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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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5세기는 여러 국가에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 시기로, 유럽에서는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주요 국가였고, 동로마 제국은 쇠퇴했으며, 오스만 제국이 중동에서 부상했다. 동아시아에서는 명나라, 무로마치 막부, 조선이 각 지역의 주요 국가였으며, 서아프리카에서는 송가이 제국이 번성했다. 주요 사건으로는 조선의 태종 즉위, 아쟁쿠르 전투, 세종대왕의 집현전 설치와 훈민정음 반포, 동로마 제국의 멸망, 장미 전쟁,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로 발견 등이 있다. 이 시기에는 르네상스가 시작되고, 인쇄술이 발전했으며, 한글 창제와 같은 문화적 변화도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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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세기 - 이탈리아 전쟁
이탈리아 전쟁은 1494년부터 1559년까지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이탈리아 반도를 무대로 벌인 일련의 전쟁으로, 유럽 세력 균형을 변화시키고 스페인의 부상과 이탈리아의 쇠퇴를 가져왔다. - 15세기 - 유감동
조선 초 유귀수의 딸이자 최중기의 아내였던 유감동은 강간 후 이혼하고 기생이 되어 여러 남자와 간통한 혐의로 처벌받았으며, 이 사건은 조선 시대 간통죄 단속 강화의 계기가 되었다. - 날짜 - 12세기
12세기는 서기 1101년부터 1200년까지의 기간으로, 유럽, 아시아, 중동 등지에서 정치적,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으며, 잉글랜드의 알턴 조약 체결, 십자군 전쟁, 12세기 르네상스, 북송과 남송의 교체, 가마쿠라 막부 성립 등의 주요 사건이 발생했다. - 날짜 - 14세기
14세기는 유럽과 아시아의 정치적, 사회적 변동, 즉 흑사병의 유행, 백년 전쟁, 명나라와 조선의 건국, 티무르 제국의 부상, 일본의 남북조 시대 등의 주요 사건들을 포함하며, 몽골 제국의 쇠퇴와 함께 새로운 지역 강국들이 등장하여 유라시아 대륙의 정치 지형을 재편하고 흑사병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겪은 시기이다.
| 15세기 | |
|---|---|
| 지도 정보 | |
| 시대 개요 | |
| 기간 | 1401년 ~ 1500년 |
| 주요 사건 | 중세 시대의 종말 르네상스의 발흥 대항해시대의 시작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1453년) 인쇄술의 발명 |
| 정치 및 사회 | |
| 정치적 특징 | 강력한 군주 국가의 등장 봉건 제도의 쇠퇴 도시의 성장 |
| 사회적 특징 | 계급 사회의 지속 상업과 무역의 발달 인문주의 사상의 확산 |
| 문화 및 예술 | |
| 예술 | 르네상스 미술의 발달 유화 기법의 발전 조각과 건축의 혁신 |
| 문학 | 인쇄술 발달로 인한 대중 문학의 성장 고전 문학에 대한 관심 증가 |
| 과학 | 천문학과 지리학의 발전 해부학 연구의 시작 |
| 주요 인물 | |
| 유럽 |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니콜로 마키아벨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 아시아 | 정화 (명나라) 세종대왕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 만수르 샤 항 투아 |
| 주요 사건 상세 | |
|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비잔티움 제국 멸망 중세 시대의 종말을 알림 |
| 인쇄술 발명 | 구텐베르크에 의해 활판 인쇄술 발명 지식과 정보의 확산에 기여 |
| 대항해시대 시작 | 유럽 국가들의 해상 탐험 시작 새로운 무역로 개척 식민주의의 시작 |
