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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적인 형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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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개방적인 형제교회는 1840년대 존 넬슨 다비의 비판으로 시작된 기독교 운동으로, 각 지역 교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며 중앙 집중식 통제 구조를 거부한다. 세대주의, 환난 전 휴거, 전천년설을 특징으로 하며, 전 세계적으로 선교 활동을 펼쳤다. 영국, 유럽, 인도, 북미, 오세아니아 등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하며, '복음 예배당', '복음 채플'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정치 참여에 대한 입장은 다양하며, 존 보드킨 아담스 등 여러 주목할 만한 인물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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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적인 형제교회
교단 정보
이름개방적인 형제교회 (기독교 형제회)
주요 분류개신교
성향플리머스 형제회
정치 체제회중교회 정치
창립자조지 뮐러
창립일1848년
창립 장소브리스틀, 잉글랜드
분리플리머스 형제회 (분열의 책임은 개방적인 형제회와 배타적인 형제회 간에 논쟁 중)
분리된 교파니디드 트루스 형제회, 1892년
활동 지역약 130개국
교회 수25,000개
신자 수약 2백만 명

2. 역사

개방적인 형제교회는 폐쇄적인 형제교회와 역사적으로 같은 뿌리를 공유하지만, 1848년의 분열로 인해 나뉘게 되었다.[105] '개방적인(Open)'이라는 명칭은 스스로를 폐쇄적인 형제교회와 구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북미 지역에서는 '플리머스 형제교회'로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다른 지역의 많은 개방적 형제교회는 폐쇄적 형제교회와의 연관성 때문에 이 명칭 사용을 꺼린다. 한국 내에서 일반적으로 플리머스 형제교회로 알려진 교회들은 대부분 개방적인 형제교회와 관련이 있다.[106]

분열의 직접적인 계기는 예언과 교회 조직에 관한 견해 차이로 인해 존 넬슨 다비가 당시 형제교회 중 가장 규모가 컸던 플리머스 모임의 장로 벤자민 윌스 뉴턴을 비판하면서 시작되었다. 다비는 뉴턴에게 신학적 오류를 인정하도록 압박했고, 나아가 브리스톨의 베데스다 예배당에서 뉴턴의 오류와는 무관한 두 사람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조지 뮬러와 헨리 크레이크까지 공격했다. 이 사건으로 베데스다 교회는 다비로부터 분리되었고, 여러 모임들이 독립적인 노선을 걷게 되었다. 토트넘 모임의 다음 성명은 개방적인 형제교회의 입장을 잘 보여준다.

> 우리는 개인적인 자격으로 각 성도를 환영합니다. 그가 특정 모임이나 기독교 교파의 구성원이기 때문도, 특정 지도자를 따르기 때문도 아니라, 충분하다고 판단되는 간증에 근거하여 환영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신자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데 동참하는 것을 분명히 거부합니다. 단, 그들의 개인적인 신앙과 행위에 적용되는 사유가 있는 경우는 예외입니다.[5][108]

이후 폐쇄적인 다비파는 점차 내향적이고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보인 반면,[6][109] 개방적인 형제교회는 앤소니 노리스 그로브스의 인도 선교와 브리스톨에서 고아원을 운영한 조지 뮬러를 중심으로 믿음 선교를 강조하며 성장을 이어갔다. 1853년에는 첫 선교 저널인 "선교 보고서(The Missionary Reporter)"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1859년 영국에 불어닥친 제3차 대각성 운동은 많은 교회에 영향을 미쳤고, 조셉 덴햄 스미스와 같은 새로운 지도자들이 등장했다. 얼스터는 강력한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으며, 스코틀랜드잉글랜드 북부에서도 교세가 확장되었다. 런던에서는 토마스 존 바나도가 고아 구제 사역을 시작했다. 시카고 출신의 D.L. 무디는 조지 뮬러와 찰스 스퍼전을 만나러 영국에 왔다가 더블린 교회에서 만난 젊은 설교자 헨리 무어하우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무어하우스가 무디의 교회에서 전한 설교는 무디의 사역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반스테플에서는 로버트 클리버 채프먼의 사역을 통해 대형 교회가 성장했으며, 그는 19세기 말까지 사역을 이어갔다. 채프먼은 1838년 스페인 전도 여행을 시작으로 1869년 이후에는 바르셀로나마드리드, 그리고 포르투갈에서도 복음을 전했다. 이탈리아에서는 구이치아르디 백작을 중심으로 자생적인 발전이 이루어졌고, 이는 영국의 T. P. 로세티와 연결되었으나, 가톨릭 교회의 박해를 받기도 했다.

이 운동은 영어를 사용하는 이민자들을 따라 호주, 뉴질랜드, 미국, 캐나다 등지로 확산되었다. 1959년 기록에 따르면 미국에는 약 600개, 캐나다에는 약 300개의 교회가 있었다.[7][110] 개방적인 형제교회는 각 교회의 독립성을 중시하면서도, 비슷한 교리와 실천을 공유하는 교회들 간에 높은 수준의 소통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106] 그 스펙트럼은 다른 교단을 떠난 사람들만 받아들이는 엄격한 모임부터 모든 사람을 환대하는 매우 관대한 모임까지 다양하다.[107]

2. 1. 증가하는 다양성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개방형 형제교회 내에서는, 특히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 보수적인 성향의 집회인 ''복음관''(Gospel Hall)과 상대적으로 더 진보적인 ''성서 예배당''(Bible Chapel) 사이에 뚜렷한 구분이 생겨났다. 물론 두 흐름 간에 중복되는 부분도 존재했다. 성서 예배당은 예배 시 반주 음악을 사용하거나 다른 교파의 기독교인들과 협력하는 등 새로운 시도에 대해 좀 더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 로버트 맥클러킨(Robert McClurkin)은 양쪽 모두에서 환영받는 인물이었지만, 복음관 측이 1892년 개방형 형제교회에서 분리된 니디드 트루스 형제교회(Needed Truth Brethren)의 엄격한 노선에 영향을 받아 경직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북미 이외의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명확했다.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형제교회 운동은 더욱 다양화되었고, 특히 제3세계 국가에서는 현지 문화에 적응하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어, 파푸아뉴기니의 일부 교회에서는 성찬식(많은 형제교회에서는 "주의 만찬"으로 부름)에서 전통적인 포도주 대신 코코넛 과육과 우유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중앙 조직을 꺼리는 형제교회의 일반적인 경향과 달리, 참여를 원하는 교회들을 위해 리더십과 지침을 제공하는 중앙위원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에티오피아의 형제교회는 집단적 의사결정을 위한 리더십 회의를 운영했다. 독일에서는 많은 형제교회들이 비데네스트(Wiedenest)에 참여했는데, 이는 형제교회와 침례교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신학교, 컨퍼런스 센터, 청소년 운동 및 선교 단체이다. 이슬람교도가 다수인 파키스탄의 일부 교회에서는 모스크처럼 남성과 여성이 예배 공간의 다른 편에 앉고, 기도할 때 무릎을 꿇는 방식을 채택하기도 했다.[8]

이러한 국제적인 교류와 협력의 필요성이 증대됨에 따라, 1993년 싱가포르에서는 여러 국가의 형제교회 연합체들이 모여 국제 형제교회 선교 컨퍼런스(IBCM, International Brethren Conferences on Mission)를 설립하였다.[9]

3. 통계

2020년에 발표된 IBCM 네트워크 인구 조사에 따르면, 155개국에 40,000개의 교회와 2,700,000명의 신도가 있다고 주장했다.[10]

4. 특징

개방적인 형제교회는 독립교회의 형태를 취하며, '개방적'(Open영어)이라는 표현은 스스로를 폐쇄적 형제교회(Exclusive Brethren영어)와 구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역사적으로 뿌리는 같지만, 1848년 존 넬슨 다비와 벤자민 윌스 뉴튼 사이의 예언 및 교회 조직에 관한 견해 차이로 인한 분열로 인해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105][108] 폐쇄적인 형제교회는 세상으로부터의 분리라는 엄격한 교리 해석으로 알려져 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내향적이고 신비주의적으로 변해갔다.[109] 반면 개방적인 형제교회는 안토니 노리스 그로브스, 조지 뮐러 등과 함께 믿음의 선교를 강조하며 성장했다. 북미 지역에서는 플리머스 형제교회로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다른 많은 지역에서는 폐쇄적 형제교회와의 연관성 때문에 이 명칭 사용을 꺼린다. 한국 내에서 일반적으로 플리머스 형제교회로 알려진 교회들은 대부분 개방적인 형제교회와 관련이 있다.

개방적인 형제교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각 지역 교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이다. 교회의 운영이나 신앙 고백을 지시하는 중앙 계층 구조가 없다. 각 교회(모임 또는 회중)는 교리적인 면에서 다른 교회로부터 독립적이지만, 비슷한 교리와 실천을 공유하는 교회들 사이에는 높은 수준의 소통과 협력 관계가 유지된다.[106] 이러한 자율성으로 인해 개방적인 형제교회는 다른 교단을 떠난 사람들만 받아들이는 엄격한 모임부터, 별다른 질문 없이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는 매우 관대한 모임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다.[107]

또한, 이들은 역사적으로 개신교의 여러 교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신조나 신앙 고백을 공식적으로 채택하는 것을 꺼려왔다. 이는 해당 신조들에 담긴 핵심 교리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교리와 실천의 문제에 있어 성경을 유일한 최종 권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일부 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근본주의 교리를 강조하는 신앙 고백을 채택하기도 했다. 다른 비국교회들처럼, 형제교회는 세례성찬이라는 두 가지 성례만을 준수한다.

