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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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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완벽은 라틴어 'perfectio'에서 유래된 개념으로, '마무리' 또는 '완료'를 의미하며,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등 고대 철학자들과 중세 신학자들에 의해 다양한 의미로 정의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미학과 예술의 이상으로 여겨졌으며, 수학에서는 특정 숫자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사용되기도 한다. 물리학과 화학에서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모델을 지칭하며, 윤리학에서는 선과 조화를 추구하는 이상을 나타낸다. 현대 사회에서는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모두 가지며, 특히 한국 사회에서 높은 기준과 경쟁 심리를 통해 나타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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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

2. 용어와 개념

아리스토텔레스


'완벽'이라는 단어는 여러 언어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화해 왔다. 이 개념의 기원은 라틴어를 넘어 그리스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라틴어 ''perfectus''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teleos''였다. 이 그리스어 표현은 완벽한 의사나 플루트 연주자, 완벽한 희극, 완벽한 사회 시스템 등 구체적인 대상을 지칭했다. 따라서 그리스어 ''teleiotes''는 라틴어 ''perfectio''나 현대의 "perfection"처럼 추상적이거나 최상급의 의미를 갖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스어 용어는 "perfection"보다는 "완전함"으로 번역되곤 한다.[3]

완벽함에 대한 개념은 다른 개념들과 혼동되기 전까지 2000년 동안 거의 동일하게 유지되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를 의미하는 라틴어 ''excellentia''(탁월함)였다. 고대에는 ''excellentia''와 ''perfectio''가 함께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고위 인사들은 ''perfectissime''라고 불렸는데, 지금은 ''excellency''라고 불린다. 그러나 두 표현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excellentia''는 비교를 통해 다른 것들보다 뛰어나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반면, ''perfectio''는 비교 없이 그 자체로 완벽하다는 의미이다.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세상을 가능한 최고의 세상으로 여겼지만, 세상이 완벽하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5]

2. 1. 어원

영어에는 "perfection"과 성경적 "perfectness"의 대체 표현이 있었다.[2] "perfection"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perfectio''"에서 유래되었고, "perfect"는 "''perfectus''"에서 유래되었다. 이러한 표현들은 다시 "''perficio''" — "끝내다", "마무리하다"에서 유래되었다. 따라서 "''Perfectio''(n)"는 문자 그대로 "마무리"를 의미하며, "perfect''(us)''"는 "완료된"을 의미한다. 이는 문법적 표현 ("완료")과 유사하다.[2]

많은 현대 언어들이 "완벽"이라는 개념에 대한 용어를 라틴어에서 차용했다. 프랑스어 "''parfait''"와 "''perfection''", 이탈리아어 "''perfetto''"와 "''perfezione''", 스페인어 "''perfecto''"와 "''perfección''", 영어 "perfect"와 "perfection", 러시아어 "''совершенный''"(sovyershenniy)와 "''совершенство''"(sovyershenstvo), 크로아티아어세르비아어 "''savršen''"와 "''savršenstvo''", 체코어 "''dokonalost''", 슬로바키아어 "''dokonaly''"와 "''dokonalost''", 폴란드어 "''doskonały''"와 "''doskonałość''" 등이 있다.[2]

"완벽"이라는 개념의 계보는 라틴어를 넘어 그리스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라틴어 "''perfectus''"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teleos''"였다. 후자의 그리스어 표현은 일반적으로 완벽한 의사나 플루트 연주자, 완벽한 희극 또는 완벽한 사회 시스템과 같이 구체적인 지시 대상을 가졌다. 따라서 그리스어 "''teleiotes''"는 라틴어 "''perfectio''"나 현대의 "perfection"처럼 추상적이고 최상급적인 연관성을 가지지 않았다. 이러한 연관성을 피하기 위해, 그리스어 용어는 일반적으로 "perfection"보다는 "완전함"으로 번역되었다.[3]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메타피지카》의 《델타》 권에서 "완벽"에 대한 가장 오래된 정의를 내렸는데 꽤 정확하며, 개념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였다. 그는 이 용어의 세 가지 의미, 즉 하나의 의미에서 세 가지 뉘앙스를 구분했지만, 어쨌든 세 가지 다른 개념을 구분했다. 완벽하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완전하다 — 필요한 모든 부분을 포함한다.

:2. 너무 좋아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3. 목적을 달성했다.[4]

이러한 개념 중 첫 번째는 두 번째에 꽤 잘 포함된다. 그러나 이 두 가지와 세 번째 사이에는 개념의 이중성이 발생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의 저서 《신학대전》에서 두 가지 완벽성을 구분했을 때 표현되었다. 즉, 사물이 그 자체로 완벽할 때 — 그가 말했듯이, 그 "본질"에서; 그리고 사물이 그 "목적"에 완벽하게 부합할 때이다.[4]

완벽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러한 변형은 다른 관련 개념과 혼동되기 전까지는 2,000년 동안 거의 동일하게 유지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개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인 것에 대한 개념이었다. 라틴어로는 "''excellentia''"("탁월함")이다. 고대에는 "''excellentia''"와 "''perfectio''"가 한 쌍을 이루었다. 예를 들어, 고위 인사들은 "''perfectissime''"라고 불렸으며, 현재는 "excellency"라고 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두 가지 높은 존경의 표현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excellentia''"는 많은 것들 중 구별되는 것이며, 비교를 내포하는 반면, "''perfectio''"는 비교를 포함하지 않으며, 어떤 것이 완벽하다고 여겨지면, 다른 것들과의 비교 없이 그 자체로 완벽하다고 여겨진다. 완벽에 대해 많이 생각했고, 세상을 가능한 최고의 세상으로 여겼던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세상이 완벽하다고 주장하지 않았다.[5]

2. 2.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완벽"에 대한 가장 오래된 정의는 꽤 정확하며, 개념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저서 《메타피지카》의 《델타》 권에서 이 용어의 세 가지 의미, 즉 하나의 의미에서 세 가지 뉘앙스를 구분했지만, 어쨌든 세 가지 다른 개념을 구분했다. 완벽하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4]

:1. 완전하다 — 필요한 모든 부분을 포함한다.

:2. 너무 좋아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3. 목적을 달성했다.[4]

이러한 개념 중 첫 번째는 두 번째에 꽤 잘 포함된다. 그러나 이 두 가지와 세 번째 사이에는 개념의 이중성이 발생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의 저서 《신학대전》에서 두 가지 완벽성을 구분했을 때 표현되었다. 즉, 사물이 그 자체로 완벽할 때 — 그가 말했듯이, 그 "본질"에서; 그리고 사물이 그 "목적"에 완벽하게 부합할 때이다.[4]

2. 3. 토마스 아퀴나스의 구분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저서 《신학대전》에서 두 가지 완벽성을 구분하였다. 첫째는 사물이 그 자체로 완벽할 때, 즉 그 "본질"에서 완벽한 경우이다. 둘째는 사물이 그 "목적"에 완벽하게 부합할 때이다.[4] 이러한 구분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완벽의 세 가지 의미 중 목적 달성과 관련된 세 번째 의미와 연결된다.

