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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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범선은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항해하는 선박으로, 선박의 역사와 함께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15세기 대항해시대에 사각 돛을 단 여러 돛대를 가진 배가 일반화되었으며, 18세기와 19세기에 전열함과 상선이 등장하며 범선 시대가 정점에 달했다. 19세기에는 증기선과 공존하다가 연료 효율이 높은 증기선의 등장으로 쇠퇴하였지만, 20세기까지 상업용으로 운항되기도 하였다. 범선은 돛의 배치, 돛대의 수, 용도 등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되며, 선체, 돛대, 삭구, 돛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통해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추진력을 얻는다. 현대에는 세일링 스포츠, 훈련선, 크루즈 여객선 등으로 활용되며, 친환경 운송 수단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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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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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개요 | |
유형 | 선박 |
동력 | 바람 |
추진 | 돛 |
관련 용어 | 범선 |
역사 | |
기원 | 기원전 3000년경 |
발전 | 기원전 15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서 돛 사용 기원전 900년경: 페니키아에서 지중해 항해 기원후 1200년경: 폴리네시아에서 대양 항해 |
구조 및 유형 | |
선체 | 선체 |
돛 | 돛 |
주요 유형 | 풀 리그드 쉽 바크 바르퀸틴 스쿠너 |
돛의 형태 | 사각형 돛 가로 돛 세로 돛 |
항해 | |
추진 | 바람을 이용한 추진력 |
항해술 | 항해 기술 |
문화적 의미 | |
상징 | 탐험 모험 교역 |
문학 및 예술 | 다양한 문학 및 예술 작품에 등장 |
참고 자료 | |
서적 | The Story of the Sea Lost Kingdoms of Early Southeast Asia: Hindu-Buddhist Sculpture 5th to 8th century |
추가 정보 | OED: ship |
참고 | 세일보트 (sailboat) |
추가 이미지 및 파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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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3개 돛대의 예시, 각 돛대에서 사각 돛에서 전부 앞뒤 돛으로 진행 |
2. 역사
범선은 인류 역사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이동 및 교역, 그리고 해상 전투의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그 역사는 고대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역과 시대의 필요에 따라 범선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변화해왔다.
초기 범선은 고대 이집트의 나일 강과 지중해 연안, 그리고 오스트로네시아 민족의 태평양 및 인도양 항해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은 카타마란, 아웃리거, 크랩 클로 세일 등을 발명하여 기원전 3000년에서 1500년 사이에 광대한 해양 지역으로 확산했으며,[8][9] 이들의 대형 무역선은 한나라 시대 중국 기록에도 ''쿤룬 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10] 지중해에서는 이집트, 미노아 문명, 페니키아,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등이 사각 돛을 단 배를 발전시켰고, 때로는 노를 함께 사용하며 해상 활동을 벌였다.[22][23]
중세 시대에는 각 지역에서 독특한 범선들이 발달했다. 북유럽에서는 바이킹이 사각 돛과 노를 사용하는 롱쉽과 크나르를 이용해 광범위한 지역을 항해했으며,[24][25] 이후 코그선 등이 등장했다. 인도양에서는 아랍인과 인도인들이 삼각돛을 특징으로 하는 도우선을 이용하여 활발한 해상 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했다.[29]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의 정선이 발달했는데, 송나라 시기부터 건조되기 시작하여[15] 원나라 시대 군함의 기초가 되었고 명나라 시대에는 정화의 대규모 원정 함대에 사용되기도 했다.[14][18] 고려 역시 독자적인 조선술을 발전시켜 북송과의 교류 등에 사용될 대형 범선을 건조했다는 기록이 있다.
15세기부터 시작된 대항해시대는 범선 기술의 중요한 전환기였다. 나침반과 같은 항해 도구의 발전과 함께,[30] 카라크선과 카라벨선처럼 원양 항해에 적합하도록 설계된 새로운 범선들이 등장했다.[31] 이 배들은 앞마스트와 중앙마스트에 사각 돛, 뒷마스트에 삼각돛을 조합하여 다양한 바람 조건에 대응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바스쿠 다 가마, 페르디난드 마젤란 등 유럽 탐험가들의 장거리 항해가 가능해졌다.[33][34][35]
18세기와 19세기는 범선이 기술적으로 정점에 달했던 시기로, 흔히 '범선 시대'라고 불린다. 이 시기에는 강력한 화력을 갖춘 대형 군함인 전열함이 해전의 주력이 되었고,[39] 상선 분야에서는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클리퍼가 등장하여 장거리 무역, 특히 차 무역 등에서 활약했다. 범선의 크기는 더욱 커지고 돛의 수도 늘어났으며, 철제 와이어나 철제 마스트, 윈치 등이 도입되어 건조 기술과 운용 효율성도 향상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 증기선 기술이 발전하면서 범선은 점차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특히 연료 효율이 개선된 복합식 및 삼중 팽창식 증기 기관의 등장은 증기선이 바람에 구애받지 않고 정기적인 운항을 가능하게 하여[6][7] 1880년대 이후 대부분의 무역 노선에서 범선을 대체하게 만들었다. 1869년 수에즈 운하 개통은 범선 시대의 종말을 더욱 앞당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이나 강철로 건조된 대형 철선 범선들은 20세기 초까지 곡물, 구아노 등 대량 화물 운송에 계속 사용되었으며,[48] 일부 상업용 범선은 1960년경까지 운항되었다.[6]
현대에 이르러 범선은 상업적 운송 수단으로서의 역할은 거의 상실했지만, 해군 사관생도나 상선 사관을 위한 훈련선, 요트와 같은 레저 및 스포츠용, 그리고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친환경 선박 기술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2. 1. 고대



인류가 언제부터 범선을 발명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이집트 나일 계곡 유적에는 약 80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돛단배 벽화가 남아 있다.
