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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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의 유산은 언어, 문자, 문학, 교육, 달력, 측정, 종교, 과학, 철학, 법, 정치, 발명, 기술, 식민지, 도로, 건축, 제국 이념, 지명, 민족명칭, 대중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난다. 라틴어는 로마 제국과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공용어로 사용되었으며, 로망스어군의 기원이 되었고, 서게르만어군에도 영향을 미쳤다. 로마 문자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문자이며, 로마의 문학 작품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영향을 미쳤다. 로마의 교육은 자유 인문학을 기반으로 했으며, 로마 달력과 시간, 숫자는 현대에도 사용된다. 기독교는 로마 제국을 통해 전파되었고, 로마의 법과 공화정은 현대 법과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 로마의 발명품과 기술은 건축, 군사, 토목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가져왔으며, 로마의 식민지와 도로는 문화와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로마 건축은 신고전주의 건축에 영감을 주었고, 제국 이념은 신성 로마 제국과 러시아 제국에 영향을 미쳤다. 로마 지명과 민족명칭은 다양한 지역과 언어에 남아 있으며, 로마 제국은 대중문화에서도 자주 다루어지는 주제이다.
라틴어는 로마 제국의 공용어였으며, 여기서 파생된 로망스어는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동로마 제국에서 공용어 역할을 했던 코이네 그리스어는 오늘날에도 일부 동방 정교회에서 종교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3]
라틴 문학은 서양 문학의 중요한 기반을 형성했다. 8세기의 카롤링거 르네상스는 라틴어 문학 작품들을 망각으로부터 구원했다. 당시 필사된 필사본은 이후 다시 잊혀졌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재발견된 작품들의 유일한 자료가 되었다. 타키투스, 루크레티우스, 프로페르티우스, 카툴루스 등이 그 예이다.[18] 베르길리우스와 같은 다른 라틴 작가들은 꾸준히 읽혔다. 키케로는 제한적인 수의 작품에서 좋은 문체의 모델로 남아 인용문의 보고가 되었다. 중세 기독교인들은 오비디우스를 우의적으로 읽거나 세네카를 성 바울의 서신 작성자로 재해석했다. 루카누스, 페르시우스, 유베날리스, 호라티우스, 테렌티우스, 스타티우스는 지속적인 서양 고전으로 살아남았으며, 역사가인 발레리우스 막시무스와 리비우스는 역사가 가르쳐야 할 도덕적 교훈을 위해 계속 읽혔다.
2. 언어
2. 1. 라틴어의 영향
라틴어는 초기 로마 제국과 이후 서로마 제국의 공용어였으며, 동로마 제국에서는 그리스어와 덜하지만 이집트어, 아람어와 같은 토착 언어가 계속 사용되었다. 서로마 제국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라틴어는 중세 시대의 매우 다른 사회적, 경제적 환경 속에서 번성했는데,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의 공식 언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서유럽, 중앙 유럽,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라틴어는 중세 시대와 그 이후에도 학자 계층의 주요 의사 소통 수단으로서 높은 지위를 유지했다. 특히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보면 알 수 있다.[3]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1543)와 같이 과학에 혁명적인 영향을 미친 책들이 라틴어로 작성되었다. 이 언어는 18세기까지 과학적 목적으로 대체되지 않았으며, 동물학 및 식물학의 공식적인 설명에 사용되는 언어는 20세기 후반까지 살아남았다.[3] 현대의 국제 이명법은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분류학자들은 각 종의 학명을 라틴어 또는 라틴어화된 이름으로 지정한다.
21세기에 라틴어에서 파생된 모든 언어를 포함하는 로망스어는 9억 2천만 명 이상이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주로 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에서 3억 명이 제2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4] 로망스어는 전 세계 72개국에서 공용어, 공동 공용어 또는 중요한 언어로 사용된다.[5] 국제 연합의 6개 국제 연합 공용어 중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두 언어가 라틴어에서 파생되었다.
또한 라틴어는 서게르만어군의 어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로망스어는 각각 영어, 독일어, 네덜란드어 어휘의 59%, 20%, 14%를 차지한다.[11][12][13] 복합어와 파생어를 제외하면 이 수치는 극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로망스어는 네덜란드어 어휘의 약 35%를 차지한다.[13] 네덜란드어의 모든 외래어 중 32.2%가 (로망스어에서 유래된 차용어를 제외하고) 직접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14] 알바니아어 어휘의 60% 이상이 라틴어 어원을 가지고 있어, 한때 알바니아어가 로망스어로 오인되기도 했다.[15]
2. 2. 로망스어군
라틴어에서 파생된 로망스어는 21세기에 9억 2천만 명 이상이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주로 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에서 3억 명이 제2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4] 로망스어는 전 세계 72개국에서 공용어, 공동 공용어 또는 중요한 언어로 사용된다.[5] 국제 연합의 6개 국제 연합 공용어 중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는 라틴어에서 파생되었다.
