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국제 관계
1. 개요
일본의 국제 관계는 역사적 배경, 외교 정책, 국제기구 참여, 지역별 대외 관계, 국제 여론, 그리고 영토 문제로 구성된다. 메이지 시대 근대화를 위해 외교를 추진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으로 고립되었으나, 냉전 시기 미일 관계를 중심으로 외교 정책을 펼쳤다. 현재는 경제력에 따른 책임을 인식하여 적극적인 외교 정책을 추진하며,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한다. 일본은 UN, OECD 등 국제기구에 활발히 참여하며,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 다양한 지역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미국과는 긴밀한 동맹 관계를 유지하며, 중국, 한국,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영토 문제 및 역사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국제 여론은 대체로 긍정적이나, 주변국과의 관계에서는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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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외 관계 -
친일
친일은 일본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나 일본 관련 동향에 대한 긍정적 해석을 의미하며, 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며, 국가 간 관계, 문화적 교류, 경제적 영향 등 다양한 요소가 친일 감정 형성에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
일본의 대외 관계 -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는 1955년 결성된 재일 조선인 단체로, 북한을 지지하며 교육, 금융, 언론 기관을 산하에 두고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일본 정부의 감시 대상이자 사회 갈등, 북한 관계 변화, 재정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 역사적 배경
일본은 국제 연맹을 탈퇴하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국에게 패하였다. 1956년 유엔에 가입하여 국제사회에 복귀하였으며, 소련과의 전쟁 상태를 종결하고 국교를 회복하면서 유엔 가입에 대한 반대를 철회시켰다. 일본은 유엔 비상임 이사국에 최다 선출되었고, 유엔 분담금 지불 규모도 세계 2위 수준이다. 그러나 일본은 유엔 개혁의 일환으로 상임 이사국 진출을 희망하지만, 미국과 중국 등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은 일본국 헌법에 따라 해외 파병에 소극적인 입장이었으나, 걸프 전쟁 당시 군대를 파병하지 않아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특히 쿠웨이트는 일본에 대해 최저 수준의 평가를 내렸다. 이후 일본은 국제 분쟁 해결에 군사적 역할도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자위대의 해외 파견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이라크 전쟁 이후에는 자위대를 파견하여 재건 지원 활동을 하는 등 군사력을 외교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2.1. 고대
이 섹션은 주어진 원본 소스에 고대 일본의 국제 관계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으므로, 작성할 내용이 없습니다.
2.2. 중세
2.4. 근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서구 열강과의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고 근대화를 추진했다.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며 제국주의 정책을 추진,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는 연합국 측으로 참전하여 국제 연맹에 가입했다. 그러나 만주사변, 중일 전쟁을 일으키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추축국으로 참전했다가 패전했다.
2.5. 현대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국에 패한 후, 국제 사회에서 한동안 고립되었으나, 1956년 유엔에 가입하면서 국제 사회에 복귀하였다. 소련과의 전쟁 상태를 종결하고 국교를 회복하면서 유엔 가입에 대한 반대를 철회시켰다. 일본은 유엔 비상임 이사국으로 최다 선출되었고, 유엔 분담금 지불 규모도 세계 2위 수준이다. 그러나 일본은 유엔 개혁의 일환으로 상임 이사국 진출을 희망하지만, 미국과 중국 등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은 일본국 헌법에 따라 해외 파병에 소극적인 입장이었으나, 걸프 전쟁 당시 군대를 파병하지 않아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특히 쿠웨이트는 일본에 대해 최저 수준의 평가를 내렸다. 이후 일본은 국제 분쟁 해결에 군사적 역할도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자위대의 해외 파견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이라크 전쟁 이후에는 자위대를 파견하여 재건 지원 활동을 하는 등 군사력을 외교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본은 남아시아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주로 경제 지원을 중심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과는 실크로드를 통한 문화적 교류의 역사가 있으나, 최근 인적 교류는 적은 편이다. 아프가니스탄 무력 공격을 지지했지만, 자위대 파견에는 소극적이었다. 바미안 계곡 유적 복원 등 학술 교류는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일본은 라틴 아메리카의 개발 및 기술 지원 프로젝트에 지속적으로 상당한 지원을 제공해 왔다. 다음은 일본과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를 정리한 표이다.
| 국가 | 공식 관계 시작 | 비고 |
|---|---|---|
| 아르헨티나 | 1898년 2월 3일 | 아르헨티나-일본 관계 참조.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으로 외교 관계 회복. |
| 바베이도스 | 1967년 8월 29일 | 바베이도스-일본 관계 참조. 2016년 1월부터 일본은 바베이도스에 대사관 개설. |
| 볼리비아 | 1914년 4월 3일 | 볼리비아-일본 관계 참조. |
| 브라질 | 1895년 | 브라질-일본 관계 참조. |
| 캐나다 | 1928년 1월 21일 | 캐나다-일본 관계 참조. 1923년 간토 대지진 당시 캐나다 증기선 RMS 오스트레일리아호의 구조 활동으로 국제적 명성. |
| 칠레 | 1897년 9월 25일 | 칠레-일본 관계 참조. 제2차 세계 대전 중 관계 단절,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으로 관계 재개. |
| 콜롬비아 | 1908년 5월 25일 | 콜롬비아-일본 관계 참조. 제2차 세계 대전으로 1942년부터 1954년까지 관계 중단. |
| 쿠바 | 1929년 12월 21일 | 쿠바-일본 관계 참조. |
| 에콰도르 | 1918년 8월 26일 | 에콰도르-일본 관계 참조. |
| 멕시코 | 1888년 11월 30일 | 일본-멕시코 관계 참조. 일본 최초의 "평등" 조약 체결. 1952년 멕시코는 영국 다음으로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을 비준. |
| 파라과이 | 1919년 11월 17일 | 일본-파라과이 관계 참조. |
| 페루 | 1873년 8월 21일 | 일본-페루 관계 참조. |
| 트리니다드 토바고 | 1964년 5월 | 일본-트리니다드 토바고 관계 참조. |
| 미국 | 1858년 7월 29일 | 일본-미국 관계 참조. 미국은 일본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 1960년 미일 안보 조약 체결. |
| 우루과이 | 1921년 9월 24일 | 일본-우루과이 관계 참조. |
| 베네수엘라 | 1938년 8월 19일 | 일본-베네수엘라 관계 참조. 제2차 세계 대전 중 관계 단절. 1999년 우고 차베스 대통령 일본 방문. |
일본은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 국가들에게 중요한 경제 파트너이다. 1988년 일본의 ASEAN 국가에 대한 원조는 1900로, 미국의 333보다 훨씬 많았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은 ASEAN 국가의 최대 외국인 투자국이었다.
1991년 가이후 도시키 총리는 동남아 5개국을 순방하며 ASEAN과의 새로운 파트너십을 제안하고, 일본이 경제 영역을 넘어 정치적 역할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1997년 ASEAN 회원국과 대한민국, 중국, 일본은 지역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ASEAN+3 회의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2005년에는 동아시아 정상회의(EAS)가 처음 개최되었다.
일본은 다음과 같은 국제기구 및 회의체에 참여하고 있다.
*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 아시아 협력 대화(ACD)
*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
* ASEAN+3
* 유럽 안보 협력 기구 - 협력을 위한 파트너
* 유럽 평의회 - 옵저버
*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
* 국제 연합(UN)
* G20
* 주요 7개국 정상 회의(G7·G8)
* 태평양 동맹 - 옵저버
* 일·미·호·인 전략 대화(Quad)
* 한·중·일 정상 회담
* 동아시아 정상회의
*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RCEP)
* 남아시아 지역 협력 연합 - 옵저버
* 6자 회담
3. 외교 정책
일본은 국제 연맹 탈퇴와 제2차 세계 대전 패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후 국제사회에서 평화 국가로서의 역할을 추구해 왔다. 1956년 유엔 가입 이후, 일본은 유엔 비상임 이사국으로 최다 선출되었고, 세계 2위의 유엔 분담금 지불 국가로서 국제 협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유엔 상임 이사국 진출은 미국과 중국 등의 반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일본은 일본국 헌법에 따라 군사력의 해외 파병에 신중한 입장을 취해 왔으나, 걸프 전쟁 등 국제 분쟁에서 군사적 기여 부족에 대한 비판을 받았다. 이후 PKO 협력법 제정, 방위성 승격 등을 통해 자위대의 해외 파견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이라크 전쟁 후 재건 지원 활동에 참여하는 등 군사력을 외교에 활용하는 기회를 늘리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일본은 경제력에 따른 책임을 인식하여 보다 적극적인 외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평화 구축 분야의 협력을 더욱 증진"하겠다고 밝히며, 1998년 캄보디아 전국 선거 지원과 같은 평화 계획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더 큰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을 외교 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미일 안전 보장 조약을 통해 양국 간의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등과도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물품역무상호제공협정(ACSA) 체결을 통해 여러 국가와의 군사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은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을 비롯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들과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ASEAN 국가들에 대한 정부 개발 원조(ODA)와 투자를 통해 이들 국가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1997년부터는 ASEAN+3 회의를 통해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도 참여하여 지역 협력 증진에 힘쓰고 있다.
