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일본계 외국인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일본계 외국인은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거나 일본인의 혈통을 이어받은 외국인을 의미한다. 16세기부터 시작된 이들의 해외 이주는 동남아시아, 아메리카 대륙 등지로 확산되었으며, 주인선 무역을 통해 일본인 마을이 형성되기도 했다. 19세기 말부터 메이지 정부의 이민 정책 추진과 함께 하와이, 북미, 남미 등으로의 이주가 활발해졌고,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식민지였던 조선, 대만, 만주 등으로도 이주했다. 현재 브라질, 미국, 페루 등지에 대규모 일본계 커뮤니티가 존재하며, 일본 국적법에 따라 복수 국적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외국인 - 영주권
    영주권은 외국인이 특정 국가에서 장기간 거주하고 체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적 지위로, 취득 조건과 권리는 국가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거주 기간, 기술, 투자 등을 통해 얻을 수 있으며, 시민과 유사한 권리를 누리나 일부 제한이 있고 거주 요건 등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 외국인 - 귀화
    귀화는 한 국가의 국민이 아닌 사람이 그 국가의 국적을 취득하는 것을 의미하며, 자발적 또는 강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각국은 다양한 기준을 적용하여 귀화를 허용한다.
  • 빈 문단이 포함된 문서 - 광주고등법원
    광주고등법원은 1952년에 설치되어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북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를 관할하며, 제주와 전주에 원외재판부를 두고 있다.
  • 빈 문단이 포함된 문서 - 1502년
    1502년은 율리우스력으로 수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으로, 이사벨 1세의 이슬람교 금지 칙령 발표, 콜럼버스의 중앙아메리카 해안 탐험,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상관 설립, 크리미아 칸국의 킵차크 칸국 멸망, 비텐베르크 대학교 설립, 최초의 아프리카 노예들의 신대륙 도착 등의 주요 사건이 있었다.
일본계 외국인
개요
명칭일본계 (일본 국적을 가지지 않고 외국에 거주하는 일본인 혈통의 사람)
다른 명칭닛케이진 (日系人)
인구 통계
총 인구약 4,000,000명 (2022년 기준)
주요 거주 지역브라질: 2,000,000명
미국: 1,550,875명
캐나다: 129,425명
필리핀: 120,000명
페루: 103,182명
중국: 102,066명
호주: 94,942명
멕시코: 86,143명
태국: 78,431명
아르헨티나: 76,440명
영국: 65,022명
독일: 42,266명
대한민국: 41,717명
프랑스: 36,104명
싱가포르: 32,743명
말레이시아: 24,545명
베트남: 21,819명
대만: 20,345명
미크로네시아 연방: 20,000명
관련 집단
관련 민족류큐인
추가 정보
참고 사항해당 국가에서는 일본 국적을 가진 거주자 수만 표시되며, 귀화한 일본인과 그 후손의 수는 알려지지 않았음.

2. 역사

(내용 없음)

2. 1. 중세・근세

일본인의 아시아 이주는 15세기에 필리핀으로 이주한 기록에서 시작된다.[13][25] 초기 일본인 정착지는 린가옌 만, 마닐라, 일로코스 해안, 비스야 제도 등지에 형성되었다. 당시 필리핀은 스리비자야와 마자파힛 제국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16세기부터는 일본과 필리핀 세부 섬 사이에 무역 활동이 있었음이 고대 일본 도자기 발견을 통해 확인되었다.[26]

16세기에는 태국아유타야 왕국 수도 아유타야에 일본인 정착지가 세워졌고,[27] 17세기 초에는 네덜란드령 동인도(현재 인도네시아)에도 일본인 정착민 기록이 나타난다. 17세기에는 주인선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동남아시아로의 이주가 더욱 늘어났다. 또한, 도쿠가와 막부의 종교적 박해를 피해 일본 가톨릭 신자들이 필리핀 등지로 이주했다. 이들 중 다수는 현지 필리핀 여성과 결혼하여 새로운 '일본-메스티소'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했다.[28]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수천 명의 일본 상인들이 필리핀으로 이주하여 현지 사회에 동화되었다.[29] 15세기에는 루손 스케자에몬과 같은 상인들이 필리핀에서 '시마모노'라 불리는 차 항아리를 구매하여 일본으로 가져가 다도에 사용하기도 했다.[30] 한편, 16세기 후반 포르투갈 제국은 일본인을 노예로 매매하기도 했다.[31][32]

주스토 다카야마 기념비와 마닐라 플라자 딜라오의 역사 표지


15세기부터 17세기 초까지 일본인들은 중국과 동남아시아 각지로 항해하며 초기 일본인 마을(日本町, 니혼마치)을 형성하기도 했다.[33] 이러한 해외 진출은 1640년대 도쿠가와 막부가 쇄국 정책을 시행하면서 중단되었다. 막부는 일본인의 해외 도항과 이미 해외에 있는 일본인의 귀국을 금지했다. 이 정책은 200년 이상 지속되었다.[34]

'''일본인 마을'''

주인선 무역을 통해 일본인이 이주한 동남아시아 여러 항구에는 일본인 마을이 형성되었다. 가장 규모가 컸던 곳은 태국아유타야 일본인 마을이며, 그 외에도 베트남호이안(세계유산), 말레이 반도의 파타니 왕국, 캄보디아프놈펜, 필리핀마닐라 등지에 소규모 일본인 마을이 존재했다. 이들 마을은 에도 막부의 쇄국 정책으로 일본 본국과의 교류가 끊기면서 현지에 고립되었다. 한편, 한반도에서는 중세 시기부터 삼포왜관이라 불리는 일본인 거류지가 있었으며, 근세(조선 시대)에는 부산의 초량왜관으로 이어졌다.

2. 2. 근대・전전

메이지 유신 이후 쇄국 정책이 완화되면서 일본인의 해외 이주가 시작되었다. 메이지 원년(1868년)에는 정부의 공식 허가 없이 153명의 일본인이 하와이로 이주했는데, 이들을 "원년자"(元年者)라고 부른다.[35][113] 이는 에도 막부 시기 네덜란드미국인 상인 유진 반 리드의 주선으로 이루어졌으나, 메이지 신정부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여권 없이 불법적으로 도항한 경우였다. 당시 독립국이었던 류큐 왕국 출신 이민자들도 다수 존재했으며, 이 때문에 현재도 하와이의 일본계 단체는 본토 출신과 오키나와계 출신 단체가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

증기선 ''쿠메릭'' 호를 타고 밴쿠버에 도착하는 일본인 이민자들


1885년, 메이지 정부는 과잉 인구 문제와 마쓰카타 디플레이션의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이민을 장려하기 시작했다.[36] 초기에는 정부가 이민자 선발과 교육에 깊이 관여했으며, 이민자들이 해외에서 좋은 평판을 유지하여 일본의 이미지를 높이기를 기대했다.[36] 1890년대 중반부터는 민간 이민 회사들이 주도했지만, 정부의 정책 방향은 계속 영향을 미쳤다.[36] 당시 이민자들과 고향의 가족들은 이민을 일시적인 노동 이주(일본어: 出稼ぎ, でかせぎ 데카세기[*])로 여기는 경향이 강했으며, "고향에 금의환향"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1세 이민자들은 일본 국적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113]

정부 공인 이민은 1881년 하와이 국왕 칼라카우아의 방일을 계기로 1885년부터 시작되었다. 미국 본토(특히 캘리포니아주 등 서해안)와 하와이가 주요 이민 대상지였다. 그러나 1908년 미일 신사 협약으로 일본인의 미국 본토 이민이 제한되었고, 하와이에서 미국 본토로의 이주도 금지되었다.[113] 친족 초청이나 결혼 목적(이른바 "사진 신부") 외의 신규 이민은 어려워졌다. 1924년에는 배일 이민법이 제정되어 일본인의 신규 이민이 전면 금지되었다.

