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대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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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몽골은 1915년 캬흐타 조약을 통해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했으나, 1921년 독립을 선언했다. 1991년에는 한국, 중국, 영국 등과 경제 협정을 체결했으며, 1990년 한국과 수교 이후 한국산 차량이 몽골에서 보편화되고, 몽골인들의 한국 방문과 한국인들의 몽골 활동이 활발해졌다. 몽골은 러시아, 중국, 미국, 일본 등과도 외교 관계를 맺고 있으며, 국제 연합, 상하이 협력 기구 등 다양한 국제 기구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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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대외 관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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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대외 관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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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 |
외교 관계 수립 국가 | 192개국 |
공식 외교 관계 수립일 | 소비에트 연방: 1921년 11월 5일 중화민국: 1946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948년 10월 15일 인도: 1955년 12월 24일 일본: 1972년 2월 24일 미국: 1987년 1월 27일 대한민국: 1990년 3월 26일 |
관련 주제 | 몽골의 비자 정책 몽골 주재 외국 공관 목록 외국 주재 몽골 공관 목록 |
대외 관계 | |
아시아 | 대한민국-몽골 관계 일본-몽골 관계 몽골-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계 중국-몽골 관계 |
유럽 | |
유럽 | 독일-몽골 관계 |
아메리카 | |
아메리카 | 캐나다-몽골 관계 몽골-미국 관계 |
국제기구 가입 | |
국제기구 가입 | 국제 연합 세계무역기구 아시아 개발 은행 국제 통화 기금 유엔 교육 과학 문화 기구 국제 민간 항공 기구 만국 우편 연합 세계 보건 기구 국제 노동 기구 국제 해사 기구 세계 지적 재산권 기구 국제 원자력 기구 국제 금융 공사 국제 개발 협회 |
2. 역사적 관계
역사적으로 몽골은 이웃 국가들과 복잡한 관계를 맺어왔다. 특히 중국과는 오랜 기간 전쟁과 교류를 반복했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북방 유목 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건설되었으며, 이는 몽골과의 긴장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3세기 칭기즈 칸과 쿠빌라이 칸 시대에는 몽골 제국이 원나라를 세우고 중국 전역을 지배하기도 했다. 이후 청나라 시기에는 몽골이 청의 지배하에 들어가 조공을 바치고 자치권을 인정받았으나, 점차 복속되어 외몽골로 불리게 되었다.[113]
러시아와의 관계 역시 깊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몽골은 혁명의 영향을 받았으며, 1921년 담딘 수흐바타르가 이끄는 혁명을 통해 독립하는 과정에서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 1924년에는 몽골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어 세계에서 두 번째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으며, 이후 소련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1915년에는 러시아, 몽골(보그드 칸 정권), 중화민국 사이에 캬흐타 조약이 체결되어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듯했으나,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사실상 무효가 되었고, 1921년 몽골은 독립을 선언했다.
소련 붕괴 직전인 1991년 이후 몽골은 외교 관계 다변화를 모색하며 여러 국가와 경제 협력 조약을 체결했다.
조약명 | 체결 연도 | 관련 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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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양자 조약 (BIT) | 1991년 | 한국, 중국, 영국, 프랑스, 독일[103] |
몽-러 우호 관계 협력 협정 | 1993년 | 러시아[104] |
몽-미 투자 협정 | 1994년 | 미국[105] |
몽-란 조약 | 1995년 | 네덜란드[106] |
몽-영 이중 과세 방지 조약 | 1996년 | 영국[107] |
몽-미 투자 무역 투명화 추진 합의 | 2013년 | 미국[108] |
2. 1. 한반도와의 관계
고구려는 몽골의 직계 조상으로 여겨지는 더더우위를 복속시킨 바 있다. 한편, 거란은 378년 고구려 북쪽 변경을 침략했으나 격퇴당했고[109], 광개토대왕 시기인 392년과 395년에는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대부분 복속되었다.[110][111] 다만 고고학적으로 거란과 몽골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낮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다.요나라가 멸망한 후 등장한 몽골 제국은 금나라를 침공한 뒤 압록강 유역에서 고려와 처음 접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거란족 유민이 세운 대요수국을 공동으로 토벌하며 동맹 관계를 맺었으나, 고려로 향하던 몽골 사절단이 동진국의 여진족에게 피살되는 사건을 빌미로 몽골은 고려를 여러 차례 침략했다. 이로 인해 양국 관계는 단절되었고, 1231년부터 1273년까지 40년 이상 여몽전쟁이 이어졌다. 전쟁 후 고려는 원나라(1271년 국호 변경)의 보호국이 되었으나, 공민왕의 개혁을 통해 점차 원의 간섭에서 벗어났다.
현대에 들어 몽골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모두와 수교한 동시수교국이다.
