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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 공비 다이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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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웨일스 공비 다이애나(1961-1997)는 찰스 3세와의 결혼으로 영국 왕실의 일원이 되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1981년 찰스 3세와 결혼하여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를 낳았으며, 1996년 이혼했다. 다이애나는 에이즈 환자, 지뢰 피해자, 암 환자 등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자선 활동에 헌신적으로 참여했으며, 패션 아이콘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1997년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며, 그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전 세계에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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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 공비 다이애나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다이애나가 분홍색 스커트 정장과 진주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
1997년 6월의 다이애나
본명다이애나 프랜시스 스펜서
출생일1961년 7월 1일
출생지파크 하우스, 잉글랜드
사망일1997년 8월 31일
사망 장소파리, 프랑스
사망 원인자동차 사고
매장일1997년 9월 6일
매장지올소프, 노샘프턴셔, 잉글랜드
다이애나 스펜서의 서명
다이애나 스펜서의 서명
작위
작위웨일스 공비 (더 보기)
풀네임다이애나 프랜시스 스펜서
영어 풀네임Diana Frances Spencer
칭호웨일스 공비 (이혼 후 유지)
경칭전하 (이혼 후 박탈)
가문
가문스펜서 (출생)
윈저 (결혼)
가문 유형귀족/왕가
결혼
배우자찰스 왕세자 (1981년 7월 29일 결혼, 1996년 8월 28일 이혼)
자녀윌리엄 왕세자
해리 왕자, 서식스 공작
자녀 링크#자손
가족 관계
아버지존 스펜서, 제8대 스펜서 백작
어머니프랜시스 로체
교육
교육리들스워스 홀 학교
웨스트 히스 여자 학교
인스티튜트 알핀 비데마네트
경력
직책영국 적십자사 부총재

2. 생애

1961년 7월 1일 스펜서 가문의 존 스펜서(훗날 제8대 스펜서 백작)와 그의 부인 프랜시스 로슈 사이의 셋째 딸로 잉글랜드 노퍽주 샌드링엄의 파크 하우스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부모의 이혼을 겪었으며, 기숙 학교인 리들스워스 홀 스쿨과 웨스트 히스 여자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학업 성적은 뛰어나지 않았으나 음악과 스포츠에 재능을 보였고, 1975년 아버지가 백작위를 계승하면서 '레이디 다이애나 스펜서'라는 경칭호를 얻게 되었다.

1977년 스위스의 피니싱 스쿨을 잠시 다닌 후 런던으로 돌아와 보모, 유치원 보조교사 등 다양한 일을 하며 지냈다. 같은 해 언니 사라와 교제 중이던 찰스 3세 왕세자를 처음 만났고, 1980년 여름부터 본격적인 관계가 시작되었다. 1981년 2월 약혼을 발표하고, 같은 해 7월 29일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며 웨일스 공비가 되었다.

결혼 후 켄싱턴 궁전에서 생활하며 윌리엄(1982년생)과 해리(1984년생) 두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찰스 왕세자와의 관계는 점차 악화되었고, 결혼 생활의 불행과 신경성 폭식증 등으로 고통받았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찰스 왕세자가 카밀라 파커 볼스와의 관계를 재개하면서 부부 사이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1992년 12월 공식적으로 별거에 들어갔으며, 이후 각자의 외도 사실과 결혼 생활의 불행이 언론을 통해 폭로되었다. 특히 1995년 BBC 파노라마 인터뷰에서 다이애나는 자신의 불륜 사실을 인정하고 "이 결혼에는 우리 셋이 있었다"고 말하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인터뷰는 이혼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96년 8월 28일 이혼이 최종 확정되었고, 다이애나는 '전하(Her Royal Highness)' 칭호를 잃는 대신 '웨일스 공비 다이애나(Diana, Princess of Wales)' 칭호를 유지하며 위자료로 1700만파운드의 일시불과 연간 40만파운드를 받았다. 이혼 후 에이즈 예방 및 퇴치 운동, 대인지뢰 제거 운동 등 자선 활동에 더욱 헌신하며 국제적인 영향력을 넓혔다. 이 시기 파키스탄 출신 심장 외과 의사 하스나트 칸과 깊은 관계를 맺었으며, 이후 이집트 출신 영화 제작자 도디 파예드와도 교제했다.

1997년 8월 31일 새벽, 프랑스 파리에서 도디 파예드와 함께 파파라치의 추격을 피하던 중 퐁드랄마 지하차도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향년 36세였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전 세계적인 충격과 슬픔을 안겼으며, 영국 왕실은 이례적으로 준국장 형식의 장례식을 치렀다.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는 그녀를 "국민의 프린세스(People's Princess)"라 칭하며 애도했고, 이 표현은 그녀를 상징하는 수식어가 되었다. 장례식은 전 세계 수십억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되었으며, 유해는 스펜서 가문의 영지인 앨소프에 안장되었다. 사후에도 그녀의 삶과 활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추모되고 있다.

2. 1. 가문

다이애나 프랜시스 스펜서는 1961년7월 1일 잉글랜드 노퍽주 샌드링엄의 파크 하우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당시 올소프 자작이었던 에드워드 존 스펜서(훗날 제8대 스펜서 백작)이고, 어머니는 제4대 모리스 로치의 딸인 프랜시스 로치이다. '다이애나 프랜시스'라는 이름은 아버지 쪽 조상과 어머니의 이름에서 따왔다. 다이애나는 세 자매 중 막내로, 위로는 언니 세라와 제인이 있으며, 3년 뒤 남동생 찰스가 태어났다.

다이애나는 영국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인 스펜서 가문 출신이다. 스펜서 가문은 17세기 초 양모 사업으로 부를 축적하여 로버트 스펜서가 남작 작위를 받은 이래 귀족 지위를 유지해왔다. 스펜서 가문의 여러 분파는 말버러 공작, 스펜서 백작, 선덜랜드 백작, 처칠 남작 등의 작위를 보유하고 있다.[429][430] 스펜서 가문은 중세 데스펜서 가문의 방계라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그 타당성은 명확하지 않다.[431] 다이애나가 속한 스펜서 백작 가문은 1765년 제3대 말버러 공작의 조카인 존 스펜서가 백작위를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19세기에는 정계에서 활약하는 인물들을 배출했으나, 20세기 들어 귀족의 정치적 영향력이 줄면서 주로 궁정 신하나 군인으로 활동하는 경향을 보였다.[446] 다이애나 출생 당시 가문의 당주는 할아버지인 제7대 스펜서 백작 앨버트 스펜서였다.

스펜서 가문은 스튜어트 왕가의 후손으로, 아버지 쪽으로는 잉글랜드의 찰스 2세를 통해 찰스 레녹스, 헨리 피츠로이와 연결되며, 잉글랜드의 제임스 2세를 통해 헨리에타 피츠제임스의 후손이기도 하다.[16][435] 또한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2세, 로버트 1세, 메리 여왕의 혈통도 이어진다. 잉글랜드의 헨리 7세를 공통 조상으로 하여 훗날 남편이 되는 찰스 왕세자와도 먼 친척 관계였다.[434] 그 외에도 2대 서퍽 백작 마이클 드 라 폴의 손녀 마가렛 커데스턴, 엘리자베스 1세의 총신이었던 2대 에식스 백작 로버트 데버러, 에드워드 3세의 후손인 초대 서머싯 공작 에드워드 시모어 등 여러 귀족 조상을 두었다.[438][436][437]

윈스턴 처칠 전 총리 역시 다이애나와 먼 인척 관계이다. 다이애나의 8대 조상인 찰스 스펜서(1674~1722)는 처칠과 다이애나의 공통 조상으로, 그의 아들 중 한 명(찰스 스펜서 2세, 말버러 공작)은 처칠 가문의 선조가 되었고, 다른 아들(조지 스펜서)은 다이애나의 선조가 되었다.[465][468]

어머니 프랜시스 로치 쪽 가계는 아일랜드에 기반을 둔 페르모이 남작 작위를 가진 귀족 가문이다. 재산이나 가문의 격은 스펜서 가문보다 낮았지만, 외할아버지인 제4대 페르모이 남작 모리스 로시는 왕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다이애나의 외할머니 루스 로치는 1956년부터 엘리자베스 왕대비의 시녀로 봉사하기도 했다.

다이애나의 혈통에는 다양한 배경이 섞여 있다. 어머니 쪽으로는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혈통 외에도 미국인 조상이 있다. 증조모인 프랜시스 엘렌 워크는 오하이오주 출신의 부유한 미국 주식 중개인 프랭클린 H. 워크의 딸로, 아일랜드 귀족인 제3대 페르모이 남작 제임스 로치와 결혼했다.[438][439] 증조모 마가렛 바링은 독일계 영국인 바링 가문 출신으로, 초대 레블스토크 남작 에드워드 바링의 딸이었다.[432][433] 또한 직계 모계 4대조 할머니인 엘리자 키워크는 인도 혈통으로 추정되며, 당시 문서에는 "피부가 검은 원주민 여성" 또는 "봄베이 출신의 아르메니아 여성"으로 기록되어 있다.[440][441][442][443][444] 다이애나의 스코틀랜드 혈통은 외할머니 레이디 페르모이를 통해 이어지며, 조상 중에는 4대 고든 공작 알렉산더 고든과 그의 아내 제인, 그리고 9대 아가일 백작 아치볼드 캠벨 등이 있다.[438]

다이애나가 태어난 파크 하우스는 왕실 별장인 샌드링엄 하우스 부지 내에 위치한 저택이다. 원래 에드워드 7세가 손님 접대용으로 지었으며, 조지 5세 때 외할아버지 페르모이 경에게 임대되었고, 이후 다이애나의 부모가 임차권을 상속받았다. 주차장, 수영장, 테니스 코트 등을 갖추고 6명의 사용인이 있었지만, 귀족 저택으로서는 비교적 소규모였다. 다이애나는 이곳의 목가적인 환경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스펜서 가문은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다이애나의 대부모 선정에서는 다른 형제들과 차이가 있었다. 남동생 찰스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대모로 하여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세례를 받았고, 언니 세라와 제인 역시 각각 여왕과 켄트 공작을 대부모로 두었다. 반면 다이애나의 대부모는 노퍽 주지사 부인 메리 콜먼, 크리스티스 회장 존 플로이드 등 자산가이지만 평민 신분이었으며, 세례식도 지역 교회인 성 메리 매그덜린 교회에서 열렸다.

2. 2. 유년 시기

다이애나 프랜시스 스펜서는 1961년 7월 1일, 당시 존 스펜서, 올소프 자작(1924–1992)과 그의 부인 프랜시스 로슈(1936–2004) 사이의 넷째 자녀로 영국 노퍽주 파크 하우스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961년 8월 30일 성 메리 매그달렌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스펜서 가문은 수 세대 동안 영국 왕실과 깊은 관계를 맺어온 귀족 가문이었다. 다이애나의 친할머니 신시아 스펜서와 외할머니 루스 로슈는 모두 엘리자베스 왕대비의 시녀로 봉사한 경력이 있었다. 다이애나의 부모는 가문의 후계자가 될 아들을 간절히 원했으며, 다이애나가 태어난 후 일주일 동안 이름을 짓지 못하다가 먼 친척이자 과거 웨일스 공비 후보였던 레이디 다이애나 스펜서와 어머니의 이름을 따 다이애나 프랜시스라고 지었다. 어린 시절 다이애나는 공작 부인 같은 태도 때문에 '더치(Duch)'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다.[2]

다이애나에게는 사라, 제인 두 언니와 남동생 찰스가 있었다. 다이애나가 태어나기 약 1년 전에는 오빠 존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다. 아들을 원했던 부모의 압박감은 결혼 생활에 부담을 주었으며, 어머니 프랜시스는 원인 규명을 위해 런던의 할리 스트리트 병원에서 검사를 받기도 했다. 남동생 찰스는 이 경험이 부모에게 "굴욕적"이었으며 이혼의 근본 원인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다이애나는 샌드링엄 영지 내에 위치한 파크 하우스에서 성장했다. 스펜서 가족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이 집을 임대했으며, 어린 다이애나는 여왕을 "릴리벳 고모(Aunt Lilibet)"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4] 왕실 가족이 인근 샌드링엄 하우스에서 휴가를 보낼 때, 다이애나는 앤드루 왕자와 에드워드 왕자와 함께 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다이애나가 7살이었던 1967년, 부모는 별거에 들어갔고 이후 이혼했다. 어머니 프랜시스는 피터 섀드 키드와 관계를 맺고 1969년에 그와 재혼했다. 별거 초기 다이애나는 어머니와 함께 런던에서 살았으나, 그 해 크리스마스 휴가 이후 아버지 올소프 경은 다이애나가 런던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았다. 아버지는 다이애나의 외할머니인 페르모이 남작 부인의 지지를 받아 양육권을 확보했다. 다이애나는 훗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매우 불행했고", "모든 것이 매우 불안정했다"고 묘사했다.[6]

아버지와 함께 파크 하우스에 살게 된 다이애나는 인근 킹스린의 실필드 스쿨(Silfield School)에 다녔다. 1970년 9월에는 노퍽의 기숙 학교인 리들스워스 홀 스쿨에 입학했다. 학업 성적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발레, 수영, 테니스, 네트볼 등 스포츠에 재능을 보였고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1973년에는 언니들이 다녔던 켄트주 세븐오크스의 웨스트 히스 스쿨로 진학했다. 이 시기 다이애나는 바바라 카트랜드의 로맨스 소설에 심취하여 학업에는 다소 소홀했으나, 스포츠와 피아노 연주 등 예체능 활동은 꾸준히 이어갔다. 발레리나를 꿈꿨지만 키가 180cm 가까이 자라면서 포기해야 했다. 웨스트 히스 스쿨은 학생들의 자원봉사 활동을 장려했는데, 다이애나는 매주 노인 가정을 방문하여 대화를 나누고 집안일을 돕는 등의 활동을 통해 사회 봉사에 대한 자신의 적성을 발견했다고 한다.