일본은 여러 국가와 경제 연계 협정(EPA)을 체결하여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다음은 일본이 경제 연계 협정 (EPA)을 맺은 국가 목록이다.
* 싱가포르 (2002년 11월 발효, 2007년 9월 개정)
* 멕시코 (2005년 4월 발효, 2012년 4월 개정)
* 말레이시아 (2006년 7월 발효)
* 칠레 (2007년 9월 발효)
* 태국 (2007년 11월 발효)
* 인도네시아 (2008년 7월 발효)
* 브루나이 (2008년 7월 발효)
* 필리핀 (2008년 12월 발효)
* 스위스 (2009년 9월 발효)
* 베트남 (2009년 10월 발효)
* 인도 (2011년 8월 발효)
* 페루 (2012년 3월 발효)
* 오스트레일리아 (2015년 1월 발효)
* 몽골 (2016년 6월 발효)
* EU (2019년 2월 1일 발효)
* 영국 (2021년 1월 발효)
일본은 주변국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
| 국기 | 수교 | 관계 |
|---|---|---|
| 1965 | ||
| - | ||
| 1972 | ||
| - | 중화민국과는 센카쿠 열도 영유권 분쟁이 있으나, 경제적·문화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5년 일본 정부가 중화민국 국민에게 단기 방문 사증 면제를 시행한 이후 양국 간 인적 교류가 크게 늘고 있다. | |
| 1973 | ||
| 1966 | 싱가포르와는 2002년 일본-싱가포르 신시대 경제 연계 협정을 체결하여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 |
| 1972 | 방글라데시에 대해서는 경제, 보건, 자연 재해 대책 등 여러 측면에서 지원을 하고 있다. | |
| 1952 | 인도와는 역사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2008년 안전 보장 협력에 관한 공동 선언을 체결하여 안보 분야 협력을 강화했다. | |
| 1952 | 파키스탄과는 핵실험 문제로 관계가 소원해진 시기도 있었으나,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 등 안보적 관점에서 협력 필요성을 느껴 관계를 개선하고 있다. | |
| 1924 | 튀르키예와는 니가타현 가시와자키시의 터키 문화 마을에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동상 매각 문제로 관계가 악화된 적이 있다. | |
| 1952 | 이스라엘과는 경제, 문화 교류가 적은 편이며, 중동 평화 문제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 |
| 1939 | 이라크 전쟁 당시 자위대를 파견하여 재건 지원 활동을 펼쳤다. |
일본은 190여 개 국가와 외교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들 국가와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class="wikitable so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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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국제기구
일본은 여러 국제기구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1956년 국제 연합(UN)에 가입하였으며, 국제 연합 식량 농업 기구(FAO), 국제 민간 항공 기구(ICAO), 국제 농업 개발 기금(IFAD), 국제 노동 기구(ILO), 국제 통화 기금(IMF), 국제 해사 기구(IMO), 국제 전기 통신 연합(ITU), 유엔 공업 개발 기구(UNIDO), 유네스코(UNESCO), 세계 관광 기구(UNWTO), 만국 우편 연합(UPU), 세계 은행(WB), 세계 보건 기구(WHO), 세계 지적 재산권 기구(WIPO), 세계 기상 기구(WMO) 등 UN 산하 전문 기구에서도 활동 중이다.
또한, 주요 7개국 정상 회의(G7·G8), G20 회원국이며,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도 가입되어 있다. 이외에도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아시아 협력 대화(ACD),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 ASEAN+3, 유럽 안보 협력 기구(협력을 위한 파트너), 유럽 평의회(옵저버),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 태평양 동맹(옵저버), 일·미·호·인 전략 대화(Quad), 한·중·일 정상 회담,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RCEP), 남아시아 지역 협력 연합(옵저버), 6자 회담 등 다양한 국제기구 및 회의체에 참여하고 있다.
헤이그 국제 사법 회의(HCCH), 국제 원자력 기구(IAEA), 국제 형사 경찰 기구(ICPO)에도 가입되어 있다.
5. 지역별 대외 관계
일본은 남아시아 각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2006년 일본 외무성 내에 남아시아부를 설치하여 이 지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남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의 주요 역할은 경제 지원이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과거 실크로드를 통해 일본에 문화적 영향을 주었으나, 최근에는 인적 교류가 적은 편이다. 일본은 바미안 계곡의 문화적 경관과 고대 유적군 복구 등에 많은 금액을 지원하고 있다.
서아시아는 일본의 주요 원유 공급원으로, 경제적으로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문화 교류는 비교적 적다. 하지만 종교적인 대립 요인이 없어 서아시아 주민들의 대일 감정은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1. 아시아
일본은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 국가들과 정기적으로 정상 회담을 개최하며, 이 지역과의 관계를 중시한다. 특히 믈라카 해협은 일본이 중동에서 수입하는 원유의 90% 가까이가 통과하는 중요한 무역 루트로, 해적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 해상보안청이 동남아 국가 해안 경비대에 지도 및 합동 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일본 정부는 아시아에서의 외교적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이후 도시키 총리는 1991년 동남아 국가 순방 중 "평화 국가로서 정치적 영역에서 적절한 역할"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1997년 ASEAN 회원국과 한국, 중국, 일본은 ASEAN+3 회의를 통해 지역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2005년에는 동아시아 정상회의(EAS)가 개최되었다.
동남아 국가들과는 기본적으로 우호 관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과 경제적, 문화적으로 관계가 깊고, 상호간 국민 감정도 좋다.
* 태국 : 태국 왕실과 일본 황실 간의 관계가 좋다.
* 필리핀 : 재일 외국인 중 필리핀인은 국적별로 4위를 차지한다.
* 싱가포르 : 일본-싱가포르 경제 제휴 협정을 체결했으며, 일본 최초의 자유 무역 협정 대상국이다.
* 캄보디아 : 자위대가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되었고, 경제적 지원과 함께 폴 포트 정권에 의해 파괴된 불교 시설 및 신앙 부흥에 일본 불교계가 크게 공헌하고 있다. 지뢰 제거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 인도네시아 : 수마트라섬 앞바다 지진 발생 후, 일본은 금액 기준 3위의 지원을 긴급 편성하고 인도네시아 아체 주에 자위대 함정을 파견했다. 방재 시스템 구축 지원도 약속했다.
다음은 일본과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요약한 표이다.
| 국가 | 공식 관계 시작 | 비고 |
|---|---|---|
| 베트남 | 1973년 9월 21일 | 일본-베트남 관계 참조. 양국 간의 현대 관계는 베트남의 경제 발전과 투자자 및 외국 원조 공여국으로서의 일본의 역할을 기반으로 한다. |
| 싱가포르 | 1966년 4월 26일 | 일본-싱가포르 관계 참조. |
| 캄보디아 | 1953년 | 캄보디아-일본 관계 참조. 일본은 프놈펜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
| 인도네시아 | 1958년 4월 | 인도네시아-일본 관계 참조. |
| 태국 | 1887년 9월 26일 | 일본-태국 관계 참조. 봉인선의 일본 상인들과 태국인 토착 사회의 일본인 정착을 통해 초기 접촉이 이루어졌지만, 일본의 쇄국 시대에 단절되었다. 접촉은 19세기에 재개되었고, 현재 일본이 태국의 주요 경제 파트너 중 하나가 될 정도로 발전했다. |
| 미얀마 | 1954년 12월 1일 | 일본-미얀마 관계 참조. |
| 필리핀 | 1956년 7월 | 일본-필리핀 관계 참조. 1975년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주요 투자국으로서 미국을 대체했다. |
| 말레이시아 | 1957년 8월 31일 | 일본-말레이시아 관계 참조. |
| 브루나이 | 1984년 4월 2일 | 브루나이-일본 관계 참조. |
| 라오스 | 1955년 3월 5일 | 일본-라오스 관계 참조. |
; 남아시아
일본은 남아시아 각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6년 일본 외무성은 아시아대양주국에 남아시아부를 신설하였다. 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일본의 역할은 주로 경제 지원이었다.