2. 3. 문자
현대 유럽 연합의 공식 문자에는 라틴 문자, 그리스 문자, 키릴 문자가 있으며, 이들은 모두 로마 제국에서 사용된 문자 체계에서 비롯되었다. 오늘날 사용되는 라틴 문자는 로마 제국을 통해 유럽 대부분 지역으로 확산되었으며, 에트루리아인이 수정한 고대 그리스 문자를 거쳐 페니키아 문자에서 파생된 라틴 알파벳을 사용한다. 라틴 문자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문자 체계이며, 식민지 확장, 무역로, 정치 세력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전 세계로 확산되어 그 영향력을 계속해서 넓혀가고 있다.[16]
3. 문학
3. 1. 고전 라틴 문학
8세기의 카롤링거 르네상스는 라틴어 문학 작품들을 망각으로부터 구원했다. 당시 필사된 필사본은 이후 다시 잊혀졌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재발견된 작품들의 유일한 자료가 되었다. 타키투스, 루크레티우스, 프로페르티우스, 카툴루스 등이 그 예이다.[18]
다른 라틴 작가들은 끊임없이 읽혔다. 베르길리우스는 4세기에 기독교의 예언자로 재해석되었으며, 12세기에는 마법사의 명성을 얻었다. 키케로는 제한적인 수의 작품에서 좋은 문체의 모델로 남아 인용문의 보고가 되었다. 중세 기독교인들은 오비디우스를 우의적으로 읽거나 세네카를 성 바울의 서신 작성자로 재해석했다. 루카누스, 페르시우스, 유베날리스, 호라티우스, 테렌티우스, 스타티우스는 지속적인 서양 고전으로 살아남았으며, 역사가인 발레리우스 막시무스와 리비우스는 역사가 가르쳐야 할 도덕적 교훈을 위해 계속 읽혔다.
3. 2. 중세 및 르네상스 라틴 문학
8세기의 카롤링거 르네상스는 라틴어 문학 작품들을 망각으로부터 구원했다. 당시 필사된 필사본은 이후 다시 잊혀졌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재발견된 작품들의 유일한 자료가 되었다. 타키투스, 루크레티우스, 프로페르티우스, 카툴루스 등이 그 예이다.[18] 다른 라틴 작가들은 끊임없이 읽혔는데, 베르길리우스는 4세기에 기독교의 예언자로 재해석되었으며, 12세기에는 마법사의 명성을 얻었다.
키케로는 제한적인 수의 작품에서 좋은 문체의 모델로 남아 인용문의 보고가 되었다. 중세 기독교인들은 오비디우스를 우의적으로 읽거나 세네카를 성 바울의 서신 작성자로 재해석했다. 루카누스, 페르시우스, 유베날리스, 호라티우스, 테렌티우스, 스타티우스는 지속적인 서양 고전으로 살아남았으며, 역사가인 발레리우스 막시무스와 리비우스는 역사가 가르쳐야 할 도덕적 교훈을 위해 계속 읽혔다.
4. 교육
마르티아누스 카펠라는 고대 그리스에서 이미 알려진 7가지 자유 인문학 체계를 12세기 르네상스까지 중세 시대 학문 학습의 표준 공식으로 정립했다. 이 체계는 트리비움(문법, 논리, 수사학)과 쿼드리비움(산술, 기하학, 음악, 천문학)으로 구성되어 중세 대학의 교육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4. 1. 자유 인문학
마르티아누스 카펠라는 중세 교육의 구조를 형성한 7가지 자유 인문학 체계를 개발했다.[1] 비록 자유 인문학은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 알려져 있었지만, 7가지 자유 인문학이 정경의 형태를 갖춘 것은 마르티아누스 이후였다.[1]그의 단 하나의 백과사전적 저작인 『필롤로기아와 머큐리의 결혼에 관하여』(De nuptiis Philologiae et Mercurii)는 5세기 기독교화된 로마 제국부터 12세기 르네상스까지 학문 학습의 표준 공식을 세웠다.[1]
7가지 자유 인문학은 트리비움과 쿼드리비움으로 구성되었다. 트리비움은 문법, 논리, 수사학 기술을 포함하였고, 쿼드리비움은 산술, 기하학, 음악, 천문학으로 구성되었다.[1]
5. 달력 및 측정
현대의 달력과 시간 체계는 로마 시대의 유산이다. 로마인들은 1년을 12달로 나누고, 각 달에 이름을 붙였다. 또한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고, 이를 오전과 오후로 구분하는 12시간 시계를 사용했다.
로마 숫자는 14세기까지 유럽에서 숫자를 쓰는 주요 방식이었으나, 이후 힌두-아라비아 숫자가 널리 사용되면서 대체되었다. 그러나 로마 숫자 체계는 시계 문자반, 동전, 초석 비문의 건축 연도, 세대 접미사(예: 루이 14세 또는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4세)와 같은 특정 공식적이고 작은 맥락에서 계속 널리 사용되고 있다.
로마인들은 현대적인 시간 개념을 확립하고, 영국 측정 시스템에 영향을 주었다. 인치는 로마어 uncia|운키아la에서 파생되었으며, 이는 12분의 1을 의미한다.
5. 1. 그레고리력
현대 서력 기원 달력은 율리우스력을 개선한 것이다. 율리우스력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도입되었다. 로마 제국의 달력은 1월(야누아리우스), 2월(페브루아리우스), 3월(마르티우스)로 시작되었다. 1월 1일에 새해를 시작하는 일반적인 전통은 고대 로마에서 확립된 관습이었다. 중세 시대 내내, 가톨릭 축일인 주님 탄생 예고일인 3월 25일에 새해를 시작했다.5세기의 로마 수도사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는 현대의 서기(AD) 연대기를 고안했는데, 이는 예수의 출생 연도를 기준으로 하며, AD는 이 기점부터 연도를 계산하고, BC는 이 기점 이전의 연도를 나타낸다.
5. 2. 요일
솔 (태양)루나 (달)
마르스 (화성)
메르쿠리우스 (수성)
이우피테르 (목성)
베누스 (금성)
사투르누스 (토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