| 벵골의 번영 | 벵골 지역의 번영 곡물, 소금, 과일, 술, 귀금속, 직물 등 수출 유럽에서 "교역하기 가장 부유한 나라"로 불림 |
| 기타 | |
| 참고 문헌 | 로저 크롤리, 콘스탄티노플: 마지막 위대한 포위, 1453 찰스 포스터, 콘스탄티노플 정복과 제국의 종말 마셜 맥루한, 구텐베르크 은하계 엘리자베스 아이젠스타인, 인쇄 혁명 뤼시앵 페브르, 앙리 장 마르탱, 책의 등장 존 맨, 구텐베르크: 세계를 바꾼 남자 존 하비, 블랙 데스 |
| 관련 인물 | 마르탱 르 프랑 니콜라 롤랭 헨리 페인 (화가) 변문진 |
| 기타 정보 | 헝가리 연대기 |
2. 시대
| 지역 | 국가 |
|---|---|
| 유럽 | 영국 - 잉글랜드 왕국 프랑스 - 프랑스 왕국 동유럽 - 동로마 제국 러시아 - 모스크바 대공국 |
| 중동 | 오스만 제국 |
| 동아시아 | 중국 - 명나라 일본 - 무로마치 막부 한국 - 조선 |
| 서아프리카 | 송가이제국 |
1401년 조선에서 태종이 즉위하고 신문고를 설치했다.[5] 1415년에는 아쟁쿠르 전투가 일어났다. 1420년 세종대왕이 집현전을 설치했고,[10] 1429년에는 프랑스 랭스에서 샤를 7세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1442년 조선에서 측우기를 제작했고,[10] 1446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했다.[10]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고대부터 이어져 온 로마 제국이 완전히 멸망했다. 이를 '중세의 끝'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오스만 제국의 세력이 확장되어 지중해 무역을 지배하자, 15세기 중반부터 포르투갈, 스페인을 중심으로 새로운 무역로 개척을 위한 항해 붐이 일어났고, 이는 대항해시대로 이어졌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면서 유럽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신대륙 진출을 시작했다.
한편,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로마, 나폴리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로디 조약은 이탈리아 반도의 안정을 가져왔다. 철학, 과학, 예술 등에서 르네상스 문화가 발전했으며, 그 영향은 알프스 이북 서유럽 국가들에도 미쳐 북방 르네상스가 형성되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연표 참조)
석탄은 에너지원 및 난방용으로 매우 중요해졌다.[15]
일본은 무로마치 시대 중기에 해당한다. 오닌의 난(1467년) 또는 명응의 정변(1493년) 이후는 '''전국 시대'''로 구분되기도 한다. 전국 시대에는 무로마치 막부의 권력이 크게 약화되고, 막부와 슈고 체제가 붕괴되면서 전국 다이묘들이 난립하여 전국적인 혼란이 약 1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3. 주요 사건
1453년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백년 전쟁이 끝났으며,[10] 1455년에는 장미전쟁이 시작되었다.[10] 1456년 조선에서 사육신 사건이 일어났다.[10]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고,[1] 1494년에는 이탈리아 전쟁이 발발했다. 1497년부터 1500년까지 무오사화가 발생했고,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항로를 발견했다.[1]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유럽에서는 중세가 끝나고, 대항해시대가 시작되었다.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도착은 유럽 국가들의 신대륙 진출 경쟁을 촉발했다. 한편,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 문화가 발전하여 알프스 이북 서유럽 국가들에도 영향을 미쳐 북방 르네상스가 형성되었다.
일본에서는 무로마치 시대 중기 오닌의 난(1467년) 또는 명응의 정변(1493년) 이후 전국 시대로 구분되며, 무로마치 막부 권력 약화와 전국 다이묘 난립으로 혼란이 계속되었다.