대한민국과의 관계과거 공산주의 국가였기에 대한민국과는 미수교 상태였으나, 1990년 3월 26일 구 공산권 국가 중 가장 먼저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이후 양국 관계는 급속도로 발전하여, 울란바토르 시내 차량 대부분이 한국산이며 약 2천 명의 한국인이 몽골에서 학교, 병원, 기업 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2만 명 이상의 몽골인이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정부의 자원 외교 강조 이후 한국 기업의 몽골 자원 개발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112] 2011년 8월 양국 정상은 관계를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에너지·자원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울란바토르에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이, 서울에 주한 몽골 대사관이 개설되어 있으며, 부산에는 주부산 몽골 영사관이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관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1948년 수교하여 과거 깊은 관계를 유지했으나, 1990년 대한민국과의 수교 이후 관계에 변화가 생겼다. 1995년과 1999년에는 양국 간 우호 협력이 파기되기도 했으며, 김대중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의 몽골 방문 시 북한은 울란바토르 주재 대사관을 일시 폐쇄하기도 했다. 현재 몽골은 남북 등거리 외교를 표방하며 양측 모두에 대사관을 두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대한민국과의 관계가 훨씬 긴밀하다. 몽골을 경유하는 탈북자 문제에 대해 몽골 정부는 이들을 체포하거나 강제 송환하지 않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과거 북한 노동자들이 몽골 건설 현장에서 일했으나, 국제 연합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여 몽골 정부는 북한 노동자들의 계약 갱신을 금지하고 송환 조치했으며[95][96][97], 북한 선박의 편의치적선 등록도 모두 취소했다.[94]
사회 문제 및 갈등양국 관계 심화 과정에서 일부 문제점도 발생하고 있다. 몽골 내에서 일부 한국인 남성들의 매춘 관광이 사회 문제로 지적되고 있으며[98], 한국 폭력 조직의 활동이나 한류를 이용한 취업 사기, 부동산 투자 사기[99] 등으로 인해 반한 감정이 높아졌다는 지적도 있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한국이 몽골인이 싫어하는 국가 2위로 나타나기도 했다.[99]
한국에 체류하는 몽골 노동자들의 문제도 있다. 2007년 기준으로 약 2만 5천 명(몽골 전체 인구의 약 1%, 노동 인구의 2%)의 몽골인이 한국에 거주하며, 이들 중 상당수가 비정규 체류 상태에서 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하거나 산업재해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몽골 내에서 비판적으로 보도되기도 한다.[86]
몽골 내 차간 카스 등의 극우 민족주의 단체들은 중국인과 더불어 한국인을 배척 대상으로 삼기도 하며, 아시아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공격 사건이 보고되기도 했다.[86][87] 미국 국무부는 자국민에게 몽골 내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이 중국인이나 한국인으로 오인되어 공격받을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경고하기도 했다.[89]
2014년 아시안 게임 당시 대회 공식 블로그의 몽골 국호 오기("Momgolia-China")나 일부 편파 판정 논란 등으로 인해 몽골 내 한국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기도 했다.[102] 당시 유명 스모 선수였던 아사쇼류는 복싱 경기 판정에 대해 트위터에서 "김치 녀석!!" 등 한국을 비난하는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101] 아사쇼류는 이전에도 한국인 기자를 향해 "김치 녀석" 등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바 있다.[100]
2. 2. 중국과의 관계
역사적으로 몽골과 중국은 수많은 전쟁을 치렀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몽골과 중앙아시아로부터 침입하는 유목 민족들을 막기 위해 건설되었다. 1211년 칭기즈 칸의 정복 전쟁을 시작으로, 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은 1271년 원나라를 세우고 1279년 중국 전역을 정복하였다. 이후 몽골 초원은 홍타이지(재위 1626년 ~ 1643년) 이후 청나라의 지배를 받으며 조공을 바치고 자치권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청나라는 강희제와 건륭제 시기에 몽골을 완전히 복속시키고 이를 외몽골이라 칭하였다.[113]1911년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나 청나라가 붕괴하자, 외몽골은 기회를 포착하여 그 해 12월 혁명(제1차 혁명)을 일으켜 중화민국으로부터 자치를 인정받았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외몽골은 혼란을 겪었으나, 1921년 담딘 수흐바타르가 혁명군을 조직하여 제2차 혁명을 일으켜 독립을 선언하고 몽골 인민 공화국을 수립했다.
1949년10월 16일, 신생 중화인민공화국은 몽골 인민 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했으며, 몽골은 중화인민공화국의 9번째 수교국이 되었다. 1960년5월 31일에는 중-몽 우호 상호 원조 조약을 체결했다. 초기에는 중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중국인 노동자들이 파견되어 울란바토르의 평화교 등을 건설했고[65], 중국-소련-몽골을 횡단하는 몽골 횡단 철도가 완성되는 등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중소 분쟁이 격화되면서 소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몽골은 중국과 갈등을 겪었다. 몽골 내 소련군 주둔 문제로 양국 관계는 악화되었고, 몽골 횡단 철도의 궤도 폭을 중국 측이 표준궤로 변경하기도 했다. 중소 관계가 개선되면서 1988년11월 양국은 국경 문제 처리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고, 이듬해 중-몽 영사 조약이 발효되었다. 1989년5월 중-소 정상회담과 함께 몽골 주둔 소련군의 철수가 시작되어 1992년 9월 완료되었다.
이후 중-몽 관계는 급속도로 개선되었다. 1990년 5월 폰살마깅 오치르바트 인민대회 간부회의 의장이 중국을 방문했고, 같은 해 6월 울란바토르와 중국 내몽골 자치구의 후허하오터 간 직통 국제열차가 개설되었다. 1991년8월에는 양상쿤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몽골을 방문했고, 1994년 4월에는 리펑 총리가 34년 만에 몽골을 방문하여 폰차깅 자슬라이 총리와 중-몽 우호 관계 협력 조약을 체결했다.[39] 1999년 7월에는 장쩌민 주석이, 2003년 6월에는 후진타오 주석이 몽골을 방문하여 선린 우호 관계 및 경제 기술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중국은 몽골의 최대 교역국이자 외국인 직접 투자의 주요 원천이 되었다. 몽골 수출의 상당 부분을 중국이 차지하며[24], 2007년 첫 9개월 동안 양국 간 무역 규모는 11.299999999999999억달러에 달해 전년 대비 90% 증가했다.[25] 중국은 몽골 상품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톈진 항구 이용을 허용했으며[24], 몽골의 풍부한 광물 자원 개발을 위해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24][25] 또한 양국은 테러 방지 및 지역 안보 강화를 위한 협력을 강화했으며, 중국은 몽골의 아시아 협력 대화(ACD),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 가입 및 상하이 협력 기구(SCO) 옵서버 자격 유지를 지지하고 있다.[24] 2005년 몽골은 SCO의 최초 옵서버 국가가 되었다.