미국 이민이 어려워지자 라틴 아메리카로의 이민이 활발해졌다. 1893년 과테말라 이민, 1897년 에노모토 다케아키의 주도로 35명이 멕시코 남부 아카코야과에 정착한 "에노모토 식민"[114]을 시작으로[115], 브라질(특히 상파울루주파라나주)이 가장 큰 이민 대상지가 되었다. 1908년 고베항에서 출발한 ''가사토 마루'' 호를 타고 791명의 일본인(대부분 농업 이민)이 브라질에 도착한 것이 시초이다.[68] 이들은 주로 커피 농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68] 브라질 이민은 1921년까지 상파울루 주 정부의 보조금을 받았으며, 1908년에서 1925년 사이 약 4만 명, 이후 16년간 15만 명이 이주했다.[68]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까지 페루,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파라과이[116][117][118], 우루과이[116][117][118], 칠레 등지로도 이민이 이루어졌다.

필리핀으로의 이민도 이루어졌다. 특히 미국 식민지 시대 다바오 시에는 마닐라삼 농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일본인 인구가 급증하여, 1903년 30명에서 1941년에는 20,000명에 달했다.[39][40] 다바오는 "다바오쿠오"(Davaokuo, )라 불릴 정도로 일본인 사회가 형성되었으며, 일본 학교, 신사, 외교 공관 등이 있었다.[41] 다바오 시 민탈 지역은 "리틀 도쿄"로 불렸다.[41] 필리핀의 디저트 할로할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일본 이민자들이 들여온 일본식 빙수 ''가키고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43][44] 다바오 지역과 비사야스 지방의 국수 요리 ''오동''(Odong) 또는 역시 일본 우동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45][46]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일본 제국의 통치 하에 있던 가라후토(남사할린), 조선, 대만, 만주국, 남양 군도 등지로도 많은 일본인이 이주했다.[50] 이 지역으로 이주한 일본인들은 아메리카 대륙 이민자들과 달리 현지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렸다.[51] 1938년경 대만에는 약 309,000명,[52]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조선에는 85만 명 이상,[53] 중국(주로 만주국)에는 200만 명 이상(대부분 농업 이민자)의 일본인이 거주했다.[54][55] 1945년 8월 소련의 대일 참전 당시 가라후토(남사할린)에는 40만 명 이상(대부분 일본인 또는 한국인)이 거주했다.[56]

아메리카 대륙 이민자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했으며, 대규모 플랜테이션에서 소작농으로 일하거나 미개척지를 개간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토지가 척박하거나 유통망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등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았고, 백인 지주에게 착취당하거나 인종 차별을 겪기도 했다. 이로 인해 성공하지 못하고 귀국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113]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일본인 특유의 성실함과 꼼꼼함으로 양계과실 재배 등에서 성공하는 사례가 나타났으며, 브라질에서는 대지주가 된 이들도 있었다. 이러한 성공 덕분에 일본계 이민자들은 점차 현지 사회에서 인정을 받게 되었고, 많은 국가에서 "nikkei"(닛케이)라는 용어가 통용될 정도가 되었다.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아시아 각지의 식민지와 점령지에 거주하던 일본인 대부분은 일본으로 귀환했다. 연합군은 600만 명이 넘는 일본인을 본국으로 송환했다.[57][119] 하지만 일부는 중국에 남겨진 고아소련에 전쟁 포로로 억류되어 시베리아에서 강제 노역을 하는 등 비자발적으로 해외에 남게 되었다.[58] 또한 팔라우남양 군도에서는 현지인 여성과 결혼한 일본인 남성의 자녀들이 남아 미국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에 남아 현지 국적을 취득한 잔류 일본군도 소수 존재했다.

2. 3. 전후

제2차 세계 대전 중과 이후, 해외에 거주하던 일본인 대다수는 일본으로 돌아왔다. 연합군은 아시아 전역의 식민지와 전장에서 600만 명이 넘는 일본 국적자를 본국으로 송환했다.[57] 일부는 비자발적으로 해외에 남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예로 중국에 남겨진 고아나 소련군에 포로로 잡혀 시베리아에서 강제 노역을 해야 했던 전쟁 포로들이 있다.[58]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약 6,000명의 일본인이 재일 한국인 배우자와 함께 북한으로 건너갔으며, 소련에 의해 약 27,000명의 전쟁 포로가 북한으로 보내진 것으로 추정된다.[58][59]

전쟁 직후에는 오키나와현처럼 전쟁 피해가 컸던 지역을 중심으로 남아메리카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볼리비아에는 일본인 이주자들이 세운 "오키나와"라는 이름의 마을이 존재한다. 이러한 이주 배경에는 당시 일본에 주둔하던 GHQ와 미국군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정부는 남아메리카 국가들과 이민 협정을 체결하며 이민을 장려했다.

국가협정 종류체결 연도비고
볼리비아이주 협정1956년
파라과이이주 협정1959년1989년 효력 무기한 연장, 85,000명 수용 가능[120]
아르헨티나이주 협정1963년
브라질이주·식민 협정1963년



이 시기 남아메리카 이주자들에게는 일본 정부의 비교적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졌다. JICA(국제협력기구)는 남아메리카 사업의 주요 부분으로 일본계 이주자 지원을 담당했으며, 자금 지원보다는 농업 전문가 파견이나 일계 사회 청년 해외 협력대 운영 등 인적·기술적 지원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사회 일각에서는 일본계 이민자들에 대한 편견도 존재했다. 1959년, 일본계 미국인 최초로 미국 하원 의원이 된 대니얼 이노우에가 일본을 방문하여 당시 내각총리대신이었던 기시 노부스케와 만났을 때, 이노우에가 "언젠가 일본계가 미국 대사가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말하자, 기시는 "일본에는 유서 깊은 무가의 후예나 옛 화족, 황족 관계자가 많다. 그들이 지금 사회와 경제의 리더십을 담당하고 있다. 당신들 일본계는 가난 등을 이유로 일본을 버린 '실패자'가 아닌가. 그런 사람을 주일 대사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답했다고 전해진다.[121] 이는 당시 일본 주류 사회가 해외 이주 일본계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전후 베이비붐으로 인한 인구 증가와 토지 부족 문제 등으로 인해 1950년대까지 이민자 수는 크게 늘었지만, 치밀한 준비 없이 송출이 이루어져 "'''기민'''(棄民, 버려진 백성)"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1960년대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으로 국민 생활이 풍족해지면서 이민 희망자는 점차 줄어들었고, 1980년대1990년대에는 해외 이주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

한편, 1980년대 일본 경제 성장으로 소위 3D 업종 기피 현상이 심화되자, 일본 정부는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남아메리카 출신 일본계 후손들에게 취업 비자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약 30만 명으로 추산되는 이들 중 대다수는 브라질 출신이었고, 페루 출신도 상당수 있었다. 이들을 데카세기라고 부른다.