3. 1. 1400년대

3. 2. 1410년대
3. 3. 1420년대
1420년 조선의 세종대왕이 집현전을 설치하였다.[10] 같은 해 중국의 자금성 건설이 베이징에서 완료되었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이페 제국이 붕괴되었다.[10]
1424년 제임스 1세가 1406년 이후 세 명의 잉글랜드 국왕에게 인질로 잡혀 있다가 스코틀랜드로 귀환하였다.[10] 같은 해 데바 라야 2세가 비라 비자야 부카 라야의 뒤를 이어 비자야나가라 제국의 군주가 되었다.[10]
1425년 마르티누스 5세에 의해 가톨릭 로번 대학교 (벨기에)가 설립되었다.[10]
1427년 이트스코아틀이 테노치티틀란의 네 번째 ''틀라토아니''이자 아즈텍 제국의 초대 황제로 즉위하였다.[10]
1429년 잔 다르크가 오를레앙 공방전을 종식시키고 백년전쟁의 전세를 역전시켰으며, 같은 해 프랑스 랭스에서 샤를 7세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다.[10] 또한 수히타 여왕이 위크라마와르다나의 뒤를 이어 마자파히트의 통치자가 되었다.[10]
3. 4. 1430년대
3. 5. 1440년대
1442년 조선에서 측우기를 제작하였다.[10] 1446년에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하였다.[10] 1443년에는 세종대왕이 한국어를 위한 토착 음소 문자 시스템인 한글을 발표하였다.[10]
1440년대에는 골든 호드가 시베리아 칸국, 카잔 칸국, 아스트라한 칸국, 크림 칸국, 대호드로 분열되었다. 1440년부터 1469년까지 몬테수마 1세의 통치 하에 아즈텍 제국은 메소아메리카의 지배적인 세력이 되었다. 1440년에는 에우아레가 서아프리카 도시 베닌의 지배자가 되어 베닌 제국으로 성장시켰다. 같은 해 몬테수마 1세는 테노치티틀란의 5대 트라토아니이자 아즈텍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1441년에는 플랑드르 화가 얀 반 에이크가 사망하였고, 포르투갈 항해사들이 서아프리카를 항해하고 아프리카에서 포르투갈로 직접 아프리카 노예를 수송함으로써 대서양 노예 무역을 재개하였다. 같은 해 마야판 연맹에서 투툴시우와 코콤 사이에 내전이 발발하여 연맹이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1444년에는 레자에서 알바니아 연맹이 설립되고 스칸데르베그가 지도자로 선출되었으며,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이 시작되어 1479년까지 알바니아 국가가 존속되었다. 같은 해 무라드 2세 술탄 통치하의 오스만 제국이 바르나 전투에서 폴란드와 헝가리 연합군을 패배시켰다.
1445년 카잔 칸국이 수즈달 전투에서 모스크바 대공국을 패배시켰다.[10] 1446년 말리카르주나 라야가 아버지 데바 라야 2세의 뒤를 이어 비자야나가라 제국의 군주가 되었다.[10] 1449년에는 성인 스리만타 상카르데바가 탄생하였고, 에센 타이시가 이끄는 오이라트 몽골의 중국 침입이 투무보 전투에서 정통제의 포로로 끝났다.[10]
3. 6. 1450년대
1453년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백년 전쟁이 끝났다.[10] 1455년에는 장미전쟁이 일어났다.[10] 1456년에는 조선에서 사육신 사건이 일어났다.[10]
3. 7. 1460년대
1461년 마야판 동맹이 해체되고 17개의 쿠치카발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10] 오스만 제국에 의해 사라예보 도시가 건설된다.[10] 같은 해 장미 전쟁에서 요크 공작 에드워드 4세가 이끄는 요크 가문의 군대가 모티머 크로스 전투에서 승리하고, 세인트 올번스 제2차 전투에서는 앙주 백작부인 마거릿이 이끄는 랭커스터 가문의 군대가 승리한다.[10] 요크 공작 에드워드 4세는 런던을 장악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며, 토우턴 전투에서 승리하여 왕위를 확고히 한다.[10] 비잔티움 제국 장군 그라이차스 팔라이올로고스는 살메니코 성을 오스만 제국에 명예롭게 항복시킨다.[10] 프랑스의 루이 11세가 프랑스의 샤를 7세의 뒤를 이어 왕이 된다.[10]