1975년 6월 9일, 할아버지인 제7대 스펜서 백작 앨버트가 사망하자 아버지 존 스펜서가 제8대 스펜서 백작 작위를 계승했다. 이에 따라 다이애나는 '레이디 다이애나 스펜서'(Lady Diana Spencer)라는 경칭호를 얻게 되었고, 가족은 노샘프턴셔에 위치한 스펜서 가문의 본가인 앨소프 저택으로 이사했다. 1976년, 아버지는 레인 매코쿼데일(바바라 카트랜드의 딸)과 재혼했다. 다이애나를 포함한 스펜서가의 자녀들은 계모 레인을 "괴롭히는 사람(bully)"이라고 부르며 매우 싫어했고, 다이애나가 레인을 계단에서 밀어버린 적도 있을 정도로 초기 관계는 험악했다.[5] (다만 이후 관계는 다소 개선된 것으로 알려졌다.)

2. 3. 교육

다이애나는 처음에는 보모 거트루드 앨런의 감독 하에 가정 교육을 받았다.[16] 이후 노퍽주 킹스린에 있는 사립학교인 실필드 사립학교에서 정식 교육을 시작했고, 9살 때 테트포드 근처에 있는 여자 기숙 학교인 리들스워스 홀 스쿨로 옮겼다. 이 시기 다이애나는 스포츠에 능했고 발레, 댄스, 테니스, 네트볼, 수영 등에서 활약했으며 친구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1973년에는 언니들과 함께 켄트주 세븐오크스에 있는 웨스트 히스 여자 학교에 입학했다. 이 학교에서 다이애나는 학업 성적이 뛰어나지는 않아 O-레벨 시험에 두 번 낙방했다.[7][8] 그러나 뛰어난 공동체 정신으로 학교에서 상을 받았으며,[9] 숙련된 피아니스트로서 음악적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9] 또한 수영다이빙에 뛰어났고 발레와 탭 댄스를 배웠으나,[9] 키가 180cm 가까이 자라 발레리나의 꿈은 포기해야 했다. 웨스트 히스 학교는 학생들의 자원봉사 활동을 장려했는데, 다이애나는 매주 노부부의 집을 방문하여 봉사하며 자신의 사회 봉사 적성을 발견했다고 한다. 당시 다이애나는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었다고 남동생 찰스 스펜서는 회상한다.

1977년 16세 때 웨스트 히스를 떠나, 잠시 스위스 루제몽에 있는 피니싱 스쿨인 Institut Alpin Videmanette|인스티튜트 알핀 비데마네트프랑스어에 다녔다. 이곳에서 미래의 남편인 찰스 왕세자를 처음 만났는데, 당시 찰스 왕세자는 그녀의 언니인 레이디 사라와 사귀고 있었다. O 레벨 시험에 두 번 실패한 후 진학을 포기하고, 1978년 다시 이 스위스 학교에 입학하여 한 학기를 다닌 뒤[11] 1978년 부활절 학기 이후 학교를 떠났다.

정식 교육 과정을 더 이상 밟지 않기로 하고 런던으로 돌아온 다이애나는 어머니 소유의 플랫에서 학교 친구 두 명과 함께 지냈다. 이후 1979년 7월, 어머니가 18세 생일 선물로 얼스 코트에 있는 콜헤른 코트의 아파트를 사주었고, 1981년 2월 25일까지 세 명의 룸메이트와 함께 그곳에서 살았다. 이 기간 동안 르 꼬르동 블루에서 고급 요리 과정을 수강했으며,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켄징턴에 있는 마담 바카니(Madame Vacani영어)의 무용 학원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고, 청소년을 위한 댄스 강사로 일했으나 스키 사고로 중단해야 했다. 유치원 보조 교사, 언니와 친구들의 집 청소, 파티 호스티스, 청소부, 칵테일 웨이트리스 등으로도 일했다. 또한 햄프셔에서 3개월간 보모로 일했고,[10] 런던에 사는 미국인 로버트슨 가족의 보모로도 일했다.[12] 핌리코에 있는 Young England School|영 잉글랜드 스쿨영어에서 유치원 교사 보조로 일하기도 했다.

2. 4. 결혼

다이애나의 문장


영국 왕세자의 아내가 되기 위한 조건은 로마 가톨릭교도가 아닌 성공회 신자나 개신교 신자여야 하고, 결혼 경험이 없는 처녀이며 왕족 또는 귀족 가문 출신이어야 했다. 다이애나는 이러한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신붓감이었다.

다이애나는 1977년 11월, 16세의 나이에 당시 29세였던 왕위 계승자 찰스 3세를 처음 만났다. 찰스는 당시 다이애나의 언니 사라와 교제 중이었다.[13] 1980년 여름, 시골 주말 모임에 손님으로 초대된 다이애나를 보며 찰스는 그녀를 신부감으로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14] 관계는 다이애나를 브리타니아 호에 초대하여 코우즈로 항해하는 주말을 함께 보내면서 진전되었고, 이후 발모랄 성에 초대되어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왕대비, 에든버러 공작 등 왕실 가족을 만났다.[15] 왕실 가족들은 다이애나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찰스는 런던에서 다이애나에게 구애했고, 1981년 2월 6일 윈저 성에서 청혼했다. 다이애나는 이를 수락했으나, 약혼 사실은 2주 반 동안 비밀로 유지되었다.

1981년 2월 24일, 약혼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고, 같은 해 7월 29일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전 세계의 주목 속에 '세기의 결혼식'이라 불릴 만큼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젊고 매력적인 새로운 웨일스 공비의 등장은 마치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대중적인 관심과 인기를 끌었으며, 특히 패션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83년 호주 왕실 순방 중 찰스 곁에 있는 다이애나


1982년 6월 21일에는 장남 웨일스 공 윌리엄을, 1984년에는 차남 서식스 공작 해리를 출산했다.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 공은 두 아들을 고든스타운 학교에 보내기를 원했지만, 찰스와 다이애나는 이튼 칼리지에 입학시켰다. 다이애나는 아들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했다고 느꼈기에, 직접 모유 수유를 하고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두 아들은 엄격한 왕실 생활 속에서 그녀가 찾은 희망이었으며, 아들들이 심리적 상처를 받을 것을 우려하여 1996년 그들이 10대 중반이 될 때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결혼 5년 만에 부부 사이의 성격 차이와 나이 차이로 인한 문제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1986년, 다이애나는 왕실 승마 코치였던 제임스 휴이트와 관계를 시작했고, 같은 해 찰스 역시 옛 연인인 카밀라 파커 볼스와 관계를 다시 시작했다. 언론에서는 휴이트와 해리 왕자의 외모 유사성을 근거로 휴이트가 해리의 친부일 수 있다는 추측을 제기했으나, 휴이트 본인을 포함한 관련자들은 이를 부인했다. 해리 왕자는 다이애나와 휴이트의 관계가 시작되기 2년 전에 태어났다.[30][35]

1987년경에는 부부 관계의 균열이 명백해졌고, 언론은 그들의 불행과 서로에 대한 냉담한 태도를 보도하며[18][36] '글럼스(Glums)'[37][38]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1989년, 다이애나는 카밀라 파커 볼스의 여동생 생일 파티에서 카밀라와 직접 대면하여 찰스와의 관계에 대해 따져 물었다.[39][40] 이러한 불화는 1992년 앤드루 모턴의 책 ''다이애나: 그녀의 진실''이 출간되면서 대중에게 알려졌다.[41][42] 이 책에는 다이애나가 자살 충동을 느낄 정도로 불행했다는 고백이 담겨 있어 큰 파장을 일으켰다. 1991년 제임스 콜서스트가 다이애나와 비밀리에 진행한 인터뷰 녹음이 이 책의 주요 자료가 되었다.[43][44] 생전에 다이애나와 모턴은 책 집필에 직접 관여한 사실을 부인했지만, 다이애나 사후 모턴은 개정판에서 다이애나가 책 내용에 기여했음을 인정했다.[45]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 공은 찰스와 다이애나의 만남을 주선하며 관계 회복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필립 공은 다이애나에게 편지를 보내 부부 각자의 외도에 실망감을 표하며 서로의 입장을 고려해볼 것을 요청했다. 다이애나는 편지 내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지만, 필립 공의 좋은 의도는 이해했다고 전해진다. 일부 측근들은 다이애나와 필립 공의 관계가 불편했다고 주장했지만,[118][46][47] 다른 관찰자들은 주고받은 편지에서 갈등의 증거를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48] 필립 공은 후에 다이애나를 모욕했다는 주장을 부인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49]

1992년과 1993년에는 다이애나와 찰스 각자의 사적인 전화 통화 내용이 유출되어 두 사람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92년 8월 다이애나와 제임스 길비의 통화 녹음 테이프("스퀴지게이트", Squidgygate)가 공개되었고,[50][16] 같은 해 11월에는 찰스와 카밀라 파커 볼스의 통화 내용("카밀라게이트", Camillagate)이 타블로이드 신문에 실렸다.[51] 결국 1992년 12월, 존 메이저 당시 총리는 하원에서 부부의 "원만한 별거"를 공식 발표했다.[52]

1992년 사우스실즈에서 공식 행사를 수행하는 웨일스 공비 다이애나


별거 기간 중인 1992년과 1993년 사이, 다이애나는 대중 연설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음성 코치 피터 세텔렌을 고용했다.[53] 1992년 세텔렌이 녹화한 비디오테이프에서 다이애나는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이 환경에서 일하는 누군가" 즉, 자신의 경호원이었던 배리 매나키를 깊이 사랑했다고 고백했다.[54][55][56] 매나키는 1986년 다이애나와의 관계가 부적절하다는 판단 하에 다른 부서로 전출되었다.[55][57] 다이애나는 테이프에서 매나키가 외도 혐의 때문에 경호원직에서 "쫓겨났다"고 말했다.[54] 전기 작가 페니 주너는 다이애나가 매나키와 연인 관계였다고 주장했으나,[58] 다이애나의 친구들은 이를 부인했다.[58] 다이애나는 테이프에서 그에 대한 감정이 깊었으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와 함께 살고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고 말했고, 그를 "최고의 친구"라고 묘사했지만 성적인 관계는 부인했다.[59] 또한 남편 찰스에 대해 "그는 가능한 모든 면에서 나를 너무 무능하게 느끼게 만들었다"며 고통을 토로했다.[60]

다이애나는 결혼 문제의 원인을 주로 카밀라 파커 볼스에게 돌렸지만, 남편이 다른 여성과도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1993년 10월, 그녀는 집사 폴 버렐에게 편지를 써서 찰스가 아들들의 전 보모이자 개인 비서인 티기 레그-보크와 사랑에 빠졌으며,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자신을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61][62] 다이애나는 찰스가 고용한 레그-보크와 어린 왕자들의 관계에 대해 분개했다.[63] 1994년 6월 29일, 찰스는 조나단 딤블비와의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1986년 다이애나와의 결혼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탄"난 후에야 카밀라와의 관계를 재개했다고 해명하며 대중의 이해를 구했다.[64][65] 같은 해, 안나 파스터나크의 책 ''사랑 속의 공주''에서 다이애나와 제임스 휴이트의 관계가 상세히 폭로되었는데, 휴이트가 주요 정보 제공자였다.[34] 다이애나는 책 출간에 당혹감과 분노를 표했지만, 파스터나크는 휴이트가 앤드루 모턴의 두 번째 책에서 이 관계가 다뤄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다이애나의 지지를 받아 행동했다고 주장했다.[34] 또한 같은 해, ''News of the World''는 다이애나가 유부남 미술상 올리버 호어와 불륜 관계라고 주장했다.[66][67] 호어의 부고 기사에서도 둘의 관계를 기정사실화하는 내용이 있었으나,[68] 다이애나는 호어를 친구로 묘사하며 연인 관계를 부인했다.[69][70] 언론은 럭비 선수 윌 칼링[71][72] 및 투자자 시어도어 J. 포스트만과의 관계도 보도했지만,[73][74] 확인되거나 입증되지는 않았다.[75][76]

켄싱턴 궁전(2018년 사진), 다이애나의 거처이자 1995년 ''파노라마'' 인터뷰 장소


1995년 11월 20일, BBC 시사 프로그램 ''파노라마''에서 저널리스트 마틴 바시르가 진행한 다이애나와의 인터뷰가 방송되었다.[78] 인터뷰에서 다이애나는 자신과 남편의 외도 사실을 인정했다.[77] 찰스와 카밀라의 관계에 대해 그녀는 "글쎄요, 이 결혼에는 우리 셋이 있었으니, 좀 붐볐죠."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또한 남편이 왕위에 적합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78] 인터뷰에서 다이애나는 자신이 주요 우울 장애, 거식증, 여러 차례의 자해 경험이 있음을 밝혔으며,[78] 이는 여러 전기 작가들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러한 고백은 일부 전기 작가들이 그녀가 경계성 성격 장애를 앓았을 수 있다고 추측하는 근거가 되었다.[79][323] 훗날, 마틴 바시르가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 위조된 은행 명세서를 사용하고 다이애나 측근들이 감시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는 거짓 정보를 제공하여 다이애나와 그녀의 남동생의 신뢰를 얻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80] 이 사건에 대한 독립 조사(다이슨 보고서)는 바시르가 "다이애나의 두려움과 편집증을 이용했다"고 결론지었으며, 아들 윌리엄 왕자 역시 이러한 견해를 공유했다.[81][82]