3. 역사적 전개

"완벽"이라는 개념은 역사적으로 철학, 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논의되어 왔다.

르네 데카르트는 '신의 완전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완벽함을 근대 신학에 도입했다.[41] 바뤼흐 스피노자는 완벽함을 현실 존재의 속성이자 동의어로 보았고,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신만이 완벽하다고 주장했으며,[42] 이마누엘 칸트는 완벽함을 "현실의 총체"로 묘사했다.[42]

크리스티안 볼프와 그의 제자 알렉산더 고틀리프 바움가르텐은 완벽함 개념을 더욱 발전시켰지만, 18세기 독일을 제외한 다른 서방 국가에서는 완벽함 개념이 쇠퇴했다.[44]

이처럼 완벽함 개념은 "세상에 ''어떤 것도'' 완벽하지 않다"에서 "''모든 것이'' 완벽하다"로, "완벽함은 신의 속성이 ''아니다''"에서 "완벽함은 신의 속성''이다''"로 변화했다.[44]

3. 1. 계몽주의

르네 데카르트는 하느님의 속성으로서 완벽함이라는 개념을 근대 신학에 도입했으며, 이는 "신의 완전성"이라는 복수 형태로 나타났다.[41] 데카르트 이후, 17세기 다른 위대한 사상가들도 철학의 주요 개념으로서 완벽함을 지지했다. 그러나 바뤼흐 스피노자의 철학에서는 인격적인 신이 없었고, 완벽함은 현실의 존재(즉, 사물의 본질)의 속성이자 동의어가 되었다.[42]

라이프니츠는 "M. 데카르트가 말했듯이, ''존재'' 자체가 완벽함이다"라고 썼으며, "완벽함은 긍정적이고 절대적인, 무한한 어떤 것을 표현하는 단순한 속성이라고 부른다"라고 덧붙였다.[42] 또한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론''에서 "한계가 없는 것, 즉 신만이 완벽하다"라고 하여 완벽함을 다르게 해석했다. 이마누엘 칸트는 완벽함을 "''omnitudo realitatis''"("현실의 총체")로 묘사했다. 이처럼 중세 시대에는 모든 개별 존재의 속성이었던 완벽함은 17세기 철학에서 신의 속성이 되었다.[42]

라이프니츠의 제자 크리스티안 볼프는 이러한 완벽함 개념을 받아들였지만, 완벽함을 전체 존재가 아닌 개별 구성 요소에 귀속시켰다는 차이점을 보였다. 그는 흠 없이 보는 눈과 흠 없이 작동하는 시계를 예시로 들었다. 또한 ''perfectio simplex''와 ''composita'', ''primaria''와 ''secundaria''라는 변형을 구분하고 완벽함의 크기(''magnitudo perfectionis'')를 차별화했다.[43]

볼프의 제자 알렉산더 고틀리프 바움가르텐은 규칙으로부터 완벽함을 도출했지만, 예외(''exceptio'')로 이어지는 충돌(''regularum collisio'')을 예상하고 사물의 완벽함을 제한했다. 바움가르텐은 완벽함 ''simplex''와 ''composita'', ''interna''와 ''externa'', ''transcendentalis''와 ''accidentalis''를 구분했으며,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44]

요약하자면, 볼프와 그의 제자들은 스코라 철학자들이 사용했던 존재론적 완벽함의 개념으로 돌아갔다. 완벽함에 대한 ''신학''적 개념은 데카르트에서 라이프니츠에 이르기까지 17세기에만 존재했다.[44]

볼프 학파 덕분에 완벽함의 개념은 18세기 독일에서 지속되었다. 그러나 다른 서방 국가, 특히 프랑스영국에서는 그 세기에 완벽함의 개념이 이미 쇠퇴하고 있었으며, 프랑스의 ''백과전서''에서도 무시되었다.[44]

완벽함 개념의 역사는 "세상에 ''어떤 것도'' 완벽하지 않다"에서 "''모든 것이'' 완벽하다"로, 그리고 "완벽함은 신의 속성이 ''아니다''"에서 "완벽함은 신의 속성''이다''"로 큰 변화를 겪었다.[44] 크리스티안 볼프 학파와 함께 모든 것이 완벽해졌으며, 이는 존재론적 완벽함 개념의 역사에서 특이한 순간이었고, 그 후 곧 그 역사는 종말을 맞이했다.[44]

4. 다양한 분야에서의 완벽

"완벽"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의미로 사용된다. 수학에서는 특별한 속성을 지닌 완전수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쓰인다.[8][9] 물리학화학에서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론적 모델로서 중요한 ''완전 기체'', ''완전 강체'', ''완전 흑체'' 등의 개념을 나타낸다.[12]

그 외에도 "완벽"은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 상태, 즉 이상적인 모형이나 그 모형에 가까운 상태를 의미한다.[4] 예를 들어 존재론에서는 완전한 존재, 윤리학에서는 완전한 삶, 의학에서는 완전한 건강을 추구한다.

또한 "완벽"은 크리스티안 볼프가 언급한 것처럼 대상이 그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4] 완벽한 시력이나 정확한 시계가 그 예시이다. 사회적으로는 완벽한 예술가, 엔지니어처럼 기능을 완전히 수행하는 것을 "완벽"하다고 하며, 예술 비평에서도 완벽한 기술, 완벽한 초상화 등을 언급한다.[45]

미학과 예술 이론에서 완벽함은 파르테논 신전이나 오디세이처럼 완전히 조화로운 것을 의미한다.[45] 비즈니스 및 제조 분야에서는 린 사고의 기본 원칙 중 하나로 완벽함을 추구한다.[46]

그러나 "완벽한 바보"처럼 구어체에서는 최상급의 의미로, 칭찬, 감탄, 비난 등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된다.[47] 신학에서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을 "완벽"하다고 칭했는데, 이는 앞서 언급된 의미들과는 다르다.[48]

4. 1. 윤리학

플라톤은 "완벽"이라는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의 철학의 핵심인 "선"의 개념은 "완벽"과 동일시했다. 그는 완벽의 이상에 근접하는 것이 사람을 완벽하게 만든다고 믿었다.[13]