1462년, 송가이 제국의 통치자 소니 알리가 팀북투를 점령하고 말리 제국을 정복한다.[10] 그는 가오, 팀북투, 제네를 주요 도시로 발전시키고, 니제르 강을 따라 무역을 통제한다.[10] 메흐메트 2세는 블라드 3세 드라큘라에 의해 야간 공격에서 격퇴된다.[10]
1464년,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4세가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비밀리에 결혼한다.[10]
1465년, 1465년 모로코 반란으로 마리니드 왕조의 술탄 압드 알-하크 2세가 살해된다.[10]
1466년, 싱하위크라마와르다나가 기리샤와르다나의 뒤를 이어 마자파히트의 통치자가 된다.[10]
1467년, 우준 하산이 카라 코윤루의 자한 샤를 물리친다.[10] 일본에서는 센고쿠 시대가 시작된다.[10]
1469년, 아라곤의 페르디난드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1세의 결혼으로 스페인 통일의 기반이 마련된다.[10] 헝가리의 마티아스 코르비누스가 보헤미아 일부를 정복하고,[10] 구루 나낙 데브가 탄생한다.[10] 아사야카틀이 아즈텍의 틀라토아니로 즉위한다.[10]
3. 8. 1470년대
3. 9. 1480년대

3. 10. 1490년대
4. 주요 인물
15세기 주요 인물들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이름 | 출생-사망 | 주요 활동 및 업적 |
|---|---|---|
| 영락제 | 1360년 - 1424년 | 명나라의 제3대 황제(재위 1402년 - 1424년). 정난의 변에서 승리하고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겼다.[3] |
| 정화 | 1371년 - 1434년 | 명나라의 환관이자 탐험가.[9] 영락제의 명으로 남해 대원정을 지휘하여 동남아시아, 인도, 아라비아 등에 파견되었다.[9] |
|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 1377년 - 1436년 | 피렌체의 건축가. 르네상스 양식의 피렌체 대성당을 건립했다. |
| 정인지 | 1396년 - 1478년 | 조선의 문신, 정치인, 한글학자. |
| 세종대왕 | 1397년 - 1450년 | 조선의 제4대 임금(재위 1418년 - 1450년).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1] |
| 콘스탄티누스 11세 | 1409년 - 1453년 |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재위 1448년 - 1453년). |
| 잔 다르크 | 1412년 - 1431년 | 프랑스의 농민 출신으로, "오를레앙의 처녀"로 불린다. 백년 전쟁에서 프랑스군을 이끌었으나, 마녀 재판에서 화형당했다. |
| 한명회 | 1415년 - 1487년 | 조선의 무신, 정치인. |
| 김담 | 1416년 - 1464년 | 조선의 문신, 수학자, 천문학자. |
| 신숙주 | 1417년 - 1475년 | 조선의 문신, 정치인, 한글학자. |
| 메메드 2세 | 1432년 - 1481년 | 오스만 제국의 술탄(재위 1451년 - 1481년). |
| 인수대비 한씨 | 1437년 - 1504년 | 조선 성종의 모후. |
| 어우동 | 1440년경 - 1480년 | 조선의 기생, 시인, 화가. |
| 이반 3세 | 1440년 - 1505년 | 모스크바 대공(재위 1462년 - 1505년). |
| 에드워드 4세 | 1442년 - 1483년 | 잉글랜드 왕(재위 1461년 - 1483년). |
| 로렌조 데 메디치 | 1449년 - 1492년 | 피렌체의 은행가. 코시모 데 메디치의 손자로, 사실상 피렌체의 참주였다. |
|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1451년 - 1506년 | 아메리카 대륙 발견자. |
| 잉글랜드의 리처드 3세 | 1452년 - 1485년 | 잉글랜드 왕(재위 1483년 - 1485년). |
| 레오나르도 다 빈치 | 1452년 - 1519년 | 피렌체 출신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 등으로, "만능의 천재"로 불린다. 대표작은 "모나리자"이다. |
| 헨리 7세 | 1457년 - 1509년 | 잉글랜드 왕. 튜더 왕조를 개창했다. |