* 인도: 남아시아에서 일본과 가장 관계가 깊은 국가이며, 앞으로 관계가 더욱 긴밀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2008년 10월, 양국 정상은 일본국과 인도 간의 안전 보장 협력에 관한 공동 선언에 서명하여, 일본은 미국,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어 인도와 안보 분야에서 공식적인 협력 관계를 맺은 세 번째 국가가 되었다.
* 파키스탄: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 등 안보 관점에서 중동에 영향력이 강한 파키스탄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판단,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의 파키스탄 방문을 계기로 유상 자금 지원을 재개하였다.
* 방글라데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에 대해 경제, 보건, 자연 재해 대책 등 다양한 측면에서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 스리랑카, 네팔, 부탄, 몰디브: 이들 국가는 일본의 ODA 지원을 받고 있다.
; 중앙아시아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과거 실크로드를 통해 일본에 문화적인 영향을 주었으나, 최근에는 인적 교류가 많지 않다. 바미안 계곡의 문화적 경관과 고대 유적군 복구 등에 일본은 많은 금액을 지원하고 있다.
경제적인 기반이 취약한 국가들이 많고, 바다가 없어 운송 비용이 많이 드는 등의 이유로 희귀한 지하 자원을 제외하고는 무역 등 경제적인 관계는 다른 지역에 비해 활발하지 않다.
; 서아시아
일본은 서아시아를 주요 원유 공급원으로 여기며,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 교류는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않다. 종교적 갈등 요인이 없어 주민들의 대일 감정은 비교적 양호한 편으로 알려져 있다.
* 에너지 안보: 일본은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서아시아 국가들로부터 많은 양의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는 일본 외교 정책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이다.
* 경제 협력: 일본은 서아시아 국가들과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 이후 자위대를 이라크에 파견하여 재건 지원 활동을 펼치는 등, 군사력을 외교에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 중동 평화 문제: 일본은 중동 평화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양측과 회담을 갖는 등 균형 외교를 추구하고 있다.
5.1.1. 동아시아
역사적으로 일본의 외교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동아시아는 일본 인근에 있기 때문에 지정학적으로 충돌이 존재한다. 일본과 대한민국, 중화민국은 각각 미국과 동맹 협력 관계에 있고, 북한은 중국과 군사 동맹을 맺고 있으며, 중국은 러시아와 협력 관계에 있다. 또한 한국과는 독도를 놓고, 중국·중화민국과는 센카쿠 제도/댜오위다오를 놓고 영토 문제를 안고 있다. 일본은 한자 문화권, 불교 문화권의 일각이며, 전통적인 일본 문화는 인도, 동아시아 문화의 뿌리를 가진 것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불교, 수묵화, 도자기, 선종, 서예 등이다. 메이지 시대 이후에는 반대로 서양 문화를 도입하여 발전한 일본의 문화가 동아시아에 전파된 것이 많았다.
중화민국과 대한민국은 현재 일본의 중요한 무역 상대국이다. 한편, 북한에 대해서는 일본은 국가승인도 하지 않았고, 따라서 국교도 없으며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다. 중국도 개혁개방 정책 이후에는 경제가 발전하여, 많은 일본계 기업이 중국 내에 생산 시설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2006년부터는 무역 총액이 미국을 넘어 일본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 됐다. 중일 관계는 "친선"이 아니라 "우호"이고 "오월동주(呉越同舟)" 상태에 있다고 표현되기도 한다. 북한에 대해서는 경제 제재 중이다.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전, 전 세계에 제국주의가 몰아치던 시절, 일본은 군사력을 배경으로 동아시아 지역을 침략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되었고, 일본이 역사에 대해 발언할 때마다 중국, 대한민국, 북한 등은 이 발언 내용이 부적절하다고 비판해 왔다. 일본에서는 2005년의 반일폭동 등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반일운동이 적극적으로 보도된 이외에도, 북한의 국가 범죄에 대한 반발이 1990년대 후반부터 높아지고 있다. 2008년 6월 미국의 민간 조사 기관인 뷰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서 중국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84%(전년 대비 17% 증가)이며 이는 조사한 24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한편 중국의 경우, 전년 대비 9%가 감소했지만 여전히 69%가 일본을 바람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양 국민 사이에는 여전히 반발심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센카쿠 제도는 원래 무인도로 일본이 점유하지 않았던 섬이다. 일본과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이 동시에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일본이 1970년도부터 해상을 장악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으로서는 경제수역 문제, 대만 문제를 둘러싼 양안 관계의 이슈도 관련되어 복잡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조어도 제도의 영토 문제가 표면화된 것은 1970년대 초에 동중국해에서 일본이 천연 가스를 발견하고 해상을 장악하면서부터이다.
그 후 중화인민공화국은 영토 주장을 강화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의 우익단체가 종종 이곳에 상륙하여 등대를 건설했다. 2005년, 중화민국의 어민이 일본 해상보안청에 의한 단속에 대해 해상에서 항의 시위를 실시했다. 또한 중국이 2004년부터 만조시 해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일본이 주장하는 오키노토리 암초를 유엔 해양법 조약 121조 3항에 근거해서 암초라고 주장하면서 일본의 일방적인 배타적 경제 수역을 인정하지 않는 분쟁이 있다.
일본과 대한민국, 북한,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서는 일본의 역사왜곡문제가 민감한 문제로 잠재되어 있다. 후쇼샤 교과서와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교과서에서는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변 국가들은 주장한다. 이들 역사 교과서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난징 대학살 등 일본이 일으켰다고 알려진 사건이 빠져 있고 진구황후와 임나일본부설이 수록되어 있다.(→일본의 역사왜곡문제)
동남아 국가들과는 기본적으로 우호 관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과 경제적, 문화적으로 관계가 깊고, 상호간 국민 감정도 좋다. 일본은 이들 각국과의 자유 무역 협정 체결을 모색하고 있다. 태국과는 태국 왕실과 일본 황실 간의 관계가 좋다. 필리핀인은 일본 국내에서 국적별로 4위 인구를 가진 재일 외국인이다. 싱가포르와는 일본-싱가포르 경제 제휴 협정(日本・シンガポール新時代経済連携協定)을 맺었으며, 일본 최초의 자유 무역 협정 대상국이다. 자위대가 유엔 평화유지군으로써 처음에는 캄보디아에, 또한 동티모르에 파견된 바 있다. 캄보디아에는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문화면에서 공산주의 폴 포트 정권에게 파괴, 탄압받은 불교 시설과 신앙 부흥에 일본 불교계가 크게 공헌하고 있다. 지뢰 제거 작업에도 일본이 나서고 있다. 수마트라섬 앞바다에서 발생한 지진에 대하여, 일본은 금액 기준으로 3위 지원액을 긴급하게 편성해 출연하고, 이후 인도네시아 아체주에는 자위대 함정 파견이 결정되었다. 일본은 인도네시아에게 방재 시스템 구축 지원을 약속하였다.
일본 정부는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 국가들과 정기적으로 정상 회담을 하고 있으며,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 이 지역 해역(특히 믈라카 해협)은 일본이 중동에서 수입하는 원유의 90% 가까이가 통과하는 등 일본 무역에서 아주 중요한 루트인데, 해적이 수시로 출몰하고 있다. 그 대책으로 일본 해상보안청이 동남아 국가 해안 경비대에게 지도 및 합동 훈련을 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예로부터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과 조선 등을 중심으로 외교가 이루어졌다. 일본은 유교・한자 문화권의 일각이며, 전통적인 문화 속에는 아악, 수묵화, 도자기, 서예 등 동아시아를 기원으로 하는 것이 많다.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문화를 받아들여 발전한 일본 문화가 반대로 동아시아에 전파되었다. 유럽 및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와의 외교가 활발해지는 것도 메이지 유신 이후이다. 과거 일본 영토였던 대한민국과 타이완은 현재도 중요한 무역 상대이다. 한편, 북한에 대해서는 일본은 국가 승인을 하지 않고 있으며, 국교도 없고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일본, 대한민국, 타이완은 각각 미국군과 동맹 관계에 있으며, 상호 완만한 협력 관계에 있다. 북한과 중국은 동맹 관계에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도 협력 관계에 있다.
