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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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일본 대진재는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에서 발생한 지진과 그로 인한 일련의 재해를 통칭하는 명칭이다. 일본 기상청은 지진을 '헤이세이 23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으로 명명했으며,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포함한 피해를 '동일본대지진'으로 결정했다. 이 지진은 일본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인 M9.0-9.1의 지진을 발생시켰고, 쓰나미, 지진동, 액상화 현상 등으로 광범위한 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피해 지역은 홋카이도 남부부터 간토 지방 남부에 이르렀으며, 인프라 시설 파괴, 대규모 인명 피해,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2024년 2월 말 기준 사망자 15,900명, 실종자 2,520명, 부상자 6,242명의 피해가 발생했고, 건축물 파괴, 교통 시설 마비, 산업 및 운송 분야의 막대한 피해를 초래했다. 재해 이후 일본 정부는 긴급 재해 대책 본부를 설치하고 구조 및 지원 활동을 펼쳤으며, 현재까지 부흥 사업이 진행 중이다.

동일본 대진재
개요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2011년 3월 12일 미야코시 타로 지역의 쓰나미 피해
명칭동일본 대진재
주요 원인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및 그로 인한 쓰나미
발생일2011년 3월 11일
위치일본 도호쿠 지방 태평양 연안
피해 규모
사망자15,900명 이상
실종자2,523명
부상자6,242명
건물 피해전파: 12만 9천837채
반파: 23만 8천928채
이재민최대 약 47만 명
경제적 피해약 16조 ~ 25조 엔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사고 유형원자력 사고
국제 원자력 사고 척도 (INES)7 (최고 등급)
주요 영향광범위한 방사능 오염 및 피난민 발생
대응
정부 대응자위대 파견
긴급재해대책본부 설치
원자력재해대책본부 설치
국제 지원다수의 국가 및 국제기구에서 구호 활동 지원
복구 및 부흥
주요 과제주택 복구 및 이주 지원
산업 재건
방사능 오염 제거 및 관리
정신적 피해 치유
사회적 영향
재해 관련 정보동일본 대지진 관련 정보 제공 웹사이트 및 자료관 운영
트라우마재해 경험자들의 정신 건강 문제 심화
재해 문화재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재해 관련 문학, 예술 작품 창작
기타
관련 사건 및 사고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관련 기념일3월 11일: 동일본 대진재 추모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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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은 미나미산리쿠정 방재대책청사는 과거 행정 청사로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지진 재해 유적으로 지정되어 보존될 예정이다.

2. 명칭

2011년 3월 11일 16시 20분, 일본 기상청은 이날 일어난 지진의 공식명칭을 헤이세이 23년(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平成23年(2011年)東北地方太平洋沖地震일본어, The 2011 off the Pacific coast of Tohoku Earthquake영어)이라 명명했다.

2011년 4월 1일, 일본 정부 (간 나오토 내각)는 각의에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포함하여 이 지진으로 초래된 일련의 재해를 가리키는 명칭을 동일본대지진(東日本大震災)으로 결정했다. 이후 일본 내에서는 지진 자체는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을 가리키며, 지진으로 일어난 피해는 '동일본대지진'으로 구분하여 사용한다. 하지만 용어의 통일성을 위해 그냥 '동일본대진재'라 칭하는 곳도 있다.

일본 정부가 용어를 통일하기 전까지 언론과 각종 미디어에서는 다음과 같은 명칭을 사용했다.
* 동일본대진재(東日本大震災) - 아사히 신문, 지지 통신사, 웨더뉴스, 교도 통신사, 교도 통신 가맹사(산케이 신문, 도쿄 신문, 주니치 신문, 마이니치 신문, 니혼케이자이 신문(3월 19일 조간판부터)), 후지 TV, TBS 텔레비전, TV 아사히, 닛폰 TV(3월 15일 이후), TV 도쿄, TOKYO FM, 닛폰BS방송
* 도호쿠 간토 대진재(東北関東大震災, とうほくかんとうだいしんさい) - NHK, 일본공동모금
* 3.11대진재(3.11大震災, さんてんいちいちだいしんさい) - 가호쿠 신보(3월 14일 이후 동일본대진재와 병용)
* 도호쿠 해역 대지진(東北沖大地震, とうほくおきだいじしん) - 마이니치 신문(지진 당일부터 3월 14일까지)
* 도호쿠·간토 대지진(東北・関東大地震, とうほくかんとうだいじしん) - 교도 통신사, 도쿄 신문 등의 가맹 미디어 회사가 지진 당일인 3월 11일에(다음날인 12일 아침에 배달된 조간신문 및 웹 게시 기사 포함) 사용
* 미야기·이바라키 해역 대지진(宮城・茨城沖大地震, みやぎいばらきおきだいじしん) - 닛폰 NEWS24가 지진 당일부터 3월 12일까지 사용
* 동일본 거대지진(東日本巨大地震, ひがしにほんきょだいじしん) - 아사히 신문(지진 발생 직후 일시 사용), 요미우리 신문
* 동일본대지진(東日本大地震, ひがしにほんだいじしん) - 닛폰 TV가 지진 당일부터 3월 24일까지 사용. 도쿄 FM 및 BS11 디지털도 일시 사용
* 도호쿠대진재(東北大震災, とうほくだいしんさい) - 기타 일부 언론이나 개인이 사용.

지진으로 일어난 지진 해일은 지역 신문을 중심으로 헤이세이 산리쿠 쓰나미(平成三陸大津波)란 이름을 붙여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 등 공공기관에선 지진 해일에 대한 이름을 붙이진 않았다.

3. 지진

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JST), 일본 미야기현 오시카반도 동남동쪽 130km 해역(북위 38.1도, 동경 142.9도, 깊이 24km)에서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이 일어났다. 지진의 모멘트 규모는 Mw9.0-9.1이며, 지진 발생 시점에서 일본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었다. 진원역이와테현 해역에서 이바라키현 해역에 이르는 동서 200km, 남북 500km, 넓이 약 10만km2에 달하는 광대한 영역이다. 최대 진도는 미야기현 구리하라시에서 관측한 진도7이며, 미야기현, 후쿠시마, 이바라키현, 도치기 등 4개 현 36개 시정촌과 센다이시 1개 구에서 진도 6강을 관측했다. 관측한 최대 지반 가속도(PGA)는 미야기현 구리하라 시의 K-NET 쓰키다테 정(MYG004) 관측점에서 관측한 2,933gal이다.

쓰나미로 떠내려가 태평양을 표류하는 가옥 (2011년 3월 14일).
쓰나미로 떠내려가 태평양을 표류하는 가옥 (2011년 3월 14일).

미야기현 히가시마쓰시마시의 지정 피난소를 덮친 쓰나미 희생자 (2011년 3월 17일)
미야기현 히가시마쓰시마시의 지정 피난소를 덮친 쓰나미 희생자 (2011년 3월 17일)

쓰나미로 변해버린 모래사장 (2011년 11월 19일, 지바현 초시시)
쓰나미로 변해버린 모래사장 (2011년 11월 19일, 지바현 초시시)

쓰나미와 지반 침하로 인해 해저에 수몰된 미야기현 게센누마시의 건물 (2014년 3월 8일)
쓰나미와 지반 침하로 인해 해저에 수몰된 미야기현 게센누마시의 건물 (2014년 3월 8일)

4. 피해

동일본대지진으로 광범위한 지역에 피해가 발생했다. 지진 해일, 지진동, 액상화 현상, 지반 침하, 댐 붕괴 등으로 홋카이도 남부부터 도호쿠 지방, 도쿄만을 포함한 간토 지방 남부에 이르는 지역에 걸쳐 피해가 발생했다. 각종 인프라 시설이 파괴되었다. 세계은행은 역사상 최악의 재산 피해를 입힌 자연재해로 추산했다.

일본 내각은 지진 재해의 직접적인 피해액을 대략 16조9000억엔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는 지진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미야기현, 이와테현, 후쿠시마현 3개 현의 현내 총생산의 합에 달한다.

2011년 도호쿠 대지진과 쓰나미는 많은 사람들을 집에서 쫓아냈다. 2012년 6월 최고조에 달했을 때, 피난민 수는 346,987명이었다.

지진 발생 직후 혼란기엔 피난민이 40만명 이상이었으며 2024년 8월 1일 기준 피난민은 약 28,808명으로 피난 생활이 장기화되고 있다.

시치가하마에 건설 중인 임시 주택
시치가하마에 건설 중인 임시 주택

지진 이후 생필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선 쇼핑객들
지진 이후 생필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선 쇼핑객들

미군 구호 물품 수송 항공기의 하역 속도를 높이기 위해 양동이 부대를 형성한 시민들
미군 구호 물품 수송 항공기의 하역 속도를 높이기 위해 양동이 부대를 형성한 시민들


* 쓰나미에 의한 침수 면적 - 561km{{sup
* 쓰나미 피해 농지 - 2만 1476ha (미야기 14,341ha, 후쿠시마 5,462ha, 이와테 725ha 등)
* 어선 피해 - 2만 8612척
* 어항 피해 - 319항

== 사상자 ==
경찰청은 2024년 2월 말 기준으로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15,900명, 실종자는 2,520명, 부상자는 6,242명이라고 발표했다. 사망자는 이와테현에서 4,675명, 미야기현에서 9,544명, 후쿠시마현에서 1,614명 등 12개 도도부현에서 발생했다. 실종자는 이와테현 1,107명, 미야기현 1,213명, 후쿠시마현 196명 등 6개 현에서 발생했다. 도호쿠 3개 현(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에서는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유해가 53구(이와테 47구, 미야기 6구) 남아있다.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에 의한 도도부현별 사망자·실종자 수 (2011년 7월 17일 현재)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에 의한 도도부현별 사망자·실종자 수 (2011년 7월 17일 현재)

도도부현별로 희생자 수가 가장 많았던 미야기현에서는 화장의 한계를 넘어 임시 매장 (일시적인 토장)이 이루어졌다.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2011년 6월 7일 촬영)
도도부현별로 희생자 수가 가장 많았던 미야기현에서는 화장의 한계를 넘어 임시 매장 (일시적인 토장)이 이루어졌다.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2011년 6월 7일 촬영)


일본 국내에서 발생한 자연 재해로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쳐 1만 명이 넘은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이며, 메이지 시대 이후 간토 대지진, 메이지 산리쿠 지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피해 규모였다 (지진 관련 사망자 제외).

👆
좌우로 밀어서 보기

(2024년 3월 1일 시점)
도도부현사망실종부상
합계19,7752,5506,24228,567
홋카이도1-34
아오모리현31110114
이와테현5,1461,1072136,466
미야기현10,5711,2154,14815,934
아키타현--1111
야마가타현3-4548
후쿠시마현3,9432241834,350
이바라키현661714781
도치기현4-133137
군마현1-4243
사이타마현1-104105
지바현222268292
도쿄도8-119127
가나가와현6-137143
니가타현--33
야마나시현--22
나가노현--11
시즈오카현--33
미에현--11
오사카부--11
고치현--11


2012년 3월 11일까지 검시된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의 사망자 15,786명에 대한 상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연령별로는 60세 이상이 64.89%를 차지해 고령층의 피해가 컸다. 남성은 7,360명(46.62%), 여성은 8,363명(52.98%), 성별 불명은 63명(0.40%)이었다. 사망 원인의 90.64%는 익사였으며, 대부분 쓰나미에 휩쓸린 것이 원인이었다. 쓰나미에는 모래, 해저의 헤드, 항만 시설의 중유 등 유해 물질이 포함되어 있어, 이러한 물질이 폐로 들어가 기도를 막거나 신체에 손상을 입혀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 압사, 신체 손상, 소사 또한 대부분 쓰나미로 인한 잔해가 원인이었다. 건물 붕괴나 산사태, 천장 낙하물 등 지진의 흔들림 자체가 원인으로 확인된 사망자는 후쿠시마현 36명, 이바라키현 18명, 미야기현 13명, 도쿄도 7명 등 90명이었다.

시즈오카 대학교 방재 종합 센터는 쓰나미 침수 범위 거주자 수 대비 사망자·행방불명자 수 비율을 메이지 산리쿠 지진과 비교했다. 그 결과, 동일본 대진재의 최대 비율은 미야기현 오나가와정의 11.97%였으며, 이와테현 오쓰치정리쿠젠타카타시가 11.72%로 뒤를 이었다. 메이지 산리쿠 지진은 침수 지역이 아닌 시정촌 인구 대비 희생자 비율을 기준으로 이와테현 가마이시시에서 약 50%를 기록하는 등 11개 시정촌에서 15%를 넘어, 이번 쓰나미에서는 방재 대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피난소의 비위생적인 환경과 추위 등으로 인해 피난 후 사망하는 사례(지진 관련사)가 고령자를 중심으로 잇따랐다. 부흥청은 지진 관련사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부상 악화 등으로 사망하여 재해 조위금 지급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재해 조위금 지급 대상이 된 자"로 정의한다. 2023년 3월 말 기준, 지진 관련사로 인정된 사망자는 3,802명(후쿠시마현 2,343명, 미야기현 932명, 이와테현 471명 등)이다. 특히 후쿠시마현에서는 지진 관련사 사망자 수가 지진 및 쓰나미로 인한 직접 사망자 수를 넘어섰으며, 대부분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한 피난 중 건강 악화로 사망한 "원전 관련사"로 추정된다.

== 원자력 발전소 사고 ==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수습 작업이 진행중인 원자력 발전소 앞 모습.(2011년 4월 13일, 후쿠시마현 후타바군에서 촬영)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수습 작업이 진행중인 원자력 발전소 앞 모습.(2011년 4월 13일, 후쿠시마현 후타바군에서 촬영)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접근 제한이 된 지역.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접근 제한이 된 지역.

지진 직후 도호쿠 지역 일대의 원전 29기 가운데 11기의 가동이 중단되었다. 동일본대지진 1시간 후 후쿠시마현의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에 최대 14-15m의 지진 해일이 덮쳐 원자력 발전소 1-5호기 전부가 전원이 끊겼다. 원자로를 냉각할 수 없게 되자 1호기부터 3호기까지 멜트다운이 일어났다. 이 멜트다운은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는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이어졌다. 이 사고는 국제 원자력 사고 등급에서 최악인 7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같은 등급을 받았다.