교회의 명칭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그 성향을 짐작하기도 한다. Gospel Hall|복음 회관영어이나 Gospel Chapel|복음 예배당영어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교회는 종종 "보수적"으로 여겨지며, 형제교회 고유의 특징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Community Church|커뮤니티 교회영어나 Evangelical Church|복음주의 교회영어, 또는 1950년대 이후 등장한 Bible Chapel|성경 예배당영어 등의 명칭을 사용하는 교회는 "진보적"으로 묘사되며, 형제교회만의 독특성을 덜 강조하거나 때로는 전혀 강조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보수적", "진보적" 구분은 주로 교리보다는 예배나 운영 방식 등 스타일의 차이를 의미하며, 대부분의 교회는 복음주의 신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형제교회는 그들의 모임과 실천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교리적 신념에서 다른 기독교 집단과 구별되는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11]

4. 1. 신학

개방적인 형제교회는 기독교의 역사적 정통 교리를 따르며, 종교개혁 정신에 따라 성경을 신앙과 실천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권위로 삼는다.[111] 신약학자 F.F. 브루스에 따르면, 이들은 복음주의적 교리를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세주로 믿고 선포한다.[111]

신학적으로는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적 성경 해석 경향을 보이며, 이는 특히 종말론 이해에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환난 전 휴거와 전천년설을 따르는 편이지만,[12] 이는 모든 구성원의 통일된 견해는 아니다. 초기 개방적 형제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다비와 같은 폐쇄적인 형제교회의 견해와는 다른 입장이 존재했으며,[113][114] 특히 조지 뮐러, 로버트 채프먼, B.W.뉴턴, F.F.브루스 등 주요 인물들은 다비식의 환난 전 휴거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115] 다비가 교회의 회복 불가능성을 주장하며 분리주의적 태도를 취한 것과 달리, 개방적인 형제교회 지도자들은 지상 교회의 부흥을 기대하며 다른 기독교 교파와의 연합과 협력을 추구했다.[114]

다른 보수적 복음주의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신자의 영원한 안전을 믿으며, 신자는 은혜 아래 있고 율법에 종속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12] 성례는 세례와 성찬 두 가지만 인정한다. 각 지역 교회는 자율적으로 운영되며 중앙 계층 구조나 통일된 신앙 고백서는 없지만, 대부분 복음주의근본주의 신학의 핵심 교리를 공유한다.

4. 1. 1. 신자의 침례

개방적인 형제교회는 세례가 구원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으며, 사람이 구세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한 후에만 제대로 수행된다고 가르친다.[12] 침례는 구원 시 이미 일어난 개인의 죄에 대한 내면적 정화 또는 용서를 상징하는 외적 표현이며, 동시에 그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와 공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이다.

많은 집회에서는 개인이 침례를 받으면 해당 집회의 구성원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다른 집회에서는 개인이 침례를 받은 후에도 가능한 한 많은 집회에 충실히 참석하여 특정 집회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집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최근에 침례를 받은 개인이 교제를 요청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며, 관련된 집회 구성원이 개인에게 연락하여 집회 교제에 대한 의도를 확인할 수도 있다. 개인의 집회 교제 수용 의사가 밝혀지면, 그 소망은 모인 집회에 전달되어 모든 구성원이 지원자에 대한 우려 사항을 표현할 기회를 갖게 된다. 지원자가 집회 구성원의 승인을 받으면, 지원자가 발표 후 첫 번째 일요일(주의 날)에 완전한 집회 교제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발표가 모인 집회에 전달된다.

개방적인 형제교회는 완전 침례를 강조한다. 이 방식은 그리스도의 죽음, 매장 및 부활과 유사한 이미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선호된다. 또한 침례는 세례자 요한에 의한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에서 비롯된 관행으로 여겨 성경에 근거한다고 본다. 침례는 완전 침례가 가능한 모든 수역에서 행해질 수 있지만, 많은 형제교회 집회 홀에는 세례소가 마련되어 있다. 세례식은 축하 행사이며 종종 전도 집회와 연결된다.

Cregagh Street Gospel Hall, 벨파스트

4. 1. 2. 시대주의

개방적인 형제교회는 일반적으로 신학적으로 시대주의, 환난 전 휴거, 전천년설을 따른다(다양한 변형이 존재하지만).[12] 또한 다른 보수적인 복음주의 기독교 단체들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진정한 기독교인의 "영원한 안전"을 가르치며, 각 신자는 "은혜"를 따르며 "율법"에 종속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12]

대부분의 형제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세대주의라고 부르는 것을 사도들이 가르친 내용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라고 여겨왔다. 그들 중 다수는 형제교회 개척자인 존 넬슨 다비가 현대에 와서 사도들의 이 "잊혀진" 가르침을 "재발견"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믿는다. D. L. 무디와 간접적으로는 C. I. 스코필드와 같이 다비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은 수많은 영향력 있는 비 형제교회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있었으며, 그는 자신의 스코필드 참고 성경을 통해 이러한 관점을 대중화했다. 본질적으로 형제교회가 가르치는 세대주의는 "율법"과 "은혜", 이스라엘과 교회를 명확하게 구분한다.

세대주의적 관점에서, 진정한 신약 시대의 모든 신자로 구성된 교회는 주님이 땅이 아닌 '''구름 속에서''' 재림하실 때 휴거될 것이며, 이때 이전에 죽었던 신약 시대 신자들의 영혼과 함께할 것이라고 본다. 이 시점에서 살아있는 신자들의 몸은 변화될 것이고 이전에 죽었던 신약 시대 신자들의 몸은 부활하여 그들의 영과 연합할 것이다. 이어서 7년 간의 대환난이 이어질 것이며, 이 기간 동안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다시 관심을 돌리실 것이고, 그들은 결국 주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메시아로 인정하게 되어 그분을 '''땅으로''' 다시 오시게 하여 멸망으로부터 구원받게 할 것이다. 이 기간 이후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통치하는 천년 왕국이 이어진다.

그러나 형제운동 내에서 세대주의에 대한 이해와 수용은 일치하지 않았다. 초기 개방적 형제단의 지도자들인 그로브스, 조지 뮐러, 채프먼도 세대주의적 이해를 받아들였으나, 교회에 대한 이해에서는 다비와 완전히 달랐다.[113] 개방적인 형제교회의 리더들은 "파멸된 교회가 회복될 수 없다"는 다비의 주장과는 달리 지상교회의 부흥을 기대하였고, 다비와 같은 분리주의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114]

특히 종말론, 구체적으로 7년 대환난 이전 휴거에 대해서는 폐쇄적인 형제교회(다비 등)와 개방적인 형제교회 내에서도 견해가 갈렸다. 조지 뮐러, 채프먼, B.W.뉴턴, F.F.브루스와 같이 개방적인 형제교회의 주요 인물들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환난 전 휴거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로이드존스는 이러한 견해 차이가 초기부터 존재했음을 지적했다.[115]

역사적으로나 현재에도 대부분의 형제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세대주의적 입장을 견지해 왔지만, 세대주의를 거부한 형제교회도 항상 있어왔다. 조지 뮬러와 G. H. 랭(G. H. Lang)은 이 교리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은 저명한 형제교회 지도자들 중 하나였으며, 비세대주의는 항상 영국 내 개방적인 형제교회의 상당한 소수가 따랐다. 그러나 훨씬 더 최근까지 세대주의는 영국 밖의 형제교회 사이에서 훨씬 더 보편적으로 지켜졌다.

4. 1. 3. 영원한 안전

개방적인 형제교회는 일반적으로 신학적으로 시대주의, 환난 전 휴거, 전천년설을 따른다(다양한 변형이 존재하지만). 또한 다른 보수적인 복음주의 기독교 단체들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진정한 기독교인의 "영원한 안전"을 가르치며, 각 신자는 "은혜"를 따르며 "율법"에 종속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12]

대부분의 형제교회 개척자들, 예를 들어 안토니 노리스 그로브스, 존 넬슨 다비, 조지 뮐러는 칼뱅주의를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형제교회 운동의 여러 지역, 특히 북미 지역에서 강한 알미니우스주의 경향이 나타났다.[13] 오늘날, 형제교회 내에서는 두 신학 체계를 모두 옹호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비록 알미니우스주의를 주로 따르는 사람들조차도 형제교회가 영원한 안전이라고 부르는 칼뱅주의의 다섯 번째 교리, 즉 진실한 기독교인이 구원을 잃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교리를 일반적으로 지지한다는 점이 다르다.[14] 오늘날에도 이 교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형제교회 설교자나 공식 형제교회 간행물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4. 1. 4. 성령의 은사

개방적인 형제교회의 초기 선구자들 중 일부는 초기에 기적, 치유, 방언과 같은 성령의 은사에 관심을 가졌다. 이는 초기 형제교회의 많은 이들이 알고 지내던 에드워드 어빙의 가톨릭 사도 교회에서 행해지던 것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중단주의 입장을 채택했으며, 이는 거의 2세기 동안 형제교회 내에서 널리 퍼진 견해로 자리 잡았다. 중단주의는 표적 은사가 초기 교회에만 주어졌고, 사도의 진정성을 입증하기 위한 특정 목적을 가졌으며, 일반적으로 1세기 말경 요한을 마지막으로 사도들이 사망하면서 중단되었다고 주장한다.