이 인터뷰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1995년 12월 20일, 버킹엄 궁전은 여왕이 찰스와 다이애나에게 이혼을 권고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발표했다.[83][84] 여왕의 결정은 존 메이저 총리와 선임 추밀원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2주간의 논의 끝에 내려진 것이었다.[85] 찰스는 즉시 서면 성명을 통해 이혼에 동의했다.[83] 1996년 2월, 다이애나는 협상을 통해 이혼 조건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으나, 이는 버킹엄 궁전과의 조율 없이 이루어져 왕실의 불쾌감을 샀다.[86] 1996년 7월, 부부는 최종적으로 이혼 조건에 합의했다.[98] 이는 다이애나가 티기 레그-보크가 찰스의 아이를 낙태했다는 주장을 한 직후였으며, 레그-보크는 변호사를 통해 사과를 요구했다.[87][88] 다이애나의 개인 비서였던 패트릭 제프슨은 이 사건 직전 사임했으며, 후에 다이애나가 "레그-보크가 낙태했다고 비난하며 기뻐했다"고 기록했다.[89][90] 레그-보크의 낙태 의혹은 마틴 바시르가 파노라마 인터뷰를 얻기 위해 퍼뜨린 루머였던 것으로 보인다.[91]

이혼 판결은 1996년 7월 15일에 내려졌고, 이혼은 1996년 8월 28일에 최종 확정되었다.[92][93] 다이애나는 이혼 소송에서 앤서니 줄리어스 변호사의 도움을 받았다.[94] 부부는 자녀에 대한 양육권을 공유하기로 합의했다.[95] 그녀는 합의금으로 1700만파운드의 일시불과 연간 40만파운드를 받았다. 또한 부부는 이혼이나 결혼 생활의 세부 사항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하지 않기로 하는 비밀 유지 계약에 서명했다.[98] 이혼 며칠 전 발표된 특허장에 따라 다이애나는 "전하(Her Royal Highness)" 칭호를 잃고 ''웨일스 공비 다이애나(Diana, Princess of Wales)''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미래의 왕이 될 왕자들의 어머니로서 여전히 왕족의 일원으로 간주되었고, 결혼 기간과 동일한 의전 서열을 유지했다.[96] 여왕은 다이애나가 이혼 후에도 전하 칭호를 유지하기를 원했지만, 찰스가 이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98] 윌리엄 왕자는 어머니에게 "걱정 마세요, 엄마. 제가 왕이 되면 언젠가 다시 돌려드릴게요."라고 위로했다고 전해진다.[97] 약 1년 전, 필립 공이 다이애나에게 "행동을 바로 하지 않으면 네 칭호를 빼앗을 것"이라고 경고하자, 다이애나가 "제 칭호는 당신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어요, 필립."이라고 응수했다는 일화도 있다.

2. 5. 불화와 이혼



1980년대 후반부터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관계는 눈에 띄게 악화되었으며, 언론은 이를 집중적으로 다루며 대중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결혼 5년 만에 나이 차이와 성격 차이로 인한 부부간의 부적합성이 명확히 드러났다. 1986년, 찰스는 결혼 전 교제했던 카밀라 파커 볼스와 다시 관계를 시작했고, 같은 해 다이애나 역시 왕실 승마 교관이었던 제임스 휴이트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언론에서는 휴이트와 해리 왕자의 외모 유사성을 근거로 그가 해리의 친부일 수 있다는 추측을 제기했으나, 휴이트 본인을 포함한 관련자들은 이를 부인했으며, 해리 왕자는 다이애나와 휴이트의 관계가 시작되기 2년 전에 태어났다.[30][35] 다이애나의 경호원 중에도 연인이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또한 각종 공식 행사에서 찰스가 다이애나를 배려하지 않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1987년경에는 부부 사이의 균열이 명백해졌고, 이들의 불행과 서로에 대한 냉담한 태도가 언론에 자주 보도되었다.[18][36] 언론은 공식 석상에서 서로 불편해 보이는 부부에게 "Glums"(시무룩한 사람들)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37][38] 1989년, 다이애나는 카밀라 파커 볼스의 여동생 애너벨 엘리엇의 생일 파티에서 직접 카밀라와 대면하여 찰스와의 불륜 관계에 대해 따졌다.[39][40] 이러한 불화와 외도 사실은 1992년 앤드루 모턴이 출간한 책 ''다이애나: 그녀의 진실''을 통해 대중에게 폭로되었다.[41][42] 이 책에는 다이애나가 자살 충동을 느낄 정도로 불행했으며, 결혼 생활의 어려움을 겪었다는 내용이 담겨 언론의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다이애나는 1991년 제임스 콜서스트와의 비밀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내용을 털어놓았고, 이 녹음 파일이 모턴의 책 저술에 결정적인 자료가 되었다.[43][44] 생전에 다이애나와 모턴은 책 집필에 직접 관여한 사실을 부인했으나, 다이애나 사후 모턴은 개정판에서 다이애나가 책 내용에 기여했음을 인정했다.[45]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 공은 찰스와 다이애나의 만남을 주선하며 관계 회복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필립 공은 다이애나에게 편지를 보내 부부의 외도에 실망감을 표하고 서로의 입장을 고려해볼 것을 조언했다. 다이애나는 편지 내용에 상처받기도 했지만, 그의 좋은 의도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일부 측근들은 다이애나와 필립 공의 관계가 불편했다고 주장했지만,[118][46][47] 다른 관찰자들은 주고받은 편지에서 갈등의 증거를 찾기 어렵다고 보았다.[48] 필립 공은 이후 다이애나를 모욕했다는 주장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49]

1992년과 1993년에는 다이애나와 제임스 길비의 사적인 전화 통화 내용("Squidgygate")과 찰스와 카밀라 파커 볼스의 은밀한 대화 내용("Camillagate")이 유출되어 타블로이드 신문에 게재되면서 두 사람 모두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51][50][16] 결국 1992년 12월 9일, 존 메이저 당시 총리는 하원에서 두 사람의 공식적인 별거를 발표했다.[52]

별거 기간 중 다이애나는 대중 연설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음성 코치 피터 세텔렌을 고용했다.[53] 1992년 세텔렌이 녹화한 비디오테이프에서 다이애나는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왕실 환경에서 일하는 누군가(배리 매나키)를 깊이 사랑했다"고 고백했다.[54][55] 매나키는 다이애나와의 관계가 부적절하다는 판단 하에 1986년 다른 부서로 전출되었으며,[55][57] 다이애나는 그가 외도 혐의 때문에 경호원 자리에서 "쫓겨났다"고 말했다.[54] 다이애나는 테이프에서 그를 "가장 좋은 친구"라고 묘사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와 함께 살고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고 말했지만, 성적인 관계는 부인했다.[59] 그녀는 또한 남편 찰스에 대해 "그는 가능한 모든 면에서 나를 무능하게 느끼게 만들었다"며 비통함을 표현했다.[60]

다이애나는 결혼 문제의 원인을 주로 카밀라 파커 볼스에게 돌렸지만, 점차 남편이 다른 여성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1993년 10월, 그녀는 집사 폴 버렐에게 보낸 편지에서 찰스가 아들들의 전 보모이자 개인 비서인 티기 레그-보크와 사랑에 빠졌으며,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자신을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믿는다고 적었다.[61][62] 다이애나는 찰스가 고용한 레그-보크와 어린 왕자들의 관계에 대해 분개했다.[63] 찰스는 1994년 6월 조나단 딤블비와의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1986년 다이애나와의 결혼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탄"난 후에야 카밀라와의 관계를 재개했다고 해명하며 대중의 이해를 구했다.[64][65] 같은 해, 안나 파스터나크는 제임스 휴이트를 주요 정보원으로 하여 다이애나와 휴이트의 관계를 상세히 폭로하는 책 ''사랑 속의 공주''를 출간했다.[34] 다이애나는 이 책에 당혹감과 분노를 표했지만, 일각에서는 다이애나가 앤드루 모턴의 후속작에서 이 관계가 다뤄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파스터나크를 암묵적으로 지원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34] 또한 같은 해 ''뉴스 오브 더 월드''는 다이애나가 유부남 미술상 올리버 호어와 불륜 관계라고 보도했으나,[66][67] 다이애나는 호어를 친구로 묘사하며 연인 관계를 부인했다.[69][70] 그녀는 또한 럭비 선수 윌 칼링[71][72] 및 투자자 시어도어 J. 포스트만과도 염문설이 있었으나,[73][74] 이는 확인되지 않았다.[75][76]

1995년 11월 20일, 다이애나는 BBC의 시사 프로그램 ''파노라마''에 출연하여 언론인 마틴 바시르와 인터뷰를 가졌다.[78] 이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과 찰스 왕세자의 외도를 모두 인정했으며, 특히 찰스와 카밀라 파커 볼스의 관계에 대해 "이 결혼에는 우리 셋이 있었으니, 좀 붐볐죠."라고 말했다.[77] 그녀는 또한 찰스가 왕위에 오르기에 적합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78] 인터뷰에서 다이애나는 주요 우울 장애, 폭식증, 거식증을 앓았으며 여러 차례 자해 및 자살 시도를 했다고 고백했다.[78] 이러한 고백은 그녀가 경계선 성격 장애를 앓았을 수 있다는 일부 전기 작가들의 추측을 낳기도 했다.[79][323] 인터뷰 직후 영국 여론의 약 93%가 다이애나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469] 그러나 훗날 마틴 바시르가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 위조된 은행 명세서를 사용하고 다이애나 주변 인물들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거짓 정보를 제공하여 그녀의 불안감을 이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80] 로드 다이슨의 독립 조사 결과, 바시르는 "다이애나의 두려움과 편집증을 이용했다"고 결론지어졌으며, 이는 아들 윌리엄 왕세자도 동의하는 바였다.[81][82]

이 인터뷰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1995년 12월 20일, 버킹엄 궁전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찰스와 다이애나에게 이혼을 권고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발표했다.[83][84] 여왕의 결정은 존 메이저 총리와 고위 추밀원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2주간의 논의 끝에 내려진 것이었다.[85] 찰스는 즉시 서면 성명을 통해 이혼에 동의했다.[83] 1996년 2월, 다이애나는 협상 끝에 이혼 조건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으나, 이 독자적인 발표는 버킹엄 궁전을 불편하게 만들었다.[86] 이혼 조건 합의 직전, 다이애나는 티기 레그-보크가 찰스의 아이를 낙태했다는 주장을 제기했고, 레그-보크는 변호사를 통해 사과를 요구했다.[87][88] 이 사건 직후 다이애나의 개인 비서 패트릭 제프슨은 사임했으며, 그는 훗날 다이애나가 "레그-보크가 낙태했다고 비난하며 기뻐했다"고 기록했다.[89][90] 이 낙태 의혹은 마틴 바시르가 파노라마 인터뷰를 얻기 위해 퍼뜨린 루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91]

이혼 판결은 1996년 7월 15일에 내려졌고, 최종적으로 1996년 8월 28일에 이혼이 확정되었다.[92][93] 다이애나는 이혼 소송에서 앤서니 줄리어스 변호사의 조력을 받았다.[94] 부부는 자녀에 대한 양육권을 공유하기로 합의했다.[95] 다이애나는 위자료로 1700만파운드의 일시불과 연간 40만파운드의 생활비를 받기로 했다. 또한 결혼 생활이나 이혼의 세부 사항에 대해 논의하지 않기로 하는 비밀 유지 계약에 서명했다.[98] 이혼 며칠 전 발표된 특허장에 따라 왕족과 결혼했던 사람의 이혼 후 칭호 규정이 정해졌고, 다이애나는 '전하' 칭호를 잃고 대신 ''웨일스 공비 다이애나''로 불리게 되었다. 여왕은 다이애나가 이 칭호를 유지하기를 원했지만, 찰스가 강력히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98] 아들 윌리엄 왕자는 어머니에게 "걱정 마세요, 엄마. 제가 왕이 되면 언젠가 다시 돌려드릴게요."라고 위로했다고 전해진다.[97]

이혼 후에도 다이애나는 왕세자비 시절부터 거주했던 켄싱턴 궁전의 아파트를 계속 사용했으며, 이곳은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집으로 남았다.[98][99] 버킹엄 궁전은 다이애나가 왕자들의 어머니로서 여전히 왕실 가족의 일원임을 인정했으며,[96] 이는 그녀의 사망 시에도 재확인되었다. 그녀는 결혼 기간 동안 사용했던 보석류에 계속 접근할 수 있었고, 필요시 영국 왕실 및 정부의 항공 수송을 이용할 수 있었다.[98] 초기에는 런던 경시청 왕실 경호대의 경호를 받았으나, 왕실과의 거리두기를 원하며 생애 마지막 몇 년 동안 이를 거부했다.[102][103]