초기 항해용 범선은 오스트로네시아 민족에 의해 사용되었다. 이들은 기원전 3000년에서 1500년 사이에 카타마란, 아웃리거, 그리고 크랩 클로 세일을 발명하여 오스트로네시아 팽창을 이루었다. 타이완을 출발하여 해상 동남아시아의 섬들을 식민지화하고, 더 나아가 미크로네시아,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 그리고 마다가스카르까지 항해했다. 오스트로네시아 돛대는 돛의 상단과 하단 가장자리를 지탱하는 스파(spar)가 있다는 점에서 서양식 돛대와 차이가 있었다.[8][9] 기원전 2500년경부터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은 태평양과 인도양으로 이주하기 시작했으며, 기원전 1000년경에는 폴리네시아인들이 사모아, 통가 등에 도착했다. 당시 사용된 배의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바람이 약한 시기를 골라 바람을 거슬러 항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미크로네시아인과 폴리네시아인들은 천체 관측, 생물상 관찰, 파도 관찰 등을 이용한 독자적인 항해 기술(스타 내비게이션)을 발전시켜 때로는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대항해를 하였다. 오세아니아에서는 역삼각형 돛(크랩 클로 세일)을 사용한 세일링 카누(아웃리거 카누, 더블 카누)가 활발히 건조되어 사람과 물건의 교류에 사용되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 이전부터 나일 강과 지중해 연안에서 범선을 사용했다. 초기에는 여러 명의 노 젓는 사람에 의존하는 배에 단일 사각돛을 지탱하기 위해 이족 마스트(bipod mast)를 사용했다.[22] 이후 마스트는 단일 기둥 형태로 바뀌었고, 노는 점차 조타용으로 사용되었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 이집트인들은 외양 항해를 시작하여 크레타 섬과 페니키아에 배를 보내 레바논 삼나무 등을 수입했다. 기원전 2700년경 사후라 왕의 무덤에는 두 개의 마스트와 조타용 노를 갖춘 배의 부조가 남아 있으며, 사후라 왕은 8척의 함대를 이끌고 페니키아에서 포로들을 데려왔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1세기 전후의 이집트에서는 두 개의 마스트를 가진 범선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중해 지역에서는 기원전 2200년경 에게해에서 번성한 미노아 문명이 범선을 이용하여 탈라소크라시(해상 제국)를 구축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세계 최초의 사례일 수 있다.[23] 미노아 문명은 무역선을 보호하기 위해 전투 전문 군함으로 구성된 세계 최초의 해군을 창설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페니키아인, 그리스인, 그리고 로마인들은 기원전 1000년부터 서기 400년 사이에 사각돛으로 추진되는 배를 개발했다. 이 배들은 때때로 노를 함께 사용했으며, 방향 제어를 위해 조타 노를 사용했다. 그리스인들은 갤리선을 주로 군함으로 사용했는데, 이 배는 선두에 작은 돛, 중앙에 큰 돛을 달고 순항 시에는 돛을, 전투 시에는 돛을 접고 노를 저어 항해했다. 날렵하고 빠른 갤리선은 “긴 배”로 불리며 연락이나 중요 인물 수송에 쓰였고, 물자 수송에는 속도는 느리지만 튼튼하고 용적이 큰 “둥근 배”라는 상선을 사용했다. 로마인들도 이러한 배들을 이용했으며, 돛대를 두 개 갖춘 배나 암포라를 1만 개 운반할 수 있는 대형선("만선(一万船)")도 만들었다.