그러나 대침체에 대한 대응으로, 일본 정부는 실업 상태에 놓인 남아메리카 출신 일본계 후손들에게 귀국 지원금(30만, 가족 1인당 추가 20만)을 지급하며 귀국을 유도하는 정책을 펼쳤다.[83] 이 제안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기존의 특혜 비자로 일본에 재입국할 수 없게 되었다.[84] 이 정책은 "일본계 혈통" 비자 소지자에게만 해당된다는 점에서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84]과 함께, 과거 노동력이 필요할 때는 이주를 유도하고 경제가 어려워지자 돌려보낸다는 점에서 착취적이라는 비판[84][85]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은 일본과 고국 사이를 오가는 새로운 형태의 순환 이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87]

이 외에도 홍콩에는 주로 해외 주재 사업가들로 구성된 일본인 공동체가 있으며, 인도네시아에는 약 19,612명의 일본인이 주로 자카르타발리에 거주하고 있다.[60]

2. 4. 현대

일본인 디아스포라는 20세기 후반에 새로운 대규모 이민 흐름이 없었다는 특징을 보인다.[61]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전후 시대에도 많은 일본인이 해외의 기존 일본계 공동체에 합류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이주했다.[62]

1970년대 말 이후의 이주는 주로 해외 생활에 대한 동경으로 이루어졌으며, 미국 (뉴욕시, 캘리포니아주)이나 유럽의 대도시(런던, 파리)를 중심으로 이전보다 소규모로 진행되었다. 이 시기에는 교통수단의 발달, 미디어 및 통신 기술의 발전, 비자 등 여행 절차 간소화로 해외 정보 접근이 쉬워지면서 해외 생활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일본 유학생들이 유학 후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서 영주권이나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는 1990년대 초반 엔화 강세(1달러당 80~100엔) 시기와 맞물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의 유학 붐을 다소 부추기기도 했다.

하지만 거품 붕괴 이후 2010년 전후까지 유학 붐은 거의 사그라들었고 유학생 수도 크게 줄었다. 현재 주요 이민 이유는 외국인과의 결혼, 친족 초청 이민, 1980년대 일본 기업의 해외 진출 시 외국에서 태어난 자녀가 성인이 되어 일본 국적을 선택하지 않는 경우, 오랫동안 외국에서 생활한 귀국 자녀가 일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거주했던 국가로 돌아가는 경우 등이다.

현재 일본계 사회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민이 이루어진 곳에서는 3~5세대가, 전후 이민이 이루어진 곳에서는 2~3세대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국외에 거주하는 일본계 중 일본어를 읽고 쓰거나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드물지 않게 되었다. 특히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태평양 전쟁 중 일본계 미국인의 강제 수용과 같은 심한 차별을 겪었기 때문에, 일본계 주민들이 자신들이 해당 국가의 국민이며 적성 외국인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1930~1940년대에 태어난 3세 이후 자녀들에게 의도적으로 일본어를 가르치지 않은 가정이 많았던 점도 영향을 미쳤다.

3. 국적

일본은 국적 부여에 있어 부모 중 한쪽이 일본인이면 자녀에게 일본 국적을 부여하는 속인주의를 원칙으로 한다.[122] 반면, 일본계 인구가 많이 거주하는 아메리카 대륙의 국가들은 대부분 그 나라 영토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국적을 부여하는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 태어난 일본계 2세 이후의 사람들은 출생지 국가의 국적과 일본 국적을 동시에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본의 국적법은 원칙적으로 다중국적을 인정하지 않는다.[122] 따라서 복수 국적을 가지게 된 사람은 법적으로 만 22세가 되기 전까지 하나의 국적을 선택하고 나머지 국적은 포기해야 한다.[122]

일본 국적법은 1985년 개정 이전까지 아버지의 국적만을 따르는 부계 혈통주의를 채택했었다.[122] 이 때문에 아버지가 일본인이 아닌 경우, 어머니가 일본인이더라도 자녀는 일본 국적을 취득할 수 없었다.[122] 1985년 법 개정으로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일본 국적자이면 자녀가 일본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부모 양계 혈통주의로 변경되었다.[122] 하지만 법 개정 이전에 부계 혈통주의 원칙 하에서 일본 국적을 얻지 못한 3세, 4세 후손들이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

복수 국적자가 일본 국적을 선택하겠다고 선언하더라도, 일본 국적법은 다른 나라 국적의 이탈을 '노력'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강제성은 없다. 또한 해당 국가가 복수 국적을 허용하는 경우 국적은 상실되지 않으므로, 실제로는 복수 국적 상태가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 정부가 복수 국적자를 정확히 파악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 미비하여, 일본 출입국 시 외국 여권을 사용하다가 불편을 겪는 사례도 발생한다.[123][124]

중화인민공화국과 같이 일부 국가는 국적법 규정이 엄격하여 복수 국적을 허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일본인과 중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출생 시 중국 국적을 취득하거나 일본 국적을 선택해야 하며, 사실상 양국 국적을 동시에 보유하기는 어렵다.

해외에서 자녀가 출생한 경우, 일본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출생 신고를 할 때 국적 유보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일본 국적이 부여되지 않을 수 있다.

일본 국적법의 복수 국적 관련 상세 내용은 국적법 (일본)#복수 국적자의 국적 선택 제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4. 일본인의 거주 국가

일본 제국 시기인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내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변화를 겪으며 상당수의 일본인이 미국캐나다 등지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일본계 미국인일본계 캐나다인 참조) 캐나다에서는 여러 세대에 걸쳐 일본 이민자들이 작은 공동체를 형성하며 일본 밖의 삶에 적응해 나갔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포트 해먼드에 있는 우조 나카노의 농가


역사적으로 일본인의 해외 거주는 오래전부터 확인된다. 1590년 필리핀의 복서 코덱스에는 필리핀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110], 1613년 이전 멕시코페루 리마의 주민 조사에서도 일본인 기록이 발견되었다.[111] 또한, 1613년 일본을 떠난 게이초 견구사절단 중 일부는 멕시코스페인에 남아 정착하기도 했다.[112]

주인선 무역이 활발했던 시기에는 동남아시아 여러 항구에 일본인들이 이주하여 '일본인 마을'(니혼마치)을 형성했다. 가장 큰 규모는 태국아유타야 일본인 마을이었으며, 베트남호이안, 말레이 반도의 파타니 왕국, 캄보디아프놈펜, 필리핀마닐라 등에도 소규모 일본인 마을이 존재했다. 이들 마을은 에도 막부의 쇄국 정책으로 일본과의 교류가 끊기면서 현지에 남게 되었다. 한반도에서는 중세에 삼포왜관이라 불리는 일본인 거류지가 있었고, 근세에는 부산의 초량왜관으로 이어졌다.

