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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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라크의 역사는 선사 시대 샤니다르 동굴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유해를 통해 고대 인류의 거주지였음을 보여준다. 수메르 문명의 발상지로서 세계 최초의 문자를 사용하고 도시 국가를 건설했으며, 아카드 제국, 바빌로니아 제국, 아시리아 제국 등 고대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겪었다. 이후 페르시아, 알렉산드로스 대왕, 셀레우코스 제국, 파르티아, 사산 왕조 페르시아 제국 등 다양한 세력의 지배를 받았고, 7세기 이후 이슬람 세력의 확장으로 이슬람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몽골의 침략과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거쳐,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의 위임 통치를 받다가 이라크 왕국으로 독립했다. 1958년 쿠데타로 공화국이 선포된 이후, 바트당 정권과 사담 후세인의 독재를 겪었으며,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 전쟁을 거치며 미국의 침공과 점령, ISIL의 등장과 격퇴, 2018년 이후의 시위와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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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의 역사 | |
---|---|
지도 | |
개요 | |
위치 | 중동 |
역사적 중요성 |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 |
선사 시대 | |
우바이드 문화 | 5300년경 |
하수나 문화 | 해당 정보 없음 |
할라프 문화 | 해당 정보 없음 |
할라프-우바이드 전환기 | 해당 정보 없음 |
사마라 문화 | 에리두 포함 |
우루크 문화 | 해당 정보 없음 |
젬데트 나스르 시대 | 해당 정보 없음 |
청동기 시대 | |
초기 왕조 시대 | 해당 정보 없음 |
수메르 | 해당 정보 없음 |
하마지 | 해당 정보 없음 |
아시리아 | 해당 정보 없음 |
아카드 제국 | 기원전 2334년경 - 기원전 2154년경 |
구티 왕조 | 해당 정보 없음 |
신 수메르 제국 | 기원전 2112년 - 기원전 2004년 |
이신-라르사 시대 | 기원전 2004년경 - 기원전 1750년경 |
시무르룸 | 해당 정보 없음 |
바빌로니아 | 해당 정보 없음 |
바빌론 제1왕조 | 해당 정보 없음 |
카사이트 | 해당 정보 없음 |
중기 아시리아 제국 | 해당 정보 없음 |
신아시리아 제국 | 해당 정보 없음 |
신바빌로니아 제국 | 해당 정보 없음 |
철기 시대 | |
아케메네스 아시리아 | 해당 정보 없음 |
셀레우코스 바빌로니아 | 해당 정보 없음 |
파르티아 바빌로니아 | 기원전 248년경 - 226년 |
로마 메소포타미아 | 해당 정보 없음 |
사산 아소리스탄 | 226년 - 651년 |
중세 시대 | |
이슬람 정복 | 해당 정보 없음 |
정통 칼리파국 | 637년 - 661년 |
우마이야 칼리파국 | 661년 - 750년 |
아바스 칼리파국 | 750년 - 945년 |
함단 | 해당 정보 없음 |
부이 아미르국 | 946년 - 1055년 |
마르완 왕조 | 해당 정보 없음 |
우카일리 | 해당 정보 없음 |
알-마제디 | 해당 정보 없음 |
아이유브 | 해당 정보 없음 |
셀주크 제국 | 1038년 - 1194년 |
아제르바이잔 아타베그 | 해당 정보 없음 |
장기 | 해당 정보 없음 |
일 칸국 | 1258년 - 1411년 |
잘라이르 왕조 | 1340년 - 1432년 |
티무르 제국 | 1390년경 - 1411년 |
카라 코윤루 | 1375년 - 1468년 |
아크 코윤루 | 1378년 - 1508년 |
근세 시대 | |
사파비 제국 | 1501년 - 1534년 |
오스만 이라크 | 1534년 - 1918년 |
맘루크 왕조 | 해당 정보 없음 |
근현대 시대 | |
메소포타미아 위임통치령 | 1920년 - 1932년 |
이라크 왕국 | 1932년 - 1958년 |
아랍 연방 | 1958년 |
7월 14일 혁명 | 1958년 |
이라크 공화국 | |
제1, 2 공화정 | 1958년 - 1968년 |
라마단 혁명 | 1963년 |
제1차 바트당 정권 | 1963년 |
1963년 11월 쿠데타 | 1963년 |
제2차 바트당 정권 | 1968년 - 2003년 |
이란-이라크 전쟁 | 1980년 - 1988년 |
걸프 전쟁 | 1991년 |
이라크 전쟁 | 2003년 - 2011년 |
연합군 임시 정부 | 2003년 - 2004년 |
이라크 통치 위원회 | 2003년 - 2004년 |
이라크 임시 정부 | 2004년 - 2005년 |
이라크 이행 정부 | 2005년 - 2006년 |
이라크 정식 정부 | 2006년 |
2. 선사 시대
메소포타미아는 기원전 10,000년경부터 시작된 신석기 혁명의 초기 발전 지역이다. 이곳은 "바퀴의 발명, 최초의 곡물 경작, 필기체, 수학, 천문학, 농업의 발전을 포함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전의 영감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6]
메소포타미아는 기원전 10,000년 경부터 신석기 혁명의 초기 발전지였다. 이곳은 "바퀴의 발명, 최초의 곡물 작물의 심기, 필기체의 개발, 수학, 천문학, 농업을 포함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전의 일부에 영감을 주었다"고 확인되었다.[97]
이라크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상당 부분과 함께, 최초로 농업과 가축 사육이 나타난 선토기 신석기 A (PPNA) 문화의 중심지였다. 이라크에서는 므레파트와 넴리크 9와 같은 유적지에서 이 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다음 신석기 시대인 PPNB는 직사각형 가옥으로 대표된다. 선토기 신석기 시대에는 돌, 석고, 소성 라임(바이트 세르)으로 만든 용기를 사용했다. 아나톨리아에서 발견된 흑요석 도구는 초기 교역 관계의 증거이다. 인간 발달의 추가적인 중요한 유적지로는 자르모 (기원전 7100년경),[4] 할라프 문화에 속하는 여러 유적지, 그리고 우바이드 시대의 기준 유적지인 텔 알-우바이드 (기원전 6500년에서 기원전 3800년 사이)가 있다.[5]
3.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요람"은 현대 이라크 지역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이며, 이곳은 최초의 알려진 문명인 수메르 문명이 발생한 곳이다. 수메르 문명은 채석기 시대 (우바이드 시대)에 이라크 남부의 비옥한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유역에서 발생했다.[7] 기원전 4천년 후반에 세계 최초의 쐐기 문자가 등장했다. 수메르인들은 바퀴를 활용하고 도시 국가를 건설한 최초의 민족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들의 기록은 수학, 천문학, 점성술, 성문법, 의학, 조직화된 종교에 대한 최초의 증거를 담고 있다.[7]
수메르어는 고립어이다. 초기 수메르 시대의 주요 도시 국가로는 에리두, 바드-티비라, 라르사, 시파르, 슈루파크, 우루크, 키시, 우르, 니푸르, 라가시, 기르수, 움마, 아다브, 마리, 이신, 쿠타, 데르, 악샤크 등이 있다.[7] 아슈르, 아르벨라 (현대 에르빌), 아라파 (현대 키르쿠크)와 같은 북쪽의 도시들도 기원전 25세기부터 아시리아라고 불리게 된 지역에 존재했지만, 이 시기에는 수메르의 행정 중심지였다.
수메르는 우바이드 시대 (기원전 6천 년 중반)에서 우루크 시대를 거쳐 청동기 시대 초기에 문명으로 발전했다. 고전 수메르는 기원전 24세기에 아카드 제국의 부상으로 종말을 맞았다. 구티 시대 이후, 우르 III 왕국은 기원전 21세기에 메소포타미아 남부와 중부를 통일했다.
기원전 29세기에서 24세기 사이에, 이라크 내 여러 왕국과 도시 국가들은 아시리아, 에칼라툼, 이신, 라르사를 포함하여 아카드어를 사용하는 왕조를 갖기 시작했다. 아카드 제국 (기원전 2335–2124년)은 이라크 중부의 아카드를 기반으로 부상했으며, 사르곤은 제국을 건설하고 이라크 남부와 중부의 모든 도시 국가를 정복하고 아시리아 왕들을 정복하여 수메르인과 아카드인을 하나의 국가로 통일했다.