최근까지 이 교리는 형제교회 설교자들과 관련 기관(출판물, 성경 대학, 선교 단체)에서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견해였다. 그러나 몇몇 저명한 인물들이 이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G. H. 랭은 1920년대에 이 문제를 제기했으며,[15] 형제교회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설교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해리 아이언사이드는 1938년 오순절 운동을 비판하면서도,[16] 기적의 시대가 중단되었다고 믿지는 않는다고 밝히며 원칙적으로 중단주의를 거부했다.[17]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형제교회 설교자들은 중단주의 입장을 고수했다. 형제교회 신학자 어니스트 테이텀은 1976년 저서 ''Let the tide come in!''을 통해 과거 중단주의를 지지했던 것이 잘못이었음을 밝혔으나,[18][19] 당시 대부분의 형제교회는 은사주의 운동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전 세계적으로 일부 형제교회 모임들이 은사주의 운동을 수용하기 시작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는 형제교회 내에서 매우 소수에 불과했다.

오늘날 '표적 은사'에 대한 형제교회의 태도는 과거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2000년대 초반, 네덜란드 신학자 빌렘 오우웨넬은 형제교회를 떠나지 않으면서 공개적으로 은사주의 운동을 지지한 최초의 저명한 형제교회 지도자 중 한 명이 되었다.[20] 뉴질랜드의 개방적인 형제교회 모임 상당수와 호주, 캐나다, 영국 등지의 교회들도 지난 15년간 은사주의 운동을 수용했으며, 더 많은 교회들이 이에 대해 신중하게 개방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 다른 모임들은 중단주의에 대한 입장을 공식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전통적으로 신앙 고백서 작성을 꺼렸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모임들은 최근 표적 은사의 지속성을 부인하는 내용을 담은 신앙 고백서를 채택하기도 했다. 인도에서도 일부 형제교회 모임들이 은사주의 운동을 수용했지만, 케랄라의 '''형제 신학 대학''' 학장인 존슨 필립과 같은 가장 저명한 인도 형제교회 설교자들은 여전히 반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21][22]

4. 2. 예배와 상징의 단순성

형제교회는 전통적으로 예배 장소 안팎에 십자가를 두는 것을 피했다.[11] 이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기 위해 장식이 없는 단순한 공간이 더 효과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23][24][25] 따라서 신자들이 집 안에 십자가를 두거나 목걸이로 착용하는 경우도 드물며, 예배당에 스테인드글라스 창과 같은 다른 상징물을 사용하는 것도 전통적으로 권장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20년 동안 일부 "진보적인" 성향의 교회에서는 이러한 전통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예배는 일반적으로 정해진 전례를 따르지 않으며, 특히 성공회나 루터교와 같은 소위 "고교회"의 전례력 사용은 거의 보편적으로 피한다.[11] 또한, 성경에 명확한 명령이 없다는 이유로 전통적으로 많은 형제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부활절을 기념하지 않았다. 이러한 입장을 유지하는 교회도 여전히 있지만, 오늘날에는 많은 형제교회가 이들 축일을 기념하며, 이를 지역 사회 전도의 기회로 삼기도 한다.

4. 3. 명명 규칙

과거에는 형제교회가 '교회'라는 단어를 이름의 일부로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개방적인 형제교회는 일반적으로 예배 장소를 "복음관"(Gospel Hall영어) 또는 "복음 예배당"(Gospel Chapel영어)이라고 불렀다. 이 중 '복음 예배당'이 '복음관'보다 형제교회 신자가 아닌 다른 기독교인과의 협력에 더 개방적인 경향을 보였다.[11]

1950년대부터는 북미와 오세아니아 지역을 중심으로 "성경 예배당"(Bible Chapel영어)이라는 명칭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성경 예배당은 예배에 음악 반주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종종 더 개방적이었으며, 복음주의적 신념을 공유하는 다른 기독교인들과 기꺼이 협력하는 경향이 있었다.[11] 등장 당시에는 다른 교회들에 비해 상당히 진보적인 것으로 여겨졌으나, 오늘날에는 일부는 여전히 진보적으로 평가받는 반면, 다른 일부는 현재 기준에서 다소 보수적인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최근 몇 년 동안에는, 특히 더 진보적인 성향의 교회들을 중심으로 이전에 '교회'라는 단어를 기피하던 경향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인다. 이들 교회는 현재 "커뮤니티 교회"(Community Church영어)(특히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또는 "복음주의 교회"(Evangelical Church영어)(영국 등)로 불리기도 한다.[11] "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예외 없이 형제교회 내에서 진보적인 그룹에 속한다.

이러한 명칭들은 비공식적으로 교회의 성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복음관"이나 "복음 회관"(Gospel Hall영어)은 종종 "보수적"으로 묘사되며, 형제교회의 독특한 교리와 특징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커뮤니티 교회"나 "복음주의 교회"는 "진보적"으로 묘사되며, 형제교회의 고유성에 대한 강조를 덜 두는 경향이 있다(때로는 전혀 강조하지 않기도 한다). 다만 이러한 '보수적', '진보적' 구분은 주로 교리보다는 예배나 운영 방식의 스타일에 대한 차이를 의미하며, 대부분의 교회는 복음주의 신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명칭을 정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일부 형제교회는 "에베네셀 복음관", "헤브론 예배당", "실로 성경 예배당", "베델 집회"와 같이 성경에 나오는 이름을 사용한다. 때로는 교회가 위치한 거리 이름을 따서 명명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더비의 커존 스트리트 복음관(Curzon Street Gospel Hall영어)이 있다. 지역 이름을 따서 밸리나가릭 복음관(Ballynagarrick Gospel Hall영어)처럼 명명하는 경우도 있다. 형제교회 중 진보적인 교회들은 "라이프 교회, 마누레와"(Life Church, Manurewa영어)나 "스트리트 시티 교회, 웰링턴"(Street City Church, Wellington영어)과 같은 현대적인 이름을 사용하기도 한다.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는 '형제교회'라는 명칭을 지역 교회의 공식 이름 일부로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많은 지역 교회가 '''에베네셀 형제교회'''(Ebenezer Brethren Assembly영어)와 같이 그 이름을 사용하는 주목할 만한 예외가 있다.[26]

4. 4. 교제, 회원이 아닌

개방적인 형제교회는 전통적으로 특정 지역 신자들의 모임에 누군가가 "가입"하는 개념과 그러한 구성원 명부 유지를 거부해 왔다.[27] 형제교회는 인간에 의해 조직된 것이 아닌, 모든 진실한 신자로 구성되어 천국의 "생명책"에 기록된 하나의 "교회"라는 기독교 교리를 강조한다.[28]

하지만 20세기 말부터 미국의 많은 모임에서는 현실적인 이유로 정기 참석자 명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주로 세속적인 행정 절차를 따르거나 내부 기록 관리를 위한 것이었다. 개방적인 형제교회는 비신자가 모임에 참석하는 것 자체로 직접적인 영적 유익을 얻는 것은 아니라고 보지만, 그들이 모임을 통해 신앙을 갖게 되기를 기대한다. 비신자는 성찬 예식, 즉 "빵을 떼는 예식"에는 참여할 수 없다. 신자들의 경우, 정기적으로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신약성경의 가르침, 즉 함께 모이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행위로 간주된다.[29]

형제교회 자체는 '구성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지만, 외부 관찰자들은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편의상 '구성원'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다른 지역 모임에서 온 방문자가 자신이 교제에 참여하고 있으며 징계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자신이 속한 "본 교회"에서 발행한 "추천서"를 가져오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현재는 이러한 관행이 줄어드는 추세이다.

4. 5. 지도력

개방적인 형제교회의 지도력 구조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전통적인 성직자 개념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이는 퀘이커교의 관점과 유사한 면이 있다. 많은 개신교 교단들이 신약성경의 모든 신자의 제사장직 교리를 다양한 정도로 따른다고 주장하지만,[30] 형제교회는 이 원칙을 가장 폭넓게 적용하여 모든 기독교인이 하나님에 의해 섬기도록 부름받았으며, 따라서 모두가 사역자라고 본다. 이러한 이해에 따라, 형제교회에는 일반적으로 안수를 받거나 급여를 받는 목사와 같은 구별된 성직자 계층이 존재하지 않는다.

4. 5. 1. 목사와 순회 설교자

형제교회는 성직자 개념을 거부하고 모든 신자의 제사장직 교리를 중요하게 여긴다.[30] 이는 모든 기독교인이 하나님에 의해 섬기도록 임명되었으며, 따라서 모두가 사역자라는 믿음에 기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형제교회는 목사나 이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고용된 사람이 없다.