후쿠시마 원전이 있는 후쿠시마현 하마도리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 주민의 피난이 장기화되고 2012년부턴 "귀환곤란지역", "거주제한구역" 이 설정되었다. 원자력 발전 사고 외에도 여러 화력발전소도 지진의 영향으로 작동을 중지하면서 도쿄 전력이 관할하는 간토 지방은 심각한 전력 부족에 빠져 지진 직후 일본은 65년만에 처음으로 윤번정전을 실시했다. 지진 직후 시작된 계획 정전은 2012년 여름 오이 원자력 발전소 재가동 문제가 불거지면서 다시 나타나기도 하였다.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 지역에는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외에도 도카이 제2 원자력 발전소(이바라키현 도카이촌), 후쿠시마 제2 원자력 발전소(후쿠시마현 도미오카정, 나라하정), 오나가와 원자력 발전소(미야기현 오나가와정), 히가시도리 원자력 발전소(아오모리현 히가시도리촌)가 있었다. 이들 발전소는 모두 심각한 원자력 재해가 일어나진 않았으나 외부 전력 상실, 비상 발전기의 손상, 해수 냉각 펌프의 손상 등 심각한 원자력 재해가 일어나기 직전에 있던 원자력 발전소도 있었다. 이 가운데 후쿠시마 제2 원자력 발전소에선 원자로 긴급 사태 선언까지 갔었다.

== 건축물 ==
2023년 3월 1일 기준, 일본 소방청은 건물 완전 파괴 122,050채, 부분 파괴 283,988채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2018년 3월 9일 기준, 일본 경찰청은 완전 파괴 121,776채, 부분 파괴 280,923채, 화재로 전체 소실 297채, 대부분 침수 1,628채, 일부 침수 10,076채, 일부 파손 726,574채로 집계했다. 특히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 연안에서는 지진 해일로 인해 이와테현 19,508채, 미야기현 83,003채, 후쿠시마현 15,224채 등 수많은 집이 떠내려갔다.

지진 해일의 피해를 입은 이시노마키 항. 사진 위쪽에 히가시마쓰시마 시 오마가리 지역의 침수된 논이 보인다.(2011년 3월 20일,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히가시마쓰시마시 경계)
지진 해일의 피해를 입은 이시노마키 항. 사진 위쪽에 히가시마쓰시마 시 오마가리 지역의 침수된 논이 보인다.(2011년 3월 20일,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히가시마쓰시마시 경계)

쓰나미가 휩쓸고 간 지 1주일 후의 산리쿠 연안.(2011년 3월 18일, 이와테현 가미헤이군 오쓰치정 기리키리역 부근)
쓰나미가 휩쓸고 간 지 1주일 후의 산리쿠 연안.(2011년 3월 18일, 이와테현 가미헤이군 오쓰치정 기리키리역 부근)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긴급피난준비구역으로 설정된 미나미소마 시.(2011년 4월 16일,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 하라마치 구)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긴급피난준비구역으로 설정된 미나미소마 시.(2011년 4월 16일,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 하라마치 구)


지바현 이치하라시의 '코스모 지바정유소' LPG 탱크가 폭발하여 화재가 발생했고, 이 화재로 인근의 열화우라늄 보관 시설에도 불이 번졌다. 도호쿠 지방이바라키현 등지에서는 많은 정유소와 공장이 지진 피해를 입어 작업을 중단하는 등 일본 산업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홋카이도와 도호쿠, 간토 지역의 수많은 문화, 교육 시설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으며, 2011년 4월 6일까지 일본 내에서 지진 피해를 입은 문화재는 463개이다.

코스모 석유 지바 정유소의 화재.
코스모 석유 지바 정유소의 화재.

코스모 석유 지바 정유소의 두 번째 폭발을 촬영한 모습.
코스모 석유 지바 정유소의 두 번째 폭발을 촬영한 모습.

코스모 석유 지바 정유소의 폭발로 인해 상공에 가득 찬 연기로 비가 내린 흔적.
코스모 석유 지바 정유소의 폭발로 인해 상공에 가득 찬 연기로 비가 내린 흔적.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시설들이 피해를 입었다.
* 연료 분사기 등을 제조하는 케이힌 공장
* 자동차 오일실의 일본 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하는 NOK 후쿠시마 공장
* 실리콘 웨이퍼 세계 시장 점유율 60%를 차지하는 2개 공장인 신에쓰 화학공업 니시고촌 공장과 SUMCO 요네자와시 공장
* 차량용 마이크로컴퓨터를 제조하는 르네사스 테크놀로지의 나카 공장
* 일본 내 건축 유리자재의 30%를 차지하는 아사히 유리 가시마 공장
* 수미토모 고무 공업 시라카와 공장
* 일본제지 이시노마키 공장, 이와누마 공장, 나코소 공장
* 미쓰바시 화학 가시마 사업소, 마루젠 석유화학 지바 공장
* 아스카 제약 이와키 공장
* 기린 맥주 센다이 공장
* 미쓰바시 제지 하치노헤 공장
* 닛산 자동차 이와키 공장

== 액상화 현상 및 지반 침하 ==
간토 지방과 도호쿠 지방의 넓은 지역에서 액상화현상이 일어났다. 지바현 지바시 미하마구, 나라시노시, 후나바시시, 이치카와시, 우라야스시, 가토리시, 아비코시, 도쿄도 고토구, 에도가와구,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핫케이지마섬 주변, 이바라키현 히타치나카시, 이타코시, 미야기현 오사키시 에아이 강 주변에서 건축물이 기울거나 단수, 도시가스 공급 정지, 논에 토사물 침전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도쿄만의 간척지와 지바현 동북부에서 이바라키현 롯코 지역 남부에 걸친 이른바 '물의 고향 지대'에서 피해가 심각했는데, 우라야스시는 시내 85%가 액상화 현상의 피해를 입었으며, 자치단체에서 액상화 위험도가 낮다고 평가된 곳에서도 액상화 피해를 입었다.

도호쿠 지방에서 간토 지방 북부까지 태평양 연안에서 지진에 따른 지반 침하로 해안 및 강 하구를 중심으로 침수 피해가 일어나고 있다. 이시노마키시 시오토미 정에선 만조시 마을이 전부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지진 해일로 도호쿠-간토 지방 6개 현에서 23,600ha의 농지가 유실되거나 침수되었고, 일본 농림수산성에선 3년 후 완료를 목표로 잔해 철거 및 토양 염분 제거 작업을 시행했다.

만조 시기 침수된 국도 제398호선. (2011년 3월 30일, 일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 시 미나토 정-요시노 정 부근)
만조 시기 침수된 국도 제398호선. (2011년 3월 30일, 일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 시 미나토 정-요시노 정 부근)

바다에 잠긴 센다이평야 해안의 논. (2011년 4월 6일, 미야기현 나토리 시)
바다에 잠긴 센다이평야 해안의 논. (2011년 4월 6일, 미야기현 나토리 시)

도쿄만에서 일어난 액상화 현상. (2011년 4월 1일, 지바현 우라야스 시 신우라야스역)
도쿄만에서 일어난 액상화 현상. (2011년 4월 1일, 지바현 우라야스 시 신우라야스역)


== 화재 ==
동일본 대진재 당시 쓰나미 피해가 컸던 미야기현을 중심으로 330건의 화재가 일어났다. 전체 화재 중 약 40%인 159건이 쓰나미 화재였고, 30%는 전기 화재였다. 이 외에도 정전으로 피난 중 가지고 있던 촛불 등에 의한 화재도 보고되었다.

쓰나미 화재는 쓰나미로 파괴된 건물과 차량 잔해들이 내륙으로 휩쓸리면서 침수 영역 가장자리에 모이거나 바람이나 지형 등 잔해들이 모인 곳에서 난방유 탱크, 가스 실린더, 자동차용 연료 탱크 등에서 누출된 연료에 불꽃이 튀어 일어났다. 특히 잔뜩 쌓인 불붙혀진 파편이 산림으로 번져 화재가 확대되었다. 불타는 잔해가 해상을 표류하며 강 건너편으로 불이 번지는 경우도 있었다.

지진 화재는 과거에 일어났던 지진과 마찬가지로 무너진 주택과 건축물의 난방 기구, 조리 기구, 전기 배선, 손상된 전기 기구가 정전 복구 과정에서 합선으로 화재가 일어났다.

이 외에도 지진 수일에서 수주 후 잔해에 깔려 있던 박테리아의 발효로 인한 가열로 자연 발화되거나, 해수 침수차량의 전기 회로 부분에 합선 등으로 화재가 일어난 사례도 있었다.

== 교통 ==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교통 시설 및 체계에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했다.

붕괴된 롯코 대교. (2011년 3월 27일 이바라키현 나메가타시 촬영)
붕괴된 롯코 대교. (2011년 3월 27일 이바라키현 나메가타시 촬영)

일본 경찰청은 2018년 3월 9일 기준으로 4,198개소에서 도로 피해가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이바라키현 나메가타시에서는 지진으로 롯코 대교가 붕괴되었다. 수도고속도로는 완간 선을 중심으로 피해가 발생했으며, 고가도로 손상으로 신키바 출입구-가사이 분기점 구간은 3월 22일까지, 다이코쿠 분기점은 3월 27일까지 임시 폐쇄되었다. 동일본 고속도로(NEXCO) 산하 주요 고속도로가 통행 금지되었고, 공안위원회의 명령으로 긴급교통로로 지정되어 긴급자동차 전용 통행로로 출입이 제한되었다. 3월 24일 오전 6시 전 구간 통행제한이 해제되었으나, 조반 자동차도 히로노 나들목-조반토미오카 나들목 구간은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경계구역으로 지정되어 개통이 미뤄졌다가 2014년 2월 22일 복구되었다. 도호쿠 지방정비국은 해안도시 구호 활동을 위해 빗살 작전을 시행했다.

쓰나미 피해로 역사가 파괴된 신치 역의 모습.(2011년 4월 4일, 후쿠시마현 소마 군)
쓰나미 피해로 역사가 파괴된 신치 역의 모습.(2011년 4월 4일, 후쿠시마현 소마 군)

동일본 여객철도(JR 도호쿠) 관내 도호쿠 신칸센은 센다이역 등 5개 역이 피해를 입었고, 전신주, 가선, 고가교 교각 등 1,100개 지점이 피해를 입었다. 게센누마 선 등 7개 재래선에서 23개 역이 유실되고, 총 선로 60 km 정도가 쓰나미로 유실되었다.

산리쿠 철도는 기타리아스 선과 미나미리아스 선 전부 선로 유실이나 철로 붕괴로 일시적으로 전 구간 운행 중지되었다. 2014년 4월 전 구간 복구되었다. 센다이 공항까지 밀려온 쓰나미로 센다이 공항철도 센다이 공항선 센다이 공항역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지진 발생 직후 JR 도호쿠는 신칸센 및 재래선 전 구간 운행을 중단하였으며, 간토 지역 및 도쿄 수도권도 사철 및 지하철 전 구간이 운행을 중단하였다. 이로 인해 귀가곤란자가 수도권에서만 약 515만명 발생했다. 3월 14일부턴 윤번정전의 영향으로 전국 각지의 노선에서 열차 운휴나 감편 조치가 이루어졌다.

쓰나미 피해로 흙탕물이 밀려와 쌓여 있는 센다이 공항 활주로.(2011년 3월 13일, 미야기현 나토리시)
쓰나미 피해로 흙탕물이 밀려와 쌓여 있는 센다이 공항 활주로.(2011년 3월 13일, 미야기현 나토리시)

센다이 공항은 쓰나미가 덮쳐 활주로가 침수되고 공항 터미널도 큰 피해를 입어 항공기 이착륙이 중지되었다. 4월 13일부터 국내선 일부 운항을 재개하였으며, 9월 25일엔 공항 건물도 완전 복구하여 국제선 정기 운항이 재개되었다. 국토교통성은 배수펌프차량 25대를 동원하여 침수된 물을 빼는 작업을 실시했다.

이와테현의 하나마키 공항, 아오모리현의 미사와 공항은 지진 당일(3월11일) 18시 50분부터 영업을 재개했다. 후쿠시마 공항은 센다이 공항을 대체하는 공항으로 선정되어 임시 항공편을 운영했다. 야마가타 공항은 3월 12일 4시부터 영업을 재개하고 임시적으로 24시간 운영을 실시하였다. 이바라키현 오미타마시에 있는 이바라키 공항은 공항 터미널 빌딩 천장이 일부 떨어지는 피해를 입었다. 3월 12일엔 공항이 폐쇄되고 모든 항공편이 결항하였으며 14일 다시 개항하였다. 하나마키 공항도 폐쇄하였다 17일 영업을 재개하였다. 지바현의 나리타 국제공항과 도쿄 국제공항(하네다 공항)은 안전검사를 위해 지진 직후 공항을 폐쇄하여, 두 공항으로 향하던 여객기 86기는 회항하여 다른 공항에 착륙하였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국제 민간 항공 기구(ICAO)와 세계 보건 기구(WHO)가 일본에서의 도항에 대하여 '건강상의 위협은 없다'라는 발표를 했으나 루프트한자나 알리탈리아 항공 등 일부 항공사에선 방사능

4.1. 사상자

경찰청은 2024년 2월 말 기준으로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15,900명, 실종자는 2,520명, 부상자는 6,242명이라고 발표했다. 사망자는 이와테현에서 4,675명, 미야기현에서 9,544명, 후쿠시마현에서 1,614명 등 12개 도도부현에서 발생했다. 실종자는 이와테현 1,107명, 미야기현 1,213명, 후쿠시마현 196명 등 6개 현에서 발생했다. 도호쿠 3개 현(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에서는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유해가 53구(이와테 47구, 미야기 6구) 남아있다.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에 의한 도도부현별 사망자·실종자 수 (2011년 7월 17일 현재)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에 의한 도도부현별 사망자·실종자 수 (2011년 7월 17일 현재)

도도부현별로 희생자 수가 가장 많았던 미야기현에서는 화장의 한계를 넘어 임시 매장 (일시적인 토장)이 이루어졌다.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2011년 6월 7일 촬영)
도도부현별로 희생자 수가 가장 많았던 미야기현에서는 화장의 한계를 넘어 임시 매장 (일시적인 토장)이 이루어졌다.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2011년 6월 7일 촬영)


일본 국내에서 발생한 자연 재해로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쳐 1만 명이 넘은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이며, 메이지 시대 이후 간토 대지진, 메이지 산리쿠 지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피해 규모였다 (지진 관련 사망자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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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일 시점)
도도부현사망실종부상
합계19,7752,5506,24228,567
홋카이도1-34
아오모리현31110114
이와테현5,1461,1072136,466
미야기현10,5711,2154,14815,934
아키타현--1111
야마가타현3-4548
후쿠시마현3,9432241834,350
이바라키현661714781
도치기현4-133137
군마현1-4243
사이타마현1-104105
지바현222268292
도쿄도8-119127
가나가와현6-137143
니가타현--33
야마나시현--22
나가노현--11
시즈오카현--33
미에현--11
오사카부--11
고치현--11


2012년 3월 11일까지 검시된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의 사망자 15,786명에 대한 상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연령별로는 60세 이상이 64.89%를 차지해 고령층의 피해가 컸다. 남성은 7,360명(46.62%), 여성은 8,363명(52.98%), 성별 불명은 63명(0.40%)이었다. 사망 원인의 90.64%는 익사였으며, 대부분 쓰나미에 휩쓸린 것이 원인이었다. 쓰나미에는 모래, 해저의 헤드, 항만 시설의 중유 등 유해 물질이 포함되어 있어, 이러한 물질이 폐로 들어가 기도를 막거나 신체에 손상을 입혀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 압사, 신체 손상, 소사 또한 대부분 쓰나미로 인한 잔해가 원인이었다. 건물 붕괴나 산사태, 천장 낙하물 등 지진의 흔들림 자체가 원인으로 확인된 사망자는 후쿠시마현 36명, 이바라키현 18명, 미야기현 13명, 도쿄도 7명 등 90명이었다.