한나라(기원전 206년 ~ 서기 220년) 시기 중국 학자들은 최대 4개의 돛을 가진 대형 오스트로네시아 무역선을 ''쿤룬 보''(崑崙舶, "쿤룬 사람들의 배")라고 기록했다. 중국 불교 순례자들은 남인도와 스리랑카로 가는 항해에 이 배를 이용했다.[10]
기원전 북유럽의 범선에 관해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56년에 남긴 기록이 있다. 그는 브리튼인들이 짐승의 가죽이나 얇게 무두질한 가죽으로 만든 돛을 갖춘 목조선을 사용했다고 언급했다.[91]
2. 2. 중세


중세 유럽에서는 8세기 덴마크부터 바이킹들이 클링커 건조 방식의 롱쉽을 만들어 사용했다. 롱쉽은 필요에 따라 단일 사각돛과 노를 함께 사용하여 추진력을 얻었으며[24], 깊은 용골과 탈착식 가로돛을 갖춘 선수와 선미의 모양이 같은 선미선수 동형선 형태였다. 바이킹은 이 배를 타고 잉글랜드를 공격하고 정복했으며, 지중해, 카스피해, 심지어 북아메리카까지 항해했다. 선박 매장 무덤에서 발견된 일부 롱십은 노의 수가 15쌍으로 비교적 적어, 실제 전투용 롱십은 북유럽 사가의 기록처럼 더 많은 노를 갖춘 크고 투박한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이킹은 화물 운송용으로 크나르라는 범선도 사용했는데, 이는 롱십보다 흘수가 깊고 폭이 넓었으며, 노는 적고 돛대는 고정되어 주로 돛의 힘으로 발트 해와 북해를 항해했다.[25] 돛의 바람을 받는 쪽 가장자리는 베이타스라는 막대로 보강하여 바람을 안고 항해하는 능력을 높였다.[26]
바이킹 시대 이후에도 북유럽에서는 하나의 돛대를 가진 선미선수 동형선이 계속 사용되었다. 11세기 노르만인의 잉글랜드 침공을 묘사한 바이외 태피스트리에는 바이킹 선박과 유사한 형태의 배가 등장하지만, 기병 전술에 맞춰 말을 수송하는 등의 변화가 나타난다. 롱십의 또 다른 후예로는 스코틀랜드의 웨스트 하이랜드 갤리선이 있으며, 이는 측면 노 대신 선미에 조타 노를 달고 15세기까지 사용되었다.
12세기경에는 바우스프릿과 선미 키를 갖춘 새로운 형태의 북유럽 선박이 등장했다. 바우스프릿은 풍상 항해 능력을 향상시켰고, 선미 키는 기존의 측면 조타 노를 대체했다. 13~14세기에는 이러한 형태의 대형 선박인 코그선이 한자 동맹의 표준 선박으로 자리 잡았다. 코그선은 기본적으로 클링커 방식으로 만들어졌지만 선체 상부는 카르벨 방식(평판붙임)을 사용했으며, 전시에는 선수루와 선미루를 설치하여 전투용으로 개조되기도 했다. 이러한 구조물은 점차 커지고 상시화되어 상선의 거주 공간으로도 활용되었다. 이 외에도 훌크선이라 불리는 완전히 클링커 방식으로 제작된 대형 선박도 있었다.
한편, 인도양에서는 1200년부터 1500년 사이에 인도와 아프리카 간의 해상 무역이 활발해졌다. 이 시기 주로 사용된 배는 도우선으로, 삼각돛을 사용하여 역풍에서도 항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도우선의 적재 용량은 이 기간 동안 100톤에서 400톤까지 증가했으며, 못을 사용하지 않고 티크 판자를 코코넛 섬유로 꿰매어 만드는 방식으로 건조되었다. 또한 틸러로 조종하는 중앙 키가 도입되었다.[29] 아랍인들은 이슬람 공동체와 신용 제도를 바탕으로 동아프리카에서 중국에 이르는 광범위한 해상 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독자적인 해도와 항해술을 발전시켜 야간 항해도 가능하게 했다. 『천일야화』의 "선원 신드바드" 이야기는 10세기경 아랍 선원들의 활동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교류를 통해 인도화된 아랍인이나 아랍화된 인도인 선원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잔지바르, 파키스탄, 몰디브 등지에서는 삼각돛을 단 전통적인 도우선("도니" 또는 "다우")을 볼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조선술이 크게 발달하여 견고하고 큰 범선들을 건조했다. 북송 시대에 고려로 파견된 사신을 위해 건조된 배는 길이가 약 110m, 적재량이 1100톤 이상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반적인 무역선 역시 275톤급부터 600~900톤급의 만곡선(万斛船)까지 다양했으며, 속도를 중시한 전투선도 운용되었다. 이러한 고려의 범선들은 중국, 일본과의 무역뿐만 아니라, 몽골 원나라의 일본 원정에도 동원되었다.[14][17] 베네치아의 여행가 마르코 폴로는 원나라의 남방 무역용 범선이 4개의 돛대와 약 60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용골과 격벽 구조를 갖추어 안전성을 높였으며, 나침반을 이용해 원양 항해를 했다고 기록했다.
2. 3. 대항해시대

15세기부터 시작된 대항해시대에는 항해 기술과 선박 설계에 중요한 발전이 있었다. 특히 자기 나침반의 도입과 새로운 형태의 범선 등장은 원양 항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였다.