2014년 8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몽골을 방문하여 몽골의 영토 완전성을 존중한다고 표명했다.[91] 같은 해 10월, 몽골 의회는 타반톨고이 탄전과 오유 톨고이 광산에서 중-몽 국경까지 이어지는 표준궤 철도 건설안을 가결했다.[69][70] 2015년에는 차히아깅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이 중국 인민 항일 전쟁 및 세계 반파시즘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몽골군을 열병시켰다.[71][72] 양국 군과 경찰은 합동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73][74] 2016년 달라이 라마 14세의 몽골 방문으로 양국 관계가 경색되기도 했으나[75], 2017년 경제 위기를 겪은 몽골은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불허하는 대신 중국과의 통화 스와프 협정 연장에 합의했다.[76] 2019년7월에는 신 울란바토르 국제공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몽골 최초의 고속도로가 중국의 융자와 기업에 의해 건설되었다.[77][78][79]
한편, 중화민국(타이완)과의 관계는 복잡하다. 중화민국은 1945년까지 몽골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1953년에는 중소 우호 동맹 조약 파기를 이유로 몽골 독립 승인을 공식적으로 취소했다.[80] 오랫동안 중화민국은 몽골을 자국 영토로 간주했으나, 2002년 민주진보당의 천수이볜 정부 시기부터 몽골의 독립을 사실상 인정하고 수도 울란바토르에 대표 사무소를 설치하는 등 실무적 관계를 발전시켰다.[81] 2012년 마잉주 정부는 1946년 중화민국 헌법 제정 당시 이미 몽골의 독립을 인정했으며, 헌법상 중화민국의 "고유 영역"에 몽골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81] 2017년 차이잉원 정부는 몽장위원회를 폐지하고 관련 업무를 문화부, 대륙위원회, 외교부로 이관했다.[82] 현재 양측 간 공식 외교 관계는 없으나, 울란바토르의 주울란바토르 타이베이 무역경제대표처를 통해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급격한 경제적 진출과 영향력 확대는 몽골 내에서 경계심과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역사적으로 청나라 말기부터 중화민국 시기까지 중국 상인과 군대에 의한 피해 경험, 문화 대혁명 당시 남몽골(내몽골) 탄압 등은 몽골인들의 집단 기억 속에 남아 강한 반중 감정의 배경이 되고 있다.[90] 몽골 국립 박물관에는 과거 중국인들이 몽골인을 고문했던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을 정도이다.[90] 몽골어에서 '가민(혁명)'이 '날강도'나 '산적'을 의미하는 단어로 남은 것도 중화민국 시대 혁명군을 칭한 군대의 약탈 행위 때문이다.[85]
현대에 들어서는 중국 자본의 무분별한 자원 개발("블랙 골드 러시")[67], 불법 체류 노동자 증가, 위생 관념 부족, 현지 여성에 대한 문제적 행동 등 문화적 마찰이 반중 감정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67][84] 몽골 경제의 높은 중국 의존도(수출의 9할 차지)는 중국에 의해 국가가 좌우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킨다.[86] 이러한 배경 속에서 '후흐 몽골', '차간 카스(Tsagaan Khas)' 등 극우 민족주의 단체들이 등장하여 반중국, 반외국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85][83][87] 이들은 중국인 상점 습격, 중국인 및 중국인으로 오인된 외국인(주로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 행사, 중국 관련 기업인 살해 등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86][85][83] 이러한 배외주의적 움직임은 몽골 사회 내에서 일정 부분 지지를 얻고 있으며[86], 미국 국무부와 일본 외무성은 자국민들에게 몽골 내 외국인 대상 습격 가능성에 대해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87][88][89][91] 몽골인들은 중국인을 '호자(хужаа)'라는 멸칭으로 부르기도 한다.[90] 양하이잉과 같은 학자는 몽골인의 반중 감정이 뿌리 깊으며, 중국인의 이익 추구 행태와 중화사상에 대한 반감이 크다고 지적한다.[91]
이러한 상황 속에서 몽골 정부는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고 일본, 미국, 유럽 등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제3의 이웃" 외교 정책을 추진하며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68][91] 2011년 엘베그도르지 당시 대통령은 자원 수출처를 다변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68]
2. 3. 러시아와의 관계
몽골은 예로부터 러시아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여파는 몽골에도 미쳤다. 1921년 담딘 수흐바타르가 혁명군을 조직하여 독립을 이루는 과정에서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 특히 백군 5,000명이 몽골을 침략했을 때 소련의 지원으로 이를 물리쳤다. 몽골과 러시아는 1921년 11월 5일에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시작했다.[1]1924년 몽골은 국호를 '''몽골 인민 공화국'''으로 정하고 세계에서 두 번째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도 소련의 지원이 있었다. 