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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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역사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정착으로 시작되어 유럽 식민지 시대를 거쳐 독립, 성장, 그리고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1776년 독립 이후 미국은 영토를 확장하며 노예제 문제로 남북 전쟁을 겪었고, 이후 산업화와 서부 개척을 통해 급성장했다. 20세기에는 세계 대전과 냉전을 겪으며 초강대국으로 부상했고, 신자유주의 정책과 테러와의 전쟁, 그리고 경제 위기를 겪었다. 최근에는 인종, 사회 문제, 정치적 양극화, 팬데믹을 겪으며 변화를 겪고 있다.
현재 미국이 있는 아메리카 대륙은 유럽 국가들이 식민지로 삼기 전 오랜 기간 동안 미국 원주민의 땅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학설은 여러 갈래여서 아직까지도 정확한 이동 경로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약 30,000년 전[393] 베링 육교를 건너 시베리아에서 알래스카를 통해 남북 아메리카 각지로 분산되어 갔고, 이러한 이주는 마지막 빙기가 끝나고 육교가 물에 잠기는 1만년 전까지 이어졌다고 알려져 있다.[394] 이들 몽고계 종족들은 15,000년 전 빙하기에 수위가 낮아져 다리처럼 연결되었던 베링 육교를 건너 알래스카로 이동한 뒤, 북아메리카 전역에 퍼져 살게 되었다는 설과 역시 몽고계 종족이 태평양을 항해했다는 설, 그리고 남태평양의 아시아계 종족들이 바다를 건너 남아메리카에 도착했다는 설 등이 있다.
2. 식민지 이전 시대

북아메리카 대륙에 처음으로 거주한 사람들은 아시아 계통의 몽골로이드였다. 이들 인디언은 빙하기였던 약 3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 사이에, 결빙된 베링 해 등을 건너 시베리아에서 알래스카를 경유하여 광대한 북·남아메리카 대륙 각지로 분산되어 갔다. 이러한 사람들 인디언은 모계 사회에 의한 독자적인 문화를 키웠지만, 광대한 토지에 비하면 인구는 극히 적었다. 인디언에 의한 통일된 정체성은 발생하지 않고, 부족 각각이 독자적인 국가를 형성하는 형태로 분산되었다.
근세까지 북아메리카에는 라틴 아메리카에 필적하는 인디언 문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졌지만, 최근 발굴이 진행되면서, 8세기부터 16세기경까지 지속되었다고 여겨지는 미시시피 문화의 존재가, 마운드(토루)군이라고 불리는 분묘 유적에 의해 확인되었다. 그 중 가장 대규모인 것은 일리노이주세인트루이스 교외의 카호키아라고 불리는 대유적으로, 최성기에는 1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 거대한 유적은, 1982년에 "카호키아 마운드 주립 사적"으로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10세기 말경 노르만인(바이킹)의 항해사 레이프 에릭손이 이끄는 선단이 북미에 도달하여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고 사가에 기록되어 있다. 일행은 현재의 캐나다의 배핀 섬에 도달하여, 그대로 남하하여 뉴잉글랜드에서 뉴욕주 일대를 새로운 땅으로 하여 "빈란드"라고 이름 짓고 정착을 시도했지만, 원주민인 스크렐링과 융화되지 못하고 항쟁으로 발전하여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10년 정도 만에 포기되어 레이프 에릭손 일행은 원래의 정착지인 그린란드에 돌아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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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는, 캐나다의 뉴펀들랜드 섬에서 그들의 정착지 유적인 란스 오 메도우가 발견되어 세계유산에 등록되는 등, 그들의 존재는 인지되게 되었지만, 당시 그들이 신대륙에 도달했다는 정보는 유럽 제국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고, 정착이 좌절되고 영유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아메리카 대륙의 "백인 최초의 발견자"로 여겨지지 않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만큼의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 현 상황이다.
2. 1. 아메리카 원주민의 이주와 정착
현재 미국이 있는 아메리카 대륙은 유럽 국가들이 식민지로 삼기 전 오랜 기간 동안 미국 원주민의 땅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학설은 여러 갈래여서 아직까지도 정확한 이동 경로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약 30,000년 전[393] 베링 육교를 건너 시베리아에서 알래스카를 통해 남북 아메리카 각지로 분산되어 갔고, 이러한 이주는 마지막 빙기가 끝나고 육교가 물에 잠기는 1만년 전까지 이어졌다고 알려져 있다.[394] 이들은 고(古)인디언이라 불리며, 곧 수백 개의 문화적으로 뚜렷한 집단으로 다양화되었다. 알프레드 크로버에 따른 콜럼버스 이전 북아메리카의 문화 지역이 존재했다.

기원전 10,000년경에 북아메리카 전역에 인간이 정착했다. 원래 고(古)인디언은 빙하기 거대동물인 매머드를 사냥했지만, 매머드가 멸종되기 시작하면서 식량원으로 들소로 전환했고, 이후에는 열매와 씨앗을 채집했다. 멕시코 중부에 살던 고(古)인디언은 기원전 8,000년경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농사를 지었다. 결국, 그 지식은 북쪽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기원전 3,000년경에는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계곡에서 옥수수가 재배되었고, 이어서 원시적인 관개 시스템이 도입되었으며, 기원전 300년경에는 호호캄의 초기 마을이 형성되었다.
현재의 미국에서 초기 문화 중 하나는 클로비스 문화 (기원전 9,100년~8,850년)였으며, 이들은 클로비스 점이라고 불리는 홈이 파인 창 촉의 사용으로 주로 식별된다. 폴섬 문화도 유사하지만, 폴섬 점의 사용으로 구별된다. 기원전 8,000년경에 이루어진 후기 이주에는 나데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포함되었으며, 이들은 기원전 5,000년경에 태평양 북서부에 도착했다.[2] 그곳에서 그들은 태평양 연안을 따라 내륙으로 이주했다.[3] 또 다른 집단인 오샤라 전통 사람들은 기원전 5,500년부터 서기 600년까지 살았으며, 고대 남서부의 일부였다.
애데나 문화는 기원전 600년경부터 대규모 토루 언덕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가장 초기의 알려진 마운드 빌더였지만, 이 문화보다 앞선 언덕들이 미국에 존재한다. 애데나인들은 넓은 지역에 걸쳐 도구와 물품을 교역했던 강력한 민족인 호프웰 전통에 흡수되었다. 그들은 언덕 건설의 애데나 전통을 이어갔으며, 호프웰 교환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교역 시스템을 개척했는데, 이 시스템은 최대 규모로 현재의 남동부에서 온타리오 호수 캐나다 측까지 뻗어 있었다.[4] 500년경까지 호프웰인들은 더 큰 미시시피 문화에 흡수되었다.
미시시피인들은 광범위한 부족 집단이었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도시는 현대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근처의 카호키아였다. 12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한 이 도시의 추정 인구는 2만 명으로 당시 런던의 인구보다 많았다. 도시 전체는 30m 높이의 언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카호키아는 당시의 다른 많은 도시와 마을처럼 사냥, 채집, 교역, 농업에 의존했으며, 마야와 같은 남쪽 사회의 영향을 받아 노예와 인신 제사를 포함하는 계급 시스템을 개발했다.
미국 남서부에서 아나사지는 기원전 900년경부터 석조 및 흙벽돌 푸에블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5] 이러한 아파트와 같은 구조물은 종종 메사 베르데의 절벽 궁전에서 볼 수 있듯이 절벽면에 건설되었다. 일부는 도시 규모로 성장했는데, 뉴멕시코의 차코 강을 따라 위치한 푸에블로 보니토는 한때 800개의 방으로 구성되었다.
태평양 북서부 원주민은 아마도 가장 부유한 아메리카 원주민이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많은 뚜렷한 문화 집단과 정치 단체가 발전했지만, 그들은 모두 연어를 자원과 영적 상징으로 삼는 것을 포함하여 특정한 신념, 전통 및 관행을 공유했다. 기원전 1,000년경부터 이 지역에 영구적인 마을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러한 공동체는 포틀래치라는 선물 증정 잔치로 축하했다.
오늘날의 뉴욕주 북부에서 이로쿼이는 15세기 중반에 오네이다, 모호크, 오논다가, 카유가, 세네카로 구성된 부족 연맹인 연맹을 형성했다.[6][7] 각 부족은 50명의 사켐 추장 그룹에 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로쿼이는 강력하여 많은 이웃 부족과 전쟁을 벌였고, 나중에는 유럽인과도 전쟁을 벌였다. 그들의 영토가 확장되면서 오세이지, 카, 폰카, 오마하를 포함한 더 작은 부족들이 더 서쪽으로 밀려났다.[8]
10세기 말경 노르만인(바이킹)의 항해사 레이프 에릭손이 이끄는 선단이 북미에 도달하여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고 사가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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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현재의 캐나다의 배핀 섬에 도달하여, 그대로 남하하여 뉴잉글랜드에서 뉴욕주 일대를 새로운 땅으로 하여 "빈란드"라고 이름 짓고 정착을 시도했지만, 원주민인 스크렐링과 융화되지 못하고 항쟁으로 발전하여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10년 정도 만에 포기되어 레이프 에릭손 일행은 원래의 정착지인 그린란드에 돌아갔다고 한다. 현재에는, 캐나다의 뉴펀들랜드 섬에서 그들의 정착지 유적인 란스 오 메도우가 발견되어 세계유산에 등록되는 등, 그들의 존재는 인지되게 되었지만, 당시 그들이 신대륙에 도달했다는 정보는 유럽 제국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고, 정착이 좌절되고 영유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아메리카 대륙의 "백인 최초의 발견자"로 여겨지지 않고 있다.
2. 2. 유럽인의 도래와 식민지 건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항해(1492년 시작) 이후, 스페인 탐험가들은 현재의 미국에 도달한 노르드인 다음의 첫 번째 유럽인들이었다. 이들은 현대의 푸에르토리코와 미국령 버진 아일랜드 일부를 포함한 스페인령 서인도 제도의 소유권을 확립했다.[19] 후안 폰세 데 레온은 1513년 플로리다에 상륙했다.[19] 스페인 원정대는 빠르게 애팔래치아 산맥, 미시시피강, 그랜드 캐니언[20], 그리고 대평원에 도달했다. 1539년, 에르난도 데 소토는 남동부를 광범위하게 탐험했으며, 1년 후 프란시스코 코로라도는 금을 찾아 애리조나에서 캔자스 중부까지 탐험했다. 코로라도 일행에서 탈출한 말들이 대평원으로 퍼져 나갔고, 평원 인디언들은 몇 세대 안에 기마술을 익혔다. 작은 스페인 정착지는 결국 샌안토니오, 앨버커키, 투손,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중요한 도시로 성장했다.[21]
조반니 다 베라차노는 1524년 노스캐롤라이나에 상륙했으며, 뉴욕 항과 내러갠셋 만에 항해한 최초의 유럽인이었다. 1540년대에는 프랑스 위그노들이 현재의 플로리다주 잭슨빌 근처의 포트 캐롤라인에 정착했다. 1565년, 페드로 메넨데스가 이끄는 스페인군은 이 정착지를 파괴하고 미국이 될 지역에 최초의 스페인 정착지인 세인트 오거스틴을 건설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1609년 탐험가 헨리 허드슨을 아시아로 가는 북서 항로를 찾도록 보냈다. 뉴네덜란드는 1621년 회사에 의해 설립되어 북아메리카 모피 무역을 이용했다. 처음에는 네덜란드의 관리 부실과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갈등으로 성장이 더뎠다. 네덜란드가 아메리카 원주민으로부터 맨해튼 섬을 매입한 후, 그 땅은 뉴 암스테르담으로 명명되었고 뉴네덜란드의 수도가 되었다. 도시는 빠르게 확장되었고 1600년대 중반에 중요한 무역 중심지가 되었다. 칼뱅주의자였고 미국 개혁 교회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는 다른 종교와 문화를 관대하게 대했으며 북쪽의 이로쿼이와 무역을 했다. 이 식민지는 뉴잉글랜드 연합으로부터의 영국 확장을 막는 장벽 역할을 했고, 그 결과 영-네덜란드 전쟁이 일어났다. 이 식민지는 1664년 영국에 의해 뉴욕으로 점령되었고, 수도는 뉴욕시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스웨덴 제국 초기에 스웨덴, 네덜란드, 독일 주주들은 북아메리카에서 모피와 담배를 거래하기 위해 뉴 스웨덴 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의 첫 번째 탐험대는 1626년부터 1631년까지 뉴네덜란드의 총독이었던 피터 미누잇이 이끌었으며, 1638년 3월 델라웨어 만에 상륙했다. 정착민들은 현재의 윌밍턴 (델라웨어) 지역에 크리스티나 요새를 건설하고, 델라웨어 강 양쪽의 토지 소유를 위해 원주민과 조약을 맺었다.[22][23] 이후 17년 동안 12차례의 탐험대를 통해 스웨덴 제국에서 온 정착민들이 뉴 스웨덴으로 이주했다. 이 식민지는 현대의 메릴랜드, 펜실베이니아, 뉴저지에 걸쳐 많은 농장과 함께 19개의 영구적인 정착지를 건설했다. 이는 제2차 북방 전쟁 중 인접한 뉴네덜란드 식민지로부터의 네덜란드 침략 이후 1655년 뉴네덜란드에 합병되었다.[22][23]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퀘벡과 아카디아 (현대 캐나다)에 살았지만,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광범위한 무역 관계를 통해 그들의 영향력을 넓혔다. 미시시피강과 일리노이강을 따라 작은 마을에 살던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은 걸프 해안 정착지를 위한 곡물 공급원 역할을 하는 농업 공동체에 살았다. 프랑스는 뉴올리언스, 모빌과 빌록시에 정착하면서 루이지애나에 농장을 건설했다.
유럽인들은 말, 소, 돼지를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져왔고, 옥수수, 칠면조, 토마토, 감자, 담배, 콩, 호박 등을 유럽으로 가져갔다. 많은 탐험가와 초기 정착민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새로운 질병에 노출된 후 사망했다. 그러나 식민지인들이 옮겨온 새로운 유라시아 질병, 특히 천연두와 홍역의 영향은 면역력이 없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훨씬 더 심각했다. 그들은 유행병으로 고통받았고, 대규모 유럽 정착이 시작되기 전에 매우 많은 수로 사망했다. 그들의 사회는 엄청난 규모의 죽음으로 인해 붕괴되었다.[17][18]
아메리카에 대한 최초의 기록된 유럽 언급은 1075년경 중세 연대기 작가 브레멘의 아담의 함마부르크 교회 주교 연대기에서 이루어졌으며, 여기서는 빈란드라고 언급되었다. 그것은 또한 노르만 빈란드 사가에서도 광범위하게 언급된다. 아메리카에 노르드인 정착지가 존재한다는 가장 강력한 고고학적 증거는 캐나다에 위치해 있다; 노르드 탐험가들이 뉴잉글랜드에도 상륙했는지에 대해 상당한 학문적 논쟁이 있다.[16]
3. 식민지 시대 (1493-1776)