나침반은 고대부터 사용된 태양과 별을 이용한 항해술에 더해져 항해의 정확성을 높였다. 중국에서 발명되어 11세기에 항해에 사용되기 시작했고, 인도양의 아랍 상인들을 통해 전파되었다. 유럽에는 12세기 후반 또는 13세기 초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30] 인도양에서 항해에 나침반이 사용된 기록은 1232년에 처음 나타난다.[13] 유럽인들은 바늘이 회전축 위에서 도는 건식 나침반을 사용했으며, 나침반에 방위를 표시한 나침반 카드 역시 유럽에서 고안되었다.[13]
15세기 초,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대양 항해 선박은 카라크선이었다. 카벨 방식으로 건조되어 선체가 튼튼했고, 크기가 커서 거친 바다에서도 안정적이었다. 대량의 화물과 긴 항해에 필요한 보급품을 실을 수 있었으며, 앞마스트와 중앙마스트에는 사각돛을, 뒷마스트에는 삼각돛(라틴 세일)을 달아 다양한 바람 조건에 대응했다. 높고 둥근 선미와 큰 선미 캐슬, 함교, 선수에는 활대를 갖춘 구조였다. 카라크선은 이후 등장하는 갤리온선의 전신으로, 선박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설계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후 선박들이 더욱 전문화되기는 했지만, 대항해시대 동안 기본적인 설계는 유지되었다.[31]

이 시기 범선들은 바람을 향해 약 70° 각도까지만 항해할 수 있었고, 바람을 안고 나아가는 풍상 항해는 지그재그로 어렵게 이루어졌다. 이 때문에 폭풍우 속에서 해안이나 모래톱에 좌초될 위험이 컸다.[3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범선들은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가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에 도달하고,[33]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며,[34]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이 최초의 세계 일주를 완수하는 등[35] 역사적인 항해를 가능하게 했다.
유럽에서 대항해시대가 열리기 이전, 동아시아에서도 발달된 조선 기술을 바탕으로 한 해상 활동이 활발했다. 북송 시대에는 고려로 파견되는 사신을 위해 길이 약 110m, 적재량 1100ton 이상의 거대한 배를 건조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반 무역선도 적재량 275ton 정도의 큰 배부터, 만곡선(万斛船)이라 불리는 600ton에서 900ton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범선이 사용되었다. 원나라 시대의 여행가 마르코 폴로(Marco Polo)는 『동방견문록』에서 당시 중국 남방 무역선의 특징을 상세히 묘사했다. 4개의 돛대를 가졌고, 약 60명의 승무원이 탑승했으며, 용골 구조로 선체 강도를 높이고, 격벽 구조를 채택하여 침수 시에도 쉽게 침몰하지 않도록 설계되었다고 기록했다. 또한 나침반을 사용하여 정확한 원양 항해가 가능했다고 전했다. 명나라의 정화는 1405년부터 1433년까지 7차례에 걸쳐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동남아시아, 인도, 아라비아 반도,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항해했다. 이 항해에는 길이가 137m에 달하는 거대한 '보선'이 포함되었다고 전해진다.
15세기 유럽에서는 포르투갈의 엔리케 항해왕자(Infante D. Henrique)가 아프리카 탐험과 인도 항로 개척을 목표로 선원 양성과 범선 개량에 힘썼다. 특히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이후, 기존의 육상 교역로가 오스만 제국에 의해 통제되면서 이슬람 상인들이 높은 관세를 부과하자, 유럽 국가들은 도자기, 향신료, 비단 등을 직접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해상 루트 개척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전의 1개 돛대 범선에서 발전하여 3개의 돛대를 가진 카라벨선이 등장했다. 카라벨선은 3개의 마스트에 주로 삼각돛(라틴 세일)을 사용하여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는 능력이 뛰어났고, 이는 범선의 활동 범위를 획기적으로 넓혔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첫 항해에 동행했던 니냐호와 핀타호가 바로 카라벨선이었다. 카라벨선과 거의 동시에 개발된 카라크선은 더 많은 화물을 싣고 먼 거리를 항해할 수 있어 대서양과 인도양을 건너는 장거리 무역에 적합했다. 이러한 선박들의 발전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1492년), 바스쿠 다 가마의 희망봉 경유 인도 항로 개척(1498년), 마젤란의 세계 일주(1519년-1522년)와 같은 위대한 항해들을 뒷받침했다.