이혼 후 다이애나는 파키스탄 출신 심장 외과 의사 하스나트 칸과 교제를 시작했다. 많은 측근들은 칸을 "다이애나 인생의 사랑"이라고 불렀으며,[107][108][109] 다이애나 자신도 그를 "미스터 원더풀"이라고 칭했다고 한다.[110][111][112][113] 1996년 5월과 1997년 5월, 다이애나는 파키스탄을 방문하여 칸의 가족을 만나기도 했다.[114][115] 이 관계는 약 2년간 지속되었으나, 1997년 여름 다이애나가 관계를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117][118] 폴 버렐은 다이애나의 어머니 프랜시스 섄드 키드가 딸이 무슬림 남성과 교제하는 것을 반대했으며, 이로 인해 다이애나는 사망 당시 어머니와 4개월간 말을 하지 않는 상태였다고 주장했다.[119][120][121]

하스나트 칸과 헤어진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다이애나는 이집트 출신 사업가 모하메드 알 파예드의 아들인 영화 제작자 도디 파예드와 관계를 시작했다.[124] 1997년 여름, 다이애나는 아들들과 함께 프랑스 남부에서 알 파예드 가족과 휴가를 보냈고, 이 과정에서 도디와 가까워졌다.[124][125][126] 일부에서는 다이애나가 하스나트 칸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도디와 교제했다는 추측도 제기되었다.[34]

2. 6. 이혼 이후

이혼 후 다이애나는 결혼 첫 해부터 찰스와 함께 사용했던 켄싱턴 궁전 북쪽의 이중 아파트를 유지했으며, 이 아파트는 다음 해 사망할 때까지 그녀의 집으로 남았다. 그녀는 사무실도 켄싱턴 궁전으로 옮겼지만, 세인트 제임스 궁전의 국빈 아파트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받았다.[98][99] 폴 버렐은 2003년 출판된 책에서 다이애나의 오빠 스펜서 경이 그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앨소프에 거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88] 이 주장은 스펜서 경이 여러 신문사로부터 법적 사과를 받으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2021년 ''더 타임스''는 "여동생의 안전을 고려하고 경찰의 조언에 따라 백작은 웨일스 공비에게 웜레이튼 저택, 스펜서 가문의 원래 조상 저택을 포함한 여러 부동산을 제공했다"고 인정했다.[100] 다만 앨소프 영지의 가든 하우스 코티지는 직원을 위한 집이었기에 제공할 수 없었다.[100]

다이애나는 자선 활동과 왕실 업무를 위한 개인 사무실 운영 수당을 받았으나, 1996년 9월부터는 자신이나 자신을 대신하여 발생한 모든 청구서와 지출을 직접 부담해야 했다.[101] 결혼 생활 동안 받은 보석류는 계속 사용할 수 있었고, 영국 왕실 및 정부의 항공 수송 이용도 가능했다.[98] 초기에는 런던 경시청 왕실 경호대의 경호를 받았으나, 왕실에서 멀어지기 위해 생애 마지막 몇 년 동안 이를 거부했다.[102][103]

이혼 후 다이애나는 사회봉사활동, 아프리카 빈민촌 구호활동, 적십자 활동 등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특히 전쟁과 무관한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는 대인지뢰 제거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앞장섰다. 그녀의 사후, 다이애나가 존 메이저의 후임인 토니 블레어와 그녀의 캠페인 및 자선 단체를 위한 정부 플랫폼을 제공받아 해외에서 영국의 이익을 옹호하는 특별한 역할에 대해 논의했음이 밝혀졌다.[104]

다이애나는 엘튼 존, 라이자 미넬리, 조지 마이클, 마이클 잭슨, 지아니 베르사체 등 여러 유명 인사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1997년 베르사체의 장례식에도 참석했다.[105][106] 그녀는 영국-파키스탄 출신 심장 외과 의사인 하스나트 칸과 교제했는데, 많은 측근들은 그를 "그녀의 인생의 사랑"이라고 불렀고[107][108][109] 다이애나 자신은 그를 "미스터 원더풀"이라고 묘사했다고 전해진다.[110][111][112][113] 1996년 5월, 다이애나는 하스나트 칸의 친척인 임란 칸의 초대로 라호르를 방문하여 비밀리에 그의 가족을 만났다.[114][115] 칸이 매우 사적인 인물이었기에 관계는 비밀리에 진행되었고, 다이애나는 언론에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관계는 약 2년간 지속되었으며, 누가 관계를 끝냈는지에 대해서는 증언이 엇갈린다.[115][116] 다이애나는 칸이 관계를 끝냈을 때 힘들었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지지만,[107] 그녀의 사망 조사에서 칸은 1997년 여름 다이애나가 관계를 끝냈다고 증언했다.[117] 폴 버렐 역시 다이애나가 1997년 7월에 관계를 끝냈다고 말했다.[118] 버렐은 또한 다이애나의 어머니인 프랜시스 섄드 키드가 딸이 무슬림 남성과 교제하는 것을 반대했다고 주장했다.[119] 실제로 다이애나는 사망 당시 어머니와 4개월간 대화하지 않은 상태였다.[120][121] 반면, 소원했던 새어머니와의 관계는 개선된 것으로 알려졌다.[122][123]

한 달 안에 다이애나는 여름 별장 주인인 모하메드 알 파예드의 아들인 도디 파예드와 관계를 시작했다.[124] 그해 여름, 다이애나는 아들들과 뉴욕 롱아일랜드의 햄프턴으로 휴가를 가려 했으나 경호 문제로 무산되었다. 이후 파예드의 초대를 받아 프랑스 남부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모하메드 알 파예드는 다이애나와 그녀의 아들들을 접대하기 위해 60미터 길이의 요트인 조니칼(Jonikal)을 구입하기도 했다.[124][125][126] 티나 브라운은 나중에 다이애나의 파예드와의 로맨스와 굴루 랄바니와의 4개월간의 관계가 "그녀의 진정한 사랑 대상인 하스나트 칸에게 불을 지르기 위한 술책"이었다고 주장했다.[34] 그녀의 사망 이후, 버렐, 언론인 리처드 케이, 보컬 코치 스튜어트 피어스는 다이애나가 또한 미국에서 부동산을 구입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127][128][129]

2. 7. 사망

이집트 출신의 백만장자 모하메드 알파예드의 아들 도디 알파예드와의 관계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일부에서는 연인 관계였다고 추정한다.[470] 이혼 후에도 다이애나는 파파라치의 끊임없는 관심 대상이었고, 이를 피하려 노력했으나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1997년 8월 31일, 다이애나는 도디 알파예드와 함께 프랑스 파리의 리츠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호텔에서 제공한 차에 탑승했다. 그들의 관계에 높은 관심을 보이던 파파라치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추격하기 시작하자, 그들을 피하기 위해 차는 과속으로 달렸다. 집요한 추격 끝에 차는 퐁드랄마 지하차도로 진입하자마자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이애나는 사고 직후 즉사하지 않았고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나 상태가 악화되어 결국 숨을 거두었다. 향년 36세였다.[471] 사고 현장에서 다이애나에 대한 응급조치를 소홀히 한 파파라치들은 선한 사마리아인 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주범 3명에게만 각각 1EUR의 벌금형이 선고되어 판결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다이애나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음모론이 제기되었다. 다이애나가 도디 알파예드와 결혼할 예정이었다거나, 그의 아이 혹은 다른 남성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는 설, 그리고 영국 왕실이나 특정 세력이 외국인과의 결혼 및 출산을 막기 위해 암살했다는 주장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함께 사망한 도디 알파예드의 아버지 모하메드 알파예드가 이러한 음모론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켄싱턴 궁전 밖에 놓인 다이애나를 애도하는 꽃들


영국 왕실 기로 덮이고 어민 테두리가 있는 다이애나의 관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운구되고 있다.


사고 당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찰스 왕세자는 발모랄 성에 머물고 있었다. 찰스는 다이애나의 중상 소식을 듣고 두 아들(윌리엄, 해리)을 깨우지 않은 채 밤새 뉴스를 확인했고, 다음 날 아침 아들들에게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찰스는 다이애나의 시신을 직접 영국으로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여왕은 처음에는 다이애나가 왕실을 떠났다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당시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의 지지를 얻은 찰스의 설득으로 결국 동의했다. 찰스는 다이애나의 두 언니와 함께 파리로 가 시신을 수습하여 8월 31일 저녁 영국으로 운구했다.[248][249] 다이애나의 관은 세인트 제임스 궁전의 왕실 예배당에 안치되었다.[248]

토니 블레어 총리는 다이애나를 "국민의 프린세스(People's Princess)"라고 칭하며 애도를 표했고, 수많은 영국 국민과 세계인들이 켄싱턴 궁전 앞에 꽃과 촛불, 추모 메시지를 남기며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다.[245][246][247] 초기 왕실의 대응이 다소 냉담하다는 비판과 함께 군주제 폐지론까지 거론되자, 여왕은 9월 5일 런던으로 돌아와 생방송 연설을 통해 다이애나에게 경의를 표했다.[9]

1997년 9월 6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준국장(Ceremonial funeral) 형식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장례 행렬에는 찰스 왕세자, 두 아들 윌리엄과 해리, 에든버러 공작 필립, 다이애나의 남동생 스펜서 경 등이 관 뒤를 따랐다.[9] 버킹엄 궁전 앞에서는 여왕이 직접 나와 관을 향해 머리를 숙여 조의를 표했고, 궁전에는 조기가 게양되었다. 장례식에는 마거릿 대처 전 총리,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 부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배우 톰 크루즈, 톰 행크스 등 각계 인사 2,000여 명이 참석했다. 장례식 중 가수 엘튼 존은 다이애나를 위해 개사한 "Candle in the Wind 1997"을 불렀다.[251] 이 장례식은 영국에서만 3,210만 명이 시청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약 25억 명이 시청한 것으로 추정된다.[241][242][243][244]

앨소프의 라운드 오벌 호수와 그 너머의 다이애나 기념관


장례식 당일, 다이애나의 시신은 스펜서 가문의 영지인 앨소프 공원으로 옮겨져 호수 안의 작은 섬(라운드 오벌)에 비공개로 안장되었다.[254] 매장에는 다이애나가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명예 대령으로 있었던 웨일스 공주 왕립 연대 제2대대가 참여했다.[419] 시신은 생전에 그녀가 직접 골랐던 캐서린 워커 디자인의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으며, 마더 테레사에게 받은 로사리 묵주가 손에 쥐어져 있었다. 스펜서 경은 대중의 관심으로 인한 안전 문제와 지역 사회의 혼란을 우려하여 가족 묘지 대신 접근이 제한된 섬에 안장하기로 결정했다.[255] 도난 방지를 위해 정확한 매장 위치는 공개되지 않았고 묘비도 세워지지 않았다.

=== 사고 원인 조사 및 음모론 ===

프랑스 사법 당국의 초기 조사에서는 운전자 앙리 폴의 음주 운전, 과속, 처방약 복용 등이 사고의 주된 원인으로 결론 내려졌다.[256] 그러나 1998년 2월, 도디의 아버지 모하메드 알 파예드는 사고가 MI6와 에든버러 공작 필립에 의해 계획된 암살이라고 주장하며 음모론을 제기했다.[257][258] 그는 영국 지배층이 아랍계인 자신의 아들을 인종차별적으로 여겨 다이애나와의 관계를 막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음모론은 다이애나가 도디의 아이를 임신했거나 이슬람교로 개종할 가능성 때문에 영국 왕실의 미래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세력이 개입했다는 내용으로 확산되었다.[463] 초기에는 리비아 정부가 영국과의 외교적 갈등 속에서 음모론을 퍼뜨리기도 했다.

런던에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진행된 공식 심리에서는 운전자 앙리 폴의 중대한 과실과 그를 추격하며 과속을 유발한 파파라치들의 공동 책임으로 '불법 살인(unlawful killing)'이라는 평결을 내렸다.[260] 심리 과정에서 다이애나가 임신하지 않았다는 검시 결과와 의사의 증언이 나왔고,[463] 프랑스 경찰은 사고 경로 예측의 어려움, 안전벨트 미착용 시 생존 가능성 등을 근거로 사전 계획된 암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았다. 모하메드 알 파예드는 재판에서 음모론을 계속 주장했지만,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제시되지 못했다. 결국 2008년, 알 파예드는 다이애나의 아들들을 위해 음모론 관련 캠페인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261]

2013년에는 영국 육군 특수부대 SAS 소속 저격수의 재판 과정에서 SAS가 다이애나 암살에 연루되었다는 주장이 나와 런던 경찰청이 재조사에 착수했으나,[463] 증거 불충분으로 신빙성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464]

=== 추모 및 기념 ===

해로즈에 있는 다이애나와 도디의 동상.


다이애나를 기리기 위해 2004년 런던 하이드 파크에 다이애나 왕세자빈 기념 분수가 세워졌다. 사망 10주기인 2007년 7월 1일에는 아들 윌리엄과 해리가 주최한 추모 콘서트 "콘서트 포 다이애나"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렸고, 엘튼 존 등 많은 가수들이 참여했다. 같은 해 8월 31일에는 런던 가즈 채플에서 추모 예배가 열려 여왕, 찰스 왕세자, 고든 브라운 당시 총리 등이 참석했다. 앨소프 공원에는 기념관이 세워졌으며, 파리 사고 현장 인근의 '자유의 불꽃' 조형물도 비공식적인 추모 장소가 되었다. 모하메드 알 파예드가 소유했던 해로즈 백화점에는 다이애나와 도디의 추모 동상이 설치되기도 했다.