시즈오카 대학교 방재 종합 센터는 쓰나미 침수 범위 거주자 수 대비 사망자·행방불명자 수 비율을 메이지 산리쿠 지진과 비교했다. 그 결과, 동일본 대진재의 최대 비율은 미야기현 오나가와정의 11.97%였으며, 이와테현 오쓰치정리쿠젠타카타시가 11.72%로 뒤를 이었다. 메이지 산리쿠 지진은 침수 지역이 아닌 시정촌 인구 대비 희생자 비율을 기준으로 이와테현 가마이시시에서 약 50%를 기록하는 등 11개 시정촌에서 15%를 넘어, 이번 쓰나미에서는 방재 대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피난소의 비위생적인 환경과 추위 등으로 인해 피난 후 사망하는 사례(지진 관련사)가 고령자를 중심으로 잇따랐다. 부흥청은 지진 관련사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부상 악화 등으로 사망하여 재해 조위금 지급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재해 조위금 지급 대상이 된 자"로 정의한다. 2023년 3월 말 기준, 지진 관련사로 인정된 사망자는 3,802명(후쿠시마현 2,343명, 미야기현 932명, 이와테현 471명 등)이다. 특히 후쿠시마현에서는 지진 관련사 사망자 수가 지진 및 쓰나미로 인한 직접 사망자 수를 넘어섰으며, 대부분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한 피난 중 건강 악화로 사망한 "원전 관련사"로 추정된다.

4.2. 원자력 발전소 사고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수습 작업이 진행중인 원자력 발전소 앞 모습.(2011년 4월 13일, 후쿠시마현 후타바군에서 촬영)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수습 작업이 진행중인 원자력 발전소 앞 모습.(2011년 4월 13일, 후쿠시마현 후타바군에서 촬영)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접근 제한이 된 지역.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접근 제한이 된 지역.

지진 직후 도호쿠 지역 일대의 원전 29기 가운데 11기의 가동이 중단되었다. 동일본대지진 1시간 후 후쿠시마현의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에 최대 14-15m의 지진 해일이 덮쳐 원자력 발전소 1-5호기 전부가 전원이 끊겼다. 원자로를 냉각할 수 없게 되자 1호기부터 3호기까지 멜트다운이 일어났다. 이 멜트다운은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는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이어졌다. 이 사고는 국제 원자력 사고 등급에서 최악인 7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같은 등급을 받았다.



후쿠시마 원전이 있는 후쿠시마현 하마도리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 주민의 피난이 장기화되고 2012년부턴 "귀환곤란지역", "거주제한구역" 이 설정되었다. 원자력 발전 사고 외에도 여러 화력발전소도 지진의 영향으로 작동을 중지하면서 도쿄 전력이 관할하는 간토 지방은 심각한 전력 부족에 빠져 지진 직후 일본은 65년만에 처음으로 윤번정전을 실시했다. 지진 직후 시작된 계획 정전은 2012년 여름 오이 원자력 발전소 재가동 문제가 불거지면서 다시 나타나기도 하였다.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 지역에는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외에도 도카이 제2 원자력 발전소(이바라키현 도카이촌), 후쿠시마 제2 원자력 발전소(후쿠시마현 도미오카정, 나라하정), 오나가와 원자력 발전소(미야기현 오나가와정), 히가시도리 원자력 발전소(아오모리현 히가시도리촌)가 있었다. 이들 발전소는 모두 심각한 원자력 재해가 일어나진 않았으나 외부 전력 상실, 비상 발전기의 손상, 해수 냉각 펌프의 손상 등 심각한 원자력 재해가 일어나기 직전에 있던 원자력 발전소도 있었다. 이 가운데 후쿠시마 제2 원자력 발전소에선 원자로 긴급 사태 선언까지 갔었다.

4.3. 건축물

2023년 3월 1일 기준, 일본 소방청은 건물 완전 파괴 122,050채, 부분 파괴 283,988채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2018년 3월 9일 기준, 일본 경찰청은 완전 파괴 121,776채, 부분 파괴 280,923채, 화재로 전체 소실 297채, 대부분 침수 1,628채, 일부 침수 10,076채, 일부 파손 726,574채로 집계했다. 특히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 연안에서는 지진 해일로 인해 이와테현 19,508채, 미야기현 83,003채, 후쿠시마현 15,224채 등 수많은 집이 떠내려갔다.

지진 해일의 피해를 입은 이시노마키 항. 사진 위쪽에 히가시마쓰시마 시 오마가리 지역의 침수된 논이 보인다.(2011년 3월 20일,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히가시마쓰시마시 경계)
지진 해일의 피해를 입은 이시노마키 항. 사진 위쪽에 히가시마쓰시마 시 오마가리 지역의 침수된 논이 보인다.(2011년 3월 20일,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히가시마쓰시마시 경계)

쓰나미가 휩쓸고 간 지 1주일 후의 산리쿠 연안.(2011년 3월 18일, 이와테현 가미헤이군 오쓰치정 기리키리역 부근)
쓰나미가 휩쓸고 간 지 1주일 후의 산리쿠 연안.(2011년 3월 18일, 이와테현 가미헤이군 오쓰치정 기리키리역 부근)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긴급피난준비구역으로 설정된 미나미소마 시.(2011년 4월 16일,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 하라마치 구)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긴급피난준비구역으로 설정된 미나미소마 시.(2011년 4월 16일,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 하라마치 구)


지바현 이치하라시의 '코스모 지바정유소' LPG 탱크가 폭발하여 화재가 발생했고, 이 화재로 인근의 열화우라늄 보관 시설에도 불이 번졌다. 도호쿠 지방이바라키현 등지에서는 많은 정유소와 공장이 지진 피해를 입어 작업을 중단하는 등 일본 산업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홋카이도와 도호쿠, 간토 지역의 수많은 문화, 교육 시설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으며, 2011년 4월 6일까지 일본 내에서 지진 피해를 입은 문화재는 463개이다.

코스모 석유 지바 정유소의 화재.
코스모 석유 지바 정유소의 화재.

코스모 석유 지바 정유소의 두 번째 폭발을 촬영한 모습.
코스모 석유 지바 정유소의 두 번째 폭발을 촬영한 모습.

코스모 석유 지바 정유소의 폭발로 인해 상공에 가득 찬 연기로 비가 내린 흔적.
코스모 석유 지바 정유소의 폭발로 인해 상공에 가득 찬 연기로 비가 내린 흔적.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시설들이 피해를 입었다.
* 연료 분사기 등을 제조하는 케이힌 공장
* 자동차 오일실의 일본 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하는 NOK 후쿠시마 공장
* 실리콘 웨이퍼 세계 시장 점유율 60%를 차지하는 2개 공장인 신에쓰 화학공업 니시고촌 공장과 SUMCO 요네자와시 공장
* 차량용 마이크로컴퓨터를 제조하는 르네사스 테크놀로지의 나카 공장
* 일본 내 건축 유리자재의 30%를 차지하는 아사히 유리 가시마 공장
* 수미토모 고무 공업 시라카와 공장
* 일본제지 이시노마키 공장, 이와누마 공장, 나코소 공장
* 미쓰바시 화학 가시마 사업소, 마루젠 석유화학 지바 공장
* 아스카 제약 이와키 공장
* 기린 맥주 센다이 공장
* 미쓰바시 제지 하치노헤 공장
* 닛산 자동차 이와키 공장

4.4. 액상화 현상 및 지반 침하

간토 지방과 도호쿠 지방의 넓은 지역에서 액상화현상이 일어났다. 지바현 지바시 미하마구, 나라시노시, 후나바시시, 이치카와시, 우라야스시, 가토리시, 아비코시, 도쿄도 고토구, 에도가와구,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핫케이지마섬 주변, 이바라키현 히타치나카시, 이타코시, 미야기현 오사키시 에아이 강 주변에서 건축물이 기울거나 단수, 도시가스 공급 정지, 논에 토사물 침전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도쿄만의 간척지와 지바현 동북부에서 이바라키현 롯코 지역 남부에 걸친 이른바 '물의 고향 지대'에서 피해가 심각했는데, 우라야스시는 시내 85%가 액상화 현상의 피해를 입었으며, 자치단체에서 액상화 위험도가 낮다고 평가된 곳에서도 액상화 피해를 입었다.

도호쿠 지방에서 간토 지방 북부까지 태평양 연안에서 지진에 따른 지반 침하로 해안 및 강 하구를 중심으로 침수 피해가 일어나고 있다. 이시노마키시 시오토미 정에선 만조시 마을이 전부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지진 해일로 도호쿠-간토 지방 6개 현에서 23,600ha의 농지가 유실되거나 침수되었고, 일본 농림수산성에선 3년 후 완료를 목표로 잔해 철거 및 토양 염분 제거 작업을 시행했다.

만조 시기 침수된 국도 제398호선. (2011년 3월 30일, 일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 시 미나토 정-요시노 정 부근)
만조 시기 침수된 국도 제398호선. (2011년 3월 30일, 일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 시 미나토 정-요시노 정 부근)

바다에 잠긴 센다이평야 해안의 논. (2011년 4월 6일, 미야기현 나토리 시)
바다에 잠긴 센다이평야 해안의 논. (2011년 4월 6일, 미야기현 나토리 시)

도쿄만에서 일어난 액상화 현상. (2011년 4월 1일, 지바현 우라야스 시 신우라야스역)
도쿄만에서 일어난 액상화 현상. (2011년 4월 1일, 지바현 우라야스 시 신우라야스역)

4.5. 화재

동일본 대진재 당시 쓰나미 피해가 컸던 미야기현을 중심으로 330건의 화재가 일어났다. 전체 화재 중 약 40%인 159건이 쓰나미 화재였고, 30%는 전기 화재였다. 이 외에도 정전으로 피난 중 가지고 있던 촛불 등에 의한 화재도 보고되었다.

쓰나미 화재는 쓰나미로 파괴된 건물과 차량 잔해들이 내륙으로 휩쓸리면서 침수 영역 가장자리에 모이거나 바람이나 지형 등 잔해들이 모인 곳에서 난방유 탱크, 가스 실린더, 자동차용 연료 탱크 등에서 누출된 연료에 불꽃이 튀어 일어났다. 특히 잔뜩 쌓인 불붙혀진 파편이 산림으로 번져 화재가 확대되었다. 불타는 잔해가 해상을 표류하며 강 건너편으로 불이 번지는 경우도 있었다.

지진 화재는 과거에 일어났던 지진과 마찬가지로 무너진 주택과 건축물의 난방 기구, 조리 기구, 전기 배선, 손상된 전기 기구가 정전 복구 과정에서 합선으로 화재가 일어났다.

이 외에도 지진 수일에서 수주 후 잔해에 깔려 있던 박테리아의 발효로 인한 가열로 자연 발화되거나, 해수 침수차량의 전기 회로 부분에 합선 등으로 화재가 일어난 사례도 있었다.

4.6. 교통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교통 시설 및 체계에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했다.

붕괴된 롯코 대교. (2011년 3월 27일 이바라키현 나메가타시 촬영)
붕괴된 롯코 대교. (2011년 3월 27일 이바라키현 나메가타시 촬영)

일본 경찰청은 2018년 3월 9일 기준으로 4,198개소에서 도로 피해가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이바라키현 나메가타시에서는 지진으로 롯코 대교가 붕괴되었다. 수도고속도로는 완간 선을 중심으로 피해가 발생했으며, 고가도로 손상으로 신키바 출입구-가사이 분기점 구간은 3월 22일까지, 다이코쿠 분기점은 3월 27일까지 임시 폐쇄되었다. 동일본 고속도로(NEXCO) 산하 주요 고속도로가 통행 금지되었고, 공안위원회의 명령으로 긴급교통로로 지정되어 긴급자동차 전용 통행로로 출입이 제한되었다. 3월 24일 오전 6시 전 구간 통행제한이 해제되었으나, 조반 자동차도 히로노 나들목-조반토미오카 나들목 구간은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경계구역으로 지정되어 개통이 미뤄졌다가 2014년 2월 22일 복구되었다. 도호쿠 지방정비국은 해안도시 구호 활동을 위해 빗살 작전을 시행했다.