유럽에서 르네상스가 꽃피던 시기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원양 항해 기술을 발달시켜 대항해 시대가 열렸다.[395]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스페인 여왕의 승인을 받아 대서양을 건너 1492년 서인도 제도에 도달했다. 이후 영국인 존 캐벗이 북미 대륙 동해안을 탐사하여 뉴잉글랜드 식민지를 건설했고, 프랑스인 자크 카르티에는 세인트로렌스강을 거슬러 올라가 캐나다 식민지를 건설하는 등 서구인에 의한 아메리카 대륙 탐험, 개척,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영토 약탈과 학살이 시작되었다. '콜럼버스 데이'는 인디언 학살의 상징으로 여겨져 매년 미국에서 인디언들이 시위를 벌인다.
1607년 영국인들이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에 정착하면서 미국의 식민지 발전이 시작되었다.[395] 초기에는 버지니아와 캐롤라이나에는 영국인(뉴잉글랜드)이, 루이지애나는 프랑스인(프랑스령 루이지애나)이 식민지를 개척했다. 뉴욕과 뉴저지에는 네덜란드(뉴네덜란드)가, 델라웨어에는 스웨덴인(뉴스웨덴)이, 플로리다에는 스페인 사람(누에바 에스파냐)이 식민지를 구축하여, 17세기 중반에는 이미 서양 문화가 이식되었다.
16세기 유럽의 종교 개혁과 종교 전쟁 이후, 청교도들이 1620년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이주한 것을 계기로 신교도들이 잇따라 정착했다. 이들은 가톨릭과 인디언에 적대하며 세력을 확장했고, 이들의 이민은 현재까지도 미국의 신교도들에게 위업으로 칭송받고 있다. 그러나 인디언들에게는 민족 학살의 시작으로 여겨져 '필그림 파더스'의 추수감사절에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진다.
서구인들은 식민지에서 설탕, 커피, 면화, 담배 등을 재배했지만 노동력 부족에 직면했다. 이에 인디언을 노예화하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흑인을 노예 무역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수출했다. 18세기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를 중심으로 인디언 노예 매매가 성행했고, 19세기에 들어서 미국 남부의 플랜테이션 농업이 발달했다.
1660년대에 뉴욕, 뉴저지, 델라웨어의 중부 식민지가 이전 네덜란드의 뉴네덜란드에 세워졌으며, 높은 수준의 민족적, 종교적 다양성을 특징으로 했다. 동시에, 유럽인과의 수년간의 모피 무역으로 강화된 뉴욕의 이로쿼이족은 강력한 이로쿼이 연맹을 형성했다.
이 지역의 마지막 식민지는 1681년 윌리엄 펜에 의해 펜실베이니아로, 퀘이커, 감리교도, 아미쉬를 포함한 종교적 반대자들의 보금자리로 세워졌다. 식민지의 수도인 필라델피아는 불과 몇 년 만에 지배적인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퀘이커 교도가 도시를 채우는 동안, 독일계 미국인 이민자들이 펜실베이니아 언덕과 숲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스코틀랜드-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은 멀리 서부 변경으로 밀려 들어갔다.
압도적으로 농촌 지역이었던 남부 식민지는 뉴잉글랜드 및 중부 식민지와 뚜렷한 대조를 이루었다. 버지니아 다음으로 뉴잉글랜드 남쪽에 위치한 두 번째 영국 식민지는 1632년 가톨릭교도들의 안식처로 설립된 메릴랜드 식민지였다. 이 두 식민지의 경제는 전적으로 자작농과 플랜테이션 소유주에 기반을 두었다. 플랜테이션 소유주들은 버지니아의 타이드워터 지역에 정착하여 노예 노동력을 이용한 대규모 플랜테이션 단지를 건설했다.
1670년, 캐롤라이나 식민지가 설립되었고, 찰스턴은 이 지역의 주요 무역 항구가 되었다. 버지니아의 경제 또한 담배에 기반을 두었지만, 캐롤라이나는 쌀, 인디고, 목재 등을 수출하며 더 다양화되었다. 1712년에는 두 개로 분할되어 노스캐롤라이나 식민지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식민지가 만들어졌다. 조지아 식민지는 1732년 제임스 오글소프에 의해 스페인 플로리다와의 경계 지역이자, 전 수감자 및 빈민을 위한 개혁 식민지로 설립되었다.
종교성은 1740년대 조나단 에드워즈와 조지 화이트필드와 같은 설교자들이 주도한 종교 부흥 운동인 제1차 대각성 운동 이후 크게 확장되었다. 대각성 운동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성령의 신성한 유출과 새로운 신자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강렬한 사랑을 심어주는 회심에 새로운 강조점을 두었다. 부흥 운동은 이러한 특징들을 담아 새롭게 창조된 복음주의를 초기 공화국으로 가져갔고, 1790년대 후반 제2차 대각성 운동의 무대를 마련했다.[26] 초기 단계에서 감리교와 침례교와 같은 남부의 복음주의자들은 종교의 자유와 노예 제도의 폐지를 설교했다.
3. 1.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유입
유럽에서 르네상스가 꽃피던 시기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원양 항해 기술을 발달시켜 대항해 시대가 열렸다.[395]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스페인 여왕의 승인을 받아 대서양을 건너 1492년 서인도 제도에 도달했다. 이후 영국인 존 캐벗이 북미 대륙 동해안을 탐사하여 뉴잉글랜드 식민지를 건설했고, 프랑스인 자크 카르티에는 세인트로렌스강을 거슬러 올라가 캐나다 식민지를 건설하는 등 서구인에 의한 아메리카 대륙 탐험, 개척,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영토 약탈과 학살이 시작되었다. '콜럼버스 데이'는 인디언 학살의 상징으로 여겨져 매년 미국에서 인디언들이 시위를 벌인다.
1607년 영국인들이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에 정착하면서 미국의 식민지 발전이 시작되었다.[395] 초기에는 버지니아와 캐롤라이나에는 영국인(뉴잉글랜드)이, 루이지애나는 프랑스인(프랑스령 루이지애나)이 식민지를 개척했다. 뉴욕과 뉴저지에는 네덜란드(뉴네덜란드)가, 델라웨어에는 스웨덴인(뉴스웨덴)이, 플로리다에는 스페인 사람(누에바 에스파냐)이 식민지를 구축하여, 17세기 중반에는 이미 서양 문화가 이식되었다.
16세기 유럽의 종교 개혁과 종교 전쟁 이후, 청교도들이 1620년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이주한 것을 계기로 신교도들이 잇따라 정착했다. 이들은 가톨릭과 인디언에 적대하며 세력을 확장했고, 이들의 이민은 현재까지도 미국의 신교도들에게 위업으로 칭송받고 있다. 그러나 인디언들에게는 민족 학살의 시작으로 여겨져 '필그림 파더스'의 추수감사절에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진다.
서구인들은 식민지에서 설탕, 커피, 면화, 담배 등을 재배했지만 노동력 부족에 직면했다. 이에 인디언을 노예화하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흑인을 노예 무역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수출했다. 18세기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를 중심으로 인디언 노예 매매가 성행했고, 19세기에 들어서 미국 남부의 플랜테이션 농업이 발달했다.
1660년대에 뉴욕, 뉴저지, 델라웨어의 중부 식민지가 이전 네덜란드의 뉴네덜란드에 세워졌으며, 높은 수준의 민족적, 종교적 다양성을 특징으로 했다. 동시에, 유럽인과의 수년간의 모피 무역으로 강화된 뉴욕의 이로쿼이족은 강력한 이로쿼이 연맹을 형성했다.
이 지역의 마지막 식민지는 1681년 윌리엄 펜에 의해 펜실베이니아로, 퀘이커, 감리교도, 아미쉬를 포함한 종교적 반대자들의 보금자리로 세워졌다. 식민지의 수도인 필라델피아는 불과 몇 년 만에 지배적인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퀘이커 교도가 도시를 채우는 동안, 독일계 미국인 이민자들이 펜실베이니아 언덕과 숲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스코틀랜드-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은 멀리 서부 변경으로 밀려 들어갔다.
압도적으로 농촌 지역이었던 남부 식민지는 뉴잉글랜드 및 중부 식민지와 뚜렷한 대조를 이루었다. 버지니아 다음으로 뉴잉글랜드 남쪽에 위치한 두 번째 영국 식민지는 1632년 가톨릭교도들의 안식처로 설립된 메릴랜드 식민지였다. 이 두 식민지의 경제는 전적으로 자작농과 플랜테이션 소유주에 기반을 두었다. 플랜테이션 소유주들은 버지니아의 타이드워터 지역에 정착하여 노예 노동력을 이용한 대규모 플랜테이션 단지를 건설했다.
1670년, 캐롤라이나 식민지가 설립되었고, 찰스턴은 이 지역의 주요 무역 항구가 되었다. 버지니아의 경제 또한 담배에 기반을 두었지만, 캐롤라이나는 쌀, 인디고, 목재 등을 수출하며 더 다양화되었다. 1712년에는 두 개로 분할되어 노스캐롤라이나 식민지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식민지가 만들어졌다. 조지아 식민지는 1732년 제임스 오글소프에 의해 스페인 플로리다와의 경계 지역이자, 전 수감자 및 빈민을 위한 개혁 식민지로 설립되었다.
종교성은 1740년대 조나단 에드워즈와 조지 화이트필드와 같은 설교자들이 주도한 종교 부흥 운동인 제1차 대각성 운동 이후 크게 확장되었다. 대각성 운동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성령의 신성한 유출과 새로운 신자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강렬한 사랑을 심어주는 회심에 새로운 강조점을 두었다. 부흥 운동은 이러한 특징들을 담아 새롭게 창조된 복음주의를 초기 공화국으로 가져갔고, 1790년대 후반 제2차 대각성 운동의 무대를 마련했다.[26] 초기 단계에서 감리교와 침례교와 같은 남부의 복음주의자들은 종교의 자유와 노예 제도의 폐지를 설교했다.
3. 2. 노예 무역과 플랜테이션 농업

서구인들은 식민지에서 설탕, 커피, 면화, 담배 등의 농작물을 농장에서 생산했지만, 노동력 부족에 시달렸다.[395] 서구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노예화했고, 또한 이와 같은 시기에 아프리카 대륙의 대서양 연안에도 진출하여 현지의 아프리카 여러 부족의 흑인 유력자로부터 흑인을 사들여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대륙으로 수출했다 (노예 무역).[54] 그 대가로 진출한 화기와 당시 진출해 있던 인도산 면을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흑인 유력자에게 팔았다. 다만, 오해가 많지만, 식민지 시대의 노예 수요는 카리브해 지역과 중남미가 압도적이며, 북미로의 노예 수출은 많지 않다. 18세기는 주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를 중심으로, 아메리카 원주민 노예의 매매가 성행했다. 노예 제도로 유지되는 미국 남부의 광대한 플랜테이션 농업이 성행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부터이다.
최초의 아프리카 노예는 1619년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자유를 살 수 있는 용역으로 여겨졌지만, 1660년대에 담배와 쌀 농장에서 노동 수요가 증가하면서 노예 제도가 굳어지고 자발적이지 않은 용역이 평생 지속되었다. 노예 제도는 갈색 피부색과 동일시되었고, 노예 여성의 자녀는 노예로 태어났다(''partus sequitur ventrem''). 1770년대까지 아프리카 노예는 미국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했다.
미국 독립 전쟁 이후 20년 동안, 미국 내 노예제의 지위는 극적인 변화를 겪었고 흑인 자유민의 수도 증가했다. 평등이라는 혁명적 이상에 영감을 받고 노예제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적어진 북부 주들은 노예제를 폐지했다. 남부 상부의 주들은 해방을 더 쉽게 만들었고, 그 결과 남부 상부의 흑인 자유민의 비율이 (전체 비백인 인구의 비율로) 1792년 1% 미만에서 1810년까지 10% 이상으로 증가했다. 그 시점까지 미국 전체 흑인의 13.5%가 자유인이었다.[53]
3. 3.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경쟁과 갈등
이탈리아반도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르네상스가 꽃을 피웠던 시대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재빨리 원양 항해 기술을 익혀 대항해 시대가 막을 열었다.[395] 이탈리아(제노바) 사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스페인 여왕의 승낙을 받아 대서양 주변의 아시아를 발견하러 나섰지만, 1492년에 서인도 제도에 도달했다.[395] 이어서 1498년 영국인 존 캐벗이 북아메리카 동해안을 탐험하여 영국이 뉴잉글랜드 식민지를 영유하였고, 1534년 프랑스인 자크 카르티에가 세인트로렌스 강을 거슬러 올라가 프랑스가 캐나다 식민지를 영유하는 등, 서구인에 의한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대륙의 탐험과 개척,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영토 약탈과 학살이 시작되었다.[395] 조반니 다 베라차노는 1524년 노스캐롤라이나에 상륙했으며, 뉴욕 항과 내러갠셋 만에 항해한 최초의 유럽인이었다. 1540년대에는 프랑스 위그노들이 현재의 플로리다주 잭슨빌 근처의 포트 캐롤라인에 정착했다. 1565년, 페드로 메넨데스가 이끄는 스페인군은 이 정착지를 파괴하고 미국이 될 지역에 최초의 스페인 정착지인 세인트 오거스틴을 건설했다.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영국과 프랑스가 유럽에서 전쟁을 할 때마다, 영국에서 식민단을 건설한 뉴잉글랜드 식민지와, 프랑스에서 식민단을 건설한 캐나다가 대립하여, 식민지에서도 전쟁이 일어났다.[395] 이 일련의 북미 식민지 전쟁은 1700년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으로 시작되어, 7년 전쟁·프랑스-인디언 전쟁으로 영국이 승리하는 1763년까지 이어졌고, 이 전쟁 중에 영국은 프랑스·스페인의 식민지를 잇따라 획득했으며, 남부에 널리 퍼져 있는 스페인 식민지에 대한 노예 전매권을 얻었다.[395] 이로써 영국은 북미 대륙의 대서양 연안을 거의 모두 손에 넣고, 영국 해상 제국, 즉 대영 제국의 초석을 다졌다.[395]
18세기에 들어서자, 한랭하고 비교적 농업에 적합하지 않았던 북동부에서 양조, 조선, 운수 등의 산업이 발달하여, 영국 본국의 경제를 압박하게 되었다.[395] 원래, 신교도가 다수를 차지하는 식민지와 잉글랜드 국교회의 본국은 갈등이 있었지만, 이 무렵에는 정신적으로 본국과 분리되어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395]
영국은 이전부터 "양모 제품법"이나 "철법"으로 식민지에서의 공업 발전을 방해하고, 영국 외와의 독자적인 무역을 금지해 왔지만, 여기서 중상주의 정책을 펼침으로써 더욱 식민지를 압박했다.[395] 또한, 프랑스와의 긴 전쟁 중에 필요했던 자국군의 주둔비와 전비를 조달하기 위해 식민지 주민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고, "인지세법"으로 무역 독점을 꾀했다.[395] 주민들이 반 과세와 인지세법 폐지를 주장하며 1765년에 격렬한 반대 운동을 전개했기 때문에 영국은 이듬해 이를 철폐했지만, 이번에는 "차법"으로 차의 무역을 독점하려 했다.[395] 이에 대해 주민들은 1773년에 보스턴 항을 습격했다 (보스턴 차 사건).[395]
차 사건에 충격을 받은 영국은 보스턴 항을 폐쇄하고, 주민들에게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여기에서 미국 대륙 13개 주의 주민 대표는 필라델피아에서 사상 처음으로 '''대륙 회의'''를 열고, 식민지의 자치권을 요구하며 영국에 항거, 1775년 4월, 영국의 주둔군과 주민 유지를 통한 민병이 충돌하여 (렉싱턴-콩코드 전투), '''미국 독립 전쟁'''이 발발했다.[395]
4. 신생 국가 (1776-1789)


''승민 독립''(American Revolution)은 18세기 중엽에 13개 식민지의 초대 대통령이 된 조지 워싱턴을 중심으로 프랑스의 원조를 받아 대영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여 미국을 수립한 것을 말한다. 흔히 ''미국 혁명''이라고도 한다. 1775년에서 1783년까지 13개 식민지는 영국 제국을 상대로 미국 독립 전쟁을 벌였다. 미국 독립선언은 1776년 발표되었으며 전쟁에서 승리를 확고히 한 것은 1781년이었다.

미국 독립 전쟁은 프랑스, 스페인의 군사적 지원을 받은 미국군의 우세로 진행되었다. 또한 러시아 제국의 예카테리나 2세 여제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호소하여 무장 중립 동맹을 맺었다. 이로 인해 영국은 외교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고립되었고, 점차 열세가 분명해져 1781년 요크타운 전투에서 패배하자, 독립을 용인하라는 목소리가 자국 내에서도 높아져 1783년 미국과 파리 조약을 맺었다. 이로써 13개 대륙 식민지는 완전히 독립하여 미시시피강 동쪽의 광대한 영국령 루이지애나 식민지를 획득했다.
그러나 13개 식민지 연합은 아직 느슨한 연합체에 불과하여, 대내외 정책이 주마다 달라 혼란을 초래했다. 그래서 강력한 통일 정부를 만들려는 운동이 일어나 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헌법 제정 회의가 개최되었다. 여기서 '''주권 재민'''의 '''공화제''', '''삼권 분립''', '''연방제'''를 기본으로 하는 미국 헌법이 제정되어 현대에 이르는 미국 (수도 뉴욕)이 탄생했다. 그러나 이 헌법에 대한 비판 운동이 각 주에서 일어나 헌법을 옹호하는 연방주의자와 헌법을 반대하는 반연방주의자가 항쟁을 반복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훗날의 정당이 되었다. 헌법에 기초한 최초의 대통령 선거를 통해, 1789년, 초대 미국 대통령에 조지 워싱턴이 취임했다. 참고로, 일본어로 '대통령'으로 번역되는 '프레지던트(President)'는 당시에는 미국 의회의 전신인 연합 회의 의장의 직함으로 사용되었으며, 집행권이 없는 우두머리적인 의미밖에 없었다. 워싱턴은 새로운 공화국이 유럽 제국의 모방이 되지 않도록 국왕이나 황제와의 차이를 나타내기 위해 미스터 프레지던트라는 호칭을 선호하여, 최고 집행권자가 된 대통령에게 그런 특별한 권위가 없다는 것을 각인시켰다[385]。
4. 1. 독립 전쟁의 발발
7년 전쟁의 일환으로 북아메리카의 식민지 지역에서 벌어진 프랑스-인디언 전쟁이 끝난 1763년, 대영 제국은 1억 3000만 파운드의 빚을 지고 있었다. 제국 유지비용의 상당액을 《인지세법》(1765년), 《타운젠드법》(1767년) 등 각종 과세를 통해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충당하려고 한 것이 미국 독립 운동의 발단이 되었다. 13개 식민지는 “대표의 참여 없는 세금 부담은 무효”라고 주장하였다.조지 3세는 1763년 왕령을 발표하여 아메리카 원주민을 애팔래치아 산맥 서쪽의 식민지 확장에서 보호하려 했으나, 식민지인과 왕실 사이의 관계에 긴장이 생겼다. 영국 의회는 식민지 입법부를 거치지 않고 식민지에 세금을 부과하는 1765년 인지세법을 통과시켰다. 식민지인들은 "대표 없이 과세 없다"를 외치며 납세를 거부했다. 1773년의 보스턴 차 사건은 차에 대한 새로운 세금에 항의하기 위한 직접적인 행동이었다.