기원전 22세기 말 아카드 제국 붕괴 후, 구티인은 수십 년 동안 남부를 점령했고, 아시리아는 북부에서 독립을 재확인했다. 우르 III 시대 동안, 특히 슐기 왕 통치 기간에 메소포타미아 남부 대부분이 다시 통일되었다. 슐기의 업적에는 아버지 우르-남무가 시작한 우르의 지구라트 건설 완공이 포함된다.[11]
중아시리아 제국 (기원전 1365–1020년) 시기 아시리아는 후르족-미탄니 제국을 파괴하고, 히타이트 제국의 거대한 지역을 병합했으며, 카시트인으로부터 바빌로니아 북부를 병합하고, 이집트 제국을 몰아내는 등 강력한 국가로 부상했다. 중아시리아 제국은 전성기에 코카서스 산맥에서 딜문 (현대 바레인)까지, 페니키아의 지중해 해안에서 이란의 자그로스 산맥까지 뻗어 있었다. 기원전 1235년, 아시리아의 투쿨티-닌우르타 1세는 바빌론의 왕위를 차지했다.
청동기 시대의 붕괴 (기원전 1200–900년) 동안 바빌로니아는 혼란스러운 상태였으며, 아시리아와 엘람의 지배를 받았다. 카시트인들은 아시리아와 엘람에 의해 권력에서 쫓겨났고, 원주민 남부 메소포타미아 왕들이 바빌로니아를 통치했지만, 종종 아시리아 또는 엘람 통치자에게 종속되었다.
신아시리아 제국(기원전 911–609년)은 철기 시대에 바빌로니아, 이집트, 우라르투, 엘람을 능가하는 지배적인 정치 세력이었다. 많은 연구자들은 신아시리아 제국을 최초의 세계 제국으로 간주한다. 제국은 전성기에 메소포타미아, 레반트, 이집트 전체와 아나톨리아, 아라비아 반도, 현재의 이란, 아르메니아의 일부를 지배했다.
기원전 7세기 말, 아시리아 제국은 내전으로 약화되었고, 기원전 605년에 멸망했다.
신바빌로니아 제국(기원전 626–539년)은 아시리아 제국을 계승했다. 칼데아인들이 바빌론을 통치했으며,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함무라비와 경쟁하는 위대한 왕이었다.
신바빌로니아 시대는 경제 및 인구 성장과 문화 및 예술 부흥을 가져왔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바빌론의 공중 정원(존재 여부는 논쟁 중)을 건설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43년 통치는 바빌론의 황금기였다.
신바빌로니아 시대는 기원전 539년 나보니두스 통치 시기에 키루스 대왕이 바빌론을 점령하면서 끝났다.
3. 1. 초기 메소포타미아 문명
메소포타미아에서 최초로 문명을 건설한 것은 수메르인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이었다. 수메르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남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하류 유역에서 발흥했다. 수메르인의 민족 계통은 불분명하며, 기원전 32세기경에는 우루크 고대 문자(쐐기 문자의 원형이 된 그림 문자)를 발명하여 점토판에 남겼다. 기원전 3천년기에 접어들 무렵에는 언어와 종교적 동질성을 기반으로 한 수메르라는 통일 개념이 형성되었다. 셈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이 문명의 중요한 담당자였으며, 메소포타미아 남부는 문자에 의한 기록이 남겨지는 초기부터 수메르어와 셈어의 바이링구얼 지대였다. 기원전 27세기경에는 하류 유역에 우르, 우루크, 라가시 등 많은 도시 국가가 형성되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달과 함께 주변 지역과의 관계도 기록에 남게 되었는데, 현재의 이란 서부에서는 엘람인이 발전했다. 엘람인은 일찍부터 수메르인과 접촉했고, 수메르의 오래된 신화 속에는 엘람인이 자주 등장하며, 이후 기원전 6세기까지 메소포타미아의 다양한 왕조와 서로 정복을 반복했다.
메소포타미아 남부, 수메르의 북방 지방에서는 예로부터 셈어족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우세했다. 그들은 전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한 사르곤이 세운 아카드에서 유래하여 아카드인이라고 불린다. 아카드어는 오리엔트 전역에서 사용되는 공통어로 발전했다. 기원전 2천년기 후반, 아카드 왕 사르곤은 수메르의 도시 국가를 정복하고, 메소포타미아 북부도 정복하여 처음으로 메소포타미아 통일을 이루었다. 아카드 제국은 중심 도시를 아카드에 정하고, 판도를 지중해와 아나톨리아 반도까지 넓혔다. 아카드 제국은 처음으로 중앙 집권을 확립했기 때문에 교통과 교역이 발전하고, 메소포타미아의 경제적·문화적 통일도 진전되었다.
아카드 제국은 주변 민족과의 전쟁과 수메르 도시 국가의 잇따른 반란으로 쇠퇴하여 기원전 22세기경에 멸망했다. 기원전 2125년경,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있는 수메르인의 도시 국가 우르가 메소포타미아의 지배를 획득하여, 우르 제3왕조가 세워졌다. 우르는 현재 알려진 가장 오래된 법전인 우르-남무 법전을 제정했다.
3. 2. 고대 바빌로니아
아모리인 통치자 함무라비는 기원전 1792년에 권력을 잡고 바빌론을 주요 도시로 건설하기 시작하여 스스로 왕이라고 선언했다. 함무라비는 이라크 남부와 중부, 동쪽의 엘람, 서쪽의 마리를 정복한 후, 이 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아시리아 왕 이슈메-다간과 장기간의 전쟁을 벌여 단명한 바빌로니아 제국을 건설했다.[12] 그는 결국 이슈메-다간의 후계자를 물리치고 아시리아와 그 아나톨리아 식민지를 복속시켰다. 함무라비 시대부터 이라크 남부는 바빌로니아로 알려지게 되었다.[12][13]
함무라비 왕(기원전 1792년 - 기원전 1750년)에 의해 메소포타미아는 재통일되어 바빌로니아 왕국(고바빌로니아, 또는 바빌론 제1왕조)으로서 번영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은 함무라비 왕에 의해 만들어졌다. 고바빌로니아는 수메르에서 페르시아 만까지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거의 전역을 통치했으며, 약 200년 동안 지속되었다.
기원전 1595년, 아나톨리아 반도 (소아시아)의 히타이트 (히타이트 구왕국)가 동방으로 원정하여 고바빌로니아는 멸망했다. 히타이트인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한 민족이다. 원정 직후 히타이트 왕 무르실리 1세가 암살당하고 히타이트가 쇠퇴하면서 메소포타미아의 지배는 혼란에 빠졌다. 이후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바빌로니아 지역은 기원전 1475년경, 카시트 왕국 (바빌론 제3왕조)이 해안 제1왕조 (바빌론 제2왕조)를 멸망시키고 통일되었다.[14]
3. 3. 아시리아 제국의 성립
셈어파에 속하는 아시리아인은 메소포타미아의 지배자 자리에 올랐다. 아시리아는 미탄니 왕국의 동쪽에 위치해 있었으며, 미탄니 왕국의 지배를 받아왔다.
기원전 1340년경 아시리아는 미탄니를 격파하고 사실상 병합했으며, 기원전 1235년경 바빌로니아의 카시트 왕조를 타도하고 메소포타미아의 지배권을 획득했다.[15]
그 후 반란이 일어나 아시리아 왕조는 바빌로니아에서 쫓겨났다. 바빌로니아에는 이신 제2왕조(바빌론 제4왕조)로 알려진 왕조가 탄생했다. 이 왕조의 왕 중에는 엘람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네부카드네자르 1세(기원전 1119년―기원전 1098년)에 관해 많은 문학 작품이 남아 있다.