몽골 인민 공화국 시기 몽골은 "소련의 16번째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소련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몽골은 중소 국경 분쟁이 발생했을 때 소련을 지지했으며, 소련의 인터코스모스 우주 계획에 참여하여 몽골인 우주 비행사가 아시아인으로는 두 번째로 탑승하기도 했다. 1942년에는 키릴 문자를 공식 문자로 채택하는 등 사회·문화적으로도 소련 및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당시 몽골의 대통령이나 총리 등 정치 지도자들 다수가 소련 유학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소련 해체 이후에도 몽골은 러시아 연방과 전통적으로 강한 우호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 및 다른 구소련 국가들과의 관계는 몽골 경제 안정에 기여했다. 1991년 양국은 협력 공동 선언과 양자 무역 협정을 맺었으며, 1993년에는 관계의 새로운 평등 기반을 마련하는 우호 협력 조약을 체결했다.[39] 1999년 나차긴 바가반디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했고, 2000년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하여 25개 조항의 울란바토르 선언에 서명하며 양국 간 우호 관계와 수많은 경제 및 정치적 문제에 대한 협력을 재확인했다.[39]
양국은 군사적으로도 협력하고 있다. 2018년 9월 러시아가 실시한 사상 최대 규모의 군사 훈련인 보스토크 2018에 몽골은 중국과 함께 처음 참가했다.[61] 당시 러시아의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은 몽골과 중국을 "동맹국"으로 칭했으며[62], 훈련을 참관한 푸틴 대통령 역시 "우리는 필요하다면 동맹국을 지원할 것이다"라고 연설하고 중국 인민 해방군 병사 4명과 몽골군 병사 2명에게 포상의 메달을 수여했다.[63][64]
2024년 9월,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아동 강제 이주와 관련된 전쟁 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로부터 체포 영장이 발부된 이후 처음으로 ICC 회원국인 몽골을 방문했다.[40] 몽골은 ICC 규정상 푸틴 대통령을 체포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요구에 대해 공개적으로 응답하지 않았다.[40]
현재 러시아는 울란바토르에 대사관을, 다르한과 에르데네트에 2개의 영사관을 두고 있다. 몽골은 모스크바에 대사관을, 이르쿠츠크, 키질, 울란우데에 3개의 영사관을, 예카테린부르크에 영사관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양국은 모두 유럽 안보 협력 기구(OSCE)의 정회원이다(러시아는 참여국이고 몽골은 파트너이다).
2. 4. 기타 국가와의 관계
몽골은 현재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모두와 수교한 상태이다. 과거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1980년대까지 대한민국과는 미수교 상태였으나, 1990년 3월 26일 구 공산권 국가 중 가장 먼저 수교하였다.[1] 울란바토르 시내 차량 대부분이 한국산이며, 약 2천여 명의 한국인이 몽골에서 학교, 병원, 기업 등을 운영하고 있다. 반대로 2만 명 이상의 몽골인이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정부의 자원 외교 강조 이후 한국 기업들의 몽골 자원 개발 투자가 활발해졌으며, 몽골은 주요 투자 대상 지역 중 하나이다.[112] 2011년 8월 22일 양국 정상은 관계를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에너지·자원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울란바토르에 대한민국 대사관이, 서울에 몽골 대사관이 있다. (대한민국의 대외 관계, 주한 몽골 대사관,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 주부산 몽골 영사관 참조)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1948년 10월 15일 수교하였으며[3], 과거 공산국가로서 북한과 깊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1990년 대한민국과 수교한 이후로는 대한민국과도 우호 협력 관계를 증진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외 관계 참조)
1911년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발생하자 외몽골은 그 해 12월 혁명을 통해 중화민국으로부터 자치를 인정받았다. 러시아 혁명 (1917) 이후 외몽골은 중화민국으로부터 독립했으나, 내몽골 자치구는 중화민국과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의 지배하에 남았다. 중화민국은 초기 소련과의 조약에서 몽골을 독립국으로 인정했으나, 국공 내전 패배와 소련과의 단교 이후 승인을 취소하고 몽골을 자국 영토로 간주했다. 그러나 2002년 10월 비공식 관계를 수립하며 사실상 독립국으로 대우하기 시작했다.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중화민국의 강역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천수이볜 정부(2000~2008) 시기에는 외몽골을 대륙 지구(大陸地區)에서 제외하고 양국 수도에 대표부를 설치하는 등 사실상 몽골을 승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몽장위원회는 차이잉원 정부 시기에 폐지되었으며, 현재 울란바토르의 주울란바토르 타이베이 무역경제대표처는 중화민국 외교부가 관리한다. (중화민국의 대외 관계 참조)