| 미켈란젤로 | 1475년 - 1564년 | 피렌체의 화가, 조각가. 대표작은 "다비드상", "피에타", "최후의 심판"이다. |
4. 1. 한국
정인지(1396년 - 1478년)는 조선의 문신, 정치인, 한글학자였다. 세종대왕(1397년 - 1450년, 재위 1418년 - 1450년)은 조선의 제4대 임금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1] 한명회(1415년 - 1487년)는 조선의 무신, 정치인이었다. 김담(1416년 - 1464년)은 조선의 문신, 수학자, 천문학자였다. 신숙주(1417년 - 1475년)는 조선의 문신, 정치인, 한글학자로, 계유정난에서 수양대군(세조)을 도왔으며, 저서로 『해동제국기』가 있다.[1] 세조(1417년 - 1468년, 재위 1455년 - 1468년)는 조선의 제7대 국왕으로, 계유정난 이후 조카 단종을 폐하고 즉위하였다.[1] 인수대비 한씨(1437년 - 1504년)는 성종의 모후였다. 어우동(1440년경 - 1480년)은 조선의 기생, 시인, 화가였다.송희경(宋希璟, 1376년 - 1446년)은 조선의 관료로, 응영의 외구 처리를 위해 일본에 파견되었으며, 『노송당일본행록』을 남겼다.[1] 박서생(朴瑞生, 생몰년 미상)은 조선의 관료로, 1428년 제1차 조선 통신사 정사(正使)로 일본에 파견되었고, 귀국 후 복명서를 제출하였다.[1]
4. 2. 명나라
영락제는 명나라의 제3대 황제(재위 1402년 - 1424년)이다. 정난의 변에서 승리하고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겼다.[3] 주고서(朱高煦)는 영락제의 아들이자 홍희제의 동생으로, 조카인 선덕제에게 황위를 찬탈하려다 실패하여 처형되었다.[11]정화(鄭和)는 명나라의 환관이자 탐험가( 1371년 - 1434년)였다.[9] 영락제의 명으로 남해 대원정을 지휘하여 동남아시아, 인도, 아라비아 등에 파견되었다.[9] 선덕제는 명나라 제5대 황제(재위 1425년 - 1435년)로, 그의 치세는 인선의 치라 불리며, 정화의 마지막 남해 대원정을 파견하였다.[12]
요광효(姚広孝)는 명나라의 정치가이자 군사(1335년 - 1418년)였다. 법명은 도연(道衍)이며, 정난의 변에서 영락제가 즉위하도록 도와 1등 공신으로 추대되었다.[1]
구우(瞿佑)는 명나라의 문학가(1341년 - 1427년)였다. 지방 현의 교관을 지냈으며, 기이 소설집 『절등신화(剪灯新話)』의 편찬자로 알려져 있다.[2]
진성(陳誠)은 명나라의 외교관이자 탐험가(1365년 - 1457년)였다. 육로로 티무르 제국을 방문하여 그 기록을 『서역번국지(西域番国志)』에 남겼다.[5]
해진(解縉)은 명나라의 관료(1369년 - 1415년)였다. 『영락대전(永楽大典)』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서예가로서 "입폭초서축(立幅草書軸)"이 있고, 명나라 삼재자(三才子)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6]
익실하(亦失哈, 이시하)는 명나라의 환관(여진족)이자 탐험가였다.(생몰년 미상) 흑룡강 유역에 가서 누얼간도사(奴児干都司)를 설치하였고, "누얼간영녕사비기(奴児干永寧寺碑記)"라는 비석이 남아 있다.[10]
장보(張輔)는 명나라의 장군(1375년 - 1449년)이었다. 영락제를 섬기며 정난의 변에서 활약하였고, 베트남 호계려(胡季犛)의 반란을 진압하였다.[13]
우겸(于謙)은 명나라의 정치가(1398년 - 1457년)였다. 토목의 변에서 정통제가 포로가 되자 동생인 경태제를 옹립하고 베이징으로 쳐들어온 오이라트 군을 격퇴하였다.[14]
왕진(王振)은 명나라의 환관(?-1449년)이었다. 정통제의 교육자로서 오이라트 원정을 권유하였고, 토목의 변에서 전사하였다.[15]
덩마오칠(鄧茂七)은 명나라의 농민 반란 지도자(?-1449년)였다. 복건성에서 소작료와 요역의 감면을 요구하며 봉기(항조(抗租))하였으나 조길상(曹吉祥)의 군대에 진압되었다.
조길상(曹吉祥)은 명나라의 환관(?-1461년)이었다. 무관 석형(石亨)과 공모하여 탈문의 변에서 천순제를 복위시켰다. 우겸(于謙) 등을 숙청하고 권세를 휘둘렀으나 처형되었다.
이현(李賢)은 명나라의 정치가(1408년 - 1466년)였다. 탈문의 변에서 권세를 휘두른 석형(石亨)과 조길상(曹吉祥)을 제거하고 천순제의 신임을 얻었다.
