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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우익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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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우익 단체는 1868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본 제국 시대를 숭상하며, 일본 천황을 찬양하고 국수주의적 언행을 선전한다. 이들은 욱일기와 황실 문장으로 장식된 차량(가이센샤)을 이용해 시위를 벌이고, 중국, 한국, 러시아 대사관 등에서 반대 시위를 펼친다.

우익 단체는 전통 우익, 신자유주의 우익, 신우익, 야쿠자를 모체로 하는 임협계 우익 등으로 분류되며, 국체 유지, 반공주의, 일본교원노동조합에 대한 적대라는 철학을 공유한다. 또한 센카쿠 열도, 쿠릴 열도,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등에서 러시아, 중국, 북한에 적대적인 입장을 보인다.

대부분의 우익 단체는 일본의 전쟁 범죄를 부인하고,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된 전범들을 숭배하며, 역사 교과서 검열을 지지한다. 전일본 애국자 단체 회의는 여러 우익 단체를 정리하는 전국 조직이며, 미쓰비시 그룹 등 일부 기업이 우익 단체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자유민주당을 지지하며, 주변국에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으며, 욱일기를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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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우익단체 - [정당]에 관한 문서
개요
명칭우익 단체 (右翼団体, 우요쿠 단타이)
성향극우
이념 및 주장
주요 이념일본 군국주의
일본 극단적 민족주의
일본 전쟁 범죄 부인
반중국 감정
반한국 감정
반러시아 감정
반공파
극우 보수주의 (일본 보수주의)
반공주의
친미주의
민족파
반미주의
일본 튀르크주의
전통 그룹:
쇼와 시대의 국가주의
반공주의
친추축국
파시즘 (분파)
반공파 (Hankyō-ha, 반쿄-하)반공주의 성향을 가짐
민족파 (Minzoku-ha, 민조쿠-하)반미주의 성향을 가짐
정치적 위치
정치적 스펙트럼극우 정치

2. 특징

일본의 우익 단체는 1868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본 제국 시대를 찬양하는 것이 기본적인 특징이다.[4] 이들은 '전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1868년부터 1945년까지 77년간 존재했던 현상만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도쿠가와 시대나 전국 시대 등 1868년 이전의 역사는 찬양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들은 고성능 스피커를 장착한 검은색 중대형 차량을 이용하여 도심지에서 일본 천황 찬양과 국수주의적 언행을 선전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본 경찰은 이러한 행동을 하는 우익을 '행동 우익'이라고 부른다.

일본의 우익 단체는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분류설명
전통 우익제국 시대부터 존재했다.[16]
청년 민족파 우익"오른쪽으로부터의 혁명(右からの革命일본어)"을 주장하며 반핵방 조약 투쟁에 집결, 신좌익 운동에 대항하여 생겨난 학생 중심의 우익이다.
신우익우익 운동 붕괴기에 매스컴에 등장했다.
임협(任俠)계 우익폭력단을 모체로 하는 우익이다. (일명 ‘행동파 우익’)[19][37][20][21][22]



이러한 우익 단체들을 ஒருங்கிணை는 전국 조직으로 전일본 애국자 단체 회의(전애회의)가 있다. 전애회의는 '국체호지(國體護持)'와 '반공 협동 전선'을 2대 강령으로 내걸고 일본의 재군비, 천황제 옹호를 주장했으며, 일본교원노조 탄압으로 악명이 높다.

통일교 일본지부 계열의 국제승공연합 등도 우익 단체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행동 우익과는 별개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아 우익 단체로 간주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미쓰비시 그룹, 이스즈, 마루베니, 일본담배주식회사, SMK 등이 우익 단체를 지원하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우익 단체들은 가이센샤|街宣車|가이센샤일본어라고 불리는, 확성기를 장착하고 단체 이름과 선전 구호를 눈에 띄게 표시한 개조된 밴, 트럭, 버스 형태의 차량을 사용한다.[4] 이 차량들은 주로 검은색, 카키색, 올리브 드랩 색상이며, 황실 문장, 일본 국기, 욱일기로 장식되어 있다. 이들은 중국, 한국, 러시아 대사관, 조총련 시설, 언론 기관 등에서 시위를 벌이며 확성기를 통해 선전을 방송한다. 때로는 도시를 돌아다니거나 번화가에 주차하여 선전 방송, 군가, 기미가요를 방송하기도 한다. 대일본애국당은 중국과 북한에 대항하고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미국-일본-한국 동맹을 지지하며, 차량에 일본 국기와 함께 미국 국기를 게양하고 미국 군가를 연주하기도 했다.