애국자라 불리던 독립파 인사들은 서신 교환을 통하여 대영 제국에 대항하기 위한 독자적인 의회의 구성에 합의하였고, 1774년 1차 대륙회의, 1775년 제2차 대륙회의를 개최하였다. 의회는 영국과의 무역 보이콧을 요구하고, 권리와 불만 사항 목록을 발표했으며, 그러한 불만 사항을 시정해 줄 것을 국왕에게 청원했다. 1775년 보스턴 차 사건이후 영국이 군대를 파견하자 미국인들은 민병대를 조직하여 대항하였다.

1776년 7월 4일 13개 식민지의 대표들은 미국 독립 선언에 서명하고 새로운 국가인 ''아메리카 합중국''(미국)을 수립하였다. 실제로는 그 해 7월 2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2차 대륙회의에서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탈퇴할 것을 결의, 7월 3일 신문에 발표, 7월 4일 대륙회의에서 승인, 7월 8일 독립기념관의 발코니에서 승인 내용을 공식 선언하였다.
4. 2. 독립 전쟁의 전개와 승리
워싱턴을 총 사령관으로 하는 독립군은 독립 전쟁 초기에 영국군에게 일방적인 패배를 당했다. 1778년 미국은 프랑스와 동맹을 맺어 프랑스의 군사적 지원을 받았으며 에스파냐와 네덜란드 공화국과도 동맹을 맺었다. 이후 워싱턴의 지구전 전략과 프랑스 왕국 해군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전세는 독립군에게 점점 유리해졌다.[37] 미국의 대륙군은 1776년 ‘트렌턴 전투’와 1777년 ‘새러토가 전투’, 그리고 1781년 ‘요크타운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영국은 ‘요크타운 전투’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여[38] 미국과 영국 제국은 1783년 9월 3일에 프랑스 파리에서 〈파리 조약〉으로 평화 협정을 맺었고 영국은 미합중국의 독립을 승인하게 된다.[40][41]제2차 대륙 회의는 1776년 7월 2일 독립을 선언하기로 결정했다. 독립 선언서는 시민의 권리를 옹호하는 주장을 제시하며,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명시하고, 생명, 자유, 행복 추구의 권리를 옹호하며, 피치자의 동의를 요구했다.[31]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대영 제국의 군주제를 거부하고 공화주의 이념에 따라 행동했다.[32] 독립 선언서는 7월 4일에 의회 구성원들에 의해 서명되었으며,[31] 이 날짜는 이후 독립 기념일로 기념되었다.[33]
미국 독립 전쟁은 1775년 4월 19일 렉싱턴 콩코드 전투로 시작되었으며,[34] 조지 워싱턴은 대륙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35] 워싱턴의 델라웨어강 도하는 영국군을 뉴저지에서 몰아내는 일련의 승리를 이끌었다. 영국은 1777년 올버니를 요충지로 점령하기 위해 사라토가 전역을 시작했으나,[36] 미국이 사라토가에서 승리한 후,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은 대륙군에 지원을 제공하기 시작했다.[37]
미국 독립 전쟁은 프랑스, 스페인의 군사적 지원을 받은 미국군의 우세로 진행되었다. 또한 러시아 제국의 예카테리나 2세 여제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호소하여 무장 중립 동맹을 맺었다. 이로 인해 영국은 외교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고립되었고, 점차 열세가 분명해져 1781년 요크타운 전투에서 패배하자, 독립을 용인하라는 목소리가 자국 내에서도 높아져 1783년 미국과 파리 조약을 맺었다.
4. 3. 연방 헌법 제정과 연방 정부 수립
미국 독립 전쟁은 프랑스, 스페인의 군사적 지원을 받은 미국군의 우세로 진행되었으며, 러시아 제국의 예카테리나 2세는 무장 중립 동맹을 통해 영국을 외교적, 군사적으로 고립시켰다.[385] 1781년 요크타운 전투에서 영국군이 패배하고, 1783년 파리 조약을 통해 13개 식민지는 완전히 독립하여 미시시피강 동쪽의 광대한 영국령 루이지애나 식민지를 획득했다.그러나 13개 식민지 연합은 느슨한 연합체였기 때문에, 대내외 정책이 주마다 달라 혼란을 야기했다. 이에 강력한 통일 정부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헌법 제정 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 '''주권 재민'''의 '''공화제''', '''삼권 분립''', '''연방제'''를 기본으로 하는 미국 헌법이 제정되어 현대에 이르는 미국 (수도 뉴욕)이 탄생했다.[46] 헌법 제정 과정에서 헌법을 옹호하는 연방주의자와 반대하는 반연방주의자 간의 항쟁이 있었으며, 이는 훗날 정당의 기원이 되었다. 1789년 헌법에 기초한 최초의 대통령 선거를 통해 조지 워싱턴이 초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워싱턴은 새로운 공화국이 유럽 제국의 모방이 되지 않도록 '미스터 프레지던트(Mr. President)'라는 호칭을 선호하여 대통령에게 특별한 권위가 없음을 강조했다.[385]
5. 성장과 갈등 (1789-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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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행정부는 모든 미국인들이 인정하는 강력한 국가 정부를 수립하였다.[48]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의 주도하에 각 주의 부채를 인수하고, 미국 제1 은행을 설립했으며, 통일된 관세 및 기타 세금 시스템을 구축하여 재정 기반을 마련했다.[49] 해밀턴은 자신의 정책을 지지 기반으로 연방당을 창당했다.[49] 한편, 지나치게 강력한 중앙 정부를 경계하는 반연방주의자들을 달래기 위해, 의회는 1791년 언론과 종교의 자유 등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 권리 장전을 채택했다.[49]
토머스 제퍼슨과 제임스 매디슨은 민주공화당을 결성하여 연방당에 대항했다.[51] 해밀턴과 워싱턴은 1794년 영국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제이 조약을 체결했다.[51] 제퍼슨주의자들은 격렬하게 항의했고, 유권자들은 한 정당에 뭉쳐 제1 정당 체제를 구축했다.[51] 새로운 연방 정부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는 서북 인디언 전쟁, 진행 중인 체로키-미국 전쟁, 그리고 서부 정착민들이 술에 대한 연방 세금에 항의한 1794년 위스키 반란 등이 있었다.
미국 선거인단은 1789년 조지 워싱턴을 초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했다.[47] 수도는 1790년 뉴욕에서 필라델피아로, 1800년에는 워싱턴 D.C.로 이전했다. 워싱턴은 3선 연임을 거부하며 대통령직의 선례를 남겼다.[50]
1803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로부터 미시시피강 서쪽의 프랑스령 루이지애나를 매입한 것으로, 광대한 서부의 토지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서부에 사는 농민들이 국경이 아닌 미시시피강을 물류 통로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루이지애나 매입 몇 주 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끄는 프랑스와 영국은 전쟁 상태에 들어갔다. 미국은 유럽으로의 농산물 수출로 얻는 외화에 의존하는 상태였다. 미국은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양 진영과 양 진영이 소유한 카리브해 연안의 식민지에 농산물 및 원자재를 수출했다.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가 패배하자 영국은 프랑스의 해상 봉쇄를 실시했다. 또한 영국은 미국의 무역 정책에 대해서도 느슨한 해상 봉쇄를 실시하여 보복했다.
영국이 미국 이외의 국가로부터의 농산물 수입을 기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미국 의회와 제퍼슨 대통령은 영국의 해상 봉쇄 해제를 노리고 1807년에 외국과의 무역을 중단했다. 그러나 영국은 다른 국가로부터 농산물 수입으로 전환해 버렸다. 미국의 농산물 수출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래서 1812년, 영국이 미시시피 서부와 캐나다의 원주민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구실로, 남부와 서부 출신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영국에 선전 포고를 했고, '''미영 전쟁'''이 되었다.
1830년대, 잭슨 대통령은 선거권을 확대하여 민주 정치가 발달했다. 잭슨 대통령은 "인디언은 백인과 공존할 수 없다. 야만인이고 열등 민족인 인디언은 모두 멸망해야 한다"고 의회에서 연설하고, "인디언 이주법"을 가결했다. 이 때의 인디언의 저항전인 "세미놀 전쟁"에서, 플로리다주의 인디언들은 도망 노예를 받아들여, 늪지대에서 게릴라전을 벌였다. 이에 대해 잭슨은 초토화 작전을 채택했다. 이 전쟁은 현재 "인디언의 베트남 전쟁"이라고 불린다. 동부 인디언 부족 세력의 체로키족, 크릭족, 치카소족, 초크토족, 세미놀족의 다섯 부족이 이 정책에 의해, 도보로 대륙을 횡단하여 오클라호마로 이주당했다 (눈물의 길). 도중 사망자는 수천 명에서 수만 명으로 전해진다.
미영 전쟁 직후부터 미국 국민은 대거 루이지애나 식민지로 이주했다. 1840년경부터 태평양 연안의 신천지 오리건을 목표로 하게 되었다. 이 오리건을 향하는 길은 이윽고 오리건 길로 불리며 서부 개척이 활발해졌다.
1844년에 영토 팽창주의를 주장하는 포크가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이듬해 1845년에는 멕시코에서 독립했던 텍사스를 합병, 1846년에 오리건을 합병하여 영토는 태평양에 도달했다. 또한 같은 해에 영국과 협정을 맺고, 멕시코와의 사이에서 '''미국-멕시코 전쟁'''을 벌여 승리했다. 이로 인해 1848년에 멕시코 북부 뉴멕시코와 캘리포니아를 획득, 1853년에 더욱 멕시코 북부를 매수했다.
1848년에 구 멕시코령 캘리포니아에서 금광맥이 발견되자, 일확천금을 노린 많은 백인이 이주했다(골드 러시). 야히족 등은 금광 채굴자에 의해 멸망해 버렸다.
미국은 영토가 넓어 북부와 남부의 주산업이 달랐다. 북부는 산업, 공업, 어업을 기반으로 발전했고, 남부는 농업, 플랜테이션을 통해 발전했다. 남부는 노예제를 원했고, 북부는 노예제 폐지를 원했다. 이 갈등은 남북 전쟁을 일으켰다.
미국 독립 전쟁 이후 20년 동안, 북부 주들은 노예제를 폐지했고, 흑인 자유민의 수가 증가했다.[53]1807년, 의회는 대서양 노예 무역과의 연루를 끊었다.[54]
1848년 이후 노예제 확장이 핵심 문제였고, 북부의 반노예제 세력과 남부의 친노예제 세력 간 대립이 심화되었다.[80]
[[File:https://cdn.onul.works/wiki/source/1950bd493c1_594aa9be.png|섬네일|오른쪽|1863년 미국 지도
]]
1820년 타협은 1854년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으로 폐지되었고, 이 법은 각 영토에서 노예제의 합법성을 유권자가 결정하도록 허용했다. 반노예제 세력은 공화당을 결성했다. 피의 캔자스라고 불리는 소규모 내전이 발생했다.
1857년 대법원의 드레드 스콧 대 샌드퍼드 판결은 타협이 위헌이며 자유 흑인은 미국 시민이 아니라고 판결했고, 이 판결은 북부인들을 격분시켰다.[83][84][85]
5. 1. 워싱턴 행정부의 출범과 초기 정책
워싱턴 행정부는 모든 미국인들이 인정하는 강력한 국가 정부를 수립하였다.[48]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의 주도하에 각 주의 부채를 인수하고, 미국 제1 은행을 설립했으며, 통일된 관세 및 기타 세금 시스템을 구축하여 재정 기반을 마련했다.[49] 해밀턴은 자신의 정책을 지지 기반으로 연방당을 창당했다.[49] 한편, 지나치게 강력한 중앙 정부를 경계하는 반연방주의자들을 달래기 위해, 의회는 1791년 언론과 종교의 자유 등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 권리 장전을 채택했다.[49]토머스 제퍼슨과 제임스 매디슨은 민주공화당을 결성하여 연방당에 대항했다.[51] 1794년, 해밀턴이 연방 재정 수입을 늘리기 위해 주류에 연방세를 부과하자 위스키 반란이 일어났다.[396] 워싱턴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반란을 진압하여 연방 정부의 권위를 과시했다.[396]
1793년 1차 대불동맹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중립을 선언했다.[397] 1778년 체결된 프랑스와의 통상동맹조약에 따라 미국은 프랑스 식민지 방어 의무가 있었으나,[398] 신생 독립국으로서 유럽 분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398] 그러나 영국은 미국 상선 수백 척을 나포하며 미국을 압박했고,[397] 결국 미국은 1794년 제이 조약을 체결하여 영국과의 관계를 개선했다.[399]
미국 선거인단은 1789년 조지 워싱턴을 초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했다.[47] 수도는 1790년 뉴욕에서 필라델피아로, 1801년에는 워싱턴 D.C.로 이전되었다.[47] 워싱턴은 3선 연임을 거부하며 대통령직의 선례를 남겼다.[50]
5. 2. 루이지애나 매입과 서부 확장
1783년, 독립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스페인령 플로리다반도를 제외한 미시시피강 동쪽의 영토를 차지했다.[406] 이 지역 농산물 수송은 미시시피 강에 의존했는데, 1800년에 루이지애나의 주인이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바뀌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1803년,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협상하여 루이지애나 매입을 통해 뉴올리언스를 포함한 루이지애나 지방을 1,500만 달러에 구입했다.[406] 이로 인해 미국의 영토는 하루아침에 두 배로 증가했다.[407]
루이지애나 매입은 재정난에 처한 프랑스가 3차 대불전쟁을 앞두고 전쟁 비용을 마련하고, 영국과 미국 간 동맹을 저지하려는 나폴레옹의 정치적 계산[407]과 미국의 영토 확장 욕구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제퍼슨은 공화주의를 신봉하여 자영 농민과 농장주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루이스 앤드 클라크 탐험대를 지원하여 새로운 영토를 탐험하고 지도를 제작하도록 했다.[57]
1803년부터 1848년까지는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로 불린다. 후기성도, 이민자, 골드러시의 영향으로 금광 채굴에 관심 있는 이들이 서부로 이주했다. 백인들은 담배 농사를 위한 새로운 농토를 찾아 서부로 이동했는데, 이는 인디언의 생존권을 위협하여 갈등을 일으켰다. 미국 정부는 인디언 보호구역 강제 수용(1830년), 인디언 학살(약 300만 명 학살), 들소 학살 등 인디언 말살 정책을 통해 토지를 강탈했다.
1830년 의회는 인디언 이주 법안을 통과시켜 동부 주에 있는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의 토지를 미시시피 강 서쪽의 토지로 교환하는 조약을 협상할 수 있도록 했다.[72] 이 법안의 목표는 주로 5대 문명 부족을 포함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미국 남동부의 탐나는 땅에서 이주시키는 것이었다.[73] 체로키족의 눈물의 길에서 볼 수 있듯이 이주로 인해 수천 명이 사망했다.[73]
명백한 운명은 미국 정착민들이 대륙을 가로질러 확장할 운명이라는 신념이었다. 민주당은 확장을 강력히 지지했으며, 184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텍사스 합병은 1845년에 합병되었고, 미국-멕시코 전쟁으로 이어졌다.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은 1848년에 전쟁을 종식시켰다. 미국은 텍사스와 인구가 희박한 북부 지역(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을 차지했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자, 미국 정부는 캘리포니아 학살이라고 불리는 정책을 시작했다.[75]
미국은 영토가 넓어 북부와 남부의 주산업이 달랐다. 북부는 산업, 공업, 어업을 기반으로 발전했고, 남부는 농업, 플랜테이션을 통해 발전했다. 남부는 노예제를 원했고, 북부는 노예제 폐지를 원했다. 이 갈등은 남북 전쟁을 일으켰다.
미영 전쟁으로 유럽 정치 개입에 질린 미국은 1818년에 영국과 프랑스령 루이지애나의 일부와 영령 캐나다의 일부를 교환했으며, 스페인으로부터 1819년에 남부 플로리다를 매입했다. 1844년 포크가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1845년 텍사스를 합병, 1846년 오리건을 합병하여 영토는 태평양에 도달했다.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승리하여 1848년 멕시코 북부 뉴멕시코와 캘리포니아를 획득, 1853년 멕시코 북부를 매수했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광맥이 발견되자, 많은 백인이 이주했다(골드 러시). 이 과정에서 야히족 등은 멸망했다. 광대한 서부는 서유럽인을 끌어들였고, 미국의 인구는 급증했다. 그 이면에서 인디언의 권리는 박탈되었고, 영토는 축소되었다.
외교 정책으로는 동남아시아에 대항하여 동아시아에 대해 적극적으로 강압 외교를 펼쳐 1800년대 청나라와 조선에 접근, 1853년 일본에 상륙하여 도쿠가와 막부를 개국시켰다. 하지만 남북 전쟁으로 동아시아 외교는 잠시 정체하게 된다.
미국령의 변천
- 1776년 - 13개 주가 미국 독립 선언 발표
- 1783년 - 영국으로부터 북서부 식민지 할양 (미시시피강 동쪽)
- 1803년 -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 식민지 매입 (미시시피강 서쪽)
- 1818년 - 영국으로부터 할양 (현 노스다코타주)
- 1819년 - 스페인으로부터 매입 (현 플로리다주)
- 1842년 - 영국으로부터 할양 (현 메인주 북부)
- 1845년 - 텍사스 공화국 병합
- 1846년 - 오리건 병합 (현 오리건, 워싱턴, 아이다호주)
- 1848년 - 멕시코로부터 할양 (현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애리조나주 등)
- 1853년 - 멕시코로부터 매입 (현 애리조나주 남부)
5. 3. 노예제 문제와 남북 갈등의 심화
미국은 초기 13개 주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팽창했다. 1803년부터 1848년까지는 서부 개척 시대로, 후기성도, 이민자, 금광 채굴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서부로 이주했다. 백인들은 담배 농사를 위한 새로운 농토를 찾아 서부로 이동했으며, 이는 인디언들의 생존권을 위협했다. 미국 정부는 인디언 보호구역 강제 수용, 학살, 들소 학살 등 인디언 말살 정책을 통해 토지를 강탈했다. 인디언들은 저항했으나 백인들의 화력을 이기지 못했고, 1930년대까지 차별받았다.미국은 넓은 영토로 인해 북부와 남부의 주산업이 달랐다. 북부는 산업, 공업, 어업을 기반으로 발전했고, 남부는 농업, 플랜테이션을 통해 발전했다. 남부는 농업을 위한 노예제를 원했고, 북부는 인간 평등 원칙에 따라 노예제 폐지를 원했다. 이 갈등은 남북 전쟁을 일으켰다.
미국 독립 전쟁 이후 20년 동안, 북부 주들은 노예제를 폐지했고, 흑인 자유민의 수가 증가했다.[53] 남부 상부 주들도 해방을 쉽게 만들어, 1810년까지 흑인 자유민 비율이 증가했다. 1807년, 의회는 대서양 노예 무역과의 연루를 끊었다.[54]
[[File:https://cdn.onul.works/wiki/source/1950bd493c1_594aa9be.png|섬네일|오른쪽|1863년 미국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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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이후 노예제 확장이 핵심 문제였고, 북부의 반노예제 세력과 남부의 친노예제 세력 간 대립이 심화되었다.[80] 소수의 북부인들은 노예제의 즉각적인 폐지를 추구했다.[80] 더 많은 북부인들은 노예제 확장에 반대하며 노예제를 소멸시키려 했다.[80] 북부에서는 노예제 폐지 운동 지지자들에 대한 폭력적인 반발이 있었다.[79]
노예제에 대한 저항은 평화적, 폭력적 방법을 모두 사용했다. 노예 반란은 백인 남부에 공포심을 불러일으켰고, 백인 남부는 노예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자유 흑인의 권리를 축소했다. 남부 백인 민주당원들은 노예제가 노예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주장했다.[80] 노예제 옹호자들은 노예 경제의 갑작스러운 종말이 남부에 치명적인 경제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81] 플랜테이션은 유럽의 원면 수요로 인해 수익성이 높았다.[81] 북부 도시와 지역 산업은 은행업, 해운업, 섬유 공장을 포함한 제조업을 통해 경제적으로 노예제와 연결되어 있었다.[81]