쓰나미 피해로 역사가 파괴된 신치 역의 모습.(2011년 4월 4일, 후쿠시마현 소마 군)
쓰나미 피해로 역사가 파괴된 신치 역의 모습.(2011년 4월 4일, 후쿠시마현 소마 군)

동일본 여객철도(JR 도호쿠) 관내 도호쿠 신칸센은 센다이역 등 5개 역이 피해를 입었고, 전신주, 가선, 고가교 교각 등 1,100개 지점이 피해를 입었다. 게센누마 선 등 7개 재래선에서 23개 역이 유실되고, 총 선로 60 km 정도가 쓰나미로 유실되었다.

산리쿠 철도는 기타리아스 선과 미나미리아스 선 전부 선로 유실이나 철로 붕괴로 일시적으로 전 구간 운행 중지되었다. 2014년 4월 전 구간 복구되었다. 센다이 공항까지 밀려온 쓰나미로 센다이 공항철도 센다이 공항선 센다이 공항역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지진 발생 직후 JR 도호쿠는 신칸센 및 재래선 전 구간 운행을 중단하였으며, 간토 지역 및 도쿄 수도권도 사철 및 지하철 전 구간이 운행을 중단하였다. 이로 인해 귀가곤란자가 수도권에서만 약 515만명 발생했다. 3월 14일부턴 윤번정전의 영향으로 전국 각지의 노선에서 열차 운휴나 감편 조치가 이루어졌다.

쓰나미 피해로 흙탕물이 밀려와 쌓여 있는 센다이 공항 활주로.(2011년 3월 13일, 미야기현 나토리시)
쓰나미 피해로 흙탕물이 밀려와 쌓여 있는 센다이 공항 활주로.(2011년 3월 13일, 미야기현 나토리시)

센다이 공항은 쓰나미가 덮쳐 활주로가 침수되고 공항 터미널도 큰 피해를 입어 항공기 이착륙이 중지되었다. 4월 13일부터 국내선 일부 운항을 재개하였으며, 9월 25일엔 공항 건물도 완전 복구하여 국제선 정기 운항이 재개되었다. 국토교통성은 배수펌프차량 25대를 동원하여 침수된 물을 빼는 작업을 실시했다.

이와테현의 하나마키 공항, 아오모리현의 미사와 공항은 지진 당일(3월11일) 18시 50분부터 영업을 재개했다. 후쿠시마 공항은 센다이 공항을 대체하는 공항으로 선정되어 임시 항공편을 운영했다. 야마가타 공항은 3월 12일 4시부터 영업을 재개하고 임시적으로 24시간 운영을 실시하였다. 이바라키현 오미타마시에 있는 이바라키 공항은 공항 터미널 빌딩 천장이 일부 떨어지는 피해를 입었다. 3월 12일엔 공항이 폐쇄되고 모든 항공편이 결항하였으며 14일 다시 개항하였다. 하나마키 공항도 폐쇄하였다 17일 영업을 재개하였다. 지바현의 나리타 국제공항과 도쿄 국제공항(하네다 공항)은 안전검사를 위해 지진 직후 공항을 폐쇄하여, 두 공항으로 향하던 여객기 86기는 회항하여 다른 공항에 착륙하였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국제 민간 항공 기구(ICAO)와 세계 보건 기구(WHO)가 일본에서의 도항에 대하여 '건강상의 위협은 없다'라는 발표를 했으나 루프트한자나 알리탈리아 항공 등 일부 항공사에선 방사능의 영향과 여진의 우려로 나리타 공항 발착편을 다른 공항으로 바꾸었다.

4.7. 산업 및 운송

동일본 대지진으로 도로, 철도 등 교통 인프라가 파괴되어 우편운송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진으로 도호쿠 및 북부 간토 태평양 연안 지역의 JXTG 에너지 센다이 정유소, 가시마 석유 가시마 정유소 등 정유소 2곳과 석유 저장소 16곳이 가동 중단되었다. 게이힌 지바 지역에서도 정유소 7곳 중 4곳의 가동이 중지되어 일본 내 정유 능력이 크게 감소하였다. 도호쿠 6개 현 220개 주유소가 영업을 중지하고, 연료 운송 탱크로리 150대가 피해를 입어 연료 부족 피해가 커졌다. 일본 정부는 석유 물류 문제에 대한 대응이 늦어졌으나, 일본화물철도(JR 화물)를 통한 석유 운송, 해상자위대 수송함을 이용한 등유 수송, 해운 긴급 물자 운송 등으로 대응했다.

배송 중단으로 상품이 급감한 편의점 (2011년 3월 11일, 도쿄도아다치구에서 촬영)
배송 중단으로 상품이 급감한 편의점 (2011년 3월 11일, 도쿄도아다치구에서 촬영)

지진 직후 17개 도현 140만 가구에서 단수 피해를 입었다. 일본수도협회는 급수차 210대 이상 파견을 요청하였고, 서일본 지역 급수차가 피해 지역으로 파견되었다.

우체국 100여 채 이상이 파괴 및 침수 피해를 입었으며, 우편물 배달이 중지되고 택배 수화물 접수가 중단되었다. 야마토 운수, 사가와 익스프레스 등 택배 회사들도 수하물 접수를 일시 중단하였다. 일본우선은 화물선 3척이 쓰나미 피해를 입었다. 아마존 재팬은 유통 설비 피해로 속달 서비스를 중지하고 홋카이도 및 도호쿠 지역 배송을 중단했다.

도호쿠 전력 관내 440만 가구, 도쿄 전력 관내 404만 6천 가구가 정전 피해를 입었다. 도쿄 전력 관내는 3월 19일까지 정전이 해소되었으나, 도호쿠 전력 관내는 4월 7일 미야기현 해역 지진으로 401만 가구가 다시 정전되었다. 전력 부족으로 도쿄 전력은 윤번정전(계획정전)을 실시하였고, 전력사용제한등규칙 시행령이 제정되어 절전 노력이 이루어졌다.

해저 케이블 손상으로 통신 피해가 발생했다. KT는 우회 복구를 마쳤다고 밝혔다. 동일본 전신전화(NTT 동일본)는 최대 90%의 통화량 규제를 실시하고, NTT 도코모 도호쿠 지사는 휴대폰 무료 충전 및 위성 전화 대여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동통신업체들은 통화량 규제를 실시했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 교환이 활발해졌으나, 루머 및 가짜 정보 확산 문제도 발생했다.

그외에도, 케이힌, NOK, 신에츠 반도체, SUMCO,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 아사히 글라스, 스미토모 고무 공업, 일본제지, 미쓰비시 케미컬, 아스카 제약, 기린 맥주, 미쓰비시 제지, 닛산 자동차등이 피해를 입었다.

4.8. 종교

전통종교와 신종교 모두 여러 종교시설 피해를 입었다. 본전의 전체 붕괴, 일부 붕괴 피해를 포함하여 일본 전역의 4,818개 신사에서 피해가 보고되었다. 일본의 등록유형문화재인 일본 기독교단 후쿠시마교회는 재해 이후 수리비용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파괴된 채 방치되었다가 철거되었다.

일본 내외의 종교법인 및 종교인들은 지진 직후 피해 지역 지원에 나서 기부금 및 구호 물품 지원, 신자 자원봉사, 종교 시설의 대피처 개방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신흥종교 중에선 거액의 의연금을 기부한 곳도 있었다.

일본의 종교학자 야마오리 데쓰오는 기자 하시모토 고로와의 대담에서 종교가 "정신적 말법"이라고 언급하며 종교는 재난 이후 한계를 가지고 있어 한신대지진이나 동일본대지진과 같은 거대 재해 이후 여러 종교가 열심히 도와주고 있어서 일개 자원봉사자와 같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SNS 서비스가 활발해지며 종교 측의 말이 현대인에게 와닿지 않아도 확고하게 무언가 발표를 하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4.9. 지역별 피해 상황

동일본 대진재로 홋카이도에서 쓰나미로 인해 사망자 1명, 부상자 3명이 발생했다. 하코다테시에서는 2m 가량의 쓰나미가 닥쳤다.

아오모리현의 사망자는 하치노헤시에서 1명, 미사와시에서 2명 등 총 3명이고, 실종자는 하치노헤시에서 1명이다. 사망자와 실종자 모두 쓰나미로 인해 발생했다. 부상자는 중상자 25명, 경상자 85명 등 총 110명이다. 현 청사 등 공공건물 피해액은 약 100만 엔이며, 하치노헤 지역 광역시정촌사무조합의 분뇨처리시설 2곳이 쓰나미로 침수되어 약 11억 81,00만 엔의 피해를 입었다.

이와테현은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어, 피재 3현(被災3県) 중 하나로 불린다. 침수 면적은 58km2로 3개 현 중 가장 적었으나, 침수 지역의 인구 밀도는 약 1,900명/km2로 가장 높았다. 리쿠젠타카타시에서는 도시 전체가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고, 오쓰치정에서는 정사무소 직원 30명 이상을 포함해 1,300명 가량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가마이시시에서는 994명이 사망했고, 가마이시 항만 입구 방파제가 파괴되었으나, "가마이시의 기적"(釜石の奇跡일본어)이라 불리는 쓰나미 교육 성공 사례도 있었다. 야마다정에서는 832명 이상의 사망자 및 실종자가 발생했다. 미야코시 다로정(현 다로 지구)에서는 "만리장성"으로 불리던 거대한 방조제가 파괴되고 185명이 사망했다. 오후나토시에서는 422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쓰나미로 인해 파괴된 오쓰치 주민센터(이와테현 시모헤이군 오쓰치정)(2011년 4월 4일 촬영)
쓰나미로 인해 파괴된 오쓰치 주민센터(이와테현 시모헤이군 오쓰치정)
(2011년 4월 4일 촬영)

쓰나미로 인해 파괴된 리쿠젠타카타시 관공서(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시)(2011년 4월 12일 촬영)
쓰나미로 인해 파괴된 리쿠젠타카타시 관공서(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시)
(2011년 4월 12일 촬영)

쓰나미로 인해 파괴된 리쿠젠타카타시 중심지의 모습(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시)(2011년 4월 3일 촬영)
쓰나미로 인해 파괴된 리쿠젠타카타시 중심지의 모습(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시)
(2011년 4월 3일 촬영)

쓰나미로 인해 파괴된 오후나토시 중심지의 모습(이와테현 오후나토시)(2011년 3월 15일 촬영)
쓰나미로 인해 파괴된 오후나토시 중심지의 모습(이와테현 오후나토시)
(2011년 3월 15일 촬영)

쓰나미의 피해를 입은 미야코항(이와테현 미야코시)(2011년 3월 20일 촬영)
쓰나미의 피해를 입은 미야코항(이와테현 미야코시)
(2011년 3월 20일 촬영)


미야기현은 진원지에서 가까워 큰 피해를 입었으며, 침수 면적은 327km2, 침수 지역 인구는 약 33만 명이었다. 게센누마시에서는 1,434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쓰나미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미나미산리쿠정에서는 정 방재대책청사가 옥상까지 침수되어 직원 42명이 사망하는 등 총 841명 이상의 사망자 및 실종자가 발생했다. 오나가와정에서는 침수 지역 인구의 사망자 비율이 11.97%로 일본 내 최다였다. 이시노마키시에서는 현내 최대인 3,97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히가시마쓰시마시에서는 약 1,15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센다이시에서는 950명 이상의 사망자 및 실종자가 발생했다. 나토리시 유리아게지구(閖上地区)는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일본 삼경 중 하나인 마쓰시마섬이 있는 마쓰시마카이간역은 내륙 안쪽에 있어 피해가 적었다.(미야기현 미야기군 마쓰시마정(2011년 3월 13일 촬영)
일본 삼경 중 하나인 마쓰시마섬이 있는 마쓰시마카이간역은 내륙 안쪽에 있어 피해가 적었다.
(미야기현 미야기군 마쓰시마정
(2011년 3월 13일 촬영)

교습생, 강사 39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실종된 조반 야마모토 자동차강습소.(미야기현 와타리군 야마모토정)(2011년 4월 28일 촬영)
교습생, 강사 39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실종된 조반 야마모토 자동차강습소.
(미야기현 와타리군 야마모토정)
(2011년 4월 28일 촬영)

초등학생 및 교직원 84명이 사망한 이시노마키시립 오카와소학교의 모습.(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2011년 5월 19일 촬영)
초등학생 및 교직원 84명이 사망한 이시노마키시립 오카와소학교의 모습.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2011년 5월 19일 촬영)

센다이시 미야기노구 연안 상공에서 북쪽 센다이항을 바라보고 촬영한 항공 사진 (2011년 3월 12일 촬영)
센다이시 미야기노구 연안 상공에서 북쪽 센다이항을 바라보고 촬영한 항공 사진 (2011년 3월 12일 촬영)

마쓰시마 지역의 피해 모습. 앞에 펼쳐져 있는 바다 수면 거의 대부분은 원래 육지였던 지역이다.(2011년 6월 25일 촬영)
마쓰시마 지역의 피해 모습. 앞에 펼쳐져 있는 바다 수면 거의 대부분은 원래 육지였던 지역이다.(2011년 6월 25일 촬영)


아키타현은 부상자 11명, 건물 일부 붕괴 5채의 피해가 발생했다.

야마가타현에서는 사망자 3명, 부상자 45명, 건물 완전 붕괴 37채, 반파 80채의 피해가 발생했다.