메이지 시대부터 제2차 세계 대전 패전까지는 일본인이 홋카이도, 사할린, 하와이, 만주국, 한반도, 타이완,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등지로 널리 이주한 시기였다. 이는 일본이 주권 국가 체제 아래 국경을 확정하고 외국과 교류하며 부를 추구하고, 전쟁을 치르는 과정과 맞물려 진행되었다.[113] 당시 일본은 높은 출생률로 인한 인구 증가 문제와 경작지 및 일자리 부족 문제를 해외 이민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민자 본인이나 고향의 가족들에게 이주는 일시적인 출가의 성격이 강했으며, "고향에 금의환향"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특히 이민 1세대는 일본 국적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식적인 해외 이민은 메이지 원년(1868년) 하와이로 떠난 153명의 "원년자"가 시초로 여겨지나, 이는 에도 막부와 영국인 브로커 간의 계약으로 메이지 신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하고 여권 없이 떠난 불법 이민이었다. 당시 독립국이었던 류큐 왕국 출신 이민자도 다수 존재했으며, 이로 인해 현재 하와이의 일본계 단체는 본토계와 오키나와현계로 나뉘어 운영되기도 한다. 정부가 공인한 첫 이민은 1881년 하와이 국왕 칼라카우아의 방일을 계기로 1885년에 이루어진 하와이 이민이며, 이후 19세기 말부터 본격화되어 제2차 세계 대전 후 한동안 일본 정부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하와이 외 주요 이민 대상지는 아메리카 대륙이었다. 1893년 과테말라 이민을 시작으로, 에노모토 다케아키의 제안에 따라 1897년 35명이 멕시코 남부 아카코야과에 정착한 "에노모토 이민"[114]을 계기로 라틴 아메리카로의 조직적인 이주가 시작되었다.[115] 이민자들은 주로 미국(특히 캘리포니아주와 하와이)과 브라질(특히 상파울루주파라나주)로 향했다. 그러나 미국의 이민 제한 정책 강화로 제2차 세계 대전 전까지는 브라질 외에 페루,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파라과이[116][117][118], 우루과이[116][117][118], 칠레 등으로 이민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한때 필리핀으로의 이민도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일본 제국의 영토였던 남사할린, 한반도, 타이완, 남양 군도나 법적으로 외국이었던 만주국으로 이주한 일본인도 많았으나, 이들은 아메리카 이주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1945년 패전 후 몇 년간 이 지역들에서 600만 명이 넘는 일본인이 귀환했으며, 이 과정에서 부모를 잃거나 가족과 헤어져 현지인 가정에 입양된 중국 잔류 고아와 같은 사례도 발생했다.[119] 반면, 남양 군도에 거주하던 일본인 남성과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미군 통치 하에 남아 미국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후 독립한 팔라우 등에서는 나카무라 쿠니오와 같은 일본계 정치인이 활동하는 등 일본계의 영향력이 남아있다. 소수지만 패전 후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에 남아 해당 국적을 취득한 잔류 일본군도 존재한다.

아메리카 이민자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했으며, 대규모 플랜테이션 소작이나 정부 협정에 따른 토지 개간 등을 통해 정착을 시도했다. 하지만 열악한 토지 조건, 유통망 확보의 어려움, 차별, 백인 지주에 의한 착취 등으로 인해 성공하지 못하고 귀국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특유의 꼼꼼함이 요구되는 양계과실 재배 등에서 성공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브라질에서는 대지주가 된 이들도 등장했다. 이러한 성공 덕분에 많은 국가에서 일본계 이민자("nikkei")는 성실하고 근면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에는 오키나와현 등 전쟁 피해가 컸던 지역에서 남아메리카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볼리비아에는 일본인 이주자들이 만든 "오키나와"라는 이름의 마을이 존재한다. 이 시기 이주에는 GHQ와 주둔 미국군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정부는 1956년 볼리비아, 1959년 파라과이, 1963년 아르헨티나 및 브라질과 이주 협정을 체결하며 남아메리카 이민을 장려했다. 특히 파라과이와의 협정은 1989년 무기한 연장되어 85,000명의 일본인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120] 전후 남아메리카 이주자들은 일본 정부로부터 비교적 두터운 지원을 받았다. JICA(국제협력기구)는 자금 지원보다는 농업 전문가 파견, 일계 사회 청년 해외 협력대 운영 등 인적·기술적 지원을 중심으로 이들을 도왔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는 일본계 이민자들에 대한 편견도 존재했다. 1959년 일본계 최초로 미국 하원 의원이 된 다니엘 이노우에가 방일하여 당시 기시 노부스케 총리와 면담했을 때, 이노우에가 "언젠가 일본계가 미국 대사가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말하자, 기시는 "일본에는 유서 깊은 무가의 후예나 옛 화족, 황족 관계자가 많다. 그들이 사회와 경제 리더십을 담당하고 있다. 당신들 일본계는 가난 등을 이유로 일본을 버린 '실패작'이 아닌가. 그런 사람을 주일 대사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한 일화는 당시 일본 사회의 인식을 보여준다.[121]

이민자 수는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후 1950년대 베이비붐으로 인한 인구 증가와 맞물려 급증했으며, 당시 일본 정부는 토지 부족 등의 위기감 속에서 국책적으로 이민을 추진했다. 그러나 준비 부족으로 인해 "'''기민'''(棄民, 버려진 백성)"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으로 국민 생활이 풍족해진 1960년대부터는 이민 희망자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1980년대1990년대에는 극소수에 불과하게 되었다.

1970년대 말 이후의 이민은 주로 해외에 대한 동경으로 이주를 원하는 사람들이 주도했으며, 미국 (뉴욕이나 캘리포니아주)이나 유럽 대도시(런던, 파리 등)를 중심으로 이전보다 소규모로 이루어졌다. 교통, 통신 기술의 발달과 비자 절차 간소화로 해외 정보 접근이 쉬워지면서 해외 생활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영향이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반 유학 붐 시기에는 유학생이 현지에 남아 영주권이나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후 유학 붐이 진정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줄어들었다. 현재 주요 이민 사유는 외국인과의 결혼, 친족 초청, 해외 파견 중 출생한 자녀의 국적 선택, 장기 해외 거주 귀국 자녀의 재이주 등이다.

