적인 무역 수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빅토르 데 리케티, 미라보 후작이 1763년 "중상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으며, 1776년 애덤 스미스는 이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대중화되었다.[23]
1517년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화폐수량설에 대한 최초의 논거를 발표했고, 1519년에는 그레샴의 법칙의 최초 형태를 발표했다. 1568년 프랑스의 장 보댕은 최초의 인플레이션 분석을 담은 ''말레스트루아에 대한 답변''을 출판했다.
1598년 프랑스의 중상주의 경제학자 바르텔레미 드 라페마는 국가를 번영으로 이끄는 보물과 부를 출판, 과소 소비 이론에 대한 최초의 언급을 했다.
1622년, 잉글랜드 상인 에드워드 미슬든과 제라드 말린스는 자유 무역과 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 필요성에 대한 논쟁을 시작했다. 1662년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페티는 "정치 산술"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통계 수학을 도입하여 최초의 과학적 경제학자가 되었다.
필리프 폰 횔니히크는 오스만-합스부르크 전쟁으로 위협받던 시대에 중상주의 정책에 대한 가장 명확한 진술 중 하나를 제시하며 국가 경제의 9가지 주요 규칙을 나열했다.[31]
1665년부터 1683년까지 장바티스트 콜베르는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 아래에서 재무 장관을 지냈으며, 주요 산업을 규제하기 위해 국가 길드를 설립했다. 1695년 프랑스 경제학자 피에르 르 페상, 시에르 드 부아길베르는 루이 14세에게 콜베르의 중상주의 정책을 종식시켜 달라고 호소하는 글을 썼다.
1696년 영국의 토ː리 국회의원이자 중상주의자인 찰스 다베넌트는 《동인도 무역에 관한 에세이》를 출판했다.
1767년 스코틀랜드의 중상주의 경제학자 제임스 스튜어트 경은 영어로 된 최초의 책인 『정치경제 원리 탐구』를 출판했다.
5. 영국의 계몽주의
존 로크는 《시민 정부에 관한 두 번째 논고》(1689)에서 사람들이 사회를 구성하며 사회는 그들의 재산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며,정부가 사람들의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8] 로크는 자신의 노동을 주변 환경과 결합할 때 재산권이 창출된다고 보았다.[39] 그는 가격과 화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1691년 국회의원에게 보낸 서한인 《이자율 인하와 화폐 가치 상승의 결과에 대한 몇 가지 고찰》(1691)에서 제시했으며, "모든 상품의 가격은 구매자와 판매자의 수의 비율에 따라 상승하거나 하락한다"는 규칙은 "사고 팔리는 모든 것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고 주장했다.[40]
데이비드 흄은 중상주의적 가정을 비난했다. 그는 무역의 유리한 균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37] 흄은 모든 수출 흑자는 금과 은의 수입으로 지불될 것이며, 이는 통화 공급을 증가시켜 물가를 상승시키고, 결국 수입과의 균형이 회복될 때까지 수출 감소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버나드 맨더빌은 인간의 행동을 더 낮은 차원과 더 높은 차원으로 나눌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의 더 높은 삶은 철학자와 통치자들이 정부와 사회 관계를 단순화하기 위해 도입한 허구일 뿐이며, 미덕은 상업적, 지적 발전에 있어 주권 국가에 해롭다고 주장했다. 그는 발명과 사치스러운 생활과 관련된 자본 (경제)의 순환을 통해 사회를 움직이고 진보시키는 것은 바로 악덕 (즉, 인간의 자기 중심적인 행동)이라고 보았다.
17세기 영국은 잉글랜드 내전, 찰스 1세의 처형, 올리버 크롬웰의 독재, 런던 대역병, 런던 대화재를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로마 가톨릭에 동조하는 찰스 2세의 왕정 복고는 혼란과 갈등을 초래했고, 그의 가톨릭 성향의 후계자 제임스 2세는 즉시 축출되었다. 오렌지공 윌리엄과 메리는 권리 장전에 동의하여 잉글랜드 의회가 명예 혁명에서 우위를 점하도록 했다.
이러한 격변에는 로버트 보일의 기체 압력 상수 발견(1660년)과 아이작 뉴턴 경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1687년) 출판이 포함된 일련의 주요 과학적 진보가 동반되었으며, 이는 뉴턴의 운동 법칙과 그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설명했다.