이들의 정치적 신념은 단체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국체호지(국가의 기본적인 특성 유지), 반공주의마르크스주의 비판에 대한 적대, 일본교원노동조합에 대한 적대라는 세 가지 철학을 공유한다.[5][6] 전통적으로 러시아(이전에는 소련), 중국, 북한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있으며, 센카쿠(댜오위다오) 열도, 쿠릴 열도, 북한의 일본인 납치와 같은 문제를 제기한다.

대부분의 우익 단체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의 역할을 정당화하고, 1945년 이전 쇼와 시대일본의 전쟁 범죄를 부인하며, 전후 역사 교육에서 "가학적인" 편향이 있다고 비판한다.[7] 극동 국제 군사 재판 등 연합 재판의 합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된 전쟁 범죄자들을 쇼와의 순국자|昭和殉難者|Shōwa junnansha일본어로 간주하며, 역사 교과서 검열이나 역사 수정주의를 지지한다.

3. 정치 성향

자유민주당을 지지하며, 보수 및 극우적인 색채가 강하다. 민주당에 대해서는 반감과 적대적인 성향을 보인다. 매년 종전기념일(8월 15일)에 야스쿠니 신사에 집결하여 전범들을 찬양하고, 천황폐하만세를 외친다. 욱일기를 내걸고 일본 제국을 찬양하는 시위를 벌인다.[41]

4. 주변국에 대한 입장

대한민국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적대감이 큰 편이며 특히 대한민국과는 위안부 문제와 독도(일본명: 다케시마)의 영유권 문제를 두고 갈등하고 있고 중화인민공화국과는 중일 전쟁난징 대학살 문제 그리고 센카쿠·댜오위다오의 영유권 문제를 두고 갈등하는 편이다.[41]

이들은 독도센카쿠 열도를 모두 일본 고유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독도(일본명: 다케시마)를 영토를 탈환하여 일본의 주권을 되찾자는 목소리를 내고있다.[4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서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부자에 대한 적대감과 일본인 납치문제와 미사일과 북핵 문제 등으로 갈등하고 있다.[41]

5. 사상

일본 우익의 주요 정치적 주장은 천황제 수호, 반공주의, 자주 헌법 제정, 국기 게양 및 기미가요 제창 찬성, 태평양 전쟁(대동아 전쟁) 긍정 및 YP 체제 타파, 야스쿠니 신사 참배, 국방 정책 강화 및 강경한 외교 정책 지지 등이다.[41]

자민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지만, 천황 친정의 입장에서 의회제 민주주의 타도를 외치거나 독자적인 민족주의 정당(유신 정당·신풍 등)을 조직하는 급진파도 일부 존재한다. 헌법 개정 논의에서는 강요 헌법론 및 안전 보장상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며 개헌을 주장하거나, 헌법 무효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대외적으로는 2005년 반일 시위, 야스쿠니 신사 문제, 센카쿠 열도 영토 문제 등에서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대만)을 비판한다. 반일 시위, 야스쿠니 신사 문제, 독도 영토 문제 등에서 한국북한을 비판하고, 일본인 납치 문제와 북방 영토 문제에서 러시아(1991년까지는 소비에트 연방)를 비판한다. 반공주의와 역사 인식의 갈등[42]에서 베트남, 쿠바를 비판하거나, 친미 입장에서 중동 국가, 파키스탄, 동티모르 등을 비판하기도 한다.

미국과 한국에 대한 인식은 단체마다 다르다. 반공주의 입장에서 미국과 한국을 지지해 온 우익 단체도 있지만, 냉전 후에는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태도와 1945년 이전 역사 인식 문제로 미국과 한국을 비판하는 우익이 늘고 있다. 미일 안보 체제에 대해서도 대미 종속을 심화시킨다며 반미 입장을 취하는 단체가 있는 반면, 중화인민공화국과 북한의 군사적 위협, 러시아와의 영토 문제 등을 이유로 친미 입장을 유지하는 단체도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을 부정하고 중화민국을 중국의 대표 정부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으며, 티베트 독립 운동, 동투르키스탄 독립 운동, 내몽골 독립 운동을 지지한다. (만주 독립을 지지하는 단체도 있다.) 그러나 중화민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연합국의 일원으로, 1945년 이전 역사 인식에서 일본 우익과 갈등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최근에는 중화민국을 부정하고 대만 독립 운동을 지원하기도 한다. 이러한 활동의 근거로 민주주의, 인권, 중국 위협론, 민족 자결 등을 내세운다.