역사적으로 원나라 시절 쿠빌라이 칸이 고려와 연합하여 일본 원정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일이 있다. 현대 일본과는 1972년 2월 24일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1] 1977년 경제협력협정을 통해 몽골은 노몬한 사건에 대한 배상 청구를 철회하는 대신, 일본으로부터 무상 증여받은 50억엔으로 울란바토르에 캐시미어 공장을 건설했다. 냉전 시기에는 소련의 영향으로 관계가 제한적이었으나, 1990년 민주화 이후 본격적으로 교류가 강화되었다. 소련 해체 후 몽골이 경제 위기를 겪자 일본은 막대한 정부 개발 원조(ODA)를 제공하고 많은 비정부 기구(NGO)가 지원 활동을 펼쳤다. 과거 반일 교육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몽골인들의 대일 감정은 좋은 편이었으며, 2004년 주몽골 일본 대사관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0% 이상이 일본에 친밀감을 느끼고, 가장 친하게 지내야 할 나라로 일본을 꼽는 등[92], 현재 몽골은 대표적인 친일 국가로 여겨진다. 2006년 미예에곰빈 엥흐볼드 총리는 방일하여 일본인 관광객에 대한 비자 면제를 발표했으며, 2010년 4월 1일부터 일본 국적자는 30일 이내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 1987년 몽골 총리, 2010년 차히아긴 엘베그도르지 대통령 등이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과 몽골의 관계 참조)
미국은 1960년대 초 중화인민공화국과 소련 견제를 위해 몽골과의 수교를 고려했으며, 몽골의 UN 가입 시 중화인민공화국의 거부권 행사를 막기 위해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실제 수교는 소련과 중앙유럽의 개혁·개방 시기인 1987년 1월 27일에 이루어졌으며[1], 이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1988년 6월 울란바토르에 대사관을 개설했고(9월 공식 개관), 초대 상주 대사는 1990년 7월에 부임했다.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1990, 1991),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1998),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2004), 조지 W. 부시 대통령(2005, 미국 대통령 최초 방문),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2005),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2005), 데니스 해스터트 하원의장(2005), 조 바이든 부통령(2011) 등 미국 고위 인사들의 방문과 나차긴 바가반디 대통령(2004), 남바린 엥흐바야르 총리(2001) 및 대통령(2007)의 방미 등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21][22] 2007년에는 양국 정상이 밀레니엄 챌린지 협약을 체결했다. 2008년 미국 국세청(IRS)은 몽골 국가세무총국에 미국 연방 소득세 관련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미국의 대외 관계 참조)
캐나다와는 1973년 11월 30일 수교했다.[1] 캐나다는 울란바토르에 대사관을, 몽골은 오타와에 대사관과 토론토에 명예 영사관(2002년 개설)을 두고 있다. 수교 초기에는 캐나다-몽골 협회를 통해 간헐적인 교류가 있었으나, 1991년 몽골의 민주화 이후 캐나다는 국제 개발 연구 센터, 캐나다 국제 개발청 및 여러 비정부 기구를 통해 몽골에 대한 공여 활동을 시작했다.[12]
멕시코와는 1975년 9월 24일 수교했다.[1] 2001년 10월 빈센테 폭스 멕시코 대통령이 몽골을 공식 방문했다.[13] 멕시코는 서울 주재 대사관에서 몽골을 겸임하며, 울란바토르에 명예 영사관을 운영하고 있다.[14][15][16] 몽골은 워싱턴 D.C. 주재 대사관에서 멕시코를 겸임하며, 멕시코시티에 명예 영사관을 운영하고 있다.[17][18]
파라과이와는 2003년 6월 17일 수교했다.[1] 몽골은 브라질리아 주재 대사관에서 파라과이를 겸임하고, 파라과이는 서울 주재 대사관에서 몽골을 겸임한다. 2019년 9월 26일 양국은 무비자 협정을 체결했다.[19]
트리니다드 토바고와는 2021년 2월 24일 수교했다.[20]
헝가리와는 1950년 4월 28일 수교했다.[3] 역사적으로 1241년에서 1242년 사이 벨러 4세 치하의 헝가리는 우구데이 칸이 이끄는 몽골 제국 군대의 침공을 받았다. 몽골군은 헝가리군을 격파하고 국토를 황폐화시켰으며, 많은 주민을 학살했다.
우크라이나와는 1992년 1월 21일 수교했다.[1] 몽골 제국 시절 오고타이 칸은 키예프 대공국을 침공하여 멸망시켰다. 이후 몽골 제국은 크림반도 연안에 킵차크 칸국을 세워 수백 년간 통치했다. 후에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우크라이나 서부를 점령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몽골의 영향력은 약화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양국 관계가 항상 순탄했던 것은 아니나, 현재는 통상적인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과는 1963년 1월 23일 수교했다.[1]
프랑스와는 1965년 4월 27일 수교했다.[1] 역사적으로 원나라 시절 프랑스 왕 루이 9세의 사신 기욤 드 루브룩이 몽골 제국을 방문한 기록이 있다.
인도와는 1955년 12월 24일 수교했다.[1] 인도는 소련 블록 외 국가 중 최초로 몽골과 외교 관계를 수립한 나라이다. 이후 1973년, 1994년, 2001년, 2004년에 양국 간 상호 우호 및 협력 조약이 체결되었다.
아프가니스탄과는 1962년 2월 1일 수교했다.[1] 2013년 12월 몽골은 카불에 대사관을 다시 열었다.[35][36]
3. 현대의 외교 관계
소련 붕괴 후 1991년 몽골이 민주 정부를 수립하면서, 캐나다와 같은 서방 국가들은 국제 개발 연구 센터, 캐나다 국제 개발청 및 여러 비정부 기구를 통해 몽골을 지원하는 공여 활동을 시작했다.[12] 몽골은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려 하며, 유럽 연합(EU)으로부터 최혜국 대우를 받기를 희망한다. 1991년 동안 몽골은 독일 및 프랑스와 투자 증진 및 보호 협정을 체결했으며, 영국과 경제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독일은 이전 동독의 협력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했으며, 차관과 원조도 제공했다.
다음은 몽골과 여러 국가 간의 현대 외교 관계 현황이다.