현재 일본계 사회는 초기 이민 지역에서는 3~5세, 전후 이민 지역에서는 2~3세가 중심 세대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어 구사 능력이 없는 일본계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태평양 전쟁 중 일본계 미국인의 강제 수용 등 심한 차별을 겪으면서, 1930~1940년대생인 3세 이후 세대에게 의도적으로 일본어를 가르치지 않은 가정이 많았던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외 일본계 인구 (2022년)[127]
국가인구
브라질1,900,000명
미국1,484,186명
하와이172,049명
캐나다121,485명
페루100,000명
아르헨티나65,000명
호주36,000명
필리핀33,000명
멕시코20,000명
볼리비아11,350명
파라과이10,000명
인도네시아4,500명
칠레3,000명
콜롬비아1,800명
쿠바1,100명
도미니카 공화국800명
베네수엘라800명
우루과이350명
에콰도르300명



일본 국적을 유지하는 영주권자는 외무성 통계에 포함되지만, 2세, 3세로 내려가면서 현지 국적을 취득하거나 혼혈인 경우가 많아 정확한 일본계 인구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남양 제도인 팔라우미크로네시아 연방, 마셜 제도에서는 전체 인구의 2할 정도가 일본계로 여겨지기도 한다. 또한, 오랫동안 페루 일본계 인구는 8만 명이라고 말해져 왔지만, 이 조사는 수십 년 전에 행해진 것이며, 게다가 당시 페루 국외에 거주하는 일본계 페루인은 조사 대상이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본인과의 혼혈을 그다지 포함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과 그 후의 자연 증가를 감안하면, 현재의 일본계 인구는 수십만에 달할 가능성도 있지만, 어느 것도 실질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4. 1. 주요 거주 국가

일본계 외국인은 전 세계 여러 국가에 상당수 거주하고 있으며, 특히 아메리카 대륙에 큰 규모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다음은 해외일본인협회 자료를 바탕으로 한 주요 국가별 일본계 인구 현황이다.

국가인원
브라질1,400,000명
미국1,000,000명
필리핀259,000명
페루80,000명
캐나다68,000명
아르헨티나32,000명
오스트레일리아20,000명
멕시코17,000명
파라과이7,700명
볼리비아6,700명
칠레1,600명


  • 브라질: 일본계 브라질인은 약 200만 명[2]으로 추산되며, 이는 일본 외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일본계 커뮤니티이다. 상파울루는 일본 외에서 가장 큰 일본인 밀집 지역으로, 특히 리베르다데 지역은 전통적인 일본인 거주지로 유명하다. 파라나 주와 남마투그로수 주에도 상당한 규모의 일본인 커뮤니티가 존재한다. 브라질로의 일본인 이주는 1908년, 791명의 일본인 농부들이 더 나은 삶을 찾아 고베 항에서 ''가사토 마루''호를 타고 브라질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 중 다수는 커피 농장 노동자로 일하게 되었다. 1908년부터 1925년 사이 약 4만 명, 그 후 16년간 약 15만 명의 일본인이 브라질로 이주했다. 1933년에는 연간 최대 24,000명이 이주했으나, 이후 반일 감정 고조와 제2차 세계 대전 발발로 이민이 중단되었다. 1951년 이민이 재개되어 1981년까지 약 6만 명이 추가로 이주했지만, 1960년대 일본 경제가 회복되면서 이민자 수는 급격히 감소했다.[68]

전통적으로 브라질 상파울루시에 거주하는 일본인 커뮤니티는 리베르다데 지역에 거주했다.

  • 미국: 약 150만 명[2]일본계 미국인이 거주하며, 브라질 다음으로 큰 규모의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정치, 문화, 사회적 변화를 겪으며 많은 일본인이 미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특히 1882년 중국인 배척법 이후, 산업가들은 중국 이민자를 대체하기 위해 일본 이민자를 고용하기도 했다. 20세기 초, 캘리포니아에서는 일본 노동력 증가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 1906년 샌프란시스코 교육위원회가 일본계 아동의 공립학교 입학을 금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개입으로 철회되었으나, 일본인 노동자의 추가 이민을 제한하는 신사협정으로 이어졌다.[69] 1924년 이민법은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일본인의 이민을 금지했고, 1965년 이민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일본인 이민은 거의 없었다. 이후 일본계 미국인 커뮤니티는 다시 성장했다. 대다수의 일본계 미국인은 하와이에 정착했으며, 현재 하와이 인구의 상당수가 일본계이다. 그 외에는 서부 해안(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 알래스카)과 미국 남서부(애리조나, 뉴멕시코, 콜로라도, 네바다, 텍사스, 유타)에 주로 거주한다. 미국 북동부미국 중서부 주에도 상당 규모의 커뮤니티가 존재한다.

  • 필리핀: 약 259,000명의 일본계 인구가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표 참조)

  • 페루: 약 80,000명(표 참조)의 일본계 인구가 있으며, 이 중에는 약 6,000명의 이세이(일본 이민 1세대)와 10만 명에 달하는 후손(니세이, 산세이, 요세이)이 포함된다. 전 페루 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도 일본계 페루인이다. 페루에서는 일본 음식과 페루 음식이 융합된 '닛케이 요리'가 발달했으며, 이는 페루-일본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72][73] 닛케이 요리는 국제적으로도 독특한 요리로 인정받고 있으며, 페루의 미식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74]

  • 아르헨티나: 약 8만 명의 일본계 아르헨티나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거주하며, 발바네라, 몬세라트 같은 지역에는 일본 식당, 상점, 이자카야 등이 많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팔레르모 지역에는 일본 외 지역에서 가장 큰 일본 정원 중 하나인 하르딘 하포네스가 있다.[70]

  • 대한민국: 2020년 10월 기준, 약 14,920명의 일본 국적자가 서울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래 도시별 통계 참조) 전체적으로 약 1만 5천 명의 일본 국적자가 대한민국에 거주하며 주로 서울 등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 도미니카 공화국: 1956년부터 1961년 사이, 라파엘 트루히요 정권의 프로그램에 따라 소규모의 일본인 정착이 이루어졌으나, 이주민들이 겪은 극심한 고난과 정부의 약속 불이행에 대한 항의로 인해 일본 정부 차원의 노동 이민 지원이 종료되는 계기가 되었다.[64][65]


아래는 일본 외무성의 2020년 10월 13일 기준 자료에 따른, 해외 주요 도시별 일본 국적자 수이다.


5. 일본 내 재류 자격 및 노동 범위

1980년대 일본 경제 성장 시기, 일본은 소위 3K 직종 (きつい|키츠이일본어 [힘든], 汚い|키타나이일본어 [더러운], 危険|키켄일본어 [위험한])이라 불리는 분야에서 심각한 노동력 부족에 직면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노동성은 남미 출신의 일본계 외국인에게 비자를 발급하여 일본 내 공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 시작했다. 이들 중 대다수인 약 30만 명은 브라질 출신이었고, 페루 출신도 상당수 있었으며 다른 남미 국가 출신도 일부 포함되었다.