기원전 10세기경, 아시리아는 세력을 회복했다. 아시리아 역대 왕들은 영토를 확장했고, 특히 기원전 744년에 즉위한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는 바빌로니아를 포함한 주변 제국을 정복하여 영토를 넓혀 '''아시리아 제국'''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3. 4. 신바빌로니아
기원전 800년대 이후, 바빌론 주변에서는 셈어족의 칼데아인이 세력을 키웠다. 기원전 626년, 칼데아의 왕 나보폴라사르는 아시리아 제국으로부터 바빌로니아 지방을 빼앗아 신바빌로니아(칼데아 왕국)를 건국했다. 또한 나보폴라사르는 현재 이란 북서부를 중심으로 하는 메디아 왕국과 동맹을 맺고, 기원전 612년에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를 함락시켜 아시리아 제국을 멸망시켰다. 이로 인해 오리엔트는 신바빌로니아, 메디아, 이집트, 아나톨리아 반도의 리디아의 '''4대 강국 시대'''가 되었다.
신바빌로니아의 왕 중에서는 네부카드네자르 2세(기원전 604년–기원전 562년)가 유명하다. 기원전 586년,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유다 왕국을 정복하고, 15,000명에 달하는 포로를 바빌로니아로 끌고 갔다 (바빌론 유수). 또한 전설에 따르면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바빌론의 공중 정원을 건설했다.
4. 페르시아의 지배
기원전 6세기부터 7세기에 걸쳐, 이라크 지역은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 셀레우코스 왕조, 파르티아, 사산 왕조 페르시아 제국 등 다양한 강대국의 지배를 받았다.
이 시기 이라크 지역은 강대국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수도는 초기에 현재 이라크의 셀레우키아에 있었고, 파르티아와 사산 왕조의 수도는 현재 이라크의 크테시폰에 위치했다. 이라크는 이들 왕조의 유지와 발전에 있어 핵심적인 지역이었다.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 이라크는 크바르바라 주로 불렸으며, 사산 왕조 시대에는 미샨, 아수리스탄(아시리아), 아디아베네, 하(下) 메디아 지방으로 구분되었다. 602년까지 페르시아 제국의 사막 국경은 알-히라의 아랍 라흐미드 왕들에 의해 지켜졌으나, 호스로 2세는 라흐미드 왕국을 폐지하고 국경을 유목민의 침입에 개방했다.
4. 1.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
기원전 550년, 신 바빌로니아의 북동쪽에 인접한 메디아 왕국이 키루스 2세의 반란으로 멸망했다. 기원전 539년, 키루스 2세가 리디아 왕국을 정복하고, 이어서 신 바빌로니아도 정복하면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고대 이란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112] 이후 아케메네스 왕조는 이집트까지 병합하여 오리엔트 통일을 이루었다.키루스 2세의 정복 이후, 현재의 이라크 지역은 크바르바라(:en:khvarvaran) 주로 불렸다. '이라크(''Iraq'')'라는 아랍어 명칭은 이라크 남부의 고대 도시 우루크에서 유래했으며, 페르시아어 ''Ērāk''는 이를 거쳐 온 것이지만, 이 시기에는 아직 사용되지 않았다.
4. 2. 마케도니아 왕국

기원전 331년, 아케메네스 제국은 알렉산드로스 3세(대왕)의 원정에 의해 멸망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현재 그리스의 일부)의 국왕으로, 단기간에 걸쳐 인도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정복했으며, 기원전 323년에 스스로 제국의 수도로 정했던 이라크 바그다드 남쪽 90km에 위치한 바빌론에서 사망했다.
4. 3. 셀레우코스 왕조 시리아
알렉산드로스 3세 사후 계승자 전쟁(디아도코이 전쟁) 결과, 셀레우코스 1세는 바빌로니아를 기반으로 이란과 시리아의 지배권을 획득하여 그리스계 셀레우코스 제국 시리아 (시리아 왕국)를 건국하였다.[24][25] 이후 2세기 동안 현재의 이라크 지역은 셀레우코스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셀레우코스 제국의 수도는 처음에는 바빌론 북쪽의 신도시 셀레우키아에 두었다. 이후 수도는 북시리아로 옮겨졌지만, 셀레우키아는 수도 안티오케이아와 함께 주요 도시로 번영하였다.4. 4. 아르사케스 왕조 파르티아
기원전 3세기 중반, 셀레우코스 제국의 지배력이 약해지자, 이란 북동부 지역의 '''파르티아'''라고 불리는 이란계 유목민이 독립했다. 파르티아는 기원전 141년까지 바빌로니아의 주요 도시 셀레우키아를 정복했고, 미트리다테스 2세(재위: 기원전 123년경 - 기원전 87년경) 시대에는 메소포타미아(현 이라크)에서 인더스강까지 지배하는 대국이 되었다. 파르티아의 수도는 이라크 바그다드 남동쪽에 있는 크테시폰에 위치했다.4. 5. 사산 왕조 페르시아 제국
226년 아르다시르 1세가 파르티아를 멸망시키고 '''사산 왕조'''를 건국하여, 230년에는 현재 이라크 지역을 지배하에 두었다. 수도는 크테시폰에 두었다. 이 왕조는 7세기 아랍계 이슬람교도(무슬림)에게 점령될 때까지 존속했다.[27]현재 이라크 지역은 쿠발바라라고 불렸으며, 미샨(''Mishān''), 아수리스탄(''Asuristān''), 아디아베네(''Ādiābene''), 하(下) 메디아로 구분되었다. 사산 왕조의 남부와 서부의 아라비아 사막에는 아랍 부족이 살고 있었으며, 사산 왕조의 지배를 받으면서 히라 왕국이 다스렸다. 사산 왕조 북부(이라크 북부)는 동로마 제국과 접해 있었다.[27]
사산 왕조와 동로마 제국은 충돌을 반복했고, 이라크 북부는 동로마 제국에 지배되기도 했다. 602년, 호스로 2세는 동로마 제국에 마지막 대규모 원정을 감행했다. (동로마-사산 전쟁 (602년-628년)). 전반에는 동로마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 근처까지 진격했으나, 후반에는 전황이 역전되어, 627년부터 628년에는 헤라클리우스 황제가 이끄는 동로마군이 사산 왕조의 수도 크테시폰을 점령했다. 이때 동로마군은 즉시 철수했지만, 사산 왕조의 국력은 크게 소모되었다.[27]
사산 왕조 시대 이라크 지역에는 페르시아인, 아람어 계열 주민, 소작농, 목축을 하는 아랍인, 비잔틴에서 데려온 그리스인 노예 등 많은 민족이 살았다. 자그로스 산맥 기슭에는 쿠르드족이 살았다.[27]
사산 왕조의 국교는 조로아스터교였지만, 신도는 주로 페르시아인에 한정되었다. 나머지 주민 대부분은 기독교도였다. 기독교도는 비칼케돈파 정교회와 네스토리우스파로 나뉘었으며, 가장 널리 퍼진 것은 네스토리우스파였다. 마니교, 마즈다크교 신자도 있었으며, 고도 바빌론 주변에는 유대교도가 살았다. 또한 국토 남부에는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간주되는 고(古) 바빌로니아의 만다교 등 영지주의 제파의 신도들이 있었다.[27]
5. 이슬람 왕조 시대
7세기 이후 이라크 지역은 이슬람 세력의 확장으로 급속히 이슬람화되었다. 이라크는 아랍 이슬람 제국, 몽골의 일 칸국, 튀르크의 오스만 제국 등 다양한 이슬람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610년경 무함마드 이븐 압둘라가 창시한 이슬람교는 이라크 주변 지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 공동체는 정통 칼리파에게 계승되었고, 이슬람 제국으로 발전하여 급속히 확장되었다. 633년 히라 전투에서 이슬람 군은 사산 제국과 연합군을 격파했고,[26] 636년경 카디시아 전투에서 페르시아 주력 군대를 격파하고 크테시폰을 점령했다. 638년 이슬람 군은 현재의 이라크 지역 대부분을 정복했다.
656년 제4대 정통 칼리파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는 수도를 이라크 쿠파로 옮겼으나, 661년 암살되었다.[26] 이후 우마이야 왕조가 성립되어 수도를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옮겼다. 우마이야 왕조 하에서 이라크는 '이라크(`Irāq`)'라는 명칭으로 알려졌고, 아라비아 반도에서 많은 아랍인들이 이주해 왔다.
