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후조
1. 개요
유후조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철종 때 대도호부사로 관직에 진출하여 사간원 대사간을 거쳐 고종 때 이조참판, 사헌부 대사헌, 공조판서를 역임했다. 이후 홍문관 제학, 공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을 지냈으며, 좌의정에 이르렀다. 유성룡의 8대손이며, 1858년 과거에 급제하여 정3품으로 승진했고, 1865년 공조 판서가 되어 정2품으로 승진, 1866년 우의정에 취임했다. 1867년 좌의정에 취임했으나 1872년 치사하여 봉조하가 되었다. 붕당 정치에서는 남인에 속했으며, 1798년 채제공 이후 의정부에서 의정이 선출된 이례적인 경우였다.
유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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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관직 진출
철종 때 뒤늦은 나이에 대도호부사로 관직에 진출하였다. 사간원 대사간을 거쳐 고종 때 이조참판이 되었다.
2.2. 고위 관직 역임
철종 때 뒤늦은 나이에 대도호부사로 관직에 진출, 사간원대사간을 거쳐 고종 때 이조참판이 되고 사헌부대사헌, 공조판서로 승진, 제조를 겸하고 홍문관제학, 공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이 되고 좌의정에 이르렀다.
1840년대부터 지방관을 역임했으며, 강릉시 부사로 재임 중이던 1858년에 과거 문과에 급제하여 정3품으로 승진했다. 1865년에 공조 판서가 되어 정2품으로 승진했고, 1866년 우의정에 취임했다. 1867년에는 좌의정에 취임했다.
4. 역대 좌의정
5. 역대 우의정
주어진 원본 소스에 역대 우의정 관련 정보가 없으므로, 섹션 내용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