2. 8. 사후

1997년 8월 31일, 다이애나는 파리의 퐁 드 랄마 터널에서 파파라치를 피하려던 운전기사의 과속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239] 이 사고로 그녀의 연인이었던 도디 파예드와 운전기사 앙리 폴도 함께 목숨을 잃었으며, 유일한 생존자인 경호원 트레버 리스존스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240]

사고 소식을 들은 찰스 왕세자는 다이애나의 두 언니와 함께 파리로 가 시신을 직접 수습하여 런던으로 운구했다.[248][249] 다이애나의 관은 세인트 제임스 궁전의 왕실 예배당에 안치되었다.[248] 당시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는 다이애나에 대한 연설에서 "그녀는 국민의 프린세스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의 마음과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애도를 표했고,[446] 이는 영국 국민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표현으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수많은 시민들이 켄싱턴 궁전 앞에 꽃다발을 놓으며 애도의 물결을 이루었고, 이는 전 세계적인 추모 분위기로 이어졌다.[245][246][247][446][447]

초기에 왕실은 이혼한 다이애나의 죽음에 대해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거센 비판 여론과 토니 블레어 총리의 설득으로 입장을 바꾸어 왕실 전체가 장례식에 참석하기로 했다.[42] 9월 5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이례적으로 생방송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다이애나에게 경의를 표했다.[9]

1997년 9월 6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왕실 국민장'으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9] 장례 행렬에는 찰스 왕세자, 두 아들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 필립 공, 그리고 다이애나의 남동생 스펜서 경 등이 관 뒤를 따랐다.[9] 버킹엄 궁전 앞을 지날 때 여왕이 직접 나와 고개를 숙여 조의를 표했으며, 궁전에는 유니언 잭이 조기로 게양되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다.[277] 장례식에서는 엘튼 존이 자신의 히트곡 《Candle in the Wind》를 개사하여 추모곡으로 불렀으며,[251] 이 곡은 《Candle in the Wind 1997》로 발매되어 영국 차트 1위를 기록하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251][252][253] 스펜서 경은 추도사에서 "그녀는 지난 1년 동안 특별한 마법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기 위해 왕실 칭호가 필요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말하며 누나를 기렸다.[250] 장례식은 영국에서만 3,210만 명이 시청했으며,[241] 전 세계적으로 약 25억 명이 지켜본 것으로 추정된다.[243][244]

장례식 당일, 다이애나의 시신은 스펜서 가문의 영지인 앨소프 공원 내 호수 가운데 있는 섬(통칭 '라운드 오벌')에 비공개로 안장되었다.[254] 시신은 캐서린 워커가 디자인한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마더 테레사에게 받은 로사리 묵주를 손에 쥔 채 안치되었다. 이는 대중의 과도한 관심을 피하고 유족들이 조용히 추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스펜서 경의 결정이었다.[255] 안장에는 다이애나가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대령으로 있었던 웨일스 공주 왕립 연대 제2대대가 참여했다.[419]

다이애나에 대한 영국인들의 존경과 사랑은 사후에도 계속되어, 2002년 BBC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영국인' 순위에서 윈스턴 처칠,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그녀의 무덤이 있는 앨소프와 사고 현장인 파리 퐁 드 랄마 터널 위 자유의 불꽃 기념물에는 매년 기일마다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366]

사망 1주기에는 켄싱턴 궁전 정문 밖에 다시 꽃들이 놓였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추모식이 거행되었으며, 왕실 거주지에는 조기가 게양되었다.[273][274][277] 사망 10주기인 2007년 7월 1일에는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가 주최한 다이애나를 위한 콘서트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렸고,[279][280] 기일인 8월 31일에는 가드 채플에서 추모 예배가 거행되었다.[282] 윌리엄과 해리 왕자는 이 자리에서 "어머니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셨고, 세계 최고의 어머니셨습니다"라고 연설했다. 20주기인 2017년에는 켄싱턴 궁전에서 "다이애나: 그녀의 패션 이야기" 전시회가 열리고,[288][289][290][291] 켄싱턴 정원에 '화이트 가든'이 조성되는 등 다양한 추모 행사가 이어졌다.[288][289][294]

해러즈 백화점에 설치되었던 다이애나와 도디 파예드를 위한 기념물 (2018년 철거됨)


2007년 다이애나를 위한 콘서트에서 공연하는 엘튼 존


다이애나를 기리는 영구 기념물로는 런던 하이드 파크의 다이애나, 웨일스 공비 기념 분수,[360] 켄싱턴 가든의 다이애나, 웨일스 공비 기념 놀이터와[361] 다이애나, 웨일스 공비 기념 산책로,[362] 그리고 켄싱턴 궁전의 다이애나, 웨일스 공비 동상[364] 등이 있다. 파리의 사고 현장 터널 입구 위에 있는 자유의 불꽃은 비공식적인 추모 장소가 되었으며,[366][367] 해당 광장은 2019년 다이애나 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368] 해러즈 백화점에는 도디 파예드의 아버지가 의뢰한 두 개의 기념물이 있었으나 2018년 철거되어 알 파예드 가족에게 반환되었다.[373][374] 여러 국가에서 다이애나 추모 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369][370][371] 그녀의 이름은 손녀인 샬럿 엘리자베스 다이애나,[375][376] 릴리벳 다이애나,[377] 조카 샬럿 다이애나 스펜서[378] 등에게 이어지고 있다.

한편,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는 다이애나 사후 8년이 지난 2005년 4월에야 결혼식을 올렸다. 왕대비의 강한 반대와 다이애나 사망 이후 카밀라에 대한 극도로 부정적인 여론 때문에 재혼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999년 리츠 호텔 파티 동반 참석('리츠 작전')을 시작으로 관계를 공식화했으며, 2003년부터는 클래런스 하우스에서 동거했다. 결혼식은 윌리엄, 해리 왕자 등 소수의 측근만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치러졌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 공은 결혼식에 불참했다.

3. 가족 관계

다이애나 프랜시스 스펜서는 1961년 7월 1일, 존 스펜서, 앨소프 자작 (1924–1992)과 그의 첫 번째 부인 프랜시스 로슈 (1936–2004) 사이에서 태어났다.[2] 그녀는 잉글랜드 노퍽의 샌드링엄에 있는 파크 하우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스펜서 가문은 여러 세대에 걸쳐 영국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으며, 다이애나의 외할머니 루스와 친할머니 신시아 모두 엘리자베스 왕비시녀였다.

다이애나에게는 세 명의 형제자매가 있다: 언니 사라제인, 그리고 남동생 찰스이다. 다이애나가 태어나기 1년 전, 남동생 존 스펜서가 태어난 지 10시간 만에 사망했다. 후계자를 원했던 부모의 바람은 결혼 생활에 부담을 주었고, 이는 이혼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남동생 찰스는 회고했다.

다이애나는 부모가 이혼했을 때 일곱 살이었다. 어머니 프랜시스는 이후 피터 섄드 키드와 재혼했고, 아버지 존 스펜서는 레인과 재혼했다. 다이애나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잠시 런던에서 살았으나, 아버지가 전 장모 페르모이 경 부인의 도움을 받아 양육권을 얻었다. 다이애나는 새어머니 레인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으며, 어린 시절을 "매우 불행했고 불안정했다"고 묘사했다.[5][6] 1975년 아버지가 스펜서 백작 작위를 계승하면서 다이애나는 '레이디 다이애나'라는 경칭을 얻게 되었고, 가족은 노샘프턴셔의 앨소프 저택으로 이사했다.



다이애나는 1981년 7월 29일, 웨일스 공 찰스와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결혼하여 웨일스 공비가 되었다.[16][19] 결혼 후 두 아들을 두었으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고 결국 1992년 별거를 발표하고 1996년 8월 28일 이혼했다.[52][92][93] 이혼 후에도 다이애나는 '웨일스 공비 다이애나' 칭호를 유지했으며, 두 아들에 대한 양육권은 찰스 3세와 공동으로 가졌다.[96][95]

자녀이름생일사망기타
웨일스 공 윌리엄
웨일스 공 윌리엄1982년 6월 21일생존캐서린 미들턴과 결혼하여 슬하에 2남 1녀(장남 조지, 장녀 샬럿, 차남 루이)를 두었다.
서식스 공작 해리
서식스 공작 해리1984년 9월 15일생존메건 마클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장남 아치, 장녀 릴리벳)를 두었다.


4. 웨일스 공비

1983년 노바스코샤주 핼리팩스에서


찰스 왕세자와의 약혼 이후, 다이애나는 왕실의 일원으로서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81년 3월 골드스미스 홀에서 열린 자선 행사는 그녀가 처음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공식 석상이었다.[130][131] 같은 해 6월에는 처음으로 근위병 열병에 참석했고, 이후 버킹엄 궁전 발코니에 모습을 보였다. 1981년 10월에는 찰스와 함께 웨일스를 방문했으며,[9][132] 11월 4일에는 처음으로 국회 개원식에 참석했다.[133] 그녀의 첫 단독 공식 행사는 1981년 11월 18일, 리젠트 스트리트의 크리스마스 조명을 켜는 행사였다.[134]

1982년 9월, 다이애나는 모나코그레이스 켈리 공비의 장례식에 참석하며 첫 해외 순방을 경험했다.[9] 같은 해 네덜란드의 베아트릭스 여왕으로부터 오라녜나사우 훈장 대십자 훈장을 받았다.[407] 1983년에는 찰스, 그리고 어린 윌리엄 왕자와 함께 호주와 뉴질랜드를 순방했다. 이 순방은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부부는 엄청난 인파를 끌어모았다. 특히 언론은 찰스보다 다이애나에게 더 큰 관심을 보이며 그녀에 대한 대중의 열광을 '다이애나매니아(Dianamania)'라고 칭했다.[135]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근처에서 잠시 눈물을 보인 일도 있었는데, 왕실 측은 시차와 더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136] 뉴질랜드에서는 마오리족 대표들을 만났다.[9] 1983년 6월과 7월에는 캐나다를 방문하여 에드먼턴에서 열린 198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개막식에 참석하고, 뉴펀들랜드 섬이 왕실에 인수된 지 4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여했다.[137] 같은 해, 스코틀랜드 민족 해방군이 그녀에게 우편 폭탄을 보내려 한 사건도 있었다.[138]

1985년 11월 다이애나와 찰스가 낸시, 로널드 레이건과 함께


1984년 2월, 다이애나는 런던 시티 발레의 후원자로서 노르웨이를 단독 방문하여 발레단 공연에 참석했다.[9] 1985년 4월에는 찰스와 함께 이탈리아를 방문했고, 두 아들이 나중에 합류했다.[9] 이탈리아 방문 중 알레산드로 페르티니 대통령을 만났고, 성좌를 방문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개별적으로 알현했다.[139] 1985년 가을에는 다시 호주를 방문했는데, 언론은 그녀를 "다이아몬드 공주(Diamond Princess)", "왕관의 보석(Jewel in the Crown)"이라 부르며 극찬했다.[140] 같은 해 11월, 부부는 미국을 방문하여 백악관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부인 낸시 레이건을 만났다. 1986년은 다이애나에게 바쁜 한 해였다. 그녀와 찰스는 일본, 스페인, 캐나다를 순방했다.[137] 캐나다에서는 엑스포 86을 방문했는데,[137] 캘리포니아 파빌리온에서 잠시 기절하기도 했다.[141][142] 1986년 11월에는 6일간 오만, 카타르,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순방하며 사우디아라비아파흐드 국왕과 오만카부스 빈 사이드 술탄을 만났다.[143]

1988년, 찰스와 다이애나는 태국을 방문하고, 호주 건국 20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호주를 다시 찾았다.[9][144] 1989년 2월, 다이애나는 후원 단체인 웨일스 국립 오페라 홍보를 위해 뉴욕을 단독 방문했다.[145] 이 방문 중 할렘 병원 센터에서 에이즈에 걸린 일곱 살 아이를 스스럼없이 껴안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417] 1989년 3월에는 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하며 두 번째 페르시아만 아랍 국가 순방을 마쳤다.[143]

1990년 옐로우 오벌 룸에서 바버라 부시와 함께


1990년 3월, 다이애나와 찰스는 나이지리아카메룬을 순방했다.[146] 카메룬 대통령은 야운데에서 환영 만찬을 열었다.[146] 순방 기간 동안 다이애나는 병원을 방문하고 여성 개발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였다.[146] 1990년 5월에는 헝가리를 나흘간 방문했는데,[417][147] 이는 영국 왕족으로서는 처음으로 구 바르샤바 조약 국가를 방문한 것이었다.[417] 괸츠 아르파드 대통령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하고, 부다페스트 응용미술 박물관에서 패션 전시를 관람했다.[147] 또한 페토 연구소를 방문하여 원장에게 명예 대영 제국 훈장(OBE)을 수여했다.[417] 1990년 11월에는 찰스와 함께 일본을 방문하여 아키히토 일왕의 즉위식에 참석했다.[9][148]

걸프 전쟁 발발 후, 다이애나는 군인 가족들을 격려하기 위해 1990년 12월 독일을 방문했다.[417] 이듬해인 1991년 1월에도 독일의 RAF 브뤼겐 공군 기지를 방문했으며, 이후 군 관련 매체인 ''솔저'', ''네이비 뉴스'', ''RAF 뉴스''에 격려 편지를 기고했다.[417] 1991년에는 찰스와 함께 캐나다 온타리오주퀸스 대학교를 방문하여 왕실 헌장 복제본을 증정했다.[149] 같은 해 9월, 다이애나는 파키스탄을 단독 방문했고, 이후 찰스와 함께 브라질로 향했다.[150] 브라질에서는 노숙 어린이 문제를 돕는 단체를 방문했다.[150]