8세기 중반, 아바스 왕조가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수도로 삼아 이슬람 제국을 통치했다. (아바스 혁명) 이 시기 이슬람 제국은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 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와 인도까지 세력을 넓혀 최대 판도를 이룩했다. 9세기 이후 지방 세력들이 성장하면서 이슬람 국가는 분열되었고, 이라크 지역에서는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는 실권을 잃고 부와이흐 왕조, 하마단 왕조, 셀주크 왕조 등 여러 이슬람 왕조들이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했다.
13세기에는 몽골 제국의 훌라구가 이라크를 침략하여 1258년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아바스 왕조를 멸망시켰다. 훌라구는 일 칸국을 세웠고, 초기에는 친 기독교적이었으나, 이후 이슬람 왕조로 변화했다.
14세기 말부터 15세기 초에는 카라 코윤루(흑양조)가 이라크 지역을 통치했고, 1466년 아크 코윤루(백양조)가 카라 코윤루를 물리치고 지배권을 장악했다. 이후 백양조는 사파비 왕조에게 패배했다.
16세기에 이라크 영토 대부분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오스만 제국 시기 이라크는 경쟁 지역 제국들과 부족 동맹들 사이의 전투 지역이었다. 이후 이라크는 사파비 왕조의 지배를 받기도 했지만, 다시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 제1차 세계 대전까지 이어졌다.
5. 1. 아랍의 정복과 이슬람 제국
610년경 예언자 무함마드 이븐 압둘라가 이슬람교를 창시하면서 이라크 주변 지역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26] 무함마드의 이슬람 공동체는 정통 칼리파에게 계승되어 아랍인을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 제국이 탄생하고, 급속도로 확대되었다.633년 히라 전투Battle of Hira영어에서 정통 칼리파의 이슬람 군이 사산 제국과 Lakhmids영어 연합군을 격파했다.[26] 636년경 카디시아 전투에서 이슬람 군은 페르시아 주력 군대를 격파하고 크테시폰을 점령했다. 638년 이슬람 군은 쿠바라 지방(현재 이라크)을 거의 정복했다. 642년 네하벤드 전투에서 사산 군은 패배하고, 651년 황제 야즈데게르드 3세가 암살되면서 사산 제국은 멸망했다.[26]
656년 제4대 정통 칼리파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는 수도를 이라크 쿠파로 옮겼으나, 내부 대립으로 661년 암살되었다.[26]
5. 1. 1. 우마이야 왕조
알리가 암살된 후, '''우마이야 왕조'''가 성립되었다. 우마이야 왕조는 수도를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옮기고 세습 왕조를 구축했다. 이슬람 제국 지배 하의 이라크 지역은 '''이라크'''(`Irāq`)라는 명칭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아라비아 반도에서 많은 아랍인들이 이주해 왔다. 또한 발칸 반도에서 연구 목적이나 노동 목적으로 그리스인들이 이주해 왔다.우마이야 왕조에서는 이슬람교도(무슬림)인 아랍인이 이민족을 지배했다. 각지로 이주한 아랍인들은 전사로서 봉급을 받았으며, 미스르라고 불리는 새로운 군영 도시를 건설하여 집단 생활을 했다. 이라크에서는 고대 바빌론 근처의 쿠파와 남부의 바스라에 미스르가 건설되었으며, 북이라크의 모술은 이슬람교도의 정치와 군사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비(非) 아랍인만이 인두세(지즈야)와 지조(하라지)의 납세 의무를 졌다.
5. 1. 2. 아바스 왕조
8세기 중반, 이슬람 제국의 '''아바스 왕조'''가 일어나 (이를 아바스 혁명이라고 부른다)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제국의 수도로 삼았다. 이 무렵, 이슬람 제국은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 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 인도까지 세력을 넓혀 이슬람 국가로서는 과거 최대의 판도를 실현했다.왕조 초창기에는 아바스 혁명에 참여한 페르시아인들도 정권에서 관료로서 활약했고, 지방에서도 아랍인의 절대 지배 체제가 해소되어 무슬림의 원칙적인 평등이 실현되었다. 이 때문에 비 아랍인은 개종하여 이슬람교도가 되면 세제상의 메리트를 얻게 되어, 오히려 아랍화·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
9세기에 들어서면서 지방이 자립하기 시작했고, 10세기에는 북아프리카의 파티마 왕조, 알안달루스의 후 우마이야 왕조가 각각 독자적인 칼리프를 자칭하며 이슬람 국가는 분열 시대로 들어섰다. 이후, 광대한 이슬람 지역을 통일하는 왕조는 오스만 제국의 발흥까지 실현되지 않았다. 이라크 지역에서는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는 꼭두각시가 되었고, 실질적인 정권은 부와이흐 왕조, 아랍계의 하마단 왕조, 튀르크 (터키) 계의 셀주크 왕조 등의 이슬람 왕조로 옮겨졌다.
5. 2. 몽골의 지배

칭기즈 칸 휘하의 몽골군은 1221년까지 호라즘을 정복했지만, 1227년 칭기즈 칸의 죽음과 그에 따른 권력 투쟁으로 인해 이라크는 잠시 숨통을 트였다.[28] 1251년부터 몽케 칸은 몽골 제국의 확장을 재개했고, 칼리프 알-무스타심이 몽골에 항복하는 것을 거부하자, 훌라구 칸은 1258년 바그다드를 포위하고 점령했다. 아바스 칼리파조가 멸망하면서 훌라구는 시리아로 가는 길을 열었고, 이 지역의 다른 무슬림 세력들을 공격했다.[29]
13세기에 몽골의 칭기스 칸이 몽골 제국을 일으켜 서시베리아, 중앙 아시아, 중국으로 판도를 넓혔다. 훌레구가 이끄는 몽골군은 이슬람 제국에 침략하여(훌레구의 서정), 1258년에 이라크를 침략하여 바그다드의 아바스 왕조를 정복했다(바그다드 전투). 이로 인해 이슬람 제국은 멸망했다. 당시 백만 도시라고 불렸던 바그다드였지만, 이때 몽골인에 의한 학살로 20만~50만 명의 이라크인이 살해되었다고 한다. 또한 바이트 알 히크마(지혜의 집)라고 불리며 고대 그리스 등의 귀중한 문헌을 소장했던 당시 세계 최고의 도서관은 불타, 소장되어 있던 많은 책들이 티그리스 강에 버려졌다고 한다. 이때의 상황을 당시의 역사가들은 "티그리스 강은 다른 색으로 두 번 물들었다. 한 번은 사람들의 피로 붉게, 두 번째는 흘러나온 잉크로 검게"라고 표현하고 있다.
훌레구는 이란 고원에 머물며, 1260년에 서아시아를 지배하는 자립 정권인 '''일 칸국'''을 건설했다. 일 칸국의 수도는 현재 이란의 타브리즈에 위치해 있으며, 이란 고원을 중심으로 아무다리야 강에서 이라크, 아나톨리아 동부에 이르기까지 지배했다. 몽골 연구자들은 훌레구 일족의 울루스(국가)라는 의미로 일 칸국을 '''훌레구 울루스'''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다.
초기 일 칸국은 동로마 제국과 우호 관계에 있었으며, 친 기독교적이었다. 아인 잘루트 전투에서 패배하여 시리아를 상실하고, 맘루크 왕조와 대립했으나, 1262년이 되자 훌레구와 킵차크 칸국의 베르케가 아제르바이잔의 지배권을 둘러싼 대립을 시작했다.
그러나 1295년 당시 활약하고 있던 이슬람 상인과 몽골 부족에도 늘어나고 있던 이슬람교도의 지원을 받아 가잔이 제7대 칸으로 즉위하고 왕조의 여러 제도를 이슬람화했기 때문에, 일 칸국은 이슬람 왕조로 바뀌어 갔다.