주니치 신문, 아사히 신문, 마이니치 신문 등 위안부 보도에 적극적이었던 언론을 비판한다. 홋카이도 신문, 류큐 신보, 오키나와 타임스 등 지방지도 적대시하는 경우가 많다. 요미우리 신문, 산케이 신문 등 보수 성향 언론에는 긍정적이지만, 경우에 따라 비판하기도 한다. 일본경제신문에 대해서는 중국에 대한 긍정적 보도 자세와 차이나 리스크를 이유로 비판적인 경우가 많다. 일본경제신문은 신자유주의와 글로벌리즘을 지지하며, 농본주의 등 민족주의 사상은 지지하지 않는다.

5. 1. 분류

일본의 우익 단체는 이념적 관점과 창립 시기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

  • '''관념 우익''': 전통과 문화를 중시하며, 국학이나 메이지 유신의 인물들에게서 사상적 연원을 찾는다. 겐요샤가 대표적이다.
  • '''정통 우익''': 근대화서구화에 반대하며, 지역의 종교, 역사, 습속의 독립성과 지속성을 중시한다.
  • '''인협 우익''': 폭력단과 연계된 우익 단체로, 정치적 목적보다는 기업 공갈 등을 목적으로 한다.
  • '''혁신 우익''': 국가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그룹으로, 황도파에 가까운 민족주의적인 관념 우익과 통제파에 가까운 혁신 우익으로 나뉜다.
  • '''가이센 우익''': 차량을 이용해 대음량으로 항의 활동을 하는 우익 단체이다.
  • '''종교 우익''':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우익 단체이다.
  • '''신우익''': 기존 우익 단체의 가정을 거부하고 반미, 반서방 노선을 채택한다.
  • '''행동하는 보수''': 적극적인 거리 활동을 하며, 반한, 반중, 반러 수사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재특회) 등이 이에 해당한다.
  • '''우파계 시민 그룹''': 시민 운동 형태로 활동하는 우익 단체이다.


이러한 분류 외에도, "우익 단체"라는 명칭은 좌익과의 비교에서 나온 것이므로, 스스로는 "애국자 단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5. 2. 전후(戰後) 분류 (일본 경찰청, 1972)

시마나카 사건 당시 경찰청은 "치안상 주의를 요하는 단체"로 조직 우익과 행동 우익으로 분류했다(1972년).[36]

조직 우익행동 우익


5. 3. 정치적 주장

일본 우익의 주요 정치적 주장은 천황제 수호, 반공주의, 자주 헌법 제정, 국기 게양 및 기미가요 제창 찬성, 태평양 전쟁(대동아 전쟁) 긍정 및 YP 체제 타파, 야스쿠니 신사 참배, 국방 정책 강화 및 강경한 외교 정책 지지 등이다.[41]

자민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지만, 천황 친정의 입장에서 의회제 민주주의 타도를 외치거나 독자적인 민족주의 정당(유신 정당·신풍 등)을 조직하는 급진파도 일부 존재한다. 헌법 개정 논의에서는 강요 헌법론 및 안전 보장상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며 개헌을 주장하거나, 헌법 무효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대외적으로는 2005년 반일 시위, 야스쿠니 신사 문제, 센카쿠 열도 영토 문제 등에서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대만)을 비판한다. 반일 시위, 야스쿠니 신사 문제, 독도 영토 문제 등에서 한국북한을 비판하고, 일본인 납치 문제와 북방 영토 문제에서 러시아(1991년까지는 소비에트 연방)를 비판한다. 반공주의와 역사 인식의 갈등[42]에서 베트남, 쿠바를 비판하거나, 친미 입장에서 중동 국가, 파키스탄, 동티모르 등을 비판하기도 한다.

미국과 한국에 대한 인식은 단체마다 다르다. 반공주의 입장에서 미국과 한국을 지지해 온 우익 단체도 있지만, 냉전 후에는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태도와 1945년 이전 역사 인식 문제로 미국과 한국을 비판하는 우익이 늘고 있다. 미일 안보 체제에 대해서도 대미 종속을 심화시킨다며 반미 입장을 취하는 단체가 있는 반면, 중화인민공화국과 북한의 군사적 위협, 러시아와의 영토 문제 등을 이유로 친미 입장을 유지하는 단체도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을 부정하고 중화민국을 중국의 대표 정부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으며, 티베트 독립 운동, 동투르키스탄 독립 운동, 내몽골 독립 운동을 지지한다. (만주 독립을 지지하는 단체도 있다.) 그러나 중화민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연합국의 일원으로, 1945년 이전 역사 인식에서 일본 우익과 갈등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최근에는 중화민국을 부정하고 대만 독립 운동을 지원하기도 한다. 이러한 활동의 근거로 민주주의, 인권, 중국 위협론, 민족 자결 등을 내세운다.