얼마 지나지 않아, 스토아 학파는 완벽의 개념을 명시적으로 윤리에 도입하여, 이를 자연, 이성, 그리고 인간 자신과의 조화로 묘사했다. 그들은 이러한 조화, 즉 완벽은 누구에게나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13] 플라톤과 스토아 학파는 완벽을 철학적 구호로 만들었으며, 이는 곧 기독교에서 종교적 구호로 변모하게 된다.[13]

완벽에 대한 기독교 교리는 복음서뿐만 아니라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마태오 복음서 5장 48절은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라고 권고한다.[14] 초기 기독교 저술, 특히 바울의 저술은 완벽에 대한 요구로 가득 차 있으며, 이러한 요구사항 중 다수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논문 ''De perfectione iustitiae hominis''에 모여 있다. 이는 이미 구약성경에서 "너는 주 너의 하느님 앞에서 완전하여라."(''신명기'' 18:13)라는 구절에서 시작된다. 다른 곳에서는 "완벽"의 동의어로 "흠 없는", "책망할 데 없는", "티 없는", "비난할 데 없는", "거룩한", "의로운", "책망할 수 없는", "비난받을 수 없는"이 사용된다.[15]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미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완벽을 위해 아낌없이 ''노력하는'' 사람도 제대로 완벽하다고 칭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정확한 과학에서 사용되는 것과 유사한, 더 넓은 개념의 ''근사한'' 완벽이다. 초기 고대 및 기독교 완벽은 현대의 ''자기 완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제로 성 암브로시우스는 완벽의 "정도"("''gradus piae perfectionis''")에 대해 썼다.[15]

성서는 완벽에 대한 생각과 함께, 완벽이 인간에게 ''달성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요한 1서 1장 8절에 따르면,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마태복음 19장 17절에서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선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선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셨다. 따라서 성 예로니모는 "''Perfectio vera in coelestibus''" 즉, 진정한 완벽은 하늘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고 썼다.[16]

5세기 초부터 교회 내에서는 완벽에 대한 두 가지 뚜렷한 관점이 생겨났다. 하나는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세상에서 완벽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특별한 신의 은총을 통해서만 완벽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의 관점은 펠라기우스가 옹호했으며 417년에 정죄되었다. 후자의 관점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옹호했으며, 5세기 초에 우위를 점하며 권위가 되었다.[17]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인간이 하나님을 묵상함으로써 완벽에 도달할 수 있는 ''자연적인'' 가능성을 말한 위-디아니시오스 아레오파기타의 저술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래서 수세기 동안 교회 내에서는 두 가지 관점이 대립했다.[17]

고대 철학자들에게 완벽의 본질이 조화였던 것처럼, 복음서와 기독교 신학자들에게는 자선 또는 사랑이었다. 성 바울은 (''골로새 신서'', 3: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완전의 매는 띠이니라."라고 썼다.[17]

성 그레고리오는 완벽은 역사가 다 이루어진 후에야 실현될 것이라고 썼다. 즉, "그때 세상은 아름답고 완벽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은 완벽, 즉 성스러움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도덕 신학 및 금욕주의에 관한 담론은 이를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으로 가득했다.[17]

중세 시대의 완벽 및 자기 완벽에 대한 개념은 특히 그 성숙한 형태에서 현대인에게 자연스러울 수 있다. 롬바르드 페트루스에 의해 공식화된 이 개념은 완벽이 ''발전''의 결과임을 의미한다. 로마의 길레스에 의해 묘사된 바와 같이, 완벽은 개인적인 근원("''personalia''")뿐만 아니라 ''사회적'' 근원("''secundum statum''")을 갖는다. 개인은 사회 안에서 형성되므로, 두 번째 완벽은 "우주의 질서"("''ordo universi''")에 따라 첫 번째 완벽을 포괄한다. 사회적 완벽은 인간에게 ''구속력''이 있는 반면, 개인적 완벽은 단지 인간에게 ''어울리는'' 것이다.[18]

완벽에 대한 테제는 오늘날까지 교회 내에 남아 있다. 완벽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그것을 바라는 것이다. 또한 은총이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벽을 바라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은총을 주신다. 완벽을 위한 또 다른 조건은 끊임없는 노력과 분투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멈추는 자는 퇴보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노력은 크고 작은 일 모두에서 필요하다. 누가 복음서는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자는 큰 일에도 충실하고, 지극히 작은 일에 불의한 자는 큰 일에도 불의하다."라고 말한다. 완벽에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완벽과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한 인식이다.[18]

14세기는 스코투스 학파와 함께 도덕에서 존재론적 완벽으로 관심의 변화를 보였고, 15세기는 특히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예술적 완벽으로의 변화를 보였다.[19] 16세기 전반기에는 장 칼뱅이 인간의 완벽을 신의 은총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했다.[19]

16세기 후반은 반종교개혁, 트리엔트 공의회를 가져왔고, 가톨릭 개념의 회귀, 그리고 묵상과 육신의 고행을 통해 완벽을 달성하려는 영웅적인 시도가 있었다. 이 시대는 로욜라의 이냐시오와 예수회의 창설, 성 테레사 아빌라 (1515–82)와 십자가의 성 요한 (1542–91), 그리고 1593년 맨발의 가르멜회 창설의 시대였다. 이는 기독교의 완벽에 대한 사상사에서 정점에 달한 시점이었으며, 동시에 그 사상을 개혁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종착점이기도 했다.[19]

17세기 전반기에는 완벽에 대한 가톨릭 개혁 시도가 있었다. 이 시대는 코르넬리우스 얀센 (1585–1638)과 얀센주의의 시대였다. 즉, 예정론에 대한 믿음이 커지고 은총 없이는 완벽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이 커지는 시대였다.[19] 17세기 후반에는 예정론 교리의 추가적인 발전이 있었다. 즉, "고요주의" 교리였다. 완벽은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은총을 수동적으로 기다림으로써 도달할 수 있었다. 이 이론은 스페인에서 미겔 데 몰리노스 (ca. 1628 - 1697)에 의해 공식화되었으며, 프랑스로 퍼져 마담 기용 (1648–1717)에 의해 옹호되었고 한동안 프랑수아 페넬롱을 매료시켰다.[19]

18세기는 도덕적 완벽에 대한 생각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것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 성격이 종교에서 세속적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세속적인 18세기 완벽은 계몽주의의 기본적인 신조였다. 그 핵심 교리는 ''자연은 완벽하다''는 것이었고, 자연의 법칙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사람 또한 완벽하다는 것이었다.[20] 원시인은 자연에 가장 가까웠기 때문에 가장 완벽한 것으로 여겨졌다. 완벽은 오늘날의 인간 앞에 있기보다는 인간 뒤에 놓여 있었다. 왜냐하면 문명은 인간을 완벽에 더 가깝게 만들기보다는 완벽에서 멀어지게 했기 때문이다.[20]