국가 | 공식 관계 시작 | 비고 |
---|---|---|
캐나다 | 1973년 11월 30일[1] | |
멕시코 | 1975년 9월 24일 | |
파라과이 | 2003년 6월 17일[1] | |
트리니다드 토바고 | 2021년 2월 24일[20] | |
미국 | 1987년 1월 27일[1] | 미국과의 상세한 관계는 #주요 국가와의 관계 참조. |
유럽 연합 | 1989년 8월 1일[1] | 몽골은 EU와의 관계 강화를 추구한다. |
오스트리아 | 1963년 7월 1일[1] | |
벨기에 | 1971년 7월 8일[1] | 베네룩스(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는 중국 베이징에 있는 대사관을 통해 몽골에 대표단을 파견한다. 몽골은 브뤼셀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
불가리아 | 1950년 4월 22일[1] | |
크로아티아 | ||
키프로스 | 1973년 12월 19일[1] | |
체코 | 1993년 1월 1일[1] | |
덴마크 | 1968년 8월 5일[1] | |
프랑스 | 프랑스와의 상세한 관계는 #주요 국가와의 관계 참조. | |
독일 | 1974년 1월 31일[1] | 몽골은 1974년 서독과 관계를 수립하고 울란바토르와 베를린에 대사관을 두었다. 독일과의 상세한 관계는 #주요 국가와의 관계 참조. |
그리스 | 1967년 3월 3일[1] | 그리스는 중국 베이징 주재 대사관을 통해 몽골을 대표하며, 몽골은 불가리아 소피아 주재 대사관과 아테네 명예 영사관을 통해 그리스를 대표한다. |
헝가리 | 1950년 4월 28일[1] | 헝가리는 울란바토르에, 몽골은 부다페스트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54] |
코소보 | 없음 | 몽골은 코소보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
네덜란드 | 1972년 3월 6일[1] | 베네룩스는 중국 베이징 주재 대사관을 통해 몽골을 대표하며, 몽골은 브레다에 명예 영사관을 두고 있다. |
폴란드 | 1950년 4월 14일[1] | 몽골은 바르샤바에 대사관, 크라쿠프에 명예 영사관을 두고 있다. 폴란드는 울란바토르에 대사관, 에르데네트에 명예 영사관을 두고 있다. |
포르투갈 | ||
루마니아 | 1950년 4월 29일[1] | |
몰타 기사단 | 없음[57] | |
스웨덴 | ||
우크라이나 | 1992년 1월 21일[1] | |
영국 | 1963년 1월 23일[1] | 최초로 외교 관계를 수립한 서방 국가. 영국과의 상세한 관계는 #주요 국가와의 관계 참조. |
몽골은 소련 붕괴 이후 외교 관계 다변화를 추구하며 여러 국가와 양자 조약을 체결했다. 주요 조약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103]
- Mongolian–Russian Treaty of Friendly Relations and Cooperation|몽-러 우호 관계 협력 협정영어 (1993년)[104]
- Mongolia – United States Bilateral Investment Treaty|몽-미 투자 협정영어 (1994년)[105]
- Mongolia – Netherlands Bilateral Investment Treaty|몽-란 투자 협정영어 (1995년)[106]
- Mongolia–United Kingdom Double Taxation Convention|몽-영 이중 과세 방지 조약영어 (1996년)[107]
- Agreement betwee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Mongolia Concerning Transparency in Matters Related to International Trade and Investment|몽-미 투자 무역 투명화 추진 합의영어 (2013년)[108]
3. 1. 주요 국가와의 관계
몽골은 현재 남북한 동시수교국이다. 과거 공산주의 국가였기에 1980년대까지 대한민국과는 미수교 상태였으나, 1990년 3월 26일 옛 공산권 국가 중 가장 먼저 수교하였다. 이후 대한민국과는 우호협력관계를 증진하고 있다. 울란바토르 시내 차량 대부분은 한국산이며, 약 2천 명의 한국인이 몽골에서 학교, 병원, 기업 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2만 명 이상의 몽골인이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정부의 자원 외교 강조 이후, 한국 기업들의 몽골 자원 개발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112] 2011년 8월 22일 양국 정상은 관계를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에너지·자원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울란바토르에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이, 서울에 주한 몽골 대사관이 개설되어 있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1948년 수교하여 깊은 관계를 유지했던 공산국가였으나, 1990년 대한민국과의 수교 이후 관계가 변화했다. 1995년과 1999년에는 몽골과 북한 간 우호 협력이 파기되었고, 김대중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의 몽골 방문 시 북한은 울란바토르의 대사관을 폐쇄하기도 했다. 이후 몽골은 외교관 추방 등으로 북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현재 몽골은 남북 등거리 외교를 표방하며 남북 양측에 대사관을 두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한국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몽골 정부는 몽골을 경유하는 탈북자를 체포하거나 강제 송환하지 않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과거 몽골 내 건설 현장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기도 했으나, 2017년 이후 유엔 대북 제재에 따라 대부분 귀국했으며, 몽골 정부는 계약 갱신 금지 및 송환 조치를 취했다[95][96][97]. 북한 선박이 몽골의 편의치적선을 이용했으나, 이 역시 유엔 제재에 따라 모두 등록 취소되었다[94].