주니치 신문, 아사히 신문, 마이니치 신문 등 위안부 보도에 적극적이었던 언론을 비판한다. 홋카이도 신문, 류큐 신보, 오키나와 타임스 등 지방지도 적대시하는 경우가 많다. 요미우리 신문, 산케이 신문 등 보수 성향 언론에는 긍정적이지만, 경우에 따라 비판하기도 한다. 일본경제신문에 대해서는 중국에 대한 긍정적 보도 자세와 차이나 리스크를 이유로 비판적인 경우가 많다. 일본경제신문은 신자유주의와 글로벌리즘을 지지하며, 농본주의 등 민족주의 사상은 지지하지 않는다.

6. 역사 인식

전통적인 우익의 역사 인식은 국체 옹호의 입장에서 황국사관을 주장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국가 체제를 이상으로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수의 입장이 존재하며, 고대 등의 천황 친정이나 귀족 제도의 부활, 전통적인 국가의 근거로서의 황실을 강조하고 상징 천황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 메이지 천황과 같은 계몽 전제주의의 천황 친정 부활, 더 나아가 기타 잇키 등의 근대 국가의 통합을 위한 천황 기관설에 가까운 국가 체제 등이 존재한다.[35]

5·15 사건, 2·26 사건 등의 쿠데타에 관해서는, 천황 친정의 중앙집권적인 신국가를 창립하려 했던 것으로 평가하는 입장이나, 전통 보수주의나 법치주의, 메이지 헌법의 입헌 군주제를 존중하는 입장으로부터 비판적인 입장도 존재한다.

한일 병합이나 만주 사변이나 중일 전쟁 등의 일본에 의한 대륙 진출에 관해서는, 많은 문제가 있어 모두 긍정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 제국이나 소비에트 연방의 남하를 막고, 인접 국가의 근대화를 촉진하며, 일본의 생존권을 방어하기 위한 필요성은 부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입장이 많다. 다만 종교 우익의 일부는, 각 민족의 전통적인 문화나 종교 등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강제적인 근대화나 황민화 교육 등의 식민지 정책을 부정했다.

제2차 세계 대전(태평양 전쟁)에 관해서는, 일반적으로 대동아 전쟁이라고 부르며, 자위적인 전쟁이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전쟁은 마오쩌둥이나 코민테른의 음모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공산주의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한편에서는 일부 보수주의 또는 자유주의적인 우익은, 통제파가 주도한 국가 총동원법이나 언론 통제나 통제 경제 등의 전시 체제는 일종의 사회주의라는 입장에서, 이것들을 비판했다. 이른바 「난징 대학살」이나 「위안부강제 연행」 등에 관해 날조 또는 과장된 선전이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일본에 관해서는, 전통적 우익·친미 우익·반공 우익의 대부분은,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은 좌익에 의한 자학 사관이 교육 현장이나 언론에서 횡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대동아 전쟁 및 대일본 제국 긍정·전후 민주주의 부정, 일본교직원조합이나 아사히 신문(좌익계) 등에 대한 비판, 스파이 방지법 제정, 군비력 증강, 미일 안보 조약의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민족파 우익은 전후의 일본을, 미국과 소련 등에 의한 사실상의 일본의 식민지화인 「YP 체제」라는 입장에서, 반공주의와 동시에 반미를 주장했다.

7. 비판 대상 국가

일본의 많은 우익 단체들은 반공주의 입장에서 소비에트 연방 붕괴까지의 소비에트 연방과 중국, 북한 등의 국가, 체제, 정부 및 공산주의 정당을 비판하고 있다. 또한 중국에 탄압받는 티베트, 동투르키스탄, 내몽골 등의 자치 독립 운동을 지지하는 입장도 있다.[42] 냉전기에는 대일본애국당 등 대다수의 우익 단체가 반공 입장에서 친미, 친한, 친대만, 친체제(친미 우익)였지만, 신우익 등은 반공, 반미, 반체제(반미 우익)였다. 냉전 후에는 많은 우익 단체가 친한에서 반한으로 전환했지만, 행동하는 보수 중에는 일부 기존 우익 단체에 재일 한국인이 참여하고 있는 것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국가주의민족주의 입장에서 과거의 남하 정책이나 북방 영토 문제 등으로 러시아를, 독도 문제 등으로 한국북한을, 센카쿠 열도 문제 등으로 중국대만(중화민국)을 비판하는 입장도 있다.[42] 특히,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우익 단체들이 독도를 일본 고유 영토로 간주하고, 독도 영유권 주장을 통해 한국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한 극동 국제 군사 재판이나 GHQ에 의한 일본 점령 정책이나 야스쿠니 신사 문제 등을 국제법 위반의 내정 간섭으로 간주하여, 당시 연합국을 비판하는 입장이나, 서구의 신자유주의 등을 경제 침략이나 문화 침략으로 비판하는 입장도 있다.