그러나 두 번째 해석은 반대되는 견해를 취했다. 문명은 인간을 이성에 더 가깝게 함으로써, 그리고 이를 통해 자연에 더 가깝게 함으로써 인간을 완벽하게 했다. 왜냐하면 이성은 자연법을 적절히 고려하여 삶을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20] 완벽에 대한 전자의, 회고적인 견해는 고대에 선례를 가지고 있었다. 헤시오도스오비디우스는 시간의 시작에 존재했던 "황금 시대"를 묘사했으며, 그 뒤를 은, 구리, 철의 시대가 따랐고, 각 시대는 이전 시대보다 열등했다. 이제 2천 년 만에 이러한 견해가 다시 부활한 것은 아메리카의 "원시" 민족과의 유럽의 접촉에 의해 자극받았다. 장 자크 루소는 비슷한 맥락에서 글을 쓴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20]

이러한 18세기 중반의 두 학파, 즉 자연과 과거에서 완벽을 보는 학파와 문명과 미래에서 완벽을 보는 학파는 완벽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그 초월적 해석에 대한 반작용을 나타냈다. 이전에는 완벽의 척도가 하나님의 생각이었던 것처럼, 이제는 자연이나 문명의 생각이었다. 결국 우위를 차지하여 계몽주의의 유산으로서 19세기로 넘어간 것은 후자의 생각이었다.[20]

완벽에 대한 초월적인 생각은 사라졌고, 세속적인 완벽만이 중요했다. 완벽이 은총의 문제라는 생각 또한 잊혀졌다. 인간 스스로가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했고, 한 사람이 그것을 이룰 수 없다면, 아마 인류가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세 시대에 하나님이 완벽의 척도였던 것처럼, 이제 인간이 척도가 되었다. 척도는 더 작고, 더 접근하기 쉬워졌다. 19세기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이러한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완벽은 결국 모든 사람이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완벽이 아니라면 ''개선''일 것이다. 이것이 현대 시대의 위대한 개념이 될 것이다.[20]

18세기 중반에 완벽에 대한 생각에서 예외적으로 일시적인 후퇴가 있었다. 그것은 프랑스의 ''백과전서''에서였다. "완벽" 항목 (제12권, 1765)은 인간의 제품을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에 일치시키는 의미에서 기술적 완벽에 대해서만 논의했다. 존재론적, 도덕적 또는 미학적 완벽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21]

그 외에는, 18세기는 이마누엘 칸트의 ''Idee zu einer allgemeinem Geschichte'' (1784)와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의 ''Ideen'' (1784/91)에서와 같이 인간의 미래 완벽을 옹호하는 위대한 선언을 보았다.[21] 완벽은 다양한 수단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부분적으로는 ''자연적인'' 발전과 진보를 통해 (데이비드 흄이 옹호한 견해) 이루어질 것이지만, 더 나아가 ''교육''을 통해서 (이 견해의 선구자로는 존 로크, 데이비드 하틀리, 그리고 폴란드 계몽주의의 지도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공공연한 ''국가''의 행동을 통해서 (클로드 아드리앙 엘베시우스, 나중에 제레미 벤담); 사람 간의 협력에 의존했다 (샤를 푸리에, 1808), 나중에는 우생학에 의존했다 (프랜시스 골턴, 1869). 인간의 미래 완전성에 대한 믿음의 토대는 변했지만, 그 믿음 자체는 지속되었다. 그것은 계몽주의의 사람들을 관념론자낭만주의자와 연결시켰다. 즉,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폴란드 메시아니스트와 더불어 19세기의 실증주의자 및 진화론자와 연결시켰다. 허버트 스펜서는 인간의 미래 완벽을 옹호하는 위대한 새로운 선언을 썼다.[21]

그러나 인간의 완전성에 대한 생각은 더욱 포괄적이 되었다. 인간은 더 합리적이고, 건강하고,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게 됨으로써 더 큰 완벽을 달성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개념을 위한 적절한 용어는 없었다. "완벽"이라는 용어에는 도덕적인 색채가 있었고, 새로운 목표는 더 지적이고, 육체적이며, 사회적이었기 때문이다.[21] 1852년, 미래의 영국 추기경인 존 헨리 뉴먼그리스어처럼 영어에도 인간의 신체 상태를 다루는 "건강"과 인간의 도덕적 본성을 말하는 ""과 유사하게 지성적 완벽을 표현하는 용어가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썼다. 19세기에 독일인들은 이렇게 해석된 완벽을 "문화"(''Kultur'')라고 불렀고, 프랑스인들은 이를 "문명"(''civilisation'')이라고 불렀다.[21]

새로운 구성에서 완벽의 요소 중 하나는 세계 보건 기구가 "완전한 육체적, 정신적 웰빙 상태"로 이해하는 ''건강''이다.[22]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생물학의 급증하는 성과는 도덕적 완벽에 대한 오랜 관심을 몰아내지 못했다. 중요한 차이점은, 이제 목표가 완벽이라기보다는 ''개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의 고전적인 19세기 초의 대표자는 피히테였다.[22]

20세기와 21세기에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다원주의적 태도와 어느 정도 병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 철학자 블라디슬라프 타타르키에비츠 (1886–1980)는 "어떤 사람에게 완벽을 위해 노력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완벽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만큼 부적절해 보인다."라고 썼다. 그는 덧붙였다. 이러한 노력은 "종종 자기 중심적이며, 자기 완벽이 아닌 선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친절에 기반한 외부 지향적 행동보다 더 좋지 않은 도덕적, 사회적 결과를 낳는다."[22]

4. 2. 미학

고대 그리스인들은 완벽함을 높은 수준의 미(美)와 예술에 필요한 요소로 여겼다.[23] 피타고라스 학파는 완벽함이 올바른 신체 비율과 조화로운 부분들의 배열에서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미와 예술이 완벽함으로 특징지어진다는 이 생각은 이후 플라톤에 의해 받아들여졌으며, 그는 예술이 "적절하고, 적합하며, 일탈이 없는"—결론적으로 "완벽"해야 한다고 믿었다.[23]

피타고라스 학파, 플라톤과 그의 추종자들은 완벽함이 단일한 속성이라는 확신에서 출발하여 미 또한 단일한 속성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모든 종류의 예술에는 단 하나의 완벽하고 적절한 본질적 형태만 존재했다. 플루타르코스는 (''De Musica'') 고대 그리스 초기에 공공 공연에서 완벽한 것으로 인정받은 음악적 화음이 "법적으로 구속력"을 가졌다고 말했다.[23]