1990년 입관법 개정으로 일본계 2세, 3세 및 그 배우자는 취업 활동에 제한이 없는 재류 자격(일본인 배우자 등 또는 정주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일본계 외국인은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는 단순 노동 외국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방침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유일하게 '공인'된 '합법적인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로서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일본에는 약 35만 명의 일본계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은 기본적으로 비자 문제 없이 체류할 수 있다.

그러나 대침체 시기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일본 정부는 실업 상태에 놓인 남미 출신 일본계 후손에게 모국으로 돌아갈 경우 1인당 30만 (3300USD)을, 추가 가족 1명당 20만 (2200USD)을 지급하는 정책을 시행했다.[83] 이 제안을 수락한 이민자는 이전에 받았던 특혜 비자로는 일본에 다시 입국할 수 없게 되었다.[84] 영어 신문 ''재팬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아루도 데비토는 이 정책이 특별한 "일본계 혈통" 비자를 가진 사람에게만 귀국 지원금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인종차별적"이라고 비판했다.[84] 또한, 1990년대에 노동력 부족을 이유로 일본계 외국인의 이민을 장려하고 주 60시간 이상의 노동을 시키다가, 경제가 어려워지자 귀국을 종용했다는 점에서 착취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84][85] 이러한 일본으로의 이주와 다시 모국으로의 송환 과정은 일본계 외국인들이 일본과 고국 양쪽 모두와 복잡한 관계를 맺게 만들었으며, 새로운 형태의 순환 이주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87]

한편, 일본계 외국인 신분을 얻으면 비자 취득이 용이하다는 점 때문에 페루 등지에서는 암거래로 호적을 구입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페루의 한 저널리스트는 이러한 불법 행위가 만연했다고 지적했으며, 페루 역사상 최악의 살인범으로 알려진 페드로 파블로 나카다 루데나 역시 불법으로 호적을 구입한 사례로 보도되었다.[125] 모닝버드 프로그램에서 코마츠 야스시는 이것이 양자 입양을 통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126]

6. 용어 (영어 문서)

'니케이'라는 용어는 일본어 日系|니케이일본어(직역: "일본 계통의")에서 유래했으며, 일본에서 이민 간 일본인과 그 후손들을 지칭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22] 이 그룹들은 역사적으로 ''일세'' (1세대 니케이), ''니세이'' (2세대 니케이), ''산세이'' (3세대 니케이) 및 ''요세이'' (4세대 니케이)라는 용어로 구분되었다. 이 맥락에서 이민은 시민권 상태와 엄격하게 관련되지 않을 수 있지만, 해외의 일시적인 일본인을 제외한 영구적인 정착민을 의미한다. 일본 정부는 니케이인을 3대 이내의 일본 혈통 증명을 할 수 있는 외국인으로 정의한다. 반면에, 미국 및 니케이인들이 자체적인 커뮤니티와 정체성을 발전시킨 다른 일부 지역에서는 일본 국적을 가진 1세대 일본 이민자들이 지역 사회에 참여하는 경우 포함되는 경향이 있다.[23]

일본계 미국 국립 박물관은 10개국에서 100명 이상의 학자들이 참여한 공동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니케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 우리는 전 세계에 커뮤니티를 형성한 일본 이민자와 그 후손인 니케이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니케이 라는 용어는 상황, 장소, 환경에 따라 다양하고 다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니케이는 또한 스스로를 니케이로 정체화하는 혼혈 인종의 사람들을 포함합니다. 일본인도 일본으로 돌아온 이민자와 그 후손들을 니케이 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니케이 중 많은 사람들이 밀접한 공동체에서 생활하며, 일본 원주민과 별개의 정체성을 유지합니다.[24]

7. 알려진 인물

1908년 브라질로 처음 일본 이민자를 수송한 선박 ''가사토 마루''의 승객 명단


일본계 외국인은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분야에 걸쳐 활동하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치, 경제, 학술, 문화예술, 스포츠 등 각계각층에서 활약하는 인물들이 많으며, 이민 초기부터 각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 아래 하위 섹션에서는 각 분야별 주요 인물들을 더 자세히 소개한다.

''':분류:일본계'''도 참조.

7. 1. 한국 관련 인물

(내용 없음 - 원본 소스에 해당 섹션 관련 정보가 없습니다.)

7. 2. 기타 인물

8. 각주, 외부 링크, 참고 자료


  • 디아스, 마리아 수제트 페르난데스 (2007). ''노예제의 유산: 비교적 관점''. 케임브리지 학자 출판. ISBN 978-1-84718-111-4. 238쪽.
  • 메이드먼트, 리처드 A.; 매커라스, 콜린 (1998). ''아시아 태평양의 문화와 사회''. 런던: 루틀리지. ISBN 978-0-415-17278-3.
  • 사카이, 준코 (2000). ''런던 시티의 일본 은행가: 일본 디아스포라의 언어, 문화, 정체성''. 런던: 루틀리지. ISBN 978-0-415-19601-7.
  • 후지타, 유이코 (2009). ''일본 출신 문화 이주민: 뉴욕과 런던의 청소년, 미디어, 이주''. MD: 렉싱턴 북스, 로우만 & 리틀필드. ISBN 978-0-7391-2891-6.
  • 마스터슨, 다니엘 M.; 후나다-클라센, 사야카 (2004). ''라틴 아메리카의 일본인: 아시아계 미국인의 경험''. 어바나, 일리노이: 일리노이 대학교 출판부. ISBN 978-0-252-07144-7. OCLC 253466232.
  • 만젠라이터, 볼프람 (2017). "제곱 디아스포라: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일본 디아스포라의 표현". ''현대 일본''. 29 (2): 106–116. doi:10.1080/18692729.2017.1351021.
  • 니이야, 브라이언, 편집. (2001). ''일본계 미국사 백과사전: 1868년부터 현재까지의 A-Z 참고 자료''. 온라인 무료 대여.
  • 시라이시, 사야; 시라이시, 다카시, 편집. (1993). ''식민지 동남아시아의 일본인''. SEAP 출판. ISBN 978-0-87727-402-5. Google Books 링크.
  • 스에요시, 아나 (2017). "세대 간 순환 이주와 페루계 일본인의 정체성 형성의 차이". ''현대 일본''. 29 (2): 230–245. doi:10.1080/18692729.2017.1351047.

