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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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국통감》은 조선 세조의 명으로 편찬이 시작되어 성종 때 완성된 한국 통사이다. 세조, 예종 시기 편찬이 중단되었다가 성종 때 서거정 등의 주도로 재개되어 56권으로 간행되었다. 외기, 삼국기, 신라기, 고려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군조선부터 고려 멸망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삼국을 대등하게 서술하고,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의 역사를 강조한 점이 특징이다. 조선 전기 역사학의 집대성이며, 후대 역사서 편찬에 영향을 미쳤다. 신라 중심의 역사관과 사료 비판의 부족은 비판점으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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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국통감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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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동국통감 |
| 한자 표기 | 東國通鑑 |
| 로마자 표기 | Dongguk Tonggam |
| 소유 |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 주소 |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201 서울 관악구 관악로1 |
| 시대 | 조선 시대 |
| 수량 | 56권 28책 |
| 유형 | 역사서 |
2. 편찬 배경
조선 세조의 지시로 편찬이 시작되어 서거정 등에 의해 성종 때 완성되었다. 고조선 건국 연대를 기원전 2333년으로 밝히고 있으며, 삼국 시대의 역사를 서술하였음에도 신라의 역사를 추가로 집필하였다는 특징을 지닌다. 총 56권 28책의 활자본으로, 단군을 시작으로, 기자, 위만, 한사군, 삼국 시대, 신라를 거쳐 고려 말기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편년체 사서이다.[1]
기존의 『고려사절요』, 『삼국사절요』, 중국의 사서 등을 참고했으며, 오류도 많아 현재는 역사 사료로서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 이후에 출판될 때까지 『고려사』나 『삼국사기』 등이 전래되지 않거나 희귀본 취급을 받았으며, 도쿠가와 미츠쿠니가 1667년에 동국통감을 출판하여 오랫동안 한반도사에 대한 기초 문헌이었다.
현대 대한민국 민족주의의 기간을 이루는 단군기원은, 동국통감에서의 즉위년 기술이 그 근원이 되고 있다.
2. 1. 세조의 편찬 지시와 초기 과정
1458년(세조 4년) 9월 12일, 세조는 기존의 사서들이 내용이 부실하고 체계가 없으며, 편년체 통사가 없어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자치통감》에 준하는 새로운 역사서 편찬을 명했다.[1] 1463년(세조 9년)에는 신숙주, 권람 등이 감수를 맡고, 책의 편찬을 전담할 동국통감청(東國通鑑廳)이 설치되어 편찬 작업이 본격화되었다.[1]하지만 동국통감청 설치 무렵, 세조와 수사관들 사이에 편찬 문제를 놓고 갈등이 생겼다. 세조는 편찬 과정을 꼼꼼히 묻고, 직접 작성한 기본 원칙과 범례를 제시하는 등 세세한 내용까지 간섭했다.[1] 1466년(세조 12년)에는 최항, 김국광, 한계희, 노사신 등에게 다시 편찬을 명했으나, 편찬 방향을 결정하지 못했다.[1]
2. 2. 편찬 중단과 재개
1466년(세조 12년) 최항, 김국광, 한계희, 노사신 등에게 재차 편찬을 명하였으나 편차 사목(編次事目)을 결정하지 못했고, 1467년(세조 13년) 5월에 일어난 이시애의 난으로 일시 중지되었다. 이듬해 9월 세조가 훙서(薨逝)하면서 편찬 사업은 완전히 중지되었다.1469년(예종 원년), 최숙정의 건의를 받아들여 편찬이 재개되었지만, 이듬해 예종이 갑작스럽게 훙서하면서 중단되었다. 이후 성종 때인 1484년에 서거정 등의 건의로 편찬이 재개되어 완성되었다.