5. 3. 투르크의 지배와 오스만 제국
14세기 말과 15세기 초, 카라 코윤루(흑양조)는 현재 이라크 지역을 통치했다. 1466년, 아크 코윤루(백양조)가 카라 코윤루를 물리치고 지배권을 장악했다. 이후 백양조는 사파비 왕조에게 패배했다. 16세기에 현재의 이라크 영토 대부분은 바그다드의 파샬릭으로서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 기간(1533년~1918년) 동안, 현재의 이라크 영토는 경쟁 지역 제국들과 부족 동맹들 사이의 전투 지역이었다.투르크계 이슬람 왕조인 '''흑양조'''는 티무르에게 패하여 한때 세력을 잃었다. 하지만 1404년 티무르가 사망하자 세력을 회복하여 아제르바이잔의 타브리즈를 탈환하고, 자라이르 왕조의 잔당을 멸망시켜 바그다드를 점령하여 이라크를 지배했다.
1466년에는 '''백양조'''라고 불리는 투르크계 이슬람 왕조가 흑양조를 무너뜨리고 지배권을 갖게 되었다. 백양조는 동부 아나톨리아에서 이라크, 아제르바이잔, 이란 서부에 이르는 제국을 건설했다.

그 후, 이라크의 대부분은 1501년 이란에서 일어난 아제리인 계의 '''사파비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사파비 왕조는 이란-이라크 지역을 지배한 왕조로서는 처음으로 시아파의 한 분파인 12이맘파를 국교로 삼았기 때문에 주민의 다수가 시아파가 되었고, 많은 수니파 모스크가 파괴되었다.
한편, 13세기 말 아나톨리아 북서부에서 건국한 투르크계의 '''오스만 제국'''은 1453년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켰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되었고, 이윽고 이스탄불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서쪽으로는 모로코에서 동쪽으로는 아제르바이잔, 이라크에 이르렀고, 북쪽으로는 우크라이나에서 남쪽으로는 예멘에 이르는 지역을 지배했다. 16세기에는 오스만 제국이 사파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라크는 오스만 제국의 일부가 되었지만, 그 후에도 이 지역을 둘러싼 양측의 분쟁은 계속되었다. 사파비 왕조는 아바스 1세 시대 1623년에 바그다드를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탈취하여 1638년까지 약 15년 동안 지배했다.
사파비 왕조의 지배 이후, 이라크는 다시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 그 지배는 제1차 세계 대전까지 이어졌다. 18세기에는 토착화된 맘루크 출신 총독들이 주의 실권을 장악하고 (이라크의 맘루크 왕조), 이스탄불의 중앙 정부로부터 반쯤 자립적인 지배를 했지만,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중앙 집권화가 추진되었고, 탄지마트라고 불리는 개혁의 결과로, 현재의 이라크에 해당하는 지역은 모술, 바그다드, 바스라의 3개 주로 재편되었다. 또한 바그다드 주 총독을 맡았던 미드하트 파샤처럼 주의 총독도 중앙에서 관리가 파견되었다. 이러한 중앙 집권화의 시도는 도시 지역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지방의 실력자인 부족의 족장 등에게는 총독의 힘이 잘 미치지 못했고, 후에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벗어나 영국을 의지하고 쿠웨이트의 수장이 되는 사바 가문과 같은 존재도 남는 결과를 낳았다.
18세기 이후, 산업 혁명이 급속도로 파급되는 서구 열강에 비해 오스만 제국의 경제력은 열세가 되었지만, 19세기 이후 오스만 제국에 대한 서구 열강의 경제적 진출은 더욱 심해졌다. 그것은 이라크에서도 예외는 아니었고, 샤트 알 아랍 강의 항행권이나 바그다드 철도 계획 등, 서구 열강에 대한 다양한 이권의 제공이 이루어졌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민족 독립의 기운은, 발칸 반도의 여러 지역뿐만 아니라 이라크나 시리아 지방 등의 아랍 지역에도, 서서히지만 착실하게 파급되고 있었다.
6. 근대사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은 독일 및 중앙 열강과 동맹을 맺었다. 영국군은 메소포타미아 전역에서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쿠트 공방전 (1915–16)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영국은 1917년 바그다드를 점령하며 승리했다. 전쟁 중 영국은 오스만 제국에 맞서 아시리아, 아르메니아, 아랍 부족의 도움을 받았고, 오스만 제국은 쿠르드족을 동맹으로 활용했다. 오스만 제국의 패배 후, 국제 연맹 위임통치에 의해 영국령 메소포타미아 위임통치가 수립되었다. 1926년, 국제 연맹은 영국의 강압 하에 모술을 이라크에 할양했으며, 지역 주민들의 선호는 대체로 무시되어 장기적인 불안정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32]
영국은 "샤리프 해법" 정책에 따라 1921년 8월 23일 파이살 1세를 국왕으로 하는 군주제를 수립했다. 이와 동시에 국가의 공식 영어 이름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이라크'로 변경되었다.[33] 영국은 수니파 아랍 엘리트를 정부 요직에 임명했다.[34][35] 하심가 출신의 왕가는 인접한 트란스요르단 토후국의 통치자이기도 했다.[34]
영국은 1932년에 이라크 왕국에 독립을 부여했지만,[40] 군사 기지와 아시리아 레비 형태의 현지 민병대를 유지했다.
6. 1. 군주제 이라크
샤르칼리샤리는 광대한 제국을 보존하는데 실패했다. 중앙의 정치력이 미치지 않는 먼 지방이 먼저 독립해 나갔고, 동부 산맥의 주민으로 알려진 구티족이 이주해왔다. 수메르인들 역시 아카드의 지배에서 벗어날 길을 도모하였다. 샤르칼리샤리가 죽은 후 1년 뒤, 약한 왕들이 권력을 잡았는데(기원전 2198-2195년) 이 때 대부분의 지방이 떨어져나갔고 우루크와 같은 일부 수메르 도시들도 독립하였다. 왕위가 계승된 후에도 혼란으로 인해 누가 왕으로 즉위했는지 사람들이 알아보기 어려웠다는 기록이 있다. 마침내 구티인들이 산악지대에서 기어나와 국토의 중앙으로 이주해 아카드와 수메르 땅을 정복하고 도시들을 파괴하여 아카드 제국은 멸망하였다.[136]이룰루, 두두, 초도롤의 세 왕은 아카드 제국 최후의 왕들이다. 그들의 쇠퇴는 38년 동안 계속되었고, 그 기간 동안 구티족은 아카드 도시들을 침공했고, 아카드 사람들의 지배를 받은 모든 도시와 민족은 분리되었다. 구티족에 의해 아카드 제국은 멸망했다.[137][138][139][140]


오스만 제국의 이라크 지배는 제1차 세계 대전까지 이어졌는데, 당시 오스만 제국은 독일 및 중앙 열강과 편을 들었다. 영국군은 이라크를 침공했고, 쿠트 공방전 (1915–16)에서 터키군에게 패배했지만, 1917년 3월 바그다드를 점령하면서 메소포타미아 전역에서 승리했다. 국제 연맹 위임통치에 의해 영국령 메소포타미아 위임통치가 수립되었고, 1926년 모술을 이라크에 할양했다. 이 과정은 영국의 강압 하에 진행되었으며, 지역 주민들의 선호는 대체로 간과되어 장기적인 불안정의 토대를 마련했다.[32]
영국은 1921년 8월 23일, 파이살 1세를 국왕으로 하는 군주제를 수립했다. 이라크의 공식 영어 이름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이라크'로 변경되었다.[33] 영국 당국은 수니 아랍 엘리트를 정부 요직에 임명했다.[34][35] 왕가는 하심가였으며, 트란스요르단 토후국의 통치자이기도 했다.[34]
파이살 1세는 시온주의 운동과 아랍 민족주의가 부상하는 동안, 현대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현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모두 포함)으로 구성된 연방을 구상했다. 그는 또한 파이살-와이츠만 협정에 서명했다.
영국은 1920년 10월 아놀드 윌슨을 퍼시 코스로 교체했다.[37] 코스는 반란을 진압했고, 이라크의 수니 소수 민족과의 긴밀한 협력 정책을 시행했다.[38] 노예 제도는 1920년대에 이라크에서 폐지되었다.[39] 영국은 이라크 왕국에 1932년에 독립을 부여했는데,[40] 파이살 국왕의 권고에 따라, 영국은 군사 기지와 아시리아 레비 형태의 현지 민병대를 유지했다. 가지 국왕은 파이살 국왕의 사망 이후 통치했으며, 1939년 사망했다. 그의 미성년 아들 파이살 2세가 그 뒤를 이었고, 압드 알 일라가 섭정을 맡았다.