마찬가지로, 기원전 5세기부터의 사원 건축에는 확립된 고전 양식이 있었다. 도리아 양식 사원과 이오니아 양식 사원에는 확립된 비율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조각에서도 수세기 동안 인체의 특정 비율이 완벽하고 의무적인 것이라는 것이 정설로 여겨졌다.[24]

특정 모양과 비율 자체가 완벽하다는 믿음도 널리 퍼져 있었다. 플라톤은 완벽한 비율이 정사각형의 대각선의 비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권위는 너무 커서 건축가와 다른 예술가들은 그 출처를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세 시대까지 이 비율을 계속 사용했다.[25]

키케로


또 다른 초기 아이디어는 — 다양한 시대의 많은 저명한 작가와 예술가들이 옹호하게 된 아이디어인데 — 에서 완벽함을 발견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리학''(Physica)에서 원은 "가장 완벽하고, 최초이며, 가장 아름다운 형태"라고 썼다. 키케로는 ''신들의 본성''(De Natura Deorum)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두 가지 모양이 가장 뚜렷하다. 입체에서는 ... 그리고 평면도형에서는 ... 이 형태들보다 더 대칭적인 것은 없다."[25]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지론''(De coelo et mundo)에 대한 해설에서, 중세 시대의 폴란드인 얀 오브 스웁차는 다음과 같이 썼다. "가장 완벽한 몸은 가장 완벽한 형태를 가져야 하며, 그러한 [몸]은 천국이고, 가장 완벽한 형태는 둥근 형태이다. 왜냐하면 그 형태에 더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유명한 삽화가 담긴 ''베리 공작의 호화로운 달력''(Les très riches heures du duc de Berry)에서 낙원은 이상적인 안에 묘사되어 있다.[25]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가 세바스티아노 세를리오(Sebastiano Serlio) (1475–1554)는 "둥근 형태는 모든 형태 중에서 가장 완벽하다"고 말했다.[25]

16세기 가장 뛰어난 건축가인 안드레아 팔라디오는 "가장 완벽하고 가장 뛰어난" 형태는 "둥근 형태"이며, "모든 형태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가장 균일하며, 가장 강력하고, 가장 넉넉하며" "신의 통일성, 무한성, 균일성 및 의로움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얀 오브 스웁차와 세를리오와 같은 생각이었으며, 드물게 지속되는 생각이었다.[26]

중세 시대—로마네스크 건축고딕 건축 모두—완벽함이라는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혔었다. 그러나 완벽함의 명령에 대한 진정한 폭발은 르네상스 시대에 일어났다.[26]

르네상스 미학은 완벽한 것들의 통일성에 대해 고전주의 미학보다 덜 강조했다.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는 그의 ''궁정인''(Il Cortegiano)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안드레아 만테냐,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조르조네에 대해 "그들 각자는 서로 다르지만, 각자는 그의 스타일에서 가장 완벽하다"고 썼다.[26]

다니엘레 바르바로


위대한 건축가이자 박식가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건축론'' De architectura)에서 "건축술... 이탈리아에서 [완벽한] 성숙에 도달했다", 로마 제국이 "신비롭거나, 숨겨져 있거나, 불분명한 것이 없는 완벽한 건축술을 창조했다"고 썼다. 이것은 완벽함의 개념에 대한 또 다른 공식이었다.[26]

다니엘레 바르바로는 1567년 비트루비우스를 번역하면서 고전적으로 완벽함을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고 아무것도 더할 수 없는 것"으로 정의했다.[26]

르네상스는 완벽함에 있어서의 "탁월함"에 주목할 만한 관심을 보였다. 레오나르도는 예술 중에서 가장 완벽한 것은 회화라고 결론 내렸다. 1546년 베네데토 바르키는 예술 분야의 위대한 거장들을 비교했다. 다른 사람들은 예술과학, 예술자연, 그리고 고대 거장들의 예술의 완벽함과 현대 거장들의 예술의 완벽함을 비교했다. 16세기에는 그들의 음악을 비교했고, 17세기에는 그들의 시각 예술, 특히 그들의 를 비교했다. 이러한 비교는 완벽함을 상당히 느슨하게 해석했다. 이 개념은 건축가들에 의해 더 엄격하게 다루어졌다.[27]

르네상스는 완벽함에 다양한 속성을 구별했다. 완벽함은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여겨졌다.

  • ''객관적인'' 속성 (페트라르카, 그는 완벽함을 우아함과 같은 다른 미적 자질과 대조했다);
  • 자연보다는 ''예술''에 특정한 속성 (바사리);
  • ''드문'' 속성 (알베르티는 심지어 그리스 건축조차도 완벽함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 부분보다는 ''전체'' 작품의 속성 (알베르티);
  • ''많은'' 가치의 결합 (로도비코 돌체는 라파엘로가 다재다능했기 때문에, 즉 한쪽 면만 뛰어났던 미켈란젤로와는 달리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 재능뿐만 아니라 예술, 즉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 (바사리);
  • 예술 작품에서 ''유일한'' 가치는 아닌 것 (바사리는 완벽함과 우아함을 구별했다. 피치노와 같은 르네상스 플라톤주의자들은 완벽함을 신성한 속성으로 보았다).[28]


절충주의적 관점에서 르네상스 후기에 작품의 완벽함은 ''많은'' 예술가들의 재능을 결합하는 것을 필요로 했다. 파올로 피노는 티치아노와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결합한 화가만이 완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29]

완벽함의 개념은 르네상스 문학에 적용하기는 더 어려웠지만 너무 흔해져서—종종 "''eccelente''"과 연결되어—평범해졌다. 그 빈번한 적용은 그것의 상대화와 심지어 주관성을 초래했다.[29]

세를리오와 팔라디오를 시작으로, 예술에서의 완벽함은 덜 중요해지고, 덜 명확해지고, 덜 객관적이 되었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은 더 이상 위대한 건축가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문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17세기는 여전히 완벽함을 존경했는데, 이는 책 제목에 그 단어가 나타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폴란드시인 마치에이 카지미에시 사르비에프스키 (1595–1640)의 ''De perfecta poesi''; 앙드레 펠리비앙 (1767)의 ''Le peintre parfait''; 그리고 프레아르 드 샹브레 (1662)의 ''Idée de la perfection de la peinture''이다.[29]

사르비에프스키는 몇 가지 논문을 제시했다. 시는 ''perfectissime''("가장 완벽하게") 사물을 모방할 뿐만 아니라 자연에서 ''perfectissime''하게 있어야 하는 방식대로 모방한다. 완벽한 예술은 자연과의 일치뿐만 아니라 보편성으로도 인식된다. 예술은 사물을 표현하는 방식이 더 고귀할수록(''nobilior'') 더 완벽하다. 그것은 더 많은 진실을 담고 있을수록 더 완벽하다. 완벽함은 다양한 정도를 가지며—산문보다 에서 더 높다.[29]