후쿠시마현은 쓰나미,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지진동 자체로 큰 피해를 입었다. 쓰나미 침수 면적은 112km2였고, 소마시, 미나미소마시, 이와키시, 나미에정, 신치정 등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진동 자체로도 피해가 커 시라카와시에서는 산사태로 13명이 사망하고, 스카가와시에서는 후지누마댐이 무너져 8명이 사망했다.
붕괴된 후지누마댐(후쿠시마현 시라카와시)(2011년 5월 25일 촬영)
붕괴된 후지누마댐
(후쿠시마현 시라카와시)
(2011년 5월 25일 촬영)

쓰나미로 파괴된 이와키시 연안 지역(후쿠시마현 이와키시)(2011년 3월 27일 촬영)
쓰나미로 파괴된 이와키시 연안 지역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2011년 3월 27일 촬영)

쓰나미로 완파된 양로원의 전경(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2011년 4월 16일 촬영)
쓰나미로 완파된 양로원의 전경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
(2011년 4월 16일 촬영)

이와키시 히사노하마지구의 피해 상황 (2011년 6월 25일 촬영)
이와키시 히사노하마지구의 피해 상황 (2011년 6월 25일 촬영)

이와키시 히사노하마지구의 피해 상황 (2011년 6월 25일 촬영)
이와키시 히사노하마지구의 피해 상황 (2011년 6월 25일 촬영)


이바라키현은 지진동, 쓰나미, 액상화 현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도카이촌의 히타치나카 화력발전소에서 4명이 사망하고, 나메가타시에서 롯코 대교 붕괴로 1명이 사망했다. 쓰나미 침수 면적은 23km2였다.
이바라키현 기타아바라키시 이소하라에서 쓰나미가 덮치는 영상.
이바라키현 기타아바라키시 이소하라에서 쓰나미가 덮치는 영상.

액상화현상으로 파괴된 도로 (이바라키현 이나시키시) (2011년 4월 10일 촬영)
액상화현상으로 파괴된 도로 (이바라키현 이나시키시)
(2011년 4월 10일 촬영)

액상화현상으로 침목이 유실되는 피해를 입은 히타치나카 해변철도 미나토선.(2011년 4월 10일 촬영)
액상화현상으로 침목이 유실되는 피해를 입은 히타치나카 해변철도 미나토선.
(2011년 4월 10일 촬영)

가시마나다 해역을 표류하는 쓰나미 잔해. (이바라키현 가미스시 해역)(2011년 5월 8일 촬영)
가시마나다 해역을 표류하는 쓰나미 잔해. (이바라키현 가미스시 해역)
(2011년 5월 8일 촬영)


지바현은 쓰나미와 액상화 현상으로 피해를 입었다. 쓰나미 침수 면적은 총 17km2이며, 아사히시에서 14명 사망, 2명 실종, 산무시에서 1명이 사망했다. 우라야스시는 시 대부분이 간척지로, 액상화 현상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지진으로 화재가 일어난 시가지. (지바현 지바시)(2011년 3월 11일 촬영)
지진으로 화재가 일어난 시가지. (지바현 지바시)
(2011년 3월 11일 촬영)

지진으로 기울어진 표지판. (지바현 우라야쓰시)(2011년 4월 4일 촬영)
지진으로 기울어진 표지판. (지바현 우라야쓰시)
(2011년 4월 4일 촬영)

액상화 현상으로 도로가 침수된 모습. (지바현 가토리시)(2011년 3월 11일 촬영)
액상화 현상으로 도로가 침수된 모습. (지바현 가토리시)
(2011년 3월 11일 촬영)

액상화 현상으로 전신주가 기울어진 모습. (지바현 아비코시)(2011년 3월 12일 촬영)
액상화 현상으로 전신주가 기울어진 모습. (지바현 아비코시)
(2011년 3월 12일 촬영)


도쿄도에서는 건물 붕괴 등으로 사망자 7명이 발생했고, 액상화 현상이 발생했다. 지요다구 구단카이칸에서 천장 붕괴로 2명, 고토구 금속 가공 공장에서 유독 가스 흡입으로 2명, 마치다시 코스트코 주차장 붕괴로 2명이 사망했다.
도쿄도 고토구 신키바에서 액상화현상이 일어난 모습. (2011년 3월 12일 촬영)
도쿄도 고토구 신키바에서 액상화현상이 일어난 모습. (2011년 3월 12일 촬영)


도치기현에서는 산사태, 건물 붕괴 등으로 사망자 4명이 발생했고, 액상화 현상이 발생했다.

가나가와현에서는 정전으로 인한 사망자 등 총 6명이 사망했다.

군마현에서는 지진으로 1명이 사망하고, 도로 피해가 발생했다.

사이타마현에서는 제방 붕괴, 쓰나미 역류, 사망자 1명이 발생했다.

일본 국외에서도 인명 및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크레센트시티에서 1명 사망, 인도네시아 파푸아주에서 1명 사망, 5명 실종, 파푸아뉴기니, 에콰도르, 하와이 제도, 칠레 등에서도 피해가 발생했다.
2011년 3월 13일, 미드웨이 환초 동쪽 섬에 1.5 m 높이의 쓰나미가 쓸고 지나간 후 해안가에 쓰래기 더미가 남은 모습.
2011년 3월 13일, 미드웨이 환초 동쪽 섬에 1.5 m 높이의 쓰나미가 쓸고 지나간 후 해안가에 쓰래기 더미가 남은 모습.

2011년 3월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크레센트시티에서 쓰나미가 항구를 휩쓸고 남은 피해. 배 한 척이 가라앉아 돛 부분만 보인다.
2011년 3월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크레센트시티에서 쓰나미가 항구를 휩쓸고 남은 피해. 배 한 척이 가라앉아 돛 부분만 보인다.

5. 영향

5.1. 인구 변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 연안 지역 및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피난 지역의 인구가 크게 감소했다. 지진 직후 피난민은 47만 명에 달했으나, 2023년 8월 말 기준으로는 30,115명이 피난 생활을 하고 있다. 2024년 8월 1일 기준으로 피난민은 28,808명이며, 이 중 후쿠시마현 내 피난민은 5,824명, 미야기현 내 피난민은 703명, 이와테현 내 피난민은 304명, 현외 피난자는 21,367명이다. 후쿠시마현 외로 피난을 간 사람들은 도쿄도, 이바라키현, 사이타마현 등에 거주하고 있다.

이와테현 내의 피난소는 2011년 10월에, 미야기현과 후쿠시마현 내의 피난소는 2011년 12월에 모두 폐쇄되었다. 그러나 사이타마현 가조시에 있던 후쿠시마현 후타바정 주민 집단피난소는 2013년 12월까지 운영되었다. 재해공영주택 및 임시가설주택에서의 피난 생활은 더 길어졌다. 건설 완료된 공영주택은 10,700호이며, 4,700호의 택지 조성이 완료되었다.

2011년 1월에서 12월 사이 인구 증감 지도.
2011년 1월에서 12월 사이 인구 증감 지도.


지진 피해 지역 중 태평양 연안의 아오모리현 하치노헤시부터 후쿠시마현 이와키시까지, 그리고 원전 사고 피난 지역의 추계인구를 지진 이전(2011년 3월 1일)과 비교하면 아래 표와 같다.

{|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text-align: right;"
|+ 동일본 대지진 이전(2011년 3월 1일)과 최신 추계인구 비교
! 현
! 시정촌
! class="unsortable" | 위치 좌표
! nowrap="nowrap" | 지진 이전
추계인구
(명)
! nowrap="nowrap" | 최신
추계인구
(명)
! 증감 비율
(%)
|-bgcolor=#ccffff
|align="left"|아오모리현
|

|

|1,369,747
|1,262,823
|
|-
|align="center" rowspan="2" |아오모리현
|align="left"|하치노헤시
|
|237,205
|225,463
|
|-
|align="left"|산노헤군 하시카미정
|
|14,655
|13,625
|
|-bgcolor=#ccffff
|align="left"|이와테현
|

|

|1,326,643
|1,229,432
|
|-
|align="center" rowspan="12" |이와테현
|align="left"|구노헤군 히로노정
|
|17,775
|15,398
|
|-
|align="left"|구지시
|
|36,789
|33,607
|
|-
|align="left"|구노헤군 노다촌
|
|4,606
|3,909
|
|-
|align="left"|시모헤이군 후다이촌
|
|3,065
|2,602
|
|-
|align="left"|시모헤이군 다노하타촌
|
|3,838
|3,182
|
|-
|align="left"|시모헤이군 이와이즈미정
|
|10,708
|9,010
|
|-
|align="left"|미야코시
|
|59,229
|52,782
|
|-
|align="left"|시모헤이군 야마다정
|
|18,506
|14,765
|
|-
|align="left"|가미헤이군 오쓰치정
|
|15,222
|11,106
|
|-
|align="left"|가마이시시
|
|39,399
|34,289
|
|-
|align="left"|오후나토시
|
|40,579
|35,666
|
|-
|align="left"|리쿠젠타카타시
|
|23,221
|18,567
|
|-bgcolor=#ccffff
|align="left"|미야기현
|

|

|2,346,853
|2,305,596
|
|-
|align="center" rowspan="17" |미야기현
|align="left"|게센누마시
|
|73,154
|61,112
|
|-
|align="left"|모토요시군 미나미산리쿠정
|
|17,378
|11,259
|
|-
|align="left"|오시카군 오나가와정
|
|9,932
|5,870
|
|-
|align="left"|이시노마키시
|
|160,394
|141,725
|
|-
|align="left"|히가시마쓰시마시
|
|42,840
|39,236
|
|-
|align="left"|미야기군 마쓰시마정
|
|15,014
|13,553
|
|-
|align="left"|미야기군 리후정
|
|34,279
|35,530
|
|-
|align="left"|시오가마시
|
|56,221
|52,662
|
|-
|align="left"|미야기군 시치가하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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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53
|18,120
|
|-
|align="left"|다가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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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90
|62,435
|
|-
|align="left"|센다이시
|
|1,046,737
|1,089,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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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background-color:#cccccc;"
|align="left"|센다이시 미야기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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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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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background-color:#cccccc;"
|align="left"|센다이시 와카바야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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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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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ign="left"|나토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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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603
|78,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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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ign="left"|이와누마시
|{{좌표|38|6|15.4|N|140|52|12.5|E|region:JP|name=이

5.2. 경제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진재도쿄 증권거래소 폐장 직전에 발생하여, 닛케이 평균 주가지수는 급락했다. 주말이 지난 후에도 주가는 계속 하락하여, 3월 15일에는 닛케이 지수 역사상 3번째로 큰 일일 낙폭을 기록했다. 지진 발생 3영업일 만에 22.3% 하락하였으나, 이후 반등하여 9,093엔으로 마감하였다.

도쿄 상점에서 매진된 일부 품목
도쿄 상점에서 매진된 일부 품목


지진 당일 엔화 환율은 일시적으로 하락했으나, 부흥 자금 조달을 위한 엔고 전망으로 3월 17일에는 1달러당 76엔을 기록하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러나 일본은행이 G7과의 협조개입을 통해 시장 안정화를 도모하면서 3월 20일에는 엔화가 80엔대를 회복했다.

세계은행은 지진 피해액을 최대 2,350억 달러(약 19조 엔)로 추산했고, 일본 정부는 16-25조 엔으로 추정했다. 전국 기업 단기 경제 관측 조사와 경기동향지수 발표에서도 체감 경기가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진 이후 생필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선 쇼핑객들
지진 이후 생필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선 쇼핑객들


공장 피해와 물류 대란으로 인해 생산 중단 및 특정 제품의 품귀 현상이 발생했다. 쓰나미로 인해 벼가 재배되는 약 23,600헥타르의 농지가 피해를 입었으며, 이는 일본 쌀 생산량의 3%–4%를 차지한다. 미야기현, 이와테현, 후쿠시마현의 어선 29,000척 중 약 90%가 쓰나미로 인해 사용할 수 없게 되었으며, 미야기현의 어업은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다.

도요타 자동차 (Toyota), 닛산 자동차 (Nissan), 혼다 자동차 (Honda) 등 자동차 회사들은 2011년 3월 14일까지 자동차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 도쿄 전력, 도시바, 동일본 여객철도, 신에츠 화학공업 등은 지진으로 인해 가장 취약한 기업으로 지목되었다.

일본 은행은 시장 안정을 위해 금융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15조 엔을 머니 마켓에 투입했다.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한 부흥 비용은 2011년 7월 시점 10년간 23조 엔을 투입할 것으로 추정되며, 이를 위해 부흥 채권 발행 등이 보전되고 있다. 2020년에는 복구 특수의 종료, 귀환 포기, 인구 유출 등으로 인해 민간의 자립적인 성장이 과제가 되고 있다.

5.3. 지진의 혼란과 문제 행위

식료품이나 전지 등을 구입하기 위해 편의점에 줄을 선 센다이 시민(2011년 3월 13일, 미야기현 센다이시 와카바야시구 아라마치)
식료품이나 전지 등을 구입하기 위해 편의점에 줄을 선 센다이 시민(2011년 3월 13일, 미야기현 센다이시 와카바야시구 아라마치)

동일본 대지진 당시 큰 약탈이나 폭동은 없었으나, 지진 재해에 편승한 범죄 행위가 일부 발생했다. 미야기현 센다이시 동부, 다가조시, 이시노마키시 등 쓰나미 피해 지역에서는 직원이 없는 상점, 주택, 주유소, 자동차 등을 대상으로 한 절도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여 지진 발생 후 26일까지 피해액이 1억 엔에 달했다. 일본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 3개 현에서 3월 11일부터 6월 말까지 발생한 ATM 현금 절도 사건은 총 56건, 피해액은 6억 8,400만 엔에 달했다. 이 중 34건은 후쿠시마현에서 발생했으며, 대부분 후쿠시마 원전 20km 내에서 발생한 범행이었다. 20-30km 권역 내에서도 주민 대다수가 피난을 떠나 빈집털이 피해가 다수 발생했다. 전국적으로 모금 운동이 진행되는 가운데 모금 사기도 발생했다.

지진 직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불안감을 느낀 시민들이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현상이 발생하여 물류가 회복된 이후에도 소매점에서 물품 품귀 현상이 지속되었고, 이는 지진 피해가 없던 지역으로까지 확산되었다. JX 센다이 정유소를 비롯한 도쿄만 연안의 정유 시설 및 유조소 가동 중단, 쓰나미로 인한 시설 파괴 등으로 휘발유, 등유, 경유 등 석유 제품 공급난이 발생했다. 일본 정부는 서일본 지역의 민간 비축 의무 재고량을 줄이고, 제유소 가동률을 높여 증산하는 한편, 피해 지역 내 거점 주유소를 지정하여 석유 제품을 우선 공급했다. 그러나 일반 주유소는 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주유량 제한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석유 제품 공급난은 3월 21일부터 서일본 지역에서 탱크로리 300대를 추가 투입하고 정유소 및 석유저장소가 재가동되면서 점차 해소되었다.