현재는 우호국으로 알려져 있다. 싱가포르의 급속한 경제 발전에 따라 1990년대부터 관계가 긴밀해졌고, 2002년에는 일본-싱가포르 신시대 경제 연대 협정이 발효되었다. 이는 일본과 싱가포르 양국 모두에게 첫 번째 자유 무역 협정이다. 싱가포르에게 일본은 중국, 미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 이은 주요 교역 상대국이며, 2020년의 대일 수출 및 대일 수입 모두 전체의 약 5%를 차지했다. 일본계 기업 진출도 많아 700개 이상 기업이 싱가포르에 거점을 두고 있으며, 32,000명이 넘는 재류 일본인이 있다.
역사적인 접촉은 1862년 야마모토 오토키치가 싱가포르로 이주한 것으로 시작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 1870년대에는 카라유키상을 시작으로 일본인 이주가 진행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1942년에는 일본군이 싱가포르를 함락시켜 일본 군정 하에 들어갔으며, 쇼와 시대에 남방에서 획득한 섬이라는 의미로 "쇼난 섬"으로 명명되어 특별시가 설치되었다. 점령 기간에는 싱가포르 화교 숙청 사건이나 쌍십절 사건 등 일본군에 의한 화교 학살 사건이 발생했고, 말라야 인민 항일군 등이 항일 운동을 전개했다. 종전 후, 일본인은 일시 철수했지만 1957년에는 싱가포르 일본인회가 설치되었고, 그 이후 평화적인 관계가 구축되었다.
일-태국 관계
태국: 주인선 무역 거점으로서 아유타야 왕조 지배하의 태국에는 14세기에 아유타야 일본인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 후 일본이 전국 시대에 들어가면서 전란으로 주군을 잃은 낭인들이 대량으로 출현했고, 당시 버마・타웅우 왕조로부터의 군사적 압력에 시달리던 아유타야 왕조는 낭인들을 용병으로 대량 고용했다. 현지에서 활약한 야마다 나가마사도 용병 중 한 명이다. 그 결과, 아유타야 일본인 마을은 15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최성기를 맞이하여 경제적, 사회적인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그 후, 에도 막부가 쇄국 정책을 취했기 때문에 교류는 쇠퇴해 갔고, 18세기 무렵에 아유타야 일본인 마을은 자취를 감추었다.
메이지 유신을 거친 1887년에는 "일-샴 수호 통상에 관한 선언"(일-태국 수호 선언)이 체결되어 정식 국교가 성립되었다. 이것은 일본이 동남아시아와 맺은 최초 조약이었다. 1898년에는 "일본-샴 수호 통상 항해 조약"을 체결。태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유럽 및 미국 열강에 의한 식민지화를 면한 몇 안 되는 아시아 국가이며, 마사오 후지키치와 야스이 테츠 등은 태국의 근대화에 진력했고, 1932년에는 태국 입헌 혁명이 일어났지만, 그 배경에는 주 샴 공사 야타베 야스요시를 비롯한 일본인들의 지원도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추축국으로 간주되지는 않았지만, 일-태국 공수 동맹 조약을 맺고 일본군이 진주하여, 일본에 대해 협력적인 자세를 보였다.
전후에는 일본의 국제 사회 복귀에 진력했고, 1963년에는 푸미폰 국왕이 방일했다. 현대에는 친일 국가로 알려져 있으며, 경제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태국의 국제 무역에서 대일 비율은 수출 9.8%, 수입 13.4%(2020년)이며, 중국 다음으로 주요 무역 상대국이다. 일본의 태국에 대한 직접 투자액은 643억 바트에 달하며, 이는 태국 전체 투자액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2007년에는 일본에게 아시아 세 번째가 되는 경제 연계 협정이 체결되었다. 인건비, 제조 비용의 저렴함 때문에 이전부터 일본 기업 제조 거점이 많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최근에는 경제 성장에 따라 소비 시장으로의 전환도 보인다. 태국 왕실과 황실과의 관계도 양호하며, 일본을 방문하는 태국인도 증가하고 있다. 2004년 수마트라섬 지진에서는 자위대의 태국 파견도 실시되었다.
동티모르: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2년에는 포르투갈군의 저항도 거의 없이 포르투갈령 티모르는 일본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본격적인 교류 시작은 동티모르 독립 이후로, 2002년에는 평화적인 독립을 위한 자위대 동티모르 파견이, 2006년에는 유엔 동티모르 통합 미션을 위해 경찰관 파견이 각각 실시되었으며, 현재에도 안전 보장상 교류가 있다. 무역 면에서 관계성은 약하지만, 경제 지원 면에서는 일본은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어 동티모르 원조국이다.
| 국가명 | 국교 수립(회복) | 국교 단절 | 비고 | 출처 |
|---|---|---|---|---|
| 인도 | 1952년4월 28일 | |||
| 인도네시아 | 1958년4월 | |||
| 캄보디아 | 1953년 | |||
| 싱가포르 | ||||
| 스리랑카 | ||||
| 태국 | 1887년9월 26일 | 1887년, 일·샴 수호 통상 조약에 의해 국교 수립. | ||
| 대한민국 | 1876년2월 26일 | 1905년11월 23일 | 1876년의 조일 수호 조규에 의해 외교 사절을 주재하는 등, 조선과의 근대적인 외교 관계가 시작. 1905년, 을사조약에 의해 한국은 일본의 보호국이 됨. | |
| 1965년6월 22일 | 1965년, 한일 기본 조약에 의해 국교 정상화. | |||
| 중국 | 1871년9월 13일 | 1894년8월 1일 | 1871년의 조일 수호 조규에 의해 외교 사절을 주재하는 등, 중국과의 근대적인 외교 관계가 시작. 1894년, 청일 전쟁 개전으로 국교 단절. | |
| 1895년5월 8일 | 1938년1월 16일 |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에 의해 국교 회복. 1912년의 중화민국 성립 후에도 국교 지속. 1938년, 근위 선언에 의해 장제스 정권과의 국교가 단절 상태가 됨. | ||
| 1972년9월 29일 | 1972년,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회복. | |||
| 네팔 | 1956년9월 | |||
| 파키스탄 | 1952년4월 | |||
| 방글라데시 | 1972년2월 | |||
| 동티모르 | ||||
| 필리핀 | 1956년7월 | |||
| 부탄 | 1986년3월 28일 | |||
| 브루나이 | 1984년4월 | |||
| 베트남 | 1973년9월 21일 | 동구권이었던 북베트남과 일본은 1973년에 외교 관계를 수립. 그 후, 남베트남을 흡수하는 형태로 통일하여, 현재의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됨. | ||
| 말레이시아 | 1957년 | |||
| 미얀마 | 1954년11월 | |||
| 몰디브 | 1967년 | |||
| 몽골 | 1972년2월 24일 | |||
| 라오스 | 1955년3월 | |||
5.1.2. 동남아시아
일본은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 국가들과 정기적으로 정상 회담을 개최하며, 이 지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 특히 믈라카 해협은 일본이 중동에서 수입하는 원유의 90% 가까이가 통과하는 중요한 무역 루트로, 해적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 해상보안청이 동남아 국가 해안 경비대에 지도 및 합동 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1990년까지 일본과 아시아 태평양 지역 대부분 국가, 특히 급증하는 경제 교류는 다면적이었으며 수혜 국가에게 점점 더 중요해졌다.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의 개발도상국들은 일본을 자국 발전에 매우 중요한 존재로 여겼다. 일본의 ASEAN 국가에 대한 원조는 일본 회계 연도(FY) 1988년에 1900에 달했으며, 미국의 미국 FY 1988년의 약 333에 비해 훨씬 많았다.
1980년대 후반, 일본 정부는 특히 아시아에서 외교적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가이후 도시키 총리의 1991년 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태국, 싱가포르, 필리핀 등 5개 동남아 국가 순방은 5월 3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주요 외교 정책 연설로 마무리되었는데, 이 연설에서 그는 ASEAN과의 새로운 파트너십을 촉구하고 일본이 순수한 경제 영역을 넘어 "평화 국가로서 정치적 영역에서 적절한 역할"을 모색하겠다고 약속했다.