더욱이 일본이나 동양의 문화 전통과 역사를 중시하는 보수주의나 민족주의 입장에서, 서구형 개인주의, 민주주의, 자유주의 등을 비판하고, 근대화와 남녀평등이나 사형 문제 등의 인권 문제, 포경 문제나 환경 보호 운동, 이들을 포함한 교육 문제 등에서 미국, 유럽 연합, 호주, 뉴질랜드 등의 서구 제국과, 그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며 국제 연합이나 각종 비정부 기구 등을 비판하는 입장도 있다.[42]

8. 각종 단체

일본의 우익 단체는 1868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본 제국 시대를 찬양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들은 '전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1868년부터 1945년까지 77년간 존재했던 현상에 국한된다. 도쿠가와 시대나 전국 시대 등 1868년 이전의 시대는 찬양 대상에서 제외된다.

일본 우익 단체의 활동 방식은 다양하며, 주요 분류는 다음과 같다.


  • 제국 시대부터 있던 전통 우익
  • "오른쪽으로부터의 혁명"을 주장하며 반핵방 조약 투쟁에 집결, 신좌익 운동에 대한 대항 의식으로 생겨난 학생 중심인 청년 민족파 우익
  • 우익 운동 붕괴기에 매스컴에 등장한 신우익
  • 폭력단을 모체로 하는 임협계 우익(일명 ‘행동파 우익’)


이들 외에도 통일교 일본지부 계열의 국제승공연합과 같은 단체도 있지만, 이들은 행동 우익과는 별개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아 우익 단체로 분류하지 않기도 한다.

일본 우익 단체를 지원하는 기업으로는 미쓰비시 그룹, 이스즈, 마루베니, 일본담배주식회사, SMK 등이 있다.

우익 단체의 가두 선전 차량


많은 우익 단체들은 확성기를 장착하고 단체 이름과 선전 구호를 표시한 개조된 차량(街宣車|가이센샤일본어)을 사용한다. 이 차량들은 주로 검은색, 카키색, 올리브색 등으로 도색되어 있으며, 황실 문장, 일본 국기, 욱일기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4] 이들은 주로 중국, 한국, 러시아 대사관, 조총련 시설, 언론 기관 등에서 시위를 벌이며, 확성기를 통해 선전 방송을 한다.

이들 단체의 정치적 신념은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国体|국체일본어-호지(국가의 기본적인 특성 유지), 반공주의마르크스주의 비판에 대한 적대, 일본교원노동조합에 대한 적대라는 세 가지 공통된 철학을 가지고 있다.[5][6] 또한, 센카쿠(댜오위다오) 열도, 쿠릴 열도,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등으로 러시아, 중국, 북한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5][6]

대부분의 우익 단체들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의 역할을 정당화하고, 일본의 전쟁 범죄를 부인하며, 전후 역사 교육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극동 국제 군사 재판 등의 합법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된 전쟁 범죄자들을 昭和殉難者|쇼와 순국자일본어로 간주한다. 이들은 역사 교과서 검열 또는 역사 수정주의를 지지한다.[7]

여러 우익 단체를 ஒருங்கிணை는 연락 기관으로는 전일본 애국자 단체 회의(전애회의)가 있다. 전애회의는 국체호지와 반공 협동 전선을 2대 강령으로 내걸고 일본의 재군비, 천황제 옹호를 주장했으며, 일본교원노조에 대한 탄압으로 악명이 높다.

소속 계통과 단체에 따라 활동 내용과 방침은 다르다. 다양한 우익 및 보수주의자 단체를 묶는 연락 기관으로, 전일본애국자단체회의(전애회의), 대일본애국단체연합·시국대책협의회(시대협), 청년사상연구회(청사회), 자민당 의원도 많이 소속된 보수주의자 단체인 일본회의 등이 있지만, 반드시 사상 통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일본회의에는 행동 우익은 전혀 가맹하지 않고 있으며, 반대로 전애회의나 시대협에는 의원, 평론가, 실업가, 종교가 같은 인물은 참가하지 않고 교류 등이 있을 뿐이다.