16세기에 들어서면서 주력 범선은 카라벨선과 카라크선에서 갤리온선으로 점차 대체되었다. 갤리온선은 해적의 위협에 대응하고 해상 전투 능력을 높이기 위해 많은 수의 대포를 탑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군함 역시 기존의 갤리선에서 갤리온선으로 바뀌었다. 갤리온선은 선미루가 높고, 용골 길이가 선폭의 3배까지 길어져 속도와 안정성을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상선으로도 사용되었지만, 강력한 무장을 갖출 수 있어 주로 군함으로 활약했다. 대항해시대 초기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해상 패권을 장악했지만, 1588년 칼레 해전에서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이끄는 영국 함대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 전투는 스페인이 대서양 제해권을 상실하고 영국이 새로운 해상 강국으로 부상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선박명 | 활동 시기 | 국가 | 종류 | 비고 |
---|---|---|---|---|
보선 | 15세기 | 명나라 | 정크선 | 정화의 대항해 함대 기함으로 추정되는 거대 범선. 길이 약 137m, 너비 약 56m. |
산타 마리아호 | 15세기 | 스페인 | 나오 (카라크선) |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첫 항해 기함. 이스파니올라섬에서 좌초. |
니냐호, 핀타호 | 15세기 | 스페인 | 카라벨선 | 콜럼버스의 첫 항해에 참여한 척후선. 삼각돛을 주로 사용. |
비토리아호 | 16세기 | 스페인 | 카라크선 | 페르디난드 마젤란 함대의 유일한 생존 선박으로 최초의 세계 일주 달성. |
골든 하인드호 | 16세기 후반 | 영국 | 갤리온선 |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세계 일주 기함. |
2. 4. 근대
18세기와 19세기는 범선 기술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로, 흔히 '범선 시대'로 불린다. 이 시기에는 대형 군함과 빠른 상선이 등장하며 해상 활동의 양상을 크게 바꾸었다.
군함 분야에서는 대포 성능이 향상되고 재장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여러 층의 갑판에 수십 문의 대포를 탑재한 대형 범선 군함이 주력으로 자리 잡았다. 17세기 중반부터는 3층 갑판에 대포를 실은 군함이 등장했으며, 해전 전술도 개별 함선의 전투보다는 함대가 전열을 이루어 화력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전술 변화에 따라, 기존의 갤리온선은 여러 층의 포열 갑판을 갖춘 전열함으로 발전했다. 전열함은 함대의 주력으로서 적 함대와 정면으로 맞서 싸우도록 설계되었다.[39] 18세기에는 전열함보다 작고 빠른 프리깃과 슬루프함이 등장하여, 호송, 정찰, 봉쇄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40] 이 시기 해전의 대표적인 예로는 1805년의 트라팔가르 해전이 있다. 또한 18세기 초에는 조타봉 대신 조타륜이 도입되어 더 효율적인 조종이 가능해졌다.


상선 분야에서는 19세기에 클리퍼라는 고속 범선이 등장하여 원양 무역을 주도했다. 특히 중국에서 영국까지 차를 운반하는 '티 레이스(Tea Race)'는 유명했으며, 커티삭과 같은 클리퍼들이 속도 경쟁을 벌였다. 클리퍼는 빠른 속도를 위해 일반 상선보다 길고 날렵한 선체를 가졌는데, 이는 증기기관을 이용한 예인선이 보급되어 항구 입출항 시 예인이 가능해졌기에 가능했다.
19세기는 범선 건조 기술이 크게 발전한 시기이기도 하다. 더 강한 로프 제작법이 고안되었고, 1850년대에는 철제 와이어가 도입되어 삭구 설계의 자유도가 높아졌다. 1827년에는 최초로 철제 마스트를 사용한 군함(HMS 페어턴호)이 건조되었으며, 1850년에는 철제 늑골에 나무 외판을 댄 목철선이 등장했다. 또한, 증기선과의 경쟁 속에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더 적은 인원으로 돛을 조작할 수 있도록 돛의 구성과 축삭법이 개량되었고, 1890년대에는 윈치가 도입되어 노동력을 절감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 연료 효율이 개선된 복합식 및 삼중 팽창식 증기 기관이 등장하면서 범선은 점차 경쟁력을 잃어갔다. 초기 증기선은 연료 효율이 낮아 시속 8노트 정도의 속도밖에 내지 못했지만[49], 기술 발달로 성능이 향상되면서 1880년대에는 대부분의 무역에서 증기선이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특히 1869년 수에즈 운하 개통은 범선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바람이 거의 없는 수에즈 운하는 증기선만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유럽 항로에서 범선은 설 자리를 잃었다. 많은 클리퍼들이 오스트레일리아의 양모 수송 등으로 전환되었지만 결국 사라졌다.