1997년, ASEAN 회원국과 중화인민공화국, 대한민국, 일본은 지역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연례 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으며, 이를 ASEAN+3 회의라고 한다. 2005년 ASEAN+3 국가와 인도, 호주, 뉴질랜드는 첫 번째 동아시아 정상회의(EAS)를 개최했다.
동남아 국가들과는 기본적으로 우호 관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과 경제적, 문화적으로 관계가 깊고, 상호간 국민 감정도 좋다. 일본은 이들 각국과의 자유 무역 협정 체결을 모색하고 있다.
* 태국 : 태국 왕실과 일본 황실 간의 관계가 좋다.
* 필리핀 : 재일 외국인 중 필리핀인은 국적별로 4위를 차지한다.
* 싱가포르 : 일본-싱가포르 경제 제휴 협정(日本・シンガポール新時代経済連携協定)을 체결했으며, 일본 최초의 자유 무역 협정 대상국이다.
* 캄보디아 : 자위대가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되었고, 경제적 지원과 함께 폴 포트 정권에 의해 파괴된 불교 시설 및 신앙 부흥에 일본 불교계가 크게 공헌하고 있다. 지뢰 제거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 인도네시아 : 수마트라섬 앞바다 지진 발생 후, 일본은 금액 기준 3위의 지원을 긴급 편성하고 인도네시아 아체 주에 자위대 함정을 파견했다. 방재 시스템 구축 지원도 약속했다.
| 국가 | 공식 관계 시작 | 비고 |
|---|---|---|
| 베트남 | 1973년 9월 21일 | 일본-베트남 관계 참조. 베트남-일본 관계는 두 나라가 우호적인 무역을 했던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양국 간의 현대 관계는 베트남의 경제 발전과 투자자 및 외국 원조 공여국으로서의 일본의 역할을 기반으로 한다. |
| 싱가포르 | 1966년 4월 26일 | 일본-싱가포르 관계 참조. |
| 캄보디아 | 1953년 | 캄보디아-일본 관계 참조. 일본은 프놈펜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양국 간 무역 규모는 상당하다. |
| 인도네시아 | 1958년 4월 | 인도네시아-일본 관계 참조. |
| 태국 | 1887년 9월 26일 | 일본-태국 관계 참조. 일본-태국 관계는 17세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다. 봉인선의 일본 상인들과 태국인 토착 사회의 일본인 정착을 통해 초기 접촉이 이루어졌지만, 일본의 쇄국 시대에 단절되었다. 접촉은 19세기에 재개되었고, 현재 일본이 태국의 주요 경제 파트너 중 하나가 될 정도로 발전했다. 태국과 일본은 식민지 시대에 주권을 잃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
| 미얀마 | 1954년 12월 1일 | 일본-미얀마 관계 참조. |
| 필리핀 | 1956년 7월 | 일본-필리핀 관계 참조. 일본과 필리핀의 관계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일반적으로 매우 강력했다. 이는 16세기 이전부터 현재까지 이어진다. 필리핀은 1946년 미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외교 관계는 전쟁 배상 협정이 체결된 1956년에 재수립되었다. 1950년대 말까지 일본 기업과 개인 투자자들이 필리핀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으며, 1975년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주요 투자국으로서 미국을 대체했다. |
| 말레이시아 | 1957년 8월 31일 | 일본-말레이시아 관계 참조. 일본은 쿠알라룸푸르에 대사관을, 조지타운과 코타키나발루에 영사관을 두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도쿄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일본과 말레이시아 정부는 여러 차례 상호 방문을 했다. 주목할 만한 방문으로는 2005년 말레이시아 국왕의 일본 방문과 2006년 일본 천황 부부의 말레이시아 방문이 있다. |
| 브루나이 | 1984년 4월 2일 | 브루나이-일본 관계 참조. 브루나이는 도쿄에 대사관을 두고 있으며, 일본은 반다르스리브가완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관계는 1984년 4월 2일에 수립되었다. |
| 라오스 | 1955년 3월 5일 | 일본-라오스 관계 참조. |
5.1.3. 남아시아
일본은 남아시아 각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6년 일본 외무성은 아시아대양주국에 남아시아부를 신설하였다. 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일본의 역할은 주로 경제 지원이었다.
; 인도
인도는 남아시아에서 일본과 가장 관계가 깊은 국가이며, 앞으로 관계가 더욱 긴밀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2006년 12월 만모한 싱 인도 총리의 일본 방문은 "일본-인도 전략적이고 국제적인 파트너십을 향한 제휴 선언" 서명으로 이어졌다. 2008년 10월, 양국 정상은 일본국과 인도 간의 안전 보장 협력에 관한 공동 선언에 서명하여, 일본은 미국,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어 인도와 안보 분야에서 공식적인 협력 관계를 맺은 세 번째 국가가 되었다.
인도는 최근 경제 발전과 정보기술 분야의 실적이 주목받고 있으며,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도 증대되고 있다. 인도는 G4 국가로서 일본과 함께 관계 강화를 지향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양국 간 외교 관계는 대체로 친밀하고 강력했다.
; 파키스탄
일본은 피폭국으로서 파키스탄의 핵실험 때문에 거리를 두기도 했다. 1998년 지하 핵실험 이후 2005년 4월까지 파키스탄에 대한 원조를 중단했었다. 그러나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 등 안보 관점에서 중동에 영향력이 강한 파키스탄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판단,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의 파키스탄 방문을 계기로 유상 자금 지원을 재개하였다.
; 방글라데시
일본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에 대해 경제, 보건, 자연 재해 대책 등 다양한 측면에서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 스리랑카, 네팔, 부탄, 몰디브
이들 국가는 일본의 ODA 지원을 받고 있다.
5.1.4. 중앙아시아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과거 실크로드를 통해 일본에 문화적인 영향을 주었으나, 최근에는 인적 교류가 많지 않다. 일본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무력 공격을 지지했지만, 자위대를 인도양에 파견하는 데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지역에서 번성했던 고대 왕조와 불교 유적 연구 등 학술 분야 교류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바미안 계곡의 문화적 경관과 고대 유적군 복구 등에 일본은 많은 금액을 지원하고 있다.
경제적인 기반이 취약한 국가들이 많고, 바다가 없어 운송 비용이 많이 드는 등의 이유로 희귀한 지하 자원을 제외하고는 무역 등 경제적인 관계는 다른 지역에 비해 활발하지 않다.
5.1.5. 서아시아
일본은 서아시아를 주요 원유 공급원으로 여기며,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 교류는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않다. 종교적 갈등 요인이 없어 주민들의 대일 감정은 비교적 양호한 편으로 알려져 있다.
* 에너지 안보: 일본은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서아시아 국가들로부터 많은 양의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는 일본 외교 정책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이다.
* 경제 협력: 일본은 서아시아 국가들과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 이후 자위대를 이라크에 파견하여 재건 지원 활동을 펼치는 등, 군사력을 외교에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 중동 평화 문제: 일본은 중동 평화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양측과 회담을 갖는 등 균형 외교를 추구하고 있다.
5.2. 유럽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은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NATO 여러 나라들과, 미국을 사이에 둔 간접적인 동맹관계에 있었다.
또한, 일본의 황실은 영국, 스웨덴, 벨기에 등 유럽 각국의 왕실과도 깊은 우호관계를 맺고 있다.