정통·천순제(正統·天順帝)는 명나라 제6대, 제8대 황제(영종, 재위 1435년 - 1449년, 1457년 - 1464년)였다.
심주(沈周)는 명나라의 문인 화가(1427년 - 1509년)였다. 오파(吳派)의 중심 인물이며, 당인(唐寅), 축윤명(祝允明), 문징명(文徵明) 등은 그의 제자였다.
만귀비(万貴妃)는 명나라 제9대 황제 성화제의 총애를 받던 후궁(1430년 - 1487년)이었다. 후궁을 지배하고 황제의 계승 문제에 간여하였다.
이동양(李東陽)은 명나라의 문학가(1447년 - 1516년)였다. 의고주의(擬古主義)의 차릉파(茶陵派)를 대표하며 전칠자(前七子)를 지도하였다. 『대명회전(大明會典)』을 편찬하였고 『회록당집(懐麓堂集)』을 남겼다.
홍치제(弘治帝)는 명나라 제10대 황제(재위 1487년 - 1505년)였다. 전대까지의 폐단을 개혁하여 명나라의 중흥의 조(中興の祖)로 불린다.
"삼양(三楊)"은 홍희제와 선덕제의 치세(인선의 치)에서 정통제 초기까지를 지탱한 세 명의 명나라 정치가를 말한다.
4. 3. 유럽
15세기 유럽에서는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면서(1453년) 고대부터 이어져 온 로마 제국이 완전히 멸망했다. 이를 '중세의 끝'으로 보기도 한다. 오스만 제국이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자, 15세기 중반부터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중심으로 새로운 무역로를 찾기 위한 항해 붐이 일어났고, 이는 대항해시대로 이어졌다. 1492년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면서 유럽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신대륙 진출을 시작하는 큰 전환점이 되었다.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로마, 나폴리의 연합으로 체결된 로디 조약은 이탈리아 반도의 안정을 가져왔고, 르네상스 문화는 철학, 과학, 예술 등 각 분야에서 발전했다. 이 영향은 알프스 산맥 이북의 서유럽 국가들에도 미쳐 북방 르네상스가 형성되었다.
이 시기에는 석탄이 에너지원 및 난방용으로 매우 중요해졌다.[15]
다음은 15세기에 유럽에서 활동했던 주요 인물들이다.
| 이름 | 출생-사망 | 주요 활동 및 업적 |
|---|---|---|
| 지기스문트 | 1368년 - 1437년 | 룩셈부르크 가문 출신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재위 1410년 - 1437년), 콘스탄츠 공의회 소집 |
| 요한 23세 | 1370년경 - 1419년 | 대립교황 (재위 1410년 - 1415년), 피사 공의회에서 선출,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폐위 |
| 마르티누스 5세 | 1368년 - 1431년 | 로마 교황 (재위 1417년 - 1431년),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선출, 서방교회 대분열 종식 |
| 레오나르도 브루니 | 1370년경 - 1444년 | 피렌체의 정치가, 인문주의자, 『피렌체사』에서 고대 부흥 주창 |
| 프란체스코 포스카리 | 1373년 - 1457년 | 베네치아 공화국의 수장, 밀라노와의 전쟁에서 우세, 로디 조약으로 평화 달성 |
|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 1377년 - 1436년 | 피렌체의 건축가, 르네상스 양식의 피렌체 대성당 건립 |
| Bernardino of Siena영어 | 1380년 - 1444년 |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사, 설교가, 수도회 쇄신, "IHS" 성명 신앙 권장 |
| 포지오 브라치올리니 | 1380년 - 1459년 |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 고대 라틴어 문헌 발견 |
| 카시아의 리타 | 1381년 - 1457년 | 성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녀, 학대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성인 |
| 로렌초 기베르티 | 1381년경 - 1455년 | 피렌체의 조각가, 금세공인, 산 조반니 세례당 문 제작 경쟁 우승 |
| 프란체스코 부소네 다 카르마뇰라 | 1381년경 - 1432년 | 이탈리아의 콘도티에레, 베네치아에서 반역죄로 처형 |
| 에우제니우스 4세 | 1383년 - 1447년 | 로마 교황 (재위 1431년 - 1447년), 페라라-피렌체 공의회에서 동서 교회 합동 추진 |
| 니콜로 3세 데스테 | 1383년 - 1441년 | 페라라의 영주, 동서 교회 합동 공의회를 페라라로 유치 |
| 도나텔로 | 1386년 - 1466년 | 피렌체의 조각가, 대표작: "다비드상", "칸토리아", "가타멜라타상" |
| 코시모 데 메디치 | 1389년 - 1464년 | 피렌체의 은행가, 메디치가의 피렌체 지배 확립, 후원자로도 유명 |