한편, 몽골 내에서는 한국인과 관련된 부정적인 문제들도 발생하고 있다. 몽골을 방문하는 일부 한국인 남성의 매춘 관광 목적으로 지적되며, 한국인이 운영하는 일부 유흥업소가 성매매와 연관되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몽골 정부의 단속 강화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활동은 근절되지 않고 있으며, 승마 클럽이나 마사지숍 등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나기도 한다[98]. 또한, 한국 폭력 조직의 활동, 한류를 이용한 사기 사건 등이 발생하면서 혐한 감정이 나타나고 있으며,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99]. 전 스모 선수 아사쇼류 아키노리는 한국 기자를 향해 "김치 녀석" 등의 발언을 하거나[100], 2014년 아시안 게임 복싱 판정에 대해 "김치 녀석!!"이라며 격분하는 등[101],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낸 사례도 있다. 한국에서 일하는 몽골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 문제(약 40%가 비정규직, 산재 처리 미흡 등) 역시 몽골 내 반한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86]. 미국 국무부는 몽골 내 민족주의 단체들이 아시아계 미국인을 중국인이나 한국인으로 오인하여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87][89], 2014년 아시안 게임 당시 대회 공식 블로그의 몽골 표기 오류(Momgolia-China영어) 및 몽골 선수들에 대한 미흡한 대우 등으로 인해 한국에 대한 감정이 악화되자,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은 반한 감정 고조를 우려하며 주의를 당부하는 공지를 게시하기도 했다[102].
러시아와는 역사적으로 매우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1920년 중국이 외몽골 자치를 철폐하자, 몽골 인민혁명당이 결성되었고 1921년 담딘 수흐바타르가 혁명을 일으켜 독립하는 과정에서 소련의 영향을 받았다. 몽골 인민 공화국 시기에는 "소련의 16번째 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소련과 긴밀했으며, 중소 국경 분쟁 시 소련 편에 섰다. 1942년 키릴 문자 채택, 소련 우주선 소유스에 몽골인 우주 비행사 탑승(인터코스모스 계획), 많은 지도자들의 소련 유학 등 다방면에 걸쳐 소련의 영향이 컸다. 민주화 이후에도 러시아와의 관계는 중요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2018년 9월 러시아의 대규모 군사 훈련 "보스토크 2018"(Vostok 2018영어)에 중국과 함께 참가했다[61]. 당시 러시아 국방장관 세르게이 쇼이구는 몽골과 중국을 "동맹국"으로 칭했으며[62],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필요하다면 동맹국을 지원할 것"이라고 연설하며 몽골군 병사에게 메달을 수여했다[63][64].
중국과는 1949년 10월 16일 국교를 수립했으며, 초기에는 1960년 우호 상호 원조 조약 체결, 중국 노동자 파견을 통한 울란바토르 평화교(Peace Bridge (Mongolia)영어) 건설[65], 몽골 횡단 철도 완성 등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중소 분쟁 시기 소련과 가까웠던 몽골은 중국과 갈등을 겪었다. 1980년대 말 중소 관계 개선과 함께 중몽 관계도 개선되기 시작하여, 1988년 국경 문제 처리 조약 및 중몽 영사 조약이 체결되었다. 1987년부터 시작된 몽골 주둔 소련군 철수는 1992년 9월 완료되었고, 이는 중몽 관계 개선에 기여했다. 1990년대 이후 중국은 몽골의 최대 교역국이 되었고 많은 중국 기업이 몽골에서 활동하고 있다. 양상쿤(1991년), 리펑(1994년), 장쩌민(1999년), 후진타오(2003년), 시진핑(2014년) 등 중국 최고 지도자들이 몽골을 방문하며 관계 강화를 도모했다. 1994년에는 중몽 우호 관계 협력 조약이 조인되었다. 2005년 몽골은 상하이 협력 기구(SCO)의 첫 준회원국(옵서버)이 되었다. 2014년 시진핑 주석은 몽골 방문 시 "몽골의 영토 완전성을 존중한다"고 표명하며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몽골 내 경계심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였다[91]. 2015년에는 중국 인민 항일 전쟁 및 세계 반파시즘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에 몽골 대통령이 참석하고 몽골군이 톈안먼 광장에서 열병하기도 했다[71][72]. 2019년에는 신 울란바토르 국제공항과 울란바토르를 잇는 몽골 최초의 고속도로가 중국의 융자와 기업에 의해 건설되었다[77][78][79].
그러나 몽골 내에는 깊은 혐중 감정이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청나라 말기 및 중화민국 시기 중국 상인과 군대에 의한 착취와 약탈 경험(마노 담뱃잎 용기 이야기, 군대의 약탈로 '가민(혁명)'이 '날강도'를 뜻하게 된 어원[85]), 문화 대혁명 시기 남몽골 탄압 등이 현재까지 회자된다. 몽골 국립 박물관에는 과거 중국인이 몽골인을 고문했던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을 정도다[90]. 현대에 들어서는 중국 자본의 급격한 유입("중국의 블랙 골드 러시"[67])과 경제적 종속 심화(수출의 90%가 중국 의존[86]), 중국인 노동자 증가 및 불법 체류 문제, 중국 기업의 산업 법규 무시, 위생 관념 부족, 현지 여성에 대한 문란한 행실 등이 반중 감정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67]. 몽골인들은 중국을 "초원에 천연두를 가져다주는 식민자"로 여기기도 하며[91], 중국인에 대한 멸칭으로 '호자(Хожаа)'를 사용한다[90]. 이러한 반감은 중국인으로 오인된 일본인이 폭행당하는 사건[91], 중국계 상점 습격[90], 중국인 남성과 관계를 맺은 몽골 여성의 머리를 삭발시키는 행위, 살인 사건, 하켄크로이츠와 함께 "중국인을 사살하라"는 낙서[85][83] 등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기도 한다. 다야르 몽골(Tsagaan Khas영어), 후흐 몽골 등 극우 단체들은 반중·반외국인 기치를 내걸고 활동하며, 이들의 주장은 상당한 사회적 지지를 얻고 있다[86][87]. 이러한 상황 때문에 미국 국무부와 일본 외무성은 자국민들에게 몽골 여행 시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87][89][88]. 몽골 정부는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고자 일본, 미국 등 서방 국가를 "제3의 이웃"으로 삼는 외교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68], 오유 톨고이 광산 개발에서 중국 기업을 배제하기도 했다[66]. 달라이 라마 14세의 몽골 방문(1992, 1994, 2016[75])은 중국과의 관계에 긴장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으나, 2017년 경제 위기 상황에서 몽골은 달라이 라마의 방문 불허를 약속하는 대신 중국과의 통화 스와프 협정 연장에 합의했다[76].