참조

[1] 웹사이트 Who are "Nikkei & Japanese Abroad"? https://jadesas.or.j[...] The Association of Nikkei and Japanese Abroad 2023-05-22
[2] 웹사이트 Japan-Brazil Relations (Basic Data) http://www.mofa.go.j[...] 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Japan 2023-05-22
[3] 웹사이트 American Community Survey: Asian Alone or in Any Combination by Selected Groups https://data.census.[...] 2023-05-22
[4] 웹사이트 Ethnic or cultural origin by gender and age: Canada, provinces and territories https://www150.statc[...] 2023-05-22
[5] 뉴스 A glimmer of hope for castoffs http://search.japant[...] 2016-08-09
[6] 서적 Japanese diasporas: Unsung pasts, conflicting presents, and uncertain futures Routledge 2006
[7] 웹사이트 Japan-Peru Relations (Basic Data) https://www.mofa.go.[...] 2023-05-22
[8] 웹사이트 https://www.mofa.go.[...] 2022-10-01
[9] 웹사이트 Japan-Mexico Relations https://www.mofa.go.[...] 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Japan 2023-05-22
[10] 웹사이트 Japan-Argentina Relations (Basic Data) https://www.mofa.go.[...] 2023-05-22
[11] 웹사이트 The Voice of the Ambassador to Micronesia http://www.apic.or.j[...] Association for Promotion of International Cooperation 2023-05-22
[12] 웹사이트 Ancient Japanese pottery in Boljoon town https://newsinfo.inq[...] 2011-05-30
[13] 웹사이트 Quests of the Dragon and Bird Clan: Luzon Jars (Glossary) http://sambali.blogs[...] 2006-09-05
[14] 간행물 Chinese Pottery in the Philippines https://www.forgotte[...] 1912
[15] 웹사이트 Philippines History, Culture, Civilization and Technology, Filipino http://asiapacificun[...]
[16] 서적 The Japanese in Colonial Southeast Asia https://books.google[...] SEAP Publications
[17] 문서 Japan-Mexico relations http://www.mofa.go.j[...] Ministry of Foreign Affairs
[18] 뉴스 Desafíos que nos acercan, https://web.archive.[...] El Comercio 2008-03-12
[19] 웹사이트 Brief Historical Overview of Japanese Emigration http://www.janm.org/[...] International Nikkei Research Project 2007-02-02
[20] 서적 The Japanese in Colonial Southeast Asia Southeast Asia Program, Cornell University Publications 2016-05-30
[21] 웹사이트 Book Review http://www.globalbud[...] Journal of Global Buddhism 6 2007-02-02
[22] 웹사이트 nikkei http://dictionary.re[...] Random House, Inc. 2007-02-02
[23] 간행물 Squared diaspora: Representations of the Japanese diaspora across time and space 2017-07-27
[24] 웹사이트 What is Nikkei? https://discovernikk[...] Japanese American National Museum 2023-09-07
[25] 문서 Philippines History, Culture, Civilization and Technology, Filipino http://asiapacificun[...]
[26] 웹사이트 Ancient Japanese pottery in Boljoon town https://newsinfo.inq[...] 2022-01-15
[27] 웹사이트 Village Ayutthaya http://www.thailands[...]
[28] 웹사이트 Paco http://ph.pagenation[...]
[29] 서적 Interracial Intimacy in Japan https://books.google[...] A&C Black 2003-01-01
[30] 웹사이트 Quests of the Dragon and Bird Clan: Luzon Jars (Glossary) http://sambali.blogs[...] 2006-09-05
[31] 뉴스 The rarely, if ever, told story of Japanese sold as slaves by Portuguese traders http://www.japantime[...] 2014-03-02
[32] 뉴스 Europeans had Japanese slaves, in case you didn't know ... http://www.japanprob[...] 2014-03-02
[33] 웹사이트 JANM/INRP - Harumi Befu http://www.janm.org/[...] 2011-09-12
[34] 웹사이트 外務省: 外交史料 Q&A その他 http://www.mofa.go.j[...] 2018-01-16
[35] 문서 Known as the Gannen-mono (元年者), or "first year people" because they left Japan in the first year of the Meiji Era
[36] 문서 Dresner
[37] 서적 A study on the ideal policy for improving the legal and social status of Japanese in the Philippines https://nippon.zaida[...] Tokyo Foundation Research Report 2005-06
[38] 문서
[39] 서적 Dabao hōjin kaitakushi [History of Japanese development of Davao] Nippi Shimbunsha
[40] 서적 Dabao kaitakuki [A record of the development of Davao] Furukawa Takushoku
[41] 뉴스 'Little Tokyo' in Davao https://lifestyle.in[...] 2021-02-07
[42] 웹사이트 A Little Tokyo Rooted in the Philippines http://www.pacificci[...] Pacific Citizen 2007-04
[43] 뉴스 Japanese origins of the Philippine 'halo-halo' https://opinion.inqu[...] 2019-04-23
[44] 웹사이트 Halo-Halo Graham Float Recipe https://www.pinoyrec[...] 2019-07-24
[45] 웹사이트 US, Japan linguistic legacies https://issuu.com/ed[...] Edge Davao 2021-07-12
[46] 웹사이트 Manila craves for Davao cuisine http://archives.pia.[...] Philippine Information Agency 2021-07-12
[47] 서적 Davao: A Case Study in Japanese-Philippine Relations https://kuscholarwor[...] University of Kansas, Center for East Asian Studies
[48] 간행물 Rethinking Okinawan Diasporas in 'Davaokuo'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ir Relations with Mainland Japanese and Filipino Residents of Davao, the Philippines http://ir.lib.u-ryuk[...] Center for migration studies, University of the Ryukyus (琉球大学移民研究センター) 2006-03-01
[49] 웹사이트 Japanese Periodicals in Colonial Korea http://www.columbia.[...]
[50] 웹사이트 Japanese Immigration Statistics http://www.discovern[...]
[51] 뉴스 The Dawn of Modern Korea (360): Settling Down http://times.hankook[...] 2006-03-23
[52] 간행물 Formosa (Taiwan) Under Japanese Rule 2017-08-22
[53] 웹사이트 Monograph Paper 3. Section 13 http://www.usc.edu/d[...]
[54] 뉴스 Killing of Chinese in Japan concerned http://www.chinadail[...] China Daily
[55] 웹사이트 Prasenjit Duara: The New Imperialism and the Post-Colonial Developmental State: Manchukuo in comparative perspective http://www.japanfocu[...]
[56] 웹사이트 The Kurile Islands Dispute http://www.american.[...] 2017-08-22
[57] 문서 When Empire Comes Home : Repatriation and Reintegration in Postwar Japan by Lori Watt http://www.hup.harva[...] Harvard University Press