2. 3. 성종의 수정 지시와 완성
1484년(성종 15년) 11월에 완성된 《동국통감》의 사론(史論)에 대해 성종이 만족하지 못했다.[1] 1485년(성종 16년) 사론을 중심으로 재편하라는 명에 따라 《신편(新編)ㆍ동국통감》(전56권)이 탄생했는데, 이것이 현재 전해지는 동국통감이다.[1]완성 당시 수사관은 서거정을 비롯한 10명이었다.[1] 최부는 382편의 사론 가운데 118편을 작성했다.[1] 전체 사론 중 178편은 기존의 사서에서 추린 것이고, 나머지는 편찬자들이 작성했다.[1]
사론은 대부분 사실에 대한 포폄(褒貶)과 관련된 것으로, 중국에 대한 사대명분(事大名分)을 중요시하는 입장이었다.[1] 강상윤리(綱常倫理)를 존중하여 이를 잘 지킨 사람을 칭송하고, 군신ㆍ부자ㆍ남녀의 위계질서를 정립하여 성종과 사림의 정치적 입장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내포했다.[1] 공리(功利)를 배격하고 절의(節義)를 숭상하여 인물의 지절(志節)과 업적을 구별하여 평가했으며, 문무를 차별하고 이단을 배격하는 입장을 보였다.[1]
3. 구성과 내용
《동국통감》은 외기(外紀), 삼국기(三國紀), 신라(新羅紀), 고려기(高麗紀)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1]
- 외기(外紀): 단군조선에서 삼한까지를 다루며, 사료 부족으로 왕대별 서술은 하지 않았다.
- 삼국기(三國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역사를 대등하게 다루었다. 자치통감강목의 예를 따라 무통(無統)으로 서술하여 특정 국가를 정통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즉위년칭원법(卽位年稱元法)을 채택하여 연대를 표기했다.
- 신라기(新羅紀):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한 669년(문무왕 9년)부터 고려 건국 이전인 935년(태조 18년)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 고려기(高麗紀): 고려 건국부터 멸망까지의 역사를 다루었다.
조선 세조 시대에 편찬이 시작되어 서거정 등에 의해 성종 시대인 1484년에 완성되었다. 외기 1권, 본문 56권으로 구성된 편년체 사서이다. 단군에서 시작하여 기자, 위만, 한사군, 삼국 시대, 신라를 거쳐 고려 말기까지를 대상으로 한다.[1]
3. 1. 외기(外紀)
外紀중국어는 단군조선부터 삼한까지 다루며, 사료가 부족하여 왕대별 서술은 하지 않았다. 단군조선의 건국 연도를 기원전 2333년으로 명시하였다.[1]
3. 2. 삼국기(三國紀)
《동국통감》의 삼국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역사를 대등하게 다루었다. 자치통감강목의 예를 따라 무통(無統)으로 서술하여, 특정 국가를 정통으로 내세우지 않았다.[1] 즉위년칭원법(卽位年稱元法)을 채택하여 연대를 표기했다.[1] 삼국의 연대기는 연호로 표기하지 않고 중국과 삼국의 연대를 아울러 썼다.[1]| 권수 | 연도 | 국왕 | |
|---|---|---|---|
| 권1 | 기원전 57년 ~ 기원후 32년 | 신라 | 혁거세왕 · 남해왕 · 유리왕 |
| 고구려 | 동명성왕 · 유리왕 · 대무신왕 | ||
| 백제 | 온조왕 · 다루왕 | ||
| 권2 | 33년 ~ 180년 | 신라 | 유리왕 · 탈해왕 · 파사왕 · 지마왕 · 일성왕 · 아달라왕 |
| 고구려 | 대무신왕 · 민중왕 · 모본왕 · 태조왕 · 차대왕 · 신대왕 · 고국천왕 | ||
| 백제 | 다루왕 · 기루왕 · 개루왕 · 초고왕 | ||
| 권3 | 184년 ~ 342년 | 신라 | 아달라왕 · 벌휴왕 · 내해왕 · 조분왕 첨해왕 · 미추왕 · 유례왕 · 기림왕 · 흘해왕 |