철선 범선은 범선 시대 말기인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최종 진화 형태였다.[48] 이들은 주로 187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건조되었으며, 철이나 강철로 만들어진 선체에 3개에서 5개의 돛대를 달고 목재, 구아노, 곡물, 광석 등 대량 화물을 장거리 운송하는 데 사용되었다. 후기 모델들은 강철 선체를 가졌으며, 1875년에 도입된 4개의 돛대를 가진 철선은 증기선과의 경쟁에서 범선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기여했다.[50] 가장 큰 예 중 하나는 5개의 돛대를 가진 프로이센호로, 7800ton의 화물을 실을 수 있었다.[51] 이러한 대형 범선들은 증기 기관을 보조 동력으로 사용하여 윈치, 호이스트, 펌프 등을 작동시켜 적은 인원으로도 운항이 가능했다. 예를 들어 프로이센호는 48명의 승무원으로 운항되었다.[52]
하지만 증기선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서, 바람에 의존해야 하는 범선은 점차 경쟁에서 밀려났다. 20세기 초까지도 일부 범선은 합계곶을 경유하는 오스트레일리아-유럽 항로 등에서 경쟁력을 유지했지만,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많은 수가 손실되었고 상업적 운항은 점차 중단되었다. 1957년 독일 연습선 파미르(Pamir)호의 침몰 사고와 이듬해 칠레 오메가(Omega)호의 침몰 이후 대형 상업 범선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6][7]
2. 5. 현대
20세기 들어 증기선과 내연기관 선박이 발전하면서 상업용 범선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다. 복합식, 삼중 팽창식 증기 기관의 효율 향상으로 1880년대부터 증기선이 대부분의 무역에서 경쟁 우위를 점했고, 상업용 범선은 20세기까지 명맥을 유지했으나 1960년경 마지막 운항을 끝으로 자취를 감추었다.[6][7] 특히 제1차 세계 대전 중 독일 U보트의 무차별 공격과 전후 경제 상황 변화는 상업 범선의 종말을 앞당겼다. 핀란드의 선주 구스타프 에릭손이 운영하던 대형 범선 선단도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대부분의 선박을 잃고 1947년 그의 사망과 함께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운항하던 상업용 대형 범선은 1957년 파미르(Pamir)호와 1958년 오메가(Omega)호가 침몰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그러나 범선 기술 자체는 계속 발전했다. 1960년대 독일에서는 선원들이 돛대에 오를 필요 없이 중앙에서 모든 돛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다이나릭(DynaRig) 시스템이 개발되었다. 이는 상선의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연구되었으며, 요트 말타 팔콘과 블랙펄 등에 적용되었다.[52][54] 또한 석유 파동 시기에는 연료 절약을 위해 항공 역학을 응용한 하이테크 상용 범선 건조가 검토되어 신애덕마루 등 소수가 실제로 운항되기도 했으나, 높은 초기 투자 및 유지 비용, 적재량 감소 문제로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다.[92]
21세기에 들어 기후 변화에 대한 우려와 연료비 절감 필요성이 커지면서 풍력 에너지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대형 화물선의 연료 소비를 줄이기 위해 돛이나 연(kite)을 보조 동력으로 사용하는 기범선 및 하이브리드 선박 연구가 진행 중이다. 2007년 이후 컴퓨터로 제어되는 대형 연을 장착한 탱커가 운항을 시작했으며, 연료 소비를 최대 15~30%까지 줄이는 효과를 보였다. 2008년에는 프랑스의 해운업체 CTMV가 와인 상업 수송에 범선을 다시 투입하여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연료비를 절감하는 시도를 했다. 2009년에는 도쿄 대학과 해운회사가 고정익 돛을 이용한 에너지 절약 범선 연구인 「윈드챌린저 계획」을 시작했으며,[93] 이 계획은 상선 미쓰이와 오시마 조선소로 이어져 2022년 10월, 고정익 돛을 장착한 석탄 운반선 「마츠카제마루」가 운항을 시작했다. 이 선박은 오스트레일리아 등과 일본 간 실제 운항에서 평균 5~8%, 최대 17%의 연료 절감 효과를 확인했다.[95] 2023년까지 약 30척의 선박이 풍력 보조 장치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 수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55][56] 2024년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러한 기술이 시험 단계를 넘어 산업계 채택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보도했다.[57] FRP 등 경량 소재로 만든 돛이나, 원통을 회전시켜 마그누스 효과로 양력을 얻는 회전 돛선 등 새로운 방식의 돛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88]


상업 운송 수단으로서의 역할은 크게 줄었지만, 현대에도 범선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분야는 훈련선이다. 기선이 주류가 된 21세기에도 여러 나라의 해군 사관학교나 해기교육기관에서는 항해 및 조선 기술 훈련을 위해 범선을 운용하고 있다. 일본의 항해훈련소(현 해기교육기관) 소속 일본마루와 해왕마루가 대표적이며, 미국 연안 경비대는 독일로부터 전후 배상으로 받은 바크선 이글(Eagle)을 사관학교 훈련선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세일링 문화가 발달하여, 레저 및 스포츠용으로 범선이 꾸준히 이용되고 있다. 과거의 중소형 상선이나 어업용 범선을 개조하여 레저용으로 사용하기도 하며, 아메리카스컵이나 디 오션 레이스와 같은 국제적인 요트 대회가 열린다. 이들 대회에 참가하는 범선은 최신 유체역학 지식과 탄소 섬유 등 첨단 소재를 활용하여 제작된다. 스타 클리퍼사와 같은 회사는 로열 클리퍼와 같은 대형 범선 크루즈 여객선을 운항하며 관광 산업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전통문화 계승 차원에서 범선을 활용하기도 한다. 홋카이도 노쓰케만에서는 털게 서식지인 잘피를 보호하기 위해 엔진을 끄고 돛만으로 조업하는 전통 어업 방식인 우타세아미 어업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지역 관광 자원으로도 활용된다.[96]
한편, 범선 시대에 정립된 항해 규칙 중 일부는 현대 국제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우현선 우선의 원칙」이다.