교회는 어떤 교제 안에서든 지역 장로들에 의해 인도된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형제교회에는 "담임 목사"라는 직책이 없는데, 이는 그러한 직책이 신약성경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영어 성경 번역본에서 '목사들(pastors)'이라는 단어는 에베소서 4장 11절에 단 한 번 등장하며, 이는 코이네 그리스어 poimenas|포이메나스grc를 번역한 것이다. 따라서 형제교회 모임에서 설교, 가르침, 또는 인도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식적인 안수 절차는 없다.

안수받은 사역 대신, 순회 설교자는 종종 출신 교회의 축복과 지지를 보여주는 설교 및/또는 가르침 사역에 대한 "추천"을 받는다. 대부분의 영어권 국가에서 이러한 설교자들은 전통적으로 "전임 사역자", "수고하는 형제", 또는 "주님의 일"로 불린다. 인도에서는 일반적으로 복음 전도자(Evangelist)로 불리며, 이름 앞에 Evg.로 표시되는 경우가 많다. 특정 교회는 여러 명의 전임 사역자를 둘 수도 있고, 전혀 없을 수도 있다.

지난 20년 동안, 호주와 뉴질랜드의 많은 교회들, 그리고 다른 지역의 일부 교회들이 전통을 깨고 전임 사역자들을 "목사(Pastor)"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성직자 안수로 간주되지 않으며 특별한 영적 권위의 이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교회에서 목사는 여러 장로 중 한 명일 뿐이며, 다른 장로들과의 차이점은 전임으로 봉사하기 위해 급여를 받는다는 것뿐이다. 교회에 따라, 그는 다른 장로들보다 설교에 더 많은 책임을 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4. 5. 2. 장로

개방적인 형제교회는 다수의 장로제를 원칙으로 삼는다(사도행전 14:23; 15:6, 23; 20:17; 빌립보서 1:1). 장로는 디모데전서 3:1–7과 디도서 1:6–9에 명시된 성경적 자격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이러한 다수 장로제는 일부 침례교회, 특히 개혁 침례교회나 그리스도의 교회 등 다른 교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형태이다.

교회 장로는 성령에 의해 임명되며(사도행전 20:28), 교회 공동체(집회)와 기존 장로들에 의해 그 자격을 인정받는 것으로 이해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신약성경 시대 초기 교회가 설립될 당시에는 사도나 그가 직접 임명한 대리인(예: 디모데 또는 디도)이 장로를 임명하는 책임이 있었으며, 이는 권위가 위로부터 오며 사람에게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기독교적 개념과 일치한다고 보기도 한다.

장로, 집사, 또는 감독이 되는 사람은 해당 교회 공동체 내 다른 구성원들에게 인정받고, 기존 장로들로부터 지도자 직무를 수행하도록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31] 장로는 디모데전서 3:2에 따라 가르칠 능력이 있어야 하며, 교회 공동체가 그의 삶에서 장로 직분을 맡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인정할 때 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형제교회의 장로들은 다른 기독교 단체에서 통상적으로 성직자가 수행하는 많은 의무를 담당한다. 여기에는 세례를 받기로 결정한 사람들을 상담하고, 세례를 집례하며, 병자를 방문하고, 전반적인 영적 상담을 제공하는 일 등이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설교는 장로나 정기적으로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 중에서 장로들이 그 삶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인정한 사람들이 담당한다.

4. 5. 3. 집사

집사의 주요 역할은 장로들이 교인들의 필요를 돕는 것이다. 집사들은 일반적으로 뛰어난 기독교적 경건함을 보여준 교인들 중에서 선택된다(디모데전서 3:8–12 참조). 그러나 많은 모임에서 집사의 공식적인 명단은 없으며, 봉사 활동은 특정 과업에 기꺼이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할 수 있다.

형제교회는 일반적으로 사도 바울의 서신 가르침을 통해 어떤 교제 안에서도 모든 신자들이 가르침과 설교와 같은 공개적인 사역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한다.[32]

4. 6. 주간 "기념" 모임

구 형제교회 예배당, 버제스 힐


형제교회의 특징적인 관습 중 하나는 "떡을 떼는 예식" 또는 "주의 만찬"이라고 불리는 별도의 주간 성만찬 모임이다.[11] 각 모임의 구체적인 방식은 교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가진다.

  • 시간: "기념 모임"은 보통 매주 일요일 아침에 열리지만, 일부 교회는 저녁에 열기도 한다.[33]
  • 장소: 가구를 옮길 수 있는 모임 장소에서는 성만찬의 상징물(빵과 포도주 또는 포도 주스)을 담은 테이블을 방 중앙에 놓기도 한다. 의자는 테이블을 중심으로 배치될 수 있으나, 정해진 표준 방식은 아니다.
  • 진행: 모임에는 정해진 순서나 계획이 없으며, 즉흥적으로 진행된다. 남자들이 (성령의 인도에 따라) 일어나 성경을 읽거나 인용하고, 기도하며, 찬송가를 요청하거나 그리스도 중심적인 생각을 나눈다.
  • 찬송: 보수적인 성향의 교회들 중 다수는 "기념 모임" 중에 악기 반주 없이 찬송가를 부른다. 대신 "찬송가를 시작하는" 남성이 있어 곡, 박자, 음정, 조성을 정하고 첫 소절을 부르면 나머지 회중이 따라 부른다.[34] 일부 교회에서는 다른 모임에서는 악기 반주를 사용하기도 한다. 리틀 플록 찬송가(Little Flock hymnbook)에서 부른 [https://soundcloud.com/lumbee-1/worship 무반주 찬송 예시]가 있다. 반면, "성경 예배당"으로 불리는 교회들은 "복음 회관"보다 악기 반주를 사용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이 예배 시간에는 리틀 플록 찬송가(Little Flock hymnbook)나 [https://emmausinternational.com/products/hymns-of-worship-and-remembrance 찬양과 기념 찬송가](애칭 "The Black Book")와 같은 특정 찬송가집을 주로 사용한다.
  • 빵: 모임 시작이나 끝 무렵, 빵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묘사하며 기도한다. 이 기도는 지정된 사람 또는 자원하는 남성에 의해 드려진다.[33][35][36] 일반적으로 누룩을 넣은 빵 한 덩어리를 그리스도의 몸의 상징으로 사용하지만, 많은 교회는 무교병이나 마쪼를 사용하기도 한다. 빵에 감사 기도를 드린 후, 빵을 떼어 조용히 앉아 있는 회중에게 돌린다. 회중은 작은 조각을 떼어 먹거나, 미리 떼어진 작은 무교병 조각을 받아 먹는다. 이때 예배자는 보통 주 예수 그리스도를 조용히 기도하며 예배한다.
  • 포도주: 일반적인 기독교 관습처럼, 포도주는 전통적으로 형제교회 기념 모임에서 그리스도의 피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일부 교회에서는 포도 주스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특히 과거 알코올 문제가 있었던 신자가 참여하는 경우 그렇다. 피의 상징은 빵이 회중에게 돌아간 후, 기도 후에 제공된다. 각자 잔을 받아 마시며 다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조용히 기도하며 예배한다.
  • 헌금: 대부분의 교회는 일요일 설교 시간에 헌금을 하지 않지만, 일부는 떡을 떼는 모임에서 헌금을 한다. 교제하는 사람만 헌금할 것으로 기대된다. 많은 교회는 십일조(수입의 10%를 드리는 것)를 구약 성경의 율법으로 보고 기독교인에게는 구속력이 없다고 보지만, 일부 교회는 십일조를 권장하기도 한다. 헌금 액수는 일반적으로 개인과 주님 사이의 문제로 여겨져 각자에게 맡겨진다.[37] 모든 모임에서 헌금을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참석한 비신자들이 헌금을 통해 영적인 유익을 얻을 수 있다고 오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일부 교회는 떡을 떼는 모임에서조차 헌금 주머니를 돌리지 않고, 모임 장소 뒤편에 헌금함을 두어 재정 요청처럼 보이는 것을 피하기도 한다. 많은 교회는 떡을 떼는 동안 "뒷자리"나 "손님 열"을 운영하여, 헌금 주머니나 성만찬 상징물이 교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한다. 헌금은 빵과 포도주가 전달된 후에 건물 유지, 사역자 사례, 궁핍한 이웃 돕기 등을 위해 자발적으로 모금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헌금함은 문 앞에 놓여 돌리지 않기도 한다.
  • 참여: 일부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낯선 사람이 바로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으므로, 여행하는 신자들은 소속 교회에서 발급한 "소개서"를 가져와 다른 교회에서 성만찬 참여 허락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편지는 보통 "기념 모임" 참석자들에게 읽혀 방문객을 소개하고 환영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교회들은 소위 "폐쇄된 테이블 정책"을 운영하며, 소개서 없이 방문한 낯선 사람은 모임을 관찰만 할 수 있다. 반면, 더 진보적인 교회들 중 다수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모임의 장로나 인도자의 간단한 질문에 답하는 모든 사람을 환영한다. 일부 교회에서는 방문객이 예배실에 들어가기 전에 주님의 만찬의 성경적 근거와 목적을 설명하는 안내지를 나누어주어, 그들이 목격할 내용과 원할 경우 참여할 수 있음을 설명하기도 한다.