새로운 영토에서의 노예제 문제는 1850년 타협으로 해결된 듯했다.[82] 논쟁의 핵심은 도망 노예법이었는데, 이전에는 노예가 아닌 주에 도망친 노예는 미주리 타협에 따라 자유를 얻은 것으로 추정되었다.[83][84][85]
1820년 타협은 1854년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으로 폐지되었고, 이 법은 각 영토에서 노예제의 합법성을 유권자가 결정하도록 허용했다. 반노예제 세력은 공화당을 결성했다. 피의 캔자스라고 불리는 소규모 내전이 발생했다. 1850년대 후반, 공화당은 거의 모든 북부 주와 선거인단을 장악했다. 이들은 노예제가 확장될 수 없으며 쇠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86]
1857년 대법원의 드레드 스콧 대 샌드퍼드 판결은 타협이 위헌이며 자유 흑인은 미국 시민이 아니라고 판결했고, 이 판결은 북부인들을 격분시켰다.[83][84][85] 공화당은 이 판결이 노예제를 확장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83][84][85]
6. 내전의 시기 (1849-1865)
미합중국이 서부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북부는 산업 혁명으로 공업화가 진행된 반면 남부는 면화 생산을 주요 산업으로 유지했다.[80] 북부는 보호 무역을, 남부는 자유 무역을 주장하여 경제적 대립이 심화되었다.[80]
노동력 부족에 직면한 북부는 19세기 초부터 흑인 노예를 해방하여 노동자로 활용했고, 해방 노예의 일부는 아프리카 대륙으로 귀환하여 라이베리아 건국에 기여했다. 반면, 남부는 19세기 중반에도 흑인 노예를 이용한 플랜테이션 농업을 지속했다. 영국 면화 수요 확대로 남부는 흑인 노예 노동력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80]
서부 영토 확장과 함께 새로운 주 승격 시 노예제 허용 여부를 두고 남북 간 대립이 격화되었다. 1848년 이후 노예제 확장은 핵심 문제였으며, 북부의 반노예제 세력과 남부의 친노예제 세력 간 갈등이 고조되었다.[80] 1854년, 북부를 중심으로 노예제 반대를 기치로 내건 공화당이 창당되어, 남부 농민의 지지를 받던 민주당과 대립했다. 노예제 폐지 운동은 평화적, 폭력적 방법을 모두 동원했으며, 가브리엘 프로서, 덴마크 베시, 냇 터너, 존 브라운 등의 노예 반란은 백인 남부에 공포를 야기했다.[80]
1850년 타협으로 캘리포니아는 자유주로 승인되었으나, 도망 노예법은 노예가 자유주로 도망쳐도 미주리 타협에 따른 자유 획득을 보장받지 못하게 했다.[83][84][85] 1820년 타협은 1854년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으로 폐지되었고, 이 법은 각 영토에서 노예제 합법성을 주민 투표로 결정하도록 허용했다. 피의 캔자스라 불리는 소규모 내전이 발생했고, 1850년대 후반 공화당은 북부 주와 선거인단을 장악했다.[86] 1857년 드레드 스콧 대 샌드퍼드 판결은 타협이 위헌이며 자유 흑인은 미국 시민이 아니라고 판결하여 북부인들을 격분시켰다.[83][84][85]
남부 백인 민주당원들은 노예제가 노예 자신에게도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이익이 된다고 주장했다.[80] 노예제 옹호자들은 노예 경제의 갑작스러운 종말은 남부에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81] 플랜테이션은 유럽의 원면 수요가 높았기 때문에 매우 수익성이 높았다.
6. 1. 노예제를 둘러싼 남북 대립의 격화
미합중국이 서부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북부는 산업 혁명으로 공업화가 진행된 반면 남부는 면화 생산을 주요 산업으로 유지했다.[80] 북부는 보호 무역을, 남부는 자유 무역을 주장하여 경제적 대립이 심화되었다.[80][[File:https://cdn.onul.works/wiki/source/1950bd493c1_594aa9be.png|섬네일|오른쪽|1863년 미국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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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력 부족에 직면한 북부는 19세기 초부터 흑인 노예를 해방하여 노동자로 활용했고, 해방 노예의 일부는 아프리카 대륙으로 귀환하여 라이베리아 건국에 기여했다. 반면, 남부는 19세기 중반에도 흑인 노예를 이용한 플랜테이션 농업을 지속했다. 영국 면화 수요 확대로 남부는 흑인 노예 노동력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80]
서부 영토 확장과 함께 새로운 주 승격 시 노예제 허용 여부를 두고 남북 간 대립이 격화되었다. 1848년 이후 노예제 확장은 핵심 문제였으며, 북부의 반노예제 세력과 남부의 친노예제 세력 간 갈등이 고조되었다.[80] 1854년, 북부를 중심으로 노예제 반대를 기치로 내건 공화당이 창당되어, 남부 농민의 지지를 받던 민주당과 대립했다. 노예제 폐지 운동은 평화적, 폭력적 방법을 모두 동원했으며, 가브리엘 프로서, 덴마크 베시, 냇 터너, 존 브라운 등의 노예 반란은 백인 남부에 공포를 야기했다.[80]
1850년 타협으로 캘리포니아는 자유주로 승인되었으나, 도망 노예법은 노예가 자유주로 도망쳐도 미주리 타협에 따른 자유 획득을 보장받지 못하게 했다.[83][84][85] 1820년 타협은 1854년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으로 폐지되었고, 이 법은 각 영토에서 노예제 합법성을 주민 투표로 결정하도록 허용했다. 피의 캔자스라 불리는 소규모 내전이 발생했고, 1850년대 후반 공화당은 북부 주와 선거인단을 장악했다.[86] 1857년 드레드 스콧 대 샌드퍼드 판결은 타협이 위헌이며 자유 흑인은 미국 시민이 아니라고 판결하여 북부인들을 격분시켰다.[83][84][85]
남부 백인 민주당원들은 노예제가 노예 자신에게도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이익이 된다고 주장했다.[80] 노예제 옹호자들은 노예 경제의 갑작스러운 종말은 남부에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81] 플랜테이션은 유럽의 원면 수요가 높았기 때문에 매우 수익성이 높았다.
6. 2. 남북 전쟁의 발발과 전개
1860년 선거에서 공화당의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남부의 노예주들은 흑인 노예 해방 공약에 반발하여 남부맹방을 결성하고 '''분리'''를 선언했다.[87] 미합중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1861년 4월 남부맹방군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항의 섬터 요새를 포격하면서 남북 전쟁이 시작되었다.[87] 이는 남부 연합군이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섬터 요새에 있는 미국 군사 시설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링컨은 주에 병력을 요청하여 요새를 되찾고, 워싱턴 D.C.를 보호하며 "연방을 보존"하도록 했다. 링컨의 요청으로 4개 주가 더 탈퇴하여 남부 연합에 합류했다.
전쟁 초기에는 남군이 유리했지만, 북군은 해상 봉쇄 등으로 대항했다. 1863년 링컨은 〈노예 해방 선언〉을 발표하여 지지를 확대했다.[91]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북군이 승리하면서 남군의 세력이 약화되었다.[91] 1865년 남부맹방은 항복했고, 미합중국은 다시 통일되었다.

링컨은 헌법을 개정하여 노예제 폐지를 명문화하고 흑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했지만, 남부 출신 배우 존 윌크스 부스에게 암살당했다. 노예 해방 후에도 흑인들은 사회적 차별과 쿠 클럭스 클랜 등에 의한 린치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95]
남북 전쟁은 미국 산업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공업 국가를 지향하던 북부의 자본주의 세력이 승리하면서, 미국 산업은 공업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이 전쟁은 뿌리 깊었던 지역감정 해소에도 어느 정도 기여했다. 남북 전쟁 후, 미국의 철도 회사들은 내부 교역 증가로 이익을 얻었고, 서부 펜실베이니아에서는 석유붐이 일어났다.[414]
6. 3. 재건 시대와 흑인 인권 문제
에이브러햄 링컨의 1863년 1월 1일 〈노예해방선언〉부터 시작된 재건은 ‘1877년 타협’까지 지속되었다.[415] 링컨은 주의 재가입을 위한 10% 계획과 흑인의 투표권을 지지했다.[99] 링컨은 1865년 4월 암살당했고, 앤드루 존슨이 그 뒤를 이었다.[100]링컨이 당면한 문제는 해방 노예(Freedmen)의 지위와 충성심, 그리고 전 남부맹방에 가담한 반란군들의 시민권 문제였다. 미래의 내전을 예방하기 위해 연방 정부의 권력이 필요했고, 의회나 대통령 중 누가 주요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심각한 기아와 실업 상태의 해방 노예 이주 위협은 군이 운영하는 자유민 뷰로(Freedman's Bureau)를 통해 해소하려 했다.[416] 이 뷰로는 또한 해방된 노예들을 받아들였다.
흑인의 시민권 확대를 위한 3개의 재건수정안이 통과되었다. 미국 헌법 수정 제13조는 노예 제도를 불법화했고,[103] 수정 제14조는 흑인에게 다른 시민권자들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했으며,[104] 수정 제15조에서는 유색 인종의 선거권을 박탈하지 못하도록 하였다.[105]

전 남부맹방은 약 2년간 대부분의 남부 주들을 장악했지만, 1866년 의회 선거에서 공화당 급진파가 의회를 장악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반란군들과의 쉬운 재통합을 추구했던 앤드루 존슨 대통령은 1표 차로 탄핵을 모면했지만, 실질적으로 무력화되었다. 그는 탄핵되었지만, 상원의 그를 해임하려는 시도는 한 표 차이로 실패했다. 의회는 흑인 남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많은 전직 남부 연합 지도자들의 공직 진출을 일시적으로 금지했다. 새로운 공화당 정부는 해방 노예와 카펫배거(북부에서 남부로 새로 온 사람), 스캘러왜그(토종 남부 백인)의 통합에 기반하여 권력을 행사했으며, 연방군의 후원을 받았다. 반대자들은 그들이 타락하고 백인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반발했다. 주마다 그들은 보수적 민주당 연합에 권력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1877년 경에는 완전한 남부의 통제권을 얻었다.