EU과는 1991년 7월, 헤이그에서 제1회 일-EU 정기 수뇌 회담을 개최한 이후 지속적으로 정기 수뇌 회담을 개최하고 있으며, 정치 관계는 대체로 양호하다. 한편, 일본 측은 미국이나 아시아 국가 등과의 관계를, 유럽 연합 측은 아시아에서는 중국이나 인도 등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어, 일본과 유럽 연합과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오히려 희박해질 것이 우려되고 있다.
| 국명 | 국교 수립(회복) | 국교 단절 | 비고 | 출처 |
|---|---|---|---|---|
| 아이슬란드 | 1956년12월 8일 | |||
| 아일랜드 | 1957년3월 5일 | |||
| 알바니아 | 1981년 3월 | |||
| 안도라 | 1995년 10월 | |||
| 1866년8월 25일 | 1943년9월 27일 | 1866년, 일이 수호 통상 조약에 의해 국교 수립. 1943년, 일본이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을 이탈리아 정부로 승인하면서 국교 단절 상태가 됨. 그 후, 1945년에는 대일 선전 포고를 함. | ||
| 1952년4월 28일 | 1952년, 교환 공문으로 전쟁 상태 종결 및 외교 관계 재개가 확인됨. | |||
| 영국 | 1858년8월 26일 | 1941년12월 8일 | 1858년, 영일 수호 통상 조약에 의해 국교 수립. 1941년의 영일 개전으로 국교 단절. | |
| 1952년4월 28일 |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의해 국교 회복. | |||
| 오스트리아 | 1869년10월 18일 | 1914년8월 23일 | 1869년, 일오 수호 통상 항해 조약에 의해 국교 수립. 1914년, 일본이 대독 선전 포고(독일-오스트리아 전쟁)를 한 것으로 독일과 동맹 관계에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도 국교 단절. | |
| 1920년7월 16일 | 1938년3월 12일 | 1920년, 생제르맹 조약에 의해 국교 회복. 1938년, 안슐루스에 의해 독일에 병합되어 소멸. | ||
| 1955년 | ||||
| 네덜란드 | 1858년8월 18일 | 1941년12월 10일 | 1858년, 일란 수호 통상 조약에 의해 국교 수립. 1941년, 네덜란드 망명 정부가 대일 선전 포고를 하여 국교 단절. | |
| 1952년4월 28일 | 1952년, 네덜란드의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비준에 앞서, 교환 공문에 의해 국교 회복. | |||
| 북마케도니아 | 1994년3월 1일 | |||
| 키프로스 | 1962년 6월 | |||
| 그리스 | 1899년5월 20일 | 1941년12월 23일 | 1899년, 일희 수호 통상 항해 조약에 의해 국교 수립. 1941년, 그리스 망명 정부는 대일 국교 단절을 통고. 그 후, 1945년에는 대일 선전 포고를 함. | |
| 1953년7월 6일 | 1953년, 그리스가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을 비준하여 국교 회복. | |||
| 크로아티아 | 1993년3월 5일 | |||
| 2009년2월 25일 | ||||
| 산마리노 | 1996년 11월 | |||
| 스위스 | 1864년2월 6일 | 1945년10월 25일 | 1864년, 일스위스 수호 통상 조약에 의해 국교 수립. 1945년, SCAPIN-189에 의해 일본 정부의 외교권이 정지됨. | |
| 1952년4월 28일 | 1952년, 교환 공문에 의해 외교 관계 재개가 확인됨. | |||
| 스웨덴 | 1868년11월 11일 | 1945년10월 25일 | 1868년, 일스웨덴 수호 통상 항해 조약에 의해 국교 수립. 1945년, SCAPIN-189에 의해 일본 정부의 외교권이 정지됨. | |
| 1952년4월 28일 | 1952년, 교환 공문에 의해 외교 관계 재개가 확인됨. | |||
| 스페인 | 1868년11월 12일 | 1945년4월 12일 | 1868년, 일서 수호 통상 항해 조약에 의해 국교 수립. 1945년, 스페인은 대일 국교 단절을 통고. | |
| 1952년4월 28일 | 1952년, 교환 공문에 의해 외교 관계 재개가 확인됨. | |||
| 슬로바키아 | 1993년2월 3일 | |||
| 슬로베니아 | 1992년10월 12일 | |||
| 세르비아 | 1919년 6월 | 1941년6월 7일 | 1941년, 일본은 독일의 유고슬라비아 침공으로 생긴 "크로아티아 독립국"을 승인함으로써 국교 단절 상태가 됨. 1942년에 유고슬라비아 망명 정부는 대일 선전 포고를 함. | |
| 1952년4월 28일 | 1992년4월 27일 | 1952년, 교환 공문에 의해 유고슬라비아 연방 인민 공화국과의 전쟁 상태 종결과 국교 회복을 확인. 1992년 유고슬라비아 해체 후 성립된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신 유고)은 구 유고를 계승한다고 주장했지만 일본을 포함한 국제 사회에서는 인정받지 못함. | ||
| 1997년 | 1997년, 신 유고와 외교 관계 개설. 2006년 연방 해체 후에는 세르비아 공화국이 국교를 계승. | |||
| 체코 | 1920년1월 12일 | 1939년3월 15일 | 1939년, 나치 독일의 체코슬로바키아 해체에 의해 소멸. 1941년, 체코슬로바키아 망명 정부는 대일 선전 포고를 함. | |
| 1957년5월 8일 | 1957년, 일본국과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 간의 국교 회복에 관한 의정서에 의해 국교 회복. | |||
| 덴마크 | 1867년1월 12일 | 1945년5월 23일 | 1867년, 일정 수호 통상 조약에 의해 국교 수립. 1945년, 덴마크는 대일 국교 단절을 통고. | |
| 1952년4월 28일 | 1952년, 교환 공문에 의해 외교 관계 재개가 확인됨. | |||
| 독일 | 1861년1월 24일 | 1914년8월 23일 | 1861년, 일포 수호 통상 조약에 의해 국교 수립. 1914년, 일본이 대독 선전 포고(독일-오스트리아 전쟁)를 한 것으로 국교 단절. | |
| 1920년1월 20일 | 1945년6월 5일 | 1920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국교 회복.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독일국이 소멸하여 연합국의 통치하에 들어갔으므로, 서독과 국교를 회복하기 전까지 독일과의 외교 관계가 중단됨. | ||
| 1952년4월 28일 | 1952년, 교환 공문에 의해 외교 관계 재개가 확인됨. 1990년에 동독을 편입하여 통일. | |||
| 노르웨이 | 1905년11월 7일 | 1942년3월 30일 | 1942년, 노르웨이 망명 정부는 대일 국교 단절을 통고. 그 후, 1945년에는 대일 선전 포고를 함. | |
| 1952년4월 28일 | 1952년, 노르웨이의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비준에 앞서, 교환 공문에 의해 국교 회복. | |||
| 바티칸 시국 | 1942년2월 11일 | 1945년10월 25일 | 1942년, 국교 수립. 1945년, SCAPIN-189에 의해 일본 정부의 외교권이 정지됨. | |
| 1952년4월 28일 | 1952년, 교환 공문에 의해 외교 관계 재개가 확인됨. | |||
| 헝가리 | 1869년10월 18일 | 1914년8월 23일 | 1869년, 일오 수호 통상 항해 조약에 의해 국교 수립. 1914년, 일본이 대독 선전 포고(독일-오스트리아 전쟁)를 한 것으로 독일과 동맹 관계에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도 국교 단절. | |
| 1921년7월 31일 | 1945년3월 28일 | 1921년, 트리아농 조약에 의해 국교 회복. 1945년, 화살 십자당 정권 붕괴로 국교 단절 상태가 됨. | ||
| 1959년8월 29일 | 1959년, 교환 공문에 의해 헝가리 인민 공화국과의 외교 관계 재개가 확인됨. | |||
| 핀란드 | 1919년5월 24일 | 1944년9월 22일 | 1944년, 핀란드는 모스크바 휴전 협정 체결 후 대일 국교 단절을 통고. | |
| 1957년3월 8일 | ||||
| 프랑스 | 1858년10월 9일 | 1944년8월 9일 | 1858년, 일불 수호 통상 조약에 의해 국교 수립. 1944년, 비시 프랑스가 소멸하면서 국교 단절 상태가 됨. 같은 해, 프랑스 공화국 임시 정부가 연합국 공동 선언에 서명했으므로 일불은 전쟁 상태가 됨. | |
| 1952년4월 28일 |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의해 국교 회복. | |||
| 불가리아 | 1939년10월 12일 | 1944년11월 7일 | 1944년, 에 의해 성립된 사회주의 정권은 대일 국교 단절을 통고. | |
| 1959년9월 12일 | 1959년, 교환 공문에 의해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과의 외교 관계 재개가 확인됨. | |||
| 벨기에 | 1866년8월 1일 | 1941년12월 18일 | 1866년, 일백 수호 통상 조약에 의해 국교 수립. 1941년 12월 18일, 벨기에 망명 정부는 대일 국교 단절을 통고. 그 후, 12월 20일에는 대일 선전 포고를 함. | |
| 1952년4월 28일 | 1952년, 벨기에의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비준에 앞서, 교환 공문에 의해 국교 회복. | |||
| 폴란드 | 1919년3월 22일 | 1941년10월 4일 | 1939년의 독소에 의한 폴란드 침공 후에도 일본은 폴란드 망명 정부와의 관계를 유지했으나, 1941년 10월에 단교했다. 그 후, 1941년 12월에는 폴란드 망명 정부가 대일 선전 포고를 함. | |
| 1957년5월 18일 | 1957년, 일본국과 폴란드 인민 공화국 간의 국교 회복에 관한 협정에 의해 국교 회복. | |||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1996년2월 9일 | |||
| 포르투갈 | 1860년8월 3일 | 1945년10월 25일 | 1860년, 일포 수호 통상 조약에 의해 국교 수립. 1945년, SCAPIN-189에 의해 일본 정부의 외교권이 정지됨. | |
| 1953년10월 22일 | 1953년, 교환 공문에 의해 외교 관계 재개가 확인됨. | |||
| 몰타 | 1965년 7월 | |||
| 모나코 | 2006년12월 14일 | |||
| 몰도바 | 1992년3월 16일 | |||
| 몬테네그로 | 2006년7월 22일 | |||
| 라트비아 | 1921년1월 26일 | 1940년8월 5일 | 1921년, 국교 수립. 1940년, 소련의 침공에 의해 외교 관계 중단. | |
| 1991년10월 10일 | ||||
| 리히텐슈타인 | 1996년 6월 | |||
| 리투아니아 | 1919년1월 3일 | 1940년8월 3일 | 1919년, 국교 수립. 1940년, 소련의 침공에 의해 외교 관계 중단. | |
| 1991년10월 10일 | ||||
| 루마니아 | 1921년 | 1944년10월 31일 | 1944년, 루마니아는 대일 국교 단절을 통고. | |
| 1959년9월 1일 | 1959년, 교환 공문에 의해 루마니아 인민 공화국과의 외교 관계 재개가 확인됨. | |||
| 룩셈부르크 | 1927년 11월 | 1940년 | ||
| 1953년3월 10일 | 1953년, 교환 공문에 의해 전쟁 상태 종결과 외교 관계 재개가 확인됨. |
5.3. 아메리카
일본은 라틴 아메리카의 개발 및 기술 지원 프로젝트에 지속적으로 상당한 지원을 제공해 왔다.