이라크에서 아랍 수니파의 지배가 확립된 후, 아시리아인, 야지디 및 시아파의 불안이 이어졌고, 이들은 모두 잔혹하게 진압되었다. 1936년, 첫 번째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여 바크르 시드키가 임시 총리를 자신의 측근으로 교체하는 데 성공했다. 정치적 불안정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쿠데타가 발생했고, 1941년에 정점에 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섭정 압드 알-일라의 이라크 정권은 1941년 골든 스퀘어 장교들에 의해 전복되었다. 이라크의 친나치 정부는 1941년 5월 연합군에 의해 영-이라크 전쟁에서 패배했다. 이라크는 시리아 위임 통치령에 대한 연합군의 공격 기지이자 영-소 이란 침공을 지원하는 기지로 사용되었다.[41]
1945년, 이라크는 국제 연합에 가입했고 아랍 연맹의 창립 멤버가 되었다. 동시에, 쿠르드 지도자 무스타파 바르자니는 바그다드의 중앙 정부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소련으로 도망쳤다.
1948년, 알-와스바 봉기로 알려진 대규모 폭력 시위가 바그다드 전역에서 발생했으며, 영국과의 정부 조약에 반대하는 요구 사항을 제기했다. 시위는 봄까지 계속되었고, 이라크가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에 참전하면서 5월에 계엄령이 시행되어 중단되었다.
1958년 2월,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과 압드 알-일라는 하심 왕가의 연합을 제안했다. 누리 알-사이드 총리는 쿠웨이트가 제안된 아랍-하심 연합의 일부가 되기를 원했다. 이 정책은 쿠웨이트에 독립을 부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영국과 직접적인 갈등을 일으켰다. 그 시점에서 군주제는 완전히 고립되었다. 누리 알-사이드는 더욱 강력한 정치적 탄압에 의존해야만 증가하는 불만을 억제할 수 있었다.
사이크스-피코 협정에 의해 이라크는 오스만 제국에서 분할되었다. 1920년11월 11일, 이라크는 '''영국 위임 통치령 이라크'''로 불리게 되었다. 1915년 후세인-맥마흔 협정에 의해 아랍의 독립을 인정했지만, 이 협정과 사이크스-피코 협정은 모순되었으며, 1921년3월 21일의 :en:Cairo Conference (1921)에서 중동의 혼란의 한 원인으로 확정되었다.
이라크는 하심 가문의 군주제가 되었다. 1921년8월 23일에 초대 국왕이 된 파이살 1세는 메카의 수니파 하심 가문의 일원이었다. 이라크 내에는 다양한 민족·종교의 집단이 있었으며, 특히 북부의 쿠르드족은 독립을 강하게 요구했지만, 영국의 정책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그 결과, 특히 1920년부터 1922년에 걸쳐 많은 내란이 일어났지만, 영국에 의해 진압되었다.
1927년, 키르쿠크 근교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됨으로써 이라크 경제는 개선되었다. 하심 왕가와 수니파 지도자는 중앙 집권화를 추진하여, 1932년, 영국의 간접 지배 하에 있지만, '''이라크 왕국'''으로 정식 독립했다. 당시, 쿠웨이트는 영국이 통치하고 있었지만, 하심 왕가는 "역사적으로 쿠웨이트는 이라크에 소속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1930년대에 들어 반영 운동이 고조되어 장교와 왕족에게까지 퍼졌다. 1941년, 4명의 군사 지도자가 라시드 알리 알-가일라니를 수상으로 내세워 완전한 자치를 요구하며 쿠데타를 일으켰지만(:en:Iraq coup (1941)), 영국은 영국령 인도군과 요르단의 아랍군 전력을 지휘하여 이라크를 침공하여 다시 하심 왕가의 정권을 확립했다.
1945년, 이라크는 국제 연합에 가입했고, 아랍 연맹의 설립 멤버가 되었다. 같은 해, Mustafa Barzani|무스타파 바르자니영어가 지도하는 쿠르드족이 자치를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켰지만 실패하여 바르자니 일당은 소비에트 연방으로 도망쳤다. 1948년, 이라크 등 아랍 5개국은 제1차 중동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은 1949년 5월까지 계속되었지만, 이때의 휴전 협정에 이라크는 서명하지 않았다. 전쟁으로 이라크 경제는 악화되었다.
1955년 1월, 이라크-터키 공동 선언을 이끌어냈고, 공동 선언의 원칙, 그 실시 세부 사항에 관한 정식 합의는 2월에 조인되었다.[88] 1956년, 소련에 대항할 목적으로 중동 조약 기구(METO)가 발족했다. 기구 본부는 바그다드에 설치되었고, 이라크, 터키, 이란, 파키스탄, 미국, 영국이 참가했다.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은 아랍에 영국의 세력이 남아 있는 것을 싫어하여 기구에 반대했고, 이라크 군주의 정당성에도 회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1957년 2월, 반정부 세력은 통일 국민 전선을 결성했고, 독립당, 애국 민주당, 이라크 공산당, 초기의 바트당[89]이 참가했다. 이 조직의 목표는 정부에 비판적이며, 민주주의, 헌법상의 자유, 전시법 폐지, 바그다드 조약 탈퇴, "적극적인 중립주의"의 추구였다.
6. 2. 공화국 이라크
1958년 2월, 이집트와 시리아가 합병하여 아랍 연합 공화국이 수립된 것에 대항하여, 이라크와 요르단은 하심 가문 군주 국가끼리의 연방인 아랍 연방을 결성했다. 이라크는 이 연방에 쿠웨이트의 참여를 원했지만, 쿠웨이트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영국과 대립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이라크 군주는 후원자를 잃었다.같은 해 7월 14일, 가말 압델 나세르의 영향을 받은 압드 알 카림 카심 준장과 압둘 살람 아리프 대령이 쿠데타(7월 14일 혁명)를 일으켜 하심 왕조를 무너뜨렸다. 이 쿠데타로 파이살 2세 국왕, 압드 알일라 왕자, 누리 알사이드 총리 등 왕족들이 처형되었다.[43] 매장 후, 그들의 시신은 반대자들에 의해 바그다드 거리를 끌려다니며 훼손되었다.[44][43]
새 정부는 이라크를 공화국으로 선포하고 바그다드 조약에서의 활동을 중단했다. 새 헌법은 이라크가 공화국임을 선언하고, 국가 지도자로 3명의 주권 평의회를 설립했다. 카심은 총리, 국방 장관, 최고 사령관을 겸임하고, 자유 장교단과 민족주의 세력을 등용했다.
카심 총리는 이라크인의 문화적 통일성을 강조하는 이라크 민족주의를 장려했다. 여기에는 메소포타미아 아랍인, 쿠르드족, 투르크멘족, 아시리아인 등 다양한 민족 종교 집단이 포함되었다.[45] 그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수메르, 아카드, 바빌로니아, 아시리아)을 이라크 정체성의 기반으로 인식했다.[45]
그러나 카심은 가말 압델 나세르의 아랍 연합 공화국 가입을 거부하고 이라크 민족주의를 우선시하면서, 친이집트파와 대립했다.[90] 카심과 아리프(나세르의 추종자) 사이에는 이라크가 국민 국가인지, 아니면 넓은 의미에서 아랍의 한 행정 구역인지에 대한 이견이 있었다.[90] 카심은 친이집트파의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 소련에 망명 중이던 쿠르드족 지도자 물라 무스타파 바르자니의 귀국을 허용하고, 아리프를 해임하고 투옥했다.
1959년, 이라크는 바그다드 조약에서 탈퇴하여 소련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서방 세계와의 관계가 악화되었다.[48][51]
1961년, 영국은 쿠웨이트를 독립시켰다. 카심은 쿠웨이트가 오스만 제국 시절 바스라 주의 일부였다는 이유로 쿠웨이트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했지만,[51] 영국은 이에 반발하여 쿠웨이트에 군대를 파견했고, 카심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51]
같은 해, 무스타파 바르자니의 쿠르디스탄 민주당이 쿠르드 자치를 요구하며 무장 반란(제1차 이라크-쿠르드 전쟁)을 일으켰다.[48]
1963년 2월, 카심 총리는 쿠데타(라마단 혁명)로 처형되었고, 바트당이 군사 정권을 세웠다(제1차 바트당 정권). 그러나 같은 해 10월, 이라크는 쿠웨이트의 자치를 승인했다.