| 고구려 | 고국천왕 · 산상왕 · 동천왕 · 중천왕 서천왕 · 봉상왕 · 미천왕 · 고국원왕 | ||
| 백제 | 초고왕 · 구수왕 · 사반왕 · 고이왕 · 책계왕 · 분서왕 · 비류왕 | ||
| 권4 | 343년 ~ 489년 | 신라 | 흘해왕 · 내물왕 · 실성왕 · 눌지왕 · 자비왕 · 소지왕 |
| 고구려 | 고국원왕 · 소수림왕 · 고국양왕 · 광개토왕 · 장수왕 | ||
| 백제 | 비류왕 · 계왕 · 근초고왕 · 근구수왕 · 침류왕 · 진사왕 · 아신왕 전지왕 · 구이신왕 · 비유왕 · 개로왕 · 문주왕 · 삼근왕 · 동성왕 | ||
| 권5 | 490년 ~ 611년 | 신라 | 소지왕 · 지증왕 · 법흥왕 · 진흥왕 · 진지왕 · 진평왕 |
| 고구려 | 장수왕 · 문자왕 · 안장왕 안원왕 · 양원왕 · 평원왕 · 영양왕 | ||
| 백제 | 동성왕 · 무령왕 · 성왕 · 위덕왕 · 혜왕 · 법왕 · 무왕 | ||
| 권6 | 612년 ~ 646년 | 신라 | 진평왕 · 선덕여왕 |
| 고구려 | 영양왕 · 영류왕 · 보장왕 | ||
| 백제 | 무왕 · 의자왕 | ||
| 권7 | 647년 ~ 660년 | 신라 | 선덕여왕 · 진덕여왕 · 태종무열왕 |
| 고구려 | 보장왕 | ||
| 백제 | 의자왕 | ||
| 권8 | 661년 ~ 668년 | 신라 | 태종무열왕 · 문무왕 |
| 고구려 | 보장왕 | ||
3. 3. 신라기(新羅紀)
新羅紀중국어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한 669년(문무왕 9년)부터 고려 건국 이전인 935년(태조 18년)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신라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별도로 서술하였다.| 권수 | 연도 | 왕 |
|---|---|---|
| 권9 | 669년 ~ 692년 | 문무왕, 신문왕 |
| 권10 | 694년 ~ 826년 | 효소왕, 성덕왕, 효성왕, 경덕왕, 혜공왕, 선덕왕, 원성왕, 소성왕, 애장왕, 헌덕왕 |
| 권11 | 827년 ~ 917년 | 흥덕왕, 희강왕, 민애왕, 신무왕, 문성왕, 헌안왕, 경문왕, 헌강왕, 정강왕, 진성여왕, 효공왕, 신덕왕 |
| 후백제 견훤 | ||
| 후고구려 궁예 | ||
| 권12 | 918년 ~ 935년 | 경명왕, 경애왕, 경순왕 |
| 후백제 견훤 | ||
| 고려 태조 왕건 |
3. 4. 고려기(高麗紀)
고려 건국부터 멸망까지의 역사를 다루었다.| 권수 | 연도 | 국왕 |
|---|---|---|
| 권13 | 936년 ~ 981년 | 태조 · 혜종 · 정종 · 광종 · 경종 |
| 권14 | 982년 ~ 997년 | 성종 |
| 권15 | 998년 ~ 1018년 | 목종 · 현종 |
| 권16 | 1019년 ~ 1046년 | 현종 · 덕종 · 정종 |
| 권17 | 1047년 ~ 1083년 | 문종 · 순종 |
| 권18 | 1084년 ~ 1102년 | 선종 · 헌종 · 숙종 |
| 권19 | 1103년 ~ 1110년 | 숙종 · 예종 |
| 권20 | 1111년 ~ 1122년 | 예종 |
| 권21 | 1123년 ~ 1127년 | 인종 |
| 권22 | 1128년 ~ 1134년 | |
| 권23 | 1135년 ~ 1146년 | |
| 권24 | 1147년 ~ 1164년 | 의종 |
| 권25 | 1165년 ~ 1170년 | |
| 권26 | 1171년 ~ 1178년 | 명종 |
| 권27 | 1179년 ~ 1187년 | |
| 권28 | 1188년 ~ 1197년 | |
| 권29 | 1198년 ~ 1213년 | 신종 · 희종 · 강종 |
| 권30 | 1214년 ~ 1219년 | 고종 |
| 권31 | 1220년 ~ 1233년 | |
| 권32 | 1234년 ~ 1254년 | |
| 권33 | 1255년 ~ 1259년 | |
| 권34 | 1260년 ~ 1268년 | 원종 |