찰스와의 마지막 해외 공동 순방은 1992년 인도대한민국 방문이었다.[9] 인도 방문 중 콜카타에 있는 마더 테레사의 호스피스를 방문했으며,[190] 같은 달 로마에서 마더 테레사와 직접 만나 개인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151][190] 인도 순방 중 다이애나가 타지마할 앞에서 홀로 찍은 사진은 부부 관계에 대한 추측을 낳으며 큰 화제가 되었다.[152][153][154] 1992년 5월에는 이집트를 단독 순방하여 기자 피라미드 단지를 방문하고 호스니 무바라크 당시 이집트 대통령과 회담했다.[155][156] 11월에는 프랑스를 공식 단독 방문하여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을 만났다.[309]

1992년 12월 찰스와의 별거가 발표된 후에도 다이애나는 공적 활동을 이어갔다. 1993년 3월, 별거 후 첫 단독 해외 방문으로 네팔나병 환자 병원을 찾아 환자들과 직접 접촉했는데, 이는 고위 인사가 나병 환자를 만진 첫 사례로 기록되었다.[157] 1993년 12월, 공적 활동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으나,[9][417] 1994년 11월에는 "부분적인 복귀"를 원한다고 밝혔다.[9][417] 영국 적십자사 부회장으로서 창립 125주년 기념행사에 참여하고자 했고,[417] 여왕의 공식 초청으로 노르망디 상륙 작전 기념행사에도 참석했다.[9]

1995년 2월, 다이애나는 다시 일본을 방문하여 아키히토 일왕과 미치코 황후를 공식 예방하고,[148] 도쿄 국립 어린이 병원을 방문했다.[158] 1995년 6월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 축제에 참석했고,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국제 레오나르도 상을 수상했다.[159][160] 11월에는 자선 행사 참석을 위해 나흘간 아르헨티나를 방문했다.[161] 이 외에도 벨기에, 스위스, 짐바브웨 등 여러 국가를 방문하며 자선 활동과 국제 교류에 힘썼다.[9] 찰스와의 별거 기간(약 4년) 동안에도 다이애나는 1995년 유럽 전승 기념일일본 항복일 50주년 기념 행사 등 왕실의 주요 행사에 고위 구성원으로서 참여했다.[9]

웨일스 공비로서 다이애나는 전통적인 왕실의 역할 수행과 더불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에이즈 환자나 나병 환자 등 소외된 이들에 대한 편견 없는 태도와 적극적인 자선 활동은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국민의 공주'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5. 자선 활동 및 후원



찰스와의 약혼 이후 다이애나는 1981년 3월 골드스미스 홀에서 열린 자선 행사에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왕실 구성원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130][131] 초기에는 20세기 왕실 후원의 전통적인 모델에 따라 병원, 학교, 기타 시설 방문 등 정기적인 공무를 수행할 것으로 기대되었다.[162]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다이애나는 점차 자신만의 자선 활동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수많은 자선 단체와 관계를 맺으며 활동 범위를 넓혀갔고, 1988년에는 191건,[163] 1991년에는 397건의 공식 행사를 소화했다.[164] 특히 에이즈(AIDS)나병과 같이 당시 사회적으로 편견이 심하고 왕실이 전통적으로 잘 다루지 않던 질병 및 건강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또한 노숙자, 청소년, 마약 중독자,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돕는 다양한 분야의 단체들을 후원했다.[173][165][87][172][166][167][417][190][168][169][170][171]

1987년 5월, 브리스톨 화이트홀 로드에 있는 지역 사회 센터 개관식에서


다이애나의 이러한 헌신적인 자선 활동은 국내외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영국 자선 기금 모금 관리자 협회 이사 스티븐 리는 "자선 단체에 대한 그녀의 전체적인 영향력은 20세기에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중요할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304] 그녀는 그레이트 오몬드 스트리트 어린이 병원 회장(1989년부터), 바나도스 회장(1984년-1996년)[167][173], 영국 적십자사 후원자(1988년부터)[417] 등 여러 단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다이애나는 1987년 런던 시로부터 런던 시 자유인 명예를 받았고,[178][179] 1995년 12월에는 미국 뉴욕에서 올해의 유나이티드 뇌성마비 인도주의자 상을 수상했으며,[180][181][182] 1996년 10월에는 이탈리아 리미니에서 피오 만주 센터로부터 노인 복지 활동에 대한 공로로 금메달을 받았다.[183]

1987년 웨스트 미들랜즈 경찰의 마약 단속반 방문


1996년 찰스와의 이혼이 확정된 다음 날, 다이애나는 100개가 넘는 자선 단체의 후원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대신 센터포인트, 잉글리시 국립 발레단, 그레이트 오몬드 스트리트 병원, 나병 선교회, 국립 에이즈 트러스트, 로열 마스덴 병원 등 6개 단체의 후원자로 활동을 집중하기로 했다.[184] 또한 영국 적십자사의 대인 지뢰 제거 캠페인에 대한 지원은 후원자 직함 없이 계속했다.[185][186] 이혼 후에도 그녀는 지뢰 제거 문제 등 인도주의적 활동에 더욱 힘썼으며, 이는 당시 보수당 정권의 반발을 사기도 했으나[205] 굴하지 않고 활동을 이어갔다. 그녀의 활동은 이후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부가 들어선 후 국제적인 지뢰 금지 노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104]

그녀의 마지막 공식 활동은 1997년 7월 21일 런던의 노스윅 파크 병원 방문이었으며,[9] 같은 해 6월에는 아들 윌리엄의 제안으로 자신의 드레스와 정장을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하여 얻은 수익금을 자선 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9]

5. 1. HIV/AIDS

다이애나는 1980년대부터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맞서는 활동을 시작했다.[189] 당시 만연했던 HIV/AIDS 감염인에 대한 낙인에도 불구하고, 다이애나는 환자들과의 신체적 접촉을 꺼리지 않았으며, 이는 영국 왕실 구성원으로서는 최초의 시도였다.[190][189] 1987년, 그녀는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Middlesex Hospitaleng에 영국 최초로 개설된[191][197] 에이즈 병동을 방문하여 장갑 없이 감염인의 손을 잡아 사회적 관심을 크게 받았다.[191][192] 다이애나는 "HIV는 사람들을 위험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들의 손을 잡고 포옹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그것을 필요로 합니다. 더욱이, 그들의 집, 직장, 놀이터와 장난감을 함께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편견 해소를 위해 노력했다.[417] 그러나 여왕은 이러한 활동을 지지하지 않고 "더 즐거운 일"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189]

1989년 2월, 미국 뉴욕의 할렘 병원 센터를 방문했을 때, 다이애나는 자발적으로 에이즈에 걸린 일곱 살 아이를 껴안아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417] 같은 해 7월, 그녀는 런던 남부에 Landmark Aids Centreeng를 개관했다.[193][194] 1990년 10월에는 미국 워싱턴 D.C.에서 어린 에이즈 환자를 위한 시설인 '할머니의 집'(Grandma's Houseeng)을 열었다.[195] 다이애나는 National AIDS Trusteng의 후원자였으며, HIV 감염인을 위한 주거 시설을 제공하는 London Lighthouseeng(이후 Terrence Higgins Trusteng와 합병)를 정기적으로 방문했다.[417][196] 1991년에는 Middlesex Hospitaleng의 에이즈 병동을 다시 찾아 한 환자를 안아주었다.[417] 1992년에는 건강 및 사회 복지 자선단체인 Turning Point (charity)|터닝 포인트eng의 후원자로서 런던에 있는 HIV/AIDS 환자를 위한 프로젝트를 방문했다.[198] 이후 에이즈 연구를 위한 기금 모금 캠페인을 직접 설립하고 이끌기도 했다.[16]

1997년 3월, 다이애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방문하여 넬슨 만델라 대통령을 만났다.[199][200] 두 사람은 다이애나 사망 몇 달 전, 각자의 자선 기금(Diana, Princess of Wales Memorial Fundeng과 Nelson Mandela Children's Fundeng)이 에이즈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하기로 계획했다.[201] 만델라는 다이애나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며 "그녀는 나병 환자의 팔다리를 쓰다듬거나 HIV/AIDS에 걸린 남자의 침대에 앉아 손을 잡았을 때, 대중의 태도를 바꾸고 그러한 사람들의 삶의 기회를 향상시켰습니다."라고 말했다.[202] 또한 만델라는 다이애나가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HIV/AIDS와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붙어있는 낙인과 싸웠다"고 덧붙였다.[201]

찰스 왕세자와의 이혼 후에도 다이애나는 National AIDS Trusteng를 포함한 몇몇 자선 단체의 후원자 자격을 유지하며 에이즈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184]

5. 2. 지뢰

1997년 6월, 지뢰 제거 캠페인 기금 모금 행사 후 힐러리 클린턴과 지도실에서 대화하는 모습


별거와 이혼으로 왕실 공무와 국민 봉사 의무에서 벗어난 다이애나는 자선 사업가로서 활동 영역을 넓혔으며, 특히 지뢰 제거 문제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459] 그녀가 지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친구 리처드 애튼버러 경이 감독한 영화 《러브 앤 워》의 자선 시사회에서 지뢰가 민간인에게 미치는 참상에 충격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이후 영국 적십자사 마이크 위트럼 사무총장으로부터 지뢰 제거 캠페인 협력 요청을 받고 이를 수락했다.

다이애나는 전쟁 후 남겨진 지뢰 등 잔해를 제거하는 단체인 HALO Trust의 후원자가 되었다.[203][204] 1997년 1월, 그녀는 방탄 헬멧과 방탄복을 착용하고 앙골라의 지뢰밭을 직접 방문했으며, 이 모습이 담긴 사진은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203][204] 내전의 상처가 남은 보스니아를 방문했을 때는 사라예보의 묘지에서 아들의 묘를 찾은 여성과 껴안으며 위로했는데, 이를 본 언론인 디즈 경은 "이런 일을 다른 누가 할 수 있을까. 아무도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러한 활동은 정치적 논란을 낳기도 했다. 지뢰 문제가 정치와 얽혀 있었기 때문에 당시 보수당 정권은 그녀의 행보에 반발했으며, 호우 경은 그녀를 "통제 불능의 인물"(loose cannoneng)이라고 비판했다.[205] 그러나 다이애나는 "나는 인도주의자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라고 응수하며 비판을 일축했다. 비판에도 불구하고 HALO Trust는 다이애나의 노력이 지뢰 문제에 대한 국제적 인식을 높이고 그로 인한 고통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203][204]

다이애나는 지뢰 제거를 위한 국제적 노력을 촉구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1997년 6월에는 왕립 지리학회에서 열린 지뢰 관련 회의에서 연설했고, 미국 적십자사의 대인 지뢰 반대 캠페인을 지원하기 위해 워싱턴 D.C.를 방문했다.[9] 사망하기 불과 몇 주 전인 1997년 8월 7일부터 10일까지는 Landmine Survivors Network의 제리 화이트와 켄 러더포드와 함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방문하여 지뢰 피해자들을 만났다.[9][206][207][208]

다이애나의 이러한 헌신적인 활동은 1997년 대인 지뢰 전면 금지 조약(오타와 조약) 체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는다.[209] 그녀의 활동은 1997년 집권한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부를 움직였고,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1998년 영국 하원에서 지뢰 관련 법안의 2차 심의를 제안하며 당시 외무부 장관이었던 로빈 쿡은 다이애나의 공헌에 경의를 표했다.

모든 존경하는 의원들은 다이애나, 웨일스 공비가 지뢰로 인한 인적 피해를 많은 지역구민에게 알리는 데 기여한 엄청난 공헌에 대해 우편물을 통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녀의 활동과 지뢰 반대 캠페인을 벌여온 NGO들의 노고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법안을 통과시키고, 지뢰에 대한 전 세계적인 금지를 향한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210]


다이애나가 사망한 지 몇 달 후, 국제 지뢰 금지 운동(ICBL)은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211]

5. 3. 암

다이애나는 첫 단독 공식 방문으로 런던에 있는 암 치료 병원인 로열 마스덴 병원을 방문했다.[175] 그녀는 1989년 6월 27일에 이 병원의 병원장이 되었으며,[212][213][214] 1993년 2월 25일에는 병원 내 볼프슨 어린이 암 병동 개원에 참여했다.[212] 다이애나는 나중에 뉴욕에서 열린 자신의 의류 경매 수익금의 일부를 로열 마스덴 병원에 기부하기도 했다.[175] 이혼 후 100개가 넘는 자선 단체 후원을 중단했을 때도, 로열 마스덴 병원의 후원자 자격은 유지했다.[184]

로열 마스덴 병원의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는 다이애나가 "암, 에이즈, HIV, 나병과 같은 질병과 관련된 낙인과 금기를 없애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평가하며 그녀의 영향력을 강조했다.[175]

다이애나는 국제적으로도 암 환자 지원과 연구 발전에 힘썼다. 1996년 2월, 파키스탄 라호르를 방문하여 임란 칸이 설립한 샤우카트 하눔 기념 암 병원 및 연구 센터의 어린이 암 병동을 방문하고 자선 기금 마련 만찬에 참석했다.[215] 그녀는 1997년 5월에도 이 병원을 다시 방문했다.[216] 1996년 6월에는 미국 시카고를 방문하여 로열 마스덴 병원을 위한 기금 마련 행사에 참석, 암 연구를 위해 100만파운드 이상을 모금했다.[417] 이 방문 중에 그녀는 쿡 카운티 병원의 환자들을 위로하고,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유방암 연구자들을 만나 유방암 컨퍼런스에서 연설했다.[217] 같은 해 9월에는 캐서린 그레이엄의 초청으로 워싱턴 D.C.를 방문하여 니나 하이드 유방암 연구 센터를 위한 백악관 조찬과 ''워싱턴 포스트''가 주최하는 연례 기금 모금 행사에 참석했다.[16][218][219]

또한, 다이애나는 1988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두 어린이(진 오고먼과 그녀의 오빠)를 기리기 위해 설립된 'Children with Leukaemia'(이후 Children with Cancer UK로 명칭 변경)의 개원을 도왔다. 1987년 11월 진 오고먼이 사망한 직후 그녀의 가족을 만난 다이애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고, 가족들이 이 자선 단체를 설립하도록 지원했다.[220][221][222] 이 단체는 1988년 1월 12일 개원했으며, 다이애나는 1997년 사망할 때까지 이 단체를 후원했다.[220][222] 그녀는 또한 말콤 사젠트 어린이 암 기금의 후원자이기도 했다.[173][417]

5. 4. 기타 분야



다이애나는 왕실 구성원으로서의 공식적인 활동 외에도 다양한 사회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자선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특히 사회적으로 소외되기 쉬운 이들에 대한 관심은 학창 시절부터 나타났다. 웨스트 히스 학교 재학 시절, 다이애나는 학업 성적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마음이 따뜻했으며, 특히 어린이나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애정을 쏟았다. 학교 근처 시설에서 장애 아동을 돌보는 봉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학교로부터 사회 복지 활동 공로상인 '미스 크로스 로렌스 상'을 받기도 했다.[459] 이 경험을 통해 타인에 대한 헌신이라는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다.