2013년 도쿄 대학 연구진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컨디션 악화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급증하는 현상에 대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연구한 결과, 유감 여진 횟수가 많은 지역일수록 컨디션 악화를 호소하는 빈도가 높아졌으며, 본진의 진도, 공간방사선량,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와의 거리와는 상관관계가 낮다는 것을 밝혀냈다. 2014년 1월 26일, 후생노동성 연구반은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 3개 현에서 지진 당시 보육원에 있던 아동을 대상으로 아동 행동 평가척도(CBCL)를 이용한 조사 결과, 아동의 25.9%가 정신적 문제에 대한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며, 43.9%가 쓰나미를 목격했다고 발표했다.

후쿠시마현을 중심으로 피난소에서 주인이 반려동물과 함께 들어갈 수 없거나, 지진 재해로 주인이 사망하여 보호자가 없어진 반려동물이 야생화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채무 변제가 어려워진 개인의 주택 론이나 개인 사업주의 론 등을 대상으로 한 "개인 채무자의 사적 정리에 관한 가이드라인"(피해 론 감면 제도)이 2011년 8월 22일부터 운용되었다. 사업자 대상 대책으로는 같은 해 11월에 동일본 대지진 사업자 재생 지원 기구 법안(이중 론 구제 법안)이 성립되었다.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등으로 인해 일본 사회 전체가 과도한 자숙 분위기에 휩싸여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제기되었다.

5.4. 재판

지진으로 인해 도쿄도 나카노구 폭력단 조직원 살해 사건의 재판이 중단되는 일이 발생했다.

5.5. 시험 및 고시

미야기현 교육위원회는 3월 14일부터 18일까지 임시 휴교하고, 15일로 예정되었던 고등학교 일반입학시험 합격자 발표를 3월 22일 이후로 연기하였다. 지진 발생 직후인 2011년 3월 12-13일에 국공립 대학 입학시험 후기일정이 잡혀 있었으나, 지진 피해 지역에 있던 32개 대학교(사립 대학 포함)의 대입 시험이 중단되었다. 국립대학 36개, 공립대학 15개, 사립대학 7개가 3월 12일 예정되어 있던 시험기간을 늦추거나 지진 피해를 입은 수험생들에게 개별 대응을 시작했으며, 긴급하게 추가시험을 편성한 학교도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3월 12일 국공립 대학 입학 후기 일정 응시자가 전년 대비 20,604명 감소한 65,667명이라고 집계했으며, 대부분은 지진의 여파로 응시하지 못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같은 날 도호쿠 지방에서 정상적으로 시험이 열린 곳은 아키타 대학, 아키타 현립대학 2곳뿐이었다. 다음 날인 13일에도 6개 대학에서 시험을 중단하였고 5곳에서는 시험을 연기하거나 참여가 불가능한 학생에 대해서 개별 대응을 하였다.

지진 피해로 거주지 파괴에 따라 학비를 면제해 주거나, 대학 건물이 지진 피해를 입어 개학식을 5월로 연기한 학교도 여럿 나타나고 있다. 지진 이틀 뒤인 3월 13일 열릴 예정이었던 제161회 TOEIC 시험이 지진의 영향으로 시험장 확보가 불가능해지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일본 전국 277개 시험장에서 시험이 중단되었다. 이에 영향을 받은 시험 예정 인원수는 약 16만명이었다. 4월 17일 열릴 예정이었던 2011년 춘계 정보 처리 기술자 시험도 지진의 영향으로 시험이 연기되었다. 연기된 시험은 6월 27일, 7월 10일 "2011년 특별 정보 처리 기술자 시험"으로 대체 시행되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2012년 봄 입사 예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채용 활동 시작 시기를 늦추러는 움직임이 있었다. 또한 지진의 영향으로 도호쿠 지방을 중심으로 내정 취소 및 채용 중단 등의 일이 일어나 일본 후생노동성은 집중 지원도 검토하였다.

5.6. 행사 및 스포츠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리고 있던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야구 경기가 즉각 중단되었으며, 경기장의 조명이 흔들렸다. 일본 프로 야구 경기를 비롯해 3월 12일3월 13일에 치러질 예정이던 J리그 경기가 연기되는 등 일본의 모든 프로 스포츠 경기가 중단되거나 연기되었다.

지진으로 인해 11일로 예정되어 있던 음악회 및 연극 등의 예능 공연도 모두 중지되었다. 또한 여진이 계속되는 관계로 12일의 공연도 중지하는 공연도 많았다. 제국 극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무대 《Endless SHOCK》는 막간의 휴식 시간에 지진이 일어나 제2부의 공연을 중단하였으며, 관객을 고쿄마에 광장으로 대피시켰다. 또한 일본 무도관에서 3월 11일 ~ 12일에 이루어질 예정이었던 콘서트도 관객의 안전을 고려하여 연기했다. 그 밖에 3월 12일에 전 구간이 개통되는 규슈 신칸센 (하카타역 ~ 가고시마 중앙역)의 기념 행사도 “지진 피해자의 심정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취소되었다.
지진의 영향으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몬테네그로와의 평가전이 취소되었으며, 이때문에 몬테네그로 팀이 극동 방문 일정 자체를 취소하면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평가전도 덩달아 무산되었다. 7월에 예정으로 잡혀있던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파 아메리카 축구 대회 출전도 취소되었다.

2011년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는 3월 21일부터 27일까지 도쿄의 요요기 국립 경기장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국제 빙상 연맹은 독일 팀이 일본 여행을 하지 말라는 권고를 따르겠다고 발표한 후 3월 14일에 대회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일본 관계자들이 이 행사를 국내에서 개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발표한 후, 러시아 모스크바로 4월 말로 옮겨졌다.

일본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은 원래 나데시코 리그의 취소를 야기한 지진으로 인해 2011년 FIFA 여자 월드컵에서 기권하려 했으나, 결국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국, 일본 나데시코는 토너먼트에서 우승했으며, 그 과정에서 단 한 경기만 패했다. 그들의 경주는 주요 축구 대회에서 가장 큰 이변 중 하나로 칭송받았다. 우승 후, 팀은 2011년 FIFA 여자 월드컵 결승전에서 승리한 후 팬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현수막을 들었다.

이 지진으로 인해 2011년(헤이세이 23년)도 봄의 포상 및 서훈, 일본 프로 야구개막전J리그, 나고야 국제 여자 마라톤, 경마경륜 등 많은 공적인 행사 및 이벤트가 중지 또는 연기되었으며, 영화 개봉 연기 및 상품 발매 중단 등이 일어나 다양한 분야에 적지 않은 영향이 발생했다.

6. 보도

한국방송공사(KBS)의 《글로벌 토크쇼》에 출연했던 일본인 사가와 준코는 2011년 3월 17일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일본 정부가 "쓰나미와 핵 위기 동안 일본 국민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지진으로 인해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의 아날로그 텔레비전 방송 종료가 연기되었다. 이 세 현의 텔레비전 방송국들은 2012년 3월 31일 정오에 아날로그 신호를 종료했다. 야마가타현, 아오모리현, 아키타현의 텔레비전 방송국들은 일본의 나머지 지역과 함께 2011년 7월 24일에 아날로그 신호를 종료했다.

6.1. 텔레비전 및 라디오

동일본 대지진 발생 직후, 간토 지역의 텔레비전 및 라디오 방송국은 임시 뉴스를 편성했다. 대부분의 방송사가 3월 13일까지 긴급 속보 특별 편성을 진행했으며, 정규 보도 프로그램들도 특별보도 형태로 임시 편성되었다. 지진 발생 3일 후인 3월 14일부터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 주요국은 임시 편성을 완화하고 일부 정보 프로그램과 뉴스만 놔둔 채 정규편성을 재개했으나, 방송시간이 확대된 스페셜 에디션 및 긴급보도편성을 조합한 구성의 프로그램이 주로 방영되었다. 3월 15일부터는 버라이어티 쇼, 영화, 드라마 등의 정규편성이 순차적으로 시작되었다.

지진 발생 이후 각 방송사에서는 텔레비전 광고 송출이 장기간 중단되었다. 테레비 아사히는 약 74시간, TBS는 약 62시간, 닛폰 테레비와 후지 TV는 약 61시간 동안 광고가 송출되지 않았다. 일본 CM종합연구소에 따르면, 도쿄 내 민영 방송사만 따질 시 3월 11일 14시 50분부터 다음 날인 3월 12일 23시 56분까지 약 33시간 동안 광고 송출이 없었다. 광고 송출이 재개된 이후에도 많은 기업들이 광고 출연을 자제하여, 빈 광고 시간 대부분을 AC 재팬 공익광고 4종류로만 방영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AC 재팬에 문의 및 불만이 쇄도하기도 했고, 반대로 일본 CM 호감도 랭킹에서 AC 재팬 광고가 선두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와테현, 아키타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 이바라키현에서는 기존 지역 방송국이 임시재해방송으로 출력을 높여 방송하거나 지역 자치단체가 재해FM 방송국을 개설하였다. 간토에 있는 5개 방송국은 라디오 재해 정보 교차로를 개설했으며, 3월 17일 17시부터 인터넷 동시 송출 서비스인 radiko가 지역제한을 해제하여 일본 전역에서 간토 및 간사이 지방 13개 라디오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도호쿠 6개 현 및 간토 지방의 일부 민영 FM 라디오 방송국은 라디오 방송을 PC나 스마트폰으로도 들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민영 AM 방송국은 Ustream이나 니코니코 동화(니코니코 생방송) 등을 통해 동시송출을 하였다.

지진으로 피해 지역의 공동 안테나가 손상되고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 보급이 중단되어, 임시 위성 방송 안테나가 설치되었으며, 이와테현, 후쿠시마현, 미야기현에서는 디지털 방송 전환이 2012년 3월 31일로 연기되었다.

6.2. 신문

2011년 3월 12일 오사카부 오사카시에서 지진을 알리는 신문.
2011년 3월 12일 오사카부 오사카시에서 지진을 알리는 신문.

지진 직후 전국지와 블록지, 지방지는 일제히 호외를 발행했다. 주니치 신문은 3월 11일 석간 최종판인 E판(2)에 1면 톱기사로 지진 발생 사실을 짧게 다루었고, 3월 12일 스포츠신문을 포함한 거의 모든 조간지가 1면부터 끝면까지 큰 제목과 사진으로 지진 상황을 보도했다. 요미우리 신문과 아사히 신문은 3월 13일 일요일 "특별석간지"를 출간했다. 일부 신문사는 3월 12일부터 방송국 편성표를 중간으로 옮기고 지진 보도를 늘렸으며, 전국지는 3월 말까지 편성표를 중간 면에 실었다. 지진 직후 발행된 신문들은 지면 대부분이 지진 보도였고, 페이지 수가 절반 가까이 줄었으며, 신문 광고도 거의 없었다.

지진 피해 지역 신문사는 인근 지역 신문사와 재해원조협정을 체결하여 신문 제작, 인쇄를 의뢰했다. 이와테 일보는 가호쿠 신문을 제외한 도호쿠 지역 6개 신문사와 재해상호지원협정을 체결, 도호 일보 사에서 4개면을 대리 간행했다. 가호쿠 신문은 면진 구조 윤전기로 지진 당일 23시경 2면의 호외를 발간해 각 대피소로 배달했고, 다음날 니가타 일보에 신문 제작을 위탁하여 8면의 조간신문을 발행했다. 이시노마키 일일신문은 본사 침수로 윤전기 및 편집작업용 컴퓨터가 파괴되었으나, 인쇄용 롤을 잘라 종이에 유성 사인펜으로 정보를 적은 대자보를 만들어 6일간 정보를 전달했다. 지진 7일 후부터는 인쇄신문을 배포하기 시작했고, 2주 후엔 긴급 복구한 윤전기로 정식 인쇄를 시작했다. 이 대자보는 뉴지엄에 전시되어 있다.

도호쿠 및 간토의 지진 피해 지역에선 교통시설 파괴, 연료 부족 등으로 4-5일간 신문 배송을 하지 못했다. 이와테 도카이 신문은 쓰나미로 본사 윤전기가 침수, 독자 피해로 3월 29일부로 휴간하였다. 이와키 민보, 신문 아카하타 도호쿠, 오사키 타임스, 산리쿠 신보도 며칠간 휴간했다. 반면 도카이 신보는 자가발전기로 윤전기를 돌려 임시 발행했다.

6.3. 출판 및 인쇄

해안가에 있던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일본제지 공장과 하치노헤시의 미쓰바시 제지 공장이 쓰나미 피해를 입었으며 내륙의 이와누마시 일본제지 공장과 나코소의 공장은 쓰나미 영향은 받지 않았지만 태평양 연안의 일본 제지공장 생산설비 및 제품 대다수가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다. 연료 부족 사태도 겹쳐 일본 전국적으로 인쇄용지 공급이 부족해졌다. 일본잡지협회에서는 3월 18일까지 발매 중단 또는 연기를 결정한 잡지가 주간 소년 점프를 포함해 191개 지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결국 슈에이샤를 비롯한 일본 각지의 출판사들은 긴급결정을 내려 주간 소년 점프 나 주간 아스키 등 일부 잡지 최신호를 인터넷에 무료로 배포했다. 지진 후 종이 부족 사태가 계속 이어져, 일부 일본 잡지사는 페이지 수 감소나 종이재질을 바꾸는 임시 조치를 취했다. 중소 인쇄회사 중에서는 종이 부족으로 영업을 못해 단기간에 도산하는 기업도 여럿 나타났다.

2011년 6월 27일, 쓰나미 피해를 입은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의 일본제지 공장.
2011년 6월 27일, 쓰나미 피해를 입은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의 일본제지 공장.