중화민국(대만)과는 민주진보당 천수이볺 정권 시기인 2002년 이후 관계가 개선되었다. 중화민국 정부는 1953년 중소 우호 동맹 조약 파기 시 몽골 독립 승인을 취소했었으나[80], 2002년 이후 사실상 몽골 독립을 인정하고 실무적·경제적 교류를 확대하며 상호 대표 기관을 설치했다. 마잉주 정권 시기인 2012년에는 행정원 대륙위원회가 1946년 중화민국 헌법 제정 당시 이미 몽골의 독립을 인정했으며, 헌법상 중화민국 영토에 몽골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공식 확인했다[81]. 2017년에는 입법원에서 몽장위원회를 폐지하고 관련 기능을 문화부, 대륙위원회, 외교부 등으로 이관했다[82].
미국과는 1960년대 초 중화인민공화국과 소련 견제 목적으로 수교를 고려했으며, 몽골의 유엔 가입 시 중화민국(대만)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실제 수교는 1987년 1월 27일에 이루어졌으며, 이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몽골에게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견제할 "제3의 이웃"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일본과는 원나라 시절 쿠빌라이 칸의 일본 원정 시도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접점이 있다. 현대적인 외교 관계는 1972년 수립되었다. 1977년 경제 협력 협정을 통해 일본은 노몬한 사건 관련 배상 청구를 철회하는 대가로 50억엔을 무상 증여했고, 이 자금으로 울란바토르에 캐시미어 공장이 건설되었다. 냉전 시대에는 소련의 영향으로 관계가 제한적이었으나, 1990년 몽골 민주화 이후 일본의 막대한 정부 개발 원조(ODA)와 비정부 기구(NGO) 지원이 몽골의 경제 위기 극복에 큰 도움을 주면서 관계가 급속히 발전했다. 2004년 여론조사에서 몽골인의 70% 이상이 일본에 친근감을 느끼고, 가장 친하게 지내야 할 나라로 일본을 꼽는 등[92], 몽골은 대표적인 친일 국가가 되었다. 일본 역시 몽골을 동북아시아 안보의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한다. 2010년 4월 1일부터 일본 국적자는 30일 이내 무비자 몽골 방문이 가능하다. 다만, 일본인이 중국인으로 오인되어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해 일본 외무성은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88][91][89].
영국과는 1963년 수교하였다.
프랑스와는 원나라 시절 프랑스 왕 루이 9세의 사신 기욤 드 루브룩이 원나라를 방문한 역사적 교류가 있으며, 현대에는 1964년 수교하였다.
3. 2. 국제기구 참여
몽골은 다양한 국제기구에 참여하며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아시아 개발 은행(AsDB), ASEAN(옵저버), ASEM, CICA, ESCAP, FAO, G-77, IAEA, IBRD, ICAO, ICCt, ICFTU, ICRM, IDA, IFAD, IFC, IFRCS, ILO, IMF, IMO, 인텔샛, 인터폴(Interpol), IOC, ISO, ITU, NAM, OPCW, OSCE, UN, UNCTAD, 유네스코, UNIDO, UPU, WCO, WHO, WIPO, WMO, WToO, WTO, SCO(옵저버) 등 다수의 국제기구에 가입하여 활동 중이다.
몽골의 UN 가입은 1961년에 이루어졌는데, 이는 몽골을 자국 영토의 일부로 간주했던 중화민국이 거부권 행사를 반복적으로 위협했기 때문에 지연되었다. (중국과 유엔 참조)
또한 몽골은 1992년 그룹 창설 이후 소국 포럼(FOSS)의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다.[60]
참조
[1]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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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fat.gov.[...]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2012-10-26
[2]
웹사이트
Sorry not sorry, says Mongolia after failure to arrest Putin
https://www.politico[...]
2024-09-03
[3]
웹사이트
Дипломат харилцаа
https://www.gov.mn/m[...]
[4]
웹사이트
Newly accredited Ambassadors present credentials
https://montsame.mn/[...]
2016-04-20
[5]
웹사이트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Botswana and Mongolia as of 6 December 2023
https://digitallibra[...]
[6]
뉴스
Mongolian president discusses cooperation with Egyptian counterpart in Cairo
http://nl.newsbank.c[...]
The Ulaanbaatar Post
2004-05-03
[7]
웹사이트
Missions Abroad
http://www.mongolian[...]
Embassy of Mongolia, Washington D.C.
[8]
뉴스
Mongolian president discusses cooperation with Egyptian counterpart
http://docs.newsbank[...]
2004-05-03
[9]
뉴스
Mongolia: Policemen to be trained in Egypt
http://nl.newsbank.c[...]
Daily News, Ulaanbaatar
2001-09-03
[10]
뉴스
President in Egypt
The Presidential Office of Mongolia
2004-04-27
[11]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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