리처드 칸틸론(1680–1734)은 인간의 이성과 경제 세계의 시장 경쟁을 통해 자연 세계에서 뉴턴의 관성과 중력의 힘을 의식적으로 모방했다.[37] 그의 저서 ''일반 무역의 본질에 관한 에세이(Essay on the Nature of Commerce in General)''에서 그는 자유롭게 조정되는 시장 시스템에서 합리적인 사리사욕이 질서와 상호 호환 가능한 가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상주의 사상가들과 달리 부는 무역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에서 발견되었다.
더들리 노스(1641–1691)는 영국 재무부에서 일하면서 대부분의 중상주의 정책에 반대했다. 그의 저서 『무역에 관한 담론』(1691)은 익명으로 출판되었으며, 유리한 무역 수지가 필요하다는 가정을 반박했다. 그는 무역이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며, 전문화, 분업 및 모든 사람의 부를 증진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무역에 대한 규제가 이러한 이점에 간섭한다고 말했다.
6. 중농주의
프랑수아 케네는 농업을 부의 유일한 원천으로 보았으며, 농업 흑자가 임대료, 임금, 구매의 형태로 경제를 통해 순환한다고 주장했다.[48] 그는 규제가 모든 사회 계층에서 소득의 흐름을 방해하고 경제 발전을 저해한다고 보았다. 또한, 농부와 같은 생산 계층에 대한 세금을 줄이고, 토지 소유자와 같은 비생산 계층에 대한 세금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48]
자크 튀르고는 케네의 이론을 발전시켜 사회를 생산적인 농업 계층, 봉급생활자 계층, 토지 소유 계층으로 구분했다. 그는 토지의 순생산에만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상업과 산업의 완전한 자유를 옹호했다.[47] 빈센트 드 구르네는 자유 기업과 자유 무역을 옹호한 초기 중농주의자 중 한 명이었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B. 댄봄은 중농주의자들이 "도시의 인공성을 비난하고 더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을 칭찬했다. 그들은 농부들을 칭송했다."라고 썼다.[47]
중농주의는 혈액 순환과 같은 자연 과학의 영향을 받아 경제 전체에서 소득의 순환 흐름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7. 고전경제학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시장의 자율적인 조정 능력을 강조하고, 분업의 이점을 설명했다.[49] 그는 개인이 사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에 기여한다고 보았다.[50][51] 스미스는 노동가치설을 주장하였으며, 정부의 기능은 세가지로 한정해야 한다고 믿었다.[52][53] 또한 카르텔과 독점을 비판했다.[54][55] 윌리엄 피트 더 영거는 스미스의 사상을 바탕으로 세금 제안을 하고, 자유 무역을 옹호했다.[56]
토머스 맬서스는 인구 증가가 식량 생산 증가를 초과하여 빈곤을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맬서스의 덫) 데이비드 리카도는 비교우위론을 통해 자유 무역의 이점을 강조하고, 차액지대론을 통해 토지 소유자와 노동자, 자본가 간의 소득 분배를 설명했다.[60][61] 그는 경제가 정상 상태 경제로 향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정치경제학 원리에서 경제 성장의 한계와 정상 상태 경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63] 그는 제러미 벤담과 데이비드 리카도의 영향을 받았다.[62]
제러미 벤담은 공리주의를 통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58] 그는 무신론자였고, 교도소 개혁, 동물 권리 운동, 보편적 선거권, 언론의 자유, 자유 무역, 건강 보험을 옹호했다.
장바티스트 세는 세의 법칙을 통해 전체 경제에서 수요 부족이나 상품의 과잉 공급이 발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생산이 곧 수요이며, 화폐는 중립적이라고 보았다.
장 샤를 레오나르 드 시스몽디는 체계적인 공황 이론의 초기 저술가였다.
고전 경제학자들은 카를 마르크스에 의해 처음으로 한 그룹으로 언급되었다.[64] 이들은 노동 가치설을 지지했으며, 산업 혁명으로 인한 사회적 변화에 주목했다. 과소 소비 이론과 맨체스터 자본주의와 같은 주목할 만한 흐름이 있었다.
8. 19세기 사회주의
카를 마르크스는 자신의 저서 《자본론》에서 상품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착취적 본질을 비판했다.[65] 그는 상품이 이중적 가치, 즉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를 가진다고 설명하며, 잉여가치론과 사회적 필요 노동 시간 개념을 통해 노동 착취를 설명했다.[66]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는 노예제나 농노제와 같은 이전의 생산 방식과 달리, 실업자 예비군의 증가로 인해 임금에 대한 하향 압력이 발생하고, 이는 결국 구매력 저하와 수요 부족으로 이어져 경제 불황을 초래한다고 보았다.[65] 이러한 호황과 불황의 반복 속에서 이윤율 저하 경향이 나타나고,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계급 투쟁이 심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가 결국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로 이행할 것이라고 보았다.[65]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핵심적인 동료였다.