| 프라 안젤리코 | 1390년/1395년경 - 1455년 | 피렌체의 화가, 도미니크 수도회 수사, 대표작: "수태고지" |
|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 | 1395년/1400년경 - 1475년 | 베네치아에 봉사한 콘도티에레, 베로키오가 건립한 기마상 유명 |
| 파올로 우첼로 | 1397년 - 1475년 | 피렌체의 화가, 대표작: "산 로마노 전투", "존 호크우드상" |
| 토스카넬리 | 1397년 - 1482년 | 피렌체의 지리학자, 수학자, 천문학자, 콜럼버스에게 영향 |
| 프란체스코 스포르차 | 1401년 - 1466년 | 스포르차 가문의 첫 번째 밀라노 공작 (재위 1450년 - 1466년), 로디 조약에 협력 |
| 마사치오 | 1401년 - 1428년 | 피렌체의 화가, 원근법 완성, 브란카치 예배당 프레스코화 등 제작 |
|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 1404년 - 1472년 | 피렌체의 인문주의자, 건축가, "만능인"의 전형 |
| 피우스 2세 | 1405년 - 1464년 | 로마 교황 (재위 1458년 - 1464년), 인문주의자, 오스만 제국에 대한 십자군 제창 |
| 로렌초 발라 | 1407년 - 1457년 | 로마 출신의 인문주의자,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서를 위서라고 지적 |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 1412년 - 1492년 | 우르비노에서 활동한 화가, 원근법과 기하학에 뛰어남, 대표작: "성십자가 전설" |
| 프리드리히 3세 | 1415년 - 1493년 |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재위 1452년 - 1493년), 혼인 정책으로 황위 세습화 |
| Bartolomeo Platina영어 | 1421년 - 1481년 | 로마에서 활동한 인문주의자, 바티칸 도서관 초대 관장, 『교황전』, 요리책 집필 |
|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 1422년 - 1482년 | 우르비노 공작, 용병 대장, 우르비노 궁정에서 문화 보호, 육성 |
| Demetrios Chalkokondyles영어 | 1423년 - 1511년 | 아테네 출신의 그리스 인문학자, 그리스어 문헌 번역 |
| 크리스토포로 란디노 | 1424년 - 1498년 | 피렌체의 인문주의자, 플라톤 아카데미 참가, 단테의 『신곡』 등에 주석 |
| 조반니 벨리니 | 1430년경 - 1516년 | 베네치아 파의 화가, 유채 기법 확산, 대표작: "레오나르도 로레단의 초상" |
| 안드레아 만테냐 | 1431년 - 1506년 | 망토바에서 활동한 화가, 원근법과 인체 묘사에 뛰어남, 대표작: "죽은 그리스도" |
| 마르실리오 피치노 | 1433년 - 1499년 | 피렌체의 인문주의자, 철학자, 신학자, 플라톤 저서 번역, 대표작: 『플라톤 신학』 |
|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 1435년경 - 1488년 | 피렌체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승 |
| 레기오몬타누스 | 1436년 - 1476년 | 독일의 천문학자, 『알마게스트 주석』, 『삼각법 전서』 저술, 개력과 천문 관측에도 활약 |
| 니콜라우스 쿠사누스 | 1401년 - 1464년 | 독일의 추기경, 신학자, 철학자, 피렌체 공의회에서 교회 통합 추진, 저서: 『학식 있는 무지』 |
| 루카 파치올리 | 1445년 - 1517년 | 산세폴크로 출신의 수학자, 『산술·기하·비 및 비례 전서』 출판, "근대 회계학의 아버지" |
| 산드로 보티첼리 | 1445년? - 1510년 | 피렌체 출신의 화가, 르네상스 대표작: "프리마베라", "비너스의 탄생" |
| Catherine of Genoa영어 | 1447년 - 1510년 | 제노바의 여성 신비가, 저서: 『영혼과 육체의 대화』 |
| 로렌초 데 메디치 (로렌초 일 마니피코) | 1449년 - 1492년 | 피렌체의 은행가, 코시모 데 메디치의 손자, 사실상 피렌체의 참주 |
| 알두스 마누티우스 | 1450년경 - 1515년 | 베네치아에서 활동한 출판인, 알도 인쇄소 설립, "상업 출판의 아버지" |
| 루도비코 스포르차 | 1452년 - 1508년 | 밀라노 공작 (재위 1494년 - 1500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후원자 |
|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 1452년 - 1498년 | 피렌체의 수도원장, 메디치가 실각 후 피렌체 지배, 화형 |
| 레오나르도 다 빈치 | 1452년 - 1519년 | 피렌체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 등 "만능의 천재", 대표작: "모나리자" |
| 안젤로 폴리치아노 | 1454년 - 1494년 | 피렌체의 시인, 플라톤 아카데미 참가, 대표작: 『기마 경기의 노래』 |
| 제바스티안 브란트 | 1457년 - 1521년 | 독일의 풍자 작가, 바젤 대학교 교수, 『어리석은 배』 저술 |