고전주의, 특히 프랑스의 17세기 고전주의에서, 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는 ''이상''에서 완벽함은 모든 작가에게 ''의무''가 되었다. 그리고 완벽함의 기준이 낮아짐에 따라, "완벽함"은 이제 단순히 ''정확함''을 의미했다. 뒤따른 가치 하락에서 예술은 ''perfecta''일 뿐만 아니라, ''perfectissima''여야 했다.[30]

완벽함은 한때 예술 작품에 대한 ''최고의'' 특징이었지만, 이제는 ''많은'' 긍정적인 특징 중 하나가 되었다. 체사레 리파는 그의 ''Iconologia''(1593년 출판되었지만 17세기에 전형적임)에서 ''perfezione''를 우아함(''grazia''), 아름다움(''venustà'') 및 미(美)(''bellezza'')와 동등한 지위의 개념으로 제시했다.[31]

라이프니츠의 제자 크리스티안 볼프는 그의 ''심리학''에서 미는 완벽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이 미가 즐거움의 근원인 이유라고 썼다. 플라톤부터 팔라디오까지 그의 추종자들 중 누구도 완벽함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일반적인 미학 이론을 공식화한 적이 없었다.[31]

에드먼드 버크


미를 완벽함으로 보는 볼프의 이론은 그 학파의 수석 미학자 알렉산더 고틀리프 바움가르텐에 의해 발전되었다. 이 전통은 미학을 완벽함의 개념으로 간주했던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시대까지 독일에서 활동했다. 통일성이 우세할 때, 미가 나타났고, 다수성이 우세할 때—숭고함이 나타났다.[31]

18세기 후반에 이마누엘 칸트는 그의 ''판단력 비판''에서 완벽함—내부와 외부, 객관적과 주관적, 질적과 양적, 명확하게 인식되는 것과 모호하게 인식되는 것, 자연의 완벽함과 예술의 완벽함—에 대해 많은 글을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미학에서 "취미의 판단 [즉, 미적 판단]은 완벽함의 개념과는 완전히 독립적이다"—즉, 미는 완벽함과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다.[31]

18세기 초, 프랑스의 선두적인 미학자 드니 디드로는 완벽함이 미보다 더 이해하기 쉬운 개념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장 자크 루소는 완벽함을 비현실적인 개념으로 취급했으며 장 르 롱 달랑베르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키메라의 완벽함을 추구하지 말고, 가능한 최선을 추구합시다."[32]

1757년 영국에서 중요한 미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완벽함이 미의 원인이라고 부인했다. 정반대로, 그는 미는 거의 항상 ''불완전''의 요소를 포함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여성은 매력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약점과 연약함을 강조했는데, 이것은 곧 그녀의 불완전함을 의미했다.[32]

18세기는 완벽함이 미학의 주요 개념이었던 마지막 시대였다. 19세기에 완벽함은 일반적인 승인 표현으로 단지 흔적만 남아 있었다. 알프레드 드 뮈세는 "완벽함은 우리에게 무한함만큼이나 달성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 미, 행복, 덕에서 어디에서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을 사랑해야 덕스럽고,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에게 가능하다면 말이다."라고 말했다.[32]

20세기에 폴 발레리는 다음과 같이 썼다. "완벽을 추구하고, 한 작품에 끝없이 시간을 쏟고, 괴테처럼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현대 생활의 패턴에 의해 배제되는 모든 의도이다."[32]

예술가가 완벽을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기각한 것은 여전히 질문을 남겼다. 예술가는 그것을 ''원하는가''? 그것이 그들의 실제 목표인가? 어떤 예술가, 학파, 시대는 완벽함을 목표로 ''해왔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목표를 키워왔다: 다원주의, 참신함, 강력한 감각, 진실에 대한 충실함, 자기 표현과 세계의 표현, 창의성독창성—이 모든 것은 대략 "표현"으로 요약될 수 있다.[33]

완벽함의 시대가 있었고, 표현의 시대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 르네상스, 신고전주의의 예술은 완벽함의 예술이었다. 매너리즘, 바로크, 낭만주의 시대에는 표현이 우세했다.[34]

4. 3. 수학

완전수고대 그리스인들이 "텔레이오이"라고 부른 이후로 구별되어 왔다. 그러나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어떤 숫자가 "완전"한지, 또는 그 이유에 대한 합의는 없었다. 플라톤은 10이 완전수라는 견해를 공유했다.[8] 수학자들을 포함한 수학-철학자 피타고라스 학파는 6을 완전수로 제안했다.[8]

10은 두 손에 10개의 손가락이 있기 때문에 완전하다고 생각되었다. 6은 특별한 방식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완전하다고 믿어졌다. 그 숫자의 6분의 1은 1, 3분의 1은 2, 2분의 1은 3, 3분의 2(dimoironel)는 4, 6분의 5(''pentamoiron'')는 5이며, 6은 완벽한 전체이다. 고대인들은 또한 6이 사람의 발이 인간의 키의 6분의 1을 구성했기 때문에 완전수라고 여겼고, 따라서 숫자 6은 인간의 신체 높이를 결정했다.[8]

유클리드


6과 10 두 숫자 모두 순수하게 수학적인 이유와 자연에서의 관련성이라는 이유로 완벽함의 칭호를 받았다.[8] 특정 숫자의 "완벽함"에 대한 믿음은 고대에도 존재했지만, 이 특성은 다른 숫자에도 귀속되었다. 숫자 3의 완벽함은 실제로 격언이 되었다. "''omne trinum perfectum''" (모든 셋은 완벽하다la). 또 다른 숫자 7은 6세기 교황 그레고리오 1세 (대 그레고리오)에게 사랑받았는데, 그는 6을 완전수로 여겼던 그리스 수학자들과 유사한 이유와 더불어, 어떤 이유에서인지 숫자 7을 "영원"의 개념과 연관시켰다.[8]

중세 시대에는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와 알쿠인이 하느님이 6일 만에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이는 6이 완전수이기 때문이라고 적으며 6의 완벽함을 옹호했다.[8]

그리스 수학자들은 자기 자신보다 작은 약수과 같은 숫자를 완전수로 간주했다. 1 + 2 + 3 = 6이기 때문에, 그러한 숫자는 3도, 7도, 10도 아니고 6이다.[8]

그러나 28과 같이 이 속성을 보여주는 숫자가 더 많다. 28은 1 + 2 + 4 + 7 + 14이다. 그러한 숫자를 "완전수"라고 부르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유클리드는 (짝수) "완전수"에 대한 공식을 제시했다.