| 권35 | 1269년 ~ 1270년 | |
| 권36 | 1271년 ~ 1274년 | |
| 권37 | 1275년 ~ 1278년 | 충렬왕 |
| 권38 | 1279년 ~ 1285년 | |
| 권39 | 1286년 ~ 1294년 | |
| 권40 | 1295년 ~ 1300년 | |
| 권41 | 1301년 ~ 1308년 | |
| 권42 | 1309년 ~ 1320년 | 충선왕 · 충숙왕 |
| 권43 | 1321년 ~ 1330년 | 충숙왕 |
| 권44 | 1331년 ~ 1343년 | 충혜왕 |
| 권45 | 1344년 ~ 1351년 | 충혜왕 · 충목왕 · 충정왕 |
| 권46 | 1352년 ~ 1357년 | 공민왕 |
| 권47 | 1358년 ~ 1363년 | |
| 권48 | 1364년 ~ 1369년 | |
| 권49 | 1370년 ~ 1374년 | |
| 권50 | 1375년 ~ 1377년 | 우왕[1] |
| 권51 | 1378년 ~ 1382년 | |
| 권52 | 1383년 ~ 1387년 | |
| 권53 | 1388년 | |
| 권54 | 1389년 | 공양왕 |
| 권55 | 1390년 | |
| 권56 | 1391년 ~ 1392년 |
4. 특징
- 단군조선의 건국 연도를 기원전 2333년으로 명시하여 이후 단군기원 등 한국사 시작 시점을 구체화하였다.[1]
- 신라기를 따로 독립시켜 신라의 삼국통일의 의미를 강조하였고, 고려기에서는 고려가 신라와 고구려를 대등하게 계승한다는 시각이 반영되었다.[1]
- 세종 대에 연구가 활발했던 《자치통감》과 《자치통감강목》의 영향을 받아, 《자치통감》의 범례를 따르고 《자치통감강목》의 필삭 정신에 따라 강목의 규례대로 강령을 제시하고 사실을 서술하는 등 두 사서의 체제를 절충하였다.[1]
- 《삼국사기》와 달리 신라 고유 명칭인 거서간, 이사금 등을 모두 '왕'으로 바꾸어 표기하였다.[1]
- 세조 대 훈구와 성종 대 신진 사림들이 함께 참여하여 양측의 역사관이 반영되었으며, 문화적 측면에서 기자조선-마한-신라로 이어지는 문화 흐름을 주류로 정립하려 하였다.[1]
- 성종과 신진 사림의 역사 인식이 크게 반영되었으며, 사림의 성리학적 명분주의는 성종의 왕권 안정에 유리하게 작용하였고, 강상의 명분을 강조하여 세조와 훈구에 대한 비판적 뜻을 담았다.[1] 이를 통해 조선 초기 역사 편찬 및 서술은 일단락되었다.[1]
5. 목록
6. 역사적 의의와 영향
《동국통감》은 조선 세조 때 편찬이 시작되어 서거정 등에 의해 성종 시대인 1484년에 완성된 역사서이다. 단군으로부터 고려 말까지를 다루는 편년체 사서로, 《고려사절요》, 《삼국사절요》, 중국의 사서 등을 참고하여 작성되었다.[1] 고조선 건국 연대를 기원전 2333년으로 밝히고 있으며, 삼국 역사를 서술하면서도 신라 역사를 추가로 집필하였다는 특징을 지닌다.[1] 현대 대한민국 민족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단군기원은 《동국통감》에서 언급된 즉위년 기술에서 비롯되었다.[1]
6. 1. 조선 전기 역사학의 집대성
《동국통감》은 고조선부터 고려까지의 한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통사로서, 조선 전기 역사학의 성과를 집대성한 저술로 평가된다. 세조의 지시에 의해 편찬이 시작되었다가 중단된 이후 성종 때 완성되었다. 총 56권 28책의 활자본으로 이뤄졌다. 이 책은 고조선의 건국 연대를 기원전 2333년으로 밝히고 있으며, 삼국의 역사를 서술하였음에도 신라의 역사를 추가로 집필하였다는 특징을 지닌다.1484년 성종 시대에 서거정 등에 의해 편찬되었으며, 외기 1권·본문 5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군을 시작으로, 기자, 위만, 한사군, 삼국 시대, 신라를 거쳐 고려 말기까지를 다루는 편년체 사서이다.[1]