4. 7. 다른 주일 모임

추도 예배 후에는 다른 주일 모임이 하나 또는 그 이상 있을 수 있다. 주의 만찬의 목적이 주로 예배이며,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기억하는 것이라면, 다른 모임은 성경 교육, 전도, 복음 설교(젊은이와 노인을 포함)를 포함한다. 주일학교와 성경 공부반이 일반적이다. 사역 및 복음 모임에서, 강단이나 단상을 향해 줄지어 앉은 회중은 찬송가와 코러스를 부르고, 성경 봉독과 "설교"하도록 부름받은 형제 중 한 명이 설교하는 설교를 듣는다. 성경 교육은 설교가 전달되는 사역 모임 형태로 또는 남성들이 성경 구절을 토론하는 "성경 봉독" 또는 "성경 공부"로 제공될 수 있다.[11]

4. 8. 남성과 여성의 분리된 역할

개방적인 형제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관계나 신자로서 하나님 앞에서의 개인적인 위치에 있어서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이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누구나 동등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11]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교회 모임에서는 교회 내 역할과 관련하여 "남성 우두머리" 원칙을 적용한다. 이는 고린도전서 11장 3절("모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을 비롯한 여러 성경 구절에 근거한다. 이 원칙에 따라, 공적인 지도력과 가르치는 역할은 주로 남성에게 맡겨진다. 이는 디모데전서 2장 11-12절("여자는 조용히 배우며 온전히 복종해야 합니다.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침묵해야 합니다.")과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등의 구절에 따른 해석이다.[11]

이러한 해석에 따라 전통적으로 형제교회에서는 남성이 공적인 발언과 지도자 역할을 담당하고, 여성은 주로 지원하고 "침묵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예를 들어, '빵을 뗌' 모임(성찬식)에서 여성이 개인적으로 발언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허용되지 않았으며, 찬송가를 함께 부르는 것 외에는 모임 중에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드물었다. 행정적인 결정을 위한 논의 과정에서도 주로 남성들이 참여했다.[11]

물론 역사적으로 예외도 있었다. 1860년대와 1870년대 영국에서는 일부 여성들이 형제교회 모임에서 설교한 사례가 있었으나, 이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이었다. 1930년대 영국 남부에서는 G. H. 랭의 영향을 받은 일부 모임에서 여성들이 예배 중 발언(설교 제외)하는 것을 허용했고, 1950년대 인도에서는 바크트 싱과 관련된 모임들에서 비슷한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특정 지역을 넘어서 확산되지는 못했다.[11]

최근 20여 년 동안 영국, 호주, 뉴질랜드의 많은 형제교회와 북미의 일부 교회에서는 여성의 역할에 대한 전통적인 규칙을 수정하거나 폐지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반면, 일부 교회에서는 오히려 전통적인 가르침을 더욱 강조하며 기존의 관행을 명문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기도 한다.[11] 여성의 머리 덮개 착용과 관련된 내용은 #머리 덮개 섹션에서 더 자세히 다룬다.

4. 8. 1. 머리 덮개

전통적인 개방형 형제교회 예배에서 기독교 머리 수건 착용은 고린도전서 11장 5-6절에 근거한다.

> 그러나 머리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여자는 자기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깎은 것과 같으니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으려면 머리도 깎을 것이요, 머리 깎는 것이나 머리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우면 가릴지니라.

개방형 형제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구절을 기도하는 동안 기독교 여성이 머리를 가려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 왔으며, 이는 기독교 역사 전반에 걸쳐 나타났던 관행이기도 하다.[39] 이러한 해석에 따라, 형제교회 모임에서는 여성들이 머리 수건을 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일부 교회에서는 머리 수건을 준비하지 못한 여성을 위해 빌려주기도 한다. 머리 수건은 보통 베일, 만틸라, , 탐, 베레모 등 다양한 형태를 띤다.[40]

전통적인 형제교회는 고린도전서 11장 3-4절 해석을 통해 머리 수건의 의미를 설명한다.

> 3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모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 모든 남자가 기도하거나 예언할 때 머리에 무엇을 쓰고 있으면 자기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이 구절에 따르면,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므로 남자는 자신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존중하기 위해 머리를 가리지 않아야 한다. 반면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므로, 여자는 자신의 머리를 가려야 한다. 이는 교회 안에서 남자가 아닌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함을 상징하며, 여성의 머리 수건 착용과 교회 내 침묵은 이러한 머리됨의 원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된다.[38]

하지만 현대에 들어 이러한 관행은 과거만큼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는다. 전 세계 많은 형제교회에서는 머리 수건 착용 여부나 여성의 역할 및 책임 범위를 개인의 신앙 양심에 맡기는 추세이다. 반면, 사회 변화와 관계없이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려는 교회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들은 전통적인 머리됨 교리를 따르지 않는 것을 기독교 신앙의 전반적인 배교나 도덕적 해이의 증거로 여기며, 공동체 내 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4. 9. 기타 관행

집회는 '예배'라는 단어 대신 '모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일부 사람들에게 '예배'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요금을 받고 제공되는 서비스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집회는 또한 다음과 같은 다양한 주간 모임을 가질 수 있다:

  • 설교 및 가르침 모임
  • 선교 보고 모임
  • 성경 공부 모임
  • 기도 모임


어린이들을 위한 주일학교와 청소년들을 위한 청소년 그룹 활동도 자주 이루어진다. 또한 여성 모임, 남성 모임 등이 있으며, 일부 집회에서는 지역 사회에 대한 전도 활동의 한 형태로 특별한 예술 및 공예 그룹을 운영하기도 한다.

4. 10. 음악

주간 성찬례 모임 동안 찬송가는 전통적으로 무반주( a cappella|아 카펠라영어 )로 불렸으며, 악기는 사용되지 않았다.[34] 특히 "복음회관(Gospel Halls)"과 같이 보수적인 성향의 교회에서는 여전히 이러한 전통을 따라, 악기 없이 사람이 직접 찬송가를 인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34] 이때 Little Flock 찬송가나 [https://emmausinternational.com/products/hymns-of-worship-and-remembrance 찬양과 기념 찬송가]와 같은 특정 찬송가집이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많은 교회, 특히 진보적인 성향의 교회에서 악기 반주를 사용한다. 일부 교회는 성찬례 외 다른 모임에서 피아노나 전자 오르간으로 찬송가 반주를 하기도 하며, 교회에 따라서는 드럼, 기타 등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거나 전통적인 찬송가와 현대적인 찬양과 경배 음악을 함께 부르기도 한다.

교회가 사용하는 명칭은 예배 음악 스타일에 대한 대략적인 경향을 보여준다.

  • 복음회관 (Gospel Halls): 일반적으로 예배에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 복음 채플 (Gospel Chapels): 일부 교회에서 악기를 사용한다.
  • 성경 채플 (Bible Chapels): 대부분 악기를 사용하며, 노래 그룹, 합창단, 음악가로 구성된 "찬양팀" 등을 운영하기도 한다.
  • 커뮤니티 교회 (Community Churches) / 복음주의 교회 (Evangelical Churches): 드럼, 기타 등 다양한 악기를 활용하여 현대 기독교 음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5. 전 세계의 형제교회

오늘날 전 세계 형제교회의 정확한 교인 수를 파악하는 것은 여러 요인으로 인해 매우 어렵다. 추정치는 100만 명[41]에서부터 25,000개 교회에 250만 명[42]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제시된다. 이러한 통계 수집의 어려움은 공식적인 중앙 조직이 없고, 각 교회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어떤 교회나 네트워크가 형제교회 운동에 속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43] 예를 들어, 인도의 어셈블리 여호와 샴마와 같이 형제교회와 유사하고 종종 운동의 일부로 간주되지만 역사적으로는 구별되는 네트워크도 존재한다.[43]

스스로를 형제교회라고 여기는 대부분의 모임은 비슷한 정체성을 가진 다른 모임들을 "인정"하는 경향이 있지만, 어떤 모임과 네트워크가 개방적인 형제교회 운동에 속하는지에 대한 보편적으로 합의된 기준은 없다.[43]

국제 형제교회 선교 컨퍼런스(IBCM) 네트워크는 2020년 인구 조사를 통해 155개국에 40,000개의 교회와 2,700,000명의 신도가 있다고 발표했다.[10] 개방적인 형제교회는 전 세계 70개국 이상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가장 많은 교인 수를 보유한 국가는 인도로, 약 2,200개의 모임에 45만 명(성인 및 어린이, 어셈블리 여호와 샴마 제외)이 속해 있다. 앙골라, 잠비아, 차드, 영국, 미국에도 각각 1,000개가 넘는 모임이 있으며, 브라질에는 800개, 독일에는 600개 이상의 모임이 있다.[44] 피에프콘은 1970년 북미의 개방형 형제교회 신도 수를 1,050개 모임에서 6만 명으로 추산한 바 있다.

