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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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승은 고려와 조선 시대에 재상에 해당하는 관직이다. 고려 시대에는 최승로, 박양유 등이 정승을 역임했으며, 조선 시대에는 태조 때 남을번, 배극렴, 조준 등이 정승으로 임명되어 건국 초기의 기틀을 다졌다. 이후 여러 왕조와 시대를 거치며 다양한 인물들이 정승을 역임했으며, 각 시대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된 인물들이 정승으로 임명되었다.
태조는 1392년부터 1398년까지 재위하면서, 남을번, 배극렴, 조준, 김사형, 정도전 등을 정승에 임명하였다. 이들은 조선 건국과 초기 기틀 마련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인물들이다.
2. 고려의 역대 정승
2. 1. 고려 성종
성종 대에는 최승로, 박양유 등이 정승을 역임하였다.
3. 조선의 역대 정승
정종 대에는 이서, 조준, 김사형, 심덕부, 성석린, 민제, 하륜, 이거이 등이 정승을 역임하였다.
태종 대에는 심덕부, 민제, 이서, 이거이, 하륜, 김사형 등이 정승의 자리에 올랐다. 초기에는 조준, 성석린과 같은 개국공신들이 주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조영무, 남재, 이직 등이 추가되었다. 유양, 유정현, 박은, 한상경, 이원, 이귀령 등도 태종 대에 정승을 역임하였다.
세종은 성석린, 남재, 한상경, 심온, 박은, 이원, 유정현, 정탁, 류관, 이직, 조연, 황희, 맹사성, 권진, 최윤덕, 노한, 허조, 신개, 하연, 황보인, 남지 등을 정승으로 임명하였다.
황희, 하연, 황보인, 남지, 김종서가 문종 대의 정승이었다.
문종이 승하한 후 어린 나이로 즉위한 단종 대에는 하연, 황보인, 남지, 김종서 등이 정승을 역임하였다. 계유정난 이후에는 이유, 정인지, 한확 등이 정승의 자리에 올랐다.
세조 대 정승은 정인지, 한확, 이사철, 정창손, 강맹경, 신숙주, 권람, 이인손, 한명회, 구치관, 황수신, 박원형, 심회, 최항, 홍윤성, 조석문, 홍달손, 강순, 이준, 김질 등이다.
정인지, 정창손, 신숙주, 구치관, 심회, 최항, 조석문, 홍달손, 이준, 박원형, 김질 등이 예종 대에 정승을 역임하였다. 윤사분, 한명회, 홍윤성, 윤자운, 김국광 등도 예종 대의 정승이었다.
예종 대에 정인지, 정창손, 신숙주, 구치관, 심회, 최항, 조석문, 홍달손, 이준, 박원형, 김질, 윤사분, 한명회, 홍윤성, 윤자운, 김국광 등이 정승을 역임하였다.
성종 대에는 정인지, 구치관, 홍달손, 이준, 윤사분, 홍윤성, 윤자운, 김국광, 한백륜, 신숙주, 최항, 성봉조, 한명회, 김질, 윤사흔, 정창손, 조석문, 심회, 윤필상, 홍응, 이극배, 노사신, 허종, 윤호, 신승선이 정승을 역임하였다. 이들 중 정인지, 구치관, 홍달손, 이준, 윤사분, 홍윤성은 예종대에 이어 성종대에도 정승직을 유지했다.
성종 대 윤필상, 윤호, 이극배 등이 정승을 역임하였다. 노사신, 신승선, 정괄, 어세겸, 정문형, 한치형, 성준, 이극균, 유순, 허침, 박숭질, 강귀손, 신수근, 김수동 등이 정승의 자리에 올랐다.
박원종, 유순정, 성희안 등이 중종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옹립하였다. 중종 즉위 초반에는 박원종, 유순, 김수동 등이 정승을 역임하였다. 중종 대에는 정광필, 김응기, 신용개, 안당, 김전, 남곤, 이유청, 권균, 이항, 심정, 이행, 장순손, 한효원, 김근사, 김안로, 윤은보, 유보, 홍언필, 김극성, 윤인경 등이 정승에 임명되었다.
홍언필은 1527년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다. 윤인경과 이기는 1533년에 좌의정과 우의정에 각각 임명되었다. 유관과 성세창이 정승으로 임명되었다.