| 국가 | 공식 관계 시작 | Notes |
|---|---|---|
| 아르헨티나 | 1898년 2월 3일 | 아르헨티나-일본 관계 참조 |
| 바베이도스 | 1967년 8월 29일 | 바베이도스-일본 관계 참조 |
| 볼리비아 | 1914년 4월 3일 | 볼리비아-일본 관계 참조 |
| 브라질 | 1895년 | 브라질-일본 관계 참조 |
| 칠레 | 1897년 9월 25일 | 칠레-일본 관계 참조 |
| 콜롬비아 | 1908년 5월 25일 | 콜롬비아-일본 관계 참조 |
| 쿠바 | 1929년 12월 21일 | 쿠바-일본 관계 참조 |
| 에콰도르 | 1918년 8월 26일 | 에콰도르-일본 관계 참조 |
| 멕시코 | 1888년 11월 30일 | 일본-멕시코 관계 참조 |
| 파라과이 | 1919년 11월 17일 | 일본-파라과이 관계 참조 |
| 페루 | 1873년 8월 21일 | 일본-페루 관계 참조 |
| 트리니다드 토바고 | 1964년 5월 | 일본-트리니다드 토바고 관계 참조 |
| 우루과이 | 1921년 9월 24일 | 일본-우루과이 관계 참조 |
| 베네수엘라 | 1938년 8월 19일 | 일본-베네수엘라 관계 참조 |
5.3.1. 북아메리카
미국과는 군사, 경제, 정치 모든 면에서 긴밀하고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일본에게 미국은 유일한 동맹국이며, 미국에게도 일본은 전략적인 의미에서 중요한 동맹국 중 하나이다. 양국은 안보 면에서 강력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에서 양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4년 동안 격렬한 전투를 벌였지만, 전후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연합군이 일본을 점령·통치했다. 1946년부터 1951년까지 "가리오아 자금" (GARIOA)과 "에로아 자금" (EROA)을 통해 약 1860가 일본에 지원되었다. (1973년 완납). 이 원조는 일본 경제의 조기 부흥에 도움이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체결로 7년의 점령 시대를 거쳐 일본이 주권을 회복한 후에는 일미 안보 조약에 따른 일미 동맹에 근거하여 기지 부지 및 주둔 경비의 일부 (배려 예산)를 제공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오키나와 등에서 축소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며, 종종 정치적인 과제로 부상한다. 일본 국내에서는 일미 안보 조약이 일본의 안보와 외교의 자주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받기도 하지만, 일본 정부는 주변국 (특히 러시아·중국·북한)의 군사력에 대한 경계심에서 동맹 강화를 꾀하고 있다.
양국은 때로는 격렬한 경제·무역 마찰을 일으키면서도 경제 관계에서도 강한 유대 관계를 가지고 있다. 흑선 내항으로 시작되는 경제 관계는 미국의 경제력을 배경으로 큰 규모를 유지해 왔으며, 미국은 2006년까지 일본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었다.
또한, 양국의 경제적인 유대 관계의 크기로 인해 문화·관습 면에서의 차이가 감정적인 마찰을 초래하기도 한다. 일본은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일미 관계는 1990년대 초 경제·무역 마찰이 심화되었을 때 가장 악화되었지만,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일본 경제의 침체 (잃어버린 10년, 잃어버린 20년)·1990년대 이후 미국 경제의 성장·일본계 기업의 현지화 노력 등으로 인해, 이전만큼 미국에게 위협으로 간주되지 않게 되었다.
걸프 전쟁 당시 일본은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지만 직접적인 군사 지원을 하지 않아 미국 정부로부터 비판받았다. 이후 일본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이 실시한 자위대 이라크 파견 등 보다 적극적인 안보 협력을 하게 되었다.
캐나다와 일본의 외교 관계는 1889년 밴쿠버 일본 영사관 개설로 공식 시작되었다. 1929년, 캐나다는 도쿄에 아시아 최초의 공사관을 개설했고, 같은 해 일본도 오타와 영사관을 공사관으로 격상시켰다.
일부 캐나다계 일본인 사이에서는 양국이 상호 설치한 상설 공사관에 앞서 비공식적인 접촉이 있었다. 나가노 만조는 캐나다로 건너간 최초의 일본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1877년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뉴웨스트민스터에 상륙했다. 밴쿠버 일본 영사관은 오타와 공사관이 설치되기 40년 전인 1889년에 개설되었다.
캐나다인 G.G. 코크란은 도시샤 대학, 데이비드슨 맥도날드는 아오야마 가쿠인 대학의 설립에 각각 관여했다.
1923년 간토 대지진 당시, 캐나다 증기선 엠프레스 오브 오스트레일리아와 그 함장 사무엘 로빈슨은 지진 발생 직후 구조 활동을 펼쳐 국제적인 칭찬을 받았다.
캐나다의 주재 무관이었던 허버트 시릴 서커는 러일 전쟁 (1904년-1905년) 중 구 일본군과 함께 전장에 나가 공을 세워 일본 정부로부터 훈3등 서보장을 수여받았고, 구 일본군으로부터 종군기장도 수여받았다.
캐나다와 일본은 1928년 외교 관계 수립 이후, 경제·정치·사회 문화 등 분야에서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양국은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인권·지속 가능한 개발·평화 유지 활동 등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이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일-캐나다 관계는 G7/G8, 국제 연합, OECD, QUAD (미국, 캐나다, EU, 일본) 외에,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 포럼 (APEC) 및 ASEAN 지역 포럼 (ARF) 등 참여를 포함한 환태평양 지역 관련 단체·회의 등을 통한 다자간 협력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2009년에는 천황·황후가 캐나다를 방문했다.