과격한 재건에 대한 반동으로 백인우월론자이면서 흑인의 시민권과 공화당의 통치에 반대하는 쿠 클럭스 클랜(KKK)이 1867년에 등장했다.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의 쿠 클럭스 클랜 법 시행으로 1870년 그들은 해체되었다.[417] 그러나 1870년대 남부 주에서 백인의 기득권을 다시 얻고자 했던 화이트 리그나 레드 셔츠와 같은 무장단체도 있었다.[417]
재건은 논란이 많았던 187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에 끝이났다. 1877년 타협을 통해 공화당 후보 러더퍼드 헤이스는 선거에서 승리하였고, 연방 정부는 남부에서 군대를 철수시켰으며, 남부의 민주당은 국가 정치계로 귀환할 수 있었다.[418] 그리하여 1890년 이후 남부 주는 효율적으로 흑인들로부터 투표권을 박탈할 수 있었다. 1882년, 미국은 중국인 배척법 (학생과 사업가를 제외한 모든 중국 이민자를 금지)을 통과시켰고,[107] 1882년 이민법 (정신 건강 문제가 있는 모든 이민자를 금지)을 통과시켰다.[108] 1890년부터 1908년까지, 남부 주는 선거권 박탈을 효과적으로 만들어, 인두세와 문맹 테스트를 통해 투표 등록을 더 어렵게 만들면서 흑인 및 가난한 백인 유권자들의 투표를 막았다. 흑인들은 공공장소에서 격리되었고, 〈짐 크로우 법〉으로 알려진 제도에서 2급 시민으로 남았다. 이러한 상황은 1964년에서 1965년까지 벌어졌던 시민권 쟁취 운동이 성공할 때까지 지속되었다.[419][420]
7. 서부 개척 시대 (1865-1890)
1862년 제정된 홈스테드법은 개척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농지를 제공하여 서부 정착을 촉진했다. 이 법과 더불어 오리건 준주 개척, 텍사스 혁명, 오리건 가도 개설, 모르몬교도의 유타주 이주,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 콜로라도 골드 러시 등이 서부 개척을 가속화했다.
미국 영토는 태평양에 도달했지만, 동서 간 교통은 여전히 마차나 선박에 의존해야 했다. 육상 교통은 대평원과 로키산맥을 넘어야 했고, 인디언의 공격 위험도 있었다. 해상 교통은 남아메리카 대륙을 돌아가야 했기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었다. 이러한 교통 문제로 인해 서부 지역은 발전이 더뎠고,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남북 전쟁 중에도 대륙 횡단 철도 건설을 추진했다.
철도 건설 과정은 험난했다. 서부에서는 중국인 이민자들이, 동부에서는 빈곤한 백인들이 주로 동원되었는데, 열악한 환경과 안전 문제, 무법자들의 횡포, 인디언과의 충돌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서쪽에서는 새로 온 중국인 이민자들이 동원되어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저임금으로 노동했지만, 폭약으로 니트로글리세린을 안전성을 경시한 채 사용하게 함으로써 다수의 사망자를 냈다. 동쪽에서는 굶주린 빈곤한 백인이 동원되어 철도 연선에 노동자 거리를 형성했지만, 이 새로운 거리는 법 질서가 확립되지 않아 유입된 아웃로 갱의 도적 행위가 빈번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스스로 무장하여 싸우면서 선로를 건설했다. 또한, 무법자를 재판 없이 처형할 수 있는, 이른바 "린치법"이 제정되어 일정한 억제력이 되었다. 게다가 생활권을 위협받는 것을 두려워한 인디언이 선로 연선에서 봉기하여 백인 노동자를 살육했기 때문에 정부는 2000명의 군대를 연선에 투입하여 제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69년 최초의 대륙 횡단 철도가 개통되었고, 이후 여러 노선이 추가로 건설되면서 미국은 동서부가 연결된 하나의 국가로 발전하게 되었다.
철도 건설은 서부 개척 시대를 열었지만, 동시에 인디언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 정부는 철도 건설을 방해하는 인디언들의 주식인 버팔로를 의도적으로 멸종시켰고, 이는 인디언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보호 구역으로의 강제 이주를 초래했다. 합중국은 마침내 철도 건설을 방해하고 서부의 인디언의 생활의 양식이기도 한 버펄로를 정책적으로 절멸시키는 작전을 펼쳤다. 조직적인 버펄로 학살로 인해 평원의 버펄로는 무자비하게 살해되었으며, 19세기 초 4천만 마리에 달했던 버펄로는 1890년경에는 1,000마리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 평원의 인디언들은 생활의 기둥을 빼앗기고 보호 구역에서 굶주리게 되었다. 또한, 1875년경에 Albert's swarm 등 메뚜기 피해를 일으켰던 로키산 메뚜기도 버펄로가 감소하면서 초원의 환경이 격변한 결과, 1902년경에는 멸종하게 되었다.
대륙 횡단 철도 완성 이후 서부에서는 카우보이 문화가 발달하고, 농업의 기계화가 이루어지면서 대규모 농업이 가능해졌다. 철도와 도로망 확충으로 서부와 동부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미국의 산업 발전도 가속화되었다. 그러나 법 질서가 확립되지 않았던 서부에서는 갱과 도적에 의해 치안이 악화되었고, 이를 막기 위해 보안관이 등장했다.
=== 인디언 전쟁과 원주민 탄압 ===
미합중국의 영토는 서쪽으로 태평양까지 뻗어 나갔지만, 1868년에 북부 알래스카를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저가로 구매했다. 1860년대에서 1870년대에 걸쳐 급속도로 생활권을 빼앗긴 인디언 각 부족은 일제히 봉기했다. 이것이 미국 인디언 전쟁이었고, 미합중국 군대와 20년 이상의 싸움이 계속되었다.
결국 반란은 계속해서 진압되어 갔지만, 나바호 족처럼 영토를 일시에 완전히 몰수당하거나(롱 워크), 보류지에 유폐되었다. 인디언 지도자는 전투에서 죽거나 독살되었고, 부족 공동체도 무너지고 인구도 감소하였다. 또한 《도스법》은 인디언 사회를 근본적으로 파괴하고 그들의 땅 대부분을 백인 농부에게 주었다.
1871년 미합중국 정부는 “미합중은 이미 인디언 부족을 독립 국가로 간주한다. 따라서 앞으로 주권 조약을 체결한다”고 선언했다. 이 시점에서 미국의 인디언 부족의 영토(보류지)는 총 51만km2에 불과했으며, 미합중국 정부는 1778년부터 1868년까지 100년 미만 시기에 인디언으로부터 44만 5200km2의 토지를 몰수하고 768만km2의 땅을 압수했다. 서부 최대의 반항 세력이었던 수족도 시팅 불이나 크레이지 호스가 죽은 후 남서부에서 아파치 족의 제로니모가 투항한 ‘운디드 니 학살’을 계기로 “개척에 방해가 되어 온 인디언 소탕 작전을 종료했다”고 선언했다. 미합중국은 1890년에 ‘국경의 소멸’을 선언했다. 인디언은 새로운 ‘동화정책’의 의도를 가지고 ‘인디언 기숙 학교’로 아이들을 강제 입학시키게 되었다.
7. 1. 홈스테드법과 대륙 횡단 철도
1862년 제정된 홈스테드법은 개척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농지를 제공하여 서부 정착을 촉진했다. 이 법과 더불어 오리건 준주 개척, 텍사스 혁명, 오리건 가도 개설, 모르몬교도의 유타주 이주,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 콜로라도 골드 러시 등이 서부 개척을 가속화했다.미국 영토는 태평양에 도달했지만, 동서 간 교통은 여전히 마차나 선박에 의존해야 했다. 육상 교통은 대평원과 로키산맥을 넘어야 했고, 인디언의 공격 위험도 있었다. 해상 교통은 남아메리카 대륙을 돌아가야 했기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었다. 이러한 교통 문제로 인해 서부 지역은 발전이 더뎠고,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남북 전쟁 중에도 대륙 횡단 철도 건설을 추진했다.
철도 건설 과정은 험난했다. 서부에서는 중국인 이민자들이, 동부에서는 빈곤한 백인들이 주로 동원되었는데, 열악한 환경과 안전 문제, 무법자들의 횡포, 인디언과의 충돌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69년 최초의 대륙 횡단 철도가 개통되었고, 이후 여러 노선이 추가로 건설되면서 미국은 동서부가 연결된 하나의 국가로 발전하게 되었다.
철도 건설은 서부 개척 시대를 열었지만, 동시에 인디언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 정부는 철도 건설을 방해하는 인디언들의 주식인 버팔로를 의도적으로 멸종시켰고, 이는 인디언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보호 구역으로의 강제 이주를 초래했다.
대륙 횡단 철도 완성 이후 서부에서는 카우보이 문화가 발달하고, 농업의 기계화가 이루어지면서 대규모 농업이 가능해졌다. 철도와 도로망 확충으로 서부와 동부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미국의 산업 발전도 가속화되었다. 그러나 서부 지역은 보안관 제도가 등장할 정도로 치안이 불안정한 상태였다.
7. 2. 인디언 전쟁과 원주민 탄압
미합중국의 영토는 서쪽으로 태평양까지 뻗어 나갔지만, 1868년에 북부 알래스카를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유상으로 구입했다. 1860년대에서 1870년대에 걸쳐 급속도로 생활권을 빼앗긴 인디언 각 부족은 일제히 봉기했다. 이것이 미국 인디언 전쟁이었고, 미합중국 군대와 20년 이상의 싸움이 계속되었다.결국 반란은 계속해서 진압되어 갔지만, 나바호 족처럼 영토를 일시에 완전히 몰수당하거나(롱 워크), 보류지에 유폐되었다. 인디언 지도자는 전투에서 죽거나 독살되었고, 부족 공동체도 무너지고 인구도 감소하였다. 또한 《도스법》은 인디언 사회를 근본적으로 파괴하고 그들의 땅 대부분을 백인 농부에게 주었다.
1871년 미합중국 정부는 “미합중은 이미 인디언 부족을 독립 국가로 간주한다. 따라서 앞으로 주권 조약을 체결한다”고 선언했다. 이 시점에서 미국의 인디언 부족의 영토(보류지)는 총 51만km2에 불과했으며, 미합중국 정부는 1778년부터 1868년까지 100년 미만 시기에 인디언으로부터 44만 5200km2의 토지를 몰수하고 768만km2의 땅을 압수했다. 서부 최대의 반항 세력이었던 수족도 시팅 불이나 크레이지 호스가 죽은 후 남서부에서 아파치 족의 제로니모가 투항한 ‘운디드 니 학살’을 계기로 “개척에 방해가 되어 온 인디언 소탕 작전을 종료했다”고 선언했다. 미합중국은 1890년에 ‘국경의 소멸’을 선언했다. 인디언은 새로운 ‘동화정책’의 의도를 가지고 ‘인디언 기숙 학교’로 아이들을 강제 입학시키게 되었다.
8. 제국주의 시대 (1890-1918)
### 해외 팽창 정책과 미국-스페인 전쟁
미국은 1898년에 하와이 왕국을 병합하여 영토를 태평양까지 확대했다.[128] 같은 해 스페인령 쿠바의 독립 전쟁에 개입, 미국-스페인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은 당시 인기 있던 신문들이 반 스페인 정서를 선동하는 보도를 반복하면서 여론이 악화되어 전쟁으로 이어졌다.[128] 미국 정부는 이러한 정보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미국-스페인 전쟁은 스페인이 쿠바에서 억압적인 정책을 개혁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시작되었다.[130] 미국은 육지와 해상에서 빠르게 승리했고, 파리 조약을 통해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괌을 획득했다.[131] 쿠바는 미국의 긴밀한 지도를 받으며 독립했다.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제국주의를 비난하며 필리핀 통치에 반대했다.[131]
미국-스페인 전쟁과 미국-필리핀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중미의 많은 국가에서 스페인 세력을 몰아내고 경제 식민지(바나나 공화국)로 만들었으며, 플랫 수정 조항에 의해 쿠바를 보호령으로, 푸에르토리코나 필리핀, 괌 섬 등을 식민지화했다.
1908년까지 미국인들은 제국에 대한 관심을 잃고 카리브해, 특히 파나마 운하 건설에 국제적인 관심을 돌렸다. 운하는 1914년에 개통되었으며 일본 및 극동 지역과의 교역을 증가시켰다.
서부 개척 시대가 끝나면서, 미국인들은 해외에서 더 큰 프론티어를 찾게 되었고, 1889년에 범미 회의가 개최되어 미국의 라틴 아메리카 진출을 촉진했다. 먼로 독트린에 기반한 미국 외교 정책은 계속해서 중요시되었기 때문에, 식민지 획득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고, 주로 몽둥이 외교나 달러 외교에 기반한 경제적 진출을 노렸다.
1899년과 1900년에는 청나라의 문호 개방·기회 균등·영토 보전의 세 가지 원칙을 제창하여, 중국 시장으로의 진출을 노렸다. 또한, 1905년에 러일 전쟁의 중재역을 자처하는 등, 국제적인 지위 향상을 목표로 했다. 한편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러시아와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미국은 일본과 대립했고, 한때 서구 미디어가 개전이 불가피하다고 보도할 정도로 긴장이 고조되었다.
카리브해 지역을 세력권으로 만들기 위해, 카리브해 정책을 추진했으며, 반란 등이 일어날 때마다 무력 간섭을 했다(몽둥이 외교). 파나마 운하 건설권을 매수하고, 2만 명 이상의 사망자와 장기간의 공사를 거쳐, 결국 공병까지 투입하여 완성했다. 나아가 콜롬비아로부터 분리 독립시킨 파나마로부터 운하 지대의 영구 조차권을 획득했다.
또한, 석유와 전력을 중심으로 한 제2차 산업 혁명으로 미국의 공업력은 영국을 따라잡아 세계 최고가 되었다. 엑셀, 카네기, 모건, 록펠러는 한 세대 만에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여 막대한 부를 얻었다.
- 1898년 - 스페인으로부터 필리핀, 괌, 푸에르토리코 각 식민지를 할양
- 1899년 - 독일과 분할하여 동사모아 획득, 웨이크 섬 영유
- 1903년 - 파나마로부터 파나마 운하 지대를, 쿠바로부터 관타나모 만을 영구 임차
8. 1. 해외 팽창 정책과 미국-스페인 전쟁
미국은 1898년에 하와이 왕국을 병합하여 영토를 태평양까지 확대했다.[128] 같은 해 스페인령 쿠바의 독립 전쟁에 개입, 미국-스페인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은 당시 인기 있던 신문들이 반 스페인 정서를 선동하는 보도를 반복하면서 여론이 악화되어 전쟁으로 이어졌다.[128] 미국 정부는 이러한 정보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미국-스페인 전쟁은 스페인이 쿠바에서 억압적인 정책을 개혁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시작되었다.[130] 미국은 육지와 해상에서 빠르게 승리했고, 파리 조약을 통해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괌을 획득했다.[131] 쿠바는 미국의 긴밀한 지도를 받으며 독립했다.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제국주의를 비난하며 필리핀 통치에 반대했다.[131]
미국-스페인 전쟁과 미국-필리핀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중미의 많은 국가에서 스페인 세력을 몰아내고 경제 식민지(바나나 공화국)로 만들었으며, 플랫 수정 조항에 의해 쿠바를 보호령으로, 푸에르토리코나 필리핀, 괌 섬 등을 식민지화했다.
1908년까지 미국인들은 제국에 대한 관심을 잃고 카리브해, 특히 파나마 운하 건설에 국제적인 관심을 돌렸다. 운하는 1914년에 개통되었으며 일본 및 극동 지역과의 교역을 증가시켰다.
서부 개척 시대가 끝나면서, 미국인들은 해외에서 더 큰 프론티어를 찾게 되었고, 1889년에 범미 회의가 개최되어 미국의 라틴 아메리카 진출을 촉진했다. 먼로 독트린에 기반한 미국 외교 정책은 계속해서 중요시되었기 때문에, 식민지 획득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고, 주로 몽둥이 외교나 달러 외교에 기반한 경제적 진출을 노렸다.
1899년과 1900년에는 청나라의 문호 개방·기회 균등·영토 보전의 세 가지 원칙을 제창하여, 중국 시장으로의 진출을 노렸다. 또한, 1905년에 러일 전쟁의 중재역을 자처하는 등, 국제적인 지위 향상을 목표로 했다. 한편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러시아와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미국은 일본과 대립했고, 한때 서구 미디어가 개전이 불가피하다고 보도할 정도로 긴장이 고조되었다.
카리브해 지역을 세력권으로 만들기 위해, 카리브해 정책을 추진했으며, 반란 등이 일어날 때마다 무력 간섭을 했다(몽둥이 외교). 파나마 운하 건설권을 매수하고, 2만 명 이상의 사망자와 장기간의 공사를 거쳐, 결국 공병까지 투입하여 완성했다. 나아가 콜롬비아로부터 분리 독립시킨 파나마로부터 운하 지대의 영구 조차권을 획득했다.
또한, 석유와 전력을 중심으로 한 제2차 산업 혁명으로 미국의 공업력은 영국을 따라잡아 세계 최고가 되었다. 엑셀, 카네기, 모건, 록펠러는 한 세대 만에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여 막대한 부를 얻었다.
- 1898년 - 스페인으로부터 필리핀, 괌, 푸에르토리코 각 식민지를 할양
- 1899년 - 독일과 분할하여 동사모아 획득, 웨이크 섬 영유
- 1903년 - 파나마로부터 파나마 운하 지대를, 쿠바로부터 관타나모 만을 영구 임차
8. 2. 미국-필리핀 전쟁과 파나마 운하 건설
미국-스페인 전쟁과 필리핀-미국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스페인 세력을 몰아내고 중미의 많은 나라를 경제 식민지(바나나 공화국)로 만들었다. 플랫 수정 조항에 따라 쿠바를 보호국으로,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괌 등을 식민지화했다. 1899년과 1900년에는 청나라에 문호 개방, 기회 균등, 영토 보전의 3원칙을 제창하며 중국 시장 진출을 노렸고, 1905년 러일 전쟁 중재를 통해 국제적 지위 향상을 꾀했다.미국은 카리브해 지역을 세력권으로 확보하기 위해 카리브해 정책을 추진, 반란이 일어날 때마다 군사적으로 개입했다(곤봉 외교). 또한, 국내 동서 물류의 안정을 위한 해상 교통로 확보를 위해 파나마 운하 건설권을 인수하여 2만 명 이상의 사망자와 장기간의 공사 끝에 완공하고, 콜롬비아에서 분리 독립시킨 파나마에서 운하 지대의 영구조차권을 획득했다.
미국 육군은 정착민들의 전통적인 땅 침범에 따라 미국 원주민과의 전쟁을 계속했다. 점차 부족의 땅을 매입하고 그들의 주장을 소멸시켰으며, 대부분의 부족을 보조금을 받는 보호 구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미국 인구 조사국에 따르면 1789년부터 1894년까지 인디언 전쟁으로 19,000명의 백인과 30,000명 이상의 인디언이 사망했다.
미국-스페인 전쟁은 스페인이 쿠바에서 억압적인 정책을 개혁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육지와 해상에서 미국이 빠르게 승리했으며, 파리 조약을 통해 미국은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괌을 획득했다. 쿠바는 미국의 면밀한 지도를 받으며 독립 국가가 되었다.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제국주의를 비난하며 필리핀 통치에 반대하는 민주당을 이끌었다. 필리핀 민족주의자들의 반란을 진압한 후, 미국은 필리핀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08년까지 미국인들은 제국에 대한 관심을 잃고 카리브해, 특히 파나마 운하 건설에 집중했다. 운하는 1914년에 개통되어 일본 및 극동 지역과의 교역을 증가시켰다. 문호 개방 정책은 제국주의 열강이 중국 사업에 동등하게 접근하고 어느 나라도 중국을 통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주요 혁신이었다.
서부 개척 시대가 끝나자 미국인들은 해외에서 더 큰 프론티어를 찾게 되었고,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의식이 일어났다. 1889년 범미 회의가 개최되어 미국의 라틴 아메리카 진출을 촉진했다. 먼로 독트린에 기반한 미국 외교 정책은 계속 중요시되었지만, 식민지 획득에는 소극적이었고, 주로 몽둥이 외교나 달러 외교를 통한 경제적 진출을 노렸다.
미국인들은 태평양의 섬으로 이주해 갔고, 1898년 하와이 왕국을 병합하여 영토를 태평양까지 확대했다. 같은 해, 쿠바 독립 전쟁에 편승하여 미국-스페인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은 신문에 의해 선동된 대중이 전쟁을 요구한 최초의 사례였으며, 미국 정부는 이 정보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러시아와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서구 제국은 아시아인에 대한 공포(황화론)를 갖게 되었고, 이는 일본과 미국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독일, 영국, 멕시코와의 전쟁 계획도 가지고 있었으며, 주변 강대국을 잠재적인 적국으로 판단하여 외교를 펼쳤다.
이 무렵, 석유와 전력을 중심으로 한 제2차 산업 혁명이 일어나 미국의 공업력은 세계 최고가 되었다. 엑셀, 카네기, 모건, 록펠러 등 재벌이 막대한 부를 얻었고, 미국 경제는 이들에 의해 움직이게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유럽에서 많은 이민이 발생했다. 1880년대부터 남유럽과 동유럽으로부터의 이민이 증가했고, 이들은 도시에서 미숙련 노동자로 일하며 슬럼가를 형성했다. 신 이민은 가톨릭·정교회나 유대교 신자였기 때문에, 구 이민과의 사이에 편견과 마찰이 발생했다. 포드는 신 이민에게 기술·언어 교육을 실시하여 대량 생산 방식에 편입시켰다. 청나라와 일본에서도 이민이 발생했고, 급증한 일본 이민은 인종 차별에 기반한 배척 운동의 대상이 되었다.
- 1856년 - 구아노 섬 법에 따라 온두라스 인근의 스완 제도를 영유. 니카라과와 콜롬비아 부근의 여러 섬들도 영유 선언
- 1857년 - 하울랜드 섬, 베이커 섬, 나바사 섬 영유
- 1858년 - 하와이와 존스턴 환초 공동 통치, 자비스 섬 영유
- 1867년 -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 매입(현 알래스카 주), 미드웨이 제도 영유
- 1889년 - 자비스 섬을 영국에 할양
- 1897년 - 파르미라 환초 영유
- 1898년 - 하와이 왕국 병합, 스페인으로부터 필리핀, 괌, 푸에르토리코 할양
- 1899년 - 독일과 분할하여 동사모아 획득, 웨이크 섬 영유
- 1903년 - 파나마로부터 파나마 운하 지대를, 쿠바로부터 관타나모 만 영구 임차
- 1905년 - 도미니카 공화국 보호령
- 1914년 - 니카라과로부터 콘 제도 99년간 임차
- 1915년 - 아이티 보호국
- 1917년 - 덴마크로부터 버진 아일랜드 매입
- 1922년 - 킹맨 암초 영유
- 1926년 - 도미니카 공화국 자립
- 1934년 - 아이티 자립
- 1935년 - 자비스 섬 재영유
8. 3. 제2차 산업 혁명과 경제 성장
석유와 전력을 중심으로 한 제2차 산업 혁명으로, 미국은 풍부한 석유 자원을 바탕으로 영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공업력을 갖게 되었다. 엑셀, 앤드류 카네기, 존 모건, 존 D. 록펠러와 같은 인물들은 거대 기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이들 재벌이 미국 경제를 주도하게 되었다.숙련 노동자들은 노동 조합을 결성하여 임금 인상을 추구했고, 새뮤얼 궘퍼스는 미국 노동 연맹을 이끌었다.[119] 농부들은 인민당에 합류하여 과도한 부채와 농산물 가격 하락에 대응했다.[119] 1893년 공황으로 전국적인 불황이 발생했고, 풀먼 파업과 같은 노동 쟁의가 발생했다.[120] 유진 V. 뎁스는 미국 사회당의 지도자가 되었다.[121] 시민 봉사법(1883), 주간 통상법(1887), 셔먼 반독점법(1890) 등 중요한 법률이 제정되었다.[110]