6.4. 인터넷

일본 내에서 정보 제공을 위해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다. NHK와 민영 방송국들은 정전으로 TV를 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니코니코 동화, Ustream, Yahoo! JAPAN 등 사이트에서 생방송 중계를 했다. 니코니코 동화 홈페이지에서는 NHK, 후지 테레비, TBS 뉴스버드의 허가를 받아 NHK 종합 및 NHK 월드 뉴스 등의 라이브 스트리밍하거나 자체 긴급 생방송 특별 프로그램도 송출했으며 별다른 결재 없이 이들을 볼 수 있게 풀었다. Ustream은 NHK(NHK 종합 및 NHK 월드TV), TV 아사히, TBS, 후지 테레비, TV 가나가와를 스트리밍하였고 야후 재팬에서는 NHK(NHK 종합 및 NHK 교육)을 스트리밍하였다. 인터넷으로 텔레비전 방송 생중계는 지진 발생 17분 후 일본의 한 중학생이 NHK 임시뉴스를 무단 배포한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되었다.

지진 생존자를 찾고 일본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얻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자원으로는 일본 전신 전화 주식회사(Nippon Telegraph and Telephone)가 운영하는 재해 메시지 게시판 Web171, 국제 적십자 위원회, 미국 적십자사, 구글 개인 찾기, 호주 대사관 웹사이트, 미국 국무부, 영국 외무·영연방부, 그리고 위기 캠프(CrisisCommons) 자원 봉사자 커뮤니티가 운영하는 혼슈 지진 위키가 있었다. 2013년 3월 27일, 구글은 전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나미에의 배타 구역에 대한 스트리트 뷰 이미지를 공개했다.

7. 재해 대응 활동

일본 정부는 지진 발생 28분 후인 15시 14분에 사상 최초로 긴급 재해 대책 본부를 설치했다. 3월 12일 밤의 순환 각의에서 정령에 의해 "헤이세이 23년(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등에 의한 재해"를 격심 재해에 대처하기 위한 특별 재정 원조 등에 관한 법률(격심 재해법)에 근거한 "격심 재해"로 지정하고, 마찬가지로 정령에 의해 특정 비상 재해 특별 조치법에 근거한 특정 비상 재해로 지정했다(두 정령 모두 3월 13일 공포). 또한 아오모리현,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 이바라키현, 도치기현, 지바현, 도쿄도는 재해 구호법의 적용을 결정했다(적용 시정촌은 도현마다 지정). 3월 22일, 아오모리현,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 이바라키현, 지바현과 내각부는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과 쓰나미에 의한 피해에 대해 피해자 생활 재건 지원법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적용 지역은 아오모리현,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 이바라키현, 도치기현, 지바현 7개 현). 다만, 국가 및 후쿠시마현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따른 장기 피난 가구를 피해자 생활 재건 지원법의 장기 피난 가구로 인정하지 않아 후쿠시마현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7.1. 구조 및 지원 활동

일본 정부는 지진 발생 28분 후인 15시 14분에 사상 최초의 "긴급 재해 대책 본부"를 설치했다. 3월 12일 밤의 순환 각의에서 정령에 의해 "헤이세이 23년(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등에 의한 재해"를 격심 재해에 대처하기 위한 특별 재정 원조 등에 관한 법률 (격심 재해법)에 근거한 "격심 재해"로 지정하고, 마찬가지로 정령에 의해 특정 비상 재해 특별 조치법에 근거한 특정 비상 재해로 지정했다(두 정령 모두 3월 13일 공포). 또한 아오모리,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이바라키, 도치기, 지바, 도쿄 각 도현은 재해 구호법의 적용을 결정했다(적용 시정촌은 도현마다 지정). 3월 22일, 아오모리,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이바라키, 지바 각 현과 내각부는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과 쓰나미에 의한 피해에 대해 피해자 생활 재건 지원법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적용 지역은 아오모리,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이바라키, 도치기, 지바 7개 현). 다만, 국가 및 후쿠시마현은 원전 사고에 따른 장기 피난 가구를 피해자 생활 재건 지원법의 장기 피난 가구로 인정하지 않아 후쿠시마현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생존자를 수색하는 에히메현 이마바리시 소방본부의 소방대원 (2011년 3월 17일, 가마이시시 우노스마이 지구)
생존자를 수색하는 에히메현 이마바리시 소방본부의 소방대원 (2011년 3월 17일, 가마이시시 우노스마이 지구)

미 해군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 함내에서 지원 상황을 확인하는 기미즈카 에이지 도호쿠 방면대 총감 (2011년 3월 31일)
미 해군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 함내에서 지원 상황을 확인하는 기미즈카 에이지 도호쿠 방면대 총감 (2011년 3월 31일)

고립된 주민을 입욕 지원을 위해 호위함 휴가에 공수하는 육상자위대의 헬리콥터 (2011년 4월 1일, 게센누마 오시마)
고립된 주민을 입욕 지원을 위해 호위함 휴가에 공수하는 육상자위대의 헬리콥터 (2011년 4월 1일, 게센누마 오시마)

지진 발생을 받고 당일 15시 14분에 설치된 내각부 긴급 재해 대책 본부는 2011년 5월 17일, 같은 날까지 2만 6708명이 경찰청, 소방청, 해상보안청, 자위대의 파견 부대에 의해 구조되었다고 발표했다。 기관별로는 자위대가 19,286명, 소방이 5,064명, 경찰이 3,749명을 각각 구조했다.

또한, 일본 국외의 156개 국가·지역과 41개 기관이 지원을 표명했으며, 28개 국가·지역·기관에서 구조대를, 53개 국가·지역·기관에서 구호 물품을 지원받았다

피해 지역에서는 현이나 시 등의 물류 거점까지 수송된 식량, 연료, 물, 의약품 등이 구석구석까지 전달되지 않아 한신·아와지 대지진 발생 시와 비교하여 물자가 대폭 부족했다. 그 이유로, 각지의 항만이 피해를 입어 도로망이 단절된 것, 시나 마을의 직원이 희생되는 등 피해 지역 측의 수용 태세가 정비되지 않은 것, 수송 차량의 연료가 부족했던 것, 피해가 광범위하게 미치고 피난민이 지정된 피난소 이외의 시설에 분산된 것 등이 있다. 특히 연료가 부족하여, 피해 지역에서는 자동차로 이동하거나 난방을 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다. 또한 후쿠시마현에서는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의한 피폭을 우려하여 트럭이 되돌아가는 등, 연안부를 중심으로 물자가 도착하기 어려워졌다。 오우 산맥을 넘는 국도 347호를 비롯한 몇몇 도로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동계 폐쇄였지만, 그 정보를 알지 못하고 동해 쪽에서 구호에 나선 차량이 되돌아가는 사례가 있었다

로이터의 편집자인 Felix Salmon은 일본에 의연금을 보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은 자산이 많은 국가이며, 수천억 달러에 상당하는 돈을 찍어내 재원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전적인 국제 원조는 개발 도상국에 해야 할 일이며, 대외 순자산 세계 제일인 일본에 국제 원조 모델을 적용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대만의 기부 총액은 최소 73억 6400만 대만 달러 (약 200억 엔, 2억 5200만 미국 달러)에 달했다. 또한, 미군 다음으로 도착하여 최초의 구호 물품을 피해 지역에 가져온 것은 두 번째 외국인 구조대였다.
미야기 생협 유키마치점에 줄을 선 센다이 시민(2011년 3월 18일, 미야기현 센다이시 미야기노구 유키마치)
미야기 생협 유키마치점에 줄을 선 센다이 시민(2011년 3월 18일, 미야기현 센다이시 미야기노구 유키마치)

구호 물자 조달에서는 물과 식량은 농림수산성, 생필품과 연료는 경제산업성, 의약품은 후생노동성이 각각 각 업계에서 모으고, 그것을 자위대나 국토교통성이 의뢰한 운송업자가 수송하는 체제가 취해졌다 (일본통운 등 운송업체와 전일본트럭협회는 정부 지정 공공기관이다). 물자는 자위대, 주일본 미국군의 각 기지나 주둔지에서 항공자위대 마쓰시마 기지와 미군에 의해 복구된 센다이 공항, 후쿠시마 공항, 하나마키 공항(이와테현)으로 공수되었고, 육로로 현의 1차 물자 집적 거점에 반입된 후, 민간 업체에 의해 하역·분류·반출되어 시정촌의 2차 집적소로 운반되고, 육상자위대 트럭으로 각 피난소로 운반하는 방식이 취해졌다 (※ 이와테 방식). 자위대 외에는 도쿄 소방청 항공대의 헬리콥터나 해상보안청의 순시선과 항공기를 이용한 물자 수송이 이루어졌으며, 또한 국토교통성의 대형 준설 겸 유회수선 「세이류마루」, 「카이쇼마루」, 「하쿠산」에 의한 긴급 물자 수송, 항해 훈련소 소속의 항해 연습선 「은하마루」, 「해왕마루 (2대)」에 의한 의약품 등의 긴급 물자 수송, 조사 포경선 「닛신마루」, 수산청 소속의 어업 단속선, 수산 종합 연구 센터의 조사선 등을 이용한 물자 공급도 이루어졌다。 또한 (사)해외 원양 어업 협회 소속의 원양 어선은 3월 13일 이후 총 26척이 피해 지역으로 향해 배에 탑재된 소형정(레코 보트)을 이용하여 대형선이 접안할 수 없는 지역에 식량, 경유, 담요 등을 반입했다. 또한 전일본 해원 조합은 차터한 200톤급 오징어 낚시 어선을 이용하여 하코다테항 (홋카이도)에서 산리쿠 각 항(미야코항, 게센누마항, 이시노마키항)으로의 물자 수송을 실시했다

7.1.1. 자위대

일본 방위성은 지진 발생 4분 후인 2011년 3월 11일 14시 50분 재해대책본부를 설치하였다. 3월 14일에는 육해공 자위대의 각 부대를 통합임무부대로 묶고 동북방면대 지휘관 기미즈카 에이지가 지휘하는 재해통합임무부대(JTF-TH)가 수립되었다. 이는 자위대 창설 이래 최대 규모의 재해파견이었다.

3월 16일, 방위성은 자위대 창설 이래 처음으로 즉응예비자위관 및 예비자위관의 재해긴급소집명령을 내렸다. 최대 시점에서 파견 인력은 107,000명으로, 육상자위대 7만여명, 해상자위대 15,000명, 항공자위대 21,600명,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대처병력 500여명, 항공기 540기, 함선 59척 규모였다. 이들은 인명 구조, 시신 수습, 물자 수송, 의료진 및 환자 호송, 이재민 생활 지원 (급수, 급식, 연료 지원) 등의 활동을 펼쳤다.

2011년 7월 1일, 재해통합임무부대는 해산되었다.

7.1.2. 긴급소방원조대

일본 소방청의 지시로 전국의 소방본부에서 긴급소방원조대 총 109,919명이 파견되어 5,064명을 구조하였다.
* 파견 기간 : 2011년 3월 11일-6월 6일 (88일간)
* 부대 및 대원 수 : 1도 1도 2부 40현 총 인원 30,684명(8,854대) 연인원 109,919명(31,166대)
* 활동 지역 :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 지바현
* 활동 내용 : 항공부대는 인명구조, 공중소화, 정보수집 등을, 육상부대는 소화, 구조, 구급활동 등을 수행하였다.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역에서 활동하는 사이타마현 가와구치시 소방국 구조부대.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역에서 활동하는 사이타마현 가와구치시 소방국 구조부대.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역에서 활동하는 오사카 소방대 차량 행렬.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역에서 활동하는 오사카 소방대 차량 행렬.

동일본대진재 피해지역에서 활동하는 긴급소방원조대 오사카부 부대.
동일본대진재 피해지역에서 활동하는 긴급소방원조대 오사카부 부대.

7.2. 정치 및 행정

7.2.1. 중앙 정부

지진 발생 당일, 간 나오토 총리는 본부장을 자신으로 하는 긴급재해대책본부를 설치하였다. 이 기관은 대규모 재해가 발생했을 때 내각부 내에 설치하는 것으로 법률에 있는 임시기관이지만 설치된 예가 없었으며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면서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간 나오토 제2차 개조 내각은 2011년도 본 예산안을 중의원본회의에서 찬성 다수로 가결시켰지만, 예산 관련 법안을 성립시킬 전망이 서지 않아 여당과 야당 간의 대립도 격화되었다. 하지만 지진 발생 직후 간 나오토가 총리 관저에 불러 여야 당수 회담을 열고, "구국"을 위한 협력을 요청했다. 야당 측도 대립 자세를 수정했다. 14일에는 지진 재해 대응 특별 조치법의 조기 성립이 여야 내에서 합의되었다.

2011년 4월 1일 각의 결정에 따라 동일본대진재 부흥구상회의가 설치되었다. 같은 해 6월 24일에는 동일본대진재 부흥기본법이 공포, 시행되어 내각 내에 동일본대진재 부흥대책본부가 설치되었다. 7월 25일 동일본대진재 복구 및 부흥 관련 비용을 포함한 2011년 제2차 보정예산안(1조 9,988억 엔)이 통과되었다. 11월 20일 동일본대진재 관계정비 11조 7,335억 엔 등을 중심으로 한 2011년 제3차 보정예산안(12조 1,025억 엔)이 통과되었다. 12월 7일에는 동일본대진재부흥특별구역법이 통과되었다. 12월 9일에는 부흥청설치법이 통과되어 지진 재해의 부흥을 목적으로 기간을 정해 설치하는 부흥청의 소관 사무, 조직이 구체화되었다. 2012년 2월 10일에는 부흥청이 발족되었다.