일부 단체는 폭력단과 연관된 우익 단체(인협 우익, 우익 표방 폭력단)인 경우도 있으며, 사상 면에서의 정치 운동에는 적극적이지 않고, 기업 공갈이나 정치인 유명인 공갈 등을 목적으로 하는 소위 위장 우익 단체일 가능성도 있다.[19][37][20][21][22]

8. 1. 전통 우익

일본 우익 사상의 기원은 에도 시대 후기 국학자들이 표방한 국수주의황국사관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우익 단체의 기원은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54년 도쿠가와 이에사다가 쇄국 정책을 철폐하면서 존왕(攘夷) 사상을 가진 정치가들이 세력을 키웠고, 이들의 활동이 유신 이후 정권에 편입되면서 소멸되는 듯 했다.[23]

그러나 정한론 사건을 계기로 규슈야마구치현에서 일어난 사족 반란과, 사이고 다카모리를 존경하며 국학·주자양명학의 실천을 원했던 이들이 1881년 도야마 미쓰루 등을 중심으로 결성한 겐요샤가 일본 관념 우익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1880년대 자유민권 운동이 격화되면서, 메이지 정부는 이를 공권력으로 단속했지만, 낭만주의 집단은 정치적 사상에 기반한 단체를 결성하여 민권 운동을 지원했다.[18] 1910년대 사회주의 운동이 고조되자, 정계와 재계의 요청으로 낭만주의 계열 정치 단체가 노동 운동 탄압에 앞장섰다. 이들은 '''다이닛폰 국수회''' 등으로 대표되는 "'''관제 우익'''"으로 불렸으며, 신주, 경찰청 장관까지 임원으로 참여할 정도로 비합법적인 분위기는 없었다.[18] 이들은 메이지의 원훈들과 결합하여 황국 사상을 바탕으로 국가를 옹호하는 우익 단체가 되었다.[18]

근대화 과정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평등을 목표로 하는 두 흐름이 나타났는데, 하나는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평등 추구였고, 다른 하나는 천황 아래 만민 평등 사상이었다. 후자는 청일 전쟁러일 전쟁을 배경으로 대아시아주의 조류를 타면서 중화민국 성립과 이씨 조선 근대화에 관여했다. 이들은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국가주의적 아시아 근대화를 목표로 했기에 사회주의와도 접근했으며, 반구미색이 강한 "정통 우익"으로 불렸다.

재계의 요청으로 노동 운동을 탄압하는 "낭만 우익"(폭력단 계열 우익)과 이상을 내걸고 범아시아적 활동을 하는 "정통 우익"은 전시 우익 단체의 두 큰 계통이었다. 이들은 이해가 일치하는 재계와 군부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다.[24]

세계 공황 시대에는 일부 국학 계통의 보수 사상가나 좌익 전향자들 사이에서 국가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혁신 우익''' 그룹이 나타났다.[25] 이들은 육군황도파에 가까운 민족주의적 관념 우익과 통제파에 가까운 혁신 우익 간 대립을 일으켰으며, 5·15 사건, 2·26 사건 등에 영향을 주었다.[25]

우익은 대동아 전쟁(태평양 전쟁) 직전 체결된 독일-이탈리아-일본 삼국 군사 동맹을 지지했지만, 이탈리아파시즘이나 독일나치즘에 대해서는 동방회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외래 사상으로 간주하여 무관심하거나 배척했다.[26]

현재 전통 우익 단체로는 대동숙(大東塾)과 대일본생산당 등이 있다.

8. 2. 청년 민족파 우익

"오른쪽으로부터의 혁명(右からの革命일본어)"을 주장하며 반핵방 조약 투쟁에 집결, 신좌익 운동에 대한 대항 의식으로 생겨난 학생 중심의 청년 민족파 우익이 있다.

1960년대에는 학생 운동 등 격렬한 좌익계 운동이 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이에 대항하는 형태로 민족계 우익의 대규모 조직화가 이루어졌다. 우익 학생 등이 결성한 민족파 학생 조직에는 일본 학생 회의, 일본 학생 동맹(2007년 해산), 전국 학생 자치체 연락 협의회 등이 있었다. 이들은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반미를 포함한 "YP 체제 타도"를 내걸고 큰 영향력을 가졌다. 그러나 대항 세력이었던 좌익 학생 운동이 쇠퇴하고 조직이 분열되면서, 민족파 학생 조직의 운동도 쇠퇴하였다. 1990년대 이후에는 두드러진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8. 3. 신우익

1960년대와 1970년대 학생 운동에서 기원한 '신우익'(新右翼) 또는 '민족파'(民族派)는 기존의 '우익' 단체의 가정을 거부하고 반미적이며 광범위하게 반서방적인 노선을 채택했다.[23] 이들은 미시마 유키오를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신우익의 대표적인 단체로는 일수회(一水会)와 통일자원봉사전선이 있다.[23]

일수회는 1972년에 결성되었으며, 당시 전통적인 우익의 친미적 수사를 거부하는 "신 우익" 운동의 일환이었다.[23] 일본 정부를 미국의 꼭두각시 국가로 간주하고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며, 현재의 UN 구조가 제2차 세계 대전의 유물이라는 점을 들어 새로운 국제 연합을 설립할 것을 주장한다.[23] 이라크 전쟁교토 의정서와 같은 문제에 대해 부시 행정부를 격렬하게 비판했다.[23]