바트당 정권은 9개월 만에 압둘 살람 아리프 대통령의 쿠데타(1963년 11월 이라크 쿠데타)로 축출되었다. 1966년 아리프 대통령은 항공기 사고로 사망하고, 그의 형 압둘라흐만 아리프가 대통령이 되었다.
6. 2. 1. 바트당 정권
1968년 7월 17일, 바트당이 무혈 쿠데타를 통해 다시 정권을 잡았다(제2차 바트당 정권). 아흐마드 하산 알 바크르 장군은 대통령이 됨과 동시에 이라크의 최고 의사 결정 기관인 혁명지휘평의회(RCC) 의장이 되었다.1968년 혁명 이후, 이라크 경제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혁명 이전에는 세출의 약 90%를 군사비에 사용했지만, 바트당 정권은 농업과 산업을 우선시했다. 석유 채굴은 이라크의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ritish Petroleum, 앵글로-페르시안 석유 회사의 후신)이 독점했지만, 프랑스의 석유 회사 ERAP(후에 elf, 현 토탈)도 채굴권을 얻었다. 이후, 이라크 석유 회사는 국영화되었다.
바르자니가 이끄는 쿠르드족의 내란은 1961년부터 계속되었다. 바트당의 사담 후세인이 대책을 책임지고, 1970년 쿠르드족과 이라크 정부는 정치적으로 화해했다.
1970년대에도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국경 분쟁은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게다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여러 섬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이라크에 위협이 되었다. 이란과 이라크의 국경 분쟁에 대해 1975년 5월 6일 알제 협정이 체결되었지만, 이 화해는 일시적이었다.[53][54]
1972년, 이라크 대표단이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같은 해, 미국과의 국교가 회복되었다. 이 시기는 요르단, 시리아와의 관계도 좋았다. 1973년 제4차 중동 전쟁에서 이라크군은 이스라엘군에 대항하여 참전했다.
6. 2. 2. 사담 정권

1979년 이란 혁명을 계기로 중앙 조약 기구(CENTO/구 중동 조약 기구)가 붕괴되면서 중동 전체가 완전히 새로운 군사 균형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같은 해, 바크르 대통령이 사임하고 사담 후세인이 대통령과 혁명 지도 평의회(RCC) 의장 자리를 물려받았다.[56] 이란-이라크 전쟁(1980년~1988년)은 이란과 이라크 간의 국경 분쟁으로 발발했으며, 이라크는 유럽, 미국, 소련, 중국 등 대부분의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았다.[55] 그러나 이라크는 이 전쟁 중 화학 무기를 사용하여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이라크는 전쟁을 통해 페르시아만 주변 군사 대국이 되었지만, 국가 재정은 악화되었다.
6. 3. 걸프 전쟁
이라크와 쿠웨이트 사이에는 국경을 둘러싼 대립이 계속되었다. 이라크는 쿠웨이트가 석유 채굴을 위해 국경을 침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아랍 국가들의 중재로 대화 노력이 계속되었지만, 1990년 8월 2일,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침공했고, 8월 8일에는 쿠웨이트를 이라크의 제19번째 주로 병합한다고 선언했다.이라크의 침공 이후, 국제 연합과 아랍 연맹은 즉시 이라크를 비난하고, 대부분의 무역을 중단하는 경제 봉쇄를 실시했다. 1990년 11월, 국제 연합은 1991년 1월 15일을 철수 기한으로 하여 "대 이라크 무력 행사 용인 결의"를 결의했다.
1991년 1월 17일, 28개국의 연합군이 바그다드로 진군을 시작했다 (작전명 "사막의 폭풍"). 6주간의 전투로 이라크는 패배했다. 1만 4천 톤의 공습이 이루어졌으며, 10만 명 이상의 이라크 군인과 수만 명의 이라크 시민이 사망했다고 전해진다.[59][60] 1991년 2월 28일, 미국은 휴전을 선언했고, 같은 해 4월에 이라크와 국제 연합은 정식으로 휴전 합의를 맺었다.
6. 4. 이라크 전쟁과 구 이라크 공화국 멸망, 신 이라크 공화국 독립
유엔 안보리 결의 687에 따라 이라크는 대량 살상 무기 포기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이라크는 유엔 사찰에 비협조적이었고,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았다.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은 대테러 전쟁을 선언하고 탈레반 제거를 위해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감행했다. 2003년 3월 19일,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가 유엔 결의를 위반하고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라크 전쟁을 선포했다.
미영 연합군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바그다드 등 주요 도시를 단기간에 점령하고, 2003년 5월 1일 "전쟁 종결 선언"을 발표했다. 이로써 사담 후세인의 구 이라크 공화국은 멸망하고, 이라크는 미국 국방부 인도적 복구 지원실 및 연합 임시 행정 당국(CPA)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2004년 6월, 이라크 과도 정부가 발족하여 미국 통치가 끝나고 신 이라크 공화국으로 재독립했다. 2005년 1월 선거로 이라크 과도 정부가 발족하고, 같은 해 말 헌법을 제정했다. 2006년 5월, 헌법에 따른 선거로 정식 정부가 발족했으나, 현재까지도 이라크 국내는 전투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7. 미국의 침공과 여파 (2003년~현재)
2003년 미국과 영국은 여러 국가들의 지원을 받아 이라크를 침공했다. 침공 이후 이라크는 다국적군에 의해 점령되었고, 이라크 반군과 점령군 사이의 폭력 사태가 심화되었다.[69] 2003년 12월에는 사담 후세인이 체포되었다.[70]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이끄는 알 카에다를 비롯한 여러 테러 단체들이 이라크에서 활동하며 테러의 위협이 커졌다. 2006년 알 자르카위가 사망했지만,[71] 수니파 지하디스트 세력은 시아파 민간인을 공격하며 내전을 일으켰다. 특히 2006년 2월 23일 알 아스카리 사원 공격은 시아파와 수니파 간의 갈등을 격화시켰다. 이후 수니파 반군과 시아파 민병대 간의 보복 공격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2007년과 2008년 미국의 증원 병력 투입 후 폭력 사태는 감소했지만, 2011년 미군 철수 이후 전쟁이 재개되었다.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L)는 2013-14년에 이라크를 침공하여 알 안바르 주의 대부분을 점령했고,[76][77] 2014년에는 모술을 포함한 니네베 주 대부분을 점령했다.[78] 2017년 12월 이라크 정부는 IS 격퇴를 선언했다.[79]
2017년 쿠르드 자치 지역 독립 투표로 인해 이라크 연방 정부와 쿠르드 자치 지역 간의 긴장이 고조되어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81] 2018년 이후 경제 상황 악화와 국가 부패에 대한 시위가 계속되었다.[82] 2021년 총선 이후 정부 구성에 난항을 겪으며 정치적 위기가 발생했다.[84][85] 2022년 10월 압둘 라티프 라시드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86] 모하메드 시아 알-수다니가 총리로 취임했다.[87]
7. 1. 2003년 미국 침공
2001년 미국 뉴욕과 워싱턴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이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억만장자 오사마 빈 라덴이 결성한 단체와 연관되면서, 미국의 외교 정책은 이라크의 바트 정권 제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워싱턴의 신보수주의 싱크탱크들은 수년 동안 바그다드의 정권 교체를 촉구해 왔다. 1998년 8월 14일, 빌 클린턴 대통령은 "이라크 정부가 국제 의무를 중대하고 용납할 수 없게 위반하고 있다"고 선언한 공법 105-235에 서명했다. 몇 달 후, 의회는 1998년 10월 31일에 1998년 이라크 해방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사담 후세인이 이끄는 정권을 이라크에서 축출하고 그 정권을 대체할 민주 정부의 출현을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 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미국은 국제 연합에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촉구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이 16개의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안을 반복적으로 위반했다고 말했다. 이라크 정부는 부시의 주장을 거부했다. 스웨덴 외교관 한스 블릭스가 이끄는 유엔 조사팀이 이라크에 투입되었고, 그들의 최종 보고서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생산 능력이 1992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담 후세인이 여전히 대량 살상 무기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은닉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더 조사를 할 시간을 달라는 조사팀의 요청에 반대했다. 결의안 1441은 2002년 11월 8일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으며, 이라크에 여러 이전 유엔 결의안에서 제시된 "군축 의무를 준수할 마지막 기회"를 제공하고, 의무가 이행되지 않을 경우 "심각한 결과"를 위협했다.