2011년 3월 11일 17시, 지진 발생 후 기자회견을 하는 간 나오토내각총리대신
2011년 3월 11일 17시, 지진 발생 후 기자회견을 하는 간 나오토내각총리대신

4월 11일, 간 나오토 당시 내각총리대신은 일본 육상자위대 제6사단 사령관인 쿠노 유지 육장으로부터 미야기현이시노마키시의 이시노마키 상업고등학교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4월 11일, 간 나오토 당시 내각총리대신은 일본 육상자위대 제6사단 사령관인 쿠노 유지 육장으로부터 미야기현이시노마키시의 이시노마키 상업고등학교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7.2.2. 각 정당의 움직임

* 민주당은 3월 11일 간사장 오카다 가쓰야를 본부장으로 하여 당 산하 "민주당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대책본부"를 설치하였다.
* 자유민주당은 3월 11일 총재 다니가키 사다카즈를 본부장으로 하는 "헤이세이 23년 3월 11일 지진긴급대책본부"를 설치했다.
* 공명당은 3월 11일 오후 대표 야마구치 나쓰오를 총본부장으로 하는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대책본부"를 설치하였다.
* 모두의 당은 대표 와타나베 요시미를 본부장으로 하는 "지진 피해 대책본부"를 설치했다고 발표했다.
* 일본공산당위원장 시이 가즈오를 본부장으로 하는 "일본공산당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대책본부"를 설치하였다.
* 일어나라 일본은 3월 12일 대표 히라누마 다케오가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대책에 관해"라는 주제로 발표하였다.
* 국민신당 및 신당일본은 공동으로 3월 11일 17시 국민신당 대표 가메이 시즈카를 본부장으로, 신당일본 대표 다나카 야스오를 본부장 대행으로 하는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대책본부"를 설치하였다.
* 오키나와 사회대중당의 위원장 이토카즈 게이코는 이재민에게 조문과 위로를 전했다.
* 신당대지의 대표대행인 아사노 다카히로는 3월 11일 자신의 블로그에 정부의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을 요구하는 동시에 이재민에 대한 위로의 말을 올렸다. 신당대지의 대표 스즈키 무네오는 당시 수감중이었다.
* 일본창신당의 당수 야마다 히로시는 3월 12일 당수 성명을 내고 이재민과 모든 국민에 대해 조의를 표했다. 또한 당으로써 이재민 지원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7.2.3. 지방 행정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시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정, 오나가와정 등 일본 각지에서 관공서와 사무소가 쓰나미로 물에 잠겨 침수되거나 손상을 입었고, 이와테현 오쓰치정에서는 정장이 사망하는 등 쓰나미 피해를 입은 도호쿠 지방 태평양 연안 지역과 원전 사고가 있던 후쿠시마현 하마도리에서는 공무원 대부분이 재해 때문에 일손 부족에 빠지거나 정사무소/의회 행정 서류가 없어지는 등 행정 기능 자체가 마비된 지자체가 생겼다.

2011년 4월 제17회 통일지방선거가 열렸지만 재해를 입은 지역은 재해지 선거연기법으로 선거가 연기되었다.
* 지바현 우라야스시에서는 시내의 3/4 정도를 차지하는 매립지에서 액상화현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바현이 선거를 예정대로 실시한다고 하면서 해당 시에서는 최대 2개월간 선거를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전투표를 포함한 모든 투개표 사무가 중지되면서 5월 재선거를 실시할 때까지 현의회 의원 2명이 결원된 상태로 개회하였다.

또한 간접적인 영향으로 3월 27일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열린 주의회 선거에서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탈원전 운동이 고조되면서 동맹 90/녹색당이 제2당으로 약진하고 독일 사회민주당과 연립정당을 구성하는 등 일본 국외 정계에서도 일본의 지진 영향을 받았다.

7.3. 일본 황실

일본 황실은 동일본 대진재 이후 다양한 활동을 통해 피해 복구와 이재민 지원에 참여했다.

7.4. 해외 기업 및 공관의 반응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정부는 동일본 대진재로 인한 원전 피해 등을 이유로 일본에 주재하는 외교관, 유학생, 회사원, 여행자 등 자국민을 일시적으로 국외로 대피시키기 위해 정부 전용기나 민간 전세기를 일본 국내 공항에 파견했다. 이들은 무상으로 자국민을 국외로 대피시키는 동시에, 방사능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으로의 임시 피난을 권고했다. 본국 정부나 소속 기업으로부터 피난 권고가 없었음에도 자발적으로 국외로 피난하는 재일 외국인도 있었다.

이러한 재일 외국인들의 피난 및 도피로 인해, 이들 국가의 기업 일본 법인이나 지점에서는 정상적인 업무에 지장을 받거나 조업을 일시 중단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일부 해외 기업들은 일본 법인의 본사나 지점을 간사이 지방이나 규슈 지방 등 원전 피해 영향권에서 먼 지역으로 일시적으로 이전하는 것을 검토했고, 알리코 재팬과 같이 실제로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한 기업도 있었다.

루프트한자에어 프랑스 등은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진정되어 방사능 피해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확인될 때까지 나리타 국제공항행 노선을 일시 정지하거나 간사이 국제공항 등으로 목적지를 변경했다. 이 외에도 간사이 국제공항이나 대한민국을 경유해 나리타 국제공항으로 운항한 뒤 하루 안에 다시 이전 공항으로 회항하여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승무원 숙박 및 기내식 적재가 일어나지 않게 조치한 항공사들도 있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약 53만 1,000명의 일본 거주 비일본인이 일본을 떠났으며, 여기에는 도쿄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약 25%가 포함되었다.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일본의 영어 매체는 이 재해 이후 도망친 비일본인을 지칭하는 용어로 일본어 단어 가이진을 변형한 "플라이진"(flyjin)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일본 주둔 미군 및 정부 민간인 직원의 9,720명의 부양가족이 주로 미국으로 도망쳤다. 미국은 부양가족을 자국으로 수송하기 위해 전세 항공기에 1,170만 달러를 지출했다.

2011년 일본의 외국인 거주자 수는 5만 5,000명 감소했으며, 이와테현은 비일본인 인구의 15.5%, 후쿠시마현은 15.1%, 미야기현은 13.2%를 잃었다. 전국 외국인 감소 인원은 지진 이전 전체의 2.6%였다.

8. 부흥

2011년 4월 도호쿠 신칸센이 전 노선에서 운행을 재개하고, 2012년 2월 일본 부흥청이 발족하였다. 2014년 3월에는 이와테현과 미야기현의 잔해 처리가 완료되었으며, 같은 해 4월에는 산리쿠 철도가 전 노선 운행을 재개했다. 2020년 3월에는 조반선이, 2021년 12월에는 산리쿠 연안 도로가 전 노선 개통되었다.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 3개 현 연안 지역에서는 대량의 재해 폐기물 및 해일 퇴적물 처리가 진행되어 2017년 3월 말까지 완료되었다. 재해 폐기물은 총 1843만 톤으로, 가설 소각로 증설 및 광역 처리를 통해 처리되었다. 해저에 가라앉은 쓰레기는 지진 발생 10년 후에도 전문업체의 인양 및 어망을 통한 회수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쓰나미로 인해 도시 기능이 상실된 지역에서는 부흥 방향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일부 사업이 시작되었다. 주요 방안으로는 고지대 이전, 지반 높임, 직주 분리, 신산업 전개, 쓰나미 방어 시설 강화, 쓰나미 피난 시설 강화, 쓰나미 피난 행동 지원 강화 등이 있다. 특히 미야기현 부흥 계획에서는 센다이만 남부에 방조제, 방재림, 녹지, 농지, 성토 도로, 산업 용지, 성토 철도, 주택지를 띠 모양으로 배치하는 다중 방어 체계를 구상하고 있다.

후쿠시마현은 2012년 7월 후쿠시마 관광부흥지원센터를 설립하여 구연자(이야기꾼) 지원, 시찰지 소개 등 관광 부흥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후쿠시마시, 소마시, 아이즈와카마쓰시 등 여러 지역에서 피난 생활 지원, 방재 학습, 풍평 피해 불식 노력 등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2021년 3월 말 기준으로 재해 공영 주택, 도로, 항만, 농지, 철도, 학교, 수도 시설, 하수도 등 대부분의 시설 복구가 완료되었거나 90% 이상 진행되었다.

산리쿠 해안 연안 시정촌에서는 방조제 등 복구・방재 공사가 완료됨에 따라 토목 작업원이 철수하거나 고용이 감소하면서 인구 감소가 진행되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현하마도리 등에서도 피난하여 돌아오지 않는 전 주민이 많다.

9. 재해 후 여러 움직임

9.1. 추모 및 위령제

피해가 컸던 도호쿠 3현은 리쿠젠타카타시(이와테현), 이시노마키시(미야기현), 나미에정(후쿠시마현)에 부흥기원공원을 정비하고, 정부는 공원 내에 국영 추도 시설을 설치했다. 이 시설 건립은 2017년 9월 1일 내각에서 각의되었다.

일본 정부와 피해를 입은 지자체들은 매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 추도식을 열고 있다. 2012년부터 2021년까지는 국립극장에서 정부 주최 추도식이 열렸으나, 2020년 1월 21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10주년인 2021년을 기점으로 정부 주최 추도식을 종료하겠다고 발표했다. 2020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영향으로 정부 주최 추도식이 중지되고, 총리대신 관저 헌화식이 거행되었다. 2021년 추도식은 코로나19 방역 대책을 위해 참례자를 한정하여 개최되었으며, 현 천황나루히토와 황후 마사코가 처음으로 참석했다.

2022년부터는 정부 주최 추도식 대신 후쿠시마현 주최의 "동일본 대지진 추도 부흥 기념식"에 내각총리대신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가 참석하고 있다. 2022년 3월 11일에는 기시다 후미오 내각총리대신이 후쿠시마현 주최 추도식에 참석하여 묵념을 올렸다. 피해 3현에서는 추도식을 지속하는 자치단체와 개최하지 않는 자치단체로 나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9.2. 지진 잔존물

쓰나미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반쯤 파괴된 건물 잔해가 피해 지역 연안 곳곳에 남아있다. 이 중 지진 잔존물 또는 진재유구(震災遺構일본어)로 인정받은 잔해들은 지진의 교훈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비용으로 보존된다. 지자체 비용 투입은 "1지자체 1시설"이 원칙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잔존물 인정은 공공시설이 대부분이며, 2017년 12월까지 민간건물은 이와테현 미야코시의 다로 관광호텔 하나뿐이었다. 소유자가 자비로 보존을 결정한 것 이외의 민간 건물 잔존물 중에는 철거가 우려되는 건물들도 있다.

이 외에도 자연재해 전승비를 재평가하거나 이와 유사한 기념물·시설을 신설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국토교통성 동북지방정비국 등은 "진재 전승 네트워크 협의회"를 통해 이러한 진재 전승 시설을 220건 이상 등록하였고, 동북경제연합회 등은 일반 재단법인 "3.11 전승 로드 추진 기구"를 설립하여 진재 유구의 네트워크화를 추진하고 있다.

주요 지진 잔존물은 다음과 같다.

* 센다이시
센다이 시립 아라하마 소학교: 2015년 5월 보존이 결정되어 2017년 4월 30일부터 일반에 공개되었다.
* 미야코시
다로 관광호텔: 보존
방조제: 보존 결정
* 가마이시시
우노스마이 지구 방재 센터: 2014년 2월 해체
* 리쿠젠타카타시
기적의 외 소나무: 복원 및 보존
* 미나미산리쿠정
미나미산리쿠정 방재대책청사: 2031년까지 현 소유로 유지
다가노 회관(민간 소유)
* 이시노마키시
이시노마키 시립 오카와 소학교: 2016년 3월, 피해를 입은 옛 건물을 존치하는 형태로 전체 보존
이시노마키 시립 가도와키 소학교: 학교 건물을 지진 잔존물로 지정하여 부분적으로 보존
* 오쓰치정
정사무소 옛 청사: 일부 보존 방침을 검토
유람선 하마유리호: 해체 후 복원을 위한 기부 모금 중
* 게센누마시
어선 제18 도코도쿠마루: 2013년 10월 24일 해체
미야기현 게센누마 고요 고등학교
* 오나가와정
구 오나가와 파출소: 보존을 위해 기부 모금
* 히가시마쓰시마시
JR 구 노비루역
* 후쿠시마현 도미오카정
도미오카역: 해체 후 일부 보존
** 쓰나미 피해를 입은 경찰차: 이동 후 보존

지진 재해 3년 후 보존이 검토되는 잔존물은 미야기현 15곳, 이와테현 8곳이 있었다. 2014년 5월 시점 미야기현에서는 7개 시정 12개 시설이 보존검토대상이었다.

2012년 9월 21일, 미국 해양대기청후쿠시마현에서 온 대형 파란색 플라스틱 보관함이 하와이 해역에 도착한 최초의 확인된 해양 쓰레기 조각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 또는 캐나다 해역에 도착한 12번째 일본 쓰나미 잔해 조각으로 확인되었다.

2012년 11월 30일, 노다 총리는 일본 정부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쓰나미 잔해와 관련하여 선의를 보여주기 위해 미국 정부에 대한 특별 선물 제공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2013년 3월, 쓰나미로 인해 유실된 보트가 미국 워싱턴 해안으로 밀려왔으며, 보트에는 갇힌 채 살아있는 물고기 5마리가 있었다. 살아남은 쓰나미 물고기는 시사이드 수족관에 전시되었다. 2015년 9월부터 2016년 3월 사이에 북미 해안선으로 밀려온 64개의 품목이 쓰나미 잔해로 확인되었다.

9.3. 소행성 명명

국제천문연맹은 지진 재해 부흥을 기원하며 2012년 5월 일본 니가타시에서 열린 "소행성·유성·혜성 2012"를 계기로 소행성에 피해 지역 이름들을 붙였다. 이는 일본 국립천문대가 로웰 천문대에 의뢰해 지은 이름들이다.

* 현 이름: 19534 미야기, 19691 이와테, 19701 아오모리, 19713 이바라키, 19731 도치기, 20613 지바현
* 후쿠시마현 내 지방 명칭: 14701 아이즈, 21966 하마도리, 22719 나카도리
* 재해를 입은 지자체 이름: 22745 리쿠젠타카타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시), 22885 사카에무라 (나가노현 사카에촌), 22914 쓰난마치 (니가타현 쓰난정)

그 외 지진 재해에 관련된 명칭이 붙은 소행성은 다음과 같다.
* 23649 도호쿠, 29157 히가시니혼(동일본), 31152 다이신사이(대진재)
니가타현 니가타시의 도키 멧세에서 열린 소행성, 혜성, 유성 2012 회의에서 국제 천문 연맹은 지진 피해 지역을 기원하는 의미로 12개의 소행성 이름을 승인했다.

소행성 23649 도호쿠는 지진으로 사망한 모든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진 피해 지역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소행성 29157 히가시니혼은 지진으로부터의 부흥을 기원하며 명명되었고, 소행성 31152 다이신사이는 이 사건을 기념하고 희생자들을 기원하기 위해 지진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9.4. 출처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