결혼 이후에는 에이즈나 나병처럼 전통적인 왕실의 관심사에서 벗어난 질병과 건강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또한 노숙자, 청소년, 약물 중독자, 노인 등을 돕는 여러 자선 단체의 후원자로서 활동했다. 영국 자선 기금 모금 관리자 협회 이사 스티븐 리는 "자선 단체에 대한 그녀의 전체적인 영향력은 20세기에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중요할 것"이라고 평가하며 영향력을 인정했다.[304]

===나병 문제===

다이애나는 특히 나병 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해소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89년 11월 인도네시아의 나병 병원 방문을 계기로[223][189], 나병 환자에게 의약품, 치료, 기타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병 선교회의 후원자가 되었다.[184] 그녀는 사망할 때까지 이 단체의 후원자로 활동하면서 인도, 네팔, 짐바브웨, 나이지리아 등 전 세계 여러 나병 병원을 방문했다.[417][224]

당시 많은 이들이 일상적인 접촉만으로도 나병에 걸릴 수 있다고 잘못 믿었지만, 다이애나는 직접 환자들의 손을 잡고 안아주며 편견에 맞섰다.[417][223] 그녀는 "나의 관심사는 항상 나병 환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그들이 비난받거나 혐오감을 느끼지 않도록 단순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224] 이러한 노력은 나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녀를 기리고자 1999년 11월 인도 노이다에 웨일스 공비 다이애나 보건 교육 및 미디어 센터가 개관하여, 나병 및 장애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사회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224] 1993년 3월 네팔 나병 병원 방문 당시 환자들을 직접 만지고 접촉한 것은, 고위 인사가 나병 환자를 접촉한 첫 사례로 기록되기도 했다.[157]

===노숙자 문제===

다이애나는 노숙자 문제 해결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녀는 노숙자에게 숙소와 지원을 제공하는 자선 단체 센터포인트의 오랜 후원자이자 적극적인 지지자였고, 1992년 공식 후원자가 되었다.[225][226] 또한 더 패시지를 포함해 빈곤과 노숙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여러 단체를 지원했다.[227]

다이애나는 특히 젊은 노숙자들의 현실에 주목하여 "그들은 삶에서 제대로 된 시작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강조하고,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미래인 젊은이들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228] 단순히 후원금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린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를 직접 센터포인트 서비스와 노숙자 쉼터에 데려가 현실을 접하게 했다.[16][225][229] 한 자선 단체 직원은 "센터포인트의 젊은이들은 그녀의 방문과 그들에 대한 진심 어린 마음에 항상 큰 감동을 받았다"고 회상했다.[318] 윌리엄 왕자는 훗날 어머니의 뒤를 이어 센터포인트 후원자가 되었다.[225]

===기타 사회 문제===

다이애나는 약물 중독 및 정신 건강 문제와 같은 사회 문제 해결 노력에도 동참했다. 그녀는 부부 및 가족 관계 상담을 지원하는 Relate(구 전국 결혼 상담 위원회)와 약물 및 알코올 남용, 정신 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는 Turning Point 등 여러 단체의 확고한 지지자였다.[417] 1989년 Relate의 후원자가 되었고,[417] 1987년부터는 Turning Point의 후원자로 활동하며 램튼 및 브로드무어 같은 관련 기관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환자들을 직접 만났다.[417] 1990년 Turning Point 연설에서는 정신 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지적하며 사회가 이들을 다시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417] 또한 1991년에는 파키스탄 라호르의 약물 재활 센터를 방문하여 약물 남용 문제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417]

이 외에도 수많은 자선 단체와 기관을 후원했다. 주요 후원 단체로는 그레이트 오몬드 스트리트 병원, 잉글리시 국립 발레단, 로열 마스덴 병원, 국립 에이즈 트러스트, 런던 자연사 박물관, 로열 음악원, 로열 드라마 예술 아카데미, 바나도스, 영국 적십자사, 헤드웨이, 체스터 출산 기금, Child Bereavement UK, 지뢰 생존자 네트워크, 고령자 돕기, 국립 신경 및 신경외과 병원, 영국 폐 재단, 국립 어린이 오케스트라, 영국 청각 협회(이 단체를 위해 수화를 배우기도 했다[174][173][177]) 등이 있다.[173][172][165][87][166][167][417][168][169][170][171][175][176]

이혼 후인 1996년 8월, 100개가 넘는 자선 단체의 후원직에서 물러났지만, 센터포인트, 잉글리시 국립 발레단, 그레이트 오몬드 스트리트 병원, 나병 선교회, 국립 에이즈 트러스트, 로열 마스덴 병원의 후원자 자격은 유지하며 활동을 이어갔다.[184] 이러한 헌신적인 자선 활동은 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6. 사생활 및 법적 문제



결혼 초기부터 다이애나는 언론의 과도한 관심과 그로 인한 사생활 침해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1980년 11월, 선데이 미러는 찰스가 다이애나와의 비밀 만남을 위해 왕실 열차를 이용했다는 미확인 사실을 보도했고, 이에 왕실은 "완전한 날조"라며 강하게 부인하고 사과를 요구했다.[230][231] 1982년 2월에는 임신 중이던 다이애나가 비키니 차림으로 휴가를 보내는 사진이 언론에 무단으로 공개되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이례적으로 성명을 통해 이를 "영국 언론 역사상 가장 암울한 날"이라고 비판했다.[232]

결혼 5년 차인 1986년경, 찰스와 다이애나 부부 사이의 나이 차이와 성격 차이로 인한 부적합성은 관계에 심각한 균열을 야기했다. 다이애나는 왕실 승마 코치였던 제임스 휴이트와 관계를 맺었고, 같은 해 찰스 역시 옛 연인 카밀라 파커 볼스와 관계를 재개했다. 일부 언론은 해리 왕자의 외모가 휴이트와 유사하다는 점을 들어 친부 의혹을 제기했으나, 이는 휴이트를 포함한 관련 인물들이 모두 부인했으며, 해리 왕자는 다이애나와 휴이트의 관계가 시작되기 2년 전에 태어났다.[30][35]

1987년이 되자 부부 관계의 불화는 대중에게도 명확히 드러났고, 언론은 서로에게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부부를 "글럼스(Glums)"라고 칭하며 이들의 불행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18][36][37][38] 1989년, 다이애나는 카밀라 파커 볼스의 여동생 생일 파티에서 직접 카밀라와 대면하여 찰스와의 관계에 대해 따져 물었다.[39][40]

부부의 불화와 각자의 외도 문제는 1992년 앤드루 모턴이 출간한 책 ''다이애나: 그녀의 진실''을 통해 대중에게 폭로되었다.[41][42] 이 책에는 다이애나가 제임스 콜서스트와의 비밀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자살 충동을 느낄 만큼 불행했던 결혼 생활과 폭식증 등 개인적인 고통이 담겨 있었으며, 이는 큰 언론의 파장을 일으켰다.[43][44] 출간 초기 다이애나와 모턴은 직접적인 관여 사실을 부인했지만, 다이애나 사후 모턴은 개정판 서문에서 다이애나가 책 내용에 기여했음을 인정했다.[45]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 공은 부부의 만남을 주선하며 화해를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필립 공은 다이애나에게 편지를 보내 부부 각자의 외도에 대한 실망감을 표하며 서로의 입장을 고려해볼 것을 요청했다. 다이애나는 편지 내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면서도 그의 선의에는 감사했다고 전해진다. 일부에서는 다이애나와 필립 공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118][46][47] 다른 관찰자들은 주고받은 편지에서 갈등의 징후를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48] 필립 공은 훗날 다이애나를 모욕했다는 주장에 대해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49]

1992년과 1993년에는 찰스와 다이애나 각자의 사적인 전화 통화 내용이 유출되어 양측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92년 8월 다이애나와 제임스 길비의 대화 녹음 테이프("Squidgygate")가 공개되었고,[50][16] 같은 해 11월에는 찰스와 카밀라 파커 볼스의 내밀한 대화 녹음 테이프("Camillagate")가 타블로이드 신문에 유출되었다.[51] 이러한 일련의 사건 끝에 1992년 12월, 존 메이저 당시 총리는 하원에서 찰스와 다이애나 부부의 "원만한 별거(amicable separation)"를 공식 발표했다.[52]

별거 후 다이애나는 대중 연설 목소리를 다듬기 위해 음성 코치 피터 세텔렌을 고용했다.[53] 1992년 세텔렌이 녹화한 비디오테이프에서 다이애나는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이 환경에서 일하는 누군가", 즉 왕실 경호원이었던 배리 매나키를 깊이 사랑했다고 고백했다.[54][55][56] 매나키는 1986년 다이애나와의 관계가 부적절하다는 판단 하에 다른 부서로 전출되었는데,[55][57] 다이애나는 영상에서 매나키가 자신과의 관계 때문에 "쫓겨났다"고 말했다.[54] 그녀는 매나키를 "가장 좋은 친구"라고 묘사했지만 성적인 관계는 부인했다.[59] 또한 찰스에 대해 "그는 가능한 모든 면에서 나를 너무 무능하게 느끼게 만들었다"며 결혼 생활에서의 깊은 좌절감을 토로했다.[60]

다이애나는 카밀라 파커 볼스를 자신의 결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점차 찰스가 다른 여성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특히 찰스의 개인 비서이자 아들들의 전 보모였던 티기 레그-보크와의 관계를 의심하며, 찰스가 자신을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믿었다. 그녀는 1993년 10월 집사 폴 버렐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러한 극심한 불안감을 드러냈다.[61][62] 다이애나는 레그-보크와 어린 왕자들이 가까운 관계를 맺는 것에 분개했다.[63] 한편 찰스는 1994년 6월 조나단 딤블비와의 텔레비전 인터뷰를 통해 대중의 이해를 구하고자 했다. 그는 1986년 다이애나와의 결혼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탄"난 후에야 카밀라와의 관계를 재개했다고 해명했다.[64][65]

같은 해, 안나 파스터나크는 제임스 휴이트를 주요 정보원으로 하여 다이애나와 휴이트의 불륜 관계를 상세히 다룬 책 ''사랑 속의 공주''를 출간했다.[34] 또한 ''News of the World''는 다이애나가 유부남 미술상 올리버 호어와 불륜 관계라고 보도했다.[66][67] 호어의 부고 기사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되었으나,[68] 다이애나 본인은 호어를 친구로 묘사하며 낭만적인 관계를 부인했다.[69][70] 이 외에도 언론은 다이애나를 럭비 유니언 선수 윌 칼링[71][72] 및 사모 펀드 투자자 시어도어 J. 포스트만과 연결지었으나,[73][74] 이러한 주장들은 확인되거나 입증되지 않았다.[75][76]

사생활 침해는 계속되었다. 1993년 미러 그룹 신문사(MGN)는 체육관 소유주 브라이스 테일러가 몰래 촬영한 다이애나의 운동 사진을 게재하여 큰 논란을 일으켰다.[233][234] 다이애나는 즉시 법적 조치를 취했고, 법원은 사진의 추가 게재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233] MGN은 결국 사과하고 다이애나에게 법적 비용으로 100만파운드을 지불했으며, 그녀의 자선 단체에 20만파운드를 기부했다.[233] LA 피트니스와 테일러 역시 이후 사과하고 합의했다.[233] 1994년과 1996년에는 스페인과 영국 언론에 다이애나가 상반신을 노출한 채 일광욕하는 사진이 게재되어 다시 한번 사생활 침해 논란이 불거졌다.[235][34] 1996년에는 빅터 루이스-스미스가 스티븐 호킹을 사칭하여 다이애나에게 장난 전화를 걸기도 했으며,[236] 더 선은 제임스 휴이트와 다이애나의 모습이라며 가짜 친밀 영상에 관한 기사를 1면에 실었다가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237][238]