5. 1. 선교 활동

개방적인 형제교회는 선교 사업에 대한 헌신으로 유명하다. 형제교회 운동 초창기에 앤서니 노리스 그로브스는 1829년 바그다드로 가서 확립된 선교 단체의 도움 없이 복음과 성경을 전파하면서 최초의 "믿음 선교" 선교사 중 한 명이 되었다.[45] 많은 후대 형제교회 선교사들도 같은 입장을 취했다.

여기에는 영국 브리스톨의 고아원 설립자인 조지 뮬러, 중앙 아프리카로 간 스코틀랜드 선교사 댄 크로포드, 1925년부터 1969년까지 알제리 라파예트로 파견된 찰스 마시 선교사,[46] 그리고 에콰도르로 파견되었다가 와오라니 부족에게 살해된 짐 엘리엇, 에드 매컬리, 피트 플레밍과 같은 유명한 선교 개척자들이 포함된다.

대다수의 개방적인 형제교회 선교사들은 선교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선교사들에게 도움과 조언을 제공하는 여러 지원 단체들이 있다. 영국에서는 Echoes of Service 잡지,[47] Medical Missionary News 및 Lord's Work Trust[48]가 대표적인 단체이다.

오늘날, 선교사들은 전 세계에서 발견되며, 특히 잠비아와 남아프리카, 브라질, 인도, 서유럽 및 동남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다. 형제교회 선교사들은 여전히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영국, 북미, 오스트레일리아에서 1,223명[49]), 칠레, 도미니카 공화국, 페루,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에도 교회가 있다.[50]

5. 2. 영국

1950년대 이후 영국 내 다른 복음주의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형제교회 역시 전반적인 교세 감소 추세를 보였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보수적인 성향의 교회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반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는 교회들은 오히려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일부 형제교회들과 다른 초교파 교회 또는 가정교회 형태의 회중들 사이의 경계가 점차 불분명해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영국에는 1,000개가 넘는 형제교회 모임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44]

5. 3. 유럽

브리티시 아일스 외 유럽 대륙에서도 개방적인 형제교회는 확산되었다. 특히 페로 제도에서는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여, 주로 페로 제도 복음주의 루터교회에 속하는 인구 중 가장 큰 비국교도 집단을 이루고 있다.[52]

스위스에서는 존 넬슨 다비(J.N. Darby)가 1835년에서 1840년 사이에 방문하여 감리교의 청결주의를 비판하면서 형제교회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1838년 베베이, 1840년 로잔에서 기존 교회로부터 분리된 모임들이 설립되었다.[53] 다비는 이후 프랑스로 이주하여 몽펠리에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이 시기에 신약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로잔에 도착한 후 5년 동안 그의 원칙은 프랑스령 스위스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베른바젤에서도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었다.[54] 20세기 후반 프랑스에서는 일부 형제교회 집회들이 중앙위원회를 설립하여 리더십과 지침을 제공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했는데, 이는 중앙 조직을 일반적으로 거부하는 형제교회의 전통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

독일에서는 1843년 조지 뮬러(George Müller)가 슈투트가르트침례교회를 방문하면서 형제교회 모임이 시작되었다. 뮬러는 브리스톨에서 그를 방문했던 한 여성의 초청으로 독일에 갔는데, 일부 장로들이 그를 거부하자 같은 날 저녁 그의 개인 숙소에서 17명이 모여 첫 '빵을 떼는' 모임을 가졌다. 이후 1854년 다비가 독일을 방문하면서 엘버펠트와 뒤셀도르프 등지에도 모임이 설립되었다.[55] 20세기 후반에는 독일의 많은 형제교회 집회가 형제교회와 침례교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신학교, 컨퍼런스 센터, 청소년 운동 및 선교 조직인 비데네스트(Wiedenest)에 합류하는 경향을 보였다. 오늘날 독일에는 600개 이상의 형제교회 모임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44]

스페인에서는 로버트 클리버 채프먼이 1838년 전도 여행을 시작했으며, 1869년 이후에는 바르셀로나마드리드, 그리고 포르투갈에서도 사역이 확장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구이치아르디 백작을 중심으로 자생적인 발전이 이루어졌고, 이는 영국에서 온 T. P. 로세티(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사촌)와 연결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개신교 "형제교회"는 가톨릭 교회로부터 박해와 투옥을 겪기도 했다.

5. 4. 인도

개방적인 형제교회 운동은 초기부터 영국 제도를 넘어 확장되었는데, 앤서니 노리스 그로브스의 인도 선교 활동이 대표적이다. 그는 1829년 바그다드를 거쳐 인도에서 활동하며, 특히 케랄라 지역을 중심으로 인도 형제교회가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퍼레이션 월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인도 전역에는 1,929개의 형제교회 집회와 135,000명의 성인 신자(어린이 포함 시 약 45만 명)가 있었으며[56], 이후 내부 자료에서는 집회 수가 2,200개, 성인 신자 수는 200,000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개방형 형제교회 신자가 가장 많은 곳이 인도임을 보여준다(어셈블리 여호와 샴마 제외 약 45만 명).[44]

박트 싱 전도사가 설립한 예호바 샴마 집회 운동은 형제교회 원칙을 인도 문화에 맞게 적용한 독자적인 흐름이다. 일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형제교회 구성원들은 이 운동을 독립적으로 발전한 개방형 형제교회의 일부로 본다. 오퍼레이션 월드는 예호바 샴마 집회가 910개, 관련 신자는 310,000명(성인 95,000명)이라고 보고했다.[56]

5. 4. 1. 케랄라 형제교회

인도의 케랄라 지역 형제교회는 플리머스 형제교회 운동의 창시자 중 한 명이자 조지 뮐러의 처남인 앤서니 노리스 그로브스를 통해 시작되었다.[42] 그로브스는 1829년 선교사가 되기 위해 영국을 떠나 처음에는 바그다드로 갔다가 이후 인도에서 활동했다. 안드라프라데시와 타밀나두의 고다바리 델타 지역에서 치과의사로서 시작한 그의 활동은 처음에는 더디게 진행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케랄라를 중심으로 인도 형제교회가 번성하는 중요한 기반을 마련했다. 오퍼레이션 월드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인도 전역에는 1,929개의 형제교회 집회가 있었고 성인 신자는 135,000명(어린이 포함 시 449,550명)에 달했다.[56] 이후 형제교회 내부 자료에 따르면 집회 수는 2,200개로 증가했으며, 교제를 나누는 성인 신자 수도 200,000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케랄라는 이러한 인도 형제교회 운동의 핵심적인 중심지 중 하나로 여겨진다.

5. 5. 북미

19세기 중반 이후, 순회 설교자들을 통해 개방적인 형제교회가 북아메리카 지역으로 전파되었다.[58] 특히 존 넬슨 다비는 1870년대에 여러 차례 미국캐나다를 방문했으며, 그의 예언에 대한 강조는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58]

형제교회 운동은 북미 전역으로 확산되었는데, 주요 배경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58]

  • 활발한 복음 전파 활동
  • 영국영연방 국가로부터의 이민자 유입
  • 성서주의에 대한 강조
  • 성찬의 중심적 역할
  •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자의 평등을 중시하는 신념
  • 교파 중심의 위계적인 통치 구조 회피


이러한 특징들은 다른 배경을 가진 기독교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다.[58] 1959년에는 미국에 약 600개, 캐나다에는 300개의 교회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었다.[7]

오늘날 미국의 개방적인 형제교회 회중은 외형적으로 다른 복음주의 교파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종종 지역 사회의 다른 기독교인들과 협력하여 활동한다.[58]

그러나 한때 활발했던 일부 형제교회 모임들은 최근 몇 년간 신도 수가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강력한 교파적 정체성이나 소속감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여성의 머리 수건 착용이나 주 예배에서 여성의 설교 및 가르침을 제한하는 등의 일부 전통적인 관행이 현대 사회의 문화적 흐름과 맞지 않는 측면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58]

북미 지역 개방적인 형제교회 모임이 사용하는 건물 이름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공식 명칭에 '채플'(Chapel)이라는 단어를 포함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성경에 나오는 지명이나 원리, 혹은 지역의 지리적 특징과 결합되어 사용된다 (예: 베다니 채플, 센트럴 가스펠 채플, 파크 로드 바이블 채플, 리버뷰 빌리버스 채플).[58] 다른 많은 기독교 단체들과 달리, 바울이나 누가와 같은 기독교 성인의 이름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58] 반면, 폐쇄적 형제교회는 자신들의 모임에 특정 '이름'을 붙이는 것을 피하며, 건물을 '모임 장소'(Meeting Room) 또는 '가스펠 홀'(Gospel Hall)이라고 부르고 '채플'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58]

5. 6. 오세아니아

뉴질랜드 파머스턴노스의 복음 회관


개방적인 형제교회 운동은 영어권 이민자들과 함께 호주와 뉴질랜드로 확산되었다. 복음주의 간행물인 Operation World에 따르면 호주에는 320개의 형제 교회 회중이 있으며[59], 뉴질랜드에는 202개가 있다.[60] 소속된 신자 수는 호주가 46,176명, 뉴질랜드가 16,164명이다. 다만 일부 형제 교회 내부 자료에서는 뉴질랜드의 신자 수가 실제로는 38,000명(성인 및 어린이 포함)에 달하며 이는 뉴질랜드 전체 인구의 약 1%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61]

호주와 뉴질랜드의 형제 교회는 지난 수십 년간 상당한 다양성을 보이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복음 채플"은 보수적인 경향을, "복음 회관"은 그보다 더 보수적인 성향을 띤다. "성경 채플"은 보수적인 회중과 진보적인 회중을 모두 포함하며, "공동체 교회"는 종종 진보적인 경향을 보인다. 이들 공동체 교회는 영국의 형제 교회 관련 "복음주의 교회"와 유사한 경우가 많으며, 급여를 받는 목회자, 예배 중 여성의 발언 허용(때로는 지도력까지 포함), 은사 운동에 대한 개방성 등 다양한 특징을 보인다. "성경 교회" 역시 많은 진보적 경향을 수용하는 편이지만, 일반적으로 지도력은 남성에게만 국한하고 은사 운동과는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다.