[58] 뉴스 Russia Acknowledges Sending Japanese Prisoners of War to North Korea http://www.mosnews.c[...] Mosnews.com 2007-02-23
[59] 간행물 The Forgotten Victims of the North Korean Crisis http://www.nautilus.[...] Nautilus Institute 2007-03-15
[60] 문서 http://www.mofa.go.j[...] Ministry of Foreign Affairs 2009-10-19
[61] 문서 Culture and Society in the Asia-Pacific https://books.google[...]
[62] 웹사이트 The Colombian Nikkei and the Narration of Selves https://www.academia[...]
[63] 간행물 Reviews: Umi o Watatta Nippon no Mura by Masao Gamo and "Steveston Monogatari: Sekai no Naka no Nipponjin" by Kazuko Tsurumi 1963-02
[64] 간행물 The Odyssey of Japanese Colonists in the Dominican Republic 2000-07
[65] 서적 Encyclopedia of Japanese Descendants in the Americas: An Illustrated History of the Nikkei Rowman Altamira
[66] 웹사이트 Japan-Mexico foreign relations http://www.mofa.go.j[...] MOFA 2014-10-28
[67] 간행물 Living under more than one sun: The Nikkei Diaspora in the Americas 2017-07-17
[68] 간행물 Japanese Immigration into Latin America: A Survey 1981
[69] 서적 History of Japan Atlantic 2003
[70] 웹사이트 Tokyo in Buenos Aires https://therealargen[...] 2024-01-05
[71] 웹사이트 The Colombian Nikkei and the Narration of Selves - Part 1 of 4 http://www.discovern[...] 2012-06-08
[72] 간행물 Immigrant integration through food: Nikkei cuisine in Peru 2017
[73] 뉴스 Salmon with Chenin Blanc Wine Spectator 2020-03-31
[74] 간행물 "Nikkei Food" for Whom? Gastro-Politics and Culinary Representation in Peru http://journals.open[...] 2019-06-06
[75] 서적 Cultural Migrants from Japan: Youth, Media, and Migration in New York and London Lexington Books
[76] 서적 The World Was Going Our Way: The KGB and the Battle for the Third World Basic Books
[77] 웹사이트 Владение языками (кроме русского) населением отдельных национальностей по республикам, автономной области и автономным округам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http://www.perepis20[...] Федеральная служба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й статистики
[78] 웹사이트 Little Tokyo in Düsseldorf - Japanische Kultur erleben https://www.duesseld[...] 2022-10-21
[79] 웹사이트 https://www.mofa.go.[...] Ministry of Foreign Affairs (Japan) 2022-08-04
[80] 웹사이트 Wie kam so viel Japan nach Düsseldorf? https://www.duesseld[...] 2020-06-17
[81] 웹사이트 Recent Trends in Japanese Migration to Australia and the Characteristics of Recent Japanese Immigrants Settling in Australia http://www.faess.jcu[...] Faculty of Arts, Education, and Social Sciences, James Cook University 2006-12-21
[82] 웹사이트 A Go: Another Battle for Sapian http://home.att.net/[...] 2008-12-23
[83] 뉴스 The Czech Republic Pays for Immigrants to Go Home Unemployed Guest Workers and Their Kids Receive Cash and a One-Way Ticket as the Country Fights Joblessness, https://www.wsj.com/[...] Wall Street Journal 2009-04-28
[84] 뉴스 Golden parachutes' mark failure of race-based policy http://search.japant[...] 2009-04-07
[85] 뉴스 Japan to Immigrants: Thanks, But You Can Go Home Now http://www.time.com/[...] 2009-04-20
[86] 간행물 Living under more than one sun: The Nikkei Diaspora in the Americas 2017
[87] 간행물 Intergenerational circular migration and differences in identity building of Nikkei Peruvians 2017
[88] 웹사이트 (海外在留邦人数調査統計 https://www.mofa.go.[...] 2021-05-04
[89] 문서 en:Japanese_diaspora#cite_note-JP/BR-2
[90] 문서 en:Japanese_diaspora#cite_note-3/
[91] 문서 en:Japanese_diaspora#cite_note-4
[92] 문서 en:Japanese_diaspora#cite_note-5
[93] 문서 en:Japanese_diaspora#cite_note-7
[94] 문서 en:Japanese_diaspora#cite_note-MOFA2022-8
[95] 문서 en:Japanese_diaspora#cite_note-MOFA2022-8
[96] 문서 en:Japanese_diaspora#cite_note-9
[97] 문서 en:Japanese_diaspora#cite_note-MOFA2022-8
[98] 문서 en:Japanese_diaspora#cite_note-10
[99] 문서 en:Japanese_diaspora#cite_note-MOFA2022-8
[100] 문서 en:Japanese_diaspora#cite_note-MOFA2022-8
[101] 문서 en:Japanese_diaspora#cite_note-MOFA2022-8
[102] 문서 en:Japanese_diaspora#cite_note-MOFA2022-8
[103] 문서 en:Japanese_diaspora#cite_note-MOFA2022-8
[104] 문서 en:Japanese_diaspora#cite_note-MOFA2022-8
[105] 문서 en:Japanese_diaspora#cite_note-MOFA2022-8
[106] 문서 :en:Japanese_diaspora#cite_note-MOFA2022-8
[107] 문서 :en:Japanese_diaspora#cite_note-11
[108] 문서 海外日系人協会の資料 http://www.jadesas.o[...]
[109] 뉴스 Uruguay entra al radar de Japón https://www.elpais.c[...] 2018-02-25
[110] 웹사이트 Boxer Codex http://www.indiana.e[...] 2019-12-07
[111] 문서 「慶長遣欧使節」派遣400周年」ニッポンドットコム財団 http://www.nippon.co[...]
[112] 문서 「慶長遣欧使節」派遣400周年」ニッポンドットコム財団 http://www.nippon.co[...]
[113] 뉴스 「越境者の政治史」書評 「移動」に焦点、「日本人」とは https://book.asahi.c[...] 2018-06-08
[114] 뉴스 (世界発2018)メキシコの村、息づく日本 榎本武揚が提唱、121年前に入植 https://www.asahi.co[...] 2018-02-13
[115] 뉴스 日本と中南米(エピソード集)~遠くて近いアミーゴの国々~ https://www.mofa.go.[...] 外務省
[116] 뉴스 安倍首相、ウルグアイとパラグアイを訪問 https://www.mbs.jp/n[...] 毎日放送 2018-12-03
[117] 뉴스 安倍首相、ウルグアイとパラグアイを訪問 https://www.ohbsn.co[...] 新潟放送 2018-12-03
[118] 뉴스 安倍首相、ウルグアイとパラグアイを訪問 https://news.myjcom.[...] TBSテレビ 2018-12-03
[119] 웹사이트 引き揚げのはじまり https://m-hikiage-mu[...] 舞鶴引揚記念館 2020-11-28
[120] 뉴스 パラグアイ共和国(Republic of Paraguay) 基礎データ https://www.mofa.go.[...] 外務省 2020-11-25
[121] 서적 移民国家アメリカの歴史 岩波書店 2018-10-19
[122] 웹사이트 日本と海外の国籍について知る https://www.nikkei49[...] 日本経済新聞 2020-11-28
[123] 뉴스 日本人出・帰国記録(EDカード)の廃止について http://www.moj.go.jp[...] 法務省 2001-06-08
[124] 뉴스 国籍の選択について https://www.moj.go.j[...] 法務省
[125] 뉴스 熊谷6人殺害 ペルー人容疑者の兄は17人殺した「死の使徒」 http://www.nikkan-ge[...] 日刊ゲンダイ 2015-09-19
[126] 뉴스 熊谷6人惨殺!ペルー男なぜ日本名?日系人は優遇されて稼げる https://www.j-cast.c[...] ジェイ・キャスト 2015-09-19
[127] 문서 海外日系人数 https://jadesas.or.j[...]
[128] 문서 ヤンマーディーゼルサッカー部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