명종 대에는 윤인경, 유관, 성세창, 이기, 정순붕, 홍언필, 황헌, 심연원, 상진, 윤원형, 윤개, 안현, 이준경, 심통원, 이명, 권철 등이 정승을 역임하였다.
심통원, 이준경, 이명 등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정승에 임명되었다. 민기, 홍섬, 박순 등도 정승을 역임했다. 노수신, 강사상, 정지연이 정승에 임명되었고, 김귀영, 정유길, 유전 등도 정승을 지냈다.
이산해, 정언신, 정철이 정승에 올랐으며, 심수경, 유성룡, 이양원 등도 정승을 역임했다. 최흥원, 윤두수, 유홍이 정승에 임명되었고, 김응남, 정탁, 이원익 등도 정승을 지냈다.
이덕형, 이항복, 이헌국이 정승에 올랐으며, 김명원, 윤승훈, 유영경 등도 정승을 역임했다. 기자헌, 심희수, 허욱, 한응인 등이 정승에 임명되었다.
기자헌, 심희수, 이항복, 이덕형 등은 임진왜란 시기 선조를 보필한 공로로 정승에 임명되었다. 정인홍은 1623년 인조반정으로 실각할 때까지 정승 자리에 있었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광해군 시기에 임명되었던 정승들은 대부분 실각하거나 처형되었다.
광해군 대에 기자헌, 박홍구, 조정, 이원익, 정창연이 정승을 역임하였다. 윤방은 1614년에 좌의정에 제수되었고, 1616년에 영의정에 제수되었다. 신흠은 1615년 좌의정에 제수되었고, 1623년 영의정에 제수되었다. 오윤겸은 1615년 우의정에 제수되었고, 1623년 좌의정을 거쳐 1624년 영의정에 제수되었다. 김류는 1623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이정구는 1620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김상용은 1621년 우의정에 제수되었고, 1627년 좌의정을 거쳐 1632년 영의정에 제수되었다. 홍서봉은 1624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이홍주는 1625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이성구는 1627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최명길은 1629년 우의정에 제수되었고, 1632년 좌의정을 거쳐 1637년 영의정에 제수되었다. 장유는 1631년 우의정에 제수되었고, 1633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신경진은 1634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심열은 1635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강석기는 1636년 우의정에 제수되었고, 1638년 좌의정을 거쳐 1642년 영의정에 제수되었다. 심기원은 1644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김자점은 1642년 우의정에 제수되었고, 1644년 좌의정을 거쳐 1646년 영의정에 제수되었다. 이경여는 1644년 우의정에 제수되었고, 1645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이경석은 1645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김상헌은 1645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남이웅은 1645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이행원은 1645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정태화는 1646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인조 대에 김자점이 파직과 복직을 반복, 이경석이 영의정에 임명되었고, 정태화가 좌의정에 임명되었다. 김상헌은 청나라에 대한 강경한 주장을 펼쳤으나, 김자점의 복귀와 함께 삭탈관직되었다. 이후 조익, 김육, 이경여, 이시백, 한흥일, 구인후, 심지원, 원두표, 이후원 등이 정승을 역임하였다.
정태화는 효종 대에 이어 현종 대에도 정승을 역임하였다. 심지원, 원두표 또한 효종 대에 이어 현종 대에도 정승의 자리에 있었다. 정유성, 홍명하, 허적, 정치화가 현종 대에 정승에 올랐다. 송시열은 서인의 영수로, 홍중보는 남인의 주요 인물로 현종 대에 정승을 지냈다. 김수항, 이경억, 김수흥, 정지화, 이완 등이 현종 대에 정승을 역임했다.
송시열은 1680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하고 서인이 재집권하면서 영중추부사가 되었으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다시 권력을 잡으면서 사사되었다. 허적은 1674년 현종이 죽고 숙종이 즉위하면서 영의정에 제수되었으나, 1680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축출되면서 관직을 삭탈당하고 유배되었다.