특히 뉴질랜드의 경우, 1964년에는 전국의 형제 교회 지도자들이 만장일치로 은사 운동을 거부했으나[62], 오늘날에는 그 태도가 훨씬 다양해졌다. 현재 뉴질랜드 형제 교회 내에서 은사 운동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거나 비판 없이 수용하는 입장은 모두 소수에 속한다. 또한, 뉴질랜드의 많은 "공동체 교회"와 "성경 교회"가 개방적인 형제 교회 운동의 일부로 활동하지만, Mairangi Bay Community Church나 Auckland Bible Church처럼 그렇지 않은 교회들도 존재한다. 이는 형제 교회 회중과 다른 독립적인 복음주의 교회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형제 교회 내에서도 이를 긍정적으로 보거나 우려하는 시각이 공존한다.

호주의 형제 교회 운동 역시 다양화되었으며, 전반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의 회중은 성장하고 보수적인 회중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개방적인 형제 교회는 배타적 형제교회의 강경 분파인 플리머스 형제 교회 기독교 교회와 관련된 부정적인 언론 보도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 배타적 형제교회 그룹은 일부 탈퇴자들로부터 사이비 종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와 개방적인 형제 교회가 대중에게 혼동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호주의 개방적인 형제 교회 네트워크는 오스트레일리아 기독교 공동체 교회로 명칭을 변경하는 등 브랜드 이미지 쇄신을 꾀하기도 했다.

6. 영향력

개방적인 형제교회는 비교적 적은 수에도 불구하고 복음주의 기독교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이 운동은 전 세계에 많은 회중을 두고 있다.

형제교회 선교사들을 위한 여러 지원 기관이 활동하고 있다. 미국의 ''Christian Missions in Many Lands''(CMML), 캐나다의 ''Missionary Service Committee''(MSC), 영국의 Echoes of Service 등이 대표적이다. 이 기관들은 지역 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에게 물류 및 물질적 지원을 제공하고 훈련을 돕는다.[47][48] 중국 내륙 선교회의 설립자인 허드슨 테일러는 감리교에서 성장하고 침례교회 회원이 되었지만, 개방적인 형제교회와 강한 유대 관계를 유지했다. 그가 실천한 "믿음 선교"의 개념은 초기 형제교회 선교사인 앤서니 노리스 그로브스의 사례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구성원이자 운동 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 중 한 명인 J.N. 다비는 신약 번역을 포함하여 50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는 특히 세대주의전-환난설 신학을 체계화하고 전파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이러한 신학은 형제교회 운동을 넘어 다른 복음주의 교회에도 널리 받아들여졌다. 20세기 초, 다비의 저술은 워치만 니와 이위증이 이끈 지방 교회 운동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현대 복음주의 운동의 여러 지도자들이 형제교회 배경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다음과 같다.


  • D. 스튜어트 브리스코: 영국 출신의 작가이자 국제 강사, 미국 위스콘신주 브룩필드에 위치한 엘름브룩 교회의 전 담임 목사.
  • 제프 터니클리프: 세계 복음주의 연맹(WEA)의 CEO.
  • F. F. 브루스: 저명한 영국 성서학자.
  • 에드 매컬리, 짐 엘리엇, 피터 플레밍: 1956년 에콰도르에서 와오라니족에게 순교한 선교사들.
  • 월터 라이펠드: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대학원의 신약학 교수.
  • 해리 A. 아이언사이드: 목사이자 "형제교회 운동의 역사적 개요" 저자.
  • 개리슨 케일러: 미국의 라디오 방송인으로, 플리머스 형제교회에서 성장했으며 그의 작품에서 "성결한 형제교회"로 언급하기도 한다.
  • 피터 메이든: 국제 선교단체 오퍼레이션 모빌리제이션(OM)의 전 지도자.[63]
  • 토니 에반스: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오크 클리프 성경 교회의 목사이자 라디오 설교가.[64]
  • 윌리엄 맥도널드: 대중적인 작가이자 성경 해설가.
  • G. D. 제임스: 아시아에서 광범위한 전도 사역으로 알려졌으며 아시아 복음주의 연맹(AEF)의 설립자.[65][66]

6. 1. 정치적 영향력

개방적인 형제교회 내 일부 보수적인 집회에서는 정치 참여를 꺼리는 경향이 있으며, 때로는 자유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교인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이러한 입장은 성경기독교인은 하늘의 시민이며 이 땅에서는 단지 나그네일 뿐이므로, 세속적인 활동에 지나치게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해석에 기반한다.[67]

일부에서는 개방적인 형제교회가 주로 상류층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빈곤층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19세기 노예 제도 폐지 운동이나 공장 아동의 복지 개선 노력 등은 윌리엄 윌버포스나 섀프츠버리 백작과 같이 형제교회 소속이 아닌 정치적으로 활동적인 기독교인들이 주도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많은 형제교회 신자들은 이러한 비판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조지 뮐러의 고아 돌봄 사역이나 앤서니 노리스 그로브스와 같은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활동을 예로 든다. 형제교회는 사람들의 물질적인 상태보다는 영적인 필요에 더 관심을 두며, 물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경우 세속적인 단체를 통하기보다는 직접적으로 제공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는 정치 참여에 대한 이러한 반감이 더 이상 널리 퍼져 있지 않다. 뉴질랜드에서는 최소 2명의 뉴질랜드 의회 의원이 개방적인 형제교회 출신이다. 카라메아 집회의 장로였던 오언 제닝스는 ACT 뉴질랜드 당 소속으로, 조 호크[68]뉴질랜드 노동당 소속으로 각각 1996년부터 2002년까지 의원으로 활동했다. 캐나다에서는 형제교회에 뿌리를 둔[69] 메가처치인 레이크사이드 교회의 교인 캠 거스리가 2014년 온타리오주 궬프의 시장으로 선출되었다.[71] 캐나다 자유당 소속의 프랭크 발레리오테 캐나다 의회 국회의원은 궬프 (연방 선거구) 지역구 의원으로, 자신이 로마 가톨릭 신자임을 밝히면서도 레이크사이드 교회에 출석한다.[72]

7. 주목할 만한 형제교인

'''참고:''' 이 목록은 생애의 적어도 일부 기간 동안 개방적인 형제교회 운동의 일원이었던 개인의 목록이다. 1848년 분열 이전 형제교회 운동에 참여한 개인의 목록은 플리머스 형제단 기사를 참조하라.