8. 4. 임협계(행동파) 우익

폭력단을 모체로 하는 임협(任俠)계 우익은 '행동파 우익'으로도 불린다. 이들은 주로 야쿠자를 기반으로 하며, 다른 우익 단체들과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주요 임협계 우익 단체는 다음과 같다:

단체명관련 야쿠자 조직
대행사이나가와회계
일본 청년사스미요시회 스미요시 일가 고바야시회계
사정 회의야마구치구미 고도카이계
대일본 주광회스미요시회계
국수 청년 동맹
교화 청년대이나가와회 쿄와 일가계
송혼 학원마쓰바회계
일본 황민당야마구치구미계(구일화회 백신조계)
국목 청년대국목회계



이들 단체 중 일부는 다음과 같은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 일본 황민당: 1987년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 취임 과정에서 흑색선전을 벌여 정치 스캔들을 야기했다.[9] 2004년에는 오사카 주재 중국 영사관 정문을 버스로 들이받는 사건을 일으켰다.[10]
  • 일본 청년사: 1978년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에 등대와 신사를 건설했다.[8] 2000년에는 회원들이 잡지사를 공격하는 사건이 있었다.
  • 대행사: 도쿄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이나가와회와 연계되어 있다.
  • 송혼숙: 도쿄에 본부를 둔 조직으로, 교쿠토카이와 연계되어 있으며 창립자는 한국인이다.


임협계 우익 단체들은 사상적인 정치 운동보다는 기업 공갈이나 정치인, 유명인 공갈 등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으며, '위장 우익' 단체로 의심받기도 한다.[19][37][20][21][22]

8. 5. 대중정당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대중정당'에 대한 내용이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따라서 '대중정당' 섹션에는 내용을 작성할 수 없다.

8. 6. 기타


  • '''세이키주쿠(正氣塾)''' - 1981년에 설립된 나가사키현에 본부를 둔 단체이다. 히로히토 천황이 전쟁 책임이 있다고 말한 나가사키 시장을 1991년에 총으로 저격하여 중상을 입히는 등 다수의 폭력 사건을 일으켰다.
  • '''유코쿠 도시카이(憂国道志会)''' - 극우 민족주의 정당이다. 1963년 고노 이치로의 집에 방화했다. 1977년에는 게이단렌 사무실에 일본도로 무장한 회원들이 침입하여 8명의 인질을 잡고 농성했다. 지도자 노무라 슈스케는 한국 민족주의자 안중근을 존경했다. 제3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1983년)에서 이시하라 신타로의 비서가 야당 후보 아라이 쇼케이(박경재)를 "한국인"이라고 비방하자 이 단체는 이시하라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 '''재일 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재특회)''' - 일본 민족주의 및 반이민 단체로, 재일 한국인에 대한 특혜 폐지를 주장한다. 반한 감정, 반러 감정, 반중 감정을 가지고 있다.[15] 일본 경찰청은 이 단체의 "극우 민족주의적이고 외국인 혐오" 이념 때문에 공공 질서에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15]
  • '''일본제일당''' - 재특회의 초대 회장 사쿠라이 마코토가 창당한 알트 라이트 정당이다.