자유 은화 운동이 인기를 얻었고, 189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윌리엄 매킨리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을 이겼다.[122][123] 매킨리 정권 하에서 금본위제가 제정되고 관세가 인상되어 경제가 번영했다.[127] 1900년까지 미국은 세계 최강의 경제력을 갖게 되었지만,[127] 1901년 윌리엄 매킨리는 레온 촐고시에게 암살되었고,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대통령직을 계승했다.[124]

1907년 공황과 1920~1921년 불황을 제외하면 1929년까지 경제는 계속 성장했다.[127] 신용 협동조합 등장(1908)과 연방 준비 제도 창설(1913) 등 은행 시스템에도 변화가 있었다.[125][126]
19세기 후반부터 유럽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해 왔다. 1880년대부터는 남유럽과 동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증가하여 도시의 저소득층을 형성했고, 이들은 가톨릭·정교회나 유대교 신자가 많아 기존 이민자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포드는 이들에게 기술·언어 교육을 제공하여 대량 생산 방식에 편입시켰다. 청나라와 일본에서도 이민이 발생했으며, 일본 이민자들은 인종 차별과 배척 운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9. 제1차 세계 대전 (1900-1920)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 미국은 먼로 독트린 이래 고립정책을 고수하며 중립을 표방했다.[138] 그러나 독일의 U보트에 의한 미국 선박들의 지속적인 파괴와 치머만 전보 사건으로 멕시코 전쟁으로 얻었던 땅을 뺏길 위험에 처하자,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1917년 4월 6일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선전 포고를 하고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138] 미국은 승전국이 되었다.
1914년 사라예보 사건을 계기로 발발한 제1차 세계 대전은 유럽 각국에 무기, 차량을 수출하는 미국 경제에 호황을 가져다 주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영국은 미국의 참전을 요청했지만, 고립주의를 내세운 미국은 응하지 않았다. 미국은 중립 정책을 유지하며 연합국에 물자를 지원했다. 그러나 1915년 루시타니아호가 U보트에 격침되어 미국 국민에게 사상자가 발생하고, 치머만 전보 사건까지 겹치면서 국민 여론은 파병 찬성으로 돌아섰다.
1918년 여름까지 존 J. 퍼싱 장군의 미국 원정군 군인들이 하루 1만 명씩 도착했고, 독일은 손실을 보충할 수 없었다. 전쟁에 대한 반대는 1918년 반역법과 1917년 간첩법에 의해 억압되었고, 2,000명 이상이 전쟁에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었다.[139] 연합군은 1918년 11월에 승리했다.
[[파일:Cimetière_américain_de_Romagne-sous-Montfaucon_-_1918_-_France.JPG|섬네일|프랑스 로마뉴-수-몽포콩에 있는 미국 묘지
제1차 세계대전 때 미국은 헌법을 개정해 징병제를 부활시켰으나, 미국 최초의 헌법과 같이 독신 남성만 징집시켰다. 1910년부터 1930년 사이에 200만명이나 되는 남부의 흑인들이 인종 차별을 피해 뉴욕, 시카고, 디트로이트, 클리블랜드 등의 북부 도시들로 이주하였다.
윌슨은 1919년 파리 강화 회의를 주도하여 국제 연맹 창설에 기여했지만, 베르사유 조약 (1919년)에서 독일이 가혹하게 취급되는 것에는 반대했다. 윌슨은 전쟁 선포 권한에 대한 의회의 권한 문제로 상원 공화당과 타협하지 않았고, 상원은 조약과 국제 연맹을 거부했다.[140] 대신 미국은 단독주의를 추구했다.[140] 러시아의 10월 혁명 여파로 미국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가 생겨 제1차 적색 공포와 사보타주자로 간주되는 비시민의 추방으로 이어졌다.
병원과 의과 대학의 진보 시대 현대화에도 불구하고,[141] 미국은 1918년과 1919년에 스페인 독감 유행으로 약 55만 명의 생명을 잃었다.[142][143] "광란의" 1920년대 동안 경제는 확장되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흑인 대이동의 혜택을 받았고 재즈 음악을 퍼뜨린 할렘 르네상스의 예와 같이 더 많은 문화적 권력을 갖게 되었다. 한편, 쿠 클럭스 클랜이 부활했고, 1924년 이민법이 통과되어 새로운 입국자 수를 엄격하게 제한했다.[144]
금주법은 1920년에 시작되었으며, 알코올의 제조, 판매, 수입 및 수출이 수정 제18조에 의해 금지되었다. 도시의 밀주는 영토를 놓고 서로 싸우는 갱들의 통제하에 놓이게 되었다. 뉴욕시의 이탈리아 밀주업자들은 점차 마피아 범죄 조직을 형성했다. 1933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금주법을 폐지했다.[145]
9. 1. 참전과 승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 미국은 먼로 독트린 이래 고립정책을 고수하며 중립을 표방했다.[138] 그러나 독일의 U보트에 의한 미국 선박들의 지속적인 파괴와 치머만 전보 사건으로 멕시코 전쟁으로 얻었던 땅을 뺏길 위험에 처하자,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1917년 4월 6일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선전 포고를 하고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138] 미국은 승전국이 되었다.1914년 사라예보 사건을 계기로 발발한 제1차 세계 대전은 유럽 각국에 무기, 차량을 수출하는 미국 경제에 호황을 가져다 주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영국은 미국의 참전을 요청했지만, 고립주의를 내세운 미국은 응하지 않았다. 미국은 중립 정책을 유지하며 연합국에 물자를 지원했다. 그러나 1915년 루시타니아호가 U보트에 격침되어 미국 국민에게 사상자가 발생하고, 치머만 전보 사건까지 겹치면서 국민 여론은 파병 찬성으로 돌아섰다.
1918년 여름까지 존 J. 퍼싱 장군의 미국 원정군 군인들이 하루 1만 명씩 도착했고, 독일은 손실을 보충할 수 없었다. 전쟁에 대한 반대는 1918년 반역법과 1917년 간첩법에 의해 억압되었고, 2,000명 이상이 전쟁에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었다.[139] 연합군은 1918년 11월에 승리했다.
[[파일:Cimetière_américain_de_Romagne-sous-Montfaucon_-_1918_-_France.JPG|섬네일|프랑스 로마뉴-수-몽포콩에 있는 미국 묘지
제1차 세계대전 때 미국은 헌법을 개정해 징병제를 부활시켰으나, 미국 최초의 헌법과 같이 독신 남성만 징집시켰다. 1910년부터 1930년 사이에 200만명이나 되는 남부의 흑인들이 인종 차별을 피해 뉴욕, 시카고, 디트로이트, 클리블랜드 등의 북부 도시들로 이주하였다.
윌슨은 1919년 파리 강화 회의를 주도하여 국제 연맹 창설에 기여했지만, 베르사유 조약 (1919년)에서 독일이 가혹하게 취급되는 것에는 반대했다. 윌슨은 전쟁 선포 권한에 대한 의회의 권한 문제로 상원 공화당과 타협하지 않았고, 상원은 조약과 국제 연맹을 거부했다.[140] 대신 미국은 단독주의를 추구했다.[140] 러시아의 10월 혁명 여파로 미국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가 생겨 제1차 적색 공포와 사보타주자로 간주되는 비시민의 추방으로 이어졌다.
병원과 의과 대학의 진보 시대 현대화에도 불구하고,[141] 미국은 1918년과 1919년에 스페인 독감 유행으로 약 55만 명의 생명을 잃었다.[142][143] "광란의" 1920년대 동안 경제는 확장되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흑인 대이동의 혜택을 받았고 재즈 음악을 퍼뜨린 할렘 르네상스의 예와 같이 더 많은 문화적 권력을 갖게 되었다. 한편, 쿠 클럭스 클랜이 부활했고, 1924년 이민법이 통과되어 새로운 입국자 수를 엄격하게 제한했다.[144]
금주법은 1920년에 시작되었으며, 알코올의 제조, 판매, 수입 및 수출이 수정 제18조에 의해 금지되었다. 도시의 밀주는 영토를 놓고 서로 싸우는 갱들의 통제하에 놓이게 되었다. 뉴욕시의 이탈리아 밀주업자들은 점차 마피아 범죄 조직을 형성했다. 1933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금주법을 폐지했다.[145]
10. 세계 경제 대공황 (1929-1939)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은 전쟁 물자 판매로 호황을 누렸으나, 전쟁이 끝나자 수요 감소로 공장들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증가했다.[386] 연방준비은행의 통화량 증가로 1921년부터 1929년까지 통화량이 44%나 늘어나 통화 가치가 하락하고 주식 투기가 성행했다.[386] 1929년 검은 목요일에 발생한 대공황(The Great Crash 1929)은 뉴욕 은행들이 산하 브로커 기관에 대출금 회수를 지시하면서 주식 시장이 붕괴하며 시작되었고, 전 세계적인 경제 공황으로 이어졌다.[386]
대공황(1929–1939)과 뉴딜 정책(1933–1936)은 미국 정치, 경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146] 1929년 10월 29일 월가 대폭락으로 금융 거품이 붕괴하고, 디플레이션, 실업률 증가(1929년 3%에서 1933년 25%), 농산물 가격 및 제조업 생산량 급감 등 경제 불황이 심화되었다.[146]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은 사회 보장, 실업 구제 및 보험, 공공 주택, 파산 보험, 농업 보조금, 금융 증권 규제 등 영구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포함했다.[147] 연방 사업 진흥국(WPA)과 시민 보존단을 통한 실업 구제, 공공 사업국 주도의 대규모 인프라 재건 프로젝트도 추진되었다.[147] 주 정부는 판매세를 도입하여 재원을 마련했고, 미국의 현대 자유주의가 확립되었다.[147] 뉴딜 연합은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 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의 재선을 이끌었다.[147] 1935년과 1936년의 제2차 뉴딜 정책은 와그너법을 통해 노동조합을 강화했다.[147]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법원 장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147] 경제는 1936년까지 회복되었지만, 장기 실업은 제2차 세계 대전 전시 지출로 해결될 때까지 지속되었다.[147] 보수 연합이 의회 권력을 되찾으면서 대부분의 구호 프로그램은 1940년대에 폐지되었다.[147]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국제 연맹 설립을 주도했지만, 고립주의를 지향하는 의회의 반대로 미국은 불참했다. 1919년 파리 강화 회의에서 일본이 제안한 인종 차별 철폐안이 폐기되었고, 국내에서는 레드 서머, 시카고 인종 폭동 등 인종 폭동이 발생했다.
1920년대 미국 경제는 세계 공장으로서 수출을 확대하며 번영을 누렸다.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비행, 베이브 루스 등 스포츠 스타 등장, 할리우드 영화 제작 등 문화적 발전도 이루어졌지만, 거품 경제로 주가와 지가가 폭등했다. 농촌은 농업 정책 실패로 몰락하고, 금주법 제정, 쿠 클럭스 클랜 활동, 일본계 미국인 차별 등 사회적 문제도 심각했다.
1929년 9월 주가 하락을 시작으로 10월 24일 '검은 목요일'에 월가 대폭락이 발생하며 미국의 번영은 끝났다. 이는 대공황으로 이어져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실업자 증가, 사회 불안 심화, 퇴역 군인 시위, 더글러스 맥아더의 시위 진압 등 혼란이 계속되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으로 경제 회복을 시도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까지 완전한 회복은 이루지 못했다.
10. 1. 경제 위기와 뉴딜 정책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은 전쟁 물자 판매로 호황을 누렸으나, 전쟁이 끝나자 수요 감소로 공장들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증가했다. 연방준비은행의 통화량 증가로 1921년부터 1929년까지 통화량이 44%나 늘어나 통화 가치가 하락하고 주식 투기가 성행했다. 1929년 검은 목요일에 발생한 대공황(The Great Crash 1929)은 뉴욕 은행들이 산하 브로커 기관에 대출금 회수를 지시하면서 주식 시장이 붕괴하며 시작되었고, 전 세계적인 경제 공황으로 이어졌다.대공황(1929–1939)과 뉴딜 정책(1933–1936)은 미국 정치, 경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146] 1929년 10월 29일 월가 대폭락으로 금융 거품이 붕괴하고, 디플레이션, 실업률 증가(1929년 3%에서 1933년 25%), 농산물 가격 및 제조업 생산량 급감 등 경제 불황이 심화되었다.[146]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은 사회 보장, 실업 구제 및 보험, 공공 주택, 파산 보험, 농업 보조금, 금융 증권 규제 등 영구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포함했다.[147] 연방 사업 진흥국(WPA)과 시민 보존단을 통한 실업 구제, 공공 사업국 주도의 대규모 인프라 재건 프로젝트도 추진되었다.[147] 주 정부는 판매세를 도입하여 재원을 마련했고, 미국의 현대 자유주의가 확립되었다.[147] 뉴딜 연합은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 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의 재선을 이끌었다.[147] 1935년과 1936년의 제2차 뉴딜 정책은 와그너법을 통해 노동조합을 강화했다.[147]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법원 장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147] 경제는 1936년까지 회복되었지만, 장기 실업은 제2차 세계 대전 전시 지출로 해결될 때까지 지속되었다.[147] 보수 연합이 의회 권력을 되찾으면서 대부분의 구호 프로그램은 1940년대에 폐지되었다.[147]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국제 연맹 설립을 주도했지만, 고립주의를 지향하는 의회의 반대로 미국은 불참했다. 1919년 파리 강화 회의에서 인종 차별 철폐안이 폐기되었고, 국내에서는 레드 서머, 시카고 인종 폭동 등 인종 폭동이 발생했다.
1920년대 미국 경제는 세계 공장으로서 수출을 확대하며 번영을 누렸다.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비행, 베이브 루스 등 스포츠 스타 등장, 할리우드 영화 제작 등 문화적 발전도 이루어졌지만, 거품 경제로 주가와 지가가 폭등했다. 농촌은 농업 정책 실패로 몰락하고, 금주법 제정, 쿠 클럭스 클랜 활동, 일본계 미국인 차별 등 사회적 문제도 심각했다.
1929년 9월 주가 하락을 시작으로 10월 24일 '검은 목요일'에 월가 대폭락이 발생하며 미국의 번영은 끝났다. 이는 대공황으로 이어져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실업자 증가, 사회 불안 심화, 퇴역 군인 시위, 더글러스 맥아더의 시위 진압 등 혼란이 계속되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으로 경제 회복을 시도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까지 완전한 회복은 이루지 못했다.
11. 제2차 세계 대전 (1939-1945)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과도한 전쟁 배상금을 떠맡았던 독일은 나치즘을 기반으로 독일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 휘하에서 1939년 9월 1일 선전포고도 없이 폴란드에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148] 1939년 9월,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고, 짧은 기간 동안 서유럽 대부분이 독일에 점령되었다.[148] 이미 내부적으로 경제 대공황이라는 문제점을 떠안고 있던 미국인들은 전쟁에 참가하는 것을 반대했으나, 일본 제국이 진주만을 공습하자 미국은 그 복수로 연합국에 참가한다.
[[File:https://cdn.onul.works/wiki/source/194c4708274_06b569b9.jpg|thumb|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불타는 USS ''애리조나'' (BB-39)]
영국 또한 끈질긴 공격으로 쇠약해지자, 윈스턴 처칠은 여러 차례 미국에 참전을 요청했다.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는 무기대여법을 제정하여 지원을 확대했지만, 참전에 대한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여 난색을 표하며, 중립법을 준수하겠다고 밝혔다.[148] 독일은 완강하게 저항하는 영국의 공략을 포기하고, 1941년에는 소련 침공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삼국 동맹으로 독일과 동맹 관계에 있던 일본은 중국 대륙에 대한 군사 침공을 감행했고, 미국은 서유럽과 함께 경제 제재를 가했지만, 그 효과가 컸다. 1941년 7월 남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침공은 동남아시아의 유전에 대한 침공 준비로 간주되었다. 미일 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이에 대해 "헐 노트"로 알려진 강경한 협상안을 제시했고, 1941년 12월 7일에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했다.[149] 루스벨트는 즉시 참전을 표명하고, 추축국에 대해 선전 포고를 했다. 이것이 태평양 전쟁(대동아 전쟁)의 시작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끝낸 미국은 크게 부상하게 되는데, 그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유럽 각국에서 돈과 장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덕분이다. 미국은 연합군의 전쟁 노력에 돈, 식량, 석유, 기술, 군 병력을 제공했다. 미국은 국가 경제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하여 GDP의 급격한 증가, 실업 종식, 민간 소비 증가를 이끌었고, GDP의 40%가 전쟁 노력에 투입되었다.
루스벨트의 행정명령 9066은 12만 명 이상의 일본계 미국인이 집에서 쫓겨나 수용소에 수용되는 결과를 낳았다.[150][151] 미국 내의 일본계 미국인을 적성 국민으로 간주하고, 전부 사막 지대에 건설된 강제 수용소로 보냈다. (일본계 미국인의 강제 수용) 이 때문에, 일본계 미국인 청년들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군에 자원 입대하여, 유럽 전선의 격전지로 보내졌다. 일본계 부대의 활약은 다른 부대를 능가하여, 대전 중 최다의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러한 활약으로 인해, 미국 내 일본계 미국인의 신용은 점차 회복되어 갔다. 일본계 및 거주 일본인들은 캐나다, 페루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수용소로 보내졌고, 종전까지 수용소에서 지냈다. 이러한 조치는 이탈리아계나 독일계 국민에게도 일본계만큼은 아니지만 시행되었다[388]。
11. 1. 진주만 공습과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과도한 전쟁 배상금을 떠맡았던 독일은 나치즘을 기반으로 독일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 휘하에서 1939년 9월 1일 선전포고도 없이 폴란드에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148] 1939년 9월,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고, 짧은 기간 동안 서유럽 대부분이 독일에 점령되었다.[148] 이미 내부적으로 경제 대공황이라는 문제점을 떠안고 있던 미국인들은 전쟁에 참가하는 것을 반대했으나, 일본 제국이 진주만을 공습하자 미국은 그 복수로 연합국에 참가한다.[[File:https://cdn.onul.works/wiki/source/194c4708274_06b569b9.jpg|thumb|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불타는 USS ''애리조나'' (BB-39)]
영국 또한 끈질긴 공격으로 쇠약해지자, 윈스턴 처칠은 여러 차례 미국에 참전을 요청했다.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는 무기대여법을 제정하여 지원을 확대했지만, 참전에 대한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여 난색을 표하며, 중립법을 준수하겠다고 밝혔다.[148] 독일은 완강하게 저항하는 영국의 공략을 포기하고, 1941년에는 소련 침공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삼국 동맹으로 독일과 동맹 관계에 있던 일본은 중국 대륙에 대한 군사 침공을 감행했고, 미국은 서유럽과 함께 경제 제재를 가했지만, 그 효과가 컸다. 1941년 7월 남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침공은 동남아시아의 유전에 대한 침공 준비로 간주되었다. 미일 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이에 대해 "헐 노트"로 알려진 강경한 협상안을 제시했고, 1941년 12월 7일에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했다.[149] 루스벨트는 즉시 참전을 표명하고, 추축국에 대해 선전 포고를 했다. 이것이 태평양 전쟁(대동아 전쟁)의 시작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끝낸 미국은 크게 부상하게 되는데, 그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유럽 각국에서 돈과 장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덕분이다. 미국은 연합군의 전쟁 노력에 돈, 식량, 석유, 기술, 군 병력을 제공했다. 미국은 국가 경제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하여 GDP의 급격한 증가, 실업 종식, 민간 소비 증가를 이끌었고, GDP의 40%가 전쟁 노력에 투입되었다.
루스벨트의 행정명령 9066은 12만 명 이상의 일본계 미국인이 집에서 쫓겨나 수용소에 수용되는 결과를 낳았다.[150][151] 미국 내의 일본계 미국인을 적성 국민으로 간주하고, 전부 사막 지대에 건설된 강제 수용소로 보냈다. (일본계 미국인의 강제 수용) 이 때문에, 일본계 미국인 청년들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군에 자원 입대하여, 유럽 전선의 격전지로 보내졌다. 일본계 부대의 활약은 다른 부대를 능가하여, 대전 중 최다의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러한 활약으로 인해, 미국 내 일본계 미국인의 신용은 점차 회복되어 갔다. 일본계 및 거주 일본인들은 캐나다, 페루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수용소로 보내졌고, 종전까지 수용소에서 지냈다. 이러한 조치는 이탈리아계나 독일계 국민에게도 일본계만큼은 아니지만 시행되었다[388]。
11. 2. 맨해튼 계획과 원자 폭탄 투하