김수항은 1672년 우의정에 제수되었고, 1674년 현종 말에 좌의정을 거쳐 1675년 영의정에 올랐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하고 서인이 재집권하면서 영중추부사로 물러났으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다시 권력을 잡으면서 관직을 삭탈당하고 유배지에서 사사되었다. 정지화는 1675년 우의정에 제수되었고, 1677년 좌의정을 거쳐 1680년 영의정에 올랐다. 정치화는 1678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권대운은 1680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허목은 1674년 예송논쟁에서 남인의 주장을 옹호하여 1675년 우의정에 제수되었고, 1679년 좌의정을 거쳐 1682년 영의정에 올랐다. 민희는 1680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오시수는 1680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민정중은 1679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이상진은 1680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김석주는 1680년 경신환국을 주도하여 남인을 몰아내고 서인 정권을 수립하는 데 공을 세워 보사공신 1등에 책록되고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남구만은 1679년 좌의정에 제수되었고, 1680년 우의정을 거쳐 1683년 영의정에 올랐다. 정재숭은 1683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이단하는 1683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조사석은 1685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이숙은 1684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김수흥은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고 서인이 실각하면서 영의정에 임명되었으나, 곧 관직을 삭탈당하고 유배되었다.
여성제는 1685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목내선은 1685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김덕원은 1687년 영의정에 제수되었다. 민암은 1688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박세채는 1690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윤지완은 1692년 영의정에 제수되었다.
유상운은 1691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신익상은 1693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윤지선은 1693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서문중은 1694년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하고 서인이 집권하면서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최석정은 1693년 좌의정에 제수되었고, 1699년 영의정에 올랐다. 이세백은 1694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민진장은 1696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신완은 1696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이여는 1697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김구는 1698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이유는 1699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서종태는 1700년 영의정에 제수되었다. 김창집은 1701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이이명은 1701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윤증은 1683년 이후 여러 차례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였고, 1702년 우의정에 제수되었으나 역시 사양하였다. 조상우는 1702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김우항은 1703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권상하는 1704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조태채는 1705년 영의정에 제수되었다. 이건명은 1708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경종 대에는 이유, 권상하, 이이명, 조태채, 김우항, 김창집, 이건명, 조태구, 최규서, 최석항, 이광좌 등이 정승을 역임하였다.
영조 대에는 최규서, 이광좌, 유봉휘, 조태억, 정호, 민진원, 이관명, 홍치중, 조도빈, 이의현, 심수현, 오명항, 이태좌, 이집, 조문명, 서명균, 김흥경, 김재로, 송인명, 유척기, 조현명, 정석오, 민응수, 김약로, 정우량, 이천보, 이종성, 김상로, 조재호, 신만, 이후, 민백상, 홍봉한, 정휘량, 윤동도, 김상복, 김치인, 서지수, 김양택, 한익모, 김상철, 이창의, 신회, 이은, 이사관, 원인손, 홍인한 등이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홍봉한은 영조 대에 정승을 역임했으며, 정조 즉위 초에도 이 직을 유지했다. 김상복, 한익모, 이사관, 홍인한, 김상철, 신회, 이은, 김양택 등도 영조 대에 이어 정승으로 활동했다.
정존겸, 서명선, 정홍순, 홍낙순, 이휘지, 홍낙성, 이복원, 김익, 김치인 등이 정조 대에 새롭게 정승에 임명되었다. 조경, 이재협, 유언호, 이성원, 채제공, 김종수, 박종악, 김이소, 김희, 이병모, 윤시동, 심환지, 이시수, 서용보 역시 정조 대에 정승을 역임하였다.
심환지, 이시수, 서용보가 정승을 역임하였다. 김관주, 이병모도 정승을 역임하였다. 서매수, 이경일, 김재찬, 한용귀, 김달순, 김사목 역시 정승이었다. 남공철, 임한호, 이상황, 이서구, 심상규, 이존수, 정만석, 김이교, 홍석주, 박종훈 또한 정승을 역임했다.
남공철, 이상황, 홍석주, 박종훈이 1834년부터 1837년까지 차례로 정승을 지냈다. 이지연은 1838년, 김홍근은 1839년에 정승이 되었다. 조인영은 1840년, 정원용은 1841년부터 1844년까지, 권돈인은 1845년부터 1847년까지 정승을 역임했다. 김도희와 박회수는 1848년에 정승이 되었다.
철종 대에는 정원용, 김도희, 박회수, 조인영, 권돈인이 정승을 역임하였다. 김흥근, 박영원, 이헌구, 김좌근, 조두순도 정승을 지냈다.