  • 존 보드킨 아담스(John Bodkin Adams)[73] — 일반 개업 의사이자 연쇄 살인 용의자 (한 건의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나 논란 속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 세실 J. 앨런(Cecil J. Allen) — 철도 전문가이자 기차 관련 작가.
  • 토머스 존 바나도(Thomas John Barnardo)[74][121] — 불우한 아이들을 돌보았으며, 바나도스(Barnardo's)를 설립했다.
  • 패트리샤 비어(Patricia Beer)[75][76][122][123] — 시인.
  • 스튜어트 브리스코(Stuart Briscoe) — 작가, 국제 강사, 엘름브룩 교회(Elmbrook Church)의 전임 사역자. 영국에서 플리머스 형제단 출신으로 성장했다.
  • 에드먼드 해머 브로드벤트(Edmund Hamer Broadbent) — 선교사. 1931년에 처음 출판되어 현재까지 출판되고 있는 그의 저서 ''순례자 교회''(The Pilgrim Church)는 형제단(및 관련) 운동에서 성경에 나타난 교회의 "패턴"에 대한 역사적 선례를 강조하는 교회의 대안적인 역사이다.
  • F. F. 브루스(F. F. Bruce) — 20세기 영국의 성서 학자이자 기독교 변증가.
  • 제프리 불(Geoffrey Bull) — 1950년대 초 티베트 선교사.
  • 윌슨 칼라일(Wilson Carlile)[77] — 교회 군대(Church Army)를 설립하고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의 명예 참사회원(prebendary)이었던 영국 복음주의자.
  • 로버트 클리버 채프먼(Robert Cleaver Chapman) — '사랑의 사도'.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변호사로 활동했으나, 하나님의 나라와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 헨리 크레이크(Henry Craik) — 1832년부터 브리스톨의 기드온 채플과 베데스다 채플에서 조지 뮐러와 함께 일했다.
  • 윌리엄 도비 경(Sir William Dobbie) — 제2차 보어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으며, 영국 군대에서 중장(lieutenant-general)까지 승진했다.
  • 짐 엘리엇(Jim Elliot)[78][124]에콰도르의 쿠라라이 강에서 와오다니족에게 살해된 선교사.
  • H. L. 엘리슨(H. L. Ellison) — 20세기 영국 선교사이자 학자, 교수, 작가.
  • 토니 에반스(Tony Evans) — 텍사스주 댈러스의 오크클리프 성경 교회의 라디오 성경 교사이자 목사.
  • 피터 플레밍(Peter Fleming) — 에콰도르의 쿠라라이 강에서 와오다니족에게 살해된 선교사.
  • 로저 T. 포스터(Roger T. Forster) — 익투스 기독교 교제(Ichthus Christian Fellowship)의 작가, 신학자, 리더.
  • 데이비드 윌러비 구딩(David Willoughby Gooding) — 퀸스 대학교 벨파스트의 구약 헬라어 명예 교수이자 기독교 작가.
  • 로버트 P. 고든(Robert P. Gordon) — 케임브리지 대학교 히브리어 교수.
  • 앤서니 노리스 그로브스(Anthony Norris Groves)[79]바그다드 및 인도 선교사.
  • 캠 구스리(Cam Guthrie)[70] — 캐나다 온타리오주 구엘프 시장.
  • 폴 하비(Paul Harvey) — ABC 라디오 네트워크의 보수적 미국 라디오 방송인.
  • 제인 호지스(Zane Hodges) — 달라스 신학대학교 신약 헬라어 교수이자 다수 텍스트에 따른 헬라어 신약의 공저자.
  • 존 엘리엇 하워드(John Eliot Howard) — 화학자이자 퀴놀로지스트(quinologist, 키니네 연구가).
  • 루크 하워드(Luke Howard) — 화학자이자 기상학자, '구름의 명명자'.
  • 조 호크(Joe Hawke)[68] — 뉴질랜드 국회 뉴질랜드 국회의원 (뉴질랜드 노동당, 1996–2002).
  • 해리 아이언사이드(Harry Ironside)[80][125] — 성경 교사이자 설교자, 작가. 시카고 무디 교회(Moody Church)의 목사 (1930-1948).
  • 고든 잭슨(Gordon Jackson)[81] — 스코틀랜드 정치인이자 국왕 변호사.
  • 오웬 제닝스(Owen Jennings) — 뉴질랜드 국회 뉴질랜드 국회의원 (ACT 뉴질랜드 당, 1996–2002).
  • 페렌츠 키스(Ferenc Kiss) — 해부학자, 대학교수, 헝가리 부다페스트 해부학 연구소 전 소장.
  • 케네스 키친(Kenneth Kitchen) — 리버풀 대학교 이집트학 교수.
  • 모리스 코클랭(Maurice Koechlin) — 구조 기술자. 에펠탑 건설의 수석 엔지니어.
  • J. 로렌스 컬프(J. Laurence Kulp)[82][83] — 20세기 지질학자. 젊은 지구 창조론의 비판가.
  • 존 레녹스(John Lennox) — 수학자, 생명윤리학자, 기독교 변증가, 옥스퍼드 대학교 명예 교수.
  • 조지 H. 랭(George H. Lang) (1874년 11월 20일 – 1958년 10월 20일) — 저명한 성경 교사, 다작의 작가, 성경 학자.
  • 에리히 사우어(Erich Sauer) (1898년 12월 31일 – 1959년 2월 25일) — 독일 성경 학자, 신학자, 독일 비데네스트(Wiedenest) 성경학교 교장.
  • 존 윌리엄 레잉 경(Sir John William Laing, 1879–1978)[84] — 건설 산업의 영국 기업가.
  • 윌리엄 맥도널드(William MacDonald)[85][126] — 기독교 작가이자 학자, 잘 알려진 신자의 성경 주석의 저자.
  • 피터 메이든(Peter Maiden) — 오퍼레이션 모빌라이제이션(Operation Mobilisation)의 국제 명예 이사, 케즈윅 사역(Keswick Ministries)의 전임 사역자.
  • 짐 맥코터(Jim McCotter) — 어린 시절 형제교회에 속했으며, 이후 떠나 대위임 교회(Great Commission Churches)를 설립했다.
  • 에드 맥컬리(Ed McCully) — 마켓 대학교에서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으나, 대신 선교사가 되어 에콰도르의 쿠라라이 강에서 와오다니족에게 살해당했다.
  • 브라이언 D. 맥라렌(Brian D. McLaren)[86]떠오르는 교회(Emerging Church) 운동에서 저명하고 논란이 많은 목소리. 형제교회 가정에서 성장했다.
  • 앨런 밀라드(Alan Millard) — 리버풀 대학교 히브리어 및 고대 셈족 언어 교수.
  • 조지 뮐러(George Müller)[87][127] — 브리스톨 고아원의 설립자이자 브리스톨 베데스다 채플의 저명한 교사.
  • 토머스 뉴베리(Thomas Newberry)[88] — 동사 시제를 설명하기 위해 기호 시스템을 사용하는 ''뉴베리 참고 성경''의 번역자.
  • 데시 오헤어(Dessie O'Hare)[89] — 아일랜드 공화국 테러리스트.
  • 카밀로 파체(Camillo Pace) — 이탈리아 복음주의자 (1862-1948).
  • 프레데릭 핸들리 페이지(Frederick Handley Page)[90] — 항공기 설계 및 제조의 선구자.
  • 루이스 팔라우(Luis Palau) — 아르헨티나계 미국인 복음주의자, 플리머스 형제단 출신.
  • 존 파넬, 제2대 콩글턴 남작(John Parnell, 2nd Baron Congleton) — 메소포타미아 선교사.
  • G. H. 펨버(G. H. Pember) — 19세기에 살았던 영국의 신학자이며, ''지구의 가장 초기 시대''(Earth's earliest ages)라는 책을 저술했다.
  • 조셉 M. 스크리븐(Joseph M. Scriven) — 찬송가 "예수님은 나의 친구"의 작가.
  • 아서 렌들 쇼트(Arthur Rendle Short)[91] — 브리스톨 대학교 외과 교수이자 작가.
  • 윌리엄 깁슨 슬론(William Gibson Sloan) — 페로 제도로 파견된 스코틀랜드 선교사.
  • 사무엘 프라이도 트레겔레스(Samuel Prideaux Tregelles) — 영국의 성서 학자이자 신학자.
  • 엘시 투(Elsie Tu) (결혼 전 성 엘리엇) — 중국에서 플리머스 형제단 선교사였으며, 이후 운동을 떠나 홍콩의 저명한 정치인이 되었다.
  • 윌리엄 에드위 바인(William Edwy Vine)[92][128] — ''바인의 구약 및 신약 단어 용어 해설''(Vine's Expository Dictionary of Old and New Testament Words) 및 수많은 주석의 저자.
  • 아서 윌리스(Arthur Wallis) — 영국 신교회 운동(British New Church Movement)의 설립자, 이전 플리머스 형제단.
  • 짐 윌리스(Jim Wallis) — ''소저너스(Sojourners)'' 잡지의 창립자이자 편집자, 형제교회 가정에서 성장했다.
  • 찰스 기들리 휠러(Charles Gidley Wheeler) — ''신자''(The Believer), ''내일은 좋은 아이: 근본주의적 성장 회고록''(A Good Boy Tomorrow: Memoirs of a Fundamentalist Upbringing)의 저자. 해군 항공대 조종사, TV 극작가, 소설가, 철학자. 16세에 플리머스 형제단에서 나왔다.
  • 스미스 위글스워스(Smith Wigglesworth)[93] — 오순절 설교자. 플리머스 형제단 내에서 성경 교육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 휴 G.M. 윌리엄슨(Hugh G.M. Williamson) — 옥스퍼드 대학교 히브리어 교수.
  • 오드 윙게이트(Orde Wingate)[94] — 1930년대 동안 하가나 부대의 영국 소장, 고문.
  • 오드리 아사드(Audrey Assad)[95] — 미국 싱어송라이터이자 녹음 아티스트. 아사드는 형제교회 가정에서 자랐으며 21세에 운동을 떠나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형제교회에서 4부 조화 아카펠라 찬송가를 알고 있는 것이 그녀의 앨범 중 하나인 ''유산''(Inheritance)의 일부에 영향을 미쳤다고 믿는다.[96]
  • 마틴 일스(Martyn Iles) — 호주에서 형제교회 가정에서 자랐으며 호주 기독교 로비(Australian Christian Lobby)의 전무 이사.

8. 주요 문헌 컬렉션

세계에서 가장 큰 '''개방적인 형제교회 아카이브'''는 맨체스터의 옥스퍼드 로드에 있는 존 라일랜즈 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곳에는 주로 플리머스 형제단이라고 불리는 기독교인들의 집회나 모임과 관련된 도서필사본을 포함한 방대한 자료들이 있으며, 특히 영국 관련 자료가 많다.[97]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고 북아메리카에서는 가장 큰 형제교회 관련 자료는 아이오와 주 듀뷰크에 있는 엠마우스 성경 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참조

[1] PDF http://www.bruederbe[...] 2022-03
[2]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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