2003년 3월, 미국과 영국은 다른 국가들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이라크를 침공했다.
7. 2. 점령 (2003~11)
2003년 미국과 영국의 침공 이후 이라크는 다국적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2003년 5월 23일,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이라크에 대한 모든 경제 제재를 해제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69] 세 번의 전쟁과 10년간의 제재 이후 국가 재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라크 반군과 점령군 사이의 폭력 사태가 심화되었다. 2003년 12월 13일 살라딘 주의 앗다우르에서 4월에 행방불명되었던 사담 후세인이 체포되었다.[70]제이 가너는 임시 민정 행정관으로 임명되었고, 팀 크로스를 포함한 3명의 부행정관이 임명되었다. 2003년 5월 가너는 폴 브레머로 교체되었고, 2004년 4월 19일 브레머는 존 네그로폰테로 교체되었다. 네그로폰테는 마지막 미국 임시 행정관이었으며 2005년 이라크를 떠났다. 2005년 1월 총선이 치러졌고, 이후 헌법 초안 작성 및 비준, 2005년 12월 총선이 연이어 치러졌다.
2003년 침공 직후, 알 카에다는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이전에 이끌었던 여러 테러 단체의 형태로 이라크에 존재하면서 이라크 국민들에게 테러리즘은 위협으로 부상했다. 알 자르카위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사 훈련 캠프를 운영했던 요르단 출신 무장 이슬람주의자였다. 그는 이라크로 간 후 이라크 전쟁 동안 일련의 폭탄 테러, 참수, 공격의 배후로 알려지게 되었다. 2006년 6월 7일 알 자르카위는 사망했다. 많은 외국인 용병과 이전 바트당 관리들도 반군에 가담했는데, 이들은 주로 미군과 함께 일하는 이라크인들을 공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가장 위험한 반군 지역은 바그다드 바로 북쪽에 있는 수니파 무슬림이 다수인 수니 삼각지대였다.
2006년 말까지 보고된 폭력 행위는 불안정한 반군 세력에 의해 꾸준히 증가했다.[71] 이라크 알 카에다를 포함한 수니파 지하디스트 세력은 특히 2006년 2월 23일 시아파 이슬람교의 가장 신성한 장소 중 하나인 사마라의 알 아스카리 사원에 대한 공격을 통해 시아파 민간인을 계속 공격하여 이라크 내 수니파와 시아파 무장 세력 간의 내전을 촉발했다. 이 공격에 대한 분석에 따르면 무자헤딘 슈라 위원회와 이라크 알 카에다가 책임이 있으며, 그 동기는 시아파 인구를 격분시켜 추가 폭력을 유발하는 것이었다. 2006년 10월 중순, 무자헤딘 슈라 위원회가 해산되고 "이라크 이슬람 국가"로 대체되었다는 성명이 발표되었다. 이는 반군에 대한 수니파 지지자들을 확보하려는 미국과 이라크 당국의 노력을 저지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일부는 이라크 정부 내 세력과 연관된 시아파 민병대는 수니파 소수 민족에 대한 보복 행위로 대응했다. 이러한 폭력의 악순환이 발생하여 수니파 반군의 공격에 이어 시아파 민병대의 보복이 이어졌고, 종종 수니파를 찾아 살해하는 시아파 죽음의 부대가 등장했다. 2007년과 2008년 미국의 증원 병력이 투입된 후, 이라크 내 폭력 사태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2011년 주요 군사 주둔을 종료했지만, 그 결과 전쟁으로의 재확대가 일어났다.
7. 3. 반군과 전쟁 (2011~2017)
미군 철수 이후 이라크 반군의 활동이 재개되었고, 시리아 내전이 이라크로 확산되었다. 2013년까지 반군은 심화되어 새로운 전쟁 상태로 돌입했으며, 중앙 이라크 정부는 다양한 세력, 주로 급진적인 수니파 세력에 맞섰다.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L)는 2013–14년에 이라크를 침공하여 알 안바르 주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여기에는 팔루자, 알 카임, 아부 그라이브, 2015년 5월에는 라마디가 포함되어 안바르의 90%를 장악했다.[76][77] 티크리트, 모술, 살라딘, 키르쿠크, 디얄라 주의 일부를 포함한 니네베 주 대부분은 2014년 6월 북부 이라크 공세에서 반군에 의해 점령되었다.[78] ISIL은 또한 신자르와 여러 마을을 2014년 8월 북부 이라크 공세에서 점령했지만, 2014년 12월 쿠르드 페쉬메르가와 YPG 부대가 시작한 신자르 공세에 의해 저지되었다. 이 전쟁은 2017년 12월 정부의 승리로 끝났다.[79]
2016년 4월 30일, 수천 명의 시위대가 바그다드의 그린 존에 들어가 이라크 의회 건물을 점거했다. 이는 이라크 의회가 새로운 정부 장관을 승인하지 않은 후에 발생했다. 시위대에는 시아파 성직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의 지지자들이 포함되었다. 이라크 보안군이 있었지만, 시위대가 의회 건물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80]
7. 4. 지속적인 ISIL 반군과 시위 (2017년~현재)
2017년 9월 25일 쿠르드 자치 지역 독립 투표로 인해 이라크 연방 정부와 쿠르드 자치 지역 간의 긴장이 고조되어 2017년 10월 무력 충돌로 확대되었다. 분쟁의 결과로 쿠르드 자치 지역은 분쟁 이전 관리하던 토지의 1/5을 잃었고 투표 결과를 취소해야 했다.[81]2018년 7월 바그다드와 이라크의 다른 주요 도시, 주로 중부 및 남부 지방에서 경제 상황 악화와 국가 부패에 대한 시위가 시작되었다. 2019년 10월에 발생한 전국 시위로 경찰을 포함하여 최소 93명이 사망했다.[82]
2021년 11월, 이라크 총리 무스타파 알-카디미는 암살 미수 사건에서 살아남았다.[83]
사드르 운동의 지도자 무크타다 알-사드르는 2021년 총선에서 가장 큰 승리를 거두었다.[84] 정부의 교착 상태는 2022년 이라크 정치 위기로 이어졌다.[85]
2022년 10월, 압둘 라티프 라시드가 재선을 노리던 바르함 살리를 상대로 의회 선거에서 승리하여 새로운 이라크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대통령직은 주로 상징적인 역할이며 전통적으로 쿠르드인이 맡는다.[86] 2022년 10월 27일, 전 총리 누리 알-말리키의 측근인 모하메드 시아 알-수다니가 무스타파 알-카디미의 후임으로 새로운 이라크 총리로 취임했다.[87]
7. 5. 역사 기록학
함무라비의 뒤를 이은 왕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삼수일루나에서 삼수디타나까지 왕들의 행적은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삼수일루나가 라르사의 림신 2세를 물리치는 데 성공했지만, 바빌론이 정복했던 땅의 주요 부분은 잃었다는 것뿐이다.[152] 함무라비 이후의 군주들은 남겨진 바빌로니아 영토의 중심부에 대해서만 통치력을 행사했다. 삼수일루나의 뒤를 이은 왕들도 비슷한 혼란을 겪었다.[152]바빌로니아 제1왕조는 제국이 영토와 국고를 잃는 등 쇠퇴를 거듭하다 결국 멸망했다. 히타이트가 아나톨리아 밖으로 확장을 시도하며 공격한 것이 결정타였다. 카시트 시대는 기원전 1570년부터 1154년까지로, 제1바빌로니아 왕조의 뒤를 잇는다. 카시트족은 바빌론이 멸망할 때까지 이미 150년 동안 이 지역의 일부였으며, 때로는 바빌론의 이익을 위해, 때로는 그에 반하여 행동했다.[15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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