| 막시밀리안 1세 | 1459년 - 1519년 |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재위 1493년 - 1519년), "중세 마지막 기사" |
| 피코 델라 미란돌라 | 1463년 - 1494년 | 피렌체에서 활동한 철학자, 플라톤 아카데미 참가, 『인간의 존엄에 관하여』 저술 |
| 카테리나 스포르차 | 1463년 - 1509년 | 포를리와 이몰라의 여성 영주, "이탈리아의 여걸" |
| 미켈란젤로 | 1475년 - 1564년 | 피렌체의 화가, 조각가, 대표작: "다비드상", "피에타", "최후의 심판" |
4. 4. 러시아
이반 3세는 모스크바 대공(재위 1462년 - 1505년)으로, 조에 팔레올로고스와 결혼하고 차르 칭호를 사용했다.[1] 마르파 보레츠카야는 노브고로드 시장 부인(여시장)이었는데, 이반 3세에게 저항했지만 패배하여 노브고로드는 모스크바 대공국에 합병되었다.[2]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러시아의 수도사이자 모스크바파 이콘 화가로, 대표작은 「성 삼위일체」이다.[3]5. 문화 및 과학
- 르네상스는 철학, 과학 및 예술에 영향을 미쳤다.
- 중세 영어에서 현대 영어로 발전하였다.
- 가톨릭 세계에서 정오의 종이 도입되었다.
- 공공 은행이 등장하였다.
- 용례대전—22,000권 이상.
- 한글이 창제되었다. (한국).
- 스카치 위스키가 등장하였다.
- 정신병원이 등장하였다.
- 1400년–1450년 사이에 인쇄용 목판화가 발달하였다.
- 태종이 최초로 활자를 사용하였다. (개별 문자를 배열하여 단어를 형성할 수 있게 한 활자는 비승이 1041년에서 1048년 사이에 중국에서 발명함.)
- 한국과 중국 관리 왕증에 의해 선행되었지만, 청동 금속 활자 인쇄는 화수이가 1490년 중국에서 만들었다.
-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유럽에서 인쇄술을 발전시켰다. (1455년경)
-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선원근법 그림이 완성되었다. (1410년–1415년)
- 하프시코드가 발명되었다. (1450년경)
-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하였다.
-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이 유명하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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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 Southeast Asian Polities Mentioned in the M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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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sands in China are descendants of an ancient Filipino king. Here's how it happe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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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Sulu King research book by Chinese author debuts in Philipp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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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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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The Soils of the Philipp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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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inger Science &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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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Three Old Sundanese poems
KITLV Press
[15]
서적
世界を変えた地図 -ウィリアム・スミスと地質学の誕生-
早川書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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