참조

[1] 웹사이트 More than 1,000 rally against discrimination, hate speech in Tokyo - AJW by the Asahi Shimbun http://ajw.asahi.com[...] 2014-10-13
[2] 웹사이트 National Police Agency expresses concerns about xenophobic groups - AJW by the Asahi Shimbun http://ajw.asahi.com[...] 2014-10-13
[3] 웹사이트 INTERVIEW: Foreigners' rights activist says new secrecy law may encourage xenophobia - AJW by the Asahi Shimbun http://ajw.asahi.com[...] 2014-10-13
[4] 서적 Dissenting Japan: A History of Japanese Radicalism and Counterculture from 1945 to Fukushima Oxford University Press 2016
[5] 뉴스 Japan Rightists Fan Fury Over North Korea Abductions (Published 2006) https://www.nytimes.[...] 2020-11-19
[6] 간행물 Still at Odds: The Japanese Abduction Issue and North Korea's Circumvention https://www.redalyc.[...] 2013
[7] Webarchive Forgiving the culprits: Japanese historical revisionism in a post-cold war context http://www.gmu.edu/a[...] 2009-08-05
[8] 웹사이트 Japanese nationalists visit disputed Tiaoyutai island - Taipei Times http://www.taipeitim[...] 2018-10-26
[9] 웹사이트 Kakuei Tanaka - a political biography of modern Japan http://www.rcrinc.co[...] 2018-10-26
[10] 웹사이트 People's Daily Online — China indignant at Japanese right-wing attack on Consulate General in Osaka http://english.peopl[...] 2018-10-26
[11] 뉴스 Japanese Minister Sanae Takaichi in Neo-Nazi Photo Controversy http://www.ibtimes.c[...] 2014-09-08
[12] 뉴스 Right side up https://www.economis[...] 2015-06-06
[13] 웹사이트 日本会議がめざすもの « 日本会議 http://www.nipponkai[...] 2016-07-20
[14] 뉴스 The Dangerous Impact of the Far-Right in Japan https://nyunews.com/[...] 2019-04-15
[15] 뉴스 Police in Japan place anti-Zainichi Korean extremist group Zaitokukai on watchlist https://www.theguard[...] 2014-12-04
[16] 문서 猪野健治『日本の右翼』
[17] 문서 "右翼―3.第二次世界大戦前の日本における右翼運動とファシズム" http://100.yahoo.co.[...] 小学館 日本大百科全書
[18] 웹사이트 『板垣精神 : 明治維新百五十年・板垣退助先生薨去百回忌記念』 https://ci.nii.ac.jp[...] 一般社団法人 板垣退助先生顕彰会 2019-08-30
[19] 문서 2006年(平成18年)10月19日東京・外国特派員協会での講演にて https://megalodon.jp[...] 비디오뉴스・ドッドコム
[20] 문서 "今こそ日本的変格を目指す右翼民族派が立つ時" 전국아사히방송 1990
[21] 서적 パッチギ!的 世界は映画で変えられる 岩波書店 2007
[22] 서적 噂の真相25年戦記 集英社新書 2005
[23] 문서 明治初年は[[戊辰戦争]]が決着しておらず、また尊攘派や脱藩浮浪問題は解決しているとはいえず、明治新政府による[[天皇]]行幸(東行)すら新政府中枢による政治の壟断として反論が噴出する状態であった。「久留米と肥後大に関係之様子に而、浮浪をこぶし則今攘夷之議を申立、迂活之ものは大に為其惑わされ候ものも不少、随面御発輦之事を疑惑を立、宮堂上等方へ迫り建言いたし、宮堂上方もまた為其に駆使せられ頻に奔走、一時其混乱不用意」(木戸孝允書簡、明治2年3月10日)。尊王派の不穏な動きには一部の公家や脱藩浮浪が結びつく傾向があった。『東京「遷都」の政治過程』佐々木克(京都大学人文學報 1990年) http://repository.ku[...]
[24] 서적 敗因を衝く―軍閥専横の実相 中公新書
[25] 문서 "右翼"의 항목 平凡社 2007
[26] 문서 "右翼運動"의 항목 吉川弘文館 1980
[27] PDFlink 「再軍備ナショナリズムの出現と展望」 http://www.aisf.or.j[...] 東北大学大学院法学研究科 渥美財団21世紀東アジア研究フォーラム
[28] 문서 平凡社 1988
[29] 문서 [[野村秋介]]、[[見沢知廉]]、[[四宮正貴]]、[[鈴木邦男]]、[[木村三浩]]など
[30] 문서 安田浩一氏「在特会は崖っぷち状態まで追い詰められている」 https://www.news-pos[...] NEWSポストセブン
[31] 문서 국립인권위원회, 헤이트 스피치 금지 권고 일본에 실행 요구 http://www.asahi.com[...] 아사히 신문 디지털
[32] 문서 법무성: 헤이트 스피치에 초점을 맞춘 계발 활동 헤이트 스피치, 용서하지 않는다. https://www.moj.go.j[...] 법무성
[33] 문서 도쿄에서도 '김정은을 용서하지마' http://news.onekorea[...] 통일일보
[34] 문서 "우익사상범죄사건의 종합적 연구" 미스즈서방 1988
[35] 신문기사 우익 학생 조사에 문부성 착수 문제의 핵심은 애국학생연맹 0100285948 1932-03-20
[36] 서적 戦後の右翼勢力 勁草書房 1983-01-01
[37] 웹사이트 Korean activist braces for `storm of fascism' https://web.archive.[...]
[38] 뉴스 日本を知るには裏社会を知る必要がある https://megalodon.jp[...] ビデオニュース・ドッドコム 2006-10-27
[39] 간행물 今こそ日本的変格を目指す右翼民族派が立つ時 全国朝日放送 1990-01-01
[40] 웹사이트 私が参加する集会は大丈夫か―右翼暴力から表現の自由をどう守るか http://www.lcv.ne.jp[...]
[41] 문서 北朝鮮による日本人拉致問題
[42] 뉴스 歴史教科書問題でベトナム共産党の機関紙「ニャンザン」に日本にとって批判的とされるような記述があった 198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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