1994년 8월, 『뉴스 오브 더 월드』는 다이애나가 제임스 휴이트의 여자친구와 미술상 올리버 호어에게 무언 전화를 걸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경찰 조사 결과 발신지가 다이애나의 거처인 켄싱턴 궁전이었다는 내용이었다. 다이애나는 『데일리 메일』을 통해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음모라며 의혹을 부인하고 알리바이를 주장했지만, 이후 알리바이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아 논란은 계속되었고 한때 다이애나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233] 다이애나는 1995년 BBC 인터뷰에서도 무언 전화 의혹을 재차 부인했다.[233]

1995년 11월 20일, 다이애나는 BBC의 시사 프로그램 ''파노라마''에서 저널리스트 마틴 바시르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78] 이 인터뷰는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다이애나는 자신과 찰스의 외도 사실을 인정하며, 찰스와 카밀라의 관계에 대해 "글쎄요, 이 결혼에는 우리 셋이 있었으니, 좀 붐볐죠(Well, there were three of us in this marriage, so it was a bit crowded)."라는 유명한 발언을 남겼다.[77][78] 그녀는 또한 찰스가 왕위에 적합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으며, 자신이 주요 우울 장애, 폭식증, 여러 차례의 자해 경험 등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했다.[78] 이러한 고백은 일부 전기 작가들이 그녀가 경계선 성격 장애를 앓았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79][323]

그러나 훗날 마틴 바시르가 이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 위조된 은행 명세서를 사용하고, 다이애나의 주변 인물들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거짓 정보를 흘려 그녀의 불안감을 이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80] 로드 다이슨의 독립 조사 보고서는 바시르가 "다이애나의 두려움과 편집증을 이용했다"고 결론 내렸으며, 이는 다이애나의 아들 윌리엄 왕자도 동의하는 바이다.[81][82]

''파노라마'' 인터뷰는 이혼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95년 12월 20일, 버킹엄 궁전은 여왕이 찰스와 다이애나에게 이혼을 권고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발표했다.[83][84] 이는 존 메이저 총리와 고위 추밀원들의 지지를 받은 결정이었다.[85] 찰스는 즉시 이혼에 동의한다는 서면 성명을 발표했다.[83] 1996년 2월, 다이애나도 협상 끝에 이혼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으며,[86] 1996년 7월 최종적으로 이혼 조건에 합의했다.[98] 이 과정에서 다이애나가 찰스의 개인 비서 티기 레그-보크가 낙태했다는 근거 없는 비난을 제기하는 사건도 있었는데,[87][88] 이는 후에 마틴 바시르가 인터뷰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퍼뜨린 루머였던 것으로 밝혀졌다.[91] 다이애나의 개인 비서 패트릭 제프슨은 이 사건 직후 사임했다.[89][90]

이혼 판결은 1996년 8월 28일에 최종 확정되었다.[92][93] 다이애나는 앤서니 줄리어스 변호사의 조력을 받았다.[94] 부부는 두 아들에 대한 양육권을 동등하게 공유하기로 합의했다.[95] 다이애나는 위자료로 1700만파운드 (1996년 기준)의 일시불과 연간 40만파운드를 받았다. 또한 부부는 결혼 생활이나 이혼의 세부 사항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금지하는 기밀 유지 계약에 서명했다.[98] 이혼과 함께 다이애나는 '전하(Her Royal Highness)' 칭호를 잃고 ''웨일스 공비 다이애나(Diana, Princess of Wales)''로 불리게 되었다. 이는 여왕의 의사와는 달리 찰스가 강력히 주장한 결과로 알려졌다.[98]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왕위 계승자의 어머니로서 왕족의 일원으로 간주되었으며, 결혼 기간과 동일한 우선 순위를 부여받았다.[96] 아들 윌리엄 왕자는 실망한 어머니에게 "걱정 마세요, 엄마. 제가 왕이 되면 언젠가 다시 돌려드릴게요."라고 위로했다고 전해진다.[97]

이혼 후에도 다이애나는 결혼 생활 동안 거주했던 켄싱턴 궁전 북쪽의 아파트를 유지했고, 이 아파트는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거처로 남았다.[98][99] 그녀는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기 위한 수당을 받았지만, 모든 지출은 스스로 부담해야 했다.[101] 결혼 기간 중 사용했던 보석류에 대한 접근 권한과 영국 왕실 및 정부의 항공 수송 이용 권한은 유지되었다.[98] 런던 경시청 왕실 경호대의 경호는 계속 제공되었으나, 다이애나는 왕실로부터의 독립성을 추구하며 생애 마지막 몇 년간 이를 거부하기도 했다.[102][103] 그녀의 사후, 토니 블레어 총리와 다이애나가 자선 활동과 인도주의적 캠페인을 위한 특별한 정부 역할을 논의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104]

이혼 후 다이애나는 엘튼 존, 라이자 미넬리, 조지 마이클, 마이클 잭슨, 지아니 베르사체 등 여러 유명 인사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105][106] 특히 영국-파키스탄계 심장 외과 의사인 하스나트 칸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많은 측근들은 칸을 "다이애나 인생의 사랑"이라고 불렀으며,[107][108][109] 다이애나 자신도 그를 "미스터 원더풀(Mr. Wonderful)"이라고 칭했다고 한다.[110][111][112][113] 두 사람의 관계는 약 2년간 비밀리에 지속되었으나,[115][116] 1997년 여름 다이애나가 관계를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117][118] 다이애나의 어머니 프랜시스 섄드 키드는 딸이 무슬림 남성과 교제하는 것을 반대했으며, 이로 인해 모녀 관계가 악화되어 다이애나가 사망하기 전 4개월 동안 서로 대화하지 않았다고 한다.[119][120][121]

하스나트 칸과의 관계가 끝난 지 한 달 안에, 다이애나는 이집트 출신 백만장자 모하메드 알 파예드의 아들인 영화 제작자 도디 파예드와 교제를 시작했다.[124] 1997년 여름, 다이애나는 아들들과 함께 프랑스 남부에서 알 파예드 가족과 휴가를 보냈고, 이 과정에서 도디와 가까워졌다.[124][125][126] 일부에서는 다이애나가 하스나트 칸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도디 파예드와 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34]

다이애나는 사망 전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127][128][129] 그러나 1997년 8월 31일 새벽, 프랑스 파리에서 도디 파예드와 함께 탑승한 차량이 파파라치의 추격을 피하던 중 퐁 드 랄마 터널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다.[239]

다이애나의 죽음 이후에도 그녀의 사생활과 관련된 의혹과 법적 문제는 계속되었다. 특히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감시를 받았다는 사실이 1999년 정보 공개법 요청을 통해 밝혀졌다. NSA는 다이애나에 관한 1,000페이지가 넘는 최고 기밀 파일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국가 안보를 이유로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270][271] NSA 측은 다이애나가 "대규모 전 세계 전자 도청 인프라의 대상"은 아니었다고 주장했지만,[270] 모하메드 알 파예드를 포함한 여러 인물의 파일 공개 요청에도 불구하고 문서는 여전히 기밀로 분류되어 있다.[271]

또한 2008년, 다이애나의 전 경호원 켄 워프는 1992년에 유출된 다이애나와 제임스 길비의 스캔들 통화 내용(스퀴지게이트)이 실제로는 영국 정보기관인 GCHQ에 의해 녹음되었으며, GCHQ가 의도적으로 이를 유포했다고 주장했다.[272] 다이애나의 측근들은 이것이 그녀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였다고 믿었다.[272] 워프는 다이애나 본인도 왕실 구성원들이 감시받고 있다고 믿었으며, 그 주된 이유는 IRA의 잠재적 위협 때문일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272] 이러한 감시 의혹들은 다이애나의 사생활이 국가기관에 의해 어느 정도까지 침해되었는지에 대한 논란을 남겼다.

7. 대중적 이미지

다이애나는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왕족 중 한 명으로 남아 있으며, 젊은 왕족들에게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295][296][324] 찰스 3세와의 약혼부터 사망까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종종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진 찍힌 여성"으로 묘사되었다.[16][297] 그녀는 동정심, 스타일, 카리스마, 그리고 높은 평가를 받은 자선 활동뿐만 아니라 불행한 결혼 생활로도 유명했다.[304][298] 전기 작가 사라 브래드포드는 다이애나의 고통에 대한 유일한 치료법은 찰스 왕세자의 사랑이었을 것이며, 그가 지속적으로 그녀를 폄하하는 방식이 그녀를 절망으로 몰아넣었다고 평가했다.[189] 결혼 문제와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다이애나는 여론 조사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고, 반면 그녀의 남편은 대중의 낮은 지지를 받았다.[16] 2002년 BBC의 '가장 위대한 영국인 100인' 여론 조사에서는 윈스턴 처칠과 이잠바드 킹덤 브루넬에 이어 3위를 차지하여,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다른 영국 군주들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317][460] 2013년 미국의 한 여론 조사에서는 "다시 살아났으면 하는 유명인" 1위로 꼽히기도 했다.[461]

런던 마담 투소에 있는 다이애나의 밀랍 인형


초기에는 부끄러움을 타는 듯한 모습과 시선 처리 때문에 "샤이 다이(Shy Di)"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으나,[296][303][199] 다이애나 자신과 주변 인물들은 그녀가 실제로는 내성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449] 그녀의 전 비서 패트릭 제프슨은 그녀를 조직적이고 근면하며, "불의의 희생자라고 느낄 경우" 반항적인 면모도 보이는 강인한 인물로 묘사했다.[299] 언론인 마이클 화이트는 그녀를 "영리하고", "현명하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보았고,[324] 가까이 지낸 이들은 그녀가 논리보다는 "마음", 즉 본능과 직감에 이끌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16][455] 그녀는 자녀들에게 헌신적인 어머니로 묘사되기도 했다.[16][301]

다이애나는 아프거나 죽어가는 환자,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직접 만나 위로하는 모습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이러한 소탈한 행보는 그녀의 인기를 더욱 높였다.[306] 격식을 싫어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방에 들어설 때 일어서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307] 그녀는 왕족의 자선 활동 범위를 넓히고 더 현대적인 방식으로 수행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304] ''워싱턴 포스트''의 유진 로빈슨은 "다이애나가 왕족으로서의 역할에 활력, 활동주의, 그리고 무엇보다 매력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했다.[16]

Travolta 드레스를 입은 모습, 1985년 11월, 그녀의 가장 유명한 의상 중 하나


다이애나는 전 세계 여성들이 모방하는 스타일을 가진 패션 아이콘이었다.[332] ''타임''지는 그녀를 역대 100대 패션 아이콘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332] 그녀가 입은 옷은 즉각적으로 유행이 되었고,[334][333] 약혼 시절 신었던 헌터 웰링턴 부츠는 판매량이 급증하기도 했다.[334][335] 그녀는 패션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대중과 소통했으며,[336][337][338] 특히 외교 순방 시에는 방문하는 국가의 문화를 존중하는 의상을 선택하기도 했다.[340][343] 초기에는 낭만적이고 왕실의 전통을 따르는 스타일을 보였으나, 점차 캐서린 워커, 베르사체, 샤넬, 크리스챤 디올, 구찌 등 다양한 디자이너들의 옷을 소화하며 자신감 있고 실용적인 스타일로 변화해갔다.[349][340][341][350] "복수 드레스"나 존 트라볼타와 춤출 때 입었던 "Travolta 드레스" 등은 특히 유명하다.[353][340][349][345] 그녀는 모자 디자이너 존 보이드의 모자를 즐겨 착용하여 침체되었던 영국 모자 산업 부흥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는다.[358][359]

1995년 BBC 인터뷰에서 다이애나는 수년간 폭식증으로 고통받았음을 고백했다. 왕실 생활의 압박감과 공허함을 폭식과 구토로 해소하려 했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304] 한편, 그녀는 점성술이나 대체의학, 영적인 것에 깊은 관심을 보여 점성술사, 심리 치료사, 영능력자 등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449] 이러한 성향은 그녀가 직관과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인물이었음을 보여주지만,[455]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분야에 공적인 인물이 의존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203]

다이애나와 언론 및 파파라치의 관계는 복잡하고 양면적이었다. 그녀는 언론의 지나친 관심에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때로는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고 자선 활동을 홍보하기 위해 언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직접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319][320][321][322]

이처럼 상징적인 인물이었음에도 다이애나는 생전에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철학자 앤서니 오헤어는 그녀가 왕족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무모한 행동으로 군주제를 훼손하며, 자선 활동마저 "자기 탐닉"에 가깝다고 비판했다.[318] 또한 그녀가 자신의 공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개인적인 이득을 취한다는 비판도 있었다.[323][296] 작가 샐리 베델 스미스는 다이애나를 예측 불가능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소유욕이 강한 인물로 묘사하기도 했다.[323]

다이애나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전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슬픔과 애도를 불러일으켰고,[310] 영국 왕실에 큰 위기를 가져왔다.[325][311][312] 앤드루 마르는 그녀의 죽음이 "대중적 정서의 문화를 부활시켰다"고 평가했으며,[304] 그녀의 아들 윌리엄 왕자는 대중의 슬픔이 "영국인의 정신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켰다"고 말했다.[313]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의 영향력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시각과[329] 여전히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이 공존한다.[330][331] 모니카 알리는 그녀를 "매혹적이고 결함이 있는 존재"로 묘사하며, "그녀의 유산은 복합적일 수 있지만,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녀의 삶은 짧았지만, 그녀는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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