3. 1. 조선 태조
태조는 1392년부터 1398년까지 재위하면서, 남을번, 배극렴, 조준, 김사형, 정도전 등을 정승에 임명하였다. 이들은 조선 건국과 초기 기틀 마련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인물들이다.
3. 2. 조선 정종
정종 대에는 이서, 조준, 김사형, 심덕부, 성석린, 민제, 하륜, 이거이 등이 정승을 역임하였다.
3. 3. 조선 태종
태종 대에는 심덕부, 민제, 이서, 이거이, 하륜, 김사형 등이 정승의 자리에 올랐다. 초기에는 조준, 성석린과 같은 개국공신들이 주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조영무, 남재, 이직 등이 추가되었다. 유양, 유정현, 박은, 한상경, 이원, 이귀령 등도 태종 대에 정승을 역임하였다.
3. 4. 조선 세종
세종은 성석린, 남재, 한상경, 심온, 박은, 이원, 유정현, 정탁, 류관, 이직, 조연, 황희, 맹사성, 권진, 최윤덕, 노한, 허조, 신개, 하연, 황보인, 남지 등을 정승으로 임명하였다.
3. 5. 조선 문종
황희, 하연, 황보인, 남지, 김종서가 문종 대의 정승이었다.
3. 6. 조선 단종
문종이 승하한 후 어린 나이로 즉위한 단종 대에는 하연, 황보인, 남지, 김종서 등이 정승을 역임하였다. 계유정난 이후에는 이유, 정인지, 한확 등이 정승의 자리에 올랐다.
3. 7. 조선 세조
세조 대 정승은 정인지, 한확, 이사철, 정창손, 강맹경, 신숙주, 권람, 이인손, 한명회, 구치관, 황수신, 박원형, 심회, 최항, 홍윤성, 조석문, 홍달손, 강순, 이준, 김질 등이다.
3. 8. 조선 예종
정인지, 정창손, 신숙주, 구치관, 심회, 최항, 조석문, 홍달손, 이준, 박원형, 김질 등이 예종 대에 정승을 역임하였다. 윤사분, 한명회, 홍윤성, 윤자운, 김국광 등도 예종 대의 정승이었다.
3. 9. 조선 성종
예종 대에 정인지, 정창손, 신숙주, 구치관, 심회, 최항, 조석문, 홍달손, 이준, 박원형, 김질, 윤사분, 한명회, 홍윤성, 윤자운, 김국광 등이 정승을 역임하였다.
성종 대에는 정인지, 구치관, 홍달손, 이준, 윤사분, 홍윤성, 윤자운, 김국광, 한백륜, 신숙주, 최항, 성봉조, 한명회, 김질, 윤사흔, 정창손, 조석문, 심회, 윤필상, 홍응, 이극배, 노사신, 허종, 윤호, 신승선이 정승을 역임하였다. 이들 중 정인지, 구치관, 홍달손, 이준, 윤사분, 홍윤성은 예종대에 이어 성종대에도 정승직을 유지했다.
3. 10. 조선 연산군
성종 대 윤필상, 윤호, 이극배 등이 정승을 역임하였다. 노사신, 신승선, 정괄, 어세겸, 정문형, 한치형, 성준, 이극균, 유순, 허침, 박숭질, 강귀손, 신수근, 김수동 등이 정승의 자리에 올랐다.
3. 11. 조선 중종
박원종, 유순정, 성희안 등이 중종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옹립하였다. 중종 즉위 초반에는 박원종, 유순, 김수동 등이 정승을 역임하였다. 중종 대에는 정광필, 김응기, 신용개, 안당, 김전, 남곤, 이유청, 권균, 이항, 심정, 이행, 장순손, 한효원, 김근사, 김안로, 윤은보, 유보, 홍언필, 김극성, 윤인경 등이 정승에 임명되었다.
3. 12. 조선 인종
홍언필은 1527년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다. 윤인경과 이기는 1533년에 좌의정과 우의정에 각각 임명되었다. 유관과 성세창이 정승으로 임명되었다.
3. 13. 조선 명종
명종 대에는 윤인경, 유관, 성세창, 이기, 정순붕, 홍언필, 황헌, 심연원, 상진, 윤원형, 윤개, 안현, 이준경, 심통원, 이명, 권철 등이 정승을 역임하였다.