9. 신고전파 경제학
한계 혁명 이후, 경제학은 미적분을 사용한 수학적인 모형을 개발하고, 일반 균형 모형을 연구했다.[68][69][70]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 카를 멩거, 레옹 발라스는 한계 효용 이론을 발전시켜, 소비자의 선택과 수요를 설명했다. 특히 제번스는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을 예시로 들어 한계 효용 이론을 설명했다. 알프레드 마셜은 경제학 원리에서 수요와 공급 곡선을 통해 시장 가격 결정 과정을 설명하고, 부분 균형 분석을 발전시켰다.[68]
오스트리아 학파는 카를 멩거,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 프리드리히 폰 비저를 중심으로 자본 이론을 발전시키고, 경기 변동을 설명하려 했다.[79][80]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시장을 "자생적 질서"로 규정하고 사회 정의 개념을 비판했으며,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사회주의 비판에 영향을 받아 집산주의를 비판했다. 그는 저서 노예의 길과 치명적 자만을 통해 사회주의는 전체주의로 이어진다고 주장하며, 사유 재산이 문명의 탄생에 기여했다고 보았다.[82][83]
로잔 학파는 레옹 발라스와 빌프레도 파레토가 주도하여 일반 균형 이론과 파레토 효율성 이론을 발전시켰다.[70][71][72][73][74][75] 발라스는 한계 이론을 경제 전반으로 확장하여, 소비자 선호도 변화가 생산자에게 영향을 미쳐 시장 공급과 가격 균형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설명했다. 파레토는 어빙 피셔와 유사하게 경제학을 역학에 비유하여 수학적으로 설명하려 했다.[76][77][78]
미국의 경제학자 존 베이츠 클라크는 한계 혁명을 옹호했으며, 그의 저서인 『부의 분배』에서 클라크의 자본주의 법칙을 제시했다. 1947년에는 그를 기리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이 제정되었다.
10. 제도주의
소스타인 베블런(1857–1929)은 시카고 대학교에서 일했으며 "미국식 생활 방식"에 대한 초기 비판가 중 한 명이다.[84] 그는 1899년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물질적인 문화를 비판했고,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 부를 과시적 소비하는 부유층을 비난했다.[84] 1904년 저서 《기업론》에서 베블렌은 사람들이 사용하기 위한 생산과 순수한 이윤을 위한 생산을 구별하며, 전자가 종종 기업이 후자를 추구하기 때문에 방해받는다고 주장했다.[84] 생산량과 기술 발전은 기업 관행과 독점 창출로 인해 제한된다.[84] 기업은 기존 자본 투자를 보호하고 과도한 신용을 사용하며, 이는 불황을 초래하고 정치 권력에 대한 기업의 통제를 통해 군사 지출과 전쟁을 증가시킨다.[84] 소비주의와 이윤 추구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춘 이 두 권의 책은 변화를 옹호하지 않았다.[84]
1918년 그는 뉴욕으로 이주하여 잡지 ''다이얼''의 편집자로 일하기 시작했고, 1919년에는 찰스 A. 비어드, 제임스 하비 로빈슨, 존 듀이와 함께 뉴욕 사회 연구 학교(오늘날 더 뉴 스쿨)를 설립하는 데 기여했다.[84] 그는 또한 하워드 스콧이 1919년에 설립한 기술 동맹의 일원이기도 했다.[84] 1919년부터 1926년까지 베블렌은 더 뉴 스쿨에서 글을 쓰고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기술자들과 가격 체계』(1921)를 저술했다.[85]
1919년 예일 대학교의 경제학자 월튼 H. 해밀턴은 "제도경제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1934년, 존 R. 커먼스(1862–1945)는 경제가 독점, 대기업, 노동 분쟁, 변동하는 경기 순환을 포함하여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 간의 관계의 그물이라는 개념에 기초한 ''제도경제학'' (1934)을 출판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분쟁을 해결하는 데 관심이 있다. 커먼스는 정부가 상충하는 집단 간의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커먼스 자신은 정부 위원회 및 산업 위원회에서 자문 및 중재 업무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11. 계량경제학
랑나르 프리슈와 얀 틴베르헌은 1930년대 계량경제학 분야를 개척하여 1969년 최초의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바실리 레온티예프는 1936년 산업연관분석을 개발하여 경제 각 부문 간의 상호 의존성을 분석했고, 197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로런스 클라인은 계량 모델링 분야에서 컴퓨터의 사용을 개척했다. 존 터키가 1963~1964년 고속 푸리에 변환을 개발하는 동안, 그의 영국인 조수 클라이브 그레인저는 경제학에서 푸리에 변환을 사용하는 것을 개척하여 2003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트리그베 하벨모는 계량경제학의 확률적 기초를 명확히 하고 동시 경제 구조를 분석한 공로로 198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12. 케인스주의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에서 유효 수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을 통해 경기 침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107] 케인스주의는 대공황 이후 세계 경제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뉴딜 정책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109]