:N''p'' = 2''p''-1 (2''p'' - 1)

여기서 ''p''와 2''p'' - 1은 소수이다.[8]

유클리드는 처음 네 개의 완전수를 나열했다: 6, 28, 496, 8128. 1456년의 필사본은 다섯 번째 완전수를 33,550,336으로 제시했다. 점차적으로 수학자들은 더 많은 완전수를 발견했다(매우 희귀하다). 1652년 폴란드박식가 얀 브로제크는 104과 107 사이에 완전수가 없다는 것을 언급했다.[9]

2,000년이 넘는 연구에도 불구하고, 무한히 많은 완전수가 존재하는지 또는 홀수인 완전수가 있는지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9]

오늘날 "완전수"라는 용어는 단지 역사적인 성격을 띠며 전통을 위해 사용된다. 이 특이한 숫자는 인간은 자연의 가장 완벽한 창조물로 여겨졌으며, 무엇보다도 그들만의 독특한 규칙성 때문이라는 이유로 인간의 구성에 비유하여 이름을 얻었다. 따라서 그것들은 자연의 완벽한 대상, 인간이 창조한 완벽한 비율의 건물과 조각상과 같은 이유로 그렇게 명명되었으며, 숫자는 특별한 규칙성을 강조하기 위해 "완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9]

그리스 수학자들은 이러한 숫자를 철학자예술가들이 그 단어를 사용한 것과 같은 의미에서 "완전"이라고 명명했다. 이암블리쿠스(''In Nicomachi arithmeticam'', 라이프치히, 1894)는 피타고라스 학파가 숫자 6을 그 숫자의 조화와 일치 때문에 "결혼", "건강", "아름다움"이라고 불렀다고 말한다.[9]

완전수는 초기에 다른 숫자의 척도로 취급받게 되었다. 예를 들어 12와 같이 약수의 합이 숫자 자체보다 큰 숫자는 스미르나의 테온 시대(서기 130년경)부터 "과잉"(redundantiola), "완전 이상"(''plus quam perfecti''), 또는 "과잉수"라고 불렸으며, 8과 같이 약수의 합이 작은 숫자는 "부족수"(''deficientes'')라고 불렸다.[9]

2018년 12월 7일 기준으로 51개의 완전수가 확인되었다.[10][11]

4. 4. 물리학 및 화학

보일


다양한 물리화학 개념에는 그 이름에 "완벽"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9]

물리학자들은 ''완전 강체''를 "힘에 의해 변형되지 않는" 물체로 지정하는데, 이는 그러한 물체가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물체임을 완전히 인식하고 있다. 이 개념은 ''이상적인 구성''이다.[12]

''완전 소성'' 물체는 물체의 소성 한계에 해당하는 일정한 하중에서 무한히 변형되는 물체이다. 이것은 자연에서 관찰되는 물체가 아닌 물리적 ''모델''이다.[12]

''완전 흑체''는 그것에 닿는 복사를 완전히 흡수하는, 즉 흡수 계수가 1인 물체이다.[12]

결정은 물리적으로 동일한 면이 동일하게 발달했을 때 완벽하며, 공간적 대칭의 요구 사항에 부합하고 구조적 결함, 전위, 공극 및 기타 결함이 없을 때 완벽한 구조를 갖는다.[12]

''완전 유체''는 비압축성이며 비점성인 유체이다. 이것 역시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 유체이다.[12]

''완전 기체''는 분자들이 서로 상호 작용하지 않고 자체 부피가 없는 기체이다. 이러한 기체는 완전한 고체, 완전 강체, 완전 소성 및 완전 흑체와 마찬가지로 ''허구적''이다. 이는 단어의 ''엄격한'' (비유적이지 않은) 의미에서 "완전"이라고 불린다. 이것들은 모두 물리학에서 필요한 개념인데, 이는 한계적이고 이상적이며 허구적이기 때문이다. 즉, 자연이 가장 근접할 수 있는 극단을 설정하기 때문이다.[12]

''느슨한'' 의미에서, 실제로 완전하지 않더라도, 실제 물체는 정도가 다르지만 완벽에 더 가깝게 근접하면 "완벽"이라고 불린다.[12]

이러한 ''완전''한 물체와 ''실제'' 물체의 관계는 완전 기체와 실제 기체의 관계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완전 기체의 상태 방정식은 통계 물리학에서 유도된 양자 상태 방정식의 첫 번째 근사치이다. 따라서, 고전적 한계 내에서 실제 기체의 상태 방정식은 완전 기체의 상태 방정식의 형태를 띤다. 즉, 완전 기체의 상태 방정식은 이상 기체(점, 즉, 서로 작용하지 않는 무차원 분자로 구성됨)를 설명한다.[12]

완전 기체 방정식은 로버트 보일, 에드메 마리오트 및 조제프 루이 게이뤼삭의 연구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들은 실제 기체의 성질을 연구하면서 이러한 기체가 아닌 이상적인 완전 기체에 적용되는 공식을 발견했다.[12]

4. 5. 신학

아낙시만드로스는 세상을 "무한"(ἄπειρον|아페이론grc)이라고 묘사했고, 크세노파네스는 "가장 위대한 것"(μέγιστος|메기스토스grc)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에 훌륭한 자질을 부여했지만, 세상을 완벽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35]

파르메니데스


오직 파르메니데스만이 존재를 "τετελεσμένον|테텔레스메논grc"("완성된")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이며, 엘레아 학파의 그의 후계자인 사모스의 멜리소는 존재가 "전부이다" (πᾶν ἐστι|판 에스티grc)라고 말했다. 따라서 둘 다 존재에서 완벽함을 보았으며, 진정한 존재는 하나이며, 불변하고, 불변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파르메니데스는 세상이 모든 방향으로 제한된 유한하며, 와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그의 완벽함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다.[35]

파르메니데스의 견해는 플라톤에 의해 어느 정도 받아들여졌다. 그는 세상이 선한 데미우르고스의 작품이며, 이것이 세상에 질서와 조화가 지배하는 이유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최고, 가장 아름답고, 완벽했다. 그것은 완벽한 형태(구형)와 완벽한 운동(원형)을 가지고 있었다.[35]

그러나 플라톤은 데미우르고스, 즉 세상을 만든 건축가 자신이 완벽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완벽함은 유한성, 즉 한계를 의미하는 반면, 한계를 가진 것은 창조주가 아닌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세상은 완벽할 수 있지만, 신은 그럴 수 없었다.[36]