3. 14. 조선 선조
심통원, 이준경, 이명 등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정승에 임명되었다. 민기, 홍섬, 박순 등도 정승을 역임했다. 노수신, 강사상, 정지연이 정승에 임명되었고, 김귀영, 정유길, 유전 등도 정승을 지냈다.
이산해, 정언신, 정철이 정승에 올랐으며, 심수경, 유성룡, 이양원 등도 정승을 역임했다. 최흥원, 윤두수, 유홍이 정승에 임명되었고, 김응남, 정탁, 이원익 등도 정승을 지냈다.
이덕형, 이항복, 이헌국이 정승에 올랐으며, 김명원, 윤승훈, 유영경 등도 정승을 역임했다. 기자헌, 심희수, 허욱, 한응인 등이 정승에 임명되었다.
3. 15. 조선 광해군
기자헌, 심희수, 이항복, 이덕형 등은 임진왜란 시기 선조를 보필한 공로로 정승에 임명되었다. 정인홍은 1623년 인조반정으로 실각할 때까지 정승 자리에 있었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광해군 시기에 임명되었던 정승들은 대부분 실각하거나 처형되었다.
3. 16. 조선 인조
광해군 대에 기자헌, 박홍구, 조정, 이원익, 정창연이 정승을 역임하였다. 윤방은 1614년에 좌의정에 제수되었고, 1616년에 영의정에 제수되었다. 신흠은 1615년 좌의정에 제수되었고, 1623년 영의정에 제수되었다. 오윤겸은 1615년 우의정에 제수되었고, 1623년 좌의정을 거쳐 1624년 영의정에 제수되었다. 김류는 1623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이정구는 1620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김상용은 1621년 우의정에 제수되었고, 1627년 좌의정을 거쳐 1632년 영의정에 제수되었다. 홍서봉은 1624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이홍주는 1625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이성구는 1627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최명길은 1629년 우의정에 제수되었고, 1632년 좌의정을 거쳐 1637년 영의정에 제수되었다. 장유는 1631년 우의정에 제수되었고, 1633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신경진은 1634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심열은 1635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강석기는 1636년 우의정에 제수되었고, 1638년 좌의정을 거쳐 1642년 영의정에 제수되었다. 심기원은 1644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김자점은 1642년 우의정에 제수되었고, 1644년 좌의정을 거쳐 1646년 영의정에 제수되었다. 이경여는 1644년 우의정에 제수되었고, 1645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이경석은 1645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김상헌은 1645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남이웅은 1645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이행원은 1645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정태화는 1646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3. 17. 조선 효종
인조 대에 김자점이 파직과 복직을 반복, 이경석이 영의정에 임명되었고, 정태화가 좌의정에 임명되었다. 김상헌은 청나라에 대한 강경한 주장을 펼쳤으나, 김자점의 복귀와 함께 삭탈관직되었다. 이후 조익, 김육, 이경여, 이시백, 한흥일, 구인후, 심지원, 원두표, 이후원 등이 정승을 역임하였다.
3. 18. 조선 현종
정태화는 효종 대에 이어 현종 대에도 정승을 역임하였다. 심지원, 원두표 또한 효종 대에 이어 현종 대에도 정승의 자리에 있었다. 정유성, 홍명하, 허적, 정치화가 현종 대에 정승에 올랐다. 송시열은 서인의 영수로, 홍중보는 남인의 주요 인물로 현종 대에 정승을 지냈다. 김수항, 이경억, 김수흥, 정지화, 이완 등이 현종 대에 정승을 역임했다.
3. 19. 조선 숙종
송시열은 1680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하고 서인이 재집권하면서 영중추부사가 되었으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다시 권력을 잡으면서 사사되었다. 허적은 1674년 현종이 죽고 숙종이 즉위하면서 영의정에 제수되었으나, 1680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축출되면서 관직을 삭탈당하고 유배되었다.