앨프리드 마셜의 제자였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거시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경기 불황 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강조했다.[97] 그는 베르사유 조약에서 영국 정부의 재정 대표로 활동하면서, 독일을 향한 보복적인 분위기와 전쟁 배상금 강요가 세계 금융 위기를 발생시켜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98][99][100]
대공황 기간 동안 케인스는 그의 가장 중요한 저서인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1936)을 출판했다. 그는 이 책에서 통화 공급 외에도, 소비 성향, 투자 유인, 자본의 한계 효율, 유동성 선호, 승수 효과 등의 요인들이 경제 활동을 결정하며, 시장의 장기 균형이 스스로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특히, 저축이 금융 시장의 투자에서 억제된다면, 총 지출이 감소하여 소득과 실업이 증가하고, 이는 다시 저축을 감소시키는 악순환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케인스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낮은 이자율과 완화된 신용을 옹호했으며, 1930년대에는 공공 부문의 적극적인 적자 지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뉴딜 정책을 지지하며, 불로 소득에 대한 과세와 더 평등한 소득 분배를 옹호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케인스는 영국 재무부(HM Treasury)의 고문으로 활동하며 국제 통화 기금(IMF), 세계 은행, 국제 무역 기구 설립에 기여했다.[106] 그의 아이디어는 브레튼 우즈 회의에서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고, 모든 서방 정부는 위기를 막고 완전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적자 지출을 하는 케인즈 경제학 프로그램을 따랐다.
케인스의 케임브리지 서커스(경제학) 동료였던 조앤 로빈슨은 경쟁이 시장에서 거의 완전하지 않다는 개념에 기여했다. 알프레드 아이크너는 신고전주의 가격 메커니즘에 도전하고 가격이 수요와 공급을 통해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마크업 가격 책정을 통해 설정된다고 주장했다. 리처드 칸, 칸 남작은 1931년 승수(경제학)를 제안했다. 피에로 스라파는 상품이 상품에 의해 생산되는 방식을 설명하는 ''상품 생산''을 출판했다. 존 힉스는 1937년 IS/LM 모형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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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에드먼드 펠프스와 존 B. 테일러는 임금 및 가격의 단계적 설정이 통화 정책이 경제 변동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증명했다.[110] 1985년, 조지 애컬로프와 재닛 옐런은 메뉴 비용 논쟁을 발표했다.[111] 1987년, 휴 딕슨은 재정 승수가 불완전 경쟁 정도에 따라 증가할 수 있음을 보였다.[112] 1997년, 마이클 우드포드와 훌리오 로템버그는 미시적 기초를 둔 DSGE 신 케인즈 거시 경제 모델을 설명하는 최초의 논문을 발표했다.
13. 게임이론
존 폰 노이만과 오스카 모르겐슈테른은 1944년 《게임의 이론과 경제 행위》를 출간하여 게임 이론을 경제학에 도입했다.[124] 이는 경제 주체 간의 상호 작용을 분석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존 포브스 내쉬 주니어는 1951년 '비협력 게임(Non-Cooperative Games)'이라는 논문을 통해 비영합 게임에 대한 내시 균형을 처음으로 정의하여 게임 이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4. 시카고 학파
시카고 대학교를 중심으로 생겨난 학파로 미국학파라고도 하며 신자유주의로 분류된다. 밀턴 프리드먼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며, 정부의 경제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자유를 강조했다.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은 20세기 후반의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중 한 명이며,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대공황이 연방 준비 제도의 정책에 의해 발생했다고 주장한 ''미국의 통화사''(1963)로 알려져 있다. 프리드먼은 자유방임적 정부 정책이 정부의 경제 개입보다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며, 정부는 통화 공급의 점진적인 확대를 통해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지향하는 중립적인 통화 정책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일반적인 물가가 돈에 의해 결정된다는 화폐 수량설을 옹호했다. ''자본주의와 자유''(1962)에서 프리드먼은 다음과 같이 썼다.