오직 범신론자인 스토아 학파만이 신성을 완벽하다고 여겼는데, 이는 그들이 그것을 세상과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키케로는 ''신들의 본성에 관하여''(De natura deorum)에서 세상이 "그 자체 안에 모든 존재를 포괄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존재에게 완벽함을 부인하는 것보다 더 터무니없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세상 외에는 무언가가 부족하지 않고 모든 면에서 조화롭고 완벽하며 완성된 것이 없다..."라고 썼다.[37]

어느 시점에서 그리스 철학은 기독교의 종교와 결합되었다. 제1 원인에 대한 추상적인 개념은 에 대한 종교적 개념과 연결되었고, ''제일 원동자''는 창조자, 절대자는 신성한 인격과 동일시되었다. 절대적 존재의 특징은 창조자의 인격에서 발견되었다. 그는 불변하고 영원했다. 그리고 절대적 존재는 인격의 속성을 띠게 되었다. 즉, 선하고, 전능하고, 편재했다. 기독교 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나오는 제1 원인의 특징을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자의 특징과 결합했다. 그러나 신의 속성에는 완전함이 포함되지 않았다. 완전한 존재는 반드시 ''유한''해야 했고, 그러한 존재에 대해서만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37]

기독교 신학의 한 분파에서 플로티노스의 영향을 받아 신에게 완전함을 부정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 관점에서, 세계가 파생된 절대자는 가장 일반적이고 초월적인 인간의 개념으로도 파악될 수 없었다. 그 절대자는 물질이 아닐 뿐만 아니라, 정신도 아니었고, 관념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들보다 우월했다. 그것은 모든 설명이나 찬사를 초월했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고 형언할 수 없었다. 그것은 완전함을 포함하여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넘어섰다.[37]

중세 기독교 철학은 완전함의 개념이 창조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신을 설명하는 데는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른다고 밝히면서, 완전한 것은 "그 본성상 가능한 것을 소유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신학대전''): "그것에 적합한 완전함에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 완전하다." 따라서 세상에는 완전한 것과 불완전한 것, 더 완전한 것과 덜 완전한 것이 있었다. 신은 전체의 선을 위해 필요할 때 창조에 불완전함을 허용했다. 그리고 인간에게 불완전함에서 완전함으로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38]

둔스 스코투스는 완전함을 훨씬 더 단순하고 세속적으로 이해했다. "완전함은 갖는 것이 갖지 않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다." 그것은 신의 속성이 아니라 창조의 속성이었다. 모든 것은 그것을 크고 작게 공유했다. 어떤 것의 완전함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완전함에 적합한지에 달려 있었다. 일반적으로 그것에 가능한 자질의 충만함을 달성한 것이 완전했다. 따라서 "전체"와 "완전"은 거의 같은 의미를 지녔다 (totum et perfectum sunt quasi idem|토툼 에트 페르펙툼 순트 콰시 이뎀la).[39]

바뤼흐 스피노자


이것은 목적론적 개념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목적 (목표 또는 목적)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신은 특정한 목적에 기여하는 것을 창조했고, 심지어 그러한 목적들을 창조했지만, 그 자신은 어떤 목적에도 기여하지 않았다. 신은 유한하지 않았으므로 완전하다고 부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완전함의 개념은 ''유한한'' 것을 설명하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완전함은 신학적 개념이 아니라 존재론적 개념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존재의 어느 정도의 특징이었기 때문이다. 9세기 사상가 파시시우스 라드베르투스는 "모든 것은 신을 더 많이 닮을수록 더 완전하다"라고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신 자신이 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40]

5. 현대 한국 사회와 완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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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서적 O doskonałości 1976
[2] 간행물 "Perfection: the Term and the Concept" 1979
[3] 간행물 "Perfection: the Term and the Concept" 1979
[4] 간행물 "Perfection: the Term and the Concept" 1979
[5] 간행물 "Perfection: the Term and the Concept" 1979
[6] 간행물 "Paradoxes of Perfection" 1980
[7] 간행물 "Paradoxes of Perfection" 1980
[8] 간행물 "Perfection in the Sciences. I. Perfect Numbers" 1980
[9] 간행물 "Perfection in the Sciences. I. Perfect Numbers" 1980
[10] 웹사이트 GIMPS Home http://www.mersenne.[...] Mersenne.org 2018-12-21
[11] 웹사이트 GIMPS Discovers Largest Known Prime Number: 282,589,933-1 https://www.mersenne[...] Mersenne.org 2019-01-21
[12] 간행물 "Perfection in the Sciences. II. Perfection in Physics and Chemistry" 1980
[13] 간행물 "Moral Perfection" 1980
[14] 간행물 "Moral Perfection" 1980
[15] 간행물 "Moral Perfection" 1980
[16] 간행물 "Moral Perfection" 1980
[17] 간행물 "Moral Perfection" 1980
[18] 간행물 "Moral Perfection" 1980
[19] 간행물 "Moral Perfection" 1980
[20] 간행물 "Moral Perfection" 1980
[21] 간행물 "Moral Perfection" 1980
[22] 간행물 "Moral Perfection" 1980
[23] 간행물 "Aesthetic Perfection" 1980
[24] 간행물 "Aesthetic Perfection" 1980
[25] 간행물 "Aesthetic Perfection" 1980
[26] 간행물 "Aesthetic Perfection" 1980
[27] 간행물 "Aesthetic Perfection" 1980
[28] 간행물 "Aesthetic Perfection" 1980
[29] 간행물 "Aesthetic Perfection" 1980
[30] 간행물 "Aesthetic Perfection" 1980
[31] 간행물 "Aesthetic Perfection" 1980
[32] 간행물 "Aesthetic Perfection" 1980
[33] 간행물 "Aesthetic Perfection" 1980
[34] 간행물 "Aesthetic Perfection" 1980
[35] 간행물 "Ontological and Theological Perfection" 1981
[36] 간행물 Ontological and Theological Perfection 1981
[37] 간행물 Ontological and Theological Perfection 1981
[38] 간행물 Ontological and Theological Perfection 1981
[39] 간행물 Ontological and Theological Perfection 1981
[40] 간행물 Ontological and Theological Perfection 1981
[41] 간행물 Ontological and Theological Perfection 1981
[42] 간행물 Ontological and Theological Perfection 1981
[43] 간행물 Ontological and Theological Perfection 1981
[44] 간행물 Ontological and Theological Perfection 1981
[45] 간행물 On Perfection: Conclusion 1981
[46] 웹사이트 Perfection – 5 Principles of Lean Thinking https://thecqme.com/[...] 2022-12-20
[47] 간행물 On Perfection: Conclusion 1981
[48] 간행물 On Perfection: Conclusion 1981
[49] 서적 O doskonałości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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