미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군사 연구 개발을 증가시켰고, 이는 맨해튼 계획으로 이어졌다.[160] 맨해튼 계획은 핵분열을 이용하여 원자 폭탄을 생산하려는 비밀스러운 노력이었다.[160] 최초의 핵 장치는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주에서 폭발했다.[161]
마리아나 제도에 있는 미국의 비행장은 일본을 더 쉽게 폭격할 수 있게 했고, 1945년 이오지마 전투와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국이 어려운 승리를 거두는 데 기여했다.[162] 미국은 일본 본토 침공을 준비했지만, 일본 도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 폭탄 투하로 일본의 항복을 강요하고 제2차 세계 대전을 종식시켰다.[163]
해리 S. 트루먼은 포츠담 회담을 통해 전후 노선을 명확히 했고, 포츠담 선언을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해 세계 최초로 원자 폭탄을 사용했다. 그러나, 트루먼이 명확하게 원폭 투하를 허가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최근에는, 맨해튼 계획의 당시 최고 책임자였던 레슬리 그로브스 육군 준장 등, 군 관계자들이 트루먼 행정부에 대해 은밀하게 투하를 허가했을 가능성이 더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일본에 투하한 두 발의 원자 폭탄은, 남서부의 "포 코너스"에 있는 나바호족, 호피족, 푸에블로, 산악 유테족의 보호 구역(Reservation)에서, 미국 연방 정부가 거의 부족의 동의 없이 채굴한 우라늄을 정제하여 제조되었으며, 메스칼레로 아파치족과 서부 쇼쇼니족, 남부 파이유트족의 보호 구역에서 폭발 실험이 실시되었다. 이 과정에서 생성된 방사성 부산물은, 산 일데폰소 푸에블로족과 산타클라라 푸에블로족의 보호 구역에 격납되었다. "포 코너스" 일대의 인디언 보호 구역은 미국의 핵무기 개발과 원자력 산업의 중추가 되었으며, 전미 과학 아카데미는 이 지역을 "국가의 희생 지역"(National Sacrifice Area) 중 하나로 지정하고 있다.
12. 냉전과 흑인 해방 운동 (1945-1964)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 간의 갈등, 즉 냉전이 시작되었다.[166] 1945년 나치 독일이 항복하면서 미국과 영국, 소련 사이의 불안정한 전시동맹관계가 해체되었고, 양측은 서로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여러 전략을 사용했다. 미국은 공산주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트루먼 독트린을 성명하고, 동유럽에 마셜 플랜을 통해 막대한 금액을 지원했다.[168]
1949년에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를 결성하여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기구 간의 철의 장막 대립이 시작되었다. 국내에서는 조지프 매카시 상원 의원을 중심으로 한 반공 운동(매카시즘)이 국민의 지지를 확대, FBI도 공산주의자 단속을 강화하고, 시민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장소에서 공산주의자로 여겨지는 사람들의 배척이 이루어졌다. 라벤더 공포로 동성애자들이 탄압받기도 했다.[171]
1950년대 미국은 경제 호황을 맞이했고, 많은 미국인들이 교외 지역으로 이사했다.[176] 1954년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사건 대법원 판결로 공립학교의 인종 차별이 위헌으로 판결되었으나,[177] 리틀 록 센트럴 고등학교 입학 문제에서 보듯이 인종차별은 여전했다. 로자 파크스와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주도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을 시작으로 시민권 운동이 성장하면서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이 커졌다.[177]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니크를 발사하면서 우주 경쟁이 시작되었고, 1958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창설되었다. 1960년대는 마틴 루서 킹이 공민권 운동을 이끈 시대이며, 백인과 흑인의 사회적 인종 차별을 법으로 규정한 짐 크로 법이 폐지되었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발발한 한국 전쟁은 냉전을 뜨거운 전쟁으로 번지게 한 사건이다. 미국은 유럽을 방어하기 위해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를 설립하고, 동구권을 봉쇄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또한 중동 조약 기구 (METO) 설립에 기여하고, 동남아시아 조약 기구(SEATO)·ANZUS 조약·미일 안보 조약·한미 상호 방위 조약·미중 상호 방위 조약·미필 상호 방위 조약을 체결하여 소련과 중화 인민 공화국을 포위했다.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베트남 전쟁(1965~1975년)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미군은 북베트남에 북폭과 고엽제 살포를 실시했지만, 남베트남 공산 게릴라에게 고전하며 전투는 늪에 빠졌다.
사상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1968년 대통령 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한 존슨의 뒤를 이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베트남으로부터의 철수를 모색했다. 미군은 단계적인 철수를 시작하여 1973년 3월, 베트남 전쟁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1960년대는 마틴 루서 킹이 공민권 운동을 이끈 시대이며, 백인과 흑인의 사회적 인종 차별을 법으로 규정한 짐 크로 법이 폐지되었던 때이다.[183]
국내에서는 사회적으로 보장받지 못하고, 인종 차별에 시달리는 흑인(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한 운동(아프리카계 미국인 시민권 운동)을 벌였고, 급속히 고조되었다. 특히 1963년은 남북 전쟁의 노예 해방 선언 100주년이었고, 흑인의 시위가 잇따라 백인과 충돌하여, 총격전으로 발전하는 지역도 있었지만, 지도자적 존재인 킹 목사는 인도에서 배운 비폭력 투쟁을 주장하며 지지를 확대했다.
1964년 시민권법, 1965년 투표권법, 1968년 공정 주택법과 같은 법률을 통해 법적으로 인종 차별을 합법화했던 짐 크로 법을 종식시켰다.[183]
12. 1. 냉전의 시작과 반공 정책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 간의 갈등, 즉 냉전이 시작되었다.[166] 1945년 나치 독일이 항복하면서 미국과 영국, 소련 사이의 불안정한 전시동맹관계가 해체되었고, 양측은 서로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여러 전략을 사용했다. 미국은 공산주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트루먼 독트린을 성명하고, 동유럽에 마셜 플랜을 통해 막대한 금액을 지원했다.[168] 1949년에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를 결성하여 소련의 바르샤바 조약과 철의 장막으로 이어졌다.미국은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공산주의에 맞서 싸웠으며, 제3세계에서 좌익 정부를 전복하기도 했다.[168] 국내에서는 조지프 매카시 상원을 중심으로 매카시즘이 일어나 정부와 기업 내 공산주의자 색출 작업이 이루어졌고, 할리우드는 반미 활동 위원회의 표적이 되었다.[170] 라벤더 공포로 동성애자들이 탄압받기도 했다.[171]
1950년대 미국은 경제 호황을 맞이했고, 많은 미국인들이 교외 지역으로 이사했다.[176] 1954년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사건 대법원 판결로 공립학교의 인종 차별이 위헌으로 판결되었으나,[177] 리틀 록 센트럴 고등학교 입학 문제에서 보듯이 인종차별은 여전했다. 로자 파크스와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주도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을 시작으로 시민권 운동이 성장하면서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이 커졌다.[177]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니크를 발사하면서 우주 경쟁이 시작되었고, 1958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창설되었다. 1960년대에는 마틴 루서 킹이 공민권 운동을 이끌었고, 짐 크로 법이 폐지되었다.
12. 2.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개입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발발한 한국 전쟁은 냉전을 뜨거운 전쟁으로 번지게 한 사건이다. 미국은 유럽을 방어하기 위해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를 설립하고, 동구권을 봉쇄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또한 중동 조약 기구 (METO) 설립에 기여하고, 동남아시아 조약 기구(SEATO)·ANZUS 조약·미일 안보 조약·한미 상호 방위 조약·미중 상호 방위 조약·미필 상호 방위 조약을 체결하여 소련과 중화 인민 공화국을 포위했다.린든 B. 존슨 대통령은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베트남 전쟁(1965~1975년)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미군은 북베트남에 북폭과 고엽제 살포를 실시했지만, 남베트남 공산 게릴라에게 고전하며 전투는 늪에 빠졌다. 사상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1968년 대통령 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한 존슨의 뒤를 이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베트남으로부터의 철수를 모색했다. 미군은 단계적인 철수를 시작하여 1973년 3월, 베트남 전쟁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12. 3. 흑인 민권 운동의 성장
1960년대는 마틴 루서 킹이 공민권 운동을 이끈 시대이며, 백인과 흑인의 사회적 인종 차별을 법으로 규정한 짐 크로 법이 폐지되었던 때이다.[183] 수년 동안, 비폭력 시민권 운동가들은 1963년 버밍햄 캠페인과 1965년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행진과 같은 직접 행동을 조직했으며, 여기서 폭력의 희생자가 되기도 했다. ''Loving v. Virginia''와 같은 연방 대법원 판결과 1963년 워싱턴 행진과 함께, 이러한 운동은 1964년 시민권법, 1965년 투표권법, 1968년 공정 주택법과 같은 법률을 통해 평등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 법들은 인종 차별을 합법화했던 짐 크로 법을 종식시켰다.[183]
국내에서는 사회적으로 보장받지 못하고, 인종 차별에 시달리는 흑인(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한 운동(아프리카계 미국인 시민권 운동)을 벌였고, 급속히 고조되었다. 특히 1963년은 남북 전쟁의 노예 해방 선언 100주년이었고, 흑인의 시위가 잇따라 백인과 충돌하여, 총격전으로 발전하는 지역도 있었지만, 지도자적 존재인 킹 목사는 인도에서 배운 비폭력 투쟁을 주장하며 지지를 확대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연방 법원에 항의하며 연방 정부가 자신들과 관련된 조약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장 목소리를 높였던 아메리카 원주민 단체 중 하나는 미국 인디언 운동(AIM)이었다. 1960년대에, 세자르 차베스는 저임금의 멕시코계 미국인 농장 노동자들을 캘리포니아에서 조직하기 시작했고, 결국 미국 최초의 성공적인 농장 노동자 노조인 미국 농장 노동자 연합(UFW)을 결성했다.[184]
13. 격동의 시대 (1964-1980)
미국은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며 냉전과 베트남 전쟁 참전으로 인해 큰 변화를 겪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패배로 기록되었다.[185]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 정책은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964년 시민권법, 1965년 투표권법, 1968년 공정 주택법과 같은 법률 제정으로 인종 차별을 종식시키는 큰 진전이 있었다.[183] 미국 인디언 운동과 같은 아메리카 원주민 단체들은 연방 정부에 조약 준수를 요구하며 항의했다.[184] 세자르 차베스는 미국 농장 노동자 연합을 결성하여 농장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했다.[184]
페미니즘과 환경 운동이 정치 세력으로 성장했으며, 1960년대의 반문화 혁명은 사회적 견해를 더욱 자유롭게 만들었다.[185] 흑인 권력 운동과 같이 더 급진적인 정치 운동도 등장했다.[186] 1967년의 길고 뜨거운 여름은 사랑의 여름과 전국적인 폭동을 포함하여 상반된 철학을 보여주었다.[187] 마틴 루터 킹 암살은 1968년에 일어났다.[188] 스톤월 항쟁 이후 현대의 게이 권리 운동이 시작되었다.[189]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 출판은 여성의 불평등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켰고, 전미 여성 기구가 설립되어 여성의 권리 옹호 활동을 시작했다.[190] 평등권 수정안은 보수 연합의 반대로 부결되었지만,[190][191] 임금 평등화, 고용, 교육, 고용 기회 등에서 성별 간 평등한 지위를 확립하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배우자 학대와 혼인 강간을 범죄화하는 주법이 제정되었고, 연방 대법원은 수정 헌법 제14조의 평등 보호 조항이 여성에게 적용된다고 판결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로 낙태가 기본권으로 간주되었으나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에너지 위기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규제 완화 정책이 시행되었고, 실리콘 밸리에서 개인용 컴퓨터가 개발되었다.[197][198]
지미 카터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중재했으나, 이란 인질 사태가 발생했고,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로널드 레이건에게 패배했다.[199][200] 1975년 4월 30일 사이공 함락으로 베트남 전쟁이 종식되었다.
13. 1. 베트남 전쟁과 사회 변화
미국은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며 냉전과 베트남 전쟁 참전으로 인해 큰 변화를 겪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패배로 기록되었다.[185]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 정책은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1964년 시민권법, 1965년 투표권법, 1968년 공정 주택법과 같은 법률 제정으로 인종 차별을 종식시키는 큰 진전이 있었다.[183] 미국 인디언 운동과 같은 아메리카 원주민 단체들은 연방 정부에 조약 준수를 요구하며 항의했다.[184] 세자르 차베스는 미국 농장 노동자 연합을 결성하여 농장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했다.[184]
페미니즘과 환경 운동이 정치 세력으로 성장했으며, 1960년대의 반문화 혁명은 사회적 견해를 더욱 자유롭게 만들었다.[185] 흑인 권력 운동과 같이 더 급진적인 정치 운동도 등장했다.[186] 1967년의 길고 뜨거운 여름은 사랑의 여름과 전국적인 폭동을 포함하여 상반된 철학을 보여주었다.[187] 마틴 루터 킹 암살은 1968년에 일어났다.[188] 스톤월 항쟁 이후 현대의 게이 권리 운동이 시작되었다.[189]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 출판은 여성의 불평등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켰고, 전미 여성 기구가 설립되어 여성의 권리 옹호 활동을 시작했다.[190] 평등권 수정안은 보수 연합의 반대로 부결되었지만,[190][191] 임금 평등화, 고용, 교육, 고용 기회 등에서 성별 간 평등한 지위를 확립하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배우자 학대와 혼인 강간을 범죄화하는 주법이 제정되었고, 연방 대법원은 수정 헌법 제14조의 평등 보호 조항이 여성에게 적용된다고 판결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로 낙태가 기본권으로 간주되었으나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에너지 위기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규제 완화 정책이 시행되었고, 실리콘 밸리에서 개인용 컴퓨터가 개발되었다.[197][198]
지미 카터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중재했으나, 이란 인질 사태가 발생했고,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로널드 레이건에게 패배했다.[199][200] 1975년 4월 30일 사이공 함락으로 베트남 전쟁이 종식되었다.
13. 2. 워터게이트 사건과 정치적 혼란
냉전은 1960년대와 1970년대를 통해 계속되었고, 미국은 이 와중에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대패를 기록한다. 미국 내부에서는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위대한 사회 정책을 통해 '가난과 인종 차별을 없애려는' 시도를 하였으나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필요한 만큼의 지원을 받지 못해 크게 성공하지는 못한다.그러나 이 시대의 미국은 다양한 정치적·사회적 변화를 겪으며 국민들의 의식이 크게 성장하였으며, 공민권을 위한 투쟁도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 존슨 대통령에 이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임기 중 사임한 대통령이 되었으며, 1970년대 초반에는 우주 정거장이 건설되기도 한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1969–1974)은 자신이 물려받은 뉴딜 정책과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을 대체로 계속 추진했다.[179] 닉슨은 환경 보호국을 창설했고,[192] 중국과의 관계를 열었으며, 베트남화를 통해 남베트남에 베트남 전쟁의 노력을 점진적으로 넘겨주려 했다. 그는 1973년 평화 조약을 협상하여 전쟁 포로의 석방을 확보하고 미군 철수를 이끌었다. 전쟁으로 58,000명의 미국 군인이 사망했다. 닉슨은 소련과 중국 사이의 격렬한 불신을 이용하여 미국에 유리하게 활용하여 양측과 ''데탕트''를 달성했다. 그는 또한 1969년 미국의 달 착륙 시기에도 대통령이었다.