다음은 현대에 운용되거나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훈련용 범선 및 특수 목적 범선의 일부 목록이다.
함명 | 진수 연도 | 국가 | 선종 | 비고 |
---|---|---|---|---|
초대 대성환 | 1904년 | 일본 | 바크선 | 도쿄고등상선학교 연습선. 1945년 침몰. |
운응환 | 1909년 | 일본 | 바크선 | 도쿄수산대학 연습선. 현존 최고(最古) 국산 강철선. 도쿄해양대학에 보존. 국가등록유형문화재. |
스타츠라트 렘쿨 | 1914년 | 독일→노르웨이 | 바크선 | 제1차 세계대전 배상함. 노르웨이에서 연습선으로 운용 중. |
세도프 | 1921년 | 독일→소련→러시아 | 바크선 | 3,432 총톤급. 제2차 세계대전 배상함. 러시아에서 어업 종사자 양성용으로 운용 중. 2020년 북극해 항로 항해 성공.[98] |
진덕환 | 1924년 | 일본 | 바켄틴 | 고베고등상선학교 연습선. 1945년 공습으로 대파 후 기선으로 개조.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 피해로 해체. |
일본마루 (초대) | 1930년 | 일본 | 바크선 | 문부성 항해 연습선. 1984년 은퇴.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 21에 전시 중. |
해왕마루 (초대) | 1930년 | 일본 | 바크선 | 문부성 항해 연습선. 1989년 은퇴. 도야마 신항 해왕환 파크에 전시 중. |
아메리고 베스푸치 | 1931년 | 이탈리아 | 쉽 | 이탈리아 해군 훈련함.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범선으로 불림.[99][100] |
호쿨레아 | 1975년 | 하와이 | 항해 카누 | 전통 항해 기술 연구용 이중 선체 카누. 폴리네시아 항해에 사용됨. |
신애덕마루 | 1980년 | 일본 | - | 세계 최초의 에너지 절약 항해 상선. |
쿠아우테목 | 1981년 | 멕시코 | 바크선 | 멕시코 해군 항해 연습선.[102] |
해성 | 1987년 | 폴란드→일본 | 브리건틴 | 일본 NPO 운영 트레이닝십. 2003년 미국에 매각. |
미라이에 | 1992년 | 일본 | 스쿠너 | 오사카시 소유 트레이닝십 (구 아코가레). 일본 범선 최초 세계 일주 달성. |
샤바브 오만 2호 | 2014년 | 오만 | 쉽 | 오만 해군 범선 훈련함.[103] |
비마 수치함 | 2017년 | 인도네시아 | 바크선 | 인도네시아 해군 범선 훈련함. 디지털 장비 탑재.[104] |
시 클라우드 스피릿 | 2021년 | 독일 | 쉽 | 독일 시 클라우드 크루즈 소속 범선 크루즈 여객선.[105][106] |
범선은 그 구조와 용도, 발달 과정에 따라 매우 다양한 종류로 나뉜다. 주요 분류 기준으로는 돛의 형태와 배치 방식(돛의 형태), 돛대의 수(돛대의 수), 주된 사용 목적(용도), 그리고 건조되고 사용된 지역적 특성(지역적 특성) 등이 있다.
3. 종류
돛의 형태는 크게 바람을 뒤에서 받는 데 유리한 가로돛(사각돛)과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는 데 유리한 세로돛(삼각돛 등)으로 나뉜다. 이 돛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배치하는지에 따라 스쿠너, 브리그, 바크 등 다양한 돛의 배치(sail plan)가 결정된다. 돛대의 수는 배의 크기와 성능에 영향을 미치며, 1개의 돛대를 가진 작은 슬루프나 커터부터 3개 이상의 돛대를 가진 전장범선(Full-rigged ship)이나 바크까지 다양하다.
용도에 따라서는 화물 운송을 위한 상선, 전투를 위한 군함, 어업을 위한 어선, 유람이나 경기를 위한 요트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상선 중에서는 19세기 빠른 속도를 자랑했던 클리퍼가 유명하며, 군함으로는 대항해시대의 갤리온이나 나폴레옹 전쟁 시기 전열함, 프리깃 등이 대표적이다.