5.3.2. 남아메리카
일본과 남아메리카는 지리적으로 지구의 거의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으나, 1872년에 마리아 루스 호 사건을 계기로 페루와 수교를 시작하며 관계를 맺었다. 1898년에는 러일 전쟁에 대비하여 아르헨티나로부터 군함 리바다비아(Rivadavia스페인어)호와 모레노(Moreno스페인어)호를 각각 가즈가호와 닛신호로 명명하여 구입했고, 이 군함들은 러일 전쟁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남미 여러 나라는 일본으로부터 이민을 대량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관계가 깊다. 특히 브라질에는 약 180만 명이라는 해외 최대 규모의 일본인 사회가 형성되어 있어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면에서도 매우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브라질은 G4 국가로서 일본과 함께 유엔 상임이사국을 목표로 하고 있어 국제정치에서 제휴하는 경우가 많다. 1908년 4월 28일, 781명의 일본인이 고베 항에서 브라질 이민을 떠났으며, 50일간의 항해 끝에 1908년 6월 18일 브라질에 도착했다. 이를 기념하는 100주년 행사가 2008년에 열렸다. 브라질에서의 일본 이민은 근면과 신뢰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페루는 남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일본계 인구가 많은 나라이며, 많은 이민자가 건너갔다. 1990년대에는 일본계 대통령인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취임하면서 관계가 급속하게 긴밀해졌지만, 이후 실각하고 일본으로 정치적 망명을 하기도 하였다.
무역 관계로는 칠레와 관계가 특히 크며, 전쟁 전부터 우호 관계가 계속되는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등 일본과 친한 나라도 많다. 특히 포클랜드 전쟁 중, 미국·영국·EC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아르헨티나에 대한 금수 조치를 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일본의 독자 외교는 아르헨티나의 일본 전문가들에게 높이 평가받고 있다.
5.4. 오세아니아
일본은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특히 오스트레일리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양국은 경제, 군사,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며, 2007년에는 안전 보장 협력에 관한 일호 공동 선언을 체결하여 국제 연합 평화 유지 활동(PKO 활동), 대테러 활동, 쓰나미 등 지역 재해에 대한 협력을 강화했다. 이로써 일본은 미국에 이어 오스트레일리아와 안보 분야에서 공식적인 협력 관계를 맺는 두 번째 국가가 되었다.
--
오스트레일리아:
* 경제 협력: 일본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주요 수출 시장이며, 오스트레일리아는 일본에 원료와 식량을 공급하는 중요한 자원국이다. 1990년 일본 수입의 5.3%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수입되었으며, 일본은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주요 투자국이기도 하다.
* 안보 협력: 양국은 자위대와 오스트레일리아군 간의 공동 훈련을 실시하고, 지역 안보 문제에 협력하고 있다.
* 역사적 배경: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다윈을 폭격하고, 산다칸 죽음의 행진 등 전쟁 포로 학대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전후 양국은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 왔다.
* 최근 동향: 1990년대 일본 경제 불황으로 일본 경제 지배에 대한 우려는 옅어졌지만, 양국은 상호에게 미래의 성장과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번영에 필요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사모아:
* 1966년 스파 리조트 하와이언즈의 전신인 토키와 하와이언 센터 개업을 계기로 후쿠시마현이와키시와 교류가 시작되었다.
* 2016년 이와키시에 재후쿠시마 사모아 명예 영사관이 개설되었으며, 스파 리조트 하와이언즈를 경영하는 토키와흥산 사내에 있다.
솔로몬 제도:
* 1978년 7월 7일, 솔로몬 제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자마자 일본은 즉시 독립을 승인하고 양국 간에 국교를 수립했다.
* 과달카날섬은 제2차 세계 대전의 격전지로 유명하며, 전적지 순례 및 위령 투어가 진행되고 있다.
미크로네시아 연방에서는 일본계 토시오 나카야마와 매니 모리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팔라우에서는 과거 일본계 쿠니오 나카무라가 대통령을 역임했고, 일부 자치단체에서는 일본어가 공용어로 채택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과거 일본이 위임통치령 또는 점령지로 통치했던 남양 제도 국가들과 비교적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5.5. 아프리카
일본과 아프리카 여러 나라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역사적으로도 거의 관계가 없었다. 그래서 현재도 사람 간의 교류는 많지 않고, 관광지로서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인기가 높지 않다. 주로 지하자원을 수입하고 공업 제품을 수출하는 무역 관계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때문에 세계적으로 고립되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많은 일본 기업이 진출하여 비교적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1993년부터는 정부 개발 원조(ODA) 등 경제 지원을 포함한 경제적, 인적 교류를 넓히기 위해 아프리카 개발 회의(TICAD)를 개최했다. 이 회의는 일본, 유엔, GCA, 세계은행 그룹이 공동 주최하는 국제 회의이다. 최근 일본은 아프리카 국가에 대사관을 늘리는 등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 중국은 자원 확보와 유엔에서의 지지 확보를 위해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인적 교류가 적은 일본은 아프리카 여러 나라와의 관계 강화에 있어서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 중국은 현지에 거주하는 많은 화교 등을 활용하여 공세를 펼치고 있다.
축구 등 스포츠 분야에서는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일본에 초청하여 경기를 하는 등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2008년 5월, 제1회 노구치 히데요 아프리카상이 제4회 아프리카 개발을 위한 도쿄 국제회의(TICAD IV)에서 수여될 예정이었다. 이는 양자 관계의 변화를 의미한다.
일본과 이집트의 관계
일본-에티오피아 관계를 참고하십시오.
주지부와 일본의 관계
지부티 : 2011년부터, 전후 첫 해외 기지이자 일본 역사상 최초의 아프리카를 거점으로 하는 해외 기지를 지부티에 두고 있다.
일본-남아프리카 공화국 관계
: 아파르트헤이트로 세계에서 고립되었던 시대에도 많은 일본 기업이 진출하여 비교적 밀접한 관계를 구축했다.
6. 국제 여론
BBC 월드 서비스가 2005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세계 여론 조사에서 일본은 대체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조사는 특정 국가 및 지역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미지를 묻는 것으로, 일본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응답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였다.
2017년 BBC 조사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78%), 캐나다(77%), 브라질(70%), 프랑스(74%) 등에서 긍정적 인식이 높게 나타났다. 반면, 중화인민공화국(22%)에서는 부정적 인식이 75%로 매우 높았다.
2013년 퓨 리서치 센터 조사에서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 중 말레이시아(80%), 인도네시아(79%), 오스트레일리아(78%), 필리핀(78%)에서 긍정적 인식이 높았다. 반면, 중화인민공화국(4%)과 대한민국(22%)에서는 부정적 인식이 각각 90%, 77%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2011년 BBC 조사에서는 인도네시아(85%), 필리핀(84%), 러시아(65%), 페루(64%) 등에서 긍정적 인식이 높았다. 중화인민공화국(18%)에서는 부정적 인식이 71%로 높았으나, 대한민국(68%)은 긍정적 인식이 68%로 나타나 2013년 조사와는 다른 결과를 보였다.
| 나라 | 긍정적 | 부정적 | 중립 | 편차 |
|---|---|---|---|---|
| 중화인민공화국 | 18% | 71% | 11 | -53 |
| 멕시코 | 24% | 34% | 42 | -10 |
| 파키스탄 | 34% | 15% | 51 | 19 |
| 남아프리카 공화국 | 41% | 17% | 42 | 24 |
| 인도 | 39% | 13% | 48 | 26 |
| 프랑스 | 55% | 29% | 16 | 26 |
| 포르투갈 | 43% | 13% | 44 | 30 |
| 영국 | 58% | 26% | 16 | 32 |
| 독일 | 58% | 25% | 17 | 33 |
| 가나 | 55% | 11% | 34 | 34 |
| 오스트레일리아 | 60% | 26% | 14 | 34 |
| 스페인 | 57% | 19% | 24 | 38 |
| 이집트 | 52% | 14% | 34 | 38 |
| 케냐 | 61% | 20% | 19 | 41 |
| 튀르키예 | 64% | 21% | 15 | 43 |
| 대한민국 | 68% | 20% | 12 | 48 |
| 이탈리아 | 66% | 18% | 16 | 48 |
| 브라질 | 66% | 16% | 18 | 50 |
| 나이지리아 | 65% | 14% | 21 | 51 |
| 캐나다 | 67% | 16% | 17 | 51 |
| 미국 | 69% | 18% | 13 | 51 |
| 칠레 | 66% | 14% | 20 | 52 |
| 페루 | 64% | 10% | 26 | 54 |
| 러시아 | 65% | 7% | 28 | 58 |
| 필리핀 | 84% | 12% | 4 | 72 |
| 인도네시아 | 85% | 7% | 8 | 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