닉슨의 요원들이 민주당 전국 위원회 본부에 침입한 사건을 닉슨이 은폐한 워터게이트 사건은 그의 정치적 기반을 파괴했고, 1974년 8월 9일 그의 사임을 강요했다. 그는 제럴드 포드 부통령에 의해 계승되었다.[193]
14. 현대 (1980-현재)

1981년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1989년 취임한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쳤다. 시장의 구매력을 높이기 위해 세금을 3분의 1로 감면하고, 복지 정책을 축소하였으며, 군비 지출을 늘리며 사상 최대의 재정 적자를 기록하였다. 이로 인해 미국 산업의 구조적 취약점은 개선되지 못한 상태에서 새로운 구매력은 수입품에 압도적으로 몰렸으며 사상 유례가 없는 무역 적자를 기록하게 되었다.[423]
1991년 소련이 붕괴되자 명실상부 전 세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세계 평화를 책임지겠다고 표방하고, 이에 거슬리는 여러 나라에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켰으며, 동시에 내부적으로도 경제적, 정치적 정책을 통해 성장을 거듭한 시대이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미국은 국가적 자존심을 다시 회복하여 중동과 발칸 분쟁을 중재하였으며, 경제도 회복세를 보였다. 다만 이러한 부흥은 정보통신 산업에 의존한 면이 컸기에, 이들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자 2000년 닷컴 버블로 대표되는 위협을 받기도 하였다.[423]
2001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출범 이후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등으로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걸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을 일으켰고, 이에 반발하는 세력들에 의해 많은 테러의 위험에 노출되었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이유인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는 사실이 아님이 밝혀져 이라크 전쟁은 명분없는 전쟁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424] 2001년 9월 11일에는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세계 무역 센터가 테러 당했으며, 이에 대한 보복으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오사마 빈 라덴을 비호한다는 이유로 탈리반 정권을 붕괴시켰다. 그 이후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으며 이라크를 공격하고 사담 후세인을 체포하기도 하였다. 이라크 전쟁은 프랑스, 독일 등 많은 국가가 반대하였으나 미국은 이를 강행하였다.
2009년 제44대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출범함으로써 미국 역사상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이 탄생되었다. 오바마는 2013년에 다시 대통령으로 출범했다. 2017년에는 최초의 기업인 출신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14. 1. 레이건 행정부와 신자유주의 정책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1년 취임하여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쳤다.[423] 세금 감면, 복지 정책 축소, 군비 지출 증가 등으로 사상 최대의 재정 적자를 기록했고, 무역 적자 또한 유례없는 수준으로 증가했다.[423] 레이건의 보수 정책은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압승으로 이어져 정치적 재편을 가져왔다.[201][202] 레이거노믹스는 1981년 경제 회복 세금법 시행을 포함하며, 정부의 세금 및 규제를 축소하고 뉴딜과 대사회 프로그램을 종료시켰다.[202][203][204][179] 1980년대 초 경기 침체 이후 경제 성장률이 증가했지만, 노숙자와 경제적 불평등 또한 증가했다.[205][206][207]레이건 행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확대하여 미국 수감률 증가를 초래했고,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이에서 마약 관련 범죄 수감자 수가 급증했다.[208][209] 또한 로널드 레이건과 에이즈에 AIDS 위기에 늦게 대응하여 감염률을 높였다.[211][212]
레이건은 군사력 증강을 명령하고, 그레나다 침공과 1986년 미국 리비아 폭격을 감행했다.[213] 전략 방위 구상을 도입하여 소련과 군축 협상을 중단시키기도 했다.[214] 레이건은 고르바초프와 네 차례 회담을 가졌고, 중거리 핵전력 조약이 체결되었다.[215]
제럴드 포드와 지미 카터 행정부 시기에는 정치 불신이 해소되지 않았고, 이란 혁명 당시 대사관 구출 작전 실패와 이란-콘트라 사건 등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흑인 차별 문제와 도시 슬럼화, "아메리카 병"으로 불리는 사회 문제도 심각했으며, 정부는 복지 정책에 힘을 쏟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레이건은 보수파, 복음주의, 기독교 근본주의 등의 기대를 받으며 등장했다.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하고 전략 방위 구상을 시작하는 등 강경 외교 정책을 펼쳤다. 신보수주의 세력이 레이건 행정부에 합류하여 이러한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레이건은 중앙아메리카 분쟁에 개입하여 반공 정부군과 콘트라를 지원했고, 그레나다 침공을 성공시켰지만, 레바논 내전에서 대규모 인명 피해를 겪은 후 지상 작전에는 소극적이 되었다. 이란-콘트라 사건이라는 스캔들도 발생했다.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과 대립하고, 영국, 일본 등 동맹국과의 관계를 중시했다. G7 정상 회담이 개최되기 시작했고, 1985년 플라자 합의에서 영향력이 발휘되었다.
산업 면에서는 반도체를 사용하는 컴퓨터를 중심으로 한 첨단 공업이 발달하여 실리콘 밸리가 등장했다. 일본과 서독의 경제 성장으로 자동차, 가전 등에서 경쟁이 심화되었고, 특히 일본 제품의 인기로 무역 마찰이 발생했다. 미국 내에서는 "재팬 배싱" 운동이 확산되기도 했다.
레이건의 뒤를 이은 조지 H. W. 부시는 파나마 침공과 걸프 전쟁을 성공시키고, 일본에 대한 압력 외교를 펼쳤다. 로스 폭동을 계기로 인종 차별 문제가 부각되기도 했다. 1989년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12월 3일 몰타 회담에서 "냉전의 종식"이 선언되었다.
14. 2. 냉전 종식과 미국의 패권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쳤으나, 이로 인해 미국의 산업 구조적 취약점은 개선되지 못하고 무역 적자가 심화되었다.[423]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부상하여 세계 평화 유지를 표방하며 여러 국가와 전쟁을 벌였다.[423] 빌 클린턴 대통령 시기에는 중동 및 발칸 분쟁 중재와 경제 회복을 이루었으나, 2000년 닷컴 버블로 위기를 맞기도 하였다.[423]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보수 정책은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압승을 통해 주요한 정치적 재편을 가져왔다.[201][202] 레이건은 1981년 경제 회복 세금법을 시행하고, 정부의 세금 및 규제를 축소했으며, 뉴딜과 대사회 프로그램은 종료되었다.[202][203][204][179] 미국은 1980년대 초 경기 침체를 겪었지만, 인플레이션이 감소한 후 실업률이 감소하고 경제 성장률이 증가했다.[205] 그러나 노숙자와 경제적 불평등 또한 증가했다.[206][207] 레이건은 마약과의 전쟁을 확대하여 미국 수감률 증가를 초래했고, 로널드 레이건과 에이즈에 AIDS 위기에 늦게 대응하여 감염률을 높였다.[208][209][211][212]
레이건은 군사력 증강을 통해 그레나다 침공과 1986년 미국 리비아 폭격을 단행하였지만, 콘트라 반군 지원은 이란-콘트라 사건으로 논란을 야기했다.[213] 레이건은 전략 방위 구상을 도입했고, 소련은 탄도탄 요격 미사일 제한 조약 위반이라며 반발하며 군축 협상을 중단했다.[214]

레이건은 고르바초프와 회담을 통해 중거리 핵전력 조약을 체결했으며, 소련의 붕괴로 냉전이 종식되었다.[215] 조지 H.W. 부시 행정부 동안 걸프 전쟁이 시작되어 쿠웨이트 침공을 한 이라크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부시 행정부에서 미국은 미국의 파나마 침공, 소말리아, 보스니아, 크로아티아에서 전쟁에 관여했다.[216][217][218] 1992년에는 경찰의 폭력으로 인해 로스앤젤레스에서 폭동이 일어났다.[219]
1989년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를 계기로 12월 3일 미하일 고르바초프와의 몰타 회담에서 "냉전의 종식"이 선언되었다. 1990년8월 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해, 미군 중심의 다국적군이 편성되어 1991년1월 17일부터 2월 28일까지 전쟁을 벌여 쿠웨이트를 해방시켰다. (걸프 전쟁)[423]
빌 클린턴 대통령은 정보 슈퍼하이웨이 구상 등 IT 산업을 적극 지원하여 경제 호황을 이끌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과 같은 미국 기업이 급성장하여 하이테크 독점이 진행되었다. 클린턴 시대에는 영부인 힐러리 클린턴의 영향으로 여성의 권리가 대폭 인정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소말리아의 유엔 평화유지 활동 (PKO) 실패 이후 해외 파병 자제 여론이 커졌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대량살상무기를 이유로 걸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을 일으켰으나, 이는 명분없는 전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424]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점령, 탈리반 정권을 붕괴시켰으며, 이라크를 공격하고 사담 후세인을 체포했다.[424] 이라크 전쟁은 프랑스, 독일 등 많은 국가가 반대하였으나 미국은 이를 강행하였다.[424]
2009년 버락 오바마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으로 출범했다. 2017년에는 최초의 기업인 출신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14. 3. 클린턴 행정부와 경제 호황
1992년 선거에서 당선된 빌 클린턴 대통령은 경제 확장을 감독했으며 30년 만에 최초의 연방 균형 예산을 통과시켰다.[423] 경제 호황의 상당 부분은 디지털 혁명의 부작용이었으며, 인터넷이 창출한 새로운 사업 기회에 기인했다.[220] 1993년에는 빌 클린턴이 대통령에 취임하여, 1990년대의 번영을 누렸다. 이 클린턴 시대는, 소련이 붕괴한 후, 미국에 의한 "일극 지배"라고 불리는 시대가 되었다.클린턴 행정부 동안 미국은 아이티와 코소보에서 전쟁에 참여했다.[221][222] 대외적으로는, 소말리아의 유엔 평화유지 활동(PKO)이 현지 민병대에 습격당해 미군에게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으로, 해외 파병을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커졌다. 또한 코소보 전쟁에 의한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이나, 이라크에 대한 공습, 아프가니스탄·수단 공격은 지상군을 동반하지 않는 비교적 소규모의 전투였다.

보수적인 공화당은 19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혁명"을 통해 압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미국과의 계약 정책 의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223][224] 뉴트 깅리치는 하원 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223] 그는 공화당이 "대결적인" 정치적 발언을 하도록 크게 영향을 미쳤다.[225][226] 오클라호마 시티 폭탄 테러 이후 클린턴의 리더십은 그의 인기를 높였고,[227] 그는 1996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228]
클린턴 시대에는 영부인인 힐러리 클린턴의 영향으로 여성의 권리를 대폭 인정하는 등, 부시까지의 보수적인 상황에서 어느 정도 자유주의적인 방향으로 되돌리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1998년, 빌 클린턴 탄핵은 하원에서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관계에 관해 위증한 혐의로 탄핵되었다. 그는 상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부시 이후에 등장한 빌 클린턴(민주당)은 경제적 불황을 해소하는 데 노력했고, 클린턴이 대통령직을 떠날 때에는 이 상황이 완전히 해소되어,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이는 부통령인 앨버트 고어가 주장하는 정보 슈퍼하이웨이 구상 등, IT 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미국은 1980년대부터 군사 목적으로 전화 회선을 사용한 정보망 정비를 해왔으며, 1990년대에 PC 통신과 인터넷이 민간에 의해 급속도로 확산되는 기반이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Apple Computer)과 같은 미국 기업이 급성장하여, 하이테크의 독점이 진행되었다.
2000년에는 인터넷 기업 주식의 광범위한 과대평가인 닷컴 버블이 붕괴되어 미국 경제에 타격을 입혔다.[229][230]
14. 4. 21세기와 테러와의 전쟁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하여 세계 평화를 책임지겠다고 표방하며 여러 전쟁을 일으켰다.[423] 2001년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여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는 명분으로 걸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을 일으켰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424]

2001년 9월 11일, 알 카에다 소속 테러리스트 19명이 여객기 4대를 납치하여 자살 공격을 감행, 뉴욕 세계 무역 센터와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펜타곤에 충돌했다.[424] 이 9·11 테러로 2,977명이 사망했고,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424]
2001년 10월, 미국은 NATO와 함께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감행하여 알 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을 비호하던 탈레반 정권을 축출했다. 애국자법을 제정하여 정부의 감시 권한을 강화하고, 관타나모 만 수용소에 테러 용의자를 무기한 구금하여 인권 침해 논란을 일으켰다. 국토안보부를 창설하여 연방 대테러 활동을 이끌었다.
2003년 3월, 미국은 사담 후세인이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을 근거로 이라크를 침공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라크 전쟁은 국제적인 시위를 촉발했고, 미국의 국내 지지율도 하락했다.
2009년에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가 취임했다. 2017년에는 기업인 출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 (통칭: TPP)으로부터의 철수 표명,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으로의 이전 및 동 국가의 수도로서의 예루살렘 승인, 시리아에 대한 공습, 멕시코로부터의 불법 이민 규제, 기후 변화 억제에 관한 다자간 협정 (통칭: 파리 협정)으로부터의 미국 이탈 선언, 이란 핵 합의로부터의 이탈, 국제 연합 인권 이사회로부터의 탈퇴, 백악관 대변인이나 CIA (중앙정보국) 국장, 국무장관, 국방장관 등 잇따른 정부 고위 관료 인사의 해임·교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의 제3대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조선로동당 위원장과의 사상 첫 북미 정상 회담 개최, 중국과의 무역 마찰, 인종 차별 문제 등, 내정·외교 양면 모두 다양한 과제에 직면했다. 코로나19 범유행의 만연 방지에 어려움을 겪어, 2020년 대선에서 재선에 실패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를 완료하여 20년에 걸친 전쟁 상태를 종결시켰지만, 탈레반에게 다시 그 땅을 넘겨주게 되었다.
2022년 미국 중간선거의 상원 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다수당을 유지했지만, 하원 의원 선거에서는 공화당이 과반수의 의석을 획득했다[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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