지역별로는 오스트로네시아의 아웃리거 보트나 카타마란, 중국의 정크선, 아랍의 다우, 북유럽 바이킹의 롱십 등 각기 독특한 형태와 구조를 가진 범선들이 발달했다. 고대 지중해의 갤리나 대항해시대를 연 캐러벨, 캐랙 등도 특정 시대와 지역을 대표하는 범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범선의 종류와 특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하위 섹션들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3. 1. 돛의 형태에 따른 분류
범선의 분류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흔히 사용되는 방법으로는 '''돛의 배치'''에 따라 분류하는 방법이 있다.
「돛의 배치」(帆装)는 선박공학에서 범선의 장비 구성 요소로, 돛대와 돛의 조합을 체계화한 것이다. 대부분 다음 세 가지 구성 요소를 포함한다.
돛에는 '''가로돛'''과 '''세로돛'''의 두 종류가 있다.
돛 문서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는 FRP 등으로 만든 경량 돛이나 원통을 회전시켜 마그누스 효과로 양력을 발생시키는 회전 돛선 등의 새로운 방식이 개발되고 있으며, 선체 자체를 돛으로 활용하는 연구도 있다.[88]
다음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돛의 배치와 그와 유사한 특징적인 돛의 배치이다. 일반적인 돛의 배치는 돛대의 개수와 거기에 달린 돛의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림 | 명칭 | 돛의 종류 | 주석 |
---|---|---|---|
-- | 썬피쉬 | 라틴 세일 | |
-- | 캣보트 | 가프 세일 | |
-- | 건터 | 가프 세일과 집 | |
-- | 슬루프 | 건터보다 가프 세일이 크고, 나뉘어져 있는 점이 다르다. 전투용은 함포의 수에 따라 분류된다(슬루프#전투용 슬루프 참조). | |
-- | 커터 | 슬루프와 마스트의 위치가 다르다(커터(선박)#범선 커터 참조). | |
-- | 프로아 | 클럽크로우 세일 |
그림 | 명칭 | 전주(前檣)의 주돛 | 후주(後檣)의 주돛 | 주석 |
---|---|---|---|---|
![]() | 브리그 | 가로돛 | 전투용은 함포의 수에 따라 분류된다(슬루프#전투용 슬루프 참조). | |
![]() | 스노우 | 브리그형에 더해 "스노우 마스트"라고 불리는 작은 세로돛을 선미에 갖는다. | ||
![]() | 브리간틴 | 가로돛 | 세로돛 | 후방 마스트의 돛 종류는 묻지 않지만, 브리그와 구별하여 세로돛인 경우가 많다. |
![]() | 헤르마프로디트 브리그 (스쿠너 브리그) | 브리그형 가로돛, 스쿠너형 세로돛을 가진다. 브리간틴과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다. | ||
-- | 스쿠너 | 세로돛 | 마스트가 3개 이상인 경우에도, 모두 세로돛이라면 스쿠너라고 불린다. | |
![]() | 탑세일 스쿠너 | 스쿠너 중 앞 마스트 상부에 가로돛을 가진 것. 조작이 비교적 용이하기 때문에 훈련선에 이 형태가 많다. | ||
-- | 투탑세일 스쿠너 (잭애스 브리그) | 스쿠너 중, 양쪽 마스트 상부에 가로돛을 가진 것. | ||
-- | 케치 | 상기 돛대 장비에 비해 소형의 미즌 마스트를 가진다. 미즌 마스트의 높이와 목적으로 구별된다(케치#유사한 돛대 장비 참조). | ||
-- | 요울 |
그림 | 명칭 | 전주(前檣)의 주돛 | 중주(中檣)의 주돛 | 후주(後檣)의 주돛 | 주석 |
---|---|---|---|---|---|
-- | 십 (Ship) (전장범선) | 가로돛 | 전열함과 클리퍼도 포함된다. | ||
-- | 바크 | 가로돛 | 세로돛 | ||
-- | 잭애스 바크 | 가로돛 | 가로돛과 세로돛 반반 | 세로돛 | 돛의 비율이 바크와 바켄틴의 중간. 마스트가 홀수인 경우, 중앙 마스트의 돛이 가로돛과 세로돛 반반이 된다. |
-- | 바켄틴 (스쿠너 바크) | 가로돛 | 세로돛 | ||
-- | 스쿠너 | 세로돛 |
이미지 | 명칭 | 지역 | 특징 |
---|---|---|---|
-- | 정크선 | 중국 | 정크 돛을 가짐. |
-- | 제벡선 | 아라비아 인근 지중해 | 가장 앞쪽 마스트만 가로돛, 나머지는 세로돛을 가짐. 초기에는 2개의 마스트, 후기에는 3개의 마스트. 브리간틴이나 바켄틴은 세로돛이 가프세일, 제벡선은 라틴세일. |
-- | 펠루카 | 아라비아 인근 지중해 | 제벡선과 유사한 돛대 배열이지만, 모든 마스트에 라틴세일을 가짐. |
북방선의 가로돛 기술과 남방선의 세로돛 기술이 융합하여 15세기에 「표준형 전장범선」이 탄생했고, 19세기의 클리퍼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