김수항은 1672년 우의정에 제수되었고, 1674년 현종 말에 좌의정을 거쳐 1675년 영의정에 올랐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하고 서인이 재집권하면서 영중추부사로 물러났으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다시 권력을 잡으면서 관직을 삭탈당하고 유배지에서 사사되었다. 정지화는 1675년 우의정에 제수되었고, 1677년 좌의정을 거쳐 1680년 영의정에 올랐다. 정치화는 1678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권대운은 1680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허목은 1674년 예송논쟁에서 남인의 주장을 옹호하여 1675년 우의정에 제수되었고, 1679년 좌의정을 거쳐 1682년 영의정에 올랐다. 민희는 1680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오시수는 1680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민정중은 1679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이상진은 1680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김석주는 1680년 경신환국을 주도하여 남인을 몰아내고 서인 정권을 수립하는 데 공을 세워 보사공신 1등에 책록되고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남구만은 1679년 좌의정에 제수되었고, 1680년 우의정을 거쳐 1683년 영의정에 올랐다. 정재숭은 1683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이단하는 1683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조사석은 1685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이숙은 1684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김수흥은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고 서인이 실각하면서 영의정에 임명되었으나, 곧 관직을 삭탈당하고 유배되었다.
여성제는 1685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목내선은 1685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김덕원은 1687년 영의정에 제수되었다. 민암은 1688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박세채는 1690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윤지완은 1692년 영의정에 제수되었다.
유상운은 1691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신익상은 1693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윤지선은 1693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서문중은 1694년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하고 서인이 집권하면서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최석정은 1693년 좌의정에 제수되었고, 1699년 영의정에 올랐다. 이세백은 1694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민진장은 1696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신완은 1696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이여는 1697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김구는 1698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이유는 1699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서종태는 1700년 영의정에 제수되었다. 김창집은 1701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이이명은 1701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윤증은 1683년 이후 여러 차례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였고, 1702년 우의정에 제수되었으나 역시 사양하였다. 조상우는 1702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김우항은 1703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권상하는 1704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조태채는 1705년 영의정에 제수되었다. 이건명은 1708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3. 20. 조선 경종
경종 대에는 이유, 권상하, 이이명, 조태채, 김우항, 김창집, 이건명, 조태구, 최규서, 최석항, 이광좌 등이 정승을 역임하였다.
3. 21. 조선 영조
영조 대에는 최규서, 이광좌, 유봉휘, 조태억, 정호, 민진원, 이관명, 홍치중, 조도빈, 이의현, 심수현, 오명항, 이태좌, 이집, 조문명, 서명균, 김흥경, 김재로, 송인명, 유척기, 조현명, 정석오, 민응수, 김약로, 정우량, 이천보, 이종성, 김상로, 조재호, 신만, 이후, 민백상, 홍봉한, 정휘량, 윤동도, 김상복, 김치인, 서지수, 김양택, 한익모, 김상철, 이창의, 신회, 이은, 이사관, 원인손, 홍인한 등이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3. 22. 조선 정조
홍봉한은 영조 대에 정승을 역임했으며, 정조 즉위 초에도 이 직을 유지했다. 김상복, 한익모, 이사관, 홍인한, 김상철, 신회, 이은, 김양택 등도 영조 대에 이어 정승으로 활동했다.
정존겸, 서명선, 정홍순, 홍낙순, 이휘지, 홍낙성, 이복원, 김익, 김치인 등이 정조 대에 새롭게 정승에 임명되었다. 조경, 이재협, 유언호, 이성원, 채제공, 김종수, 박종악, 김이소, 김희, 이병모, 윤시동, 심환지, 이시수, 서용보 역시 정조 대에 정승을 역임하였다.
3. 23. 조선 순조
심환지, 이시수, 서용보가 정승을 역임하였다. 김관주, 이병모도 정승을 역임하였다. 서매수, 이경일, 김재찬, 한용귀, 김달순, 김사목 역시 정승이었다. 남공철, 임한호, 이상황, 이서구, 심상규, 이존수, 정만석, 김이교, 홍석주, 박종훈 또한 정승을 역임했다.
3. 24. 조선 헌종
남공철, 이상황, 홍석주, 박종훈이 1834년부터 1837년까지 차례로 정승을 지냈다. 이지연은 1838년, 김홍근은 1839년에 정승이 되었다. 조인영은 1840년, 정원용은 1841년부터 1844년까지, 권돈인은 1845년부터 1847년까지 정승을 역임했다. 김도희와 박회수는 1848년에 정승이 되었다.
3. 25. 조선 철종
철종 대에는 정원용, 김도희, 박회수, 조인영, 권돈인이 정승을 역임하였다. 김흥근, 박영원, 이헌구, 김좌근, 조두순도 정승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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