통화주의를 통해 통화량 조절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정책을 제시했다. 프리드먼은 또한 소비 함수, 항상 소득 가설(1957)에 대한 연구로도 알려져 있는데, 프리드먼은 이를 자신의 최고의 과학적 업적이라고 언급했다.[119] 다른 중요한 기여로는 필립스 곡선에 대한 그의 비판과 자연 실업률의 개념(1968)이 있다.
로널드 코스(1910–2013)는 법에 대한 가장 저명한 경제 분석가였으며, 199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였다. 그의 첫 번째 주요 논문인 ''기업의 본질''(1937)은 기업(회사, 파트너십 등)이 존재하는 이유가 거래 비용의 존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두 번째 주요 논문 ''사회적 비용의 문제''(1960)는 만약 우리가 거래 비용이 없는 세상에 산다면, 사람들은 법원이 재산 분쟁에서 어떻게 판결하든 상관없이 동일한 자원 배분을 만들기 위해 서로 협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코스는 판사가 제과업자가 기계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판결하든, 아니면 의사가 그 기계를 견뎌야 한다고 판결하든, 그들은 누가 집을 옮길지에 대해 상호 이익이 되는 협상을 하여 자원 분배의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거래 비용의 존재뿐이다.[115] 따라서 법은 ''일어날'' 일을 선점하고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에 따라야 한다. 코스와 그와 같은 사람들은 시장에 개입하는 정부에게 행동의 비용을 분석하여 긍정적인 영향에 대한 입증 책임을 지도록 하는 접근 방식의 변화를 원했다.[117]
1960년대에 시카고 학파 경제학의 게리 베커(1930–2014)와 제이콥 민서(1922–2006)는 ''신가정경제학''을 창시했고, 이는 가족 경제학을 낳았다.
1973년 코스의 제자인 리처드 포즈너(1939–)는 ''법의 경제적 분석''을 출판했는데, 이는 표준 교과서가 되었고, 그를 20세기의 가장 많이 인용된 법학자로 만들었다. 1981년 그는 ''정의의 경제학''을 출판했는데, 이는 판사들이 일반법을 경제적 복지를 극대화하려는 것처럼 해석해 왔다고 주장했다.
15. 현대 경제 사상의 분화
현대 경제학은 다양한 학파로 분화되어 발전했다. 특히, 정보의 비대칭성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정보경제학 분야에서는 조지 애컬로프가 1970년 발표한 논문 ''레몬 시장''을 통해 정보경제학 이론을 창시했으며,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132][133] 조지프 스티글리츠 역시 정보경제학 분야에 기여하여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스티글리츠는 세계 은행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했으며, ''세계화의 긍정적 활용 (Making Globalization Work)''(2007)에서 신고전학 모형이 완벽한 정보의 부재, 정보 획득 비용, 핵심 위험 및 자본 시장의 부재나 불완전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고려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132]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심리적 요인이 경제적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분야로, 대니얼 카너먼, 리처드 탈러 등이 대표적인 학자이다. 또한, 실험경제학 분야에서는 버논 스미스가 경제 현상을 실험실에서 재현하여 연구하는 방법론을 개척했다.
16. 한국 경제 사상의 흐름과 한국적 수용
조선시대 실학 사상은 농업을 중시하고 상공업 발전을 통해 국가 경제를 부흥시키고자 했다는 점에서 중농주의와 유사한 면모를 보였다.[37] 개화기에는 서구의 경제 사상을 수용하면서 자주적 근대화를 추구했으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식민지 경제 체제에 편입되었다.
해방 이후, 한국 전쟁과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개발 독재 시대에는 수출 주도형 경제 성장 정책이 추진되었다. 민주화 이후에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혁이 이루어졌으며, IMF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경제 양극화와 사회 불평등 심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졌다. 이에 따라 케인스주의적 정책과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130]
17. 비유럽권 경제 사상
제자백가의 농가는 농업을 중시하고 자급자족 경제를 이상적인 형태로 보았다. 조선 후기 경세치용의 학(실학)자들은 농업 생산성 향상, 상공업 진흥, 기술 개발 등을 통해 국가 경제 발전을 추구했다. 경세론은 국가를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로, 경제 정책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했다. 농본주의는 농업을 국가 경제의 근본으로 보고, 농업 생산력 증진과 농민 생활 안정을 강조했다.
18.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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