내용은 기존의 『고려사절요』, 『삼국사절요』, 중국의 사서 등을 참고하였으나, 오류도 많아 현재는 역사 사료로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고려사』나 『삼국사기』 등이 메이지 시대 이후에 출판될 때까지 전래되지 않거나 희귀본으로 취급되었으며, 도쿠가와 미츠쿠니가 1667년에 동국통감을 출판한 덕분에 오랫동안 한반도사에 대한 기초 문헌으로 사용되었다.
현대 대한민국 민족주의의 기간을 이루는 단군기원은 동국통감에서 즉위년을 기술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6. 2. 후대 역사서 편찬에 미친 영향
《동국통감》은 조선 세조 때 편찬이 시작되어 서거정 등에 의해 성종 시대인 1484년에 완성된 역사서이다. 단군으로부터 고려 말까지를 다루는 편년체 사서로, 기존의 《고려사절요》, 《삼국사절요》, 중국의 사서 등을 참고하여 작성되었다.[1]《동국통감》은 고조선 건국 연대를 기원전 2333년으로 밝히고 있으며, 삼국 역사를 서술하면서도 신라 역사를 추가로 집필하였다는 특징을 지닌다.[1] 이러한 편찬 방식과 내용은 이후 조선시대 역사서 편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편년체 서술 방식과 사론 강조는 조선 후기 역사서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에서는 《고려사》나 《삼국사기》 등이 메이지 시대 이후에 출판될 때까지 전래되지 않거나 희귀본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1667년 도쿠가와 미츠쿠니가 출판한 《동국통감》이 오랫동안 한반도 역사에 대한 기초 문헌으로 활용되었다.[1]
현대 대한민국 민족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단군기원은 《동국통감》에서 언급된 즉위년 기술에서 비롯되었다.[1]
6. 3. 일본에 미친 영향
일본에서는 고려사나 삼국사기 등이 메이지 이후에 출판될 때까지 전래되지 않거나 희귀본 취급이었으며, 1667년 도쿠가와 미츠쿠니가 동국통감을 출판한 것으로 인해 오랫동안 한반도 역사에 대한 기초 문헌이었다.[1]7. 비판
서거정 등이 성종 시대인 1484년에 편찬한 동국통감은 단군부터 고려 말까지를 다룬 편년체 사서이다. 그러나 신라 중심의 역사관 및 사료 비판 부족 외에도 다음과 같은 비판을 받는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 이후에나 『고려사』나 『삼국사기』 등이 출판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한반도 역사에 대한 기초 문헌으로 활용되었으나, 현대 대한민국 민족주의의 기간을 이루는 단군기원은 동국통감에서의 즉위년 기술이 그 근원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받기도 한다.
7. 1. 신라 중심의 역사관
서거정 등이 성종 시대인 1484년에 편찬한 동국통감은 단군부터 고려 말까지를 다룬 편년체 사서이다. 그러나 신라 중심의 역사관은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를 소홀히 다루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는다.7. 2. 사료 비판의 부족
은 일부 내용에 오류가 존재하며, 역사적 사실에 대한 엄밀한 비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기존의 『고려사절요』, 『삼국사절요』, 중국의 사서 등을 활용했으나, 오류가